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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통한 정보매체의 발달은 물질문명 뿐만 아니라 정신문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빛이 밝으면 밝은만큼 어두은 그림자를 뒷편에 남기 듯 과학문명이 발전하는 그 이면에는 반드시 해악의 그림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고 실업자가 늘어나며 비문화적인 상업적 영상의 범람으로 인성이 황폐화되어 가는 비인간화의 우범지대가 발생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인간화의 문화공간과 비인간화의 우범지대를 외면하거니 격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본문 61~65쪽 '신발을 벗어야 하늘이 보인다'중에서]

파라오의 왕궁에서 자란 모세가 청년이 되어 왕궁밖의 민생을 알아보기 위해 왕궁을 몰래 나왔다.
그가 법적으로는 파라오 왕의 외손자로 등재되어 있었으나 유모의 자격으로 왕궁에 들어가 그를 키운 친어머니의 비밀교육 덕분에 자신이 이집트 왕가 혈통이 아니고 히브리 민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왕궁 밖 동족에 동족들이 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곳으로 가보았더니 히브리 동족들이 노예처럼 노역에 동원되어 고통에 시달리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동족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이처럼 혹독한 노역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그때 마침 이집트인 감독 한 사람이 히브리인을 으슥한 외딴 곳으로 끌고 가 채찍으로 사정없이 후려치는 것이었다. 히브리인이 비명을 지르며 용서를 빌었지만 이집트 감독은 들은체도 아니하고 그를 향해 미친 듯이 채찍을 휘둘렀다. 모세는 치가 떨렸다. 사람이 사람을 저처럼 학대할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신격화된 파라오 왕의 치하에서 반인간적인 행패가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음을 보고는 자신이 그 왕궁에서 파라오 왕의 외손자란 지위를 누리면 살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차라리 동족들과 함께 고난을 당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모세는 동족이 학대당하는 광경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좌우를 살핀 후 가만히 뒤로 돌아가 이집트인 감독의 목을 졸라 죽이고 나서 모래 속에 묻어버렸다. 매를 맞던 동족은 모세가 이집트인 시신을 모래 속에 파묻는 것을 보고도 도와주기는 커녕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노역장으로 달아나 버렸다.

모세는 자기가 동족인줄 모르고 감독이 죽자 겁이 나서 그러려니 하고는 서둘러 왕궁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그는 밤새도룩 자기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뇌했다. 동족이 고난 당하는 현장을 못 본 척하고 파라오 왕가에서 평안히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수많은 동족이 파라오의 채찍 밑에서 학대받고 있는 현실 때문에 편안한 삶이 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비참하게 일그러질 것 같았다.

동족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평안을 누릴 것인가? 고난을 당하더라도 자유를 찾을 것인가? 라는 문제를 가지고 밤새도록 번민했다.

그는 날이 샐 무렵에야 하나의 삶을 선택했다. 동족과 함께 고난을 당하면서 동족을 해방시키는 지도자가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능하고 신뢰할 수 있느 지도자가 민족의 구심점이 된다면 동족들이 단결될 것이고 동족들이 단결하여 해방을 위해 투쟁할 의지가 집결된다면 노예 신분을 벗어나 자치적인 독립을 쟁취할 수 있으리란 원대한 꿈이 떠오르자 용기가 생겼다.

모세는 그 꿈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그 이튿날 아침에 왕궁의 동쪽 동족들이 노역하는 장소로 갔다. 동족들은 파라오 군대의 군량미를 저장해두는 성을 축조하기 위해 흙벽돌을 만드는 노역에 동원되고 있었다. 모세가 그곳에 도착하여 어제처럼 몸을 숨긴 채 노역장의 돋정을 살피고 있는데 자기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외딴 곳에서 아주 실망스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광경이 목격되었다. 동족이 동족한 사람을 끌고 와 매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매질을 하는 사람은 어제 이집트 감독으로부터 채찍으로 사정없이 구타를 당하던 사람이었다. 같이 고생을 하는 처지에 서로를 위로하고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동족끼리 저런 행패를 부리다니, 모세는 울화가 치밀어 가슴이 떨렸다.

밤새껏 고민하면서 결론을 얻은 작심이 허탈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내가 과연 저런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 동족을 단합시킬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먹구름처럼 자신을 짓눌렀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두 사람은 눈에 시퍼런 증오의 불을 켠 채 치고 받고 하는 것이었다. 모세는 참다못해 화가 난 몸짓으로 달려가 그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리고 그들을 꾸짖듯이 나무랐다. "동족끼리 이게 무슨 짓이오? 이집트 사람들로부터 학대를 받는 것도 억울할 터인데 동포가 동포를 물고늘어지면 도대체 어쩌자는 겁니까?"하고 두 사람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자 매를 맞던 사람은 뉘우치는 기색을 보였으나 어제 자기가 구해준 사람은오히려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모세를 아니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는 경멸하는 어조로 모세를 향해 큰소리로 떠들었다. "도대체 네가 뭐길래 건방진 수작을 부리느냐? 네가 우리의 재판관이라도 된단 말이냐? 어제는 네가 이집트 감독을 죽이더니 오늘은 또 우리들을 죽일 셈이냐?" 하면서 모세에게 달려들 태세였다. 모세는 그의 예기치 못한 반격에 몹시 당황했다. 이집트 감독을 죽였다는 그 사람의 소리가 노역장까지 들렸는지 채찍을 든 이집트 감독들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가만히 있다가는 그들에게 잡혀 이집트 감독을 죽인 살인자가 될 것이 분명했으므로 모세는 재빨리 그 자리를 떠나 도망갔다. 모세가 인가 있는 쪽을 피해 광야 구릉지에 몸을 숨기고 내려다보니 많은 군대가 동원되어 자기를 찾고 있었다. 모세는 이제 왕궁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자기가 이집트 감독을 죽였다는 사실이 파라오 왕에게 알려지면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라오는 자신의 권위에 조그마한 손상을 입히거나 도전하는 사람은 그가 가족이든 충신이든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잔인성을 갖고 있었다. 복종하고 순응하는 자에겐 신격화된 관용을 보이지만 신격화된 권위를 비판하거나 거스르는 자는 가차없이 처형했다. 그것이 그의 절대군주 체제를 유지하는 비결이었다. 모세는 야음을 이용해 이집트 국경을 넘어 미디안 광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미디안족의 추장격인 이트로의 데릴사위가 되어 자식까지 낳고는 젊은 날의 모든 꿈을 접은 채 이트로의 양무리를 치며 살아가는 평범한 생활인이 되었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는 동족들도 이제는 자기와 상관이 없었으며 관심마저 끊어진지가 오래되었다. 한때는 동족의 지도자가 되어 그들을 구원해 보겠다는 원대한 포부에 가슴 벅찬 때도 있었지만 이제 그런 야망과 포부는 일장춘몽에 불과한 한낱 지나간 바람일 뿐이었다.

책머리에

1. 사람
2. 뱀의 문화
3. 자이언트리즘
4. 다시스로 가는 교회
5. 신발을 벗어야 하늘이 보인다
6. 이삭 가문의 비극
7.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은과 옷을 받는다 말이냐!
8. 삼손의 머리카락
9. 나봇의 포도원
10. 동방박사들과 양치기 목자
11. 아간의 숨긴 금괴
12. 비겁한 도망자
13. 식당 주인이 된 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