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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 그의 생애와 신학  
(His Life and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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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역자 : 로버트 G. 터틀2세/김석천  |  출판사 : 도서출판 세복
발행일 : 2001-03-15  |  신국판 (153×225) 476p  |  89-86424-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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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 그의 생애와 신학 이 전기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며 살았던 한 위대한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믿음으로 인도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귀한 학문적 가치가 있는 저서이다. 본서는 하나님이 사용하신 위대한 지도자 존 웨슬리를 더 잘 이해하고 교훈을 받도록 독자를 인도해 줄 것이다. 이 전기는 어떤 개인의 주장이나 종교, 심지어는 부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며 살았던 한 인물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믿음으로 인도하기 위해 쓰여졌다. ------------ 오래 전에 나는 휘튼신학대학원(Wheaton Graduate School of Theology) 에 입학했다. 메릴 테니(Merrill C. Tenney) 지도 교수는 학생들과의 첫 면담 중 유명한 박물관에 안에 있는 존 웨슬리의 초상화 앞에 서서 한 복음 전도자 [존 웨슬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도자 메릴 테니는 참석한 학생들에게 기도해도 좋은지 양해를 구한 후 머리를 숙이고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 "주님, 다시 한 번 행하시옵소서!" 스위스의 로잔(Lausanne)에서 열렸던 세계전도대회(World Congress on Evangelization) 에서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존 웨슬 리가 인용되지 않았던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의 문제 많은 세상에 존 웨슬 리가 현대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8권으로 된 일지, 2권의 설교집, 8권의 서간집 가운데 -이외의 다른 책들(의학적 치료에 관한 책에서부터 언어 문법에 관계된 책까지 망라하는)과 소책자, 논문, 찬송가집을 비롯하여 실천적 신학에 관한 책들을 요약하여 50권으로 편집 구성한 『기독교 문고』(The Christian Library) 등은 언급하지 않는다 해도-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일지나 42편의 설교로 구성된 표준 설교집의 한 권 이상을 읽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몇 가지 중요한 목적을 갖는다. 첫째, 나는 감정을 소유하고 있었던, 역사상의 한 실제 인물과 씨름하면서 읽을만한 흥미로운 전기를 그려 내려고 한다. 동시에 나는 그의 일기와 편지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아주 상세한 사실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드러낼 것이다. 둘째, 나는 한 실천적 신학자를 머리 속에 그리면서 건전하고 종합적인 신학적 분석을 제공하기 원한다. 자신의 필요뿐만 아니라 그 당시 사람들의 필요에 부응하는 그의 신학적 비평은 변화의 필요에 적절히 반응하여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대부분의 신학자들과 같이 웨슬리도 현저한 일관성을 보여 주고 있다. 그렇지만 만약 18세기 전체에 걸쳐 살았던 과거그이 이 인물에게 적절히 변화된 국면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마치 모순된 것처럼 보일 것이다. 페넬롱의 "영혼"처럼, 웨슬리의 사고도 나의 진보는 끝이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더 나아가서, 나는 독자 스스로 존 웨슬리의 책들을 읽도록 흥미를 일으키려는 희망으로 이 전기를 쓴다. 달리 말하면,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존 웨슬리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웨슬리를 알려면 반드시 웨슬리의 저술을 읽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학문적인 책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웨슬리 전집 전부를 읽고 또 읽었으며 그를 공정하게 표현하기 위해 무한한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정직한 시도를 했다. 제 1차 자료를 대신해 줄 다른 것은 없다는 나의 개인적 확신이다. 신학생 시절 나는 존 칼빈(John Calvin)의 저술을 읽기 전까지 칼빈을 좋아하지 않았다. 존 웨슬리는 자주 많은 사람들에게 인용되었으나 반면에 크게 방치되어왔는데, 그러한 사람들은 그 인물(전도자, 성직자, 신학자로서)은 물론 운동(부흥 운동, 조직된 신도회, "감리교도 라고 불린 사람들")을 연구하기에 시간을 물론 인내심이 부족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려는 목적으로 이 전기를 썼다, 궁극적으로 부흥의 근원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18세기 영국의 복음적 부흥은 불가피했던 것으로 믿고 있다. 