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용서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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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평 ( 실구매자 평점 180점 )  
김경식
왜 용서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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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자평]등에 박힌 총알보다 가슴 속에서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하다. 왜 용서해야 하는가? 이 질문을 함게 던져봅시다. 용서만이 상실을 견디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소개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용서로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회복한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주님이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꼭 필요한 이 시대의 메시지가 용서해야 하는가?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구매자평]등에 박힌 총알보다 가슴 속에서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하다. 왜 용서해야 하는가? 이 질문을 함게 던져봅시다. 용서만이 상실을 견디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소개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용서로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회복한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주님이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꼭 필요한 이 시대의 메시지가 용서해야 하는가?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작성일 2015.11.29)
하광진
손 편지의 추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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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에서 편지가 얼마 중요한지를 전문 필경사가 어린 견습생에게 보낸 편지중의 일부이다. 손으로 쓰는 글이나 편지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자판을 두들기면서 쓰는 느낌과 펜으로 쓸 때의 느낌은 하늘과 땅차이다. 일단 펜으로 편지를 쓰면 내 필체가 드러나기 때문에 받아보고 읽는 이로 하여금 더 친밀함을 느끼게 한다. 본서에서는 편지의 발견과 여러 가지 용도를 각 장별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다. 편지의 용도가 이렇게 많았나 할 정도로 유익함들이 많다. 특히 유명인들의 편지를 많이 소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래된 편지를 발견하게 된 사연들도 소개하고 있다. 그 만큼 편지는 오래전부터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서 편지를 받았던 옛날 기억을 다시 되새길 수 있고, 그 편지를 쓰기 위해서 고민고민 했던 밤, 써 놓고도 보내지 못하고 찢어버렸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그리고 보낸 편지의 답장을 기다리는 그 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본서에도 나오지만 우체부 아저씨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기억도 떠오르게 한다. 그 때가 더 행복하지 않았던가. 사실 제가 근무하는 곳에서 중요한 감사의 내용을 쓸 때는 반드시 손 편지를 써서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왜냐면 그 만큼 손글씨가 주는 정서적인 따뜻함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카톡을 통해서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 감정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풍성함을 옛날 손 편지에 담겨 있다. 이 책은 편지를 주고 받았던 사람들의 감정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유명인들의 편지도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동일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추천합니다. 메말라가는 현대인들에게 옛날을 추억하며 손 편지를 쓰도록 감동을 줄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편지가 얼마 중요한지를 전문 필경사가 어린 견습생에게 보낸 편지중의 일부이다.
손으로 쓰는 글이나 편지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자판을 두들기면서 쓰는 느낌과 펜으로 쓸 때의 느낌은 하늘과 땅차이다. 일단 펜으로 편지를 쓰면 내 필체가 드러나기 때문에 받아보고 읽는 이로 하여금 더 친밀함을 느끼게 한다.

본서에서는 편지의 발견과 여러 가지 용도를 각 장별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다. 편지의 용도가 이렇게 많았나 할 정도로 유익함들이 많다. 특히 유명인들의 편지를 많이 소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래된 편지를 발견하게 된 사연들도 소개하고 있다. 그 만큼 편지는 오래전부터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서 편지를 받았던 옛날 기억을 다시 되새길 수 있고, 그 편지를 쓰기 위해서 고민고민 했던 밤, 써 놓고도 보내지 못하고 찢어버렸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그리고 보낸 편지의 답장을 기다리는 그 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본서에도 나오지만 우체부 아저씨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기억도 떠오르게 한다. 그 때가 더 행복하지 않았던가. 사실 제가 근무하는 곳에서 중요한 감사의 내용을 쓸 때는 반드시 손 편지를 써서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왜냐면 그 만큼 손글씨가 주는 정서적인 따뜻함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카톡을 통해서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 감정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풍성함을 옛날 손 편지에 담겨 있다. 이 책은 편지를 주고 받았던 사람들의 감정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유명인들의 편지도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동일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추천합니다. 메말라가는 현대인들에게 옛날을 추억하며 손 편지를 쓰도록 감동을 줄 것이다.
(작성일 2015.11.17)
문혜영
용서, 인류의 숨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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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인류의 숨구멍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서평깜깜한 밤 하늘을 올려다보라. 검푸른 하늘에서 우리는 구름을 보고 달을 본다. 때로는 칠흑 속에서 반짝이는 별 하나를 발견하고는 소중하고 반가운 무엇을 만난 듯, 가슴 설레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밤 하늘의 별들이 떠올랐다. 미움과 분노, 살인과 폭력,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보복들, 그것들이 만들어가는 암담한 세상이 밤하늘이라면, 용서로 그 어둠의 무거운 사슬을 끊고 새로운 삶과 자유를 선물한 사람들이 반짝이는 별이 되었으리라. 그들이 있었기에 별을 바라보며 우리도 어두운 현실 속에서 새로운 소망을 꿈꾸며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게되는 것이 아닐까. 세상의 어둠을 덮기에 턱없이 부족하지만, 용서와 화해를 경험한 사람들이 밤하늘 별만큼 많았음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왜 용서해야 하는가? 이미 용서라는 위대한 일을 해 낸 기적의 사람들의 말을 통해 그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뜻밖에 이해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사고를 당하고, 자신과 가족들을 모두가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들어갈 때, 그들에게 떠올랐던 순간의 생각들, \'등에 박힌 총알보다 가슴속에서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하다\' \'증오의 악순환을 끊으려고\' \'심판이 죽은 아이를 살릴 수 없어\', 등. 그것들은 증오심에 불타는 사람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용서는 기적이다. 용서하는 이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용서는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시 복수의 칼을 잡고 싶도록 부추키는 안팍의 소리를 이겨내야 한다. 거듭 용서를 결심해야 한다. 미인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용기라 할 수 있겠지만, 용서하는 사람이 가진 용기와는 비교할 수 없다. 그리고 용서할 대상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다. 복합적이다. 딸아이를 죽인 살인자를 용서해야 하고, 그 살인자를 막지 못한 경찰도, 그리고 아이를 보호하지 못한 자신도 용서해야 하고 이런 일을 허락한 신도 용서해야 했다. 그러니 용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1999년부터 전신마비 사고를 당한 뉴욕 경찰관 스티븐 맥도널드와 함께 \'폭력의 고리 끊기\'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해서 \'용서를 통한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저자의 소망, 그것은 우리 인류가 용서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다. 어느 날, 전 세계에서 용서하는 일이 금지 되었다고 상상해보자. 이제 이 세상엔 보복과 심판, 앙갚음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된 것이다. 어떠한가? 인류가 인간으로서 숨 쉴 수 있는 숨구멍이 용서에 있었다. 그러므로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르쳐야 하는 과목은 영어가 아니라 \'용서\'여야 한다. 용서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용서할 때 감당해야 할 어려움, 난관은 어떤 것이 있는지, 용서한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되었는지, 등등, 이 책을 교과서 삼아 가르치면 될 것이다.
용서, 인류의 숨구멍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서평

