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하나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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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유
도시의 하나님 나라.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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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하나님 나라] 김형국 저. “도시의 하나님 나라, 교회” 최병유책을 펼쳐들며저자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온라인상에서 모 대기업 회장이 그 교회를 다닌다는 기사를 통해서였다. 자극적인 기사와 인상 깊은 그의 외모는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뒤이어 그가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제자훈련으로 유명한 강남의 모 교회를 보며 결국 내 교회 자랑으로 끝났다는 회의를 갖게 되었다. 어차피 그도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로 그 전철을 따라 자기 목회의 시스템을 자랑하는 것 일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대형교회에서 네트워크사역을 지향하며 교회를 분리했다는 말을 들었다. 대형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참된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가 꿈꾼 공동체는 무엇일까? 그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준 것은 무엇일까? 그 이야기가 이 책에 들어있었다. 이 책은 저자가 나들목교회에서 전한 데살로니가전서의 설교이다. 설교이지만 균형과 전문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충분히 들어있다. 간증집이나 설교집 정도의 가벼움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읽는 내내 도전하고, 깨닫게 한다. 그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속한 도시의 환경에서 이 시대교회와의 접촉점을 찾는다. 1.척박한 환경데살로니가는 당시 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때의 도시는 지금과는 다른 여러 가지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도시는 TV에서 보이는 중세의 아름답고 쾌적한 곳이 아니었다. 상하수도 시설의 미비로 오염이 가득했고, 위생개념이 부족한 사람들의 공동체였다. 심한악취와 빈부의 격차, 문란한 삶. 집약적인 주거형태로 인해 전염병이라도 돌면 도시전체가 죽음의 공간이 되었다. 데살로니가는 도시였고, 도시는 결코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다. 그곳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워졌다.데살로니가 교회는 작은 교회였고, 척박한 도시 환경 속에 탄생했다. 뿐만 아니라 사도바울의 신앙지도를 오래 받지도 못한 어린 교회였다. 그들이 변화되고, 변화된 삶을 살아내고, 그 삶을 통해 세상이 변화되는 공동체를 이루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오늘날 교회 공동체들 속에 차고 넘치는 제자리걸음, 혹은 멈춰버린 신앙의 사람들과는 다른 새로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을까? 그는 이 부분을 주목했고, 질문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관심사이고 그 질문의 끝이 닿은 곳은 ‘복음’이었다.2.복음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복된 소식이다. 뭐 별로 새로울 것도 없고, 어느 한 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비밀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해 진정한 복음의 능력을 발견한다. 그 부분은 현대교회의 모습에서 복음과 끊어진 고리이기도 하다. 그는 이것을 \'데살로니가 현상\'이라고 부른다. "죽으면 천국 간다."에서 멈춘 복음이 아니라, 본받고, 행하는 ‘변화의 복음’이었다. 도시 속에 사는 우리가 죽는 그 순간까지 배우고 성장해야 할 복음이며, 나들목교회가 ‘나들목교회 네트워크’로 ‘하나님나라 DNA네트워크’로 확장되도록 만든 이유였다.오늘날 우리가 사는 환경은 도시사회가 대부분이다. 도시의 문화는 가인의 문화이고 어둠의 문화이다. 그 속에서 교회는 성장주의와 기복주의를 내세워 고속도로를 달렸고, 이제 기름이 떨어져버렸다. 도시에 꼭 맞는 복음이라 생각하고 너나 없이 달렸던 시기였다. 교회의 강단마다 "긍정의 힘"을 이야기 했고, "잘 됩니다."를 외쳤다. 그리고 지금은 실체가 없는 적을 만들어 공격하다가 한쪽 구석에서 부들부들 떨며 나만의 성을 쌓고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잘못된 것일까? 그는 데살로니가 공동체를 보며 그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해낸다. 한국교회가 멈춰선 지점은 “죽으면 천국 간다.”였다. 그곳이 잘못된 길로 들어선 지점이었고, 다시 선택해야 할 교차로란 것이다. 그는 복음의 연쇄반응을 ‘데살로니가 현상’이라 명명하며 한국교회에 도전한다.3.공동체그렇다면 그 복음이 어떻게 데살로니가 교회를 바꾸어놓은 것일까? 그것은 공동체였다. 그는 나홀로 신앙에 빠진 이 시대의 교회에 공동체를 이야기한다. 나들목교회가 사라져도 가정이 교회가 된다면, 아니 가정이 교회가 되는 것이 데살로니가 교회가 보여준 공동체의 참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 공동체는 교제를 통해 아름다워진다. 서로 교제하고 좋아하는 수평적인 관계가 아닌, 하나님께로 연결되는 수직적인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홀로 예배하며 사라지는 신앙이 아니라,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살리는 복음’이 흐르는 곳이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이끄는 이와 따르는 이의 교제이다.그 공동체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간다. 그리고 그 뜻은 ‘거룩’이다. 이 한 단어를 통해 그들이 이룬 공동체가 만들어갔던 교회,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헌금, 이웃과의 삶, 구제, 교회의 직책 등등 모든 부분에서 드러나고 흐른다. 그것이 복음의 힘이었고, 그 복음이 데살로니가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는 지금 이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이 복음을 바라보고 있고, 이 삶을 함께 사는 하나님나라를 위해 애쓰는 것이다.책을 덮으며하나님 나라는 이미 그 도시에, 그리고 지금 우리 안에 임하셨다. 그렇다면 이 도시에 임한 하나님나라를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 이 책은 그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 책은 그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 나라를 품고, 살았던 데살로니가 교회와 도시를 살고 있는 이 시대 교회들의 이야기를 한다. 이 책을 덮으며 나에게 생긴 “나는 이 도시 속 교회에서 어떤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있는가?”라는 깊은 고민과 희망을 당신도 만나게 될 것이다.
[도시의 하나님 나라] 김형국 저. “도시의 하나님 나라, 교회” 최병유

