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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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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정준  |  출판사 : 아침향기
발행일 : 2025-01-16  |  (155*233)mm 양장 684p  |  979-11-8852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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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시편은 우리 영혼의 책입니다.
그냥 읽고 넘어갈 책이 아니라 밤낮으로 묵상할 책입니다.
묵상할 책만이 아니라 노래할 책입니다.
혼자서도 부르고 여러 사람이 합창으로 부르고 또 아름다운 곡조를 붙여서 부를 노래입니다.
광막한 광야, 외로운 길손으로도 부르고 외로운 감방에 앉아 나와 하나님과 세상과 역사를 생각하면서 부를 노래입니다.
북을 치며 부르고 나팔소리 울리며 부르고 통기타를 치고 부를 노래입니다.
울면서도 부를 노래요, 땀을 흘리면서도 부를 노래입니다.
승리의 순간이나 실패의 순간에도 부를 노래입니다. 억울해도 부르고 천대를 받고서도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부모에게서 버림받아도,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버림을 받아도 부를 노래입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한 위기에서도 부를 노래요, 죽음을 눈 앞에 보고서도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그러기에 칼빈은 시편을 “우리 영혼의 해부학이라”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은혜로우심, 만물에 가득찬 그의 영광, 인간 역사를 인도하시고 심판하시는 그 권위와 지혜를 노래한 책입니다.
내 억울한 사정을 들어주시는 하나님, 절망의 자리에서도 소망을 불어 넣어 주시는 하나님, 나 대신 싸워주시는 하나님, 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는 하나님을 노래한 책입니다.

이 시편 한 편 한 편을 읽고 명상하는 일은 내 신앙을 북돋우는 일만이 아니라 내가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을 스스로 가지는 것이라 생각되어 평소에 읽고 느낀 것을 여기 조그만 책으로 펴냅니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 한국 교회의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으로 독수리처럼 기운찬 영혼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시편143:6).


[시편 명상 개정판을 내면서]

김영호 목사
(역사 신학 교수, 미주크리스찬아카데미 원장, 1982년 설립)

만수 김정준 목사님 탄신 111주년, 서거 44주년을 맞이하면서 그의 시편 명상 개정판을 출간하게 됨을 감사하며 또한 후학 제자 여러분과 함께 기쁨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시편 명상은 만수 김정준의 평생 과업이며 그 결산의 마지막 유작입니다.
30대 촉망받는 젊은 목회자 만수에게 찾아온 폐결핵 말기의 무거운 질병은 그를 결국은 죽음 대기소 마산 국립수용소로 강제 입원하게 했습니다. 더이상의 그 어떤 치료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놀라운 역설의 섭리적 손길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세계선교의 과업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아라비아 광야 3년의 연단이 요구되었던 것처럼 만수의 신학과 목회를 위해서는 특별한 연단과 신학적 천착의 과제 정립이 요구되었습니다.
만수는 마산요양소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조차 거부하던 죽음 직전의 환우들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부터 시작하여 그들을 신자로 하는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수십 명의 장례식을 집례하기도 했습니다. 그 강단의 최고 교재는 시편이었습니다. 만수는 시편 말씀에서 기도를 배웠고 시편의 찬양으로 하나님을 만났고 시편 말씀으로 명상하여 그 영혼들을 섬겼습니다.
3년의 시간 동안 만수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고 시편을 평생의 연구과제로 삼았습니다. 그는 마침내 시편 전권을 암송하는 은혜의 경지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훗날 강단과 교단을 떠나 은퇴 시기에 〈시편명상〉을 집필하여 인생의 결산, 신학의 마지막 유업을 이루었고 한국교회를 위한 영적 자산을 남기었습니다. 시편명상은 그의 서재와 기도실에서 시작하여 평생 그의 가슴의 열정과 삶의 현장에서 다듬어져 마침내 생의 노래로 우리에게 남겨졌습니다.
이번에 편집자는 시편 명상 개정판을 정독하면서 얻은 몇 가지 교훈과 감동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만수 김정준의 경건과 신학은 한국교회의 결산이며 열매라는 것입니다.
숭실학교 재학 중에 학비가 없어서 어느 날 고당 조만식 장로님을 찾아가 취직 부탁을 하였습니다. 고당은 선뜻 당신의 자제를 위한 입주 가정교사로 만수를 채용했습니다. 고당의 자제는 공부를 잘 하여 굳이 가정교사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만수는 고당과 한 집에 살면서 고당의 인품과 넉넉한 사랑을 배웠음은 물론입니다.
훗날 캐나다 유학에서 박사 과정을 계속 하려했으나 후원자 캐나다측의 반대로 조기 귀국을 하였습니다. 몇 년후 함태영 부통령 은퇴 기념 세계일주 수행원으로 수고하였을 때 사례비로 받은 1천불을 종자돈으로 마침내 영국 에딘버러 유학을 갈 수 있었습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사랑과 인품의 덕분에 만수의 신학과 경건이 열매맺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 시편명상에는 한국교회 연합의 과제와 방향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만수는 평양 숭실학교에서 선교사들로부터 학문을 배웠고 캐나다에서 신학을 연마하였습니다. 영국 에딘버러에서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수는 서구신학의 추종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한국교회의 경건과 학문의 전통을 세워갔습니다. 에딘버러 유학 중에 빈 강의실을 찾아 홀로 새벽기도를 하였는데 그 모습에 놀란 학교 직원이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또한 연신 연합신학원장 중에 고신 출신의 제자에게 출신 교단의 안수를 권면한 것에서 좌우를 아우르며 통합과 조화를 모색한 지도자였습니다.

