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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어느덧 40년이 흘렀소. 6.25 참화로 가족과 생이별한 이가 어찌 나뿐이오만 해마다 6월이 되면 뭉클 가슴깊은 곳에서 치미는 이산의 설움을 감당하지 못하고 기도로 눈물을 삭이곤 합니다. 후퇴하는 국군을 따라 평양을 떠날 때 둘째 가용이만 데리고 월남한 것이 지금 내 가슴에 못이 되었소. 차마 앰블런스를 세울 수가 없었소. 환자의 차에 얻어 탓다는 죄책감, 그리고 만약 차를 세운다면 피난민들이 몰려와 너도나도 태워달라고 간청할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한 두 달 후면 다시 돌아오리라고 평양에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마음을 달랬습니다. 몇 년 전에 남북한 이산가족 몇 명씩 남과 북을 방문해서 해후의 기쁨을 나누고 돌아온 것을 기억하지요. 난들 왜 가보고 싶지 않았겠소. 그러나 1천만 이산가족 모두의 아픔이 나 못지 않을 텐데 어찌 나만 가족재회의 기쁨을 맛보겠다고 북행을 신청할 수 있었겠소. 나는 내 생전에 평화통일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는 온 민족이 함께 어울려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그날 다시 만나리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 장기려의 편지 기도 속에서 언제나 당신을 만나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아이들이 힘든 일을 당할 때마다 저는 마음 속의 당신에게 물었습니다. 그 때마다 당신은 이렇게 하면 어떠냐고 응답해주셨고 저는 그대로 하였습니다. 잘 자란 우리 아이들, 몸은 헤어져 있었지만 저 혼자 키운 것이 아닙니다. - 부인의 편지