만약 존 웨슬리가 촉매를 공급하지 않았다면 다른 어느 누군가에 의해서 공급되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일종의 논리가 잇다. 그 때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방향의 변화를 위하여 무르익어 있었다. 그러나 나의 개인적 확신을 말한다면 부흥의 중요 원인은 다른 곳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그것을 설명해 보자. 웨슬리와 그의 부흥 운동에 보다 동정적인 많은 사람들은 웨슬리 자신에게 부흥의 원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이들은 존 웨슬리의 복음적 전력을 그의 성공 요인으로 지적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견해는 어느 정도 우리를 잘못된 생각으로 인도한다. 웨슬리는 그의 방법을 시대에 맞도록 잘 적응시킨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가운데 웨슬리의 아버지 역시 이러한 전략에 대해서 어느 정도 동정적이었지만 그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웨슬리 자신은 부흥의 어떤 징조가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이미 복음적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웨슬리의 강한 헌신적인 경건 또는 그의 사회 개혁의 관심을 성공의 원인으로 강조한다. 그러나 웨슬리가 옥스퍼드 시절 기록했던 일기를 간단히 살펴만 보아도 그러한 특성은 부흥 운동이 시작되기 이미 십 년 전에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웨슬리와 동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웨슬리의 성공의 원인을 그의 "천부적인 설득의 기술"에 있다고 주장했다. 한 작가는 그의 독자들을 일깨우는 놀라운 순수성을 발견했는데, 영국인들로 하여금 세상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하는 데 누구나 항상 성공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사한 순수함이 웨슬리의 성공을 이루어 냈는데, 그것은 첫째로 즉흥 설교이며, 또 다른 한 가지는 핵심을 꿰뚫는 예리한 논리였다. 아마 웨슬리의 설교 능력은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나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에 미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웨슬리가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능력을 소유하였다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웨슬리는 해를 거듭할수록 그의 기술을 점점 더 완전하게 다듬어 갔다. 그러나 이점 역시 그의 부흥의 열쇠는 아니었다. 예를 들면, 부흥의 초기에 웨슬리는 설교를 읽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언젠가 설교할 때 웨슬리는 동상처럼 꼿꼿이 서서 했다. 움직인 것은 그의 입뿐이었다고 묘사되고 있는데, 그나마 너무 빠르게 읽어서 청중이 그의 논리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마음에 임하는 놀라운 자각(自覺)으로 인해 충격을 받았다. 따라서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가설을 세우게 되는데, 그것은 18세기 영구 사회에 충격을 줄 수 있었던 원인은 도덕적, 사회적 환경과 웨슬리 자산의 복음 전도자로서의 탁월함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능력이 불완전한 순종의 도구 가운데 나타나서 온 나라를 종교적 기질로 변화시켰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이러한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웨슬리 자신도 죽은 영혼을 살리는 일이 죽은 몸을 살리는 것보다 결코 작은 기적이 아니라고 말했다. 웨슬리의 개인적인 친구였던 알렉산더 녹스(Alexander Knox)는 다음과 같은 적절한 질문을 하였다 : "어떻게 그는 작고 효과적이며 지속적인 종교 신도회를 만드는 일에 그렇게 열정적일 수 있었을까?" 녹스는 또한 이렇게 대답하였다 :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그가 다른 대다수의 개혁자들과 마찬가지로 그와 같은 하나님의 계획을 전적으로는 다 감지할 수 없는 나 자신의 확고한 신념만을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어떠한 것도 그의 정신적 체질 전체에 상반될 수 없다는 사실이기 보다 장래를 예상하고 빈틈없는 계획을 세우는 연습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존 웨슬리는 올바른 시기에 놀라운 결단력과 굉장한 힘으로 창조와 재창조의 능력인 동시에 탄생과 신생(新生)의 능력이기도 한 하나님의 더 큰 능력을 요청하였다. 그러므로 이 전기는 분명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추구하고 있다.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존 웨슬리는 어떻게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잠재적인 부흥의 도구인 자신을 연결시킬 수 있었는가? 이 책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이 책은 네 개로 나뉘어 있다. 