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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 셔우드 홀   한국 근대 여성의 길을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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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정희  |  출판사 : KIATS
발행일 : 2018-09-19  |  (132*210)mm 193p  |  979-11-6037-1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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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제가 감리교 여성 선교사들에 대한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신앙 적인 이유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두 딸을 기르면서 딸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여성 전문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사 김점동(박에스더), 최초의 여성 기자 최은희,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 등 어른들의 삶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 과정 에서 이분들의 어린 시절에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미국 에서 오신 감리교 여성 선교사들과의 만남이 이분들이 전문가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여성 교육은 감리교 여성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이 세운 이화학당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메리 스크랜튼에 관해서는 연구도 있고, 활동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제가 가 장 관심을 가지게 된 분은 로제타 셔우드 홀이었습니다. 어떤 선교사보다 이 땅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였고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누구보다도 큰 도움을 주신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 의 의사 김점동(박에스더)의 멘토였다는 것 외에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로제타 홀은 남녀를 통틀어 한국 최초의 양의를 양성하였고, 한글 점자를 최초로 만들었고, 특수 교육을 시작하였으며, 고려대학교 의과대학과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병원, 평양의학대학 종합병원의 기초를 놓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내한 직후부터 재능 있는 소녀들을 “내 아이들(my girls)”이라 부르며 특별한 관심과 사랑으로 교육해 한국 최초의 전문직 여성들로 길러낸 점을 평가해야 합니다. 이들 중 김점동(박에스더)은 최초로 미국에서 서양 의학을 전공한 의사가 되었습니다. 12살에 첩으로 팔렸던 여메레는 엄비를 도와 진명여고를 개교시키고 총교사가 되었으며, 후에 평양 진명여고의 교장이 되었습니다. 과부로 이화학당에 들어왔던 노수잔은 로제타의 의료 활동과 선교 활동의 충실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2012년 가을, 저는 미국의 필라델피아 근교의 퀘이커 영성공동체 펜들힐에서 수학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곳에서 이분의 행적을 추적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분이 다닌 의과대학은 1850년에 퀘이커들이 필라델피아에 세운 세계 최초의 여자의대였습니다. 그곳의 문서보관소를 시작으로 이분을 파견한 감리교 여성해외선교회의 문서보관소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로제타 홀 손녀의 연락처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에 남겨진 것이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미세스 킹과 통화할 수 있을까요?”
“접니다. 무슨 일이시지요?”
저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기쁨으로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무척 반기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1934년 해주에서 태어났답니다. 아버지가 보관하던 문서들을 제가 보관하고 있으므로 할머니가 남기신 많은 사진과 문서들이 있어요. 언제든지 오시면 보여줄게요.”