셋째 시편명상에는 한국교회를 향한 미래의 과제도 있습니다.
“의자를 치워라”(95편 강해)에서는 서구신학의 영향으로 한국교회의 경건이 약화되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출하면서 교회의 의자를 치우고 차라리 무릎을 꿇으라고 합니다. 마지막 150편 강해에서는 “찬송따라 삼천리”라는 우리 민족의 복된 미래를 위한 이정표를 제시합니다. 만수의 경건과 민족 사랑은 “하늘에 가득찬 영광의 하나님(9장)” 찬송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그의 유작 찬송 가사는 몇 년 전 토론토 박재훈 목사님의 작곡으로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아무쪼록 시편명상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한국교회에 주어진 미래의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길에서 동반자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2024년 추수감사절을 바라보면서


[만수 김정준 전집(晩穗 金正俊 全集)을 내면서]

안 병 무
(한국 신학 연구소장)

세계의 학계는 사계(斯界)에 공헌한 학자들의 전집(全集)을 간행함으로써 후학들의 관심을 자극하게 한 인물(人物)의 사상과 학문을 깊이 연구하게 한다. 이로써 학사(學史)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마침내 학문의 전통(傳統)을 튼튼히 세워 나간다.
가톨릭 2백년, 개신교 1백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신학계에는 아쉽게도 그런 풍토가 없다. 선진(先進)의 저작들이 전집으로 나온 것은 불과 몇이 되지 않는다.
본연구소는 일찍부터 만수 김정준의 저작집(著作集) 간행을 염원해 왔으면서도 그것을 우리가 내어도 되는지 오래 망설여 왔다. 까닭은 김정준 박사와 더 깊은 인연이 있는 기관들이 우리 말고도 여럿 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 중 어느 기관이 수년 전부터 그 출판을 공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오늘까지 그 일은 이뤄지지 않았고 그래서 마침내 우리 연구소는 출판의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오늘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만수 김정준 전집을 펴내기로 결정했다.
만수 김정준은 우리 나라 구약학계의 원로(元老)일뿐 아니라 우리 신학계(神學界)에 많은 업적을 남기신 분이다. 그는 어떤 교파에 한정되지 않고 한국교계에서 교파나 신학경향을 넘어서서 존중되어 온 인물(人物)이다. 그의 저작을 보면 그가 얼마나 깊이있는 학자이면서도 넓게 세상문제에 관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구약에 관한 그의 연구는 계속 진전되어 현대구약학의 첨단에까지 육박하였다. 그는 과거의 것을 폐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정수를 오늘에 살리고자 했고, 늘 새 것에 접촉하면서도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온건한 지성을 지닌 분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경건을 내세워 젊은 교수들에게서 진부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평가를 단숨에 뒤엎는 너무도 새 것, 참신하고 기발한 글을 세상에 내놓아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구약만에 치중하지 않았다. 아니 그는 학자이기 이전에 '삶'그 자체로부터 모든 것을 시작했다. 그는 〈관(棺)에서 나온 사나이〉라고 불릴 정도로 생사(生死)의 경계를 몇 차례나 넘나들었고, 그러는 동안 ‘생’(生)에 대한 처절한 체험과 심오한 사색을 했기에 그 누구보다도 ‘삶’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의 글 『관에서 나온 사나이』라든지 『삶에 이르는 병』 등의 투병기를 위시해서 그의 수상문은 번뜩이는 기지와 재치, 인생에 대한 깊은 명상을 기록한 것들이 수두룩하다.
그는 일생(一生)을 병마와 싸웠다. 젊은 날에 사경을 헤매는 폐병으로 큰 수술을 받아야 했고 그로 인해 유발되는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그에게는 〈질고(疾苦)〉와 〈신학(神學)하는 일〉이 언제나 둘이 아닌 하나였다. 그러기에 그는 성서 중에서도 시편을 그토록 애송하고 연구를 거듭했다. 그러나 그는 육체의 질병만을 앓은 것이 아니라 세상의 질병에 대해 열화처럼 분노했고 또한 그 병을 함께 앓았다. 그런 분노와 아픔이 아모스서 연구를 낳게 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예언자들을 깊이 흠모하여 그들의 연구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가 〈예언자들을 연구했다〉라기보다는 〈그들을 살았다〉는 말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나는 그의 행동에서 에스겔을 연상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에스겔은 예언을 말 대신 판토마임으로 한 기인(奇人)으로 유명하다. 예루살렘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포위된 예루살렘을 그려 거리에 세워 경고하기도 하고 머리털을 예리한 칼로 깎아 1/3은 불에 태우고 1/3은 난도질 하고 1/3은 바람에 날려 보내면서 이 민족이 본토(本土)에서 짤려 사방으로 흩어져서 수난을 당할 것을 예고하는 등 많은 얘기를 남겨 놓았다.
