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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에 대한 황금률  
A.W.토저 명언록 시리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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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역자 : A. W. 토저/임은묵  |  출판사 : 예찬사
발행일 : 2018-01-20  |  (152*225)mm 272p  |  978-89-7439-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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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 토저의 전기를 쓰려고 연구할 때, 나는 오랜 세월 토저 박사의 부교역자로 섬겼던 레이 맥아피 목사와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 맥아피 목사가 한 말 중에 나를 오랜 세월 사로잡은 것은 “그 누구도 토저처럼 말할 수 없었습니다”였다. 그때는 그의 말이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오랜 세월 토저의 사역을 연구하던 중에 나는 맥아피가 말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A. W. 토저는 독창적으로 말하는 방법이 있었다. 나는 토저가 어떤 것이든 절대로 즉흥적으로 말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무엇이든지 주의 깊게 생각한 다음에 말했다.

나는 이 책에서 토저의 모든 책을 샅샅이 파헤쳐서 그가 진실로어떤 인물이었는지를 독자들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믿어지는 주옥 같은 글들을 뽑아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 있는 부분은 토저가 1950년부터 1963년에 하늘나라에 가기까지 편집인으로 섬겼던 연합주간지 위트니스에서 발췌한 것이다. 위트니스 지에서 편집한 글은 수백 개이며, 주제별로 정리되었다. 토저의 글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중, 나는 그가 생전에 특히 글쓰기를 어떻게 발전시켰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자신만의 말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비록 위트니스 지가 토저가 속했던 교단에서 발행한 잡지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사실은 대다수의 사람이 A. W. 토저의 사설들을 읽기 위해서 그 잡지를 구독했다는 것이다. 토저의 사설들은당시 전 세계에서 출판되었다.
이 책을 엮기 시작했을 때, 나는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어디에서멈춰야 하는지 좀처럼 알 수 없었다. 내가 그의 사설들을 엮은 목적은 A. W. 토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짧은 글들을 통해 그를 잘이해할 수 있도록 소개하기 위함이다.

당신은 이 책에서 토저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더불어, 나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SNS에 사용될 수 있을 만한 짧은 글들을포함하고자 했다.만약 이 책을 통해 누구도 유익을 얻지 못한다면, 나 한 사람이 유익을 얻은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준비하는 동안에여러 번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그때마다 토저의 글들이 내가 오랫동안 격려받지 못했던 것을 격려해주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도하는 바이다.
물론, 나는 설교자들과 연설가들과 저술가들이 토저의 글들을 통해 유익을 얻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엮기 시작했을 때염두에 두지 않은 부류는 나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토저의 글을 통해 용기를 얻으려고 읽을 사람들이다.

토저의 글들이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그의 글들이 오늘날에도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토저가 1963년에 사망했다는 것을 가끔 기억해야 했다. 하지만 토저가 남긴 매우 중요한 말 중에는 “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진리가 아니며, 진리는 무엇이든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토저가 자신이 살던 시대에 교회에 관하여 말한 동일한 문제들은 이 시대의 교회들에 말해야 할 동일한 문제이다. 토저와 같은 사람은 절대로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절대로 그가 자기의 시대의 사라질 유행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된 진리에 관심을 두었다.
Chapter 01
그리스도교
당신이 그리스도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그리스도에 관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리스도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위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기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경험과 십자가에 못 박힌 삶을 사는 것의 원동력의 깊이를 이해하기 전에 놓여야 한다.

나는 열정적인 관찰자들이 우리의 유명한 복음주의 종교가 진실로믿음의 선진들로부터 얻은 것인지, 아니면 단지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으로 불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게 하려고 그리스도교의 허식으로 얇게 변장한 이교도주의의 한 유형인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고 믿는다.

오늘날의 다수는 그리스도교가 마치 상점의 선반에 진열된 제품인 양 마케팅을 사용하여 그리스도교를 유명하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을 높일 수만 있다면 기꺼이 종교적으로 되려고 한다.이것은 기이하게 보일 수 있으며, 어쩌면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의 교회 속에서 작용하는 가장 파멸적인 요소 중 하나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데 필요한 이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을 강탈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날의 그리스도교 안에 있는 이 교묘함의 가장 기괴한 표본은 하나님을 희생시켜서 사람을 높이는 종교적인 오락과 분위기의 측면에서 보인다.