그렇지만 각 부는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의 첫 단계는 일인칭으로 기록되었고 "무대설정"이라고 이름하였다. 일기와 일지와 편지에서 얻을 수 있는 웨슬리의 일생에 관한 상세한 사실들을 최소한 한 권의 책으로 모두 다룬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각 부의 첫 장은 우리로 하여금 존 웨슬리에게 "한 걸음 다가서서 개인적으로"그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우리의 목적이 반영되는 다양성과 연속성을 갖게 하기 위해 웨슬리의 생애를 탐구하는 가운데, 나는 웨슬리의 생애 마지막 때의 한 달간을 주목하게 되었다. 이 한 달은 웨슬리의 생애에 있어서는 드물게 보이는 회상(回想)을 위한 "조용한 며칠"과 여행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 여행은 18세기 부흥 운동의 전형적인 모습을 전체적으로 담고 있다. "무대"로의 이 19일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면서, 나는 웨슬리의 전집 전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상세한 사실들을 설명하였다. 1788년 3월 3일 웨슬리는 브리스톨(Bristol)로 갔고 거기서 3월 17일까지 머물렀다. 그 후 웨슬리는 하루에 최소한 두 차례씩 설교하는 동시에 신도회를 방문하면서 북쪽으로 향해 나아갔다. 이 책의 각 부는 84세의 웨슬 리가 이 행로의 한 지점으로부터 여행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으며 복음 전파를 위한 여행 자체를 묘사할 뿐 아니라 최근에 브리스톨에서 기록한 "나의" 전기적 기록을 독자들과 나누게 될 것이다. 각 부의 두 번째 단계는 역시 일인칭으로 기록된 전기적 자료들을 보여주는 네 개의 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열 여섯 개의 장들은 웨슬리의 "전기적 기록"을 묘사하며 전체적 개관을 제공하고 있다. 이 장들은 이와 유사한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은 말해 주고 있으나 이런 견해들은 바로 웨슬리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들이다. 각 부의 세 번째 단계는 "분석"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분석을 위한 네 개의 장들은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쓰여졌다. 첫째. 저자인 나 자신의 해석을 발전시킬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장은 나 자신에게 나름대로의 관찰을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둘째, 이것은 나로 하여금 웨슬리의 개인적 발전을 설명할 수 있게 함으로 전기적 장들에서 웨슬리의 입을 통해 말하게 하려는 유혹을 줄여 주었다. 일인칭을 사용하여 전기를 기술한 것에 대하여 덧붙이는 말이 필요할 것 같다. 나는 일생 가운데 꼬박 3년 이상을 웨슬리를 연구하는 데 보냈다. 영국의 브리스톨에서 웨슬리에 관한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동안, 제 1차 자료를 통해 작업하기 위해 처음 6개월 동안 일주일 내내 하루에 열시간 내지 열두시간 동안 웨슬리의 글만을 읽었다. 나는 내가 존 웨슬리가"되어 가고 있다"라고 느껴지는 시간을 많이 경험했다. - 일찍 일어나고, 일주일에 한 번은 금식하고, 규칙적인 기도를 실천하였다. 웨슬리를 읽어 가는 중에 나는 웨슬리의 정신을 예견할 수 있었다. 따라서 내 "작은 머리"로 붓을 들게 하는 일이 왜 불가능하겠는가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일인칭을 사용한 것은 단순히 그의 시대에 갈등을 겪었던 인물과 똑같은 감정을 갖도록 의도한 것일 뿐이다. 이것은 웨슬리를 20세기의 인물로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다. 인용이 표시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독자들과 직접적으로 대화하는 자리에서 나는 웨슬리가 사용했을 것이라고 믿어지는 단어와 구절들을 직접적인 인용 없이 사용하려고 노력하였다. 나는 웨슬리가 말한 대부분을 각주를 통해 전거(典據)를 들어 설명하였다. 각주들은 웨슬리의 전집에 대응하도록 작성되었고 때때로 나 자신 EH는 다른 학자들의 연구와 관계된 언급을 첨가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나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 1차 자료를 통한 연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스스로의 힘으로 더 자세히 공부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근거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어떤 특별한 문학적 스타일을 완성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나는 한 인물 곧 실제적인 한 인물을 그려내기를 원한다. 우리 자신들이 당면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웨슬리도 실제적인 세상 가운데에서 문제에 직면했었음을 알 수 있는 그런 방식으로 소개하기를 나는 원한다. 나는 독자가 웨슬리의 위대함에 감동받을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까지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라면 그런 일이 다시 한 번 일어날 수 있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 본문 33~44 '제1부 초기시절 2. 18세기'중에서 ]

