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고 있는 극동방송의 <참좋은 내친구> 프로그램에 지난 1년 간 작가가 보냈던 에세이의 일부를 추려 낸 생활묵상에세이집으로, 지친 현대인들에게 일상의 삶에서 건져 올린 따스한 위로를 전하는 책이다. 글의 일부를 방송용 멘트로 편집하여 프로그램 진행자의 음성으로 시디를 제작해 첨부하였다. 맑고 담백한 삽화들은 상징을 잘 담아내 이 책이 건네는 말을 더 풍성하게 해 준다. 문체가 방송 어조라서 저자가 마치 옆에 앉아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제목은 시편에서 따온 것으로, 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 가장 복 있는 사람임을 나타낸다. 사소하게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는 저자의 통찰력과 탁월한 영성이 책 속에 흐르고 있어 크리스천들을 더 깊은 묵상의 세계로, 일반인들을 명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출판사 서평
전신지님의 글 속에는 사람과 자연과 삶에 대한 통찰이 있다. 사소하게 지나치기 쉬운 일상생활에서 길어 올린 따스한 위로를 전하는 책이다. 신자는 물론 일반인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삶의 메시지들이다. 읽다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풍요롭고 아름다워지고 차분해진다. 마음이 번잡스럽고 길을 잃은 느낌이 들 때, 아무 데나 펼쳐 읽어도 생각의 휴식을 취하고 이정표를 찾을 수 있다. 음성 내레이터 심준구님의 부드러운 음성은 지친 현대인들의 마음에 위로와 평안을 더해준다. 일러스트 박종배님의 맑고 담백한 그림은 상징을 잘 담아내 이 책이 건네는 말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준다.

1.나가수
MBC 의 ‘우리들의 일밤’의 한 코너인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매주 내로라하는 7명의 프로가수들이 출연해 다른 가수의 곡을 다양한 장르로 편곡해 부르는 미션에 도전하고, 일반인 500명으로 구성된 청중평가단의 심사를 거쳐 1등부터 7등까지 순위를 공개하고, 청중의 지지율을 합산해 3주에 1명씩 탈락시킵니다. 이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10%대를 웃돌고 이들의 옵션 노래가 새로운 문화콘텐츠가 되어 온라인 음원차트를 휩쓰는 등 가요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열창하는 가수들의 진정성과 도전정신,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들이 과거의 노래를 재해석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의성,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성, 마이너리티 가수들의 역전, 가수의 재발견, 한국 특유의 연줄 루트가 아닌 오직 실력만으로 승부하는 점, 기획된 아이돌 위주의 가요계 패턴에 노래를 듣게 한 점, 대리 충족심리,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청중과의 소통과 피드백, 서바이벌 방식이 주는 경쟁의식과 긴장감, 과정에서 보여주는 가수들의 스토리텔링 등이 이 프로그램에 사람들이 빠지게 만드는 요인들입니다.  
시청률을 높이고, 그로 인한 다양한 효과를 얻기 위해서라면 프로 가수들도 줄 세울 수 있다는   특이한 발상으로 연출된 <나가수>는 프로(professional)가 무엇인지를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가창력도 중요하지만 감동이 핵심입니다. 대중가수라면 다른 것이 아닌 오직 대중의 마음을 울리는 노래를 불러야 살아남는다는 것, 대중을 위해 자신의 인생이 담긴 노래를 진정성 있게 부를 때 청중이 공감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만약 거기 나오는 가수가 청중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너도 가수냐?”라고 비난할지도 모르지요.

가수들은 오직 대중에게 인정받기 위해, 마치 하룻밤에 났다가 곧 시들어질 박넝쿨 같고, 곧 사그라질 한낱 물거품 같은 인기를 얻기 위해 그토록 혼신의 힘을 다하는데,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는 찬양할 때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그분의 인정을 받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요? <나가수>처럼 만약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는 프로가 있고 주님이 청중평가단이라면 어떨까요? 아마 살벌한 경쟁도 없을 거고요. 1등부터 7등까지 줄세우기도 없겠죠.
세상은 언제나 상대적이고, 1순위는 언제나 바뀝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평가입니다. 비록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 마이너리티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세상에서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간에 프로 그리스도인으로서, 나가수들이 청중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래하는 심정으로 인생의 심판주이신 주님 앞에서, 또 세상의 청중들 앞에서 우리의 삶에 베푸시는 주님의 은혜를 노래한다면,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1등의 영광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문제는 나가수에 나오는 가수들은 가수로서 노래로 승부를 거는데, 그리스도인이라면서 세상의 다른 것으로 인정받는 데 관심이 많아 정작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이름값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죠.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보고 주님께서 “너도 그리스도인이냐?” 라고 물으시면 어쩌나 하고 슬며시 걱정이 되네요.