이 “기분 좋게 하는” 그리스도교는 완전히 새로운 종교적 자립 산업을 육성했다. 당신이 베스트셀러 도서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에 대해서 더 기분 좋게 느끼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리스도교는 단지 성경 속 예수님의 가르침이 자신들의 이미지를 만들고 자신들의 자아를 강화하고 자신들을 행복하고 기분 좋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고 믿는 많은 추종자의 무리일 뿐이다. 서점에 가보라. 그리하면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런 사고 유형을 부추기기 위해 쓰인 책들이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것을 볼 것이다.

당신이 그리스도교에 관하여 알고 있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 그리스도교를 어떻게 보고 느끼느냐이다. 그리스도교의 이 형식은 성경적 진리가 아니라 유물론의문화적 관련성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주위의 문화와 관련이 없는 교회에는 화가 임할 것이다.

“내가 빚을 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내 빚을 갚아주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값싸고 합법적이고 상업적인 그리스도교!

사람은 떡에 관한 모든 것을 알면서도 굶주려 죽을 수 있다. 사람은그리스도교의 역사적 사실들을 모두 아는 동안에 영적으로 죽은 상태로 있을 수 있다.

혼란은 자칭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그리스도교는 세상과 너무 얽혀있기때문에 수백만의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근본적으로 신약 성경의 모범을 놓쳤는지를 추측하지 못한다.

성령님께서 내재하시는 삶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섬세하고 더 민감하게 된 소수의 특권층 사람이 즐기는 그리스도교의 특별하고 호화로운 판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전 세계의 구속 받은 모든 사람들의 전형적인 상태다.

유대교는 그리스도교의 전조가 되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에 예속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교를 놀이터로 생각한다. 그들은 틀렸다.
그리스도교는 놀이터가 아니라 전쟁터다.

그리스도교는 비이성적이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삶도 추론할 수있는 것에 세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은 이성이 종 노릇하는 영역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성이 아니라 자기의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믿음은 이성의 경계에서 책임을 떠맡는다. 신자에게 믿음은 이성에 의해 얻어지지 않는 지혜의 큰 영역들을 열어주는 지식의 기관이 되었다.

이제는 그리스도교가 세상적인 일에 대하여 거의 반대하지 않는다.사실 오늘날 많은 교회와 세상은 거의 차이가 없다. 우리 주변의 세계와 관련성을 갖기 위한 우리의 모든 노력은 오늘날 세계에서 우리를 부적절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 왔다.

오늘날 가여운 복음적 근본주의 교회는 소위 학습의 전당으로 끌려가고 있으며, 그들의 그리스도교는 인류학과 심리학이 섞여있다.
이제 둘 다 희석되어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국면을 변화시키는데 사용된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의 백성 곧 신자들인 우리에게 가장 큰 모욕이 무엇인지를 설명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설명하실 수 없는 자기 백성을 다시 갖게 될 때, 그분께서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소유하시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영원한 기적이다. 이것은 스스로 영속하는 기적이며,연속적인 기사와 신비다.

그리스도교는 자신을 의식하지 않는다. 숨김없는 수수함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그 안에서 완전한 삶의 권리를 의심하지 않고 그 안에서 산다. 점잔빼며 말하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무비판적 순결을 받아들이고 아이의 성실함으로 삶을 바라본다.

우리는 외부와 단절한 상태에서 그리스도교의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유리구슬 속으로 들어가거나 마음을 들뜨게 하거나 지쳐 빠지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 시대’라고 부르는 것과 관련하여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교는 성령님이 없는 인간적 재능, 성령님의 감동이 없는 예리한 심리학, 사업 수단, 정치기술, 그리고 성령님의 은사가 없는 판매기법을 통하여 움직여질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종류의 보험을 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험 가치로서 그리스도교를 원한다.
그들은 지옥이 있음을 믿고 그것을 버리기를 원한다. 그들은 천국을믿고 그것을 얻기를 원한다. 그들은 그들의 죄의 실재를 믿고 죄의 결과를 피하고자 한다. 그들은 그들이 죽을 때 안전한 피난처가 있다는 것을 보장받기를 원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교가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보이므로,보험 가치로 그리스도교를 얻는다. 만약 내가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면, 그것은 내가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가지 않을 것을 보장해준다.그리고 결국 그리스도교는 내 영혼에 좋은 것이다.

자신들을 일컬어 교회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도처에 있다. 여기에도 그리스도인이 있고, 저기도 그리스도인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 외에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진것 중 외부적 혜택 외에는 원하는 것이 없다. 그들은 만나를 원하고, 메추라기를 원하고, 바위에서 나오는 물을 원하고, 보호를 원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도움을 원한다. 그들은 너무 깊이 빠지지만 않으면 그리스도교가 대중적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로 알려지기를 원한다.