18세기

기독교 교회가 설립되고 형성된 이후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만큼 공인된 무신론과 신성 모독과 이교(異敎)에 열려 있었던 시대는 없었다.
다니엘 드포(Daniel Defoe)

내가 태어난 시대에 관하여 몇 마디 말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기 바란다. 세기의 전환기에 있어서 영국에는 작은 마을들이 점점이 있는 농지들이 대부분이었고 사람들은 여기 저기 흩어져 살았다. 1703년에 내가 태어났던 엡워스(Epworth)는 다행스럽게도 작은 마을이었다. 왜냐하면 웬만한 크기를 가진 마을은 어느 곳이든지 인간들의 쓰레기와 썩어 가는 쓰레기의 악취로 가득 찼다는 것을 당신이 곧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런던으로의 첫 여행 때 받은 충격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구석구석이 빈틈없이 공중의 편의를 위하여 만들어져 있었다. 포장되지 않은 대부분의 거리들은 좁아서 겨우 1.8미터의 너비밖에 안 되는 곳이 많았다. 이곳 브리스톨의 거리들은 지난 몇 십 년 간 많이 발전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륜 짐마차가 다니기에도 비좁아서 짐을 옮기려면 운반용 썰매가 사용되어야만 했다. 대부분 가옥들은 하나 혹은 두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오두막집이었고 추위를 막기 위해 널빤지가 사용되었는데 경사진 지붕을 가진 다닥다닥 붙은 모양이었다. 더러 부자들이 예전에 버리고 간 큰집들도 있었는데, 그런 집들은 얼마 가지 않아서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들이 기르는 가축들에 의해 점령되곤 했다. 백정의 것을 포함한 온갖 쓰레기들이 거리로 내던져져서 곰팡이가 나고 부패하여 오물과 질병이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기간을 지난 이천 년 역사 가운데 "시궁창"이라고 이해하도록 언급했는데, 그것은 오물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도덕성을 말한 것이었다. 방탕한 삶은 전염되었는데, 귀족 계급과 중산층, 하층 계급 그리고 법관이나 국회 의원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다. 수상을 역임하였던 올포드(Orford)의 제 1백작 로버트 월폴(Robert Walpole)경은 은혜로우신 하나님 덕택에 1745년에 그를 데려가시기까지 공개된 간음을 행하고 살았다는 말을 들었다. 자주 인용되는 그의 말을 들어보자 : "나는 성자도 스파르타인도 개혁자도 아니다"라는 이 표현은 아마도 이 세기를 줄잡아 하는 말일 것이다.