책을 펼쳐들며
저자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온라인상에서 모 대기업 회장이 그 교회를 다닌다는 기사를 통해서였다. 자극적인 기사와 인상 깊은 그의 외모는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뒤이어 그가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제자훈련으로 유명한 강남의 모 교회를 보며 결국 내 교회 자랑으로 끝났다는 회의를 갖게 되었다. 어차피 그도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로 그 전철을 따라 자기 목회의 시스템을 자랑하는 것 일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대형교회에서 네트워크사역을 지향하며 교회를 분리했다는 말을 들었다. 대형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참된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가 꿈꾼 공동체는 무엇일까? 그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준 것은 무엇일까? 그 이야기가 이 책에 들어있었다.
이 책은 저자가 나들목교회에서 전한 데살로니가전서의 설교이다. 설교이지만 균형과 전문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충분히 들어있다. 간증집이나 설교집 정도의 가벼움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읽는 내내 도전하고, 깨닫게 한다. 그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속한 도시의 환경에서 이 시대교회와의 접촉점을 찾는다.

1.척박한 환경
데살로니가는 당시 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때의 도시는 지금과는 다른 여러 가지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도시는 TV에서 보이는 중세의 아름답고 쾌적한 곳이 아니었다. 상하수도 시설의 미비로 오염이 가득했고, 위생개념이 부족한 사람들의 공동체였다. 심한악취와 빈부의 격차, 문란한 삶. 집약적인 주거형태로 인해 전염병이라도 돌면 도시전체가 죽음의 공간이 되었다. 데살로니가는 도시였고, 도시는 결코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다. 그곳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워졌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작은 교회였고, 척박한 도시 환경 속에 탄생했다. 뿐만 아니라 사도바울의 신앙지도를 오래 받지도 못한 어린 교회였다. 그들이 변화되고, 변화된 삶을 살아내고, 그 삶을 통해 세상이 변화되는 공동체를 이루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오늘날 교회 공동체들 속에 차고 넘치는 제자리걸음, 혹은 멈춰버린 신앙의 사람들과는 다른 새로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을까? 그는 이 부분을 주목했고, 질문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관심사이고 그 질문의 끝이 닿은 곳은 ‘복음’이었다.

