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추억을 적을 수 있을까요?

그 어떤 순간도 반복되지 않는 삶 속에서,

어쩌면 추억으로 남지 않는 것이 없는 긴 여행 속에서

무엇을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길 수 있을까요?

하루 종일 생각해 보아도 선명하게 붙잡히고 기억되는 추억 하나가 없다면

일년이란 시간동안 우리 삶의 무미건조함을 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지,

그리고 그 공허함을 스스로 무마시키는 것이 얼마나 처량한 일인지 서글프게 고백하게 되기도 합니다.

기다려 본적이 있어요.

추운 겨울 바람을 얇은 옷 하나에 의지하며 오지도 않을 사람을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려 본 적이,

그렇게 몇 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어쩔 수 없이 돌아가는 발걸음 속에서

하염없이 흐르던 눈물과 그보다 더 깊은 쓸쓸함과 아픔.

그에게 소중한 것이 되기를 기대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을 준비하며 마음으로 세상 그 어떤 행복보다

가슴 깊이 행복했던 때도 기억납니다.

첫사랑에 설렘과 누군가의 마음을 느끼는 그 고운 긴장감,

처음으로 노래부르던 날, 나의 글이 힘이 되었다고 고맙다고 고백받은 날....

교복을 입고 비가 오는 날 하염없이 비를 흠뻑 맞으며 집으로 돌아 가던 길

떨어지는 은행잎을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에 꽤 오래도록 기다렸던 일...

...

그렇게 사소하고 소소한 것들이 아직도 제겐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되고 추억됩니다.

따뜻함이 그리워지고,

사람의 마음이 몹시도 기다려지던 날에 우연히 만나게 된 커피와 따뜻한 차....

사람들의 마음을 듣고 눈물과 웃음에 함께해 주었던 날들도 기억납니다.

먼 나라에서도 작은 사람을 기억해 주고 그래도 마음으로 생각해 주었던 이와

꿈에서 내가 안좋은 일이 있었다며 걱정스런 목소리로 전화해준 고마운 친구의 음성,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었던 열정어린 날들,

어머니의 눈물을 처음으로 보고 함께 울었던 날들,

가슴이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기도로 풀어 내었던 아름답게 고통스러웠던 나날들.

생각해 보면 이토록 많은 추억이 있었음에도

가슴이 추억으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건 어쩌면 너무나 병든 영혼과 마음의 증거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아니면 너무나 바쁘고, 무엇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과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지나친 자기 욕심, 경쟁심...이 모든 것들이 내 안에 복잡하게 살아 있어

고운 숨을 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늘을 보는 것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가슴을 읽고 영혼을 느끼며,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삶을 신경쓰기보다 진짜 내 삶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분이 주신 마음으로 그분의 선한 길을 발견하며 살아가는 것이 정말 필요하겠지요.

그렇지만 오늘은 왠지 하늘을 보며 느꼈던 고귀함들을 가장 낮은 시선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처량하게만 보이는 것들과 숨결이 없는 듯, 버려진 듯한 생명들,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듯한 내 작은 발,

거기서부터 시선이 멈추고 마음은 하늘을 보면서 느꼈던  똑같은 영혼의 울림을 경험하게 됩니다.

토닥, 토닥 어리만지고

곱게 곱게 마음으로 쓰다듬어 주고 싶은 가장 낮은 곳에서의 숨결들.

내 모습의 소소함 같아서 더 마음이 아리게 다가오네요.

그저 눈물이 나는 날이 있답니다.

괜히 아프게 다가오는 날이 있답니다.

아프고 아픈데,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있는 날.

추억이 되고 있나봅니다.

지금의 삶, 바로 이 순간도 추억으로 남겨지고 있나봅니다.

삶의 길이 다하는 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가만히 누군가에게 따뜻함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은 마음으로

또 내일을 살고, 오늘을 살고, 영원히 살아가고 싶습니다.

(소년의 소소한 마음의 이야기 2008.11.9 비오는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