6·25 직후든가? 그는 난데 없이 〈서울은 시온인가?>라는 글을 써내서 이미 오늘 같이 된 서울을 예고했다. 한때 그가 봉직하던 한신대학이 외부적 교란작전에 말려들어 불신(不信) 풍조가 만연했다. 작은 공동체가 깨지지 않나 하는 불안감이 감도는 어느 날 예배시간에 그는 강단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의자에 가서 앉는 것도 아니고 강대 앞으로 가는 것도 아니라 새로 만든 교기(校旗) 앞으로 갔다. 그리고 무엇인가 호주머니에서 끄집어냈다. 그것은 예리한 면도날이었다. 그는 교기를 펴들고 한가운데를 마치 집도하는 외과(外科) 의사처럼 쭉 잘랐다. 보는 사람들은 초긴장해서 꼼짝할 수 없었다. 그때 그가 입을 열었다. “우리 공동체는 이처럼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함께 치유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치유될 때까지 한 사람 한 사람씩 여기 있는 이 바늘과 실로 한 코씩 기워서 비록 흠이 났으나 함께 원상복귀의 작업을 하십시다.” 그것을 보고 듣는 이들은 모두 부동자세로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명분없이 학생 몇 명을 제명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을 때 교수들은 매일 같이 모여 우울에 잠겨 있었다. 아무리 얘기해 봐도 공론(空論)밖에 될게 없었다. 그런 날이 계속되는 어느 날 그가 낙엽이 가득 붙은 무엇인가를 들고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사람의 모습이었는데 큰 돌 같은 것을 들고 분노에 찬 몸가짐으로 그것을 내던지려는 자세다. 그는 정의를 배반하는 세상에 진노한 하나님의 사자가 이제 큰 돌을 들어 박살을 내려는 어떤 예언자를 만든 것이다. 바로 그게 그때 그의 마음이자 그의 예언이기도 했다. 그때 그가 미소를 먹음었는지 분노에 찬 얼굴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으나 그의 이 장난기 섞인 행동은 보는 사람들에게 주는 강렬한 메시지가 있었다.
또 한 번은 위와 비슷한 상황에서 고민하는 교수들이 힘없는 자신들에 대한 자학, 참회 또는 분노들을 발산할 길을 찾다가 모두 삭발을 하도록 마음을 모았다. 그런데 걱정은 학장인 만수였다. 그가 이에 응할런지? 하여간 이발사를 불러왔다. 그랬는데 그가 먼저 덥석 의자에 앉더니 〈나부터 깎아주시오〉 하지 않는가. 그는 이미 백발이어서 염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었다.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발기가 머리 가운데를 밀고 지나가니 하얀 〈도랑〉이 나고 그 〈귀중한 머리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이래서 그와 온 교수가 순식간에 불승(佛僧)이 된 셈이다. 그런데 이분은 교수들의 머리카락을 모조리 쓸어모으더니 그것을 정갈한 종이에 채곡채곡 쌌다. 그는 그것을 학교 전통의 증거물로 오래오래 보존하자고 했다. 그 머리카락이 오늘 어디 있는지 모르나 이것이 한국의 〈에스겔〉 만수의 또 하나의 편모다.
그가 신학하는 데 기준을 둔 것은 G. Von Rad다. 폰 라트는 전형적인 신사로서 그 문장이 다듬어졌으며 그는 학문을 하는 한편으로 바이올린을 계속했다고 한다. 예술성과 학문이 교합한 셈이다. 만수가 폰 라트를 좋아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하기야 폰 라트의 구약신학을 깨끗하게 집성한 대가였으니까!
그의 학문은 그의 설교와 같은 관계에 있다. 이 말은 그의 학문이 교회와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또한 우리 시대에 대한 증언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말이다. 그의 설교 중에 〈월요일의 하나님〉이 있다. 이런 제목은 그가 아니고는 나올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일요일에만 치중하고 일상생활은 〈무신적〉으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신랄한 비판이기도 하면서 또한 〈흩어지는 교회〉가 아니라 주일예배에만 치중해서 〈모이는 교회〉로 정착해가는 교회에 대한 준엄한 질책이다.
이 전집(全集)에 수록된 글들은 우리의 힘이 미치는 데까지 수집한 것이다. 이 일을 위해 만수의 부인 주재숙 장로가 온 정성을 모아 우리를 도와주었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우리 연구소의 경제사정으로 전집을 한꺼번에 다 펴내지 못하고 몇 번으로 나누어 내는 것이다. 독자들의 호응에 따라서는 더 빨리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지원 있기를 바란다.
이 전집(全集)이 한국교계에 널리 읽혀져서 신학을 심화하고 교파 사이의 담을 낮추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
제1편
푸른 신앙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고
철마다 열매를 맺으리니 (3절).