2.복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복된 소식이다. 뭐 별로 새로울 것도 없고, 어느 한 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비밀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해 진정한 복음의 능력을 발견한다. 그 부분은 현대교회의 모습에서 복음과 끊어진 고리이기도 하다. 그는 이것을 \'데살로니가 현상\'이라고 부른다. "죽으면 천국 간다."에서 멈춘 복음이 아니라, 본받고, 행하는 ‘변화의 복음’이었다. 도시 속에 사는 우리가 죽는 그 순간까지 배우고 성장해야 할 복음이며, 나들목교회가 ‘나들목교회 네트워크’로 ‘하나님나라 DNA네트워크’로 확장되도록 만든 이유였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환경은 도시사회가 대부분이다. 도시의 문화는 가인의 문화이고 어둠의 문화이다. 그 속에서 교회는 성장주의와 기복주의를 내세워 고속도로를 달렸고, 이제 기름이 떨어져버렸다. 도시에 꼭 맞는 복음이라 생각하고 너나 없이 달렸던 시기였다. 교회의 강단마다 "긍정의 힘"을 이야기 했고, "잘 됩니다."를 외쳤다. 그리고 지금은 실체가 없는 적을 만들어 공격하다가 한쪽 구석에서 부들부들 떨며 나만의 성을 쌓고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잘못된 것일까? 그는 데살로니가 공동체를 보며 그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해낸다. 한국교회가 멈춰선 지점은 “죽으면 천국 간다.”였다. 그곳이 잘못된 길로 들어선 지점이었고, 다시 선택해야 할 교차로란 것이다. 그는 복음의 연쇄반응을 ‘데살로니가 현상’이라 명명하며 한국교회에 도전한다.

3.공동체
그렇다면 그 복음이 어떻게 데살로니가 교회를 바꾸어놓은 것일까? 그것은 공동체였다. 그는 나홀로 신앙에 빠진 이 시대의 교회에 공동체를 이야기한다. 나들목교회가 사라져도 가정이 교회가 된다면, 아니 가정이 교회가 되는 것이 데살로니가 교회가 보여준 공동체의 참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 공동체는 교제를 통해 아름다워진다. 서로 교제하고 좋아하는 수평적인 관계가 아닌, 하나님께로 연결되는 수직적인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홀로 예배하며 사라지는 신앙이 아니라,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살리는 복음’이 흐르는 곳이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이끄는 이와 따르는 이의 교제이다.
그 공동체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간다. 그리고 그 뜻은 ‘거룩’이다. 이 한 단어를 통해 그들이 이룬 공동체가 만들어갔던 교회,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헌금, 이웃과의 삶, 구제, 교회의 직책 등등 모든 부분에서 드러나고 흐른다. 그것이 복음의 힘이었고, 그 복음이 데살로니가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는 지금 이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이 복음을 바라보고 있고, 이 삶을 함께 사는 하나님나라를 위해 애쓰는 것이다.

책을 덮으며
하나님 나라는 이미 그 도시에, 그리고 지금 우리 안에 임하셨다. 그렇다면 이 도시에 임한 하나님나라를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 이 책은 그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 책은 그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 나라를 품고, 살았던 데살로니가 교회와 도시를 살고 있는 이 시대 교회들의 이야기를 한다. 이 책을 덮으며 나에게 생긴 “나는 이 도시 속 교회에서 어떤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있는가?”라는 깊은 고민과 희망을 당신도 만나게 될 것이다.
(작성일 2020.02.22)
하광진
다시 점검해야할 교회(도시의 하나님나라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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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김형국 목사님의 책을 뜻 깊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저자 이름만 보고 읽기로 맘 먹었는데 알고 보니 데살로니가전서 설교집이었습니다. 작년 전교인수련회를 기준으로 하신 설교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목사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한번 더 교회의 본질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해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가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지역에 어떻게 해서 복음이 뿌리내릴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아름다운 복음의 소식이 주변에 소문이 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데살로니가서를 자세하게 쉽게 강해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도시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데살로니가에 “데살로니가현상”을 일으킨 것이죠. 잘 살아보겠다고 거대한 꿈을 갖고 도시로 나온 사람들에게 도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아니라 복음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확립하고 그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그때의 흐름을 뒤엎는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도시에 살지만 도시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살라는 것이죠. 복음을 받아들였으면 그 복음으로 살라는 것이죠. 다 포기하고 있는 복음의 능력을 불일듯이 일으켜 주는 책입니다. 요즘 교회를 보면 포기 하는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눈치보기 보다는 교인들 눈치 보며 교회가 운영되는 것같은 아쉬움이 듭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정말 문제가 없는 것처럼 시대의 풍조에 떠내려가는 것만 같습니다. 다 그렇고 그런 거지,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지만 이 도서는 그런 생각을 한방에 날려줍니다. 그리고 두리뭉실한 것을 분명하게 선을 그어주고, 개인 중심적인 것에서 공동체 중심으로, 복음이 아닌 것에서 진정한 복음으로 이어주는 역할하고 있습니다. 다시 작은 디딤돌이 되어서 우리로 하여금 교회에 대한 신선하고 희망적인 메세지를 갖게 해주는 책입니다.
과거에 김형국 목사님의 책을 뜻 깊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저자 이름만 보고 읽기로 맘 먹었는데 알고 보니 데살로니가전서 설교집이었습니다. 작년 전교인수련회를 기준으로 하신 설교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목사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한번 더 교회의 본질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해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가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지역에 어떻게 해서 복음이 뿌리내릴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아름다운 복음의 소식이 주변에 소문이 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데살로니가서를 자세하게 쉽게 강해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도시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데살로니가에 “데살로니가현상”을 일으킨 것이죠. 잘 살아보겠다고 거대한 꿈을 갖고 도시로 나온 사람들에게 도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아니라 복음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확립하고 그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그때의 흐름을 뒤엎는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도시에 살지만 도시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살라는 것이죠. 복음을 받아들였으면 그 복음으로 살라는 것이죠. 다 포기하고 있는 복음의 능력을 불일듯이 일으켜 주는 책입니다.

