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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정말 인종청소를 명하셨는가?   하나님과 대량 학살에 관한 여러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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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역자 : 찰리 트림/노동래  |  출판사 : 새물결플러스
발행일 : 2024-03-04  |  (149*220)mm 176p  |  979-11-6129-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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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모세의 지도하에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후 마침내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그곳 주민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나타난 하나님의 폭력 문제를 다룬다. 먼저 고대 근동에서의 전쟁, 대량 학살의 역사와 정의, 가나안 족속의 역사와 정체성 등 배경을 다루고 이어서 구약성경에 기록된 가나안 족속의 진멸에 관한 기사를 평가하는 네 가지 관점을 제시하고 그 관점들을 평가하는 이 책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폭력 문제로 인해 난처해하는 그리스도인이나 성경과 기독교에 반감을 보이는 사람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출판사 서평]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시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구절을 읽으며 “아멘”으로 화답한다. 하지만 성경의 곳곳에서 하나님이 정말 사랑의 신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장면을 만나면 당황스럽다. 예를 들어 늙어서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셔서 태어난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이나 인간의 사악함으로 인해 홍수를 일으켜 노아와 그의 방주에 탄 소수의 동물을 제외하고 인간들뿐만 아니라 온 땅의 동물을 전멸시키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함이었고 노아의 홍수는 극악무도한 죄에 대한 처벌이었다고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여호수아 시대에 가나안 족속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들은 진멸되어도 마땅할 만큼 다른 민족들보다 훨씬 사악했는가?
이 곤란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저자는 가나안 족속의 진멸 명령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고대 근동의 전쟁과 대량 학살 및 “헤렘”, 그리고 가나안 족속에 관한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이 주제들을 자세히 다룬다. 그러고 나서 이 문제에 접근하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각각의 접근법에 대해 평가한다.
1. 하나님을 재평가하기(4장): 하나님은 선하시지 않다.
2. 구약성경을 재평가하기(5장): 구약성경은 충실한 기록이 아니다.
3. 구약성경의 해석을 재평가하기(6장): 구약성경은 대량 학살과 비슷한 사건을 묘사하지 않는다.
4. 구약성경에 기록된 폭력을 재평가하기: 구약성경에 기록된 가나안 족속의 대규모 살해는 역사에서 그때에만 허용되었다.
하나님은 선하지 않으며 따를 가치가 없다는 첫 번째 견해는 특히 리처드 도킨스 등 신무신론자들의 주장으로서 이 견해는 신을 완전히 거부함으로써 신적 폭력의 문제를 명확하게 해결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성경과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이 견해를 채택할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 견해에서는 가나안 정복 전쟁 때 대량 학살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후대에 대량 학살이 일어난 것처럼 지어냈다거나, 대량 학살이 악하므로 설령 그 기록이 성경에 등장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거부해야 한다거나,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의 군사력을 약화시키라는 명령만 내리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을 오해해서 지나치게 행동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요컨대 두 번째 견해를 옹호하는 학자들은 구약성경의 내러티브들을 문자적으로 읽고 그 내러티브들이 대량 학살에 대한 묘사를 포함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지만, 구약성경에 역사적 오류나 윤리적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 견해에서는 성경의 무오류성 교리가 약화된다.
세 번째 견해에서는 그 텍스트들에 기록된 사건들이 대량 학살이 아니라고 주장함으로써 그 텍스트들의 폭력성을 완화하려고 한다. 이 견해에서는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는 명령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일곱 가지 악을 몰아내라는 명령이라거나 “헤렘”은 하나님 사랑의 반대쪽 측면이라거나, 가나안 족속의 물리적 진멸이 아니라 정체성 제거라거나, 실상은 소규모 살상과 파괴만 일어났는데 대규모 살상이 있었던 것처럼 과장되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네 번째 견해에서는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이 다양한 이유로 정당화된다고 본다. 이 입장을 취하는 학자들은 그런 문제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신비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의 길을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가나인 족속이 사악했다거나,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할 신성한 땅이기에 그곳에서 악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이스라엘 백성도 그들의 사악함으로 말미암아 북왕국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게, 남왕국 유다는 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이 책의 저자는 첫 번째 견해는 명백히 거부하지만, 다른 세 가지 입장 중 어느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각각의 입장이 지닌 장단점을 공정하게 제시하시하면서, 각각의 입장이 어떻게 성호보완되어야 할지 그 과제를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하지만 이 책은 성경에 기록된, 가나안 족속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시는 하나님과 그 명령에 순응해 가나안 족속을 멸망시키는 이스라엘의 폭력이 현대인의 가치와 사고방식에 큰 걸림돌이 되며,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문제로 고민하고 많은 비그리스도인이 이 문제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 문제를 정직하고 진지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특별히 이 주제에 관련한 방대한 논의의 지형들을 짧은 시간 안에 개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확실한 장점을 갖는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폭력성 문제로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에서 나의 목표는 가나안 족속의 멸망이라는 윤리적 문제에 대한 “올바른 대답”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대신 나는 당신이 그 문제의 좀 더 완전한 그림을 보도록 도와주고, 당신과 함께 제안된 다양한 해법들을 살펴보며, 그것들의 장점과 약점을 강조하기를 원한다. 켈리의 제안을 따라 나는 당신에게 도덕적 회복 과정의 일환으로서의 대화를 소개하기를 참으로 원한다. 나는 이 책이 공동체들이 이 중요한 대화를 계속하기 위해 모이기 위한 도약판 역할을 하기를 소망한다.
_서론

