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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는 "미술에 열정을 쏟고 자기의 부서진 생애를 예술에 바쳤다."는 뜻에서 뿐만아니라 그의 모든 열정과 고뇌에 찬 생애 전부를 영원과 신적 합일을 추구하던 신앙에 바쳤다는 뜻에서 그는 순교자였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 그의 작품 가운데 오직 한 점만을 팔 수 있었다."는 것과 "자살했다."는 뜻에서 실패자가 아니라 모든 세상적 가치와 물질추구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철저한 실패자였다.개인적인 안락을 위해서 남긴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정신병자 요양원에서 그의 짧은 생애의 마지막 대부분을 보냈다"는 뜻에서 그가 미친 것이 아니고 죽기까지 고난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영원을 추구하였다는 뜻에서 그는 신앙에 미친 사람이었다. 그리고 "현대 가장 고가의 가격으로 그의 작품이 평가된다"는 뜻에서 영웅이 아니라 자신의 고난을 잊어버리기까지 고통 가운데 있는 다른 사람들의 고난을 함께 나누려 하였다는 뜻에서 그는 분명 신앙의 영웅이었다. -본문중에서 <부록>고호와 월트휘트만 * 책의 내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본문 96-100쪽 '고호의 영성과 예술(Spirituality and Art of Vincent van Gogh)'중에서]

고호의 "몸의 가시"

고호가 죽은 뒤 오랜 세월, 거의 최근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여 고호의 정신상태를 추정해 보려고 하였다. 그에 대한 정신병학적 설명이 가장 흔한 것이지만 이미 앞에서 말한 것처럼 고호는 정신병자가 아니었다. 또 "대치된 아이이론(replacement child)에 의하면 고호가 출생하기 일년 전에 사산된 형의 이름도 빈센트 반 고호였는데 고호가 죽은 형에 대한 책임감이 죄책감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호 자신의 글을 통해서 추적해 보아도 고호는 한 번도 이점에 대하여 고민한 적이 없었다. 당시에는 가족 가운데 같은 이름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이 점은 오늘날 미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고호가 반사회적 인물이며 대인관계가 어려웠다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동생 테오와 나눈 관계는 평생 지속되었고 우체부 룰랭과도 깊은 우정을 나누었으며 다른 화가 친구들과도 매우 좋은 관계를 맺었다. 성직 옷을 입은 아버지의 위선적 행동을 보면서 그와 결별하기는 했어도 고호는 여전히 아버지의 참된 인간성을 귀하게 보던 사람이다. 고호는 1889년 9월 생 레미에 있는 요양원에 있을 때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람이 그림만 그리면서 살수는 없다. 다른 사람들도 만나고 어울리면서 조금씩 새로운 생각도 접하고 지내야 한다"고 하면서 자기는 그림도 그리고 싶고 사람도 만나고 싶고 인생을 만드는 모든 것을 접하고 싶다고 하였다. 물론 고호의 성격에 다소 사귀기 어려운 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고갱을 데려왔던 "노란 집"을 꾸며 놓고 그곳을 화가의 공동체로 만들어 보려던 꿈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다.
칼 야스퍼스의 정신병이론도 있는데 고호의 화풍변화가 그의 정신병 때문이었다는 오판을 내린 것이다. 고호가 정신병자였다는 주장이 지금도 여전히 많은 편이고 여러 다른 병명도 수없이 많을 만큼 고호는 말하자면 신비의 인물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연구와 주장들은 우리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줄지는 모르지만 그의 그림 이해나 더욱이 그의 종교신앙 이해를 위해서는 역효과를 내기 때문에 조심해서 들어야 옳은 것 같다.
어쨌든 귀를 자른 사건 때문에 고호를 위험한 존재로 생각한 나머지, 아흘르 주님의 진정으로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두 주간에 걸쳐 진단을 받는 동안 그곳 병원에 머물다가 마침내 1889년 5월 아흘르에서 북쪽으로 약 20킬로미터 떨어진 생레미에 있는 생 폴 드 무솔(St. Paul-de-Mausole)정신병 요양원에 가게 되었다. 본래 12세기 어거스틴 수도원이었던 이 요양원에 오자마자 고호는 심한 악몽에 시달렸다. 자살하는 악몽도 꾸었지만 고호의 간절한 소망대로 회복의 기미가 보였다. 한편 고호는 병이 진행되면서 종교에 더 큰 관심을 보였고 종교적 환상을 보기 시작하였다.
일년 뒤 생 레미 요양원에서 퇴원할 정도로 증세가 호전되었다. 1890년 5월 2일 고호는 오베르로 가서 유명한 화가들과 폴 페흐디노가쉐(Dr. Gachet)의사와 친분을 갖게 되었다. 전부터 고호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이 우울증이 고호로 하여금 더욱 금욕적 경건에 몰두하게 했던 것이다. 죽음으로써 시련 많은 지상 생애로부터 해방되어 그리스도와 궁극적 합일을 이루기까지 성도의 삶은 한 긴 순례요, 여정이라는 것을 다시 강조하게 되었다.