2. 꽃이 잎보다 먼저 피는 이유

꽃샘추위도 아랑곳없이 봄을 맞이하는 꽃들은 가지 속에서 부지런히 몸단장을 하고 있습니다. 개나리와 진달래, 목련 등 봄맞이꽃들은 성격이 좀 급한가 봐요. 잎도 나기 전에 꽃을 먼저 피우니 말입니다. 그런데 실은 그게 아니고요. 다른 식물들과 마찬가지로 잎이 난 후에 꽃눈이 맺히고 그 후에 꽃이 피는데 다만 봄에 그 일들을 다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거랍니다. 일 년을 두고 보면 꽃이 잎보다 한참 늦게 핀다고 말하는 게 맞습니다.
식물은 온도나 낮의 길이를 인식해 꽃을 피우는 시기를 결정하는데요. 가을에 잎이 떨어지기 전에 그 잎에서 나온 개화호르몬이 수액관을 타고 꽃망울을 만드는 가지 곳곳으로 퍼져갑니다. 그렇게 맺힌 꽃눈이 막상 꽃을 피울 때가 되면 겨울이 닥칩니다. 꽃눈은 추운 겨울 동안 낮은 온도에 있다가 온도가 높아지는 환경변화가 오면 봄이 온 것을 직감하고 개화호르몬인 플로리젠이 나와 꽃을 피우게 합니다.
이런 현상은 개화에 필요한 온도 때문에 생깁니다. 겨울처럼 장기간 저온 상태를 거쳐야 꽃을 피우는 특성 때문입니다. 이렇게 일정 기간 추운 날씨를 필요로 하는 것을 ‘춘화’라고 하는데요. 열매나 꽃을 위해 인위적으로 저온처치를 하면 ‘춘화처리’, 자연스레 되는 것을 ‘자연춘화’라고 해요. 춘화과정이 필요한 식물들이 그 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만약 겨울에 접어들기 전에 온실에 옮기면 낮은 온도를 겪지 않아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가을에 파종하는 보리의 경우 겨울을 거치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도 이삭을 맺지도 못합니다. 튤립이나 백합도 추운 겨울을 견뎌야만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고 하네요.

식물은 온도가 낮의 길이를 인식해 꽃을 피우는 시기를 결정하는데요. 시금치나 홍당무처럼 낮이 길 때 꽃이 피는 장일식물이 있고, 나팔꽃이나 코스모스처럼 낮이 짧을 때 피는 단일식물도 있고, 낮의 길이와 상관없는 중일식물도 있습니다. 식물에는 1년 주기를 인식하는 생체시계가 있어 낮의 길이를 가늠합니다.
식물은 동물처럼 좋은 환경을 찾아 옮겨 다니지 못합니다. 개나리 같은 경우 잎으로부터 영양분을 얻지 못해 꽃가루도 적고 꿀도 별로라 다른 식물과의 경쟁에서 불리합니다. 그래서 꽃가루를 퍼뜨리려면 꽃이라도 남보다 일찍 피워야 할 속사정이 있습니다.
제한된 여건 속에서도 꽃눈을 미리 준비한 채 한겨울의 추위를 씩씩하게 잘 견뎌내고, 때가 되면 봄의 따스한 햇빛을 받아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봄맞이꽃들을 보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비록 냉혹한 현실에 처해 있다 해도 그게 다 삶에 필요한 ‘춘화과정’이라 생각하고, 희망의 꽃눈을 품은 채 묵묵히 어려움 잘 견뎌내고, 언젠가 때가 이르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꽃 다복다복 피워 올려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1:4”

3. 수박

더운 여름, 시원~한 수박을 드시면서 더위를 식히기도 하실 텐데요. 드시면서 수박씨의 힘을 한번 생각해 보셨는지요. 수박씨에는 흙을 밀어젖히고 나오는 힘이 있는데요. 자기보다 무려 20만 배나 더 무거운 것을 뚫고 나온다네요. 정말 힘이 장사죠?
진초록의 겉껍질에 검정 줄무늬, 그 안쪽에는 하얀 껍질, 그 안쪽에는 다시 까만 씨가 촘촘히 박힌 붉은 속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가만히 들여다볼수록 참으로 신비롭지요. 그 하나하나의 씨는 또다시 제각기 자기 무게의 20만 배를 뚫고 나올 것입니다.
수박씨 하나도 이렇게 경이롭고 신비하다면, 하나님의 말씀의 힘은 얼마나 크고 놀라울까요? 만약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마음의 밭에 말씀의 씨앗을 뿌리면 수박씨가 자기의 20만 배가 되는 흙을 뚫고 나와 커다랗고 맛있는 수박이 되는 것보다 더 놀라운 변화가 여러분의 삶에도 일어날 것입니다.    