깜깜한 밤 하늘을 올려다보라. 검푸른 하늘에서 우리는 구름을 보고 달을 본다. 때로는 칠흑 속에서 반짝이는 별 하나를 발견하고는 소중하고 반가운 무엇을 만난 듯, 가슴 설레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밤 하늘의 별들이 떠올랐다. 미움과 분노, 살인과 폭력,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보복들, 그것들이 만들어가는 암담한 세상이 밤하늘이라면, 용서로 그 어둠의 무거운 사슬을 끊고 새로운 삶과 자유를 선물한 사람들이 반짝이는 별이 되었으리라. 그들이 있었기에 별을 바라보며 우리도 어두운 현실 속에서 새로운 소망을 꿈꾸며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게되는 것이 아닐까. 세상의 어둠을 덮기에 턱없이 부족하지만, 용서와 화해를 경험한 사람들이 밤하늘 별만큼 많았음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왜 용서해야 하는가? 이미 용서라는 위대한 일을 해 낸 기적의 사람들의 말을 통해 그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뜻밖에 이해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사고를 당하고, 자신과 가족들을 모두가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들어갈 때, 그들에게 떠올랐던 순간의 생각들, \'등에 박힌 총알보다 가슴속에서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하다\' \'증오의 악순환을 끊으려고\' \'심판이 죽은 아이를 살릴 수 없어\', 등. 그것들은 증오심에 불타는 사람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용서는 기적이다. 용서하는 이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용서는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시 복수의 칼을 잡고 싶도록 부추키는 안팍의 소리를 이겨내야 한다. 거듭 용서를 결심해야 한다. 미인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용기라 할 수 있겠지만, 용서하는 사람이 가진 용기와는 비교할 수 없다. 그리고 용서할 대상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다. 복합적이다. 딸아이를 죽인 살인자를 용서해야 하고, 그 살인자를 막지 못한 경찰도, 그리고 아이를 보호하지 못한 자신도 용서해야 하고 이런 일을 허락한 신도 용서해야 했다. 그러니 용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1999년부터 전신마비 사고를 당한 뉴욕 경찰관 스티븐 맥도널드와 함께 \'폭력의 고리 끊기\'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해서 \'용서를 통한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저자의 소망, 그것은 우리 인류가 용서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다. 어느 날, 전 세계에서 용서하는 일이 금지 되었다고 상상해보자. 이제 이 세상엔 보복과 심판, 앙갚음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된 것이다. 어떠한가? 인류가 인간으로서 숨 쉴 수 있는 숨구멍이 용서에 있었다. 그러므로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르쳐야 하는 과목은 영어가 아니라 \'용서\'여야 한다. 용서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용서할 때 감당해야 할 어려움, 난관은 어떤 것이 있는지, 용서한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되었는지, 등등, 이 책을 교과서 삼아 가르치면 될 것이다.
(작성일 2015.10.03)
신현지
용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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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때쯤의 일이다. 무언가 큰 실수를 하고선 혼이 날까 두려웠던 나머지 마치 내가 한 일이 아닌 것처럼 엄마 앞에서 연기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허술해서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이었지만 그 땐 정말 완벽하게 엄마를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던 엄마는 내가 죄(?)를 자백할 때까지 기다려주셨다. 결국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하고 자수를 택한 나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엄마에게 용서를 빌었고 그런 나에게 엄마는 따끔한 회초리질 뒤에 콧물 범벅인 나를 꼭 끌어안으며 내 잘못을 용서해주셨다. 그때가 아마도 내가 최초로 ‘용서’라는 단어를 배우게 된 순간이었으리라. 엄마의 따뜻한 포옹을 통해 나는 ‘용서’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란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사랑이 앞서지 않고는 진정한 용서란 받을 수도 또 베풀 수도 없다.   <왜 용서해야하는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용서’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쉽게 상처받는 허약한 사람들이나 용서를 이야기한다고 여기지 마라. 용서는 용서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힘 있게 한다.”(61p) 저자는 용서는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대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던 상대방을 진정으로 용서하는 순간, 비로소 그 용서의 과정 속에 특별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이야기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 ‘이정도 일쯤이야’라고 가볍게 여길만한 사건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뉴스나 신문에 등장할 법한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사연의 주인공들은 결코 쉽지 않았을 용서의 과정을 통해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이웃, 전혀 모르는 사람, 심지어 가족)뿐 아니라 자신과의 진정한 화해를 이루어 나간다. “사실 제가 그를 용서한 이유는 아주 현실적이에요. 피해를 입으면 사람들은 흔히 복수와 용서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복수를 선택하면 분노하는 데 삶이 다 소진되고 맙니다. 복수는 일단 하고 나면, 사람의 마음을 텅 비게 하는 위력이 있으니까요. 분노는 만족을 원하고, 그것은 상습이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용서는 앞으로 나아가게 도와주죠.”(109p) 어린 시절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쏜 뒤 습지에 무참히 버려두었던 한 남자를 끝내 용서한 크리스의 고백이다.   “원수를 친구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사랑에만 이다. 미움에 미움으로 맞선다고 적을 없앨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적대감을 없애야 적이 사라진다. 미움의 본성은 파괴와 분리다. 그러나 사랑의 본성은 창조와 건설이다. 구원의 능력으로 사랑은 결국 변화를 이뤄낸다.”(69p)사랑의 능력은 원수를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한다. 용서의 힘은 한 개인 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 이웃 그리고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파장을 일으킨다. 물론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은 더더욱 아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는 바울의 가르침은 질투, 시기, 분노가 가득한 이 세대에 여전히 유효하며 오히려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왜 용서해야하는가. 용서는 바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이고, 용서하는 자와 용서받는 자, 이 모두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이야기한다. 용서는 여전히 어두운 과거에 머물며 분노와 증오의 사다리를 오르내리고 있는 당신이 그 고통의 사슬을 끊고 새롭게 앞으로 나아가게 할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말이다.

