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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감성과 따스한 눈동자로 세상을 보게 하는 열린 에세이 시인이자 대학생 운동가인 저자가 일반 언론 매체에 기고했던 글을 모아 엮은 책. 기독교 정서를 담아 열린 감성과 따뜻한 눈동자로 가족과 이웃과 세상을 바라보며 쓴 에세이집으로 신자들 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을 위한 전도용 선물로 추천하고픈 책이다. 어드메쯤 왔을까.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세상이 드러나기 시작한 새벽녘, 고속도로 옆 한 민가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가슴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지고 그 민가의 대문을 노크했다. 노부부가 나왔다. 사정을 이야기하자 노부부는 따뜻한 물을 끓여주었다. ...벌써 오래 전의 일이 되었지만 눈이 내릴 때마다 그 날이 생각난다. 이른 새벽, 낯선 젊은이에게 따뜻한 물을 끓여주었던 경상도 노부부의 사랑을 다시 기억한다. - <그 해 폭설은 아름다웠네> 중에서

[본문 181~185 '그 해 폭설은 아름다웠네' 중에서]

새벽녘 낯선 이에게 따뜻한 물을 끓여주던 노부부의 사랑을 기억하며

벌써 오래 전 일입니다. 우리 부부는 생후 5개월 돤 딸을 안고 전라도 땅끝 마을 건너편에 자리한 완도에서 처가인 부산에 가기 위해 아침 8시 30분경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직통버스인 줄 알고 탔는데, 버스는 정류소마다 멈춰 서는 거였습니다. 더군다나 정원 외의 승객은 태우지 않을 줄 알았는데 입석 승객까지 태웠습니다. 승객들이 마치 짐짝처럼 보였습니다.

유홍준의 남도문화유산답사의 일번지이자 고려청자의 고장인 강진을 지나 장흥을 지나는데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삼십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산도, 들도, 도로도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버렸습니다. 버스가 가다서다를 반복하면서 두어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순천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8시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버스 기사는 더 이상 운행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듯 순천에서 하룻밤을 묵고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승객들은 거북이 걸음으로 가도 좋으니 계속 가자고 우겨댔습니다. 한참 동안 난감한 표정을 짓던 기사는 승객들의 요구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부산을 향해 시동을 걸었습니다. 버스 기사의 머뭇거리던 표정처럼 버스는 가다서다, 가다서다를 반복했습니다. 승객들은 그때서야 버스 기사의 말대로 순천에서 하룻밤을 묵고 갔으면 잠이라도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었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우리 아이에게 일어났습니다. 버스 안 공기가 탁해서인지 아이는 계속 울어대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우유를 타서 먹일 따뜻한 물도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저녁을 굶어야 했습니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저 눈발이 그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아이는 게속 울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승객들은 안타까워 했고, 우리 부부는 승객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차라리 아이를 업고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어드메쯤 왔을까.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세상이 드러나기 시작한 새벽녘, 고속도로 옆 한 민가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습니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가슴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고 그 민가의 대문을 노크했습니다. 노부부가 나왔습니다. 사정을 이야기하자 노부부는 따뜻한 물을 끓여주었습다. 고맙다는 짧은 말을 남기고, 버스로 돌아오자 승객들은 요즘 아빠가 아니라며 격려의 박수를 쳤습니다. 사실 어느 아빤들 그 상황에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박수는 어쩌면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우유도 못 먹고, 버스 안 탁한 공기 속에서 힘들어 한 아이에 대한 연민의 정을 담은 위로의 박수였을 겝니다.

아이는 오랜만에 우유를 먹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새 날이 밝았지만 여전히 버스는 거북이 걸음으로 기어가다 시피 하다가 드디어 오후 5시 30분에야 비로소 부산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장장 33시간의 긴 여행은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그 날 저녁 뉴스는 오십 년마에 내린 폭설이라고 보도했습니다....


..... 벌써 오래 전의 일이 되었지만 눈이 내릴 때마다 그 날이 생각납니다. 이른 새벽, 낯선 젊은이에게 따뜻한 물을 끓여주었던 경상도 노부부의 사랑을 다시 기억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딸아이를 데리고 직접 찾아가 감사의 마음을 꼭 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말이죠.

1. 지금은 역사의 들판으로 씨를 뿌리러 나갈 때
모두 모여 숲이 되자
내가 고친 역사교과서인가, 네가 고친 역사교과서인가
그래도 피붙이인걸
지금은 역사의 들판으로 씨를 뿌리러 나갈 때
신록의 계절에 편지를 띄우다
5월 광주
'5월 광주'의 빛 바랜 시편
울지만 말고 일어나 함께 가자
김대중 대통령님 전상서

2. 빨리 가잔다고 어디 빨리 가지던가
밭 갈아 엎는 봄날, 우리 형님은...
오려나, 책 권하는 사회
솔의 상처는 향기로운 송진을 흘린다
빨리 가잔다고 어디 빨리 가지던가
내가 그 이발관에서 맛보는 행복
가장 어려울 때 곁에 있는 사람이 친구입니다.
해태는 광줄를 안고, 광주는 해태를 안고 달려온 이십 년
사랑이 명의입니다.
그 서점이 있어 행복한 동네
거저 섬기는 것도 힘들 때가 있지요.

3. 아빠 어렸을 적엔
"아빠는 나빠는 아니고 바빠!"
사라진 자라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아빠, 우리 고양이 키워요!"
아빠 어렸을 적엔
우리 막내 자신감, 10점 플러스!
예삐가 아빠보다 더 좋아?
내 아이 사랑하는 마음이 눈물입니다.
오늘은 우리 아이들 저금통 여는 날
딸아이의 커플링

4. 노오란 꽃 한송이와의 대화
그 해 폭설은 아름다웠네
어린아이에게도 이토록 속 깊은 우정이 있는 것을
노오란 꽃 한송이와의 대화
화창한 봄날, 눈꽃 구경하세요!
사람 사는 모습을 닮은 그 야생화들
뒷동산에 올라, 고 놈들 참 많이 컸네
4월 단상
산 하나를 넘으면서 얻은 깨달음
보리피리 불며 황톳길을 걸어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들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