이 첫째 편 시는 누가 언제 지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시는 시편에 수록된 150편이나 되는 시를 한데 묶은 [시편]이란 책의 서론적인 “서시”(序詩)로 모든 시보다 후대에 제작된 것이 사실이고, 이 시는 또한 어느 한 경건한 사람의 개인 신앙고백이나 그 체험, 그 깨달음에서 기록된 자유시라기보다 시편 전체의 내용 골수를 관통하는 중심 사상을 밝히려는 의도적인 저작을 한 것이 사실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 시에서는 시편이란 책이 그것을 읽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를 암시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제 1편 시는 그 위치보다 그 내용이 중요하다. 많은 문장이 있어서가 아니라 짧은 몇 구절에 구약 신앙 내지 이스라엘 신앙의 전 역사를 한두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고압착(固壓搾)된 진리가 진주처럼 빛난다.
이 시의 전체 구조는 행복이란 두 글자로 시작하여 멸망이란 두 글자로 끝마친다. 사람마다 원하는 두 글자와 사람마다 싫어하는 두 글자가 각각 처음과 마지막에 나왔다는 사실은 이 시 속에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다루어져 있음을 알려준다.
이스라엘 문학은 신을 노래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을 노래하고 있다. 행복만 노래하지 않고 동시에 불행도 노래하고 있다.
사람에게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꼭 마찬가지로 두 가지 길이 앞에 놓여 있다. 행복의 길과 멸망의 길, 사람들이 원하는 길은 전자이지 후자는 아니다. 그러나 실제 인생의 경험은 행복보다 불행을 더 많이 맛보게 된다. 행복을 구하기 위하여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불행해지고 만다. 행복의 봉우리를 향하여 출발했지만, 결국 다다른 곳은 불행의 늪지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된 일이 왜 생길까. 이것은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이 땅 위의 인간들이 겪고 또 겪는 경험이다. 이 모순을 피하고자 철학이 나왔고 문학이 생기고 교훈과 경계의 말, 선교와 강연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가 사는 이 땅 위에는 불행과 행복의 숨바꼭질로 많은 사람이 울고 웃는다.
이스라엘 신앙도 이 문제에 대하여 침묵을 지키지 아니했다. 많은 시들이 이 문제를 취급했지만 이 시편 제 1편이 인생에게 공통된 문제로 되어있는 행복과 불행의 문제를 그의 독특한 신앙에서 취급하고 있다.

이 시는 괴로워하는 영혼의 호소도 아니요 악에 대한 고발이나 분노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감사하거나 그의 영광과 위엄을 찬송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편에서 많이 듣는 기원이나 간구의 내용도 아니다. 이 시는 전체 시편의 서시가 될 만큼 위엄을 가지고 친밀하게 그러나 의미심장하게 남을 가르치고 깨우치는 지혜자로서 교훈을 알리고 있다. “사람이 어떻게 해야만 사람다워질까” 함에 대한 해답을 조용히 풀어 주고 있다.
이 지혜자는 행복과 불행의 열쇠가 율법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생소한 개념이다. “율법”이라는 말은 어떤 종파의 종교적 규약 같아서 이 말 자체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 말이 행과 불행에 관계한다는 얘기는 우리 한국 사람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 얘기이다. 그러나 이 시인의 시대 사람들에게는 이 “율법”이란 말이 통했다. 이것을 우리들의 말로 표현한다면 “율법”은 야웨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믿으며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함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의사를 문자화한 것이다. 우리가 이해하는 “십계명” 같은 것이지만, 십계명은 열 가지라는 수가 한정되어 있지만 “율법”은 수의 제한 없이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할 일과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윤리적으로 해야 할 의무를 여러 가지 각도에서 여러 가지 내용으로 알려준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이란 말은 우리의 성서라는 말과 같이 이해해도 무방하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이 율법이 여러 가지 말로 표시된다. 가령 시편 119편 저자는 율법을 노래한 시를 지었는데 그가 이해한 율법은 “법” “증거” “도” “율례” “계명” “판단” “길” “말씀”등으로 다양하게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한국 사람은 이 “율법”이란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이해해도 시편 기자의 하고자 하는 말의 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 말씀에서 기쁨을 찾고 이것을 자기 연인과 같이 밤낮으로 생각하고 그 말씀을 되새기며 사는 사람, 쉽게 말해서 성경에서 가르치는 진리대로 날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란 뜻이다. 이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아 항상 잎사귀가 푸르르며 때를 따라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일은 하나도 막히지 아니하고 만사가 형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행복한 삶이다. 행복이란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부유와 권력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도 있으나 그 부와 그 권력이 떠나가면 행복의 파랑새도 날아가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시인이 노래하듯 (시 19:10) 금과 같이 귀중하게 여기고 꿀과 같이 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다. 불만이 있을 수 없다. 항상 기쁨이 넘치고 감사가 솟아난다.
그렇지만 이런 하나님 말씀에서 오는 행복을 모르는 사람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시 1:4) 안정되지 못하고 알찬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사람은 악인이 아무리 꾀어도 그 꾀에 넘어갈 수 없고 죄를 짓는 길에서 아무리 영화와 부를 누린다고 해도 그 길로 갈 수 없으며, 자기의 힘과 재간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무리 자기와 같이 자랑스런 인생을 살아가자고 유혹해도 넘어가지 아니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에게 의로운 길을 알려주고 그 길로 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기 때문에 그의 하는 일은 의롭고 선할 수밖에 없다. 이 사람이 곧 “푸른 신앙”을 가진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는 생명수에서 그 인생이 항상 푸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제2편
하나님의 웃음

하늘에 계신 분이 웃으신다.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4절).



