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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츠고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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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정병철  |  출판사 : 두루마리
발행일 : 2016-03-31  |  (154*224)mm 548p  |  978-89-9669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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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여행’을 신나고 즐겁게 여행하고 싶은데 요한 계시록을 보면 잘 이해가 안되고, ‘단체’로 ‘요한계시록 강해’나 ‘요한계시록 세미나’를 통해 여행해 보아도, 여행을 이해하기가 매우 힘들고 즐겁지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요한계시록은 그렇게 어려운 책이 아닙니다. 특히 정보통신이 발달한 스마트 폰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요한 계시록은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즐거운 스마트 여행’입니다.
실제로 요한계시록은 그렇게 어려운 책이 아닙니다. 특히 정보통신이 발달한 스마트 폰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요한 계시록은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즐거운 스마트 여행’입니다.
렛츠고! 요한계시록은 이러한 관점에서 오랫동안 컴퓨터 교수로. 정보통신 기업가로 있던 저자가 요한 계시록을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고, 그리고 즐겁게 여행할 수 있도록 만든 스마트 앱과 같은 책’입니다.
렛츠고! 요한계시록은 여러분을 종말에 대한 두려움이나 헛된 망상이 아닌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안내할 것입니다.
서문
Let’s Go !
여러분은 어디론가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 가장 먼저 무엇을 하십니까?
옛날에는 두꺼운 ‘지도책’과 ‘여행 가이드 북’을 들고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지도책’을 보는 법이 쉽지가 않습니다. 미국을 차로 여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지도를 보는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러한 지도를 가지고 여행을 떠나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에 ‘여행과 관련된 앱’을 다운하고 갑니다.
그러면 그 ‘여행과 관련된 앱’은 우리에게 지도를 보여주고, 가고자 하는 길을 안내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꼭 가야만 하는 ‘맛 집’과 ‘관광지’를 안내해 주고, 현지 시간과 우리나라 시간을 자동으로 보여줍니다. 시계를 차지 않더라도 현지 시각을 별무리 없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굳이 여행사를 통해 ‘패키지 여행’을 하지 않고, 개인적인 ‘자유 여행’을 한다 하더라고 불편함이 없이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여행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은 어떻습니까?
한 번 ‘요한계시록 여행’을 신나고 즐겁게 여행하고 싶은데 요한 계시록을 보면 잘 이해가 안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단체’로 ‘요한계시록 강해’나 ‘요한계시록 세미나’를 통해 여행해 보아도 여행을 이해하기가 매우 힘들고 즐겁지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무엇을 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것을 꼭 알아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특별하게 지도를 읽는 법을 배운 ‘전문가만이 읽을 수 있는 매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책’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잘못 길을 들어섰다가는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이상한 나라에 빠져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수수께끼와 같은 책’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즐거운 스마트 여행
그러나 실제로 요한계시록은 그렇게 어려운 책이 아닙니다.
특히 정보통신이 발달한 스마트 폰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요한 계시록은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즐거운 스마트 여행’입니다.
사람들은 요한 계시록을 읽으면서 각종 재앙이나 사건들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 그리고 ‘어디에서 일어날 것인가?’ 이런 것들이 해결 되지 않음으로써 ‘많은 추측’과 ‘허무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특히 ‘인의 재앙’이 끝나고 ‘나팔 재앙’이 보여지고, ‘나팔 재앙’이 끝나고 ‘대접 재앙’이 보임으로써,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다가 많은 오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보통신이 발달하면서 이러한 문제들이 너무 손쉽게 이해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옛날 ‘컴퓨터’는 ‘한 화면’만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여러 개의 화면’을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계시록’도 ‘여러 개의 화면’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할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당연하게 받아 들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 시대에서 요한 계시록은 너무나 이해하기 쉬운 책이고, 신나고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습니다.

렛츠고! 요한계시록.
렛츠고! 요한계시록은 이러한 관점에서 요한 계시록을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고, 그리고 즐겁게 여행할 수 있도록 만든 스마트 앱과 같은 책’입니다.
렛츠고! 요한계시록은 여러분을 종말에 대한 두려움이나 헛된 망상이 아닌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안내할 것입니다.