"나는 남들처럼 멋있게 살 줄 모르는 원체 촌뜨기였다. 경성의전 시절을 통틀어도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 거리가 별로 없다."
그는 소극적이고 여린 성격으로 인상적인 대학시절을 보내지 못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사실 기차도 송도고보에서 입학시험을 치를 때 처음 타보았다. 기차가 덜커덩 거리며 흔들린 탓에 어지러워 토했으며 전화도 전문학교 1학년 때 처음 받아보았다.
대학병원에 친척이 입원해서 문병을 갔을 때 어디선가 전화벨소리가 들렸다.
"전화 좀 받아봐라."
친척어른의 말에 그는 가슴이 두근거려 혼났다. 처음보는 기계를 어떻게 다룰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혹시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처음 쥐어본 수화기... 너무 긴장해서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대학생이라면 선택받은 계층이었다. 학사모에 교복까지 잘 차려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대학생들은 뭇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느 학생들과 달랐다.
대학 4년을 통틀어 술집이라고는 단 한 번도 안 갔고 대학생들이 폼잡고 앉아 고담준론을 풀어헤치던 다방도 가지 않았다.
3학년 때 배재고보에 다니던 고향후배가 찾아와 함께 활동사진이라는 걸 봤는데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당시 기원형님 집에서 학교를 다녔던 그가 기원형님에게 "활동사진 보고 왔다"고 자랑하자 기원형님은 "망할 자식..."이라고 야단쳤다. 마음이 여린 그는 그 꾸지람을 듣고는 다시는 영화관 근처를 얼씬거리지 않았다.
2학년 때까지는 축구를 했다. 당시 축구 선수는 선망의 대상이어서 1학년 때 축구부에 들어갔다. 일제의 탄압아래 조선민족이 일본인을 이길 수 있는 분야가 없었다. 일제가 아무리 내선일체를 떠들었지만 조선인이 출세하려면 철저한 친일파가 되어 일본인의 발바닥을 핥아야 했다. 출세에 혈안이 된 친일파들은 일본인보다 더 우리민족을 괴롭혀야 인정받을 수 있었으니 더욱 더 악질 노릇을 해야했다. 하지만 아무리 일제에 빌붙어 성공한다해도 민족적인 차별을 뚫고 고위직에 안착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스포츠에서만큼은 달랐다. 이 땅의 젊은이들은 공을 매개로 마음껏 나라잃은 한을 풀었다. 정해진 룰에 따라 경쟁을 벌이는 분야가 스포츠였으니 그 분야만큼은 질 수 없었다.
특히 축구는 내셔널리즘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종목으로 우리네 젊은이들의 한풀이 스포츠였다. 축구의 기술이나 정신력 또한 압도적이어서 일본인들은 축구만 하면 꼬리를 내렸다.
맘껏 나라잃은 설움을 풀어버리는 모습... 강인한 조선민족의 상징이 되었던 스포츠, 특히 일본에 비해 월등 우세했던 축구기술로 일본인들을 유린하는 모습에 조선인들은 대리만족을 느꼈다.
이런 자신감 넘치는 축구부 선배들에 반해 덜컥 축구부에 들어갔다.
하지만 소질은 없었다. 1학년 때는 골대 뒤에서 공만 줍다 말았고 2학년 때 후보선수가 되었으나 정작 경기에는 나가지 못했다.
언젠가 한 번 주전 선배 한 사람이 큰 부상을 당했다. 마침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서 연희전문과 연습경기를 벌일 참이었다. 연희전문이라면 사학의 명문으로 특히 스포츠에 관한 한 전통을 자랑하는 대표주자였다.
"장기여(고보때 그렇게 불렸다), 너 한 번 뛰어봐."
2년이 다 되도록 단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던 그는 설렘 반 불안 반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라이트 이너로 뛰었다. 라이트 이너는 상태방의 레프트 풀백과 상대해야 했다.
연희전문의 레프트 풀백은 송도고보 선배이면서 조선 투원반 기록까지 갖고 있던 유요한이었다.
"어이 기여, 니가 축구하냐."
유요한씨는 작달막한 키에 몸도 왜소한 그를 보고는 장난을 쳤다.
경기에 들어가니 정말 상대가 안 됐다. 당시에는 한 사람이 여름철에는 축구를 하고 겨울철에는 빙상도 하는, 그야말로 만능 스포츠맨이 많았다. 운동에 소질있는 선수는 보통 2-3종목을 넘나들며 학교의 대표선수로 뽑혔던 시절이었다.
180센티미터에 가까운 거구로 투원반 선수이기도 했던 유요한은 정말 빨랐다. 그와 유요한이 나란히 공을 쫓아가는 모습을 지켜본 동료들은 깔깔 댔다. 경기가 끝나자 한 친구가 그를 보고 놀려댔다.
"어이, 꼭 군함에 보트가 따라가는 것 같더라."
가뜩이나 주눅이 들어있는데 그런 놀림까지 당하니 창피하기만 했다.
사실 그와 축구는 애시당초 어울리지 않았다. 그 사건 이후 축구부를 나왔다.
15살 때 세례를 받고 진정한 크리스천의 길을 걷게 된 그는 YMCA에 나가 한국인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신앙을 키웠다.
당시 경성의전에는 한국인 학생이 전체의 1/4 정도였는데 한국인끼리 모일만한 장소는 YMCA밖에 없었다. 당시 연희전문 교수였던 조병옥 박사와 빈링스 목사 등이 나와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도 했다.
1926년 어느날, 조박사는 한국학생들을 모아놓고는 "가까운 시일 내에 반드시 민족운동이 일어난다"고 역설한 적이 있었다. 학생들은 울분을 토로하며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고 우리 민족은 절대 그냥 쓰러지지 않는다고 비장한 얼굴로 역설하는 조박사의 말을 듣고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그런데 얼마 후 조박사의 말대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다. 비록 일제의 무시무시한 탄압으로 좌절됐지만 매일매일 전해지는 광주의 소식에 일희일비했다.
'YMCA 출입' 외에는 학창시절 내내 공부에만 전념했다. 가정형편이 최악이었지만 아버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학만은 보낸다"는 우리네 여느 부모님과 똑같았다. 우리네 교육열만큼은 그때나 지금이나 둘째가라면 서러워하지 않던가.
아버지는 없는 돈을 꾸어서라도 매달 30원의 학비를 꼬박꼬박 부쳤다. 그런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공부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3학년이 되자 고향에서 보내주는 학비만으로는 견딜 수 없었다. 공부를 위해서는 전문서적도 사봐야 했는데 책값이 만만치 않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기원형님 집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하숙비라도 절약해야 했다. 대신 기원형님 집에서 장작도 패주고 집안 일도 거들면서 밥값을 했다. 형님 댁에서는 "괜찮다"고 했으나 공짜밥을 먹을 수는 없었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공부까지 열심히 했으므로 성적은 줄곧 상위권을 달렸다.
1학년 때 4등으로 출발해서 2학년 때 3등, 3학년 때 2등으로 학년마다 1등씩 올랐고 4학년 때는 드디어 톱으로 마무리했다. 송도고보를 1등으로 나와 경성의전에서도 수석졸업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훗날 이 대목을 크게 후회했다. 성경공부는 꾸준히 했지만 그외에는 학과공부밖에는 몰랐던 스스로를 '공부벌레'에 불과했다면서... 사회과학이나 문학서적과 같은 교양서적을 읽지 않아 종합적인 인간으로서 실력이 없는 공부기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학이라는게 사람의 목숨을 좌우하는 분야로 어디 한눈을 팔아가며 공부할 여력은 없는 것. 요즘도 6년을 꼬박 공부해야 될 정도로 공부하기 어려운 게 의학이니 다른 데 관심을 쏟을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펴내는 이의 말
장기려는 성인인가 바보인가

