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열 처녀 비유(4)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0 ̄13).
1. 누가 준비되었는가
모두가 다 준비된 것은 아닙니다. 이 비유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모든 사람이 다 준비된 것은 아님을 보여 줍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준비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옷도 차려입었고, 등과 심지와 불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들은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보이는 모두가 다 준비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중에 많은 사람이 하나님 집에 나오고, 주님의 식탁에 앉고, 여러분의 영혼을 걱정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걱정을 한다고 해서 다 준비된 것은 아닙니다. 미련한 처녀들도 지금 걱정이 났습니다. 마음이 조마조마해 기름을 사러 갔고, 크고 쓰라리게 외쳤습니다. 아마 쓰라린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들은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중에 많은 사람이 걱정하며 기름을 사러 갑니다. 눈물을 흘리며 주님을 찾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오늘밤 여러분이 죽는다면, 오늘밤 그리스도가 오신다면, 여러분이 준비되지 않았음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준비된 사람입니까?
1) 예복을 입은 사람들. 여러분은 이것을 요한계시록 19장 7 ̄8절에서 봅니다.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8 또 시편 45편 9절과 13절에서 봅니다. “왕이 가까이 하는 여인들 중에는 왕들의 딸이 있으며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꾸미고 왕의 오른쪽에 서도다…왕의 딸은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 그의 옷은 금으로 수 놓았도다.” 그리고 마태복음 22장 11절에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왕의 눈에 먼저 띈 것을 봅니다. 이 예복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영혼을 덮는 예수님의 옷자락, 곧 전가된 의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신랑을 맞을 준비의 첫 부분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얼마나 가증스러운지, 여러분이 다 부정한 자 같고, 다 비천하고 더럽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까? 여러분은 영광스럽게 나타난 의의 길, 곧 그리스도가 하신 일이 우리에게 전가되는 의의 길을 찾으셨나요? 주 예수의 피와 흰옷 아래 누우셨
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준비된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① 이 전가된 의를 아는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의를 입은 적이 없어 터럭만큼도 더 나아지지 않은 많은 사람이 이 의에 대해 상당히 많이 듣고, 상당히 많이 압니다. 하지만 지식은 여러분을 정죄할 뿐이며, 더 깊이 가라앉힐 뿐입니다. ② 이 의를 갖고 싶다는 바람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게으른 사람은 원해도 얻지 못합니다(잠 13:4).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원하지만, 이들의 게으른 소원은 결코 만족되지 않습니다. 이들은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거지처럼, 아무리 원해도 더 나아지지 않습니다. ③ 일단은 이 의를 건네받고, 나중에는 다른 것을 갖는다는 말도 아닙니다. ④ 우리는 이 세마포 옷을 영원히 허락받아야 합니다(계 19:8). 처음에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이고, 그 뒤로는 우리 자신의 거룩함이 우
리의 의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의는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하늘에서 우리의 예복은 그리스도의 피로 씻은 옷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순간마다 이 옷이 우리에게 허락되게 해야 합니다. 복된 영혼은 날마다 자신의 비천함을 보고, 날마다 이 예복을 받아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가리는 영혼입니다.
2) 마음이 새로워진 사람들. 뜻을 하나로 모으지 못한 두 사람이 함께 갈 수 있습니까? 서로 반대되는 것을 좋아하는 두 영혼이 함께 기뻐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함께 멍에를 맨 수소 두 마리가 서로 다른 길로 가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세상과 결혼하지 말라고 하신 명령의 깊은 지혜가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귈까요(고후 6:14)?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신부도 그리스도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려면, 그리스도와 한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은 채로 그리스도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도록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적대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을 싫어하고, 안식일을 지겨워하고, 온갖 정욕과 쾌락을 섬깁니다.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여러분을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여러분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입니다(계 7:17).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과 어린양을 싫어합니다. 거기서 여러분은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는 하나님의 자녀나 친구(여러분이 입버릇처럼 시편을 노래하는 위선자라고 하는)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들과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영원한 안식! 제가 천국에 대해 으뜸으로 생각하는 점은 거기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안식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안식을 즐길 수 있겠습니까? 아, 친구 여러분, 속된 사람과 거짓말을 좋아하고 지어 내는 사람은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계 21:27; 22:15). 여러분이 아직 거듭나지 않았다면,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입니다.