아시리아인들은 종종 적의 지도자들을 말뚝에 매달아 처형했다.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은 일단의 반역자들에게 자기 아버지의 뼈들을 부수도록 강요했는데, 그 사실이 그의 부조들 중 하나에 예시되었을 수도 있다. 이 고문 배후의 목적은 다른 나라들에 반역하면 그들의 운명도 마찬가지일 터이니 반역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2장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적을 근절하는 일은 드물었다.
정복의 정치적 결과는 다양했다. 때로는 지속적인 정치적 함의는 없이 단순히 약탈이나 보복을 위해 공격했다. 그러나 좀 더 강한 나라가 그들이 정복한 영토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때도 있었다. 첫 번째 단계는 정복당한 왕에게 종주-봉신 관계에 들어오도록 강제하는 것이었다. 이 관계에서 종주(정복한 왕)는 봉신(정복당한 왕)을 보호할 것을 약속하고 봉신은 공물을 바칠 것을 약속했다. 봉신이 배신할 경우 다음 단계는 종주의 요구를 좀 더 고분고분하게 따를 다른 왕으로 교체하는 것이었다. 어떤 지역이 계속 반역할 경우 그 지역은 제국의 한 지방(province)으로서 종주의 직접적인 감독하에 놓일 수도 있었다.
요컨대 고대 근동의 왕들이 전쟁 이야기들을 꾸며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은 확실히 그 사건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경시하고 자기와 자기의 신들을 찬미하는 측면들을 강조하는 수사학적 윤색을 통해 설명했으며, 그들이 이룬 승리의 정도에 관해 과장법을 사용했다.
_1장 고대 근동에서의 전쟁

