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과 과학, 창조와 진화 사이의 끊이지 않는 갈등과 대화”● 기독교 신앙은 창조를 믿으면서, 진화를 수용할 수 있는가?
● 유신진화론에 대한 성경적 창조론자의 진지하고 정중한 비판
●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신 ‘완전한 창조’를 치열하게 변증하는 책
● 유신진화론을 신봉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적 창조관 제시
● 그룹 모임에 유용한 ‘나눔과 토론을 위한 질문’ 수록
세움북스의 “내일을 위한 신학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 논의될 신학 쟁점이나 발전하고 있는 신학 이론들을 대중들에게 쉽게 풀어 설명하는 책을 선보이고 있다. 특별히 이번에는 그 세 번째 책으로서, 신학(성경)과 과학, 창조와 진화 사이의 끊이지 않는 갈등과 대화를 서술한다. ‘기독교 신앙은 과연 창조를 믿으면서 진화를 수용할 수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일반 진화론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하는 문제들을 유신진화론자들의 발언을 통해 확인하면서, 이를 진지하고 정중하게 비판하고 치열하게 성경적 창조론을 변증하는 책이다. 소위 ‘과학 시대’라고 불리는 오늘날, 성경이 말하는 창조를 고스란히 믿는다고 하면서 시간과 우연에 의한 진화론을 일부 수용하는 유신진화론자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대세를 따르는 이들이 아니다. 성경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과연 이 부분에서 성경은 무어라 말하고 있는지, 우리는 어떻게 믿고 실천해야 하는지, 저자는 조심스럽고도 친절하게 성경적 창조관을 제시한다. 그룹 모임에 유용하도록 ‘나눔과 토론을 위한 질문’도 수록하여, 교회 독서 모임이나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하기에도 유익하다.
[서문]
종교는 과학과 대립하는가?신학자 존 호트(John F. Haught)는 그가 쓴 『과학과 종교, 상생의 길을 가다』라는 책의 서두에서 독자들을 향해 위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사실 이러한 질문은 과학과 종교 사이에 이미 다양한 갈등들이 발생해 왔다는 점을 전제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과거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의 ‘지구 중심적 우주관(Geocentrism)’이나 갈릴레이(Galileo Galilei)의 ‘지동설(Heliocentrism)’ 등은 종교계의 거센 반발을 샀다. 그리고 후대에 등장한 다윈(Charles R. Darwin, 1809-1882)의 진화론 역시 종교계와의 큰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물론 이러한 갈등들이 처음부터 종교계와 과학계의 대립으로 나타났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당시 종교계뿐만 아니라 과학계의 주류 역시도 진화론이 가진 근거의 빈약성을 들어 진화론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시대의 천재 과학자들이 전통적인 성경 이해에 반(反)한다는 이유로 종교계의 괴롭힘을 받아 왔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종교와 과학은 시대마다 어떠한 사안에 대하여 자주 긴장 관계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과학과 신학이 항상 갈등과 대립의 관계만을 형성했던 것만은 아니다. 무수의 기독교 과학자들이 과학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고자 노력해 왔고, 또 신학자들 역시도 성경의 내용을 과학적인 방식을 도입해서 좀 더 명확하게 검증하고자 하는 시도들을 해 왔다. 적어도 그러한 시도를 해 온 사람들은 그러한 노력을 통해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더 풍성하게 해 주리라는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 들어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나 토마스 토랜스(T. F. Torrance)와 같이 과학과 신학에 대한 학문적 역량을 갖춘 사람들이 ‘과학 신학(Scientific Theology)’이라는 범주 안에서 과학과 신학의 상보적 관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시도들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과학과 신학의 영역 중 어느 한편에 더 확실한 우위를 두기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 안에서 상대 영역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은 형이상학적이고 영적인 측면의 것들을 과학적 지식으로 설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여겨, 신학과 종교의 주도하에 그러한 것들을 설명하고자 했다. 그리고 실존하는 현상 세계를 조율하고 유지하는 법칙과 객관적 실체에 대한 부분에서는 과학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보았다. 적어도 그들은 신앙인의 정체성을 가지고서 과학과 신학이 가진 고유성을 보존하고 훼손하지 않는 가운데, 서로의 영역을 더욱 명료하게 완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이들의 바람대로, 과학과 신학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 안에서 서로의 영역이 가진 고유성을 인정해 주고, 각 영역을 더욱 깊이 있고 풍성하게 해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영역을 병합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문제점은, 만일 공정(公正)이라는 기준선에서 두 영역 간의 조화를 적절히 이루지 못할 경우 오히려 이 둘은 서로가 가진 고유성을 해치게 되고, 어느 한편의 우위성 안에 갇히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과학을 해석하려는데 종교심을 과도하게 부여하여 정작 과학이 가진 객관성을 해치는 경우라든지, 반대로 오감의 경험치를 가지고서 습득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면서, 기적과 초자연적인 영역마저 과학적 기준으로 평가한 나머지 종교가 가진 절대적 영역을 손상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시도들은 과학과 종교를 무리하게 병합시키면서 발생한 좋지 못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과 신학이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 주고 각기 가진 고유성을 보존해 주며 공정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별하고도 일반적인 은총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명료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시 호트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종교는 과학과 대립하는가? 답은 ‘Yes’일 수도 있고, ‘No’일 수도 있다. 이 책은 과학과 신학이 서로에 대하여 가지게 되는 상보적 기능을 충분히 동의하고 지지함과 동시에, 반대로 서로의 영역을 과도하게 침범하거나 병합하면서 생기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예리하게 반론을 제기해 볼 것이다. 특별히 과학과 신학의 건전한 조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유신진화론자들의 진실성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과학적 이론을 우위에 둔 나머지 전통적인 성경 해석과 신학적 지지대를 과도하게 폄하하고 왜곡시킨 부분에 대해서는 적절한 근거를 들어 이의를 제기하고 답변해 볼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책은 과학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자들이나 진화론을 절대적인 진리로 여기고 있는 자들을 비판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성경과 진화론 사이에 존재하는 불일치에 대하여 지적하고자 하는 책이다. 즉, 무신론자들이 기대 독자가 아니라, 기독교인들 중에 유신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 혹은 유신진화론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으나 적절한 근거가 부족했던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서로의 진영 간에 불편한 갈등이나 과도한 비판이 양산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학과 신학이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고 보완하는 가운데, 서로의 견해를 더욱 견고하게 발전시키는 것이 이 책의 진실한 목적이다. 결과적으로 이 책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내용을 통해 과학과 신학의 영역이 각자의 영역에서 추구하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서로를 더욱 빛내 주며 진일보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