여기서 의사들이 말하는 증세를 살펴보면 고호가 어떤 고난 가운데 시달리고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아담스(Adams)와 빅토르(Victor)의사는 내생적우울증의 전형적인 증상으로 1)식욕부진과 체중감소, 2)불면증, 3)심리장애와 흥분, 4)성욕감퇴, 5)기운쇠진과 피로, 6)자기비난, 무가치한 느낌, 죄책, 7)우유부단, 기억상실, 집중불능, 8)죽음이나 자살 생각 또는 자살시도의 여덟 가지 증상을 열거하였다. 고호 자신이나 고호가계의 우울증 및 자살 역사와 관련시켜 볼 때 고호의 경우는 위의 증상들 가운데 적어도 여섯 가지 증상으로 고생한 것을 볼 수 있다.

여러 가지로 살펴볼 때 고호를 정신병자라고 보는 것은 부당하며 한 두 가지 원인으로 그의 행동을 규정지으려는 것은 곡해를 불러 올 수 있다. 고호는 여러 복합적인 몸의 고통을 심하게 겪은 사람인데다가 재정난까지 겹쳐 고생했던 "고난의 사람"임에도 틀림없다. 고호의 편지에 의하면 마른 빵과 감자 같은 길거리에서 파는 싸구려 음식이 그의 주식이었다. 그래서 고호는 심한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고 비타민이 부족해서 생기는 병으로 시달렸다. 이미 30대 초기에 그의 치아가 다 망가져서 틀니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머리말영원에 대한 갈망

1. 고호의 가정 배경과 초기 신앙생활
그로닝겐 학파와 아르미니안주의의 영향
아저씨 요하네스 스트리커의 영향

2. 순례자이며 나그네인 반 고호
고호의 회심체험과 열렬한 복음주의 신앙
탄광시대 선교사 시절의 고난영성
토마스 아켐피스와 존번연의 영향
땅의 사람 반 고호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고난영성

3. 전통 종교 사상과 근대 신사상 종합 시도
제도 종교에서 버림 받은 반 고호
근대의 새로운 사상을 찾아
전통적 고난영성은 버리지 않고
"감자 먹는 사람들"
여전히 성서의 사람인 반 고호
자연의 품에 안겨
새로운 표현 언어를 찾아
르낭의 [예수전]

4. 고호의 "몸의 가시":시련과 삶의 위기
고호에 대한 편견을 버리기 위하여
고호의 "몸의 가시"

5. 영원의 문턱에서
다시 믿음의 고향을 찾아
고호의 종교화 삼부작
"밀밭 위로 날으는 까마귀들"
"별이 빛나는 밤에"
"영원의 문턱에서"

마치는말빈센트 반 고호:"상처 입은 치유자"
19세기 성프랜시스
편지의 사람

<부록> 반 고호와 월트 휘트면
1. 휘트먼과 반 고호:"별이 빛나는 밤"과 그 밖의 같은 점들
반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과 휘트먼:그 자료에 관한 연구
정신병자의 그림인가? 묵시적 환상인가?
현대판 겟세마네 동산의 고뇌?
휘트먼의 시는 "별이 빛나는 밤"해석의 열쇠
컬럼부스의 항해이미지
잰 헐스키의 비판과 진 슈빈트의 답변

삶은 경작, 죽음은 거기 따른 수확인 것을

고호의 연보

후기

고호의 영성과 예술
슬픈 예수’의 자화상, 삶으로 그리다

“나는 왜 이렇게 모든 일에 서툴지? 총 쏘는 것조차 제대로 할 줄 모르니 말이야.”
고통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늘 소외당하고 아프고 버려졌던 빈센트 반 고호. 그는 죽는 순간에까지 순탄하지 못했다.
자신의 가슴을 겨누어 쏜 총이 ‘명중’되지 못해, 이틀간이나 사경을 헤매다 죽었으니 말이다. 교회로부터 내몰리고 부모, 사랑하는 여인들에게 버림받았던 고호는 이렇게 힘겨운 단말마를 내지르며 ‘천상’의 고개를 넘었다. 그의 삶, 어이 없는 웃음이 난다. 웃음 끝에 눈물이 배인다.

고호를 피상적으로 기억하는 사람 대부분은, 자신의 귀를 자른 사람, 자살한 사람, 광기의 사람 등 비종교적이면서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비정상’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고호는 사실 그랬다. 자신의 귀를 잘랐으며 자살했으며 광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귀를 자른 것은 뇌의 옆부분이 기능장애를 일으켜서 생기는 일종의 ‘심리적 간질병’ 때문이었다. 그가 ‘광적’이었던 것은 ‘정신병자’로서가 아니라 죽기까지 ‘고난과 슬픔의 사람’ 그리스도를 본받아 영혼의 순례를 행하고자 했던 ‘신앙에 미친 사람’으로서였다. 그가 자살한 것은 유전병적으로 일평생 시달렸던 우울증의 영향 아래, 죽음을 통과하여 도달할 ‘영원’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이러한 점들을 이해한다면, 고호는 더 이상 ‘미친 사람’으로 곡해될 수 없다.