하나님이 코메디언인가? 하나님이 어떻게 웃으시는가? 형상도 모양도 없으신 하나님이 웃는다는 말, 이거야 정말 웃기는 일이 아닐까.
“하나님이 성내신다. 진노하신다”는 표현과는 대조가 되는 하나님의 웃음은 기뻐서 웃는 웃음은 아니다. 사람이 해서는 아니 될 어처구니 없는 일을 하기 때문에 그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냉소(冷笑)의 웃음이다. 이러한 냉소의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냉소는 하나님의 진노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진노의 채찍을 들기 전 인간의 하는 일이 못마땅하여 하나님은 조롱의 웃음을 웃으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웃음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시편 2편의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이 시는 이스라엘 왕도(王道)와 관련된 것이다.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의 주권은 어떤 성격의 것이 되어야 함을 알리는 시이다. 그러나 인간이 가지는 권력의 성격만이 아니라 이 시는 치자의 도(道) 즉 왕도를 말하는 것을 방편으로 하여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자신의 주권이 어떤 것이며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알려 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는 지상의 나라를 다스리는 주권자가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하는가 하는 정치론 또는 정책론을 말하지 아니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거느리는 그 사람, 왕과 그의 수하에 있는 관리들이 무엇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이런 시를 “제왕시”라고 궁켈은 명명했지만, 실상 이 “제왕시” (帝王詩)란 말은 적당하지 않다. 이 시의 내용에서 말하자면 “왕도시”(王道詩)라고 함이 우리 한국 사람의 이해에는 더 적절한 것 같다. 왕의 사고, 왕의 관심, 왕이 받을 교훈, 왕의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리려 하는 시이다.
왕은 누구에게서나 “어찌하여 그런 일을 했느냐”는 질문받기를 거절한다. 이것은 이 땅 위에 있는 어떤 종류의 지배자도 어떤 종류의 통치자와 주권자도 다 원하지 않는 일이다. 왕, 또는 통치자는 백성들에게 “왜?”란 질문을 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은 사람들에게서 그런 질문받기를 거절한다. 왕이나 통치자가 하는 말이 곧 법률이 되고 그의 행동이 곧 법적인 것이 된다. 사람들에게서 자기 말이나 행동에 “왜?”를 질문받는 것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이렇게 묻는 자는 반동분자 또는 반체제분자, 반란을 도모한 자로 또는 불순분자로 취급하여 체포하고 감금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한다. 이것은 왕, 또는 어떤 이름의 통치자이든지 자기의 주권을 무시하고 그것을 침해한 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순분자를 처치하는 법조문이 없거나 그 처단의 신속을 기하기 위하여서는 이 통치자들이 임시법 또는 조치법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왕과 그런 통치자는 독재자로 둔갑해 버려 일반 백성에게는 공포의 대상자가 되고 진실한 사람, 양심적인 사람, 의를 추구하는 사람은 무참한 핍박을 받게 된다.
이 시는 이러한 세상 주권자, 통치자들의 교만과 포악, 그리고 자기들의 계획과 모의를 진리인 양 내세우는 그 허구와 불의에 대하여 정당한 비판을 하고 있다. 그것은 이 시인이 참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가 알기 때문이다. 이 시는 “어찌하여”라는 의문 부사를 앞세우고 이 지상 왕들의 하는 일을 따지고 있다. 모든 언어를 발표하기 전 “왜”(lamma)로 시작하는 이 시는 인간의 권위가 아무리 크고 높다 해도 이런 것들을 누르고 압박할 수 있는 육중한 하나님의 권위를 이 의문부사 “왜?”로써 표시하고 있다. 지상의 왕과 그 신하들이 어떤 계획을 했으며 무슨 모의를 했든지 “왜?”라는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해야 함을 알려준다. 하나님의 “왜?”는 인간사를 비판하는 화살이다.