유대인 대학살이 유일한 대량 학살이었던 것은 아니다. 대량 학살은 널리 두 범주로 나뉠 수 있다. 첫째, 식민지의 대량 학살에서 침략자들이 다른 곳에 가 그곳 사람들을 멸절시키고 흔히 그들의 땅을 빼앗았다. 그런 예로는 스페인의 신세계 정복과 1567-1598년 일본의 조선(현재의 대한민국) 침략, 1165-1603년 영국의 아일랜드 정복, 영국의 북아메리카와 호주 식민지화 등이 있다. 특히 중요한 식민지의 대량 학살은 1904년에 일어난 독일의 남서 아프리카 헤레로 부족 학살이었는데, 그것은 유대인 대학살 때의 독일의 관행에 대한 선례를 제공했다.
북아메리카의 식민지화에서는 질병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주된 사망 원인이었다. 때로는 유럽인들에 의해 아메리카 원주민들 사이에 의도적으로 질병이 퍼트려졌기 때문에 그것은 전적으로 우연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죽음들은 그들의 거주 지역의 파괴와 그들의 전통적인 고향으로부터의 추방에 기인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건은 미국 정부가 체로키족 등을 미국의 남동부에서 다른 곳으로 강제로 이주시킨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었는데, 그때 이주당한 원주민의 1/3이 이동 중에 죽었다. 마지막으로, 아메리카 원주민을 근절하다시피 한 학살이 드물지 않았다. 1864년에 일어난 샌드 크리크 학살은 특별히 잔인했던 것으로 유명한데 그때 대다수가 여성과 아동이었던 샤이엔족과 아라파호족 수백 명이 살해당하거나 수족을 절단당했다.
대량 학살의 두 번째 범주는 내부의 대량 학살이다. 이 범주의 대량 학살의 양상은 좀 더 강력한 그룹이 자기들의 내부에서 덜 강한 그룹을 대대적으로 죽이는 것이다. 이러한 학살의 유명한 예로는 제1차 세계대전 때 튀르키예가 약 1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과 다른 그리스도인들 - 아시리아인들과 그리스인들 - 을 학살한 사례가 있다.
제안된 많은 정의는 대략 좀 더 엄격한 정의와 좀 더 느슨한 정의의 연속선(spectrum)에 위치할 수 있으며, 정의의 목적과 부분적으로 관계가 있다. 좀 더 제한적인 정의들은 대규모 살해에 초점을 맞추며, 흔히 누군가를 대량 학살 혐의로 기소할 목적의 법률적인 맥락에서 사용된다. 제한을 덜 두는 정의들은 다양한 사건을 비교하기를 원하는 학자들에 의해 사용된다. 그들에게는 대규모 살해보다 좀 더 많은 사건이 포함되어야 좀 더 안전한 학문적 관찰을 위한 대규모 데이터베이스와 향후 대량 학살을 방지하기 위한 더 큰 통찰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 문화적 항목들의 파괴 - 예컨대 도서관 폭파 - 가 “문화적 대량 학살”로 불려야 하는지에 관한 논쟁은 그 연속선의 양쪽 극단 사이의 대조에 대한 한 가지 예다. 좀 더 제한적인 정의들은 그런 사건들을 대량 학살 논의에서 제외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좀 더 넓은 정의들은 그런 사건들을 포함할 것이다.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전쟁에서의 잔학 행위는 확실히 고대 근동 전쟁의 일부였는데, 이로 말미암아 그 사건들을 대량 학살이라고 부르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적의 진멸과 민간인 살해는 드물었다. 이는 표준적인 전쟁 관행이 아니었다. 구약성경 외에 알려진 소수의 사례에는 마리 문서(Mari letters)에 기록된 야일라눔 부족의 살해, 히타이트가 정복한 도시들을 폭풍 신에게 바친 사건, 메사 석비에 기록된 모압의 이스라엘인 살해, 아시리아 왕 아슈르나시르팔의 텔라 부족 살해, 센나케리브 치하의 아시리아인들의 바빌론 성 파괴가 포함된다.
히타이트가 빼앗은 도시들을 봉헌한 사건(사실 사람은 아무도 살해당하지 않았다)은 문화적 대량 학살을 포함하는 좀 더 넓은 정의에만 들어맞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건들 - 메사, 야일라눔 부족, 아슈르나시르팔, 센나케리브와 연결된 사건들 - 은 표준적인 정의에 따른 대량 학살로 여겨질 수 있다. 아시리아 제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고대 때 집단들은 다르게 생각되었기 때문에, 이런 명백한 중첩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들을 대량 학살과 동일시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아시리아인들은 확실히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죽였지만, 그들이 그 사람들이 다른 집단에 속했기 때문에 죽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아시리아 왕들은 종종 피정복민들을 아시리아인으로 편입한 것에 대해 말했다.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는 비트-산기부티의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그들을 아시리아의 주민들로 간주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시리아인들이 다른 집단들의 정체성을 파괴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종교 행위로서의 아슈르 신 예배를 확산시키는 것이나 다른 신들에 대한 숭배를 근절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아시리아 왕들은 아시리아 밖에 있던 다른 신들의 제의 중심지들을 수리했고, 이 신전들에서 아시리아의 신에게 드리는 것이 아닌 제의에 (대개 대리인을 통해) 아시리아 왕이 참여하는 것을 허용했으며, 이를 통해 이 외국인들의 집단 정체성을 계속 유지하는 것을 장려했다.
_2장 대량 학살