렛츠고! 요한계시록과 함께 일년을 같이 여행을 하며, 함께 기도하고 함께 기뻐했던 ‘꿈의교회’ 성도들께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곁에서 항상 기도하며 격려해준 아내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만들기까지 기도해 주시고 후원해 주신 ‘꿈의교회 문서선교회’와 ‘안웅식 교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에게 미래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꿈의교회 목양실에서
정병철목사


계1. 서론-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본문: 요한계시록 1:1-8


‘여행을 시작하면서’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요한 계시록’ 하면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성경의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어서 성경의 부록이란 생각이 드십니까?
사람들은 계시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심각해집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읽는다면 그렇게 어려운 책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계시록을 읽으면서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생겼을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그림을 그리시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 임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이 언제인가?’
‘나는 그 나라를 볼 수 있는 것일까?’
여기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사람들의 이러한 관심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갔다 왔다’, ‘천국을 보고 왔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 임하게 된다’고 예언하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 알듯이 한국에서도 ‘1992년 10월 28일 휴거가 일어난다’고 매스컴을 떠들썩하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현실의 삶들을 포기하게 하고 휴거만을 바라보게 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언제 말세가 올 것인가?’
‘언제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할 것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지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현실을 놓치게 됩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삶터를 버리고, 새로이 임하는 새로운 나라에 대한 기대감으로 살게 됩니다.
이러한 일들이 지금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에서 나오는 숫자나 문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들을 통해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이러한 것들을 통해 영적 협박’을 받게 됨으로써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계시록에 대한 ‘잘못된 관점과 이해 때문’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수수께끼와 같은 책이 아닙니다.
계시록은 반드시 미래의 일에 대하여 미리 보여 주는 그림이 아닙니다. 계시록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세상의 끝에 일어날 일들을 수수께끼처럼 엮어 놓은 책’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기록하고 있으며, 현재 우리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에 필요한 말씀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알고 읽는다면 ‘요한 계시록은 아주 쉽고 재미 있는 책’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미래에 초점을 맞춘 책이 아니라 우리 신앙인들의 현실의 삶에서 겪어야 하는 많은 문제들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기게 하심을 전해주는 실질적인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계시록을 미래에 있을 어떤 일로 수수께끼처럼 풀어서는 안 됩니다.
요한 계시록은 반드시 미래의 일에 대하여 미리 보여 주는 그림이 아닙니다.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책’이 계시록입니다.
그러므로 요한 계시록을 읽으면서 우리가 가장 중요한 것은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상징들, 예를 들면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 ‘열 뿔을 가진 짐승’이
‘지금 우리 현실에 있는 어떤 짐승인가?’
‘아니면 그 상징들이 실제는 무엇을 말하는가?’로 접근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징들의 실제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상징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먼저 깨닫고, 말씀을 한절 한절 풀어간다면, 요한 계시록이 수수께끼와 같은 책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1:3)
본문을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 ‘듣는 사람’ 그리고 ‘그 안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들을 때 이를 이해할 수 있으며, 이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 ‘하나님의 비밀을 알지 못하게 하셨다면’ 이를 지켜 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을 지켜 행함으로 복을 받으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의 초점은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은 ‘세 가지 초점’이 있습니다.
첫째, ‘세상에 종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이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만 들어가는 나라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에서 가장 주요한 주제가 ‘계시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1-3)
3절 말씀을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라는 말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예언이라는 말은 ‘묵시’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예언’, ‘계시’, ‘묵시’는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의 ‘다니엘’, ‘에스겔’, ‘스가랴’와 같은 책들도 ‘묵시문학의 형태’로 쓰여졌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은 구약이나 성경의 다른 책들을 통해 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 계시록을 읽어감에 있어서 요한계시록 자체만을 가지고도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지만 ‘구약의 예언서나 다른 책들을 통해서도 많은 의문에 대한 답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요한계시록의 ‘404절’ 중에 거의 ‘309절’ 가까이가 ‘구약의 내용’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을 주의 깊게 공부하신 분들께서는 요한 계시록을 아주 수월하게 이해하실 수가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은 절대 ‘미래에 있을 어떤 일’로 혹은 ‘과거에 일어난 어떤 사건’으로 ‘수수께끼’처럼 풀어서는 안 됩니다.