처음에 수박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수박에 관한 시 한 편 소개하면서 마칠게요. 이응인의 <수박끼리>라는 동시입니다. 
 
수박이 왔어요 달고 맛있는 수박
김씨 아저씨 1톤 트럭 짐칸에 실린 수박
저들끼리 하는 말
형님아 밑에 있으이 무겁제, 미안하다.
괘안타, 그나저나 제값에 팔리야 될낀데. 내사 똥값에 팔리는 거 싫타. 내 벌건 속 알아주는 사람 있을끼다 그자.
그래도 형님아 헤어지마 보고 싶을끼다.
간지럽다 코 좀 고만 문대라. 그래 우리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다시 태어나는 기라.
털털거리며 저들끼리 얼굴을 부비는 수박들.

재미있는 시죠?
이 수박의 소원은 세 가지군요. ‘제값에 팔리는 것, 벌건 자기 속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 사람들 속에 들어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네요.
이 수박처럼, 여러분의 값을 제대로 쳐 주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고요, 여러분의 속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고요, 모두가 다 주님 만나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수박처럼, 여러분의 진정한 가치와 맛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은 혹시 알아보지 못해도, 여러분의 진짜 가치와 맛을 아시는 하나님이 여러분과 늘 함께한다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지 마세요~.

4. 김장김치

김장들 하셨는지요? 지난 여름의 배추 파동은 우리가 김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재인식시켜주었죠. 요즘은 배추 값이 비싸 김치가 금치가 되었는데요. 한국인의 전형적인 식사에서 5첩, 7첩 반상이라고 하면 김치를 제외한 반찬 가짓수를 말할 정도로 김치는 기본이었어요. 김치는 가난한 사람의 반찬, 덜 세련된 촌스러움을 의미했고, 선진국 사람들에게는 먹기 고약한 음식으로 인식되었습니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하고 외국인과 여러 형태의 접촉이 많아지면서 외국인들도 김치의 영양과 효과와 맛을 알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이제는 김치를 외국인에게 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전통 사회에서 부끄러움이 세계화 시대에 와 자랑이 된 것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김치가 1순위죠. 김치는 국제 식품 규격위원회(CODEX)에서 일본의 ‘기무치’를 물리치고 국제 식품규격으로 승인받았습니다.
빨간 김치가 고유의 전통음식인 줄 알고 계시죠? 원래 김치는 절인 채소라는 뜻의 침채(沈菜)가 딤채, 김채, 김치로 변화한 말입니다. 초기의 단순한 채소절임 수준에서 점차 양념류를 가미한 김치가 생겨났는데요. 약 1300년의 김치 역사에서 오늘날 애용되는 배추의 품종이 국내에 들어 온 지는 100년밖에 되지 않고요. 새빨갛고 매운 김치는 역사가 300년도 채 안 된다고 해요.
김치는 알칼리성 식품인데다 지방분이 없는 식품이죠. 그래서 고기나 산성식품을 지나치게 먹어 혈액이 산성화되기 쉽고, 지방을 과다하게 섭취하기 쉬운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식품입니다. 다이어트 효과 외에도 면역 강화, 피부 노화 억제, 항암, 동맥경화 예방, 독성물질 해독, 생리대사 활성화, 정력과 활력 증진, 변비와 대장암 예방, 일본 ‘기무치’의 140배나 되는 유산균의 정장작용(잘 익은 김치 한 그릇에는 유산균이 1억-10억 마리가 들어있다고 해요), 콜레스테롤 감소, 소화력 증진 등 그 효능이 대단합니다. 유산균은 기특하게도 자가면역질환 증상을 개선해 아토피 피부염을 억제하고 류머티즘 관절염에도 효과가 있대요. 김치 많이 드세요~. 