이 경계들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가나안 족속들은 서쪽으로는 지중해와 동쪽으로는 요르단 지구(Jordan Rift, 갈릴리 바다와 사해를 포함한다) 사이의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집단이었다. 남쪽 경계는 사막 지역이었고 북쪽 경계는 현대의 레바논의 많은 부분을 포함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땅이 가나안으로 알려지기 전에 이집트인들은 그것을 자주 “레테누”라고 부른 반면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유프라테스강 서쪽 지
역 전부를 “아무루”라고 불렀다. “가나안”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15세기 경 이드리미(Idrimi)라는 왕의 석상에서 발견된 비명 등 기원전 제2 천년기 중반 무렵의 텍스트들에서 비로소 발견되기 시작했다. 가나안 북쪽의 지중해 해안에 있던 도시인 우가리트 사람들은 그 용어를 외국인 상인들을 묘사하는 데 사용해서 자기들을 그들과 구분했다. 따라서 우가리트의 자료를 가나안 족속들의 신앙과 관행의 원천으로
삼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
기원전 제3 천년기에 가나안은 무역을 통해 이집트와 연결되었으며, 때때로 좀 더 강력한 남쪽 이웃에게 침략당했다. 기원전 제2 천년기 초에 가나안은 강력한 도시 국가에 의해 통치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집트의 영향을 점점 더 많이 받게 되었다. 이집트 제2 중간기(기원전 1650-1560년) 동안 일시적으로 이집트를 통치했던 힉소스인들이 가나안 출신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왕국의 왕들, 특히 투트모
세 3세(기원전 1479-25년)의 부상(浮上)으로 가나안은 점차 이집트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1200년 이후 이집트가 약해지면서 가나안 땅은 이집트로부터 좀 더 높은 수준의 독립을 회복했다. 그러나 이 무렵에는 이스라엘 족속, 모압 족속, 암몬 족속 같은 다른 집단의 힘이 강해졌고 궁극적으로 가나안 족속들은 사라졌다.
구약성경에 따르면 가나안 족속들은 함의 아들이자 노아의 손자인 가나안의 후손이었다(창 10:6). 그러나 노아와 포도원과 노아의 아들 함의 지저분한 이야기에서 함이 한 역할 때문에 가나안이 이 족보에 등장하기도 전에 그가 강조된다(창 9:20-27). 이 이야기는 다양한 이유로, 특히 함이 무슨 일을 했기에 노아의 저주를 받았는지를 알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모호하다. 전통적인 해석은 함의 죄가 관음증이었다 - 그는 단순히 자기 아버지가 벌거벗은 것을 보았다 - 고 생각했지만 최근의 많은 해석자는 노아가 “그의 막내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창 9:24, 개역개정을 사용하지 아니함)라는 언급을 토대로 함의 죄가 좀 더 심각한 것이었다고 본다. 더욱이 어떤 사람의 “벌거벗은 것을 드러내다”(개역개정에서는 “하체를 보고”로 번역되었음)라는 표현은 자주 성교를 함의했다. 가장 현저한 고려사항으로서, 그 비행들이 이집트와 가나안 민족들의 비행이라고 묘사되는 레위기 18장의 성 윤리에 관한 장에서 자주 이 어구가 자주 반복된다. 이집트 역시 함의 후손이며 이집트 민족은 때때로 함이라고 언급된다(시 78:51; 105:23). 이런 힌트들에 기초해서 이제 많은 학자가 그 이야기를 노아나 노아의 아내에 대한 성폭행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 해석도 여전히 노아가 왜 함이 아니라 가나안을 저주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창 9:25). 몇 가지 가능한 근거로는 함이 이미 복을 받았기 때문에(창 9:1) 함을 저주할 수 없다거나 함이 자기 아버지와의 관계를 깨뜨렸기 때문에 그것에 상응하여 함과 가나안의 부자 관계를 깨뜨린 것이라는 설명이 포함된다. 몇몇 비평학자는 그 이야기 전체를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을 압제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후대에 꾸며낸 것으로 본다. 한층 더 충격적인 가능성은 위에 인용된 “그의 막내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이라는 언급에 근거한다. 함은 언제나 노아의 둘째 아들로 언급되고 막내아들로 언급되지 않는다”(창 5:32; 6:10; 7:13; 9:18; 10:1; 대상 1:4). 그러나 가나안은 함의 막내아들로 열거되는데(창 10:6; 대상 1:8), 아마도 이 점은 가나안이 실제로 성폭행을 저지른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가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암시할 것이다. 혹자가 이 해석을 따르든 전통적인 이해를 따르든 간에 구약성경에서 가나안은 처음부터 낮게 평가된다.
_3장 가나안 족속들