요즘 교회를 보면 포기 하는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눈치보기 보다는 교인들 눈치 보며 교회가 운영되는 것같은 아쉬움이 듭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정말 문제가 없는 것처럼 시대의 풍조에 떠내려가는 것만 같습니다. 다 그렇고 그런 거지,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지만 이 도서는 그런 생각을 한방에 날려줍니다. 그리고 두리뭉실한 것을 분명하게 선을 그어주고, 개인 중심적인 것에서 공동체 중심으로, 복음이 아닌 것에서 진정한 복음으로 이어주는 역할하고 있습니다.

다시 작은 디딤돌이 되어서 우리로 하여금 교회에 대한 신선하고 희망적인 메세지를 갖게 해주는 책입니다.
(작성일 2020.02.17)
김상철
도시의 하나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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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말해 주듯이 이 책은 성경강해집이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해서 도시에서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향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강해라고 하면 원어의 의미를 최대한 살려내는 것이 우선된 일이다. 그런 원칙에 충실했다. 두 개의 성경번역본을 기록해 둔 것은 그런 차원에서 배려이다. 동시에 원어의 의미를 현대를 사는 이들에게 살려내는 것에 애를 쓴 흔적을 책 전체에서 볼 수 있다. 많은 설교집들, 강해설교라고 하는 책에서까지 강해설교인지 예화집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주객을 전도시키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 책은 그런 불편을 맞닥뜨리지 않아도 된다. 9번에 걸친 강해를 통해서 도시라는 상황에 맞춰서 교회 공동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구어체 형식이라서 흐름을 따라가기가 수월하다. 곧바로 본문으로 진입하지 않고, 데살로니가라는 도시에 대해서 충분히 살핀 것은 강해집을 읽는 사람들에게 큰 배려이면서 본이 된다. 웬만한 사람들은 저자를 알 것이다. 한 두권의 설교집이나 책을 읽었을 것이다. 나로서는 지난 번의 주기도문 강해집을 읽은 이후에 처음이다. 누군가의 설교를 따라 한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군더더기 없이 본문을 파고드는 저자가 좋은 본이 되었다. 본문을 대하면서 결국 설교이기 때문에 적용이 느낌으로 가지 않고 논리로 가고 있다는 것은 책을 읽는 내내 보게 되는 장점이었다. 그래서 개념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는 지점까지 다다르게 된다. 한국교회의 일상들이 뼈아프게 느껴지도록 고발하는 내용은 고발을 위한 고발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지적임을 보게 된다. 그것은 저자의 방법이 아니라 성경말씀의 방법이고, 그 방법을 신뢰했기 때문에 저자는 담대하게 성경을 말하고 있다. 성경본문이 다루는 부분에 대해서 빙둘러 잠깐 언급하는 것으로 회피하지 않고, 본문이 대면하는 주제를 저자도 직면한다. 내식대로 해석하지 않는 성경해석의 자세, 설교자의 자세를 보게 된다. 사실 성, 돈에 대한 이야기는 암묵적으로 회피하는 주제이다. 그러나 저자는 달랐다. 그런것들조차 말씀앞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데살로니가교회를 통해서 현대의 도시교회가 들어야 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고 정갈하게 들려주고 있다. 한편의 설교가 결코 짧지 않은데, 술술 읽히는 이유는 본문을 대하는 저자의 진지함과 더불어서 듣는 자들을 충분히 배려하는 언어로 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괜찮은 강해서를 한 권 발견했다.
부제가 말해 주듯이 이 책은 성경강해집이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해서 도시에서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향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강해라고 하면 원어의 의미를 최대한 살려내는 것이 우선된 일이다. 그런 원칙에 충실했다. 두 개의 성경번역본을 기록해 둔 것은 그런 차원에서 배려이다. 동시에 원어의 의미를 현대를 사는 이들에게 살려내는 것에 애를 쓴 흔적을 책 전체에서 볼 수 있다. 많은 설교집들, 강해설교라고 하는 책에서까지 강해설교인지 예화집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주객을 전도시키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 책은 그런 불편을 맞닥뜨리지 않아도 된다.