여섯 살 때쯤의 일이다. 무언가 큰 실수를 하고선 혼이 날까 두려웠던 나머지 마치 내가 한 일이 아닌 것처럼 엄마 앞에서 연기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허술해서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이었지만 그 땐 정말 완벽하게 엄마를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던 엄마는 내가 죄(?)를 자백할 때까지 기다려주셨다. 결국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하고 자수를 택한 나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엄마에게 용서를 빌었고 그런 나에게 엄마는 따끔한 회초리질 뒤에 콧물 범벅인 나를 꼭 끌어안으며 내 잘못을 용서해주셨다.

그때가 아마도 내가 최초로 ‘용서’라는 단어를 배우게 된 순간이었으리라. 엄마의 따뜻한 포옹을 통해 나는 ‘용서’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란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사랑이 앞서지 않고는 진정한 용서란 받을 수도 또 베풀 수도 없다.

 

<왜 용서해야하는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용서’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쉽게 상처받는 허약한 사람들이나 용서를 이야기한다고 여기지 마라. 용서는 용서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힘 있게 한다.”(61p) 저자는 용서는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대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던 상대방을 진정으로 용서하는 순간, 비로소 그 용서의 과정 속에 특별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이야기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 ‘이정도 일쯤이야’라고 가볍게 여길만한 사건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뉴스나 신문에 등장할 법한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사연의 주인공들은 결코 쉽지 않았을 용서의 과정을 통해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이웃, 전혀 모르는 사람, 심지어 가족)뿐 아니라 자신과의 진정한 화해를 이루어 나간다. “사실 제가 그를 용서한 이유는 아주 현실적이에요. 피해를 입으면 사람들은 흔히 복수와 용서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복수를 선택하면 분노하는 데 삶이 다 소진되고 맙니다. 복수는 일단 하고 나면, 사람의 마음을 텅 비게 하는 위력이 있으니까요. 분노는 만족을 원하고, 그것은 상습이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용서는 앞으로 나아가게 도와주죠.”(109p) 어린 시절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쏜 뒤 습지에 무참히 버려두었던 한 남자를 끝내 용서한 크리스의 고백이다.

 

“원수를 친구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사랑에만 이다. 미움에 미움으로 맞선다고 적을 없앨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적대감을 없애야 적이 사라진다. 미움의 본성은 파괴와 분리다. 그러나 사랑의 본성은 창조와 건설이다. 구원의 능력으로 사랑은 결국 변화를 이뤄낸다.”(69p)

사랑의 능력은 원수를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한다. 용서의 힘은 한 개인 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 이웃 그리고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파장을 일으킨다. 물론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은 더더욱 아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는 바울의 가르침은 질투, 시기, 분노가 가득한 이 세대에 여전히 유효하며 오히려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왜 용서해야하는가. 용서는 바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이고, 용서하는 자와 용서받는 자, 이 모두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이야기한다. 용서는 여전히 어두운 과거에 머물며 분노와 증오의 사다리를 오르내리고 있는 당신이 그 고통의 사슬을 끊고 새롭게 앞으로 나아가게 할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말이다.


(작성일 2015.09.28)
고영숙
<왜 용서해야 하는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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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면서 말처럼 쉽지 않은 것 가운데 하나가 용서다. 어느 정도 선에서는 그게 가능하다 싶은데 피해를 심하게 받았든지 너무 억울한 경우에는 우리는 쉽사리 용서하지 못한다. 오히려 앙갚음해주고 싶고, 신앙을 가진 경우에도 용서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그 상대에게 대신 벌 내려주시길 은밀하게 간구하는 겉치레의 용서도 있다. 이 책에서는 실제적으로 아픔과 고통을 겪고 그 터널을 통과한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고 지킬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입장에서는 상대에 대한 미움과 원망뿐만 아니라 그러한 감정이 증폭됨으로 말미암아 스스로가 거기에 매여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삶이 엉망으로 되는 이중의 고통을 겪을 때가 많다. 누구도 그렇게 살고 싶어 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너무나 의외의 일이 많이 일어나고 때때로 감당하기 힘든 일들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도 본다. 아픔과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섣불리 용서에 대해 말하기는 힘들다. 내 입장이 되어 보라고 되받아친다면 달리 뭐라 말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의 사례들은 그 힘든 상황 속에서 용서가 각자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말해준다. 용서는 의지를 가지고 미워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해야 가능하다.(p21)고 한다. 그것이 시발점이 되지 않고는 용서를 배울 수가 없다. 나아가서는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자각이 뒤따를 때 진정한 용서가 이뤄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럴 때 용서는 긍정적인 연쇄반응을 일으켜 다른 사람들에게도 용서의 열매를 나누게 된다고 한다. 빌레몬서에서 바울은 빌레몬의 종이었다가 주인의 집에 해를 끼치고 도망쳤던 오네시모가 복음으로 변화된 후 그를 빌레몬에게 보내면서 종이 아닌 동역자로 받아줄 것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다. 당시 종은 주인이 멋대로 해도 좋은 재산의 일부분으로 여겼던 시대이니 그 오네시모를 믿음의 형제로 받아들이는 일은 그야말로 센셰이션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용서는 어렵다. 그러나 용서해야만 하는 이유를 이 책을 읽으면서 발견할 수 있었다. 용서해야 할 상대가 가해자이든, 국가이든, 사회이든. 자기 자신이든 간에 건강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나아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주기도문을 고백할 때마다 가슴에 스미는 고통을 없애고 싶다면 이 책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말처럼 쉽지 않은 것 가운데 하나가 용서다. 어느 정도 선에서는 그게 가능하다 싶은데 피해를 심하게 받았든지 너무 억울한 경우에는 우리는 쉽사리 용서하지 못한다. 오히려 앙갚음해주고 싶고, 신앙을 가진 경우에도 용서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그 상대에게 대신 벌 내려주시길 은밀하게 간구하는 겉치레의 용서도 있다.