하나님의 질문의 내용은 그들의 정치가 잘못되었다거나 그들의 윤리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도 정의의 하나님으로부터 심문을 받아야 하지만 이것보다도 우선적인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어찌하여 야웨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 도전하고 이것을 자기들의 주권 아래로 격하시킬 계획을 했느냐 함이다. “우리가 그 기반(羈絆)에서 벗어나자” “그 통치에서 벗어나자”는 말로써 야웨의 주권에서 이탈할 것을 이 땅 위에 있는 통치자들이 모의하고 있다고 했다. 이것은 마치 앗수르나 애굽, 바벨론 등 대 제국에 대하여 그 조공 국가들이 반역 행동을 하듯 만왕의 왕, 만주(萬主)의 주이신 하나님의 주권에서 이 지상 왕들이 벗어나고자 하는 공동성명과 행동일치를 꾸미고 있음을 말한다.
이것은 자기들 위에 하나님이 있을 수 없음을 말한다. 이 지상의 권위 위에 군림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야웨 하나님은 멸시와 모독을 당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계와 만물을 만드시고 인간과 그 역사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의 주권이 그의 피조물인 인간으로 인하여 침해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이러한 지상 왕들의 오만 불손에 대하여 하나님은 웃으실 수밖에 없다. 할아버지 수염을 뽑는 것 같은 철없는 짓이지만 이 일은 할아버지 경우와 같이 결코 웃어버리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왕들과 통치자들에게는 순진성이 없고 오직 악의와 거만이 노골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냉소하고 그들에게 대한 진노를 발할 수밖에 없다.
그의 웃음은 변하여 5절에 있는 대로 분노와 진노로 바뀌어졌다. 그들의 무지를 책하고 그들의 교만을 나무람하신다. 그들이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볼 권위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려준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로서 자기의 전권을 위임받은 왕이 계심을 알린다. 신약성서 기자들은 그런 왕을 예수 그리스도로 믿는다고 시인했지만 이 시인은 그런 왕이 역사적으로 누구라는 것은 밝히지 아니한다. 이 시인의 생각은 당시 이스라엘의 어느 왕이라고 믿기보다 장차 오실 메시야를 생각하고 있다. 이 분의 권위 앞에 땅의 모든 왕과 통치자들은 굴복할 것을 요구한다. 철장으로 질그릇 부수듯 이 땅 위의 왕국과 그 왕들을 부술 수 있는 권위를 가지신 분으로 알고 있다. 지상의 왕들은 자기들 권위 위에 이런 무서운 권위가 있음을 깨달으라고 권고한다.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교훈을 받으라”고 경고한다. 이것은 곧 야웨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를 섬기는 일이라 했다(11절). 이 하나님의 권위에 무릎을 꿇고 심지어 “그 발에 입맞추라” (12절)고, 절대적인 복종과 애정을 표시하라고 했다. 만일 이대로 하지 않으면 그 통치자들은 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리하여 이 시인은 “하나님의 웃음”에서 인간의 최고 권위가 몰락되고 패망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의 웃음은 자기를 절대화시키는 모든 것을 거부한다. 자기 위에 더 크고 무서운 권위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자를 미워하신다. 자기가 하는 말이 곧 법이라 하는 자를 물리치신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복을 받는다”는 말로써 이 시를 끝마치고 있다. 이 세상의 왕과 통치자들은 겸손하게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권위 아래 복종시키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신뢰감을 가져야만 한다. 그의 의지하는 바가 자기 군대나 외교력이나 물질적인 부나 훌륭한 참모진의 지혜라 할 때 그는 하나님의 웃음을 살 수밖에 없다. 역사의 해변, 빈 조개껍질 같이 뒹굴며 영원한 하나님의 웃음을 사고 있는 통치자들이 이 땅 위에는 얼마나 많은가.
“주여 저들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주시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통치자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아멘.