9번에 걸친 강해를 통해서 도시라는 상황에 맞춰서 교회 공동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구어체 형식이라서 흐름을 따라가기가 수월하다.

곧바로 본문으로 진입하지 않고, 데살로니가라는 도시에 대해서 충분히 살핀 것은 강해집을 읽는 사람들에게 큰 배려이면서 본이 된다. 웬만한 사람들은 저자를 알 것이다. 한 두권의 설교집이나 책을 읽었을 것이다. 나로서는 지난 번의 주기도문 강해집을 읽은 이후에 처음이다. 누군가의 설교를 따라 한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군더더기 없이 본문을 파고드는 저자가 좋은 본이 되었다.

본문을 대하면서 결국 설교이기 때문에 적용이 느낌으로 가지 않고 논리로 가고 있다는 것은 책을 읽는 내내 보게 되는 장점이었다. 그래서 개념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는 지점까지 다다르게 된다. 한국교회의 일상들이 뼈아프게 느껴지도록 고발하는 내용은 고발을 위한 고발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지적임을 보게 된다. 그것은 저자의 방법이 아니라 성경말씀의 방법이고, 그 방법을 신뢰했기 때문에 저자는 담대하게 성경을 말하고 있다.

성경본문이 다루는 부분에 대해서 빙둘러 잠깐 언급하는 것으로 회피하지 않고, 본문이 대면하는 주제를 저자도 직면한다. 내식대로 해석하지 않는 성경해석의 자세, 설교자의 자세를 보게 된다. 사실 성, 돈에 대한 이야기는 암묵적으로 회피하는 주제이다. 그러나 저자는 달랐다. 그런것들조차 말씀앞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데살로니가교회를 통해서 현대의 도시교회가 들어야 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고 정갈하게 들려주고 있다. 한편의 설교가 결코 짧지 않은데, 술술 읽히는 이유는 본문을 대하는 저자의 진지함과 더불어서 듣는 자들을 충분히 배려하는 언어로 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괜찮은 강해서를 한 권 발견했다.
(작성일 2020.02.15)
하재현
주님을 본받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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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현재, 나의 고민입니다. 올해 처음으로 구역장이 되면서 더 깊어진 고민입니다. 그 고민 속에서 김형국의 “도시의 하나님나라”를 읽어습니다. 저자는 도시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와 현대 교회를 비교합니다. 이 비교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소그룹은 교회의 하위 그룹에 하나가 아니라 하나의 교회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도시는 바쁘게 돌아갑니다. 하나님을 생각할 여유조차 주지 않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합니다. 현대 교회 교인들은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인의 교회는 어떻게 도시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을 지켜갈 수 있었을까요? 저자는 그것을 “복음과 회심” “본받기” “고난과 성숙” “성도의 참된 교제” “성” “경제상황과 죽음” “종말” “공동체”를 통해서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본받았습니다. 데살로니아인의 교회는 예수님과 바울을 본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 교회에서 데살로니가 현상이 사라지다시피 한 이유는 본이 되려는 사람도 없고, 본받으려는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현상이란 데살로니아인의 교회에서 나타난 현상을 말합니다. 본이 되려면 자기를 희생해야하는데, 현대인들은 자기를 희생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본받으려면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현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바쁘다” 입니다. 오죽하면 바빠서 죽겠다고 하겠습니까. 바빠도 본받는 자가 되고, 희생하기 싫어도 본이 되는 자로 성숙해야 합니다. 저자는 본받는 자를 “따르미”로 본이 되는 자를 “이끄미”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이끄미가 되어야 합니다. 이끄미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자신을 드러내면 안 됩니다. “자신을 변화시킨 하나님, 그분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꿈은 공동체에 주신 하나님나라 복음을 개개인이 잘 살아 내고, 살아 낸 만큼 후배에게 전달해 주면서 자신은 계속해서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끄미의 삶입니다.” 이끄미와 따르미는 “성도의 교제”를 통해 성숙해져야합니다. 데살로니아인의 교회에서는 이끄미가 따르미를 “유모처럼, 형제처럼, 아버지처럼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는 “성도의 교제조차 굉장히 자기중심적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믿음과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참된 교제의 기본은 인격적 관계이며, 인격적인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소통입니다. 소통이 없으면 인격적 관계는 세워지지 않습니다. 