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생후반전에 다시 읽는 사막 교부와 교모의 말씀들
△ 사막 교부(敎父)와 교모(敎母)의 방대한 어록 가운데 스무 가지 인생 가르침을 선별해 짧은 해설과 함께 수록
△ 목회자 설교 예화 / 온 교인 사순절 묵상
풍요와 번영을 반성하며 십자가 영성을 실천했던 사막 교부와 교모의 말씀들모두들 위기라고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더욱 그렇다. 문 닫는 교회도 많고 목회를 포기한 목사도 많다. 교인들의 이탈도 심하고 남아 있는 교인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전 세계가 함께 겪고 있는 위기다. 인류의 종교 역사를 살펴보면 한 세대가 끝나고 다음 세대가 열리는 ‘종말론적 위기상황’(eschatological crisis)에서는 언제나 전쟁과 기근과 온역(瘟疫)이 등장하는데, 지금이 그런 때인 것 같다. 성경은 그때를 ‘하나님의 날’이라 불렀다.
이러한 위기 상황 가운데서도 일부 한국 교회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흥청망청 번영과 풍요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이제 기득권이 되어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맘몬을 향해 가고 있다. 이럴 때 예수의 십자가 영성을 살아 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AD 3-5세기 융성한 로마 기독교 문화를 뒤로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완전을 경험하기 위해 자발적 고난을 택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사막 교부와 교모’들이다. 이들은 화려한 도시 생활을 피해 이집트를 비롯한 사막으로 떠나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 목표인 ‘그리스도의 완전’(perfectio Christi)을 경험하고 실천했다. 또한 사막과 광야 혹은 산에 움막을 짓거나 동굴 속에서 수십 년간 은둔해 살며 오로지 기도와 묵상, 노동과 청빈을 추구함으로써 말씀을 ‘온전하게’ 사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로써 말씀의 권위가 확인되었고 기도의 능력이 나타났다. 소문을 들은 도시 교회의 지도자들과 교인들은 사막으로 찾아와 말씀과 조언을 구했다. 사막에서 회생된 십자가 영성이 도시 교회로 흘러 들어갔다. 풍요와 안락의 시대에 소멸되어 가던 기독교 영성이 다시 살아나게 된 배경이다.
말씀에서 말씀으로 살아 낸 사막 교부와 교모의 인생 가르침이 책은 사막 교부와 교모에 대한 말씀을 완역한 것도 아니고 그들에 대한 연구서도 아니다. 사막 교부와 교모에 대해 들어보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접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교양적 ‘사막 교부 교모 읽기’이다. 책을 엮은 이덕주 교수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사막 수도자들처럼 칩거하면서 자신에게 적용하고 깨달은 내용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필요한 스무 가지 주제를 선별해 구성했다. 그리고 각 장마다 그들을 움직인 성경말씀과 짧은 해설을 곁들였다.
“정리를 하고 보니 어린 시절 고향 친구들과 즐겨 했던 ‘스무고개’ 놀이가 생각났다. 둘이 짝을 지어 한 사람이 마음속으로 어떤 사물이나 인물을 생각하고 있으면 상대방이 그에게 ‘동물입니까’ ‘먹을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나라에 있는 것입니까?’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것입니까?’라는 식으로 질문한다. 그러면 ‘예’와 ‘아니요’로만 대답해야 한다. 그렇게 스무 번 질문을 던져 상대방 마음속 생각을 알아내는 게임이다. 그 과정이 마치 도시를 떠나 사막으로 들어간 수도자들이 기도와 묵상, 침묵과 노동, 절제와 겸비를 수행하면서 수행 초기에는 어렴풋했던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고 어느 순간 그리스도의 완전을 체득하는 경지에 이르는 감격을 누리는 것과 비슷했다.
그렇게 출가로부터 임종에 이르는 모든 수행 과정에서 수도자들을 움직인 것은 오직 성경과 계시를 통해 들려오는 ‘주님의 말씀’이었다.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여 집을 떠났고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말씀을 통해 용기와 지혜를 얻었다. 그런 맥락에서 스무 개 고비마다 그들을 움직였을 성경말씀을 골라 보았다. 그리고 말씀대로 산 결과 터득한 바를 증언과 고백으로 남긴 말씀들을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사막 교부와 교모는 한마디로 ‘말씀에서 말씀으로’(word to word) 산 사람들이었다.”