우리는 여러모로 가장 간단한 해법, 즉 하나님이 선하시고 따를 가치가 있으시다는 믿음을 거부하는 견해부터 시작할 것이다. 이는 새로운 경로가 아니고, 종족 전부를 죽이라고 명령한 모세와 다른 쪽 뺨도 돌려대라고 하신 예수의 명령 사이의 모순을 강조했던 기원후 2세기의 켈소스(Celsus) 때부터 존재해왔던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대표한다.
이 견해의 유익은 신을 완전히 거부함으로써 신적 폭력의 문제를 명확하게 해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가도 명확하다. 많은 사람에게 있어 일신론 개념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데는 커다란 사회적·실존적 비용이 수반된다. 전에 신앙이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사회적 관계가 심하게 손상될 것이고 우정이 상실될 것이다. 전에 삶의 토대를 제공했던 믿음도 상실될 것이다. 윤리적 관점에서는 윤리와 도덕의 토대 역할을 할, 유신론 외의 새로운 토대가 획득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전에 - 아마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에게 제공된 위엄이라는 토대에서 - 종교가 대량 학살을 악으로 보고 그것을 거부할 근거를 제공했다면 인간의 생명이 가치가 있고 따라서 대량 학살이 사악함을 확립할 다른 토대가 놓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_4장 하나님을 재평가하기

폭력적인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런 사건들을 부인하는 가장 흔한 방법 중 하나다. 많은 구약 학자가 여호수아서에 기록된 사건들의 역사성을 부인하며 이 텍스트들이 역사적 기록으로 읽혀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대신 그들은 훨씬 후대인 요시아 시대 때 가나안 종교의 잔재를 제거함으로써 유다를 개혁하려고 한 요시아의 시도로 이런 폭력적인 텍스트들을 지어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왕하 22:1-23:30). 달리 말하자면, 그들은 이 이야기들이 그것들이 일어났다고 주장되는 시기보다 수백 년 후에 요시아의 정치적 입장을 방어하기 위한 허구의 이야기로 쓰였다고 주장한다.
구약성경을 재평가하는 또 다른 방식은 역사적 근거에서라기보다는 윤리적 근거에서 구약성경을 거부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직관적으로 대량 학살이 악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대량 학살에 관한 기사가 신성한 텍스트들에 등장하더라도 그것을 거부해야 한다.
구약성경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읽는 것은 두 번째 견해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좀 더 인기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신약성경에 따르면 예수는 궁극적인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싶다면 우리는 예수를 바라봐야 한다. 이 방법에 따르면 예수는 복음서들에서 비폭력적이라고 묘사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이 평화주의자라고 가르치며, 우리가 폭력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은 실수하는 것이다. C. S. 코울스(C. S. Cowles)는 “첫 번째 여호수아 시대와 두 번째 여호수아(즉 예수) 시대 사이에 하나님의 성품과 모든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이해에 철저한 변화가 일어났음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라고 주장한다. 예수는 원래 모세를 통해 주어진 이혼 명령을 업데이트하시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대량 학살 명령도 업데이트하신다.
구약성경의 재평가는 하나님을 성경에 기록된 폭력으로부터 절연시킴으로써 명백한 윤리적 유익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것은 구약성경을 신뢰할 수 있는 문서로 믿지 못하게 하는 대가를 수반한다. 이 견해를 선택하면 성경의 무오류성에 대한 거부(또는 적어도 무오류성에 대한 상당한 재정의)도 수반된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성경의 특성에 관한 이 견해에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에 이 접근법을 선택할 때의 사회적 비용이 상당히 클 수도 있다. 심하면 직장을 잃거나 교회의 교제에서 단절될 수도 있다.
_5장 구약성경을 재평가하기