오늘날의 우리가 가진 끔찍한 모조품은 거룩함이 없는 그리스도교다.

그리스도교의 가장 우선시되는 특성들은 거룩함과 순결과 올바른 삶과 올바른 생각과 올바른 갈망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그 안에 거룩함이 없는 그리스도교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특정한 규칙과 규정과 의식을 고수하는 종교가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갈 때만 만족할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한다면, 오늘날 그리스도교에 들어오는 모든 천박하고 헛된 것들을 받아들일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예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결정한다.

그리스도교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에 모든 목적이 있으며, 하나님의 놀라운 성품을 찬양하고 기뻐한다. 다른 어떤 종교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리스도교만큼 높이 올라가지 않았다. 그리스도교에 관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다.

나는 오늘날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교에 들어온 많은 것에서 돌아서기를 갈망하는 때가 있다는 것을 시인해야 한다. 내 생각에는 그것은 그리스도교가 아니며,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개념이 얼마나 비열한지를 알게 하려면 무슨 일이 일어날 필요가 있다.

세상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은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교가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 그리스도교의 내면을 키워야 하며 우리 세대에 그 주제가 불타게 해야 한다.

나는 사람들을 종교의 외면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세우신 놀라운 그리스도교의 내면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열정을 갖고 있다.

오늘날 교회에서 자라난 약하고 무기력하고 지친 유형의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당신이 이러한 그리스도교를 믿으면더 좋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 왜냐하면, 더는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에게나 불쾌감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유혹을 받는다.그러나 나는 그리스도교에 물을 타서 희석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안된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잘못된 것에 아니다라고 말하고 올바른 것에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교를 성경 진리에 대한 오해에 기반을 두게 했다.우리는 그리스도교에 대해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교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리스도교의 삶을 마음으로 살지는 못한다. 머리 지식과 마음 지식의 차이점은 마음이 하나님의 현존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반면에 머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는 상황은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감각이 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고,심지어 그분에 대해 노래한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그분께서 거기에 계시지 않는 것처럼 살아간다. 이것은 그리스도교를 세계의 다른 어떤 종교보다 아래에 있게 했다. 그리스도교가 다른 어떤 종교와 동일하지 않다고 말하는 내 말을 믿어라.

종교는 신자가 자신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믿느냐에 따라서 높을 수도 있고, 낮을 수도 있고, 기초적일 수도 있고, 순수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인식하는지에 따라 그리스도교가 약한지 강력한지를 보여줄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직관적인 지식 없이 설명될 수 있는 교리로 축소되고,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이 없다면, 그리스도교의 경이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나는 하나님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부인하는 가르침과 인간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가르침을 조금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참된 종교는 사람에 의해 발견되거나 선택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는 천국에서 아래쪽으로 자라나는 것이지, 지구에서 위쪽으로 자라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구에 서 있지 않는다. 그 뿌리는 천국에 있다. 그래서 사람은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지식이 전혀 없다. 진정한 종교는 위로부터 계시된다.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리는 인간의 도덕적 반란이 그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했고, 그를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했다는것을 선언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은 것은 죄다.

당신의 그리스도교 신앙이 목사의 설교에 달려있다면, 당신은 당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상태다.
복음주의 교회들은 성경적 겉치장으로 인본주의가 될 때까지 퇴보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본주의가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는 그리스도교를 원한다. 그리스도교는 절대로 사람과 더불어 시작하지 않는다.

많은 그리스도인들(또는 적어도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부르는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교를 자신의 삶에 부속물로 여긴다.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어떤 면에서도 불편하게 되는 것을 거부한다.

내가 “복음주의 변두리”라고 부르는 교회의 영역(플레이보이들이 매우활발하게 떠드는 과격파 복음주의자들)은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것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그들에게 멋지고 깨끗한 재미를 많이 누리게 해주고 모든 것이 끝날 때 그들을 천국에 가게 해주는 것이 되었다. 나는 복음주의 변두리가 그리스도교의 핵심을 향해서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이 두렵다. 오늘날 인기 있는 지도자들은 헛간 문처럼 자신들의 영광으로 빛나는 32개의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플레이보이들이다. 그들은 교회의 이곳저곳을 신속히 옮겨 다니면서 좋은 기분의 열광으로 회중을 몰아넣는다.

오직 그리스도교와 함께 노는 데 열심인 일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핵심 목적을 이해하는 게 어렵다.
신약 성경의 최고의 성취는 믿는 사람의 마음속에 그를 의롭게 행동하게 하는 미지의 요소를 심는 것이다. 여기에는 교단 교회들과진정한 그리스도교의 차이점이 있다.