이 책에서는 실제적으로 아픔과 고통을 겪고 그 터널을 통과한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고 지킬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입장에서는 상대에 대한 미움과 원망뿐만 아니라 그러한 감정이 증폭됨으로 말미암아 스스로가 거기에 매여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삶이 엉망으로 되는 이중의 고통을 겪을 때가 많다. 누구도 그렇게 살고 싶어 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너무나 의외의 일이 많이 일어나고 때때로 감당하기 힘든 일들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도 본다. 아픔과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섣불리 용서에 대해 말하기는 힘들다. 내 입장이 되어 보라고 되받아친다면 달리 뭐라 말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의 사례들은 그 힘든 상황 속에서 용서가 각자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말해준다.

용서는 의지를 가지고 미워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해야 가능하다.(p21)고 한다. 그것이 시발점이 되지 않고는 용서를 배울 수가 없다. 나아가서는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자각이 뒤따를 때 진정한 용서가 이뤄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럴 때 용서는 긍정적인 연쇄반응을 일으켜 다른 사람들에게도 용서의 열매를 나누게 된다고 한다. 빌레몬서에서 바울은 빌레몬의 종이었다가 주인의 집에 해를 끼치고 도망쳤던 오네시모가 복음으로 변화된 후 그를 빌레몬에게 보내면서 종이 아닌 동역자로 받아줄 것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다. 당시 종은 주인이 멋대로 해도 좋은 재산의 일부분으로 여겼던 시대이니 그 오네시모를 믿음의 형제로 받아들이는 일은 그야말로 센셰이션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용서는 어렵다. 그러나 용서해야만 하는 이유를 이 책을 읽으면서 발견할 수 있었다. 용서해야 할 상대가 가해자이든, 국가이든, 사회이든. 자기 자신이든 간에 건강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나아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주기도문을 고백할 때마다 가슴에 스미는 고통을 없애고 싶다면 이 책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작성일 2015.09.26)
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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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과 마음이 힘든 날이면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몇 달 동안 지속되면서 점점 심해져 손바닥만한 두드러기가 온 몸을 뒤덮었다. 아토피에 우유 알러지가 있는 아기에게 모유를 계속 먹여야했기에 약을 쓰지 못했다.    시매부님에게 폭언을 듣고 난 후부터 두드러기가 시작되었다. 남편과 시누이 언니가 사과를 요청했지만 잘못한게 없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어머니는 안타까워하시며 나를 많이 걱정해주셨다.   두드러기가 심하게 올라 잠을 잘 수 없는 날이면 분노가 함께 나를 덮었다. 그리고 가혹했던 비난의 말들이 계속 떠올랐다. 사과를 받고 싶었다. 사과를 받아야지만 이 지긋지긋한 두드러기가 나를 떠나갈 것 같았다.   아토피가 있는 아가도 잠을 잘 때면 간지러워 깰 때가 많았다. 어느날 밤 쌔근쌔근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이 아이가 잘 잘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시누이 언니에게 상처를 떠올리기보다 진심을 믿기로 했다고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내는 순간까지도 고민은 계속됐다. ‘다음에 얘기해도 되지 않을까?’ 미루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문자를 보낸 이후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한 달 정도가 지난 지금까지 다행히 두드러기도 나지 않았다.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의 “왜 용서해야 하는갚, 이 책을 조금만 더 빨리 만났더라면 분노로 차오른 내 마음이 내 몸까지 통제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들지만 지금이라도 만나서 다행이다. 용서는 한번이 아니라 평생 계속되어야하니까.   “그 사람들이 한 일은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죄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건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죠(p67)”   “척추에 박힌 총알보다 가슴속에서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하다.(p219)”   “용서하는 힘을 계발하고 유지해야한다. 용서할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할줄도 모른다.(p69)”   내 속에 자라는 끔찍한 마음을 직시하고, 예수님의 자리에서 죄를 심판하려는 오만함을 인정하고, 계속해서 용서하는 힘을 키우고 실천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용서하기 힘들 때는 이 책을 다시 펼쳐야겠다. 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용서의 이야기들이 ‘함께 가자’고 내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줄테니까.

  몸과 마음이 힘든 날이면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몇 달 동안 지속되면서 점점 심해져 손바닥만한 두드러기가 온 몸을 뒤덮었다. 아토피에 우유 알러지가 있는 아기에게 모유를 계속 먹여야했기에 약을 쓰지 못했다. 

  시매부님에게 폭언을 듣고 난 후부터 두드러기가 시작되었다. 남편과 시누이 언니가 사과를 요청했지만 잘못한게 없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어머니는 안타까워하시며 나를 많이 걱정해주셨다.

  두드러기가 심하게 올라 잠을 잘 수 없는 날이면 분노가 함께 나를 덮었다. 그리고 가혹했던 비난의 말들이 계속 떠올랐다. 사과를 받고 싶었다. 사과를 받아야지만 이 지긋지긋한 두드러기가 나를 떠나갈 것 같았다.