세 번째 집단에 속한 학자들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은 얼핏 보는 것보다 폭력적이지 않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런 이야기들의 해석을 재평가한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구약성경의 영감과 무오류성을 보존하려고 하며, 폭력적인 텍스트들이 모종의 방식으로 비폭력적이라고(또는 적어도 폭력의 정도가 매우 작아서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야웨를 폭력으로부터 떼어놓으려고 한다. 이 견해들은 따라서 이런 학자들은 구약성경의 사건들을 대량 학살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교회 역사를 통틀어 폭력적인 성경 내러티브들을 재해석하는 전통적인 방법 한 가지로서 그 내러티브들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접근법이 있었는데, 오늘날에도 그 관행을 따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요하네스 카시아누스(John Cassian)는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진멸될 가나안의 일곱 족속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내면에서 물리쳐야 할 일곱 가지 악이라고 말했다. 이 견해에는 그것이 죽은 가나안 족속들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영적 해석은 이 텍스트들로부터 오늘날에 적용될 의미를 도출하는 영역에서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도 있지만, 윤리적 의문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이 견해에서의 또 다른 주장은 헤렘 텍스트들을 치명적이지 않은 것으로 본다. R. W. L. 모벌리(R. W. L. Moberly)와 네이선 맥도널드(NathanMacDonald) 같은 몇몇 학자는 폭력적인 텍스트들을 은유로 본다. 모벌리는 신명기 7장에 기록된 헤렘 명령이 신명기 6:4-9에서 발견되는, 야웨를 사랑하라는 명령으로 시작하는 고대 유대교 기도인 “쉐마(Shema)의 함의에 대한 주된 해석”이라고 말한다.
존 월튼(John Walton)과 J. 하비 월튼(J. Harvey Walton)은 은유라는 아이디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헤렘을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을 죽이는 것으로 정의하는 그들의 견해도 유사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 논리에 따르면 라합을 살려둔 것은 헤렘에 대한 예외가 아니라 그것의 실행이다. 신약성경은 이 아이디어를 취해서 우리의 옛 자아 - 우리의 옛 정체성 - 를 벗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자아를 입으라고 요구한다(예컨대 골 3:1-17). 그러나 월튼부자는 가나안 족속을 죽인 사례가 드물었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죽이는 일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구약성경의 해석을 재평가하는 견해에서 세 번째 접근법은 가나안 족속의 진멸이 과장되었다고 읽는다. 이 접근법은 그 내러티브가 그 행동들을 실제보다 나쁘게 보이게 만드는 언어를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몇몇 학자는 이 가정에 근거해서 “가나안 정복은 많은 사람이 가정하는 것보다 훨씬 범위가 좁았고 덜 가혹했다”라고 결론짓는다. 과장의 존재는 언어적, 논리적, 수사학적인 세 가지 방식으로 살펴볼 수 있다.
요컨대 이 견해를 취하는 학자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폭력적인 텍스트들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구약성경의 해석을 재평가한다. 하나님이 끔찍한 일들을 명령하신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성경 텍스트들을 세심하게 읽으면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야웨가 대량 학살을 명령하시지 않았다고 주장함으로써 즉각적인 윤리적 이점이 있으며, 구약성경이 역사적 기록이라는 입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견해에는 많은 사람이 이 견해가 성경을 가지고 장난친다고 생각한다는 사회적 대가가 수반될 것이다. 혹자가 텍스트에 관한 이 해석이 옳다고 확신할지라도 많은 사람이 이 해석은 - 특히 이 특정한 해석의 유익이 아주 명백할 경우 - 텍스트를 미리 정해진 방법대로 읽기 위해 텍스트를 정해진 틀 속에 억지로 끼워 넣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_6장 구약성경의 해석을 재평가하기