오늘날 새로운 교회가 있다.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브랜드가 만연하고 있다. 이 새로운 교회는 덕성을 더하여 확신을 얻고자 한다. 이 새로운 교회는 거만한 정신으로 “나를 보라” 하고 말한다. 지금껏 우리나라에서는 이보다 더 큰 건물이나 큰 수의 교인을 가진 교회를 본 적이 없다. 오늘날보다 더 많은 사회활동이 있었던 적은 없다. 우리는 대개 교인의 수에서 용기를 얻는다. “저 교회는 좋은 교회일 겁니다. 저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을 보십시오”라고 말하는 소리는 우리가 듣게 되는 추론이다.

현재의 그리스도교는 성경에서 발견된 경고를 모두 버렸다. 그리스도교의 긍정적이고 경이로운 면을 다루는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현상은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간과하게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리스도교는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세속적인 연예, 오락성 찬양 경연 대회와 연극, 마술 쇼 등이 포함됨-옮긴이)에 초점을 둔쇼가 되었다. 우리는 자체 게임에서 세상을 이기기 위해 노력하고있다. 우리는 게임에서 지고 있지만, 우리가 지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서 모든 종류의 그리스도교가 나올 것이 틀림없다. 그것이 비록 정통 그리스도교라 불릴지라도, 세상에서 나오는 교리에 특별히 관심을 쏟는 것은 부적절하고 불안전하다.

미국인들은 참을성이 없으며, 미국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다. 이제어떤 사람들은 매우 빠르게 효과를 내는 알약 같은 유형의 그리스도교를 원한다.

그리스도교와 민주주의는 동일하지 않다. 물론, 그리스도교 복음의 친절한 영향은 사람들을 부드럽게 하고, 개인에 대한 감사 의식을 높이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가 인간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만지도록 허용하는 한, 우리는 여전히 자유의 세상이라고 불리는 곳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은 동일하지 않다.

미국주의는 그리스도교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국적이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광범위한 체제 안에 인류가 있고, 인류의 머리와 왕이신 인자(人子)가 계신다.

그리스도교의 특성은 내면주의이며, 하나님의 왕국은 당신 안에 있다.

솔직하게, 나는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거나 야생의 습관을 버리는 방법으로 그리스도교를 선전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지쳤다.
우리 모두를 나쁜 습관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그리스도교가 존재하는 이유의 전부인가

나는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고상한 개념을 잃어버렸습니다”라는 말로써 복음주의 교회가 잃은 것을 요약해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교는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가서 세상의 모든 종교의 모든 산봉우리 위로 날아다니는데, 이는 인간의 육체를 입고서 우리 가운데 거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강림에 의한 신령한 계시, 곧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에 대한 고상한 개념 때문이다.

지금은 연회를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유쾌한 농담을 말하는 시대다. 소수만이 그리스도교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만약 우리가 사람들을 웃길 수 없다면, 우리는 그들을 교회에 다시 오도록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모토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라. 그리하면 그들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줄 것이다”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잠깐이라도 웃음을 주지 못하면, 그들은 지루해할 것이고,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원하며, 종교와 관련이 있는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몇몇 노처녀들이 인습적 의례로서 그리스도교를 조금 가미한 사교 클럽에 관심을 두는 것처럼 할 수 없다. 나는 그것을 전부 원하거나 하나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을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매우 행복해할 것이며, 뭔가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하향 평준화되었고, 고상한 특질이 없어졌다. 우리는 나비처럼 가볍다. 우리는 우리가 넓은 날개를 펄럭이며 하나님의 바위들 위를 날아다니는 독수리들로 생각하면서 햇빛 속을 훨훨 날아다닌다. 하지만 우리는 나비다. 우리는 일할 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하려고 한다.

그리스도교 교회의 대부분은 영적이 아닌 사회적이다. 우리는 사회적 의미를 지닌 영적 단체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교회의 대부분은영적 의미를 지닌 사회단체다.

우리가 그리스도교에 합당한 사람이라면, 우리의 몇몇 현명한 동료들은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성령님의 빛에 의해 직관적으로 그리스도께 나아가면,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그것을 알게 될 것이지만, 성령님의 내적 조명에 의해서도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무도 그걸 다시 추론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모든 문헌은 위대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사실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증명될 수 있다는 개념에 관해 쓰였다. 우리가 그리스 도를 믿는 정치인을 찾을 수 있다면, 잡지 표지에 “OOO 상원의원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그가 믿는 그리스도는 우리가 믿어도 좋은 분이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언제 상원의원을 의지하셨던가

그리스도교가 엔터테인먼트의 또 다른 유형이라는 생각은 완전히어리석다. 우리의 그리스도교는 우리에게 어떤 부담을 주었는가? 우리는 유리 뒤의 단정하게 꾸며진 전시용 그리스도인들이 되었다. 우리의 그리스도교는 아무것도 희생시키지 않는다.