제1부 네 이웃이 누구냐
1. 뒷문을 열어 놓을 테니 그냥 살짝 도망가시오
2. 나는 가진게 너무 많아
3. 대통령 면담보다 더 중요한 것
4. 네 이웃이 누구냐
5. 수술 전에 기도하다가 늦기도
6. 하나님께 맡깁시다
7. 기쁨, 슬픔, 그리고 회개
8.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
9.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의 친구

제2부 한 사람이 "예비"되었다
1. 병치레 심했던 약골
2. 방탕한 고보시절
3. 빈자를 위해 평생을 바치겠습니다
4. 촌뜨기 공부 벌레
5. 운명의 여인 만나다
6. 백인제 선생과 만남
7. 춘원의 『사랑』모델
8. 박사 학위 취득과 기흘병원 부임
9. 첫승전보, 간설상절제수술 성공
10. 투옥, 그리고 해방
11. 김일성대 의대 외과학과 강좌장
12. 김일성 입원하다
13. 북조선 제1호 의학박사가 되다
14. 다가오는 전쟁의 그림자
15. 전쟁, 밀려드는 수술환자들
16. 한국군의 평양 점령
17. 운명의 날 ... 아버지, 저기 신용이가
18. 제2의 고향, 부산에서 망향의 세월

제3부 망향의 세월
1. 당신 김일성이 보냈지
2. 전영창과의 만남
3. 천막 복음병원 세우다
4. 월급은 식구수대로 합시다
5. 악화일로의 병원재정
6. 다시 진 십자가
7. 장박사 치료 한번 받는 게 소원입니다
8. 부산의대 외과창설과 양재원 사장과의 만남
9. 간 대량 절제수술 성공
10. 행려병자 속으로
11. 첫 세계일주
12. 청십자운동과 채규철
13. 청십자 의료조합 탄생
14. 청십자가 효자보다 낫습니다
15. 막사이사이상 수상

제4부 오늘 아침에도 아내를 만났어요
1. 사랑하는 아내에게
2. 이산가족이 어디 나 하나 뿐이겠소
3. 짧은 만남보다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만나야지
4. 영원한 자유인, 믿음만으로 살다간 성인 장기려

'현대판 허준' 장기려박사 일대기

‘한국의 슈바이처’ ‘현대판 허준’ ‘바보 의사’…. 많은 별명만큼 장기려 박사(1911~95)는 숱한 일화를 낳았다.
부산복음병원 시절 가난한 환자들의 치료비를 자신의 월급으로 대신 내주었다.
동료 의사들로 반발로 이 일을 더이상 할 수 없게 되자 밤중에 병원 뒷문을 열여주며 환자들이 병원을 도망치도록 했다.
길에서 부랑아를 만나면 수표를 건네기도 했다. 며느리가 혼수품으로 가져온 이불을 고학생에게 준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일화이다.
무욕의 삶으로 일관했으면서도 그는 “나는 간디에 비하면 너무 가진 게 많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의성(醫聖) 장기려 박사의 일대기를 정리한 평전. 경향신문 기자인 편저자는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주변 인물의 증언을 청취,
장박사의 모든 것을 이 책에 담았다. 춘원 이광수의 소설 ‘사랑’의 모델이 되었던 이야기, 해방 후 김일성의대 외과과장 시절,
1·4 후퇴 때 아내와 헤어져 월남한 뒤 평생 독신으로 보낸 일, 막사이사이상 수상 사실 등 의사의 길과 함께 인간적 면모까지 꼼꼼히 그려냈다.