김치를 바라보면서 혹시 나는 김치만도 못한 사람이 아닐까. 최소한 김치 같은 사람만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식사 때 김치 빠지면 안 되듯 어디서든 필요한 사람, 김치가 소금기를 지녀 발효될지언정 썩지는 않듯이 세상의 방부제 같은 사람, 뻣뻣하던 배추가 소금에 절여져 숨이 죽은 후 김치가 되듯 하나님의 은혜로 부드러워진 사람, 김치가 온갖 영양소가 들어 있는 웰빙 식품이듯이 사람들을 영육간에 웰빙하게 해 주는 영양가 많은 사람, 김치가 젖산이 잘 발효된 식품이듯이 거듭나 숙성된 사람, 익으면서 맛 드는 김치처럼 세월이 갈수록 더욱 원숙해지고 주님 사랑이 깊어지는 사람, 먹음직스럽고 빨간 김치처럼 매력적이고 열정적인 사람, 아작아작 씹히고 소화를 돕는 김치처럼 남의 마음에 맺힌 것을 개운하게 풀어주는 사람, 김치가 신진대사를 활성화시켜주듯 소속 집단에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사람, 매콤한 맛처럼 매서운 능력을 보여 주고, 매운 맛으로 스트레스를 풀듯 다른 사람의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사람, 김치가 산성체질을 보완해주는 알칼리성 식품이듯이 이성과 감성의 균형이 잡힌 사람, 여러 부재료가 어울려 김치 특유의 맛을 내듯 다양성을 존중하고 함께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질 줄 아는 사람, 김치에 항암효과라든지 여러 가지 약효가 있듯이 남을 치료해 주는 사람, 지방, 풍습, 기후, 계절에 따라 김치의 종류가 다양하듯이 환경에 잘 적응하고 변화에 유연한 사람, 김치가 어떤 요리와도 잘 어울려 새로운 요리로 거듭나듯 관용하고 창조적인 사람, 무엇보다도 김치가 과거에 반찬 가짓수에도 들지 못할 만큼 저평가된 것처럼 지금 누가 나를 무시하고 몰라준다 해도 본연의 가치를 지니고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언젠가 하나님이 높여주시면 그 효능이 알려져, 김치처럼 가장 한국적인 동시에 세계적인 존재로 자리매김 되는 날이 올 테니까요.