복된 소망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정의한다.

그리스도교는 날마다 땀을 흘려서 우리의 삶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천국의 권세 안에서 행하고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가 신약의 그리스도교를 되찾으려 한다면, 신약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

누구든지 수백만 달러를 쓰면서 많은 묘안으로 그리스도교를 지원해야 한다면, 그는 사도적 교회로부터 승계를 요구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교를 다음과 같이 단순화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믿고, 받아들이고, 즐겁게 살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라.’ 그렇게 하고 우리는 떠나간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교다. 나는 그런 일에 가짜 동전 하나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교에는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영광스럽고 의기양양한 측면이 있다.

오순절 날에 탄생했던 그리스도교로 돌아가자. 그리고 다시는 종의멍에를 메지 말자(갈 5:1).
진정한 그리스도교는 이 세상에서 신비하고 경이롭고 탁월한 것이다. 신약의 그리스도교는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의 기준과 교회의 기준 사이에 다리를 놓을 방법은 절대적으로 없다.

미국인들은 그리스도교가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신앙생활의 진수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완전한 항복이다.

사람들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 나는 이것이 그리스도교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의 실재를 알기 전에 그리스도교의 신앙의 능력을올바르게 경험한 사람은 없다.

성령님은 또한 영적인 불꽃이다. 그분만이 우리의 예배를 참된 영적 차원으로 올려놓으실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도덕성과 윤리가 제 아무리 고상하여도 그것들은 여전히 그리스도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교를 그 어떤 현대 철학과 동일시하기 시작할 때마다, 그것이 오래되고 존중받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교는 즉시 그 힘을 잃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사도 바울은 꾸준히 그것을 거부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저서 전체에서 일반적으로 세상에 있는 것들이신성하지 않다는 의미로서 그리스도교가 신성하다는 것을 시종일관 강조한다.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의 지혜에서 흘러나왔다.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마음이 창조한 것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 마음에 의해 설명될 수 없다. 심리학이나 철학도 그리스도교를 설명할 수 없다.

심리학이 그리스도교를 설명하려고 할 때, 그것이 설명하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그리스도교가 아니다. 그리스도교의 신비는 인간의 마음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 비유가 아니다. 그것은 성령님께서 그 마음을 조명하실 때만 깨달을 수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영원한 지혜와 능력이 아니고서는 촉진될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교가 신성한 근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했다. 그리스도교는 신성하게 정해지고, 신성하게 주어졌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인간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 이것은 오직 신성한 지혜와 권능으로만 촉진될 수 있다. 그 신성한 지혜와 권능을 소유하지 않으면, 우리는 장님을 인도하는 장님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단지 “나는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라는 말을 하면 천국이 종을 울리고 마귀를 놀라게 하므로 그가 꼬리를 두 다리 사이로 내리게 할 것이라는 수준으로 그리스도교를 끌어내렸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그들의 미친 생각이다.

당신이 그리스도교에 대한 신앙이 당신을 지옥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믿는다면, 나는 당신에게 소망이 없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을 것이지만, 당신은 아직 성경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는 바이다. 당신은 돌이켜서 새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시는 성령님의 영원한 지혜의 소리와 복음의 소리와 구속의 소리인 “나를 사랑하는 자가 나의 사랑을 받는다”라고 하신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이다.

어떤 곳에서는 교회가 마치 사업인 것처럼 판매되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상업적 물자나 제품이 아니다. 나는 신약 성경에서 그것을보지 못한다.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교는 단순히 멋진 상징에 불과하다. 현대 그리스도교의 배경에는 살아있는 실재가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면, 우리의 옛 삶에 그리스도교를 이어 맞출 수 없다.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하며, 과거에 등을 돌리고서 주님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교 안에 들어온 값싼 종교가 있다. 이값싼 종교는 시와 몇 송이 꽃과 친절한 미소와 우리의 형제를 위한 선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현대 그리스도교의 묘미인 것처럼 보인다.

눈물이 없는 그리스도교는 결코 그리스도교가 아니다.

