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를 40일에 걸쳐 자세히 묵상할 수 있도록 돕는, 신학과 신앙을 잇는 묵상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본문의 깊은 이해를 돕고자 중요한 표현과 구절들에 대한 원어 풀이, 맥락 해석, 그리고 적용을 돕는 저자의 지침 등을 담았고, 이를 바탕으로 독자 개인의 묵상과 기도문을 적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애통과 탄식으로 가득한 애가를 더 깊이 묵상하고, 우리의 비참한 처지를 직시하는 가운데 유일한 희망이신 하나님만을 바라보길 소망한다. 아울러 독자들이 성경을 묵상하는 저자의 방향과 방법을 체화하여 이후 가벼운 감상 위주의 묵상에서 보다 깊은 신학적 묵상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사 서문]“우리의 마음에는 기쁨이 그쳤고 우리의 춤은 변하여 슬픔이 되었사오며”(애 5:15)
출간을 앞두고 잠시 제목을 고민했습니다. 처음에는 독특하고 자극적인 제목을 고민했습니다. 검색이 많이 되는 소위 ‘키워드’를 찾아보기도 했고, 에세이나 자기개발서와 같이 독특하고 눈에 띄는 제목이 많은 분야들을 검색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만큼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독자가 자신의 비참함을 마주하고 거기에 근심과 애통이 더하여지게 하자’는 출간 의도를 떠올리며, 그 의도가 담긴 제목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본문과 원고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때 만난 제목이 바로 ‘우리의 춤은 변하여 슬픔이 되고’입니다.
애가에 등장하는 고통의 상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합니다. 성전은 정복당했고 그 안의 모든 것이 약탈당했습니다(1-2장). 어린 아이들이 고통을 당하고, 배고픔에 못 이겨 엄마의 품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2:11-12). 심지어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먹는(2:20) 상황에까지 이릅니다. 칼에 죽는 것이 배고픔에 죽는 것보다 낫다고(4:9) 할 만큼 그들의 상황은 잔인하고 참담했습니다.
이런 처참한 처지에 애통하며 탄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아마 처음에는 영문도 모른 채 그저 당황해하며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분노하는 탄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애가를 부르는 시인의 마음에는 이것이 나의 죄 때문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내 죄악의 멍에를 그의 손으로 묶고 얽어”(1:14), “내가 그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1:18), “나의 반역이 심히 크니이다”(1:20)와 같은 시인의 고백은 3장에 이르러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 당한 자는 나로다”(3:1)에까지 이릅니다.
애가에는 희망에 찬 결론이 없습니다. 그저 울부짖을 뿐입니다. 계속해서 탄원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애가의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뿔뿔이 흩어지고 하나님께서는 수 백 년간 침묵하십니다. 대신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올바로 인식하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다시금 깨닫게 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응답하셨습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가 자신의 비참함을 마주하고 거기에 근심과 애통이 더해지기를 바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에게 애통하고 탄식할 수 있음이야말로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신의 슬픔이 인터넷과 SNS에 공유되어 단 몇 분 내로 수십 수백 명에게 위로받을 수 있는 놀랍도록 긍정적인 시대입니다. 슬픔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휘발되는 시대입니다. 희망과 긍정으로 가득 찬 우리들에게 애통과 탄식이 머물 자리는 없습니다. 그저 이 책에 담긴 애가의 신학과 저자가 안내하는 묵상의 방법과 흐름이, 우리가 하나님께로 향하는 애통과 탄식을 품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아울러 개인의 기록 공간을 마련해 두었으니 그곳을 자신의 해석과 묵상과 기도로 채워보시기를 권면합니다. 독자들이 애가를 묵상하며 애통과 탄식의 자리를 만들고 그곳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안식으로 채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