농사 기술은 진보되어 갔지만 산업의 방식은 지극히 원시적이었다. 생명은 헐값이었다. 런던의 메릴본(Marylebone) 근처 타이번(Tyburn)에 있는, 찰스 왕이 죽어서 지금 누워 있는, 그 곳 교수대에서 하루에 열 명 혹은 열두 명이 죽임 당하는 것을 나는 목격해 왔다. 하루는 한 조각의 방을 훔친 죄로 열살 난 아이를 목매달았다. 나는 살인의 숫자에 관한 기사와 더 읽어 내려가기가 두려운, 너무나 자세히 묘사된 공중 앞에서의 처형식(處形式)에 관한 기사를 읽기에 진력이 났다.

이러한 타락상은 또한 소수의 권력자들이 번영을 누리는 가운데에 나타났다. 특히 큰 마을과 대도시에서 대다수의 백성들이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던 반면 그들 위에 보기 좋게 겉을 위장한 궤변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부자들에게 정당한 경고를 줄 수 있도록 찾아온 기회를 거의 놓치지 않았다.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가난한 자들 가운데 일하도록 부르신 것에 의심이 있을까? 결국 주님 자신이 훌륭한 선례(先例)를 보여 주신 것이 아닐까? 나는 신도회에 속한 한 사람에게 이렇게 편지했던 일을 기억한다 : "나는 당신이 사람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자들과 더 대화하되 더욱 풍성하게 많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그들이 그러한 취향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하늘 나라로 가도록 앞으로 이끌어 줄 영혼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하기를 바랍니다. 그들은(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내가 아는 어떤 부류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비율이 믿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러움과 많은 추한 환경이라 할지라도 그들 가운데 엎드려 기십시오... 당신의 대화 상대를 점잖고 우아한 사람들로만 제한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그러한 것처럼 나도 이렇게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생애나 사도 가운데 누구의 생애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선례는 찾을 수 없습니다. 친구여,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갑시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영구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30년 전쟁(Thirty-Years War : 1618-1648) 이 끝난 이래로 건조한 지성주의 와 영성주의의 사이에서 방황해 왔다. 예들 들면, 영연방(英聯邦)의 시대 동안 신비적인 "내적인 빛"은 밝게 비추었으나, 세기가 바뀌면서 우리 영국인들은 전달되는 지식의 올바른 방법에 집착하게 되면서 이러한 영성(靈性)에 싫증을 내게 되었고. 심지어 청교도 전통에 있어서도 그러하였다. 그리고 영국인들은 아직도 여전히 감정적으로 공격적이고 극단적으로 열정적이지만, 열광주의 라고 이름 붙여진, 인격적 종교를 연상시키는 어떤 것들은 무조건 유감으로 여긴다.

17세기의 유산(遺産)이 지식보다 경험에 강조를 두고 있지만, 문제는 경험을 이성으로 판단할 것인가(자연 계시) 아니면 신앙으로 판단할 것인가 (신적 계시)에 있었다. 일부 17세기 신학자들은 신앙과 이성의 재결합에 관해 매우 낙관적이었으나 여기에 문제가 있었다. 동에서 서로 가는 것은 중간에 멈추어 서는 것보다 확실히 쉬운 것이었다! 18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신앙에의 호소는 거의 전무(全無)하였고, 이성에의 호소가 우세하였다. 예를 들면, 이신론(Deism)은 전적으로 모호한 초자연적인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까지 이성을 높여 놓았다. "따라서 우리들은 과거에나 현재에도 이성을 하나님께서 주신 최상의 선물이라는 확고한 원리로 주장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을 어디에서나 발견한다. 그들은 그것(이성)을 가장 좋은 색상으로 미화하며 하늘에 닿기까지 격찬한다. 그들은 이성을 장황하게 칭찬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그것은 신적인 것보다 약간 못한 것으로 만든다. 그들은 상습적으로 이성을 무오한 것으로 또는 그와 매우 흡사한 것으로 묘사한다. 그들은 이성을 모든 인간의 자녀들이 충족할 만한 지도자, 즉 자연적인 빛에 의해 모든 진리와 모든 덕으로 인도하기 가능한 것으로 우러러 본다." 조금 더 예를 들어보겠다.