요한 계시록은 이미 이전부터 말씀해오신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풀어서 설명’하고 있으며, 세상에 핍박 받고 있는 성도들과 교회들을 향하여 ‘소망을 가지고 이겨내기를 원하신다’는 하나님의 격려의 메시지가 바로 요한 계시록인 것입니다.
먼저 요한계시록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단추는
‘요한 계시록이 어떠한 문학형태의 책인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크게 세 가지 문학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묵시문학’이고, 두 번째는 ‘예언서’이며, 마지막으로는 ‘서신서’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요한계시록은 계시(묵시문학)입니다.
먼저 ‘계시록1장1절’을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계 1:1-2)
여기서 계시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아포칼립시스’라는 단어는 ‘뚜껑을 벗기다’, ‘드러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자로는 ‘묵시(默示)’ 또는 ‘계시(啓示)’, 영어로는 ‘revelation’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즉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드러내다’, ‘알려주다’라는 뜻으로 ‘모르는 것을 알게 해 준다’는 것과 특히 ‘미래를 보여 주시거나 알려 준다’는 것이 계시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유대 사회에 유행하던 묵시문학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여졌던 말입니다.
‘묵시 사상’은 특히 ‘종말론 사상’을 말합니다.
계시록을 읽어보면, 계시록이 당시 고대 사회에 유행하던 묵시 문학적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의 ‘다니엘’, ‘스가랴’, ‘에스겔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과 고난에 빠져 있어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할 때 계시를 통해 상징적 환상을 보여줍니다.
지금 이 상황에 때문에 ‘좌절하지 말라’,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이 너희들을 위해 장래 일을 준비하셨으며, 지금도 너희를 위해 일하시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설명하기 위해서 묵시문학은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환상’을 사용하시고, 그러한 환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상징적인 것들을 이미지화’ 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이나 묵시문학의 책들을 보게 되면, ‘천사’와 ‘짐승’과 ‘숫자’들을 만나게 되고, ‘번개’, ‘뇌성’, ‘지진’, ‘전투’의 장면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흰말을 탄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고, ‘천사들의 합창’이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묵시문학이라는 것은 ‘특정한 사건이나 특정한 동물들을 그리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초월이나 상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고, 이를 통해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묵시 문학을 대할 때 ‘그 환상이 묘사하고 있는 그림을 분해’하고자 시도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냥 그 전체의 환상을 큰 틀로 보아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메시지’만 들으면 되는 것입니다.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계17:1-5)
위와 같은 본문을 만나게 될 때 사람들은
‘여자가 탄 붉은 빛 짐승’이 무엇이고,
‘짐승의 몸에 있는 이름’은 무엇이고,
‘일곱 머리’는 무엇이고,
‘열 뿔’은 무엇이며,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있는데 그 옷은 무엇이며
‘금’과 ‘보석’과 ‘진주’와 ‘금잔’은 무엇인지
그런 것을 파헤치려다가 그 환상이 이야기하려는 메시지를 놓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것들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묵시적 환상’이 나올 때는 ‘먼저 그 전체가 가리키는 것을 보고, 그 다음에 분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환상은 요한계시록 17장5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바벨론, 즉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로마의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와 핍박’을 상징하고, 현대의 사람들에게는 ‘물질주의, 쾌락주의로 잠입해 있는 마귀의 세력’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들으면 되는 것입니다.
사실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옷’이라든지 ‘손에 들고 있는 것들’이라든지 그런 것은 2차적인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왜 요한계시록은 서술로 하지 않고, 그림으로 묵시형태로 나타나야 합니까?
그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상의 글과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나 슬픔을 만났을 때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떨리는 마음을 글로써는 설명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때 우리는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합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너무 사랑이 크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을 표현하기에 우리 글로써는 불가능할 때 상징을 통해 이미지화를 통해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을 묵시문학으로 기록한 것은 ‘계시록의 메시지를 로마제국에게 감출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지만 세상 사람들의 지혜로는 해석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기호’나 ‘숫자’, ‘상징’을 통해 기록한 것입니다.