3) 등을 손질한 사람들. 슬기로운 처녀들도 잠든 동안에는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들은 예복을 입었고, 그릇에 기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등은 흐릿했고, 이들의 눈은 감겼습니다. 하지만 신랑이 온다는 소리가 들리자, 이들은 일어나 등을 손질했고(7절, 새번역), 이제 신랑을 만나 신랑과 함께 들어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가 다 준비된 것은 아닙니다. ① 배역자는 준비되었나요? 이들은 영혼에 새로운 죄책을 쌓고서 씻음 받지
못했고, 여전히 죄책 아래 있지만 서둘러 샘으로 가지 않고, 하나님의 집을 등지고 우상을 보고 서 있습니다. ② 우상 숭배자는 준비되었나요? 이들은 한때 그리스도를 사랑했지만, 이제 불법한 감정에 사로잡혀 그리스도 대신 우상을 사랑합니다. ③ 그 첫사랑을 떠난 영혼, 하나님의 일에 냉담해진 영혼은 준비되었나요? ④ 솔로몬이 마음으로 여러 아내를 따르고,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할 때, 이들은 준비되었나요?
아,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여러분 안에 있는 은혜를 불일듯하게 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여러분이 준비되려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불일듯하게 하고, 예수님과 성도들을 향한 사랑을 불일듯하게 하십시오. 깨어 있으십시오! 하나님의 일들 가운데 사십시오. 다가올 영광에 눈을 떼지 마십시오.
2. 준비된 자들이 받을 상급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10절)
1) 그리스도께서 이들을 인정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이들을 자기 아버지께 데려가 ‘보소서, 나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니이다. 내가 이들을 위해 죽고, 기도하고, 다스렸나이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지금은 자기 백성을 드러내 놓고 인정하지 않으시고, 자기 백성과 위선자를 구분하지 않으십니다. ① 그래서 세상이 이들을 모릅니다. 해가 악인과 선인에게 똑같이 비칩니다(마 5:45).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자신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② 성도들도 우리를 모릅니다. 이들은 자꾸 우리를 의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서로를 자꾸 부당하게 의심합니다. 이들에게는 이런저런 체험이 없고, 하나님의 자녀 된 이런저런 표지가 없습니다. ③ 우리도 자주 우리 자신을 모릅니다. 마음속에서 부패의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죄에 빠지고, 영혼에 은혜가 모자랄 때, 우리 자신을 자녀로 생각할 수 있습니까? 하지만 그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인정하실 것입니다. 모든 의심에 영원토록 마침표를 찍으실 것입니다. 그때 비웃던 세상도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신 줄 알 것이고, 우리와 운명을 함께해야 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성도들도 우리가 자신들과 같이 그리스도의 것인 줄 알 것이고, 더는 우리를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더는 우리 자신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안에 더는 죽음과 모순과 부패와 어둠과 죄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자기 아버지 앞에서 우리 이름을 고백하실 것이고,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마 25:34)고 하실 것입니다.
2)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이 세상에서 믿는 사람의 가장 큰 기쁨은 그리스도의 임재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이것은 실제입니다. 보이지 않는 구주가 실제로 와 계시는 것입니다. 무엇이 은밀한 기도를 달콤하게 하고, 설교와 성례를 달콤하게 합니까? 우리가 그 안에서 예수님을 만날 때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 16:8). 그런데 예수님은 자주 얼굴을 숨기시고, 우리는 불안해합니다. 우리는 우리 영혼이 사랑하는 분을 찾지만, 그분은 자취를 감추십니다. 우리가 일어나 찾아도, 찾지 못합니다. 보이지 않는 구주를 더듬어 찾는 것은 기껏해야 반쪽짜리 복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두고 바다 건너 멀리 떠났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편지나 사랑의 증표를 가지고 있거나, 남편을 잘 떠나보낸 친구를 보는 것은 달콤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의 부재를 슬퍼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실때 우리는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우리는 이 땅에서 자그마하고 어슴푸레한 기쁨을 맛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없이 행복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엡 1:23). 하나님의 자녀 하나가 모자라면, 그분은 온전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 17:24).