  아토피가 있는 아가도 잠을 잘 때면 간지러워 깰 때가 많았다. 어느날 밤 쌔근쌔근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이 아이가 잘 잘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시누이 언니에게 상처를 떠올리기보다 진심을 믿기로 했다고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내는 순간까지도 고민은 계속됐다. ‘다음에 얘기해도 되지 않을까?’ 미루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문자를 보낸 이후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한 달 정도가 지난 지금까지 다행히 두드러기도 나지 않았다.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의 “왜 용서해야 하는갚, 이 책을 조금만 더 빨리 만났더라면 분노로 차오른 내 마음이 내 몸까지 통제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들지만 지금이라도 만나서 다행이다. 용서는 한번이 아니라 평생 계속되어야하니까.

  “그 사람들이 한 일은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죄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건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죠(p67)”

  “척추에 박힌 총알보다 가슴속에서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하다.(p219)”

  “용서하는 힘을 계발하고 유지해야한다. 용서할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할줄도 모른다.(p69)”

  내 속에 자라는 끔찍한 마음을 직시하고, 예수님의 자리에서 죄를 심판하려는 오만함을 인정하고, 계속해서 용서하는 힘을 키우고 실천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용서하기 힘들 때는 이 책을 다시 펼쳐야겠다. 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용서의 이야기들이 ‘함께 가자’고 내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줄테니까.


(작성일 2015.09.26)
김도열
세계와 이어주는 책, <왜 용서해야 하는가>를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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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이어주는 책, <왜 용서해야 하는가>를 읽고서   아버지는 술꾼이셨다. 하루도 술을 안드시면 안되시는 줄 알았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오실 시간이 넘었는데도 돌아오시지 않으시면 어김없이 찾아나서야했다. 길가에 앉아계신 날들이 다반사였다. 나는 왜 이런 가정에 태어났을까 싶기도 했다. 싫었다. 고3때는 남들 다들 고3이라고 집에서 배려해주는 것까지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가 술을 좀 덜 드시기만을 바랬다. 바람은 바람으로만 끝났다. 대학생이 되고, 주님 앞에서 내가 용서되었을 때에야 나는 아버지가 용서가 되었다. 아버지의 그 설음의 시간이 새로이 보였고, 육체 노동의 한계와 관계 속에서의 치임을 새로이 보게 되었다. 그리고 형제 관계 속에서의 부침과 아버지 본인 스스로의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짐했다. 할 수 있는 것이 “사랑합니다!”라고 안아드리는 것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용서했던 그 길에 아버지를 세워놓고는 아버지 역시 용서했다. 나를 이 가정에 태어나게 한 것이 그저 한 번 고생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새로운 미래를, 희망을 써 내려가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예레미야의 말씀이 그때는 참으로 위로가 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   삼푸투는 술에 마약쟁이였다. 그는 하루도 술없이는 지내지 못했다. 그의 친구 빈센트가 자신의 부모님을 죽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르완다의 투치족이었던 삼푸투는 친구인 후투족 빈센트가 자신의 부모를 죽이는 일에 동참한 것으로 인해 삶은 완전히 망가졌다. 그 일로 9년 동안 정신이 나간 채 지냈다. 그리고 태어난 아기 클라디아가 장애가 있는 것으로 인해 급기야 아내와도 헤어졌다. 그는 세계 최고의 뮤지션이었지만 술과 마약으로 감옥을 오갔고, 그의 삶은 재앙으로 점철되었다. 그러던 중 모세라는 한 전도자를 만남으로 인해 예수를 만났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하라는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가 빈센트를 용서함으로 인해 빈센트는 자기 죄를 뉘우쳤고 자신을 용서하였다. 또한 그의 아내와 자녀들도 아버지를 용서했다. 용서의 힘은 그의 가족 또한 다시 하나되게 했다. 그의 아내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가 당시을 용서한 게 아니야 당신을 용서한 건 하나님이야.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나님이 삼푸투를 통해 당신을 용서했다면, 나도 당신을 용서할 수 있어.”(243쪽)   용서는 우리를 세계로 연결시켜준다. 우리 자신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감옥은 용서하지 않는 마음과 영혼”(38쪽)이다. “용서가 필요한 이유는 피해자와 가해자 둘 다 같은 어둠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어둠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는 용서뿐이다.”(163쪽) “용서는 새롭게 출발하는 데 필요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기폭제다.”(70쪽) 이 책 곳곳에 펼쳐져 있는 용서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용서가 우리 삶에 얼마나 필요한지, 또한 복수하는 삶이 우리 삶에 얼마나 편만한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세계의 문제이며, 현실이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로 하여금 나의 한계와 자신의 감옥에서 벗어나 세계와 화해하며 자신을 용서할 뿐 아니라 세계를 사랑하게 해주는 방법임을 힘주어 말한다. 폴 투르니에가 인격의학이라는 것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회복하려 했듯이, 저자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는 용서가 이 땅을 새롭게 하는 열쇠임을 전해준다. 저자의 세계 곳곳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나의 자리를 다시 돌아보게 해준다. “용서는 평화와 행복으로 가는 문이다.”(13쪽) 또한 “용서는 선물”이다. 그 선물을 받아 누리는 것은 우리의 결단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러한 결단으로 이끌어주는 징검다리들을 잔뜩 놓아두고 있다. 읽다보면 눈시울이 시큰거린다. 그러면서 새롭게 다짐하게 된다. 읽다보면 언제 용서라는 은혜의 폭탄이 터질지 알 수 없다. 그 선물을 받으시길!
세계와 이어주는 책, <왜 용서해야 하는가>를 읽고서
 