둘째, 요한계시록은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여기에서 예언이라는 말은 ‘앞 일을 미리 말한다’는 의미로 헬라어로 ‘프로페티아’, 영어로는 ‘prophecy’란 말을 사용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운영되고 이루어질 것인가?’를 미리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점쟁이들이 맞추듯이 점을 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현재의 삶에서 어떻게 그 말씀을 의지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요한 계시록을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으로 말미암는 구속의 이야기’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들을 기록한, 예언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 가운데는 엉뚱한 예언을 찾아 기도원 또는 집회를 찾아 여기 저기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치 새해가 되면, ‘사주 팔자를 들고 점쟁이들 찾아가는 것처럼’ 이 땅에서의 미래를 점치러 가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그러한 ‘현실에서의 미래를 점쳐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미래는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성경에 기록하였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어떻게 지금 현실 앞에 감사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가?’
‘어떻게 하나님은 지금 이 세상을 운영하고 계시는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은 무엇인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 요한계시록은 서신서입니다.
‘서신’이라는 것은 ‘대상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은 표면상으로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보낸 편지의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는 각각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한 계시록이 쓰여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그 편지가 당시의 일곱 교회에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닙니다. 성경은 일곱이라는 숫자를 사용하여 이 ‘요한 계시록의 수신자’가 ‘전체 교회’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은 당시 로마의 압제를 받고 있었던 교회를 향해
‘지금은 너희들이 고통 가운데 고난 당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승리하는 교회가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실패 없이 그렇게 완성하실 것이다’라는 소망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세상에서 고난 당하고, 핍박 당하고, 힘겹게 세상과 싸우고 있는 이 시대의 교회에도 동일한 메시지로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묵시 문학’이라는 장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화하고 이미지화’하여 보여주고 있으며,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으며,
‘서신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현실에 적용’할 수 있도록 기록한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언제 사건들을 기록한 것입니까?
신학에는 요한 계시록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다른 관점들이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의 재앙의 사건들은 ‘AD70년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그 이전의 사건들’이라고 바라보는 ‘과거주의 해석’이 있는가 하면, 그와 반대로 요한 계시록의 재앙의 사건들을 ‘아직 닥치지 않았지만 미래에 일어나게 될 일들’로 보는 ‘미래주의적 해석’도 있습니다.
‘과거주의 해석’을 하는 분들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계시록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AD70년 이전’이라고 주장합니다.
요한 계시록에 기록된 모든 환난의 내용은 ‘네로 시대’에 핍박을 당했던 이스라엘과 ‘AD70년의 성전 파괴’를 비롯해서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이야기를 기록해 놓은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요한 계시록이 기록된 시기’는 기독교인들을 아주 심하게 핍박한 ‘네로 황제가 죽기 이전’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네로가AD68년에 죽었으니까 그 전에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AD70년 이전에 계시록이 기록되었고, 성경에 나오는 모든 환난과 고난은 이미 AD70년 이전에 다 끝났기 때문에 ‘이제 교회는 핍박과 환난은 없고 승승장구만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만일 그러한 주장을 따른다면, 그 이후에 태어난 우리에게는 이 ‘요한 계시록이 아무 상관이 없는 책’이 됩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일어난 일만을 기록해 놓은 것이라면 우리가 이 책을 공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계시록에서 기록한 사건들의 시기를 언제로 봅니까?
우리는 요한 계시록의 재앙의 내용을 상징으로 해석해서 역사 속의 전체 교회에 적용시키는 ‘상징주의 해석’을 따르고 있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사건들은 실제로 어떤 구체적인 사건을 기록했다기보다 ‘영원한 진리나, 하나님의 통치 원리, 선악간의 투쟁, 영적 상징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계시록에 기록된 사건들을 ‘시간적인 흐름’이나 ‘역사적인 흐름’으로 읽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 기록된 사건들을 현실에서의 ‘세계2차대전’이나 ‘핵전쟁’ 등과 같이 구체적인 사건과 연관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계시록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주제들을 ‘시간과 관계 없이 동시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시며, 우리는 이러한 여러 가지 환란을 통과하면서도 ‘그리스도를 모시고 승리하는 자가 되기를 바라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요한 계시록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나,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구체적인 사건’들을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교회시대를 통해 ‘교회가 겪어 내야 할 일들’과 ‘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을 보호하시며 결국에는 어떻게 승리하게 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위로와 격려의 복음이 적혀 있는 책입니다.