종교를 본래적 본질 안으로 축소시키려는 시도로 쓰여진 불신앙적인 두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톨랜드(Toland)의 『신비롭지 않은 기독교』(Christianity Not Mysterious)와 틴달(Tindal)의 『창조만큼 오래된 기독교』(Christianity As Old As Creation)는 하나님을 믿지만 그 말씀은 믿지 않는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 "성경은 내가 일생 동안 읽은 책 가운데 가장 훌륭한 책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 대해 정복될 수 없는 반감을 가지고 있다. 그 책은 지나치게 훌륭하다. 거기에는 너무나 훌륭한 삶의 계획, 교리와 실천을 위한 계획이 들어있다. 그래서 약한 인간을 위해서는 너무 탁월하며 어리석은 인간이 목표로 삼거나 닮으려고 시도하기에 너무나 훌륭하다." 나의 대답은? 만약 "하나님으로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아, 영국에는 이러한 말을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오랫동안 분리되어 온 지식과 생명력 있는 경건(敬虔)"을 다시 결합시키는 일은 진정한 부흥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적 신앙은 창조를 창조주로부터 분리시키는 냉각된 결정주의(決定主義)에 갇혀 있다. 클라크(Clarke) 박사에 의하면 인간은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면 스스로 신에게 이르는 길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성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성만 가지고는 신앙을 창출해 낼 수 없으며 오히려 절망할 뿐이라는 것을 궁극적으로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이 진리를 슬픈 경험을 통하여 60여 년 전에 발견하였다. "고대나 현대의 저자들에게 하나님의 존재와 그것과 거의 연관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세상의 존재에 관하여 내가 발견할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논증을 쌓아올린 후에도" 나는 여전히 확신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방법에 무관심하면서 이성에 의해서만 사고하였는데, "내 속에 영혼이 없어질 때까지 그랬으며, 나는 생명보다 죽음을 선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약 45년 전에 한 이신론자와 저녁 식사를 함께 했던 일이 기억나는데, 그는 내 질문에 대답하기를, "당신은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습니까?" 그는 단순하게 대답하기를, "나는 하나님이 계심을 압니다. 그리고 그가 만물의 영혼임을 믿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은 모릅니다. 만물은 어둡고 내 사고는 길을 잃었습니다. 내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나는 모릅니다. 내가 무엇이고, 왜 이 곳에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나는 모릅니다. 내가 무엇이고, 왜 이 곳에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나는 모릅니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불행하다는 것과 삶에 지쳤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것들이 끝나기를 소원합니다." 당신은 이후에 "이성적이고 종교적인 사람들에 대한 진지한 호소" (An Earnest Appeal to Men of Reason and Religion)라는 장문의 논문을 쓰기로 결심하였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그리고 그 글에 바로 이어서 "추가된 호소(A Farther Appeal)를 썼는데, 나는 그 글에서 많은 이들을 믿게 하고 더 나은 정신으로 이끌기 원했다.