아버지는 술꾼이셨다. 하루도 술을 안드시면 안되시는 줄 알았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오실 시간이 넘었는데도 돌아오시지 않으시면 어김없이 찾아나서야했다. 길가에 앉아계신 날들이 다반사였다. 나는 왜 이런 가정에 태어났을까 싶기도 했다. 싫었다. 고3때는 남들 다들 고3이라고 집에서 배려해주는 것까지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가 술을 좀 덜 드시기만을 바랬다. 바람은 바람으로만 끝났다. 대학생이 되고, 주님 앞에서 내가 용서되었을 때에야 나는 아버지가 용서가 되었다. 아버지의 그 설음의 시간이 새로이 보였고, 육체 노동의 한계와 관계 속에서의 치임을 새로이 보게 되었다. 그리고 형제 관계 속에서의 부침과 아버지 본인 스스로의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짐했다. 할 수 있는 것이 “사랑합니다!”라고 안아드리는 것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용서했던 그 길에 아버지를 세워놓고는 아버지 역시 용서했다. 나를 이 가정에 태어나게 한 것이 그저 한 번 고생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새로운 미래를, 희망을 써 내려가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예레미야의 말씀이 그때는 참으로 위로가 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
 
삼푸투는 술에 마약쟁이였다. 그는 하루도 술없이는 지내지 못했다. 그의 친구 빈센트가 자신의 부모님을 죽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르완다의 투치족이었던 삼푸투는 친구인 후투족 빈센트가 자신의 부모를 죽이는 일에 동참한 것으로 인해 삶은 완전히 망가졌다. 그 일로 9년 동안 정신이 나간 채 지냈다. 그리고 태어난 아기 클라디아가 장애가 있는 것으로 인해 급기야 아내와도 헤어졌다. 그는 세계 최고의 뮤지션이었지만 술과 마약으로 감옥을 오갔고, 그의 삶은 재앙으로 점철되었다. 그러던 중 모세라는 한 전도자를 만남으로 인해 예수를 만났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하라는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가 빈센트를 용서함으로 인해 빈센트는 자기 죄를 뉘우쳤고 자신을 용서하였다. 또한 그의 아내와 자녀들도 아버지를 용서했다. 용서의 힘은 그의 가족 또한 다시 하나되게 했다. 그의 아내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가 당시을 용서한 게 아니야 당신을 용서한 건 하나님이야.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나님이 삼푸투를 통해 당신을 용서했다면, 나도 당신을 용서할 수 있어.”(243쪽)
 
용서는 우리를 세계로 연결시켜준다. 우리 자신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감옥은 용서하지 않는 마음과 영혼”(38쪽)이다. “용서가 필요한 이유는 피해자와 가해자 둘 다 같은 어둠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어둠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는 용서뿐이다.”(163쪽) “용서는 새롭게 출발하는 데 필요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기폭제다.”(70쪽) 이 책 곳곳에 펼쳐져 있는 용서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용서가 우리 삶에 얼마나 필요한지, 또한 복수하는 삶이 우리 삶에 얼마나 편만한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세계의 문제이며, 현실이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로 하여금 나의 한계와 자신의 감옥에서 벗어나 세계와 화해하며 자신을 용서할 뿐 아니라 세계를 사랑하게 해주는 방법임을 힘주어 말한다. 폴 투르니에가 인격의학이라는 것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회복하려 했듯이, 저자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는 용서가 이 땅을 새롭게 하는 열쇠임을 전해준다. 저자의 세계 곳곳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나의 자리를 다시 돌아보게 해준다. “용서는 평화와 행복으로 가는 문이다.”(13쪽) 또한 “용서는 선물”이다. 그 선물을 받아 누리는 것은 우리의 결단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러한 결단으로 이끌어주는 징검다리들을 잔뜩 놓아두고 있다. 읽다보면 눈시울이 시큰거린다. 그러면서 새롭게 다짐하게 된다. 읽다보면 언제 용서라는 은혜의 폭탄이 터질지 알 수 없다. 그 선물을 받으시길!

(작성일 2015.09.24)
이대로
결코 쉽지 않은 단어,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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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한 소년의 운전으로 아들 마이클을 잃은 남자. 아버지의 마음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정의의 심판은 더디었다. 법정에서 운전자의 혐의를 밝히는 데만 일 년이 걸렸다. 설상가상으로 가해자의 어머니는 법정 최고형을 요구했다며 비난조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그 소년은 법의 심판을 받았다. 6개월의 교정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그 뒤 6년 동안 집중 관찰을 받는 조건으로 가석방되었다.   아들을 잃은 남자는 이후로도 극심한 분노에 휩싸였다. 법으로 정의가 실현되었지만, 아들은 여전히 돌아오지 못했다. 가해자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하지만, 그는 용서의 길을 택했다.  ‘용서’. 어쩌면 TV에서도, 책에서도, 사람들 사이에서도 많이 쓰이는 단어이다. 주기도문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기독교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용서라는 말은 묵상하면 할수록 가벼운 단어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내가 용서의 현장, 즉 내게 해를 끼친 사람 앞에 있다면, 용서는 상상할 수 없을 무게로 다가온다.  『왜 용서해야 하는가』. 브루더호프 목사인 요한 크리스토퍼 아놀드가 용서에 대해 썼다. 내게 해를 끼친 사람과 상황 속에서, 힘겹게 용서를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십대 폭력으로 딸을 잃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아동 학대를 받아 온 여성, 인종차별을 겪어 온 아프리카계 미국인, 르완다 사태에서 친한 친구에게 부모님을 잃은 뮤지션, 학교 폭력과 집단 따돌림을 받은 한국 소녀...  용서를 선택한 이들의 리스트이다. ‘정말 이 사람도 용서해야 합니까?’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힘겹게 용서를 선택한 과정을 담았다. 책을 읽는 내내, 이들의 가정과 일터, 삶의 현장을 방문해 직접 목소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생생했고, 때로는 강렬했다. 앞에 언급한,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말을 들어보자.   용서의 길은 길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가해자뿐 아니라 마이클을 용서해야 했고, 일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둔 하나님을 용서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용서해야 했습니다. 그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저 역시 술을 마신 상태로 마이클을 태우고 운전한 적이 많았으니까요. (94쪽)  그의 말처럼 책에 소개된 다른 사람들도 용서를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용서했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질타를 당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용서를 선택한 이들은 삶의 큰 보석을 발견해 간다. 다시 아버지의 말이다.  우리가 바라는 사건의 ‘끝’은 결국 용서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용서의 힘은 밖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고, 용서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94쪽)  다른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 십대 때, 크리스는 유괴범에게 머리에 총을 맞았다. 기적적으로 뇌는 다치지 않았지만, 한 쪽 눈이 실명했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했다. 자신에게 해를 입힌 사람에게 분노하고, 어떻게든 복수를 꿈꾸는 것이 당연할텐데, 크리스의 선택은 용서였다.   사실, 제가 그를 용서한 이유는 아주 현실적이에요. 피해를 입으면 사람들은 흔히 복수와 용서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복수를 선택하면 분노하는 데 삶이 다 소진되고 맙니다. 복수는 일단 하고 나면, 사람의 마음을 텅 비게 하는 위력이 있으니까요. (109쪽)  상처를 입고, 그럼에도 용서를 택한 사람들. 이들의 가슴 먹먹한 이야기를 이 책은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좋은 미담을 모아 적은 책이라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쭉 들으며, 질문 한 가지를 던질 수 있었다. ‘저 상황에 놓였을 때,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용서가 결국엔 내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막상 그 상황에 놓인다면, 내 앞의 가해자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신중히 묵상하고, 용서에 대해 이전과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다면, 이 책은 결국 나를 위한 선물이었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이 송곳처럼 계속 마음을 찔러 온다. 사실, 내게 조그마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었다. 나는 용서하지 못했다. 이 책을 읽은 바로 다음 날에 일어난 일이었다. ‘용서가 정말 어렵구나.’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작가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용서가 반드시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 역시 연약하며 도움이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스스로 용서를 경험할 때에만 용서할 수 있는 큰 힘을 얻게 된다. (145쪽)  ‘왜 용서해야 하는가?’ 독자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 작가는 책 마지막에 이렇게 당부한다.   우리의 손에는 용서에 이르는 열쇠가 쥐어져 있다. 그 열쇠를 사용할지 안 할지는 우리의 몫이다. (264쪽)  용서, 생각보다 사용이 쉽지 않은 열쇠. 그럼에도 이 책의 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용서를 선택해 서서히 회복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들의 가슴 먹먹한 목소리를 오래토록 기억하고 싶다.