요한 계시록에서 종말은 언제입니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계시록을 대하며 가장 궁금한 것 중의 하나는 ‘종말이 언제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시록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종말에 대한 확실한 정립이 필요합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 12:4)
‘다니엘’에게 환상을 보여 주시며 ‘이것을 기록하라’ 하시고 ‘이 글을 봉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책은 앞으로 펼쳐질 내용을 말하는 것인데 계시의 내용을 이야기 합니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계 5:1-4)
그런데 그 ‘봉인된 책, 두루마리를 펴며 인을 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계 5:5-7)
‘아무도 뗄 수 없는 책, 두루마리’를 본문에 보면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루마리를 취하셨습니다.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계 6:1)
그리고 마침내 ‘어린 양이 두루마리에 봉해 있는 인을 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십자가에 죽으신 어린 양이 이 봉인된 두루마리를 떼시고, 이 말씀이 ‘뚜껑을 열어 알림과 같이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입장에서는 ‘종말(말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부터 다시 오실 때(재림)까지’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은 이미 도래한 종말 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며 종말의 기간을 ‘말씀으로 이기며 살아가라’고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계2.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본문: 요한계시록 1:1-3


지난 시간에서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요한 계시록’은 아직 오지 않은 세상의 끝에 일어날 일을 ‘수수께끼’처럼 엮어 놓은 책 아니라 실질적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책’입니다.
‘요한 계시록’이 성경의 마지막에 기록되었다고 ‘성경의 부록’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은 ‘성경의 부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한 책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존재케 된 ‘교회가 이 땅에서 겪어내야 할 일을 적은 책’이며, 그들이 이 일들을 잘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기 위해 소망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어떠한 선입견이나 특별한 것을 기대하며 읽기 보다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요한계시록을 차근차근 읽어간다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기록된 아주 쉽고 간결한 성경책’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계시록을 읽으면서 어떤 특별한 환상이나 해석을 하려고 의도하기 때문에 많은 혼란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서론 ‘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살펴본 것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면, 계시록은 ‘세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종말이 있으며,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것이며,
예수를 구주로 인정한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록은 ‘묵시문학’과 ‘예언서’, ‘서신서’의 세 가지 문학적 형태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말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의 기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의 사건에 대한 시기’는 실제적인 시간에 일어나는 구체적 사건을 계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원리, 선악간의 투쟁, 영적인 상징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래서 시간적으로 계시록의 사건들을 나열하고, 그 사건이 말하는 ‘구체적 사건’이나 ‘현재 우리가 어떤 사건 가운데 처해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인 것입니다.
‘계시록’은 교회시대를 통해 ‘교회가 겪어 내야 할 일들과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보호하시며, 우리 교회는 어떻게 승리의 나팔을 불며,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지를 보여주는 위로와 격려의 복음이 적혀 있는 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시록을 읽으면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오늘은 서론 부분인 ‘계시록 1장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계 1:1)
계시록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라고 시작을 합니다. ‘계시’라는 것은 ‘가려져 있는 것을 드러내는 것’ 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계시’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추측할 수도 없는 하늘나라와 하나님의 비밀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드러난 책’이 성경이기에 성경을 계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2:9-10)
이렇게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생각지도 못할 하늘의 일을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밝히 보여 주시는 것’을 ‘계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특별 계시는 유일하게 성경 밖에 없음’을 우리는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언’과 ‘계시’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계시’는 ‘말세에 일어날 현상들에 대해서 펼쳐지는 그림 같은 것’이고 ‘예언’은 장래 일어날 일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것을 자신의 계획과 의지를 동원해서 펼쳐 나가시는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언’을 통해 그 시대 상황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라는 말이 ‘소유격’으로 쓰여졌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계시’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요한 계시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그 복음이 적혀있는 책’이라는 의미입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1:1-2)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림자로 모형으로 보여주었던 그 하늘의 비밀이 바로 이 이야기이다’라고 하시면서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시는 마지막으로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완성되었고 더 이상 계시는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지금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는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계시’가 ‘성경으로 모자라기 때문에 더 추가되어야 할 정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의 완전성을 무시하는 사람들만이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된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에게 내려올 계시는 없습니다. 마지막이라는 것은 그 다음에 더 이상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마지막’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지막으로 계시를 완성하셨습니다. 그 완전한 계시, 그 홀로 충분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적혀있는 책이 요한 계시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책이지 두려움에 떨게 하기 위한 책이 아닙니다’
계시록의 목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계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주시는 목적’은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보여주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속히 일어날 일’이란 바로 ‘주님의 재림을 포함한 앞으로 말할 계시록의 기록들’을 말합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일한 사건이 종말론적인 사건이며, 주님의 재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재림할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악한 세력이 망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일은 반드시 일어나고 속히 된다’는 말입니다.