그리스도교의 부산물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신을 의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영접하시지 않는다는 것과 그들 안에 계셔서 그들을 변화시키시거나 의미와 중요성을 부여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스도교는 공동체가 하나나님께 나아가서 생긴것이 아니다. 그리고 “한 사이즈가 모든 사람에게 맞습니다”와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하신 것을 당신에게도 하실 것입니다”라는 철인(鐵印)이 찍힌 라벨을 단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생긴 결과가 아니다.
이 말들은 소량의 진리를 가진 경이로운 표어이지만, 우리를 절대적인 진리로부터 멀어지도록 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개별적으로 구속을 받고 그리스도의 생기 넘치는 형상으로 만들어지며,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 그분을 예배하는 사람들이 되려고 그리스도께 나아간다.

진정한 종교적 경험을 하고서도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아 영원한 지옥으로 가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하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모양과 윤곽과 형태를 가진 사람에게 성령님께서 연주하실 현이 없는 것은 아주 비극적이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보다 더 형편없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형태와 윤곽은 있지만, 열매가 없는 사람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좋은 삶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논의다.

하나님의 진리는 대중적이었던 적이 없다. 그리스도교가 인기를 얻는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상징이며, 죽음과 분리를 말하며, 절대로 타협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리스도교를 과거의 죄에 대한 처벌에서 벗어나 종국에는 천국에 도달하게 하는 고통없는 체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 중 상당수는 진리의 의미에 당황하지 않고서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인정하기 위해 우리의 삶을 정리하는 데 극히 능숙하다.

그리스도교는 어떤 국가보다 크고, 어떤 문명보다도 우월하고, 인간 이데올로기보다 더 광범위하다.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효과적으로 다룬다.

진정한 그리스도교의 부분들이 우리 가운데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경건하게 감사할 때, 나는 종교계에서 보는 것에 고무되지 않는다.

반쪽짜리 회심자는 자신이 그리스도교에 배타적으로 헌신하고 있다고 두려워하는 편협에서 벗어날지 모르지만, 완전한 회심자는 그러한 걱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한때 그리스도교는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출발했으나 도리어 세속화되었다. 세상이 교회를 변화시켰고, 16세기가 지난 후에 우리는 아직도 수치스러운 항복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구속된 존재의 모든 성품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의모든 것을 지배해야 한다. 우리는 타오르는 제단에서 우리의 지성을 억누를 수 없으며, 여전히 그리스도의 참된 신앙을 보존하기를 소망한다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교는 “응원가”보다 조금 나은 것이 되기까지 물로 희석되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한다. 현재 전파되고 있는 그리스도교는 무신론자들이 “사람들을 그만 좀귀찮게 하시오”라며 격발할 정도로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다.

그리스도교는 이제 재미로 생각되며, 십자가는 예수님이 몇 천 년전에 못 박혀 죽은 십자가뿐이다. 그리스도의 멍에는 쉬울 뿐만 아니라 완전히 감격적이다. 그의 짐은 가벼울 뿐만 아니라 쾌활하다. 교회는 안전하고 대중적인 일이라고 확신할 때까지 모든 것에 동조하며 아무것도 반대하지 않는다. 교회가 자기의 용감한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세상을 흔드는 선언문을 발행한다. 이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이것은 세계 최신의 사회적 벤처기업과 일치한다

교회의 임무는 두 가지다. 전 세계에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자신이 퍼뜨리는 그리스도교가 순수한 신약 성경의 그리스도교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항상 그 종류대로 재생할 것이다. 세속적이고 영적이지 못한 교회는 다른 방언과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게 증거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면 그 해안에서 자신과 같은 종류의 그리스도교를 만들어 낼 것이다.

불행한 일이지만, 현재의 그리스도교는 두 가지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는 활기 없고 특색 없는 정통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질식을 피하려고 노력하며 불신앙의 소용돌이에 빠져든 자유주의다.사실 우리는 그런 선택에 매달리지 않는다

그리스도교를 조화시키려는 많은 종교 지도자들의 현재 노력과 더불어 과학과 철학과 모든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것들은 그리스도교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그리스도교의 중심에는 신적 패러독스와 함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다. 그리스도교의 능력은 결코 타락한 인간의 길과 일치하지않는 것에 대한 반감에서 그리스도교는 수용과 거절, 긍정과 부정을 포함한다. 그리고 그때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회심하고 날마다 삶의 싸움을 하다가 싸움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때까지 이어진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이 그리스도교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능력이 우리를 향하여 역사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보는 우리가 경험을 통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얻는 지식의 증가와 정확하게 같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은 그것에 전 인생을 바치고 하나님을 구하는 거룩한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지속적인 갈등이며, 세상과 육체와 마귀에 대한 끊임없고 자극적인 투쟁이라는 인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다시 말하지만 절대로 안 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을 배우는 심령은 그분과 함께 오르는 복된 경험을 곧 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세상의 박해는 성령님의 거처가 된 영혼 속에 생겨나는 거룩한 기쁨을 잠재울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초에는 대리속죄가 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죄를 죄인에게서 구세주에게로 전가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에서의 균형 부족은 종종 선호하는 성경 본문들을 지나치 강조하면서 다른 관련 본문들에 대해서는 덜 강조하는 것의 직접적인 결과다.