- 경향신문 / 2000.08.24 / 조운찬기자

참인술 실천한 거룩한 삶

한 평생을 아름답고 올 곧게 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천생연분의 배필과 생이별한 채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삶은 더욱 그렇다．의사 장기려(1911∼95)．지난 8.15 남북방문단 방문시 아들 장가용 박사의 모자 상봉으로 다시금 화제가 된 인물．

한국의 슈바이처, 현대판 허준, 바보 의사…．
그를 가리키는 별명은 수없이 많다．가난한 환자의 치료비를 자신의 월급으로 대신 내 주기도 했으며 입원비 낼 여력이 없는 환자를 몰래 도망치게 해준 이．며느리가 혼수로 해온 이불을 춥고 배고픈 고학생에게 건네 준 의사．
상상을 넘어서는 무욕의 생활은 때로 그를 바보로 만들기도 했다． 생전에 그는 “나는 간디에 비하면 너무 가진 게 많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그의 호 ‘거룩한 산(성산)’조차 그의 아름다웠던 삶을 담기에는 부족한지 모른다．

아름다운 사람은 세월을 넘는 감동을 선사한다．최근 도서출판 한걸음이아름다운 사람 시리즈 첫 인물로 기획 출간한 ‘성산 장기려’(이기환 편저) 역시 이같은 기대를 허물지 않는다．이 책을 읽다보면 한 인간의 위대함과 삶이 주는 감동에 눈시울을 붉히게 된다． 경향신문 기자인 편저자는 “장박사의 주변 인물을 만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해 되도록 그의 모든 것을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지고지순한 사랑의 표본으로 불렸던 이광수의 소설 ‘사랑’의 주인공인 안빈의 실제 모델이었던 장기려 박사．그의 실생활은 소설보다 더욱 극적이고 지고지순했다．
김일성의대 외과과장이었던 그는 6.25로 아내와 헤어져 월남한뒤 평생독신으로 지내며 함께 월남해했던 둘째 아들을 인술을 실천하는 의사로 키워냈다．
독실한 기독인인 그는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했고 이웃을 사랑했다．“사람만큼 추한 것은 없다．그러나 신을 빼고 사람만큼 신성하고 위대한 것은 없다”고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그는 자신이 지닌 의술 하나로 타자를 위한 열린 삶을 실천했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줬다．

그의 삶은 국민의 고통을 외면했던 이 시대 수많은 의사들과 비교된다．‘성산 장기려’는 이같은 감동적 삶을 여과없이 담았다．
부산 근무시절 입원비가 없어 퇴원을 못하던 막노동꾼을 위해 뒷문을 열어주고 나가라고 했던 일화．아내없는 살림에 차남 장가용 박사를 훌륭하게 성장시킨 일．무료 천막병원을 운영하며 현 의료보험체제의 모델이 된 청십자 의료보험제를 도입했던 사건 등을 빠짐없이 적고 있다．
지금보다 많은 것이 모자랐고 불편했던 그 시절 장박사는 자신의 몫을 떼어 못가진 자들의 부족함을 메우려 했다．자신을 위한 풍요는 그에게 죄악이었다．지난 95년 그의 장례식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눈물을 떨궜다．남녘에 변변한 피붙이도 없건만 헤아릴 수없게 많은 이들이 찾았다．비록 추도사를 읽는 명사들처럼 번듯한 차림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진솔한 슬픔이 가득 담겨 있었다．그의 인술을 통해 새삶을 살게된 과거의 영세민과 행려병자들이었다．어쩌면 그에게 희생과 봉사는 천직이었는지 모른다．

의술 하나로 없는 이에게 등불이 된 사람이되었던 사람．
장기려 박사는 원래 엔지니어가 꿈이었다．집안형편으로 중국 유학이 좌절된 그는 학비가 적은 경성의전(서울의대)을 마친뒤 기독교 신앙을 삶에 실천하겠다는 평소 소신에 따라 평양 기독병원 근무를 자원했다．
평양도립병원장과 김일성대학 교수를 역임한 그는 51년 1월 아내 김봉숙과 5남매를 북에 남긴채 차남만 데리고 남하했다．
그리고 40여년간 그는 수절했다．수많은 유혹이 있었으나 그는 “내 반쪽은 단 한사람”이라며 죄다 거절하고 수절했다．그가 세상을 뜬지 5년이 다 돼서야 차남이 그를 대신해 북녘의 아내를 만날 수있었다．
“의사는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그는 95년 늦가을 조용히 숨을 거뒀다．
평생 무소유의 삶을 지향했던 우리 시대의 성자 장기려는 소천 직전 이같이 말했다．“죽었을 때 물레밖에 남기지 않았다는 간디에 비하면 나는 아직도 가진 것이 너무 많아”
주기보다는 먼저 받을려고 하는 이 시대 그의 삶은 얼마나 맑게 빛나는가．

- 국민일보 / 2000.09.25 / 이병모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