소통이 중요합니다.” 성도의 교제에서는 진리가 주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진리위에 든든히 서고, 사랑이 넘쳐야 합니다. 이끄미는 성도의 교제를 통해 주님을 본받는 자가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현재, 나의 고민입니다. 올해 처음으로 구역장이 되면서 더 깊어진 고민입니다. 그 고민 속에서 김형국의 “도시의 하나님나라”를 읽어습니다. 저자는 도시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와 현대 교회를 비교합니다. 이 비교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소그룹은 교회의 하위 그룹에 하나가 아니라 하나의 교회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도시는 바쁘게 돌아갑니다. 하나님을 생각할 여유조차 주지 않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합니다. 현대 교회 교인들은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인의 교회는 어떻게 도시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을 지켜갈 수 있었을까요? 저자는 그것을 “복음과 회심” “본받기” “고난과 성숙” “성도의 참된 교제” “성” “경제상황과 죽음” “종말” “공동체”를 통해서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본받았습니다. 데살로니아인의 교회는 예수님과 바울을 본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 교회에서 데살로니가 현상이 사라지다시피 한 이유는 본이 되려는 사람도 없고, 본받으려는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현상이란 데살로니아인의 교회에서 나타난 현상을 말합니다. 본이 되려면 자기를 희생해야하는데, 현대인들은 자기를 희생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본받으려면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현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바쁘다” 입니다. 오죽하면 바빠서 죽겠다고 하겠습니까.
바빠도 본받는 자가 되고, 희생하기 싫어도 본이 되는 자로 성숙해야 합니다. 저자는 본받는 자를 “따르미”로 본이 되는 자를 “이끄미”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이끄미가 되어야 합니다. 이끄미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자신을 드러내면 안 됩니다. “자신을 변화시킨 하나님, 그분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꿈은 공동체에 주신 하나님나라 복음을 개개인이 잘 살아 내고, 살아 낸 만큼 후배에게 전달해 주면서 자신은 계속해서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끄미의 삶입니다.”
이끄미와 따르미는 “성도의 교제”를 통해 성숙해져야합니다. 데살로니아인의 교회에서는 이끄미가 따르미를 “유모처럼, 형제처럼, 아버지처럼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는 “성도의 교제조차 굉장히 자기중심적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믿음과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참된 교제의 기본은 인격적 관계이며, 인격적인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소통입니다. 소통이 없으면 인격적 관계는 세워지지 않습니다. 소통이 중요합니다.” 성도의 교제에서는 진리가 주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진리위에 든든히 서고, 사랑이 넘쳐야 합니다.
이끄미는 성도의 교제를 통해 주님을 본받는 자가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작성일 2020.02.15)
조현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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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자평]김형국 목사님의 설교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강해한 내용인데요.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저는 김형국 목사님의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굉장히 큰 은혜를 누렸습니다. 그래서 신간이 나오자마자 구입했습니다. 전에, 저도 데살로니가전후서를 강해한 적이 있었는데요. 김형국 목사님은 어떤 관점을 두고(가지고) 데살로니가전서를 연구했는지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매자평]김형국 목사님의 설교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강해한 내용인데요.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저는 김형국 목사님의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굉장히 큰 은혜를 누렸습니다. 그래서 신간이 나오자마자 구입했습니다. 전에, 저도 데살로니가전후서를 강해한 적이 있었는데요. 김형국 목사님은 어떤 관점을 두고(가지고) 데살로니가전서를 연구했는지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성일 2019.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