마지막으로, 네 번째 범주에 속하는 학자들은 성경의 이야기들을 그것들이 보편적으로 이해되는 대로 받아들이지만(두 번째 견해에 동의한다), 폭력의 윤리를 재평가하여 야웨가 가나안 족속들을 다루신 것이 다양한 이유로 정당화된다고 주장한다.
명령된 폭력을 방어하기 위해 종종 신비에 호소하는 주장이 제시된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시고 인간은 그분의 길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워드 베트슈타인(Howard Wettstein)은 우리가 이런 텍스트들을 읽으면 하나님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 질문해도 대답을 듣지 못하는, 폭풍우 전의 욥과 비슷한 위치에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가나안 족속에 대한 폭력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가장 흔한 논거 중 하나는 성경 텍스트들(창 15:16; 레 18:25; 신 9:4-5; 대하 28:3)과 우가리트 신화들에 기록되었듯이 가나안 족속이 사악했다는 것이다.
몇몇 학자는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는 명령에 대한 이유를 그들의 죄가 아니라 가나안 땅과 연결한다. 즉 가나안 족속은 단지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땅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진멸 대상이 된다. 6장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초기 유대교 전통은 가나안 땅이 셈에게 속했는데 가나안이 그것을 탈취했다고 기록한다. 좀 더 넓게 말하자면,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로부터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 땅에서 가나안 족속의 종교가 제거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가나안 족속이 그들의 종교를 포기하면 그 땅에 머무를 수 있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가나안 땅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폭력적인 행동들을 방어하기 위한 또 다른 흔한 논거는 그런 행동들은 민족성에 근거하지 않고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하나님은 언뜻 보는 것보다 가나안 족속에게 좀 더 은혜로우시다. 가나안 족속에게 시간과 회개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들의 심판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수백 년 전에 창세기 15:16에서 선언된다. 가나안 족속의 회개에 대한 가장 명확한 예는 야웨의 능력을 고백하고 이스라엘의 일원이 된 라합이다.
이 네 번째 범주에는 성경을 높게 본다는 장점과 단순하게 해석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럼에도 이 견해에도 큰 대가가 수반된다. 즉 그 견해는 야웨를 대량 살인과 비슷한 일에 연루시킨다. 혹자가 자신이 이 견해를 방어하고 그 믿음을 가지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다른 많은 사람이 그런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런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제정신이고 동정심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른다는 사회적 대가가 수반될 것이다. 그리고 이 믿음은 복음 전도를 좀 더 어려워지게 할 것이다.
_7장 구약성경에 기록된 폭력을 재평가하기

나는 많은 독자가 이제 그 문제에 관해 좀 더 많이 알게 되었지만 어떤 답변을 택해야 할지 알지 못할 수도 있다고 예상한다. 당신은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보다 그 문제에 관해 더 모르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 입장이 허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신앙을 위해 특정한 입장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점에 관해 요한복음 6장에 기록된 이야기와 비교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알았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 6:53)라는 예수의 진술은 군중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많은 사람이 그를 떠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그들도 떠나려고 하는지 물으신다. 베드로가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고 대답한다(요 6:66-68). 베드로가 직접 이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이 진술의 언외의 의미(subtext)는 제자들도 예수의 진술에 대해 군중만큼 불쾌해졌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군중과 달리 예수에 대한 제자들의 믿음은 흔들리기는 했을지라도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들은 예수가 최근에 하신 진술이 곤혹스럽기는 하지만 자기들의 믿음의 큰 개요 안에서 예수가 아무도 갖고 있지 않은 생명의 말씀을 지니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확실히 그런 견해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과 성경을 모두 버리는 첫 번째 견해를 동정적으로 거부한다. 그러나 이 책의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나의 목표는 다른 세 가지
선택지 중에서 가나안 족속 진멸의 문제에 대한 “옳은 해답”을 납득시키는 것이 아니다. 대신 나는 내가 당신으로 하여금 그 문제에 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보도록 고취했고 당신이 그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법을 좀 더 잘 이해했기를 소망한다. 당신이 당신의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맥락에서 이 문제를 두고 계속 씨름할 때 “영생의 말씀”을 지닌 분(요 6:68)을 계속 따르기를 기원한다.
_결론
약어 목록
서론
1부 배경
1장 고대 근동에서의 전쟁
2장 대량 학살
3장 가나안 족속들
2부 야웨와 가나안 족속들의 멸망
4장 하나님을 재평가하기
5장 구약성경을 재평가하기
6장 구약성경의 해석을 재평가하기
7장 구약성경에 기록된 폭력을 재평가하기
결론
참고 문헌
이 책에서는 가나안 족속의 멸망과 관련해서 하나님, 구약성경, 구약성경의 해석, 구약성경에 기록된 폭력을 제각각 재평가해서 해법을 찾으려는 포괄적인 범위의 네 가지 견해를 장단점과 함께 소개한다. 이 책은 어느 한 관점에 편향된 결론을 내려주지 않는다. 이에 따라 저자는 의도적으로 독자들의 독서 과정을 촉발하여 고민하게 만든다. 책을 자세히 읽고 각각의 견해를 바탕으로 진지하게 토론해 갈 때, 새로운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김정훈 l 부산장신대학교 구약학 교수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는 가나안 족속들의 멸망을 명하는 하나님과 그것에 응답하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전쟁에 분명히 현대인들의 다원주의적 가치, 문화 이해, 그리고 평화 애호 사상에 큰 걸림돌이 되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 데 있다. 동시에 고대 근동의 전쟁 관습과 민족 수호신들의 토지쟁탈 전쟁 관습의 빛 아래서 구약성서의 전쟁 기사를 바라보려는 태도 또한 좋은 해석학적인 시도다.
김회권 l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출애굽기를 연구하며 “전사로서 야웨 하나님”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찰리 트림은 여세를 몰아 가나안족 멸절에 관한 간결하고도 통찰력 있는 책을 써냈다. 대답 대신 고민하게 하는 수많은 질문을 불러내는 책이다. 성서해석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진솔하게 드러낸다. 진지하게 읽어야 하는 책이다.
류호준 l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은퇴 교수