우리가 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멀리 나아가고 더 높은 자리에 올갈 때, 도중에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며, 우리 영혼의 원수로부터 점점 더 많은 적대감을 받게 될 것을 기대해야한다.

그리스도인은 천상의 친교 가운데서 살고 사랑하고 일할 수 있는 진정한 신자들의 무리를 발견한 행복한 사람이다.

불행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비꾸러진 관념들에서 자유롭게 될 수 없으며, 이 관념들은 그들의 마음을 독살하고 내면의 자유를 파괴한다.


세상 사람들처럼 살고 말하는 동안에 그리스도인들처럼 기도하고 설교하는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얼마나 오래 복음주의적으로 남아있 을 것으로 기대하는가

영적 능력을 구하는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첫 단계는 자신이 천국의 아들이라는 독특한 신분을 가지고 이 땅에 머물면서 성도로써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변명해야 하는 날은 끝났다. 그는 세상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계시의 진리를 담대히 선언함으로써 세상의 관심을 끌 수 있다. 그는 타협이 아니라 “주께서 말씀하시되”라고 단호하게 선포함으로써 사람들을 경청하게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초자연적인 즐거움을 세상에 빚지고 있다. 지구상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무너지게 하는 보편적인 염려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행복과 평안 곧 작은 천국을 보여주도록 전략적으로 배치되었다.

어떤 사람도 자신이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되며, 어떤 그리스도인도 영적 세계에서의 그런 고백의 효력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에는 십자가와 자기 보좌가 있고, 그는 자신을 십자가에 달리게 할 때까지 자기 보좌에 앉아 있는다. 만약 그가 십자가를 거절하면, 계속 자기 보좌에 앉아 있게 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안에서 매우 충만하게 살 수 있는 특권이 있다. 그러므로 그는 한순간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운전하는 사람처럼 살아간다. 제동이 걸린 채 달리려는 자동차는 조용히 서 있지 않는다.그것은 쉬운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불필요하게 더 많은 연료를 사용하게 하고, 과열된 브레이크 라이닝에서는 악취가 올라온다. 그리고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 자동차는 어디든 매우 길게 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반대세력을 피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사탄이 하나님의 아들들을 저항하려고 서 있는 한, 그리고 세상과 육체가 남아있는 한, 신자는 반대세력을 만날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살아야 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면, 우리의 문제는 대부분 즉시 해결될 것이다

일생 동안의 관찰과 성경 읽기와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진보를 방해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리스도인 자신이라는 결론을 끌어냈다.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조용한 태도를 보이게 하라. 그렇게 하면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모든 책임을 지신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약속을 선하게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보내시는 곳은 그가 살 수 없고 영적으로 승리할 수 없을 정도로 외로운 곳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는 태도로 만 명의 원수들을 만난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인을 막을 수 없으며 쇠하게 만들 수 없다.

종교적 자기만족은 요즘 거의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자기만족이 있다는 것은 표징이자 예언이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마침내 자신의 욕망대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매우 많은 교회에서 널리 퍼져 있는 해로운 정신을 바로잡고 교회가 예배의 진정한 정신을 다시 갖게 하는 노력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진실로 많지 않다.

아마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성실하게 순종하고 빛 가운데서 걸어 다녔지만, 때때로 그에게 오는 정체기의 문제만큼이나 그를 귀찮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결코 정체기들을 예측할 수 없으며 설명할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그의 어려움이다.

우리의 고상한 이상주의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완벽해야 한다고 주하지만, 솔직한 사실주의는 성도들 사이에서도 완전함이 드물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강요한다. 우리의 그리스도인 형제들이 자신들이 어떤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지보다는 자신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지혜의 일부다.

다른 모든 것이 평등하다면,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비판하는 능력에정확하게 비례하여 영적으로 진보할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시간이 자신들을 더 잘 자랄 수 있게 도울 것이라는 모호한 소망을 갖고 있다. 그들은 세월의 흐름이 자신들을 원만해지게 하고 더욱 그리스도처럼 되게 하는 것으로 본다. 비뚤어진 나무는 나이가 들어도 곧게 펴지지 않는다. 비뚤어진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다.