이리하여 첫 번째 방문이 이루어졌습니다. 그곳에서 로제타 홀할머니가 선교 초기에 쓴 편지들, 네 권의 일기, 두 권의 육아일기, 어린 시절 일기, 그분이 저술한 선교용 팸플릿과 친필 메모들을 발견하고 전율이 일었습니다.
몇 차례 방문 끝에 로제타 홀 할머니의 친필 문서들과 팸플릿등은 스캔할 수 있었고, 모든 일기를 빌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반년 동안 그 일기를 곁에 두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일기를 읽어가며 감동으로 눈물을 흘린 적도 여러 번이었고 놀라움으로 가슴이 터질 듯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이 분에 대해 알아갈수록 고마움과 함께, 이렇게 많은 일을 하신 분을 우리가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는 점에서 죄송스러움으로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습니다.
이분에 대해 제가 알게 된 것을 정리하여 2015년에 ‘닥터 로제타 홀’이라는 책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 책이 분량이 너무 많고 읽기에 그다지 편하지 않은 형식이라는 독자들의 평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제타 홀 할머니의 일기와 다른 자료에 근거하여 되도록 실감 나게 그분의 내면과 생전의 활동들을 생생하게 전달해주기 위해 쉽게 읽히는 이야기로 구성해 보았습니다.
이분에 대한 책을 쓰는 저에게 로제타 홀의 손녀 부부인 필리스 홀 킹, 에드워드 킹 박사님께서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로제타 홀 할머니가 평생 지니고 다니셨던 그분의 의과대학 졸업 사진이었습니다. 사진 뒷면에는 빼곡하게 메모가 남겨 있었습니다. 사진 속 동기 동창들의 이름, 그리고 자신이 특별히 기억한 졸업기념일에 써넣은 것들이었습니다.
“1949년 3월 14일 뱅크롭트 타일러 홈에서 아버지께서 졸업선물로 마련해 주신 옷감으로 내가 만들어 1889년 3월 14일의 졸업식에서 입었던 드레스를 입고 60회 대학 졸업기념일을 기념했 다.”라는 메모를 보며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은 약간의 상상력을 동 원하여 구성하였습니다.
그 외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에피소드는 그분의 일기와 팸플 릿, 메모, 신문 기사 등에 근거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제가 기록을 찾을 수 없었던 중반기 활동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건너뛰게 되었 습니다.
로제타 홀 할머니는 선교를 위해 고향 집을 떠나는 날인 1890 년 8월 21일의 일기를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 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라는 빌립보서 2장 5절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고자 이 길을 간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 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시고자 조선에서 겪어야 만 했던 고난들, 인내, 사랑을 우리가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일이 얼마나 큰 영광이자 책임이 막중한 일임을 그분의 일생이 보여줍니다. 우리는 그분의 삶을 되풀이하 여 이야기하며 배우고 후세에 전해야 하겠습니다.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 Hall, 허을,1865-1951)]
1865년 미국 뉴욕주의 리버티에서 태어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다. 1889년 펜실베니아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890년 미국 북감리교 소속 의료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와 정동의 보구여관에서 의료사역을 시작했다. 이후 1891년 한국에 파송된 윌리엄 홀(William J. Hall) 선교사와 결혼해 셔우드 홀과 이디스 마가렛 홀을 낳았다. 남편 윌리엄 홀과 딸 이디스를 잃는 아픔을 겪었지만, 평양에 남편을 기념하는 기홀병원, 여성을 위한 광혜여원, 어린이를 위한 이디스 마가렛 병동을 세우는 등 남편의 사역을 이어가며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의료사역에 힘썼다. 또한, 평양에 한국 최초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맹학교를 세우고 한글점자교과서를 발행하여 특수교육의 초석을 다졌다.
로제타는 특별히 여성 의료인 양성에 힘썼고, 그녀의 통역을 맡았던 김점동(박에스더)을 미국에 유학 보내 한국인 최초의 의사 자격을 얻게 했다. 한편, 1928년 길정희, 김탁원 등의 한국인들과 함께 서울에 고려대학 의과대학의 전신인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세워 여성의료인 양성을 위한 길을 열었다. 1933년, 43년간의 한국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1951년 85세를 일기로 소천하였다.
로제타의 한국사랑은 그의 아들 셔우드 홀(Sherwood Hall, 하락, 1893-1991)에게로 그대로 이어졌다. 1926년 아내 메리안과 함께 의료 선교사로 내한한 셔우드 홀은 폐결핵 퇴치운동에 앞장서며, 결핵 치료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932년 12월 3일 한국 최초로 남대문을 그려 넣은 ‘크리스마스실’을 만들어 보급하였다.
제1부
조선의 빗장을 열어젖히고

1. 스물다섯 번째 생일의 기도
“닥터 셔우드, 25호실 친구분이 초대하셨습니다. 지금 오시라 합니다.”
객실을 담당하는 승무원이었다. 로제타는 여행 중 일과로 삼고 있는 하루의 끝을 마무리하는 일기를 쓰려던 참이었다. 1890년 9월 19일. 특별히 하루 종일 두고 온 이들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울적해 있었다. 로제타는 일기책을 덮으며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러고 보니 저녁 식사 후 내내 시카고에서부터 동행하는 닥터 스티븐슨Ida Stevenson과 미스 벵겔Margaret J. Bengel도 보이지 않았다.
“서프라이즈! 닥터 셔우드, 생일 축하해요.”
로제타가 25실로 들어서자, 깜깜하던 방에 갑자기 불이 켜지며 생일 케이크를 든 미스 벵겔과 배 안의 친구들이 떠들썩하게 로제타를 맞았다.
‘아! 하나님께서는 내 생일을 외롭게 하지 않으셨구나!’
로제타는 환하게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감상에 젖어 슬퍼하고 있던 자신이 조금 머쓱해졌다. 언제 어디서나 이렇게 항상 함께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었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바다 위에서도 이러할 진데.
로제타는 보름째 바다 위에 떠 있었다. 그날 바다는 아침부터 더할 수 없이 고요했다. 부드럽게 일렁이는 물결이 어찌나 잔잔한지 누구라도 그 위에서 노 젓는 배를 타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듯했다. 하지만 바다가 모두 한결같지는 않았다. 성난 파도에 배가 요동치던 날에는 의자에서 굴러 떨어진 적도 있었다. 또 어떤 날에는 난생처음으로 삼켰던 음식물들이 거꾸로 올라와 먹었던 것들을 다시 꺼내 보는 색다른 경험도 했다. 그 뒤로도 같은 일은 여러 차례 되풀이되었다.