“폭력에 연루되신 하나님”이라는 이미지는 난감한 주제임이 틀림없다. 특히 현대 그리스도인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야웨 하나님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 사로잡힐 것인가? 아니면 구약성경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 그분을 새롭고 낯선 얼굴로 만날 것인가? 신학적 호기심과 시대적 필요와 도전 모두를 이 얇은 책에 아우른 트림의 고민과 혜안도 우리가 주목하여 살펴보아야 할 사항이다. 평소 이 문제를 진지하게 인식하고 물음을 가져온 평신도들은 물론이거니와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에게 자세히 그리고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 보기를 기꺼이 추천한다.
주현규 l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이 책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가나안 족속의 멸망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다. 저자의 의도는 이 문제에 대하여 옳은 해답을 논증하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더 깊이 생각하고 다양한 해법을 더 잘 이해하기를 바랄 뿐이다. 가나안 족속의 멸절 문제는 구약학의 아킬레스건에 해당한다. 이 책은 이 문제를 이해하고 변증하는 데 적절한 도움과 안내가 되어 줄 것이다.
차준희 l 한세대학교 구약학 교수, 한국구약학연구소 소장

시의적절한 주제에 대한 주요 관점을 검토하는 이 책은 독자에게 그 문제를 고려하기 위한 귀중한 통찰을 제공한다. 특히 가나안 족속들과의 전쟁에서 나타난 성경의 하나님의 폭력이라는 신학적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유익을 얻을 것이다.
리처드 S. 헤스(Richard S. Hess) l 덴버 신학교

이 책은 박식하고 사려 깊은 논의다. 대체로 열띤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분야에서 트림은 밝은 빛을 비춰준다.
R. W. l. 모벌리(R. W. l. Moberly) l 더럼 대학교

트림은 고대 근동에서의 전쟁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이 난처한 윤리적 문제에 대한 통상적인 접근법들을 개관하고 비평하며 그 접근법들의 함의를 고려한다.
카르멘 조이 아임스(Carmen Joy Imes) l 바이올라 대학교

이 뛰어난 책은 성서학자들이 성경에 기록된 가나안 정복 이야기들로 말미암아 제기된 도덕적 도전들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해 온 방식들을 정직하고 냉정하게 바라본다. 쉬운 해법들이 제공되지는 않지만, 독자는 그 문제의 본질을 훨씬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게리 앤더슨(Gary A. Anderson) l 노터데임 대학교

나는 독자들이 이 어려운 주제에 대한 트림의 지혜와 통찰에 대해 내가 그랬던 것처럼 무척 고마워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데이비드 T. 램(David T. lamb) l 미시오 신학교

트림이 고대 전쟁들의 실상, 역사적 가나안 족속들, 현대의 대량 학살 연구에 기울이는 관심은 유사한 저작들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깊이를 더한다.
브래드 E. 켈리(Brad E. Kelle) l 포인트 로마 나자린 대학교
찰리 트림
바이올라 대학교 탈봇 신학교의 성경 및 신학 연구 교수다. 휘튼 대학에서 출애굽기에 나타난 신적 전사로서 행동하는 하나님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관심 분야는 고대 근동의 전쟁,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윤리와 관련된 어려운 주제, 출애굽기, J. R. R. 톨킨(J. R. R. Tolkien)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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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하나님은 정말 인종청소를 명하셨는가?
저자찰리 트림
출판사새물결플러스
크기(149*220)mm
쪽수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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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202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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