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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릇이 그리 크지 못한 가 봅니다. 크고 거창한 것보다는 소박하고 담백한 것에 더 마음이 끌립니다. 부유한 집에는 보물단지도 있고, 멋진 도자기 그릇도 있고, 나무 그릇도 있다는데, 나무 그릇을 잘 닦는다고 금 그릇이 되는 것은 아닐 테고, 주님의 가르침대로 깨끗한 그릇이 되고, 그릇의 크기만큼 잘 담아내는 것이 제 몫이라 생각합니다. '글은 그 사람'이라는 말처럼, 제가 쓴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인 큰 관점에서 세계를 통찰하며 비전을 제시하고 뭇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감동과 설득과 매끄러움보다는, 사소하고 하찮고 스쳐 지나가는 질박하고 작은 것들에 더 눈길이 가고 그저 한 마음으로 보듬고자 하는 편입니다. 때로 '내 그릇은 이 정도 밖에 안 되나 보다'하고 스스로 금을 긋고 움츠러들기도 하는데, 돌아보면 주님께서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게 사용하고 계심에 놀라게 됩니다. '정말로 내가 이 정도 그릇이 되나?'하며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지금 제 안에 살아 계시는 예수님은 우주라도 담을 수 없을 만큼 크신 분, 아니 우주를 지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얼마나 더 커질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모은 글들은 주보에 쓴 목회칼럼들입니다. 길을 걸으면서, 텔레비전 등을 보면서, 혹은 어떤 일과 상황에 부딪히고 마주하며 그때그때 생각하고 보고 느낀 것들입니다. 고맙게도, 사랑하는 우리 늘푸른침례교회 성도님들이 한 숨결이 되어 주셨고 여러 사람들과도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본문 112-115쪽 '옹담샘, 오솔길 따라'중에서...]

옹달샘, 오솔길 따라

구제헌금을 나누며

구제헌금을 전달하면서 여러 가지를 느끼고 있습니다.
힘든 중에도 해마다 적금을 들어서 구제헌금을 하고 있는 한 성도님의 사랑을 감사하며, 전달의 기쁨을 저희가 누리고 있습니다. 이름을 밝히기 않고 350여 만 원을 선뜻 내놓은 분은 다로 있는데, 전달하면서 감사의 인사는 저희가 받으니 송구스런 마음을 어찌하기 어렵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청지기의 삶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는 청지기로서,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것을 나눠줄 뿐인데 칭찬과 고맙다는 말을 우리가 들으니 말입니다. 복음도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놓은 것을 우리가 전하는 것이고, 선행이나 구제도 마찬가지고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남(하나님)의 것으로 인심쓰고(?) 감사의 말을 우리가 듣게 되니 황송할 따름입니다.
전에도 둘러보곤 했지만 이번에 또 느낀 것은, 밖에서 볼 때에는 괜찮은 집 안에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점입니다. 우리 교회 주변은 서울에서 그리 어려운 지역에 속하지는 않을 텐데, 좋아 보이는 집과 연립주택들의 지하층에는 너무도 어려운 분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들어서면 연탄가스 냄새며, 침착하고 눅눅한 공기, 때로는 단칸방을 온통 차지한 짐 보퉁이들... 겉으로는 번드레하게 보는 듯 했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지하에서 콜록이며 나오는 사람들... 이들은 대개가 결손가정이거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자신의 몸 하나 추스리기 어려운 분들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인데도 낮에 찾아가서는 만나기가 어려웠습니다. 대개는 무언가를 하려고 나가고 없어서, 두 번 세 번 방문해서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정을 방문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83세의 할머니와 아들이 사시는 곳이었는데, 어쩜 그리 얼굴이 곱고 환하고 늘 웃는 표정으로 주름살이 잡히셨는지... 물론 집 안도 아주 깔끔했습니다. 자기 집 앞에 버려졌던 갓난아이를 45년째 데리고 살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분의 말에 의하면, 아마 그 부모가 그 아이를 죽이려고 했는지 때려서 얼굴과 머리 쪽이 많이 상해 있더랍니다. 그래서 지금도 생각과 행동이 어린아이 같아, 놀이터에서 애들하고 논다고 합니다.
권사이신 그 할머니는 그 아들을 천사라고 했습니다. '애가 그렇게 착하다'는 것입니다. 저희들의 눈에는 그 권사님이 천사였습니다. 기도와 예수님으로 온통 녹아있는 삶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일~이십 분간의 대화였지만, 가치관이나 생각 하나하나가 요즘 쉽게 들을 수 없는 살아있는 설교였습니다. 내년에 집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거저 쓰는 단칸방이었지만, 찬송가 가사처럼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인 것 같았습니다 (495장).
마구간에서도 방글방글 웃으셨을 아기 예수님의 미소가 함박눈처럼 마음에 내려앉는 흐뭇한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목사, 나쁜 목사