제3편
자고 깨고

내가 자리에 들어 자고
또 깨는 일은
오직 야웨
당신이 나를 붙드심이로다(5절).



자고 깨는 일은 평범한 일이다. 누구나 하는 일이기에 별로 신기한 일이 아니다. 자리에 들면 자게 되고 또 자게 되면 깨어나기 마련이다. 이 평범한 일이 시(詩)의 소재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자고 깨고!”하는 일을 결코 평범한 일로 묵살해 버릴 수 없다. 이것을 공동번역처럼 “자나 깨나”로 번역하면 이 시인이 하고자 하는 뜻이 잘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자나 깨나!”는 “날마다”란 뜻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자고 깨고!”라고 하면 “날마다”를 생각하기 전에 “자는 그 순간도 깨는 그 순간도 내게는 의미가 깊다”는 삶에 대한 감격이 들어있다. 다시 말하자면 자는 것도 내가 건강해서가 아니고 깨는 것도 내 육체적 조건이 그렇게 되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의 덕분인가. 여기 이 질문에 이 시인이 자기가 얻은 평범한 사건에서 얻은 감격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인의 감격은 보통 사람은 깨달을 수 없다. 그저 날마다 지켜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하는 심정까지도 상당히 영적 체험을 한 사람의 고백이다. 그러나 밤이 되어 그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할 만큼 자기 생명에 대한 자신이 없다는 것을 실감한 사람, 그리고 그러한 불안의 밤이었지만 하룻밤을 무사히 지나고 또 다시 새 아침을 맞이했을 때 그 감격은 그러한 위험한 순간들, 즉 자기 육체의 생명의 마지막 순간을 의식하면서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이 시인이 말하는 “자고 깨고”의 감격을 금할 수 없다.
내가 폐병 요양소에서 불안한 밤과 낮을 보내고 있었을 때 실제로 같은 환자들이 그렇게 불안한 밤을 맞이하다가 밤에 가버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는 싸늘한 시체로 누워있는 것을 본 나 같은 사람은 “자고 깨고”하는 이 평범한 일이 내게 있어서는 생사를 걸고 싸워야 하는 장엄한 일이었기에 그것을 결코 평범한 어휘 속에 맡겨 두고 싶지 않다. 더욱이 내가 심장병으로 두 번이나 죽었던 1975년의 경험을 회상하면 “자고 깨고”하는 일에도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과 은총이 돌봐주셔야만 내가 자고 깨고 하는 일을 날마다 똑같이 할 수 있다고 느껴보았다.
이 3편의 시인이 어떤 생의 위기에 처해 보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시를 시편 속에 편집한 어떤 사람이 이 시를 다윗이 경험했던 한 위기의 밤과 아침에 연결시키고 있는 것은 이 시를 이해함에 가장 좋은 배경 설명이 되는 것 같다. 사실 다윗은 사무엘하 15장 이하에 있는 대로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황급히 왕궁과 수도 예루살렘에서 피란갔을 때 그는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갔다”고 할 만큼(삼하 15:30) 생명의 위기에 직면했던 것이다. 이렇게 왕궁을 나온 다윗은 그날 밤을 요단강 건너 바후림에서 보냈다. 밤 사이에 추격병이 따라와서 찾았지만 다윗은 그 수난의 밤을 무사히 넘기게 되어 새 아침을 맞이했다.
이런 위험한 순간들이 지나가고 밤을 지나 아침을 맞이한 다윗이 이 3 편과 같은 시를 지을 수 있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비록 정확하게 다윗이 작자라고 할 근거는 없지만 이 시 내용 전체를 보아 다윗이 아니라고 해도 다윗과 같은 위험한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은 사람이 하나님의 도우심과 돌보심을 감사해서 이런 시를 지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궁겔은 이 시를 “탄식시”(歎息詩)라 명명했지만 나는 이런 종류의 시를 차라리 “고난시”라 부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 시 전체에 흐르고 있는 고난의 모습이 너무도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의 고난은 “대적이 많고” 이 시인을 “치는 자”가 많기 때문에 그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 환경은 문자 그대로 위기 투성이다. 그가 보내는 순간들은 모두가 그의 생명을 앗아가기 위해 노리고 있는 순간들임을 알고 있다.
완전히 그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상태에 빠졌다. 6절 말씀대로 그의 주위는 천만 사람의 노리는 창 끝이 번쩍인 것 같다. 그러나 이 시인은 그 위험한 환경과 순간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지켜주고 보호해 주시는 사랑과 능력의 하나님의 손이 있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에 넘치는 것은 위기에 대한 간증이 아니고 그 모든 위기에서도 보호하고 지켜 주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간증으로 차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시의 문학 형태는 “탄식시” 또는 “고난시”라기보다는 “의지의 시”(依支詩)이다.
이 시가 강조하고 있는 사상은 시인의 위기와 불안을 탄식하는 내용보다 생명의 위기가 순간순간 닥쳐오는 그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의 손길이 그의 목숨을 털끝만큼도 해치지 않도록 버티고 지키심에 대한 신뢰감을 강하게 표시하고 있다. 이 의지신앙이 강했기 때문에 그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한다.
“주는 나의 방패, 나의 영광, 나의 머리를 들어주시는 분, 천만 사람이 나를 둘러싸고 치려한다고 해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러한 강한 의지신앙은 그의 위기에서 그를 완전하게 지켜주었다고 생각된다. “내가 자고 깨고 하는 것은 야웨가 나를 붙드심이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 능력의 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면 우리는 어떤 위험한 순간이라도 무사히 보낼 수 있다. 참된 안전은 물량적인 것에서나 군사적인 방비에서 오지 않고 야웨 하나님의 돌보심에서 온다는 이 사상은 이스라엘 신앙 중 가장 자랑스러운 것이다. 이 신앙은 이스라엘의 “고대 거룩한 전쟁” 제도에서 온 것이라고 폰 라트는 말한다. 하나님이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을 위해서 친히 싸워 주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안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이 “거룩한 전쟁”사상에 나타난 의지신앙으로 점철되어 있다. 출애굽 당시 홍해가에서 이 신앙으로 그 위기를 극복했다(출 14:13).
이 3편 시인도 전쟁의 위기에서 자기 목숨이 건짐 받은 것을 회상하는 인상을 준다(특히 1, 6절).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 부동의 신앙으로 무사히 자고 깨는 안전한 축복을 받고 있다.
내가 자고 깨고 하는 이 평범한 사실에서 우리는 나를 지키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간증할 수 있어야 한다.
머리말●김정준 …… 5
개정판 머리말●김영호 …… 7
만수 김정준 전집 서문●안병무 …… 637
시편명상 서평●노순구 …… 643