바다는 그야말로 변화무쌍했다. 파도는 배를 통째로 삼킬 듯 달려들었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반짝이는 눈을 깜박였다. 시시각각 색조를 바꾸기도 했다. 초록이었다가는 다시 남색으로, 또다시 보라색을 살짝 머금은 파랑인 듯싶다가 다시 쪽빛으로….
바다는 더할 수 없이 친절하게 로제타의 스물다섯 번째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그녀가 타고 있는 증기선 오셔닉Oceanic호는 1890년 9월 4일에 샌프란시스코 항을 출발했다. 11일에 하와이의 호놀룰루 항에 도착한 뒤, 그곳에서 하루 동안 정박했다. 그사이에 상륙하여 하와이의 이국적인 풍광들을 즐긴 다음 오셔닉호로 돌아왔다. 증기선으로 돌아오는 조각배 위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타며 짜릿한 즐거움을 맛보기도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로제타는 배 위에서 스물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앞으로 적어도 5년 동안은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볼 수 없겠지. 그들도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을까?’
아침에 일어나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8월 21일에 뉴욕주 리버티의 고향 집을 떠나왔으니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리운 가족들의 얼굴이 하나씩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또 한 사람. 한없이 애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그의 눈빛과 속삭임이 아직도 귓전에 생생했다.
“굿 바이, 닥터.”
그가 순식간에 로제타의 볼에 첫 키스를 날리고는 속삭였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의 행동이 적절한 것인지 분간할 겨를도 없이 기습적으로.
“굿 바이, 닥터.”
로제타 또한 같은 말로 작별을 고했었다. 뉴욕시에서 시카고를 향해 떠나가려는 기차 안에서였다. 그는 결혼식을 올린 뒤, 함께 해외 선교에 나가자고 간곡하게 설득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누군가의 아내가 되는 것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앓던 선병이 악화될지 호전될지 알 수 없었고 결혼 자체도 망설여졌다. 철들 무렵부터 결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신심 깊고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진, 용기 있는 여성들처럼 자신도 독신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로제타가 의대에 진학했던 것도 의사가 되어 독신으로 선교에 전념하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졸업 후, 뉴욕의 독신 여성 봉사자들의 공동체인 뉴욕 디커니스 홈에서 해외 선교를 준비하면서 무료 진료소에서 봉사했다. 뉴욕 디커니스 홈Deaconess Home과 협력하고 있던 맨해튼의 루스벨트가 진료소Roosevelt Street Dispensary에서 로제타는 윌리엄 제임스 홀을 만났다.
“어린 환자를 진찰하고 있다가 새 의사가 왔다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든 순간, 당신이 문 앞에 서 있었어요. 난 첫눈에 당신과 사랑에 빠져 버렸어요.”
나중에 그가 들려준 말이었다. 그 말이 귓전에 맴돌아 로제타는 또다시 얼굴을 붉혔다. 그 또한 의료 선교사로 봉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 의사가 되었다고 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로제타는 독신 선교사로 살겠다는 자신의 계획에 한 치의 의심도 가진 적이 없었다.
네가 인류를 위해 봉사하려거든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곳으로 가서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일을 하라.
이 말을 처음 읽었을 때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가! 이 말에 따라 흔들림 없이 살아왔던 지난 몇 년이었다. 1837년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여성들을 위한 대학 과정인 마운트 홀요크 여자신학교Mount Holyoke Female Seminary를 세운 메리 라이언Mary Lyon의 말이었다. 졸업생들을 위한 연설에서 외쳤던 그녀의 말에 따라 수많은 여성이 지구 반대편의 자매들을 구하겠다는 열망으로 해외 선교에 나섰다.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었지만, 미국에서 최초로 해외에 파견된 독신 여성 선교사였던 엘리자 에그뉴Eliza Agnew도 로제타와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그녀는 스리랑카로 선교하러 떠나기 직전에 로제타의 외가를 방문했다. 로제타의 어머니 피비Phoebe가 열 살 때였다. 당시 어린 소녀였던 피비에게 그녀의 모습은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그때부터 피비는 해외 선교에 관한 관심과 소망을 갖게 되었다.