도움을 청하는 손길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주일에 '할렐루야' '하이! 샬롬' 하시고는 얼마간의 돈과 음식을 받아가는 분도 있고, 대부분은 교회 사무실 입구에서 힘없는 어색한 표정으로 좀 도와 달라고 합니다.
며칠 전에는, 2시간 30분 동안에 열 사람이 오셨습니다. 15분에 한 사람씩 오신 셈입니다. 자기들끼리 오며가며 계단에서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저희 교회에 처음 오신 분이었습니다. 지금은 좀 아파서 일을 못하다고 하는데, 노동을 하며 총각으로 그럭저럭 살아 온 40대 초반이었습니다. 약간 거칠어 보이고 콧수염을 길었다는 점 외에는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말은 투박하면서도 그냥 그대로 잘 했습니다. 교회에도 좀 나갔다가 말았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왠지 마음이 끌려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분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밑바닥의 세계에 대해서도 서로 편하게 이야기 하고, 귀에 딱지가 붙을 만큼 들었을 잔소리도 훈장 선생님처럼 덧붙였습니다. 계속 이렇게만 살아서야 되겠느냐고, 그리고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순수하게 잘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는 같이 교회당에 올라가서 깜바거리는 형광들을 갈아 끼웠습니다. 저는 손도 못 대게 하고 자기가 다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무실로 내려와서는 그냥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은 참 좋은 목사님 같네요.' 했습니다. '고맙다'는 말은 가끔 들었지만, 이런 말은 처음이었습니다. 평범한 말 같으면서도, 기분이 괜찮았습니다. 그리고 서로 붙들고 몸싸움(?)을 한 후에야 겨우 봉투에 넣은 돈을 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좋은 목사라는 말을 들으면서, 동시에 나쁜 목사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사실 그 앞에 온 두 사람에게는 돈을 드리지 않고 그냥 보냈기 때문입니다. 천 원짜리가 다 떨어지고 없어서 다음에 오시라고 했습니다. 평소에 전도사님이 정성껏 봉투에 담아 드렸기 때문에 별로 불평은 안 했지만, 적어도 오늘은 그들이 저를 나쁜(?) 목사라고 떨떠름하게 생각했겠지 싶습니다.
좋은 목사와 나쁜 목사!
채 30분도 안 된 짧은 시간 속에서도, 저에 대한 평가는 그들의 입장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식의 평가는 사소한 일만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해서도 비슷하리라 생각됩니다.
나도 내 중심으로만 예수님을 보고 있지는 않을까?
나의 편견이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보지 못하게 흐려놓지는 않았을까?
과연 성경에 그려진 예수님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일까?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시 119:18)

책머리에

1. 푸른 눈빛, 바람에 실어
맹도견 이야기 / 하얀 부채를 사서
평생도장을 판 아저씨 / 이현세와 황미나 인터뷰
인생은 BCD다 / 어느 표창장에 담긴 이야기
아름다워지고 싶다 / 난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요
성모 마리아의 눈동자는 / 특권 의식을 섬김의 삶으로
영양가 있는 봉사 / 아! 차범근
하얀 맨발 / 올림픽 경기를 보며
고슴도치론 / 한복 맵시 있게 입는 법
한가위를 맞으며 / 통 명절 맛이 안 난다
한가위 보름달처럼 / 수석 합격 수석 졸업
새 돈 쓰는 사람, 헌 돈 쓰는 사람 / 아름다운 매듭

2. 옹달샘, 오솔길 따라
매미의 허물을 주워 들고 / 그루터기 옆에서
그루터기 옆에서, 그 이후 / 그냥 걸었어 / 집에 가면서
'금강산' 앞을 오가며 / '금강산'에 가 보셨습니까?
헌책방에 들러 / 미술학원 앞에서
비싼 이발 /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을 텐데요
누군가 보고 있었네 / 두 선생님의 방문
에어콘 바람 속에서 / 아름다운 교제
걷는 연습을 못 하겠어요 / 구제헌금을 나누며
좋은 목사 나쁜 목사 / '타이타닉'을 보고
'빠삐용'을 보며 / '쉬리'를 보고
예수님은 어디에 계실까?
'병원 24시'를 보며 / '생명의 기적'을 보며

3. 보금자리, 낮은 울타리에서
아이와 찬해지기 / 회장 선거 이야기를 들으며
매운 김치에도 밥 많이 먹읍시다
자식 농사 잘 해야지 / 편지 두 장 / 목욕탕에서
당신은 고급 카메라야! / 결혼 기념일에 쓴 편지
고향에 다녀와서 / 얼차려 이야기 / 밥 바꿔치기
목회자로 훈련시킨 판소리 / 찐 고구마 이야기와 나
기도해 주십시오 / 그간 많이 컸어요!
혹시 편견 때문에 / 신유의 은사
목사이기 전에 / 새벽기도 시간의 묵상
앨범을 보며 / 합격 불합격

4. 풀빛 내음, 묵양터에서
내가 도둑놈 자식을 키우다니! / 이제 일거리 하나 늘었네
우리의 우리 된 것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쉬운 글 어려운 글 / 송진 향기 같은 글을
살아있는 글 / '아'다르고 '어'다르다는데
나는 어째서... 할 수 없다? / 이렇게 황당할 수가!
광고 전단지를 보며 / 큰 교회 작은 교회
대화의 길이 대화의 깊이 / 옷차림
새벽 강대상의 꽃을 보며 / 창립 15주년을 맞아
늘푸른 여름 수양회 잘 다녀왔습니다
'늘푸른 선교대회'를 하고서 / 어울려 일을하며
계약했습니다 / 이성 & 돈
간판 스트레스? / 교회를 이전하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