내가 보기에,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일상적인 대화에서 서로를거의 돕지 않으며 종종 서로를 해롭게 만든다. 무익할 뿐만 아니라 긍정적으로 해가 되는 말을 하지 않고서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스도인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와 거리가 아니라 방향이다.

잘 이해되고 종교적으로 순종 된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 완성에 대한 최단 경로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구절들을 배제하고 몇 개의 선호하는 구절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성경 전체가 아니고서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을 만들 수 없다.

교회에는 영적으로 태어나서가 아니라 교인으로 등록하므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 매우 많다. 그들은 지역의 추장들에 의해 의식이 행해졌고,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사실, 그들은 오직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일 뿐이다.

그리스도교는 매우 영적이며 철저히 신비한 특징이 있다. 우리가 사실상 그리스도인이 되려 한다면 그것을 무시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주로 진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성육신하신 진리에 더욱 그렇다. 사실들은 멸시 당해서는 안 된다. 사실들의 실제적인 가치는 추구되어야 하며, 진리를 예배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리스도 안에 숨겨진 “지혜와 지식의 보물”을 대신하도록 허락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이 죄에 빠지는 것은 욕망이 증가하는 것을 그가 허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경건한 영혼은 영적 묵상이 자신의 내적인 삶의 총체적인 성공에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를 알고 있다.“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 23:7a).

정통파적 관행에서 자유주의로 옮겨가는 운동은 거의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느리지만, 신앙으로 돌아가는 운동은 갑작스럽다는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에 대한 고무적인 생각이다

물은 자기의 수준 이상으로 올라갈 수 없다. 급작스러운 돌발적 노력으로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영적 삶의 수준을 넘어 올라갈 수 없다.

사람들이 마음에 기쁨이 없으면 다른 곳에서 기쁨을 찾으려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의 포도주를 즐기는 것을 금한다면,그들은 쾌락을 위해 육체의 포도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지에 자기의 의지를 넘겨드리고 자기의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께 돌렸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다.

너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전율의 권리를 누리기를 원하지만 살아가는 데 불편을 감내하는 권리는 누리려 하지 않는다.

아이가 혼자 살도록 강요당하면 정상적인 성인으로 자라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친교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은 결과적으로 영혼에 큰 상처를 입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결코 정상적으로 발전하기를 소망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진정한 열망이 부재한 또 다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너무 편안하기 때문에 이 세상을 떠나고싶은 욕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의 영성을 믿을 수없다. 하나님 자신의 마음을 좇은 사람은 그의 원수들뿐만 아니라 그의 친구들의 의견에 대해서도 죽어 있어야 한다.
Chapter 01 그리스도교 / 13
Chapter 02 그리스도의 명령 / 53
Chapter 03 교 리 / 56
Chapter 04 교 회 / 60
Chapter 05 기 적 / 96
Chapter 06 마 귀 / 102
Chapter 07 부 활 / 118
Chapter 08 성 경 / 121
Chapter 09 성 령 / 158
Chapter 10 신 비 / 191
Chapter 11 신 학 / 198
Chapter 12 약 속 / 202
Chapter 13 영 광 / 208
Chapter 14 영 성 / 211
Chapter 15 은 사 / 217
Chapter 16 은 혜 / 219
Chapter 17 위 엄 / 230
Chapter 18 자 비 / 234
Chapter 19 찬 송 / 238
Chapter 20 천 사 / 245
Chapter 21 하나님의 사랑 / 250
A. W. 토저
에이든윌슨 토저(Aiden Wilson Tozer, 1897.4.21-1963.5.12)는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목회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진리를 땜질하고 멋대로 변경하는 시대 속에서 교회의 부패한 현실을 비판하고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사역을 하므로 이 시대의 선지자라는 평을 받았다.그는 교회가 할리우드식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의 두려운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참 영성이라고 말한다. 그의 글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지금의 교회에 다시금 개혁의 불을 붙이고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위엄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독자는 이 책을 읽는 동안 감동과 회복과 경외심을 얻게 될 것이며, 날마다 묵상하는 가운데 토저가 전율했던 그리스도의 영광과 위엄에 크게 전율할 것이다.
시리즈 소개 | 세트 | 세트낱권구성
A. W. 토저 / 예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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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 토저 / 예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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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그리스도교에 대한 황금률
저자A. W. 토저
출판사예찬사
크기(152*225)mm
쪽수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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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2018-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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