스리랑카에 자리 잡은 엘리자는 평생 고국을 한 차례도 방문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곳에서 43년 동안 현지 소녀들의 어머니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피비는 간간이 들려오는 엘리자의 소식을 접하며 평범한 주부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피비의 가슴 속에 심어진 선교에 대한 꿈은 딸에게서 싹이 트고 자라났다. 로제타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엘리자의 삶에 대해 숱하게 들으며 자라났다.
1885년 봄날의 어느 주일, 스무 살 여교사 로제타는 인도에서 선교하던 챈들러Kennard Chandler 부인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인도에서는 여성들이 남자 의사들에게 몸을 보일 수 없답니다. 그런 관습 때문에 여성들에게는 의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니 아주 간단한 의학적 처치로 살릴 수 있는 경우에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여성 의사 선교사가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녀의 강의를 들으며 로제타의 가슴이 즉각 응답했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지만 뭔가 부족함을 느끼던 차였다. 교사라는 직업은 로제타에게 재미있고 보람 있는 일이긴 했지만, 그녀의 가슴을 뛰게 하지는 않았다.
“저 의사가 되어 해외 선교에 나가고 싶어요.”
로제타는 가족들이 모인 저녁 식탁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가족들이 갑자기 식사를 멈추고 일제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늘 강연 때문인가 보구나.”
어머니가 로제타를 유심히 바라보며 얼굴을 살폈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었다.
“네. 그런데 마치 오랫동안 꿈꾸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져요.”
사실이었다. 로제타의 가슴은 그 순간까지도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1886년 가을, 로제타는 펜실베니아 여자의과대학의 학생이 되었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선진적인 문화를 자랑하던 필라델피아에 있던 학교였다. 학교는 로제타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에는 미래에 대한 꿈을 공유할 훌륭한 벗들이 있었다.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세계 최초의 여자의과대학에 입학한, 당시 미국에서 가장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여성들이었다. 그 학교는 특별한 면을 또 가지고 있었다. 현지에서 선교하던 선배들이 보낸 유학생들이 그 학교에서 고국의 첫 여성 의사들로 태어났다. 인도에서 온 아난디 고팔 조쉬Anandi Gopal Joshi와 시리아에서 온 타밧 이살람블리Tabat M. Islambooly였다. 로제타의 졸업 동기 중에는 최초의 일본인 여의사 케이 오카미Kei Okami와 아메리카 원주민 여의사 수잔 라 플래시 피코트Susan La Flesche Picotte도 있었다.