술에 취한 소년의 운전으로 아들 마이클을 잃은 남자. 아버지의 마음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정의의 심판은 더디었다. 법정에서 운전자의 혐의를 밝히는 데만 일 년이 걸렸다. 설상가상으로 가해자의 어머니는 법정 최고형을 요구했다며 비난조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그 소년은 법의 심판을 받았다. 6개월의 교정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그 뒤 6년 동안 집중 관찰을 받는 조건으로 가석방되었다.

 

아들을 잃은 남자는 이후로도 극심한 분노에 휩싸였다. 법으로 정의가 실현되었지만, 아들은 여전히 돌아오지 못했다. 가해자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하지만, 그는 용서의 길을 택했다.

 

‘용서’. 어쩌면 TV에서도, 책에서도, 사람들 사이에서도 많이 쓰이는 단어이다. 주기도문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기독교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용서라는 말은 묵상하면 할수록 가벼운 단어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내가 용서의 현장, 즉 내게 해를 끼친 사람 앞에 있다면, 용서는 상상할 수 없을 무게로 다가온다.

 

『왜 용서해야 하는가』. 브루더호프 목사인 요한 크리스토퍼 아놀드가 용서에 대해 썼다. 내게 해를 끼친 사람과 상황 속에서, 힘겹게 용서를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십대 폭력으로 딸을 잃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아동 학대를 받아 온 여성, 인종차별을 겪어 온 아프리카계 미국인, 르완다 사태에서 친한 친구에게 부모님을 잃은 뮤지션, 학교 폭력과 집단 따돌림을 받은 한국 소녀...

 

용서를 선택한 이들의 리스트이다. ‘정말 이 사람도 용서해야 합니까?’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힘겹게 용서를 선택한 과정을 담았다. 책을 읽는 내내, 이들의 가정과 일터, 삶의 현장을 방문해 직접 목소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생생했고, 때로는 강렬했다. 앞에 언급한,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말을 들어보자.

 

용서의 길은 길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가해자뿐 아니라 마이클을 용서해야 했고, 일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둔 하나님을 용서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용서해야 했습니다. 그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저 역시 술을 마신 상태로 마이클을 태우고 운전한 적이 많았으니까요. (94쪽)

 

그의 말처럼 책에 소개된 다른 사람들도 용서를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용서했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질타를 당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용서를 선택한 이들은 삶의 큰 보석을 발견해 간다. 다시 아버지의 말이다.

 

우리가 바라는 사건의 ‘끝’은 결국 용서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용서의 힘은 밖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고, 용서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94쪽)

 

다른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 십대 때, 크리스는 유괴범에게 머리에 총을 맞았다. 기적적으로 뇌는 다치지 않았지만, 한 쪽 눈이 실명했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했다. 자신에게 해를 입힌 사람에게 분노하고, 어떻게든 복수를 꿈꾸는 것이 당연할텐데, 크리스의 선택은 용서였다.

 

사실, 제가 그를 용서한 이유는 아주 현실적이에요. 피해를 입으면 사람들은 흔히 복수와 용서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복수를 선택하면 분노하는 데 삶이 다 소진되고 맙니다. 복수는 일단 하고 나면, 사람의 마음을 텅 비게 하는 위력이 있으니까요. (109쪽)

 

상처를 입고, 그럼에도 용서를 택한 사람들. 이들의 가슴 먹먹한 이야기를 이 책은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좋은 미담을 모아 적은 책이라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쭉 들으며, 질문 한 가지를 던질 수 있었다. ‘저 상황에 놓였을 때,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용서가 결국엔 내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막상 그 상황에 놓인다면, 내 앞의 가해자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신중히 묵상하고, 용서에 대해 이전과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다면, 이 책은 결국 나를 위한 선물이었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이 송곳처럼 계속 마음을 찔러 온다. 사실, 내게 조그마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었다. 나는 용서하지 못했다. 이 책을 읽은 바로 다음 날에 일어난 일이었다. ‘용서가 정말 어렵구나.’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작가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용서가 반드시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 역시 연약하며 도움이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스스로 용서를 경험할 때에만 용서할 수 있는 큰 힘을 얻게 된다. (145쪽)

 

‘왜 용서해야 하는가?’ 독자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 작가는 책 마지막에 이렇게 당부한다.