계시록의 저자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계 1:2)
‘계시록의 저자’는 ‘사도 요한’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A.D.95년도 도미티안 황제 때 밧모섬에 유배된 가운데 계시를 받게 되어 기록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시의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충분하게 기록하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 있는 그리스도인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사람’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들을 뿐만 아니라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1:22)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들은 자신을 속이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론적인 삶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 삶 속에서 말씀을 행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여져야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가 속히 이루어지는 소망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조금 힘들고 어려워도 소망을 가지고 감사하며 살 수 있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날은 반드시 속히 오기 때문입니다.
나가면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 ‘종말에 대한 바른 인식’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게 되고 ‘바른 교회론’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읽을 수만 있다면, 종말에 대한 두려움이나 헛된 망상이 아닌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며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계1. 서론-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10
계2.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27
계3.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 /35
계4.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46
계5.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 /54
계6. 촛대 사이의 인자 같은 이 /63
계7. 일곱 별의 비밀 /76

첫 번째 여행: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계8. 에베소 교회-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86
계9. 서머나 교회-죽도록 충성하라 /97
계10. 버가모 교회-세속화를 주의하라 /113
계11. 두아디라 교회-악을 간과하지 마라 /125
계12. 사데 교회-깨어나라 회개하라 /135
계13. 빌라델비아 교회-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 /144
계14. 라오디게아 교회-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153

두 번째 여행: 일곱 인의 재앙
계15. 하늘보좌 /166
계16. 하나님의 영광 /179
계17. 일곱 인으로 봉한 책 /188
계18. 성도의 기도와 찬양 /198
계19. 첫째 인의 재앙-적그리스도 /207
계20. 말을 틴 자의 재앙 /216
계21. 순교자의 삶과 진노의 날 /225
계22. 십사만 사천 /235
계23. 일곱째 인의 재앙 /247

세 번째 여행: 일곱 나팔의 재앙
계 24. 일곱나팔의 의미-1 /258
계25. 일곱나팔의 의미-2 /269
계26. 다섯째 나팔의 비밀. /278
계27. 여섯째 나팔의 비밀 /289
계28. 천사와 작은 책 /298
계29. 두 증인 /306
계30. 일곱째 나팔의 재앙 /319

네 번째 여행: 마지막 재난
계31. 여자와 용 /332
계32. 미가엘과 용의 전쟁 /344
계33.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256
계34. 땅에서 올라온 짐승과 666 /365
계35. 십사만 사천 명이 부르는 노래 /375
계36. 세 천사가 전하는 말. /384
계37. 마지막 수확. /392

다섯 번째 여행: 일곱 대접의 재앙
계38.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 /402
계39. 진노의 일곱 대접 /4126
계40. 아마겟돈의 전쟁 /423
계41. 큰 성 바벨론의 파멸 /432
계42. 큰 음녀의 비밀 /441
계43. 어린양의 전쟁 /451
계44. 바벨론의 최후 /460
정병철
서강대학교와 대학원 그리고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을 거쳐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서강대, 배제대, 철도대 등에서 정보통신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정부기관과 대그룹을 거쳐 정보통신회사를 설립하고, 코스닥에 상장하여 기업가로서 그 역량을 발휘하였다.
총신대학교 선교대학원, 대신총회신학연구원 등 여러 대학에서 미디어 선교, 미디어 목회, 문화선교, 커뮤니케이션 등을 강의하였으며, 현재 총신대학교 선교대학원에서 미디어선교를 강의하고 있다. 그리고 구리에 꿈의교회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렛츠고 요한계시록’, ‘하이테크 예배와 미디어 선교’가 있으며, 미디어와 문화선교에 대한 다수의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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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렛츠고 요한계시록
저자정병철
출판사두루마리
크기(154*224)mm
쪽수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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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201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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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정병철) 신간 메일링   출판사(두루마리) 신간 메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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