로제타는 재학 중 내내 해외 선교에 대한 꿈을 놓은 적이 없었다. 재학 중 4년 과정을 3년 안에 마치고 빨리 졸업하려고 무리하는 바람에 결핵성 내분비선에 이상이 발생하여 수술을 받기도 했다.
졸업 후, 로제타는 건강을 염려하는 가족들과 친구들로부터 해외 선교를 포기하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다. 그 와중에 사랑하는 이를 만나면서 일시적으로 더 큰 고민에 휩싸이기도 했다. 하지만 평생 선교에 헌신하지 못하고 중단한다 할지라도 미리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나님의 일이 아니었다면 그 어떤 것에도 당신을 빼앗기지 않았을 것이오.”
로제타가 미국 북감리교 여성해외선교회Woman’s Foreign Missionary Society에 5년 동안의 독신 선교사 사역을 서약했다는 소식을 들은 윌리엄의 말이었다. 두 사람 모두 개인적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헌신의 가치를 더욱 귀하게 여기는 점에 이견이 없었다.
친구들과 생일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로제타는 하루 종일 자신을 감싸고 있던 우울함을 떨쳐 버렸다. 사랑하는 하늘 아버지께서 항상 이 광활한 바다에서도 낯선 땅에서도 여전히 함께하실 것이었다. 살아온 지난 일생 동안 그분이 얼마나 자신에게 친절하셨는지를 또다시 깊이 깨달은 날이었다.
“하나님, 여태까지 저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모든 두려움과 걱정을 완화하는 가장 신비로운 약이었다. 지금까지와 같이 앞으로도 그분은 자신과 함께할 것이라는 믿음의 햇살이 두려움의 구름을 비집고 환하게 쏟아져 들어왔다.
내가 아니라, 내가 인생에서 말한 진실이
내가 아니라, 내가 인생에서 뿌린 씨앗이,
후세에 전해지게 하소서.
나에 관한 모든 것이 잊혀질지라도,
내가 말한 진실, 내가 행한 실천만이 남겨지게 하소서.
로제타는 일기를 마감하며 호라티우스 보나르Horatius Bonar의 글을 정성껏 베껴 적었다.
추천글 6
-김윤환
-박상은
-김재현

제1부 조선의 빗장을 열어젖히고 9
1. 스물다섯 번째 생일의 기도
2. 고요한 아침의 나라?
3. 이경숙
4. 손가락이 손바닥에 붙은 소녀
5. “내 아이들”과 새로운 계획
6. 생각의 차이

제2부 한 손에는 사랑을, 한 손에는 인술을 59
7. 그가 오다
8. 결혼
9. 에스더의 결혼
10. 동행
11. 평양의 문을 열다
12. 조선의 바울
13. 서울로 돌아오다

제3부 슬픔의 골짜기를 지나서, 다시 조선으로 119
14. 잔인한 이별
15. 슬픈 귀향
16. 이디스를 가슴에 묻다
17. 슬픔의 골짜기에서

제4부 조선의 여성을 위한 여성의 일, “여성 의료인” 1 55
18. “평양의 오마니”
19. 한국 여의사들의 할머니
20. 동화 같았던 나날들

에필로그 182

부록 187
-로제타 홀 연보
-로제타 홀의 핵심가치
-로제타 홀 관련자료
그 풍성한 은혜 아래 오직 순결한 믿음과 강렬한 사랑의 마음으로 일생 한국인을 가슴에 품고, 사랑을 실천하며, 그 은혜를 자랑해 온 로제타 셔우드 홀, 로제타 홀 여사는 “순종하는 닥터 홀 가족”의 사랑의 원천이 되셨습니다.
- 김윤환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영상의학과 교수)

로제타 홀 여사는 당시 조선의 소외된 여성, 맹인, 아픈 어린이를 돌보며, 고려의대의 전신인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설립해 한국의 여성 의사들을 처음 배출한 분이십니다. 로제타 홀 여사의 박애정신과 아름다운 사역이 앞으로 더욱 널리 알려지며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 박상은 (샘병원 대표원장)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걸쳐 한국 땅에 들어온 외국선교사들은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지난 130여 년 동안 3천여 명의 내한 선교사 중에서 로제타 홀은 여러 분야에서 돋보이는 인물입니다. 기독교 선교사로 시작해 한국사회의 다양한 약자들을 섬기고 여성 인재를 양성하며 사랑과 박애의 삶을 산 로제타 홀,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고 기릴 이름입니다.
- 김재현 (한국고등신학연구원 원장)
박정희
1963년생. 두 딸들에게 삶의 모델이 될 만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려다 글을 쓰게 되었다. 역사의 진보를 이끌어 온 별처럼 빛나는 할머니들에게 함께 감동하고 감사하며, 영적으로 그들과 연대하자고 제안한다. 쓴 책으로는 《닥터 로제타 홀》, 《여성인물 이야기》(전 5권), 《외할매 만세》, 《땅지원의 키크기》, 《티타늄 다리의 천사, 애덤 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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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로제타 셔우드 홀
저자박정희
출판사KIATS
크기(132*210)mm
쪽수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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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2018-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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