우리는 그리스도 없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황금길과 천국문으로 데려가 보십시오. 노래와 보좌와 종려나무와 천사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 보십시오(계 7:9  ̄12) .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신인God ̄man은 어디 계시지? 나를 모든 악에서 구속하신 사자는 어디 계실까? 예수님은 어디 계시지? 찔린 옆구리는 어디 있을까?’ 우리는 그분의 얼굴을 볼 것입니다(계 22:4). 어린양은 그 등불이십니다(계 21:23). 우리는 어린양과 함께 시온 산에 설 것이고, 더는 헤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3. 위선자들의 운명
1) “문은 닫힌지라 ”(10절). 그리스도의 문은 오랫동안 활짝 열려 있지만, 끝내 닫히고 맙니다. 그리스도가 오실 때, 닫힐 것입니다. 지금은 문이 열려 있고, 우리는 여러분을 초대하라고 보내심을 받습니다. 그러나 문은 곧 닫힐 테고, 여러분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노아 홍수 때도 그랬습니다. 120년 동안 방주 문이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노아는 나가서 두루 전파하며, 사람들을 들어오라고 초대했습니다. 성령님이 사람들과 다투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가올 홍수를 비웃을 뿐이었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방주로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셨습니다. 문이 닫혔습니다. 홍수가 왔고, 사람들을 싹 휩쓸어 갔습니다. 여기 있는 많은 사람도 그럴 것입니다. 지금은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9)고 하십니다. 내가 문이었다거나 문일 것이라고 하지 않고, 문이라고 하십니다. 지금은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곧 도둑같이, 올무같이, 아이를 밴 여자의 진통같이 오실 것이고, 여러분은 헤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십시오(마 7:13).
2) 위선자들은 그날 기도할 것입니다.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1절). 이들은 지금 기도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간절히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형식에 따라 차갑고 따분하게 기도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날에는 정말 간절히 부르짖을 것입니다. 지금은 여러분 중에 많은 사람이 자기 영혼에 진지해 보이는 것, 곧 눈물을 흘린다거나 기도한다거나 목사를 찾아가는 것을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에는 부끄러움이 죄다 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을 것이고, 몹시 괴로워하며 그리스도의 문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중에 있는 많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그리스도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는 목자이십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문 앞에 서서 두드리십니다. 서서 외치십니다.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잠 8:4). “돌이키고 돌이키라”(겔 33:11). ‘죄인아, 죄인아, 문을 열라.’
그날은 정반대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주를 찾을 것입니다. 그러나 찾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문 앞에 서서 두드리고, 힘껏 소리 높여 외칠 것입니다. “주여 주여 나에게 열어 주소서.” 이것이 바로 그날 이 교구에서 펼쳐질 광경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 곧 아무 생각 없이 죄 가운데 사는 하얗게 머리 센 노인들, 쾌락에 미친 젊은이들, 그리스도 없이 사는 아이들, 그날에는 이들 모두가 진지해질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 중에 기도하지 않거나, 형식으로 차갑고 따분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을 꾸짖을 수 없을까요? 그날 여러분은 기도할 것입니다. 아,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그 걱정을 앞당겨 지금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3) 절망: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12절). 그리스도는 ‘내가 저들을 아노라’며, 자기 백성을 인정하실 것입니다. 불쌍하고 멸시받는 신자를 인정하실 것입니다. 세상이 이들을 몰랐다 해도, 그리스도께서 인정하실 것입니다. 그날 한 사람도 지나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등에 기름이 없는 미련한 처녀들은 아닙니다. 이들은 인정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아, 그리스도께서 자기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인정하지 않으신다니,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일까요!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13절). 여러분, 마음속에 참된 은혜가 있는지 보십시오.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의인지, 여러분의 영혼이 살아 있는지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