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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어머니 새 예루살렘 능금 꽃향기 가득하고 벌 나비 윙윙대는 고향으 뜰에서 어머니는 내 젊음의 짐 보따리 하나 끙, 하고 머리에 얹으셨다. 희비가 엇갈리는 공합대합실에서 관처럼 머리 두른 짐 보따리 내려놓으시며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잘 가거라, 훗날 저기서 다시 만나자구나. 어머니가 가리키시던 하늘에는 무심한 구름 한 점 한가하게 떠돌고 있었다. 강산도 변하는 긴 세월 지나 태평양건너 신대륙에서 다시 만난 그리운 어머니, 아침공기 맑다고 새벽같이 일어나시더니 딸네 짐 둘러 싼 거목의 울타리가 못내 갑갑하신 듯 얼굴 봤으니 이제 가야지, 서둘러 향하시던 델레스 공항에서 또다시 가리키시던 하늘 먼 곳 저기서 다시 만나자 어제 주일아침, 전화선을 타고 온 어머니의 따스한 목소리 아직 기운 있을 때 한번 더 가마 만일 그르지 못하더라도 슬퍼하지 말거라, 머지않아 우리 모두 저기서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어머니의 저곳 그곳은 어디에 있을까 태양계를 지나 은하수를 건너서 수 억 광년 머나먼 곳에 새 예루살렘, 영원한 도성은 예비 되어 있을까 오늘도 나는 윙윙대는 컨베이서 숲 속 고달픈 도시의 빨래터를 늦도록 서성이며 내 어머니의 영원한 고향 어딘가 묻어두고 말없이 내려앉은 잿빛 하늘을 올려다본다.

[본문 268∼271쪽, '클리닉이 있는 풍경'중에서…]

두어 달 전인가, 비퍼 스토어가 정리하고 나가 버린 후 오랫동안 비어 있던 바로 옆가게에 닥터 오피스가 들어섰다. 덕분에 조용하던 쇼핑몰이 북적거리고 한결 생기가 돈다. 목발을 짚은 사람, 휠체어에 떼밀려 오는 사람, 험상궂은 인상의 남자,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사람 등등, 클리닉이 몰고 온 가지각색의 풍경들이 주차장 여기저기서 어른거린다.

이즈음 내가 드랍 스토어 유리창 밖으로(본의 아니게)관찰한 바에 의하면, 클리닉에 오는 손님들은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침한 인상의 환자들 그 누구도 진료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헐레벌떡 달려오는 일은 없다. 오히려 예약시간 30분전부터 나타나서 느긋하게 기다린다. 의사나 간호원이 미처 출근하지 못했을 때는, 승용차 안에서 등을 기대고 앉아서, 담당의사로부터 받은 듯한 서류를 관심 있게 읽거나 신문 등을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가끔씩 그들의 얼굴에 불안하고 초조한 그림자가 스쳐 가기도 하지만 그것은 결코 시간을 낭비하는 데서 오는 초조감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시간의 개념은 없다.
"오늘은 바빠서 안 되겠어요. 다음에 올게요."
아무도 그렇게 말하거나, 한 번도 제 시간에 출근한 적이 없는 의사나 간호원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냥 묵묵히 앉아서 기다린다. 짧은 시간의 투자로 더 길고 건강한 미래를 비축하는 자들의 관대함 침묵이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일반 사회와 같은 신분의 격차가 없다. 남자와 여자, 늙은이와 젊은이,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가 한결같이 흑인 의사의 데스크 앞에 다소곳이 앉아서 머리를 조아린다. 아무도 그 앞에서 자존심을 내세우거나 뭔가를 알아 달라고 심통을 부리지 않는다. 게다가 옆집 흑인 의사가 유능해서인지, 주민 아파트를 비롯하여 교회와 주유소, 맥도널드와 동네 구멍가게, 미장원과 이발소등이 온통 유색 인종으로 메워진 틈 사이로 희멀건한 모습을 드러내는 백인 손님도 있다. 이 동네를 벗어나야만 볼 수 있는 사람들이 클리닉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는 그 점에서 클리닉이란 곳은 정말 대단한 장소임에 틀림없다.

그곳은 또한 많은 사람들이 신앙처럼 떠받드는 장소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몸에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직장이니 뭐니 만사를 젖혀 두고 병원이나 클리닉으로 달려간다. 손으로 감지할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 대한 믿음은 과연 대단해서, 이 따위의 칠 팔십 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영원한 것'의 몇 배나 더 막강한 파워를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 속에 있는 영혼도 육신처럼 상처입고 병들어 신음한다는 사실을 아세요?"
하고 물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혼이오? 글쎄요……."하고 태연하게 웃는다.
손가락 끝에 생긴 상처가 파상풍이라도 몰고 올까 봐 클리닉으로 달려가는 사람에게, 우리들 속의 영혼과 그 보이지 않는 출혈에 대해 슬며시 언급이라도 한다면 어떨까.
"영혼은 무슨……보이는 것도 감지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하고 한마디로 일축해 버리겠지.

오늘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는 클리닉 손님들은 오피스 앞 주차장에 느긋하게 진을 치고 앉아서 명상에 잠기거나, 물오른 유목의 가지 끝을 바라보며 끈기 있게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 마침내 흑인 의사와 간호원들이 '소리(sorry)'를 연발하며 아침 출근시간의 교통체증을 뚫고 헐레벌떡 달려오면, 늦게나마 와준 것이 고맙다는 표정으로 미동도 없이 앉아 있던 육신을 슬며시 일으키는 것이었다.

만일 그 상대가 세탁소의 코리언이라면 어땠을까?
"당신네들 때문에 직장에 늦겠어요! 다신 여기 오나 봐라!" 하고 협박까지 하지 않겠는가!
똑같이 세균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지만, 서로가 받는 대우는 천양지차이다. 클리너와 클리닉이라는 미세한 언어적 차이에 반비례하는…….
뭐 어쨌거나 상관없다. 나는 여전히 세탁물을 접수하고, 택을 찍고, 또 나를 믿고 신뢰한 나머지 그들의 소중한 가먼트를 희고 깨끗하게 처리하여 그들이 원하는 시간에 내놓을 것이다(아침 출근길의 밸트웨이만 막히지 않는다면). 떠나는 손님에게 너무 신경과민이 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손님은 유동적이고 필요에 의해 늘 분산되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벌써 우리 가게 단골이 되어 있는 예쁜 옆집 간호사 아가씨에게 한마디쯤하고 싶다. 우리 이제 보이는 세균 사냥은 좀 쉬었다 하고 영혼 깊숙이 숨어서 기생하는 악충도 좀 제거하는 게 어떻겠냐고…….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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