교회사적인 조망은 철학적인 조망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수년 동안 교회는 노동자 계급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무관심과 무종교는 중산 계급과 상류 계급 사회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나는 옥스퍼드에 있을 때 드포에 의해 쓰여진 글을 기억한다. "기독교 교회가 설립되고 형성된 이후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만큼 공인된 무신론과 신성 모독과 이교에 열려 있었던 시대는 없었다." 단순한 사실은 어느 누구도 종교의 원리에 따라 행하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더 잘 알아야 할 사람들은 곳곳마다 그것을 버렸고 평범한 사항에 불과한 불신앙에 그들은 동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전반적으로 "영향력을 상실한" 교회는 세속 철학의 맹공격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 "극히 소수의 성직자들만이 이 주제에 관하여 논쟁하는 데 관심을 가졌고, 그렇게 하여 그들은 유약한 이성의 힘이 강하게 뿌리박은 편견을 단번에 제거시켜 주기만을 일반적으로 기대하였다." 더 나아가서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의 진리에 커다란 회의(懷疑)를 품고 있었던 반면 지역 교구들은 "겸직하는" 사례가 일반적이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한 교구 목사가 여러 배의 생활비를 챙기는 동안 교구민들의 실제적인 일은 잘 교육받지 못하고 제대로 사례비도 받지 못하는 절반은 굶주린 목사보(牧師補)에 의해서 수행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교구목사는 그가 비교적 안일하게 교구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부유한 상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와 함께 영국 국교회는 매우 정치적이었다. 제임스(James) 2세의 딸인 앤(Anne) 여왕은 교회가 국가의 관계를 극히 중시하는 고교회(高敎會) 계열을 다시 한 번 손에 쥐었다. 비국교회 지지자들은 처형당했다. 따라서 영국 국교회 내에는 부흥 운동이 일어날 무대가 마련되었다. 이상이 이러한 무대의 배경이다. 나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나는 이 주제를 더 이상 끌고 가지 않게다. 미래의 어느 세대가 우리의 부흥 운동을 하나님의 성령의 운동이라기보다 더 교회사적이고 사회학적이고 더 나아가 정치적인 것이었다고 결론을 내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몰락의 시점에서 유약한 정신을 소유한 역사가들이 우리더러 그렇게 믿게 만들려는 것처럼, 교회가 부흥하고 성숙해 가기 위해 절망적이 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참된 신실성을 가진 성직자들의 대부분은 윌리엄(William)3세가 왕권을 적법하게 상속한 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충성 맹세를 거부한 "충성 선서 거부자"였는데, 영국 국교회 내의 타락한 일반적 법칙에 예외적인 소수의 성직자들도 있었다. 나의 아버지 사무엘 웨슬리(Samuel Wesley)는 이러한 예외적인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 이었다. 아버지는 군인으로서 불과 몇 달간의 임무를 마치고 해군 군목적을 사임한 직후인 1697년 어머니 수잔나(Susanna)와 함께 웹워스로 옮겨갔다. 나로 하여금 엡워스의 생활상을 이야기하도록 허락해 주기 바란다. 그 곳에서 받은 영향력은 나에게 참으로 중요하다.
목차

저자 서문
감사의 말씀

제 1부 초기 시절
1. 제 1부의 무대 설정
2. 18세기
3. 가정 환경
4. 학생 시절 : 차터하우스와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
5. 종교적 회심
제 1부의 분석

제 2부 초기 사역

6. 제 2부의 무대 설정
7. 옥스퍼드의 연구원
8. 아버지의 부목사
9. 신성 클럽
10. 조지아
제 2부의 분석

제 3부 올더스게이트

11. 제 3부의 무대 설정
12. 귀향길
13. 피터 뷜러
14. 1738년 5월 24일
15. 독일
제 3부의 분석

제 4부 부흥
16. 제 4부의 무대 설정
17. 브르스톨로의 부름
18. 더 넓은 교구
19. 결혼 생활과 중년 시절
20. 잉글랜드 전역을 태운 불꽃
제 4부의 분석

에필로그
색인
로버트 G. 터틀2세
브리스톨대학교 (University of Bristol;Bristol; Ph.D.) 위튼신학대학원 (Wheaton Gradute School of Theology; M.A.) 게렛신학대학 (Garrett Theological Seminary; B.D.) 듀크대학교 (Duke University; A.B.) 오랄로버츠대학교 (Oral Roberts University) 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교수 역임 애스베리신학교 (Asbury Theological Seminray) 전도학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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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존 웨슬리 그의 생애와 신학
저자로버트 G. 터틀2세
출판사도서출판 세복
크기신국판 (153×225)
쪽수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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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200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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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로버트 G. 터틀2세) 신간 메일링   출판사(도서출판 세복) 신간 메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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