 

우리의 손에는 용서에 이르는 열쇠가 쥐어져 있다. 그 열쇠를 사용할지 안 할지는 우리의 몫이다. (264쪽)

 

용서, 생각보다 사용이 쉽지 않은 열쇠. 그럼에도 이 책의 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용서를 선택해 서서히 회복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들의 가슴 먹먹한 목소리를 오래토록 기억하고 싶다.


(작성일 2015.09.24)
하광진
용서만이 평화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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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기대감이 커졌다. 왜냐면 내 안에는 미안하다는 말이 필요하고, 용서하지 못한 오래된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 용서를 하고 싶지만 이상하게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 잊었던 것 같고 해결된 것 같은데 그 가해자를 보면 가슴이 먹먹하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버젓이 내 앞에서 생활하고 있다. 더 심한 것은 자신이 가해자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행동하고 그 입에서는 그럴싸한 말들을 뛰어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용서하라고요? 그래야 된다고 지면은 말한다.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용서할 수 있는 계기를 이 책을 읽으면서 발견하고 싶었다. 본서는 여러 장으로 나눠져 있지만 인생의 엄청난 고통을 당한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극적으로 용서하고 자유함을 맛보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나 나의 문제를 해결할만한 실마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갑작스런 죽음의 고통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그 답을 얻게 되었다.   마지막 장 파문 일으키기에서는 장폴 삼푸투와 아미시 사람들 그리고 이대봉 회장처럼 고난의 악순환을 끊고 폭력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용서가 반드시 필요함을 피력한다. 이들은 평생 동안 고통 속에 살아야 되는 일을 당했음에도 말로만 용서를 한 것이 아니고 실제적으로 그 일을 위해서 희생했다. 고통스럽고 용서할 수 없지만. 아들의 이름으로 장학재단을 만든 이대봉 회장을 통해 베트남까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났고, 범인의 장례식장에 많은 피해자 가족들이 참석하고 그의 부모를 위로하기 위해서 아미시 사람들은 모금운동을 한다. 이것이 진정한 용서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가능하다. 이런 모습은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고 고백한다. <원수를 사랑하라!>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희생적인 용서는 단순히 자신만을 위해서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평화와 이전에 맛보지 못한 행복을 일으키는 효과가 있다. 이 사실을 그들이 알았기에 가능하였다. 그래서 용서는 희생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희생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사람이 사는 곳은 늘 용서가 필요하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우리 중에 가장 악한 사람에게도 좋은 점이 있고, 우리 중에 가장 선한 사람에게도 악한 점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다르게 보면 사람은 선과 악 중에 어느 것이든 선택할 수 있고 그것에 따라서 용서를 할 수도 있고, 용서가 필요한 상황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존재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 바울도 자신의 연약함을 토로하면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 고통으로 끝난다면 죄악 된 인간만 있고 하나님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그런 인간을 포기하지 않고 용서와 회복의 길을 열어주었다.   용서는 인간에게 반드시 있어야 되는 회복과 행복의 씨앗이 아닐까? 평화와 행복은 용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기대감이 커졌다. 왜냐면 내 안에는 미안하다는 말이 필요하고, 용서하지 못한 오래된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 용서를 하고 싶지만 이상하게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 잊었던 것 같고 해결된 것 같은데 그 가해자를 보면 가슴이 먹먹하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버젓이 내 앞에서 생활하고 있다. 더 심한 것은 자신이 가해자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행동하고 그 입에서는 그럴싸한 말들을 뛰어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용서하라고요? 그래야 된다고 지면은 말한다.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용서할 수 있는 계기를 이 책을 읽으면서 발견하고 싶었다. 본서는 여러 장으로 나눠져 있지만 인생의 엄청난 고통을 당한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극적으로 용서하고 자유함을 맛보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나 나의 문제를 해결할만한 실마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갑작스런 죽음의 고통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그 답을 얻게 되었다.

 

마지막 장 파문 일으키기에서는 장폴 삼푸투와 아미시 사람들 그리고 이대봉 회장처럼 고난의 악순환을 끊고 폭력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용서가 반드시 필요함을 피력한다. 이들은 평생 동안 고통 속에 살아야 되는 일을 당했음에도 말로만 용서를 한 것이 아니고 실제적으로 그 일을 위해서 희생했다. 고통스럽고 용서할 수 없지만. 아들의 이름으로 장학재단을 만든 이대봉 회장을 통해 베트남까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났고, 범인의 장례식장에 많은 피해자 가족들이 참석하고 그의 부모를 위로하기 위해서 아미시 사람들은 모금운동을 한다. 이것이 진정한 용서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가능하다. 이런 모습은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고 고백한다. <원수를 사랑하라!>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희생적인 용서는 단순히 자신만을 위해서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평화와 이전에 맛보지 못한 행복을 일으키는 효과가 있다. 이 사실을 그들이 알았기에 가능하였다. 그래서 용서는 희생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희생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사람이 사는 곳은 늘 용서가 필요하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우리 중에 가장 악한 사람에게도 좋은 점이 있고, 우리 중에 가장 선한 사람에게도 악한 점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다르게 보면 사람은 선과 악 중에 어느 것이든 선택할 수 있고 그것에 따라서 용서를 할 수도 있고, 용서가 필요한 상황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존재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 바울도 자신의 연약함을 토로하면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 고통으로 끝난다면 죄악 된 인간만 있고 하나님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그런 인간을 포기하지 않고 용서와 회복의 길을 열어주었다.


 

용서는 인간에게 반드시 있어야 되는 회복과 행복의 씨앗이 아닐까? 평화와 행복은 용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작성일 2015.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