사막 교부와 교모에게 배우는 스무 가지 인생 가르침출가와 떠남, 포기에 대한 가르침... 영적 훈련에 대한 가르침... 의식주에 대한 가르침... 기도생활에 대한 가르침... 노동생활에 대한 가르침... 시험과 유혹, 시련에 대한 가르침... 죄의식과 참회에 대한 가르침... 순종과 복종에 대한 가르침... 인내에 대한 가르침... 겸비와 겸손에 대한 가르침... 마음 챙김과 내적 평화에 대한 가르침... 침묵 수행에 대한 가르침... 언행에 대한 가르침... 성경과 교리에 대한 가르침... 자기반성과 판단에 대한 가르침... 하나님 사랑에 대한 가르침... 이웃 사랑에 대한 가르침... 스승과 제자 됨에 대한 가르침... 종말과 죽음, 심판에 대한 가르침... 인생 목표에 대한 가르침
[이덕주 교수 인터뷰]1.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2018년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은퇴한 뒤 ‘늦은 비’ 은총을 즐기고 있습니다. 천천히, 여유 있게, 조용히, 조금씩, 깨달아 가는 진리 말씀에 감동하면서 말입니다. 최근에는 히브리서 3장 13절 말씀,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As long as, it is called ‘Today’)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어제는 잘했든 못했든 되돌릴 수 없기에 내가 어찌할 수 없고, 내일은 그분 시간이지 내 시간이 아니기에 역시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오직 내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에 집중하여 최선을 다하라는 가르침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오늘 하루! 그거면 되지요.
2. 사막 교부와 교모의 인생 가르침을 엮은 《깨달음은 더디 온다》는 어찌 보면 교수님께서 지금껏 출간한 책과는 결이 다르지 않나 싶습니다. 어떤 계기로 이 책을 펴내게 되었는지요?
겉에서 보면 결이 다르지만 속내는 통합니다. 한국교회사를 공부한 이유는 ‘한국 기독교인’으로서 내 정체성과 근본을 찾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초대 교인들의 신앙을 추적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픈 열정이었지요.
미국에서 목회하는 딸아이가 “은퇴 후 읽으시라”며 사막 교부와 교모에 관한 책을 한 보따리 보내 주었습니다. 그걸 읽다가 나의 교회사 관심 영역이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초대교회 교부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것입니다. 그리고 교부와 중세시대 종교 논쟁과 갈등이 일어나기 직전, 사막에서 피어난 ‘고요하고 깨끗한 영성의 샘’, 오아시스를 발견했지요. 거기서 오늘 한국 교회 현실에서 느끼는 갈증과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보게 되었고요. 초대교회의 처음 사랑은 한국이나 사막이나 통하더군요.
3. 사막 교부와 교모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 핵심 영성을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어떻게 하면 주님과 가까이,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하나 되어 살 수 있을까?” 그 고민과 탐구의 열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살아내기 위한 열정입니다.
4. 한국 교회가 위기를 맞았다고들 합니다. 이럴 때 사막 교부와 교모의 가르침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날 한국 교회는 너무 많아서, 너무 편해서, 너무 복잡해서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할 일도 많고, 할 말도 많고, 생각도 많고, 주장도 많고…. 그러다 보니 자신도 바쁘고 남도 바쁘게 만들어요. 사막은 그 모든 것을 비우고 내려놓는 작업이지요. 못된 생각은 물론이고 잘해 보겠다는 생각까지 내려놓을 때, 그렇게 가벼워진 우리를 끌어 올리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겠지요.
5. 이 책 《깨달음은 더디 온다》에는 좋은 가르침이 참 많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기도 합니다. 사막 교부와 교모의 말씀을 풀고 엮으면서 교수님께서 새롭게 결단하고 실천하게 된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복잡한 것을 피하여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말하고, 단순하게 행동하는 법을 터득해 가는 것 같아요. 요즘 제 일과는 오전에 2-3시간 성경을 쓰고(손글씨로), 점심 후 2-3시간 산책하며 묵상하고, 남은 시간은 글을 쓰거나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 만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에 좋아하던 것이 자연스럽게 멀리 느껴집니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뉴스를 거의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핸드폰이야 원래 없었지만…. 전에 멀리했던 일이 소중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일종의 재정비 상태에 들어갔다고 해야 할까요?
사막 교부 말씀을 오늘에 실천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요. 그렇다고 처음부터 “나는 안 돼” 하고 포기하면 더욱 안 될 일입니다. 사탄이 좋아할 일이지요. 찬송 <신자 되기 원합니다>를 영어로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영어 가사를 보면 “Lord, I want to be a Christian”, “Lord I want to be more holy”, “Lord, I want to be more loving”, “Lord, I want to be like Jesus”로 되어 있어요. 저는 순서를 거꾸로 봅니다. 예수님을 닮기로 작정을 하면(이게 중요하지요!) 예수님처럼 사랑하게 되는데,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more) 하면 됩니다. 그러면 거룩해지고 구별됩니다. 그리고 그것도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하면 됩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조금씩 더’ 하다 보면 언젠가 우리는 ‘그리스도인’(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겁니다. 그게 꿈이지요. 그저 지금 하는 데서 조금만 더 사랑하고 더 노력할 뿐입니다.
6. 사막 교부와 교모의 말씀 가운데 꼭 나누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시소에스 압바의 말씀이 계속 맴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이 계신 곳을 찾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