제1편 푸른 신앙 16
제2편 하나님의 웃음 20
제3편 자고 깨고 24
제4편 주가 주시는기쁨 28
제5편 은혜의 방패 32
제6편 떨리는 영혼 36
제7편 의로우신 재판장 40
제8편 달과 별과 인간 44
제9편 궁핍한 자와 수난 자 48
제10편 악인의 횡포 아래서 52
제11편 야웨가 사랑하는 일 56
제12편 경건한 자의 탄식 60
제13편 어느 때까지니이까 64
제14편 어리석은 자 68
제15편 신앙과 윤리 72
제16편 나의 기업 76
제17편 눈동자처럼 80
제18편 나의 등불 84
제19편 자연과 율법 88
제20편 우리의 깃발을 날리리라 92
제21편 의지하는 축복 96
제22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100
제23편 내 잔이 넘치옵니다 104
제24편 영광의 왕 108
제25편 앙망하는 눈 112
제26편 나를 판단하소서 116
제27편 강하고 담대하라 120
제28편 하나님이 침묵하시면 124
제29편 우렁찬 그 목소리 128
제30편 용궁에서 나온 자 132
제31편 내 영혼을 당신 손에 136
제32편 가장 큰 축복 140
제33편 이상적인 나라 144
제34편 두려움에서 두려움으로 148
제35편 내 품으로 돌아온 기도 152
제36편 당신의 날개 그늘 156
제37편 성실을 먹고 살라 160
제38편 죄와 벌 164
제39편 손뼘만한 생명 168
제40편 은총무한 172
제41편 앓는 자의 친구 177
제42편 하나님께 목이 말라 181
제43편 오히려 찬송 185
제44편 날마다, 날마다, 날마다 189
제45편 정의의 왕 193
제46편 우리의 피난처 197
제47편 통기타를 쳐라 201
제48편 시온의 찬가 205
제49편 죽고야 마는 짐승 같다 209
제50편 내가 어디 너와 같으냐? 213
제51편 정한 마음 창조 217
제52편 푸른 감람나무 221
제53편 14편을 보라
제54편 나를 도우시는 분 225
제55편 비둘기처럼 날개를 229
제56편 내 눈물의 병(甁) 233
제57편 새벽을 흔들어 깨운다 237
제58편 달팽이와 가시나무 241
제59편 사랑의 하나님 245
제60편 진리의 깃발 249
제61편 높은 바위에 253
제62편 권력과 사랑 257
제63편 영혼의 연애 편지 261
제64편 하나님의 화살 265
제65편 고랑과 이랑에 269
제66편 땅과 만민 273
제67편 찬송과 복과 경외 277
제68편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신다 281
제69편 황소보다 노래를 285
제70편 신앙의 조롱자 289
제71편 백발이 성성해도 293
제72편 단비와 소나기처럼 297
제73편 하늘과 땅에서 오직 당신만이 301
제74편 산비둘기와 들짐승 305
제75편 뿔과 뿔 309
제76편 잠자는 병거와 말 313
제77편 밤의 노래 317
제78편 속이는 활 321
제79편 주의 이름 325
제80편 포도나무의 기도 329
제81편 입을 크게 벌려라 333
제82편 하나님과 신들의 대화 337
제83편 검불과 지푸라기와 불꽃 341
제84편 참새와 제비 345
제85편 정의와 평화의 키스 349
제86편 내 영혼이 우러러본다 353
제87편 에큐메니즘의 선구자 357
제88편 숨으신 하나님 361
제89편 사랑과 진실 366
제90편 인생과 풀과 꽃 370
제91편 사자와 독사 375
제92편 싱싱한 종려나무 379
제93편 야웨 만세, 만세,만세 384
제94편 당신의 위로 388
제95편 의자를 치우라 392
제96편 만물의 찬양 396
제97편 사랑과 미움 400
제98편 하나님의 손과 팔 404
제99편 그는 거룩하시다 408
제100편 예배의 원형 412
제101편 다스리는 자의 윤리 417
제102편 나의 괴로운 날에 421
제103편 네 젊음을 독수리 같이 425
제104편 아름다운 묵상 429
제105편 그 이름을 자랑하라 433
제106편 우리는 빗나갔고 437
제107편 고난의 현장에서 441
제108편 용기의 출처 445
제109편 배신당한 사랑 449
제110편 청년은 새벽 이슬 453
제111편 할렐루야(I) 457
제112편 할렐루야(II) 461
제113편 공평하신 하나님 465
제114편 춤추는 산들 470
제115편 복받는 인생 475
제116편 믿으니까 말한다 479
제117편 만민의 하나님 483
제118편 내가 산 이유 487
제119편 내 발의 등불 492
제120편 평화의 사도 497
제121편 산을 보는 눈 501
제122편 예루살렘 찬양 506
제123편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510
제124편 야웨가 내 편이시다 514
제125편 의지하는 심령 518
제126편 울며 씨를 뿌린다 522
제127편 역사의 주인 526
제128편 아내와 자식 530
제129편 지붕의 풀 534
제130편 깊은 곳에서 538
제131편 영혼의 고요 543
제132편 시온의 영광 548
제133편 수염과 이슬 552
제134편 예배 찬송 557
제135편 찬양받으실 하나님 562
제136편 감사의 노래 567
제137번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다 573
제138편 높이 계신 분과 천한 사람 578
제139편 내 앉고 일어섬을 아신다 582
제140편 고난 당한 자의 한을 587
제141편 기도는 분향이다 592
제142편 그들은 나보다 강합니다 596
제143편 기억과 묵상과 생각 600
제144편 우리나라 만세 604
제145편 주의 나라 609
제146편 영원한 통치 614
제147편 찬송할 이유 619
제148편 만물의 찬양 624
제149편 짓눌린 자의 영광 629
제150편 찬송 따라 삼천리 633
김정준
·평양 숭실 중학교, 숭실 전문학교
·서울 연희전문학교 영문과 수료
·캐나다 임마누엘 신학사
·캐나다 토론토 신학대학원 신학석사
·영국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신학박사
·한국신학대학 학장(6, 8대)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초대 원장
·전국신학대학협의회 창설, 초대 회장
·대한성서공회 구약 새번역위원회 위원장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대구 자인교회, 김천 황금동교회, 서울 성남교회 목회

역서와 저서
<나의투병기> <어거스틴 고백록>
<그리스도를 본받아> (토마스 아 켐피스)
<일곱 가지 죄> (빌리 그래함)
<만수 김정준 전집(전 8권)> 외 다수
시리즈 소개 | 세트 | 세트낱권구성
김정준,시드니 그레이다누스,이병용,존 골딩게이 / 갓피플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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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시편명상
저자김정준
출판사아침향기
크기(155*233)mm 양장
쪽수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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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202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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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김정준) 신간 메일링   출판사(아침향기) 신간 메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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