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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주제로 한 연작시집 그의 오랜 화두는 '어찌 보면 기막히게 사람답고, 어찌 보면 기막히게 사람답지 못한 존재로서의 사람'이다. 그는 오늘도 <사람>을 두고 읊는다. 이 나라에서 끊임없이 명멸하는 중생보라고도 할 수 있을 터이다. - 이문구 작가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겠지만, 공간적인 은유가 허락된다면, 1) 자연의 한 요소로서의 인간 2)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인간 3) 개체로서의 인간 등으로 범주화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범주화를 경계선으로 넘나드는 시인의 소외의식, 죽음에 대한 의식 등이 이 시인의 시를 꿰뚫고 있는 하나의 주제이다. - 오세영 시인, 서울대 교수 김년균의 시에는 내성화로 나아가게 하는 비애, 혹은 슬픔이 바탕에 깔려있다. 비애의 정서는 그의 시를 읽었을 때 메마르지 않게 하는 어떤 결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의 시를 읽고나서 <서정성> 또는 <서정시>라는 의미를 생각했는데, 이 같은 오늘의 우리 시에 흔치 않은 특징이 다른 시류의 시들과 그의 시를 구별해서 읽게 만든다. - 홍신선 시인, 동국대 교수 김년균은 참으로 열정적인 시인이다. 그 불꽃같은 열정은 잠시 게으름을 피우는 일도 없이 한평생 내내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의 시 <하루>는 한 깨달은 자의 노래이다. 상투적인 언어가 아니라 살아본 자의 노래이다. 그 때문에 이 시는 일상을 넘어서 새로운 감동의 전율을 우리들에게 전해주게 되는 것이다. - 정성수 시인

[본문 41-45쪽 '하루'중에서...]

허영
- 시림

당장 죽어도 두렵지 않습니다.
이 다음의 일은 관심도 없습니다.
천국도 낮으면 넘보지 않고
지옥도 높으면 반갑게 마음을 줍니다.
백 번을 누워도 천 번을 쓰러져도
지칠 줄 모르고,
세상이 망할 때까지 남김없이 사라질 때까지
발가벗고 춤추고 소란을 피웁니다.
하늘자락엔 언제나 한숨이 걸려 있어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해가 지고 달이 가도 세월을 모르고
잎이 지고 꽃이 져도 순리를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일도 못하고,
끊임없이 가슴에 불씨와 기름을 퍼붓습니다.
불길이 높이 치솟아 오릅니다.
어제도 오늘도, 안에도 밖에도, 세상 어디든
그 불길은 꺼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무슨 불길인 줄도 모르고,
왜 그런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칩니다.


실종
- 사람

한 친구가 죽었다고 한다.
숨 놓고 아주 죽어버린 게 아니라
아이엠에프 한파로 직장이 넘어지자
그도 덩달아 넘어졌다고 한다.
하던 일 그만두고 돌아서기란
죽음보다 더한 형벌이었다.
그래서 그는 가족들을 팽개치고
친구들과도 등돌리고
어디론가 떠났다고 한다.
어릴 때의 숨바꼭질처럼 머리카락 보일까
꼭꼭 숨어서
몇 달이 되어도 소식이 없다고 한다.
어디로 갔을까.
구천보다 낮은 벽지를 찾았을까.
세상이 보기 싫고 사람 보기 싫어서
햇볕 안 드는 음습한 그늘에 마음을 부려놓고
젖은 몸 속에 펑펑 술이나 붓고 있을까.
남은 가족들은 친구들은 그 일이 너무 서러워서
밤새워 울었다고 한다.
창자를 뜯어내며 울었다고 한다.
며칠 전 산에 갔다가
산만 믿고 산에만 오르던 사람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듣고서
나는 종내 잠이 안 왔다.
그에게 줄 비문을 떠올려 보았으나
단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밤만 지샜다.


마음의 부자
- 사람

깊은 밤,
아무도 아니오는 밤이면
저 혼자 외로울 것 같지만,

도리어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구름떼 가득 싣고
떼몰려 온다.

깊은 밤,
아무도 아니오는 밤이면
저 혼자 서글플 것 같지만,

도리어 남부러울 것 없이
세상 욕심 다 가지는
부자가 된다.


속상한 봄날
- 사람

날이 따스하다. 벌써 봄이 오는가.
미운 놈 고운 놈, 다 문 밖에 뛰쳐나와
소란을 피운다. 또다시 봄이 오는가.
지나간 걱정들이 쫑긋쫑긋 귀를 세운다.

아침에 세수를 하려고 우물가에 나갔더니,
이상하여라, 물은 어디 갔는지 흔적 없고
허황하여라, 흙탕물만 둥둥 떠있다.
벌써 누가 왔는가. 누가 또 손씻었는가.

이제는 봄이 와도 봄날 같지가 않다.
날이 따스해지면 더욱 속상한 일만 굴러온다.
세월은 그냥 지나치는 게 아니라
항상 똬리를 튼다. 목을 조이며 심술도 부린다.

시인의 말

제1부 하루
생명
세월
나그네
인생
해와 달 아래서
하루
아내와 그리움
원래의 시간
전화 후
겉과 속
무시로
의인
풍습
얼굴
참된 그리움
이별
세상 풍경
마을 산책
외출
허영
실종
마음의 부자
속상한 봄날
감나무 아래서
꿈이여 다시 한번
아름다운 곳으로
아랫목
팔자 소관
병과 주인
아내와 해돋이
동행의 빛
성과 말
타성
기다림
이혼
경험
너른 숲을 향하여
잠자는 씨앗
벌써 왔어요
저문 날
경종
버려야 할 시간
망향
어떤 실업자
겨울 나그네
사모곡
아내와 풀꽃
어떤 집사님
담배 친구
만남
꽃의 속성
절대로
동그라미와 은어
흙과 사랑
시간의 힘
누님과 목련꽃
누이에게
하늘아래
악마와 함께
꽃과 시절
우리 신세
상처
세월따라
고향과 어머니
깨어지는 꿈
환멸에 대하여
꽃과 스승
오늘은 죽고
황혼
바람아 불어라

제2부 시인의 산문
사람과 함께 / 김년균

제3부 해설
뜨거운 열정의 승부사 / 정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