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산상수훈 중에서 팔복을 강해한 책이다. 자칫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 있는 자’를 추상적으로만 생각하거나 혹은 윤리 도덕적으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은 복에 대해 정의하기를 ‘영적인 복이자 내적인 복’,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는 복’으로 정의를 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성품의 변화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품의 변화는 반드시 관계의 변화와 삶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곧 예수께서 가르치신 복은, 내적 변화뿐만 아니라 그 인격에 걸맞은 삶의 변화와 미래 보상까지도 포함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생각하게 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갈망하게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성품을 들여다보고 예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고자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행복)을 말하는 본서는 물질적 번영을 행복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책이라고 여겨진다.
저자는 이 책에서 복음에 대한 위대한 진술을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일상의 언어로 담담하게 풀어서 설명한다. 그래서 이 책의 특징 중의 하나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을 목회자들은 물론이고 일반 성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출판사 서평]
하나님이 복 주시는 사람 복음에 대한 진술이다
예수님께서 산상에서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가르치신 가르침을 가리켜 산상수훈이라고 한다. 산상수훈은 두 대상과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있다. 믿음을 가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법도를 알려준다. 그래서 하나님과 예수님에게 합당한 인격을 갖추고 합당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믿음이 없는 무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높은 기준을 가르쳐 준다. 그것은 인간의 무능함을 깨닫고 왕이신 예수님 앞으로 나와 예수님을 따라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런 면에서 산상수훈은 복음 그 자체이신 예수님 앞으로 오라는 초청이다.
죄인은 율법 앞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왜냐하면 율법이 검사처럼 우리의 죄상을 낱낱이 고발하기 때문이요, 우리를 범죄자라고 하나님께 기소하기 때문이다. 율법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멍에를 우리 목에 매달았다.
하지만 기쁜 일이 일어났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완성자로 오셨기 때문이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까지는 율법은 그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율법이 말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다 이루실 뿐이다(마 5:18). 이 일을 위해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일 중의 하나는 왜곡된 구약의 율법을 바로잡아주신다. 그리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더 나은 의가 되도록 예수님께서 친히 율법의 완성자가 되어주신다(마 5:17). 율법을 범한 죄인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죗값을 지불하신다.
이런 면을 고려한다면 산상수훈은 ‘복음에 대한 위대한 진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이 복 주신 사람』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이 도대체 어떤 말씀이냐고 묻는다면, 복음에 대한 위대한 진술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의 설교는 복음 그 자체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새 계명의 주인께서 새로운 법도와 규범을 선포하신 위대한 도덕률입니다.”
산상수훈은 윤리적인 인간이 되는 지침서로 끝나지 않는다. 산상수훈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생각하게 하고 그것을 추구하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와 의에 결정적 걸림돌인 죄 문제를 갈망하게 한다. 그래서 결국 산상수훈을 읽고 묵상하는 자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고 의지하게 한다. 그래서 산상수훈은 복음에 대한 위대한 진술이다.
우리 내면이 예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게 한다
복에 대한 정의가 다양하지만 저자는 산상수훈에서 말하는 복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산상설교의 복이란 내적인 변화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마음이 청결한 것은 인간이 지닌 능력이나 불굴의 의지로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이 결코 아닙니다. 이는 오직 성령으로 새롭게 잉태된 자들에게 허락되는 속사람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오직 성령께서 인간의 내면을 새롭게 창조하셔야만 비로소 가질 수 있는 새 인격입니다.”
특히 팔복에서 이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한 자는 복이 있는데, 이 사람에게는 ~한 결과가 뒤따른다’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성품의 변화이다.
하지만 이 성품의 변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반드시 ‘관계의 변화’ ‘삶의 변화’로 이어진다. 내적인 변화로 인한 삶의 변화와 미래의 보상까지 받는 셈이다.
“팔복은 영적인 복이자 내적인 복입니다. 팔복의 행복은 복음의 객관적 진리로 말미암는 내적인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소유한 자는 믿음의 나라인 천국을 더 맛보고 경험할수록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더욱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게 만든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독자의 시선을 끊임없이 예수님에게로 이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기 능력을 과신하고 자기로 충만한 사람이 아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기의 지혜와 능력을 신뢰하는 것을 내려놓은 자, 자기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간 자이다. 영적 파산 상태에 있는 사람이다. 자기 신뢰가 무너져서 그리스도 예수를 신뢰하는 자이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예수님을 찾는다.
애통은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영적인 비통함, 자신의 부패한 내면을 보게 된 자에게서 나오는 영적인 절규를 뜻한다. 그래서 애통하는 자는 자신의 절망스러움 때문에 탄식하는 자이요, 자신의 죄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자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애통하는 자를 위로해 주신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죄 때문에 아파할 때, 예수님도 같이 아파하십니다. 당신이 죄로 신음할 때, 예수님도 같이 고통스러워하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항상 소망의 복음으로 당신을 위로하십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는 것에 대해 설명할 때도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에게로 향하게 한다. 저자는 온유를 설명할 때 ‘자기 죄 대문에 절망에 빠진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인하여 일어난 내적 변화가 바로 온유’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화평하게 하는 자 등등을 설명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만 우리의 소망이다. 예수님은 팔복의 주인이시고 주체자이시다. 예수님이 팔복에서 말하는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모델이시다. 우리는 예수님을 보고 팔복의 삶을 살 수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이런 희망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