4. 인생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계획

일본에서는 섣달 그믐날 밤에 해넘기기 우동을 먹은 후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신사에 참배를 가는 풍습이 있습니다. 일 년 중 가장 바쁜 날, 종업원들도 보내고 문을 닫으려 할 즈음, 한 아주머니가 머뭇거리며 우동 1인분을 주문합니다. 뒤에는 아이 둘이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서 있습니다. 주인은 눈치 채지 못하게 우동 반 덩어리를 더 넣어 푸짐하게 삶아 내 놓습니다. 세 사람이 이마를 맞대고 우동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고는 150엔을 내고 나갑니다.
그 다음해에도 그들이 찾아와 우동 1인분을 시킵니다. 여주인이 3인분을 주자고 하자 남주인은 도리어 거북하게 여길 것이라면서 반 덩이를 더 넣어 삶아 냅니다.
이듬해는 우동 값이 200엔이 되었지만 주인은 세 모자가 올 시간에 맞추어 메뉴를 150엔으로 바꾸고 2번 테이블에 예약석이라는 팻말을 놓습니다. 올해는 형이 중학교에 들어간 듯 교복을 입었고 아이들도 많이 자랐는데 엄마는 여전히 낡은 체크무늬 반코트입니다. 2인분을 시키자 주인은 3인분의 우동을 끓여냅니다.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형이 신문배달을 하고 동생이 장보기와 저녁식사 준비를 해 주어서 안심하고 회사일을 할 수 있었다면서 엄마가 감사의 말을 했습니다. 동생의 <우동 한 그릇>이라는 작문이 전국 콩쿠르에 입상했습니다. 세 사람이 1인분의 우동을 시켰음에도 기꺼이 만들어 주고는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했을 때 “지지 마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라고 말하는 기분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동생은 어른이 되면 손님에게 “힘내라. 행복해라”하는 마음을 감추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제일의 우동집 주인이 되고 싶은 게 꿈이라고 썼습니다. 엄마 대신 수업참관을 간 형은 동생이 작문을 읽을 때 부끄러웠으나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그 마음이 더 부끄러운 것임을 깨닫고 한 그릇을 시켜 주신 어머니의 용기에 감사하며 형제가 힘을 합쳐 어머니를 보살펴 드릴 것을 다짐합니다. 
이후로 세 모자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북해정이 번창하여 리모델링을 했지만 주인은 그 테이블만은 남겨 두고 해마다 예약석 팻말을 놓고 기다립니다. 그 테이블은 ‘행복의 테이블’로 불리면서 인기를 불러일으킵니다. 14년 후, 정장 차림의 청년 두 명과 화복 차림의 부인이 들어섭니다. 아들들은 장성하여 의사가 되고 은행원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인생 가운데 가장 사치스러운 계획을 세웠는데 그것은 북해정에 찾아가 3인분의 우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따끈한 우동 한 그릇,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운 계절입니다. 날씨가 추울수록, 세상살이가 고될수록, 세상을 훈훈하게 하고 덜 힘들게 하는 것은 우동보다 더 푸짐하고 따끈한 북해정 주인의 마음이 아닐까, 세 모자가 지녔던 가족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네요. 아무리 추워도 따뜻한 곳에 있다가 나가면 견디기가 쉽고, 따끈한 국물을 마시면 어느 정도는 추위를 이길 수 있듯이 개인이든 집단이든 따뜻한 아랫목 같고 따끈한 국물 같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신앙인이라면, 교회라면 더욱 그래야 하겠지요. 사회 조직이 거대해질수록 시스템화하는데, 대개의 시스템은 차갑고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입니다. 하지만 시스템도 인간적일 수 있고 따뜻할 수 있어요. 이 시스템의 온도에 따라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변할 것입니다. 북해정처럼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는 교회, 북해정 주인처럼 약자에 대한 배려를 할 줄 아는 리더라면 심리적 추위에 떨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따스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따끈한 우동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해정이 번창해 리모델링을 한 후에도 여전히 세 모자를 위한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교회가 커져도 그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되겠지요. 주님은 큰 교회보다 사랑이 많은 교회를 원하실 테니까요.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 읽어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1-2월>
1. 새해 첫 달, 첫 마음
2. 토끼의 승패
3. 현명한 만카
4. 경청
5. 신호비용
6. 나가수
7. 지금이 제일 낫다
8. 얼굴에 쓰여 있습니다
9. 베어
10. 생활습관병
11. 스프링벅
12. 송솔나무
13. 윷놀이
14. 염려클리닉
15. 사회적 협력

<3-4월>
1. 꽃이 잎보다 먼저 피는 이유
2. 가장 좋은 선물
3. 민들레
4. 나무를 심은 사람
5. 나무가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6. 사순절
7. 고난주간 성금요일
8. 4·19혁명
9. 장애인의 날
10. 긍정적 몸 인식
11. 행복의 첫 단추
12. 과학의 날
13. 신뢰
14. 사회적 지지
15. 깨진 유리창 이론

<5-6월>
1. 가정의 달
2.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것
3. 엄마 신드롬
4. 희망의 힘, 가족의 힘
5. 심장이야기
6. 신데렐라적 결혼
7. 자서전 쓰기
8. 스승의 날
9. 체벌금지 역효과
10. 주5일수업제
11. 옛 친구
12. 인생의 그림
13. 타인의 의미
14. 소통장애
15. 악마의 덫
16. 테러

<7-8월>
1. 수박
2. 먼지와 모래
3. 날씨
4. 물
5. 돌
6. 바다
7. 자연의 힘, 인공의 힘
8. 소말리아 해적
9. 일본 지진 재난
10. 남한산성 다시보기
11. 슈퍼박테리아
12. 찬양의 힘
13. 의식의 지도
14. 기회비용
15. 인셉션-내 삶의 주인
16. 독재

<9-10월>
1. 사회복지의 날
2. 백로
3. 철도의 날
4. 추석 
5. 추분 
6. 나비부인
7. 세계 한인의 날 
8. 소망의 자기성취
9. 재향군인의 날
10. 한글날
11. 체육의 날
12. 경찰의 날
13. 저축의 날
14. 진정한 위로
15. 그리스도의 대사
16. 오프라 윈프리

<11-12월>
1. 단풍 드는 날
2. 추수감사절
3. 김장김치
4. 거절도 은혜
5. 사람에게는 얼마큼의 땅이 필요한가
6. 한 가지 부족한 것
7. 인구센서스 
8. 개구리 시야와 하나님의 시야
9. 과정과 결과
10. 구제역
11. 눈과 물과 얼음
12. 일만 시간의 법칙
13. 마태복음 효과
14. 인생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