<고호의>영성과 예술>을 엮어낸 최종수 목사는 “한 인간의 고통을 멀리 서서 함부로 관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역시 고호의 예술과 영성에 대해 조회가 깊은 ‘전공자’는 아니지만, 자신이 알게 된 고호에 대한 ‘놀라움과 감동을 나누어’야겠기에 자료수집과 연구를 통해 책을 펴냈다. 또한 “휘트먼의 묘가 있는 뉴저지 켐든 근방에서 25년을 살았던 관계로, 휘트먼의 묘가 있는 묘지를 종종 방문하여 주말 한때를 보내던 사람으로서” 고호와 휘트먼에 대한 비교연구를 부록으로 실었다. 고호에 대한 이해를 한몫 거드는 부분이다.

최종수 목사는 “고호는 미술에 열정을 쏟고 자기의 부서진 생애를 예술에 바쳤다는 뜻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열정과 고뇌에 찬 생애 전부를 영원과 신적합일(神的合一)을 추구하던 신앙에 바쳤다는 뜻에서 순교자였다”고 말한다.
‘영원과 신적합일’. 고호의 생애나 그림에서 어떻게 신에 대한 열망을 찾을 수 있을까. 그는 탄광지대에서 전도사생활을 하다가 교단으로부터 쫓겨난 ‘실패한 목사 지망생’이지 않던가. 사생아까지 딸린 거리의 창녀를 아내로 삼으려 했던, 당시 ‘속물’로 규정됐던 인물 아니던가. 그는 <귀가하는 광부들> <감자먹는 사람들> 등 민중적인 그림을 그렸지만, 아니, 무서운 폭발로 지하에 갇힌 광부들을 구하기 위해 광구에 들어갔다가 자신이 화상을 입는 고통을 당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만으로 어떻게 ‘영성’을 말할 수 있는가. 심지어 그는 교회 안에서 졸거나 낙심해 있는 농부들의 모습이나, 불밝혀진 집들 사이에 혼자 불꺼진 채로 서 있는 “얼음같이 찬 위선을 가진 회칠한 벽”의 교회를 그리지 않았던가.
최 목사는 고호의 그림 소재들과 인생 여정의 모든 순간에서 그의 ‘영성’을 읽어낸다. 가령,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은 많은 것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했던 고호의 말을 바탕으로, “고호가 거리의 여인 시엥과 두 사생아를 돌보았던 것은 자신의 신앙을 그대로 실제 삶에 적용한 것이다”라고 해석한다든지, <감자먹는 사람들>이란 그림을 “그들의 검소한 음식은 성례전의 빵과 같이 신적 임재를 간접으로 보여주면서 어두운 벽에 걸려 있는 수수한 십자가와 병행을 이루고 있다”는 식으로 풀이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호가 그림에서 자연에 대한 소재를 많이 이용한 것은 그가 ‘무한의 계시인 자연의 품에 안겨’ 신(神)과의 신비적 합일을 소망했기 때문이라면서, 해바라기, 싸이프러스 나무, 밀밭 등의 의미를 재조명한다. 예를 들어, 일반 비평가들이 ‘죽음에 임박한 심리적 위기’라고 해석하는 <밀밭 위를 나르는 까마귀들>을 고호의 편지나 다른 그림 속 밀밭의 의미 등을 근거로 “밀밭은 삶의 주기 가운데 재생과 신의 임재를 나타내고, 까마귀는 죽음과 재생(부활)의 순환을 보여준다”고 해석한다.

고호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코드가 되는 한 가지는 역시 ‘죽음’이다. 그는 왜 자살했을까. <그리스도를 본받아>(토마스 아 켐피스), <천로역정>(존 번연) 등에 심취하면서 성도의 영적 순례에 깊이 관심했던 고호는 왜 ‘함부로’ 자신의 순례길을 마감했던 것일까. 최 목사는 이에 대한 이해의 열쇠로, 고호가 가졌던 ‘고난영성’의 신앙을 꼽는다. 그리스도를 ‘겟세마네 동산의 슬픔의 사람’, ‘십자가 위의 고난의 사람’으로 여기며 본받고자 했던 고호는 마치 나비가 되기 위해 껍데기를 벗는 유충과 같이 ‘일시적 존재(몸)’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고호는 생전에 자신의 그림이 단 한 점 팔렸을 정도로 이름 없는 화가였으며, 경제력이 없는 덕분에 동생 테오에게 평생 생활비를 조달받았던 ‘초라한’ 인생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의 인생이 정말, 쓸쓸한 인간의 고뇌로 점철된 ‘비참한’ 것이었을까. 그림 속에서 ‘죽음의 이미지’를 ‘이제 막 미소지으려는 순간’으로 표현하려 했던 고호를 ‘비굴한 자살자’로 치부할 수 있을까.

고호는 자신의 말년 그림 <수확하는 사람>에서, 한낮에 밀을 거두느라 애쓰는 한 농부에 대해 말한다. “이 죽음 속에 슬픔은 없다. 환한 대낮에 모든 것 위에 순금의 빛으로 홍수처럼 쏟아지는 태양과 더불어 그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 주간 기독교 / 곽성혜 기자 / 200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