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동행의 중요성
제목처럼 이 글은 예수님과의 동행 기록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늘 예수님과 동행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다행히 요즈음 한국교회 안에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만을 사랑하라고 주장하여 크게 부흥한 몇몇 교회가 있습니다. 주님과의 동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을 보여주고 있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음성에 수많은 성도들이 목말라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동안은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쪽으로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력했지만 이제는 성도님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져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과 동행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졌음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합니다.
1권이 출간되고 많은 목사님들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분들 가운데 간혹 은사에 대해 문의한 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주님의 음성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 다. 연락해 오신 분들 중에 평신도도 있었는데 그분은 예수님 의 사랑과 동행을 강조하는 큰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집사님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화가 많이 나 있었습니다. 교회에 서 예수님과의 사랑과 동행의 중요성만을 강조할 뿐 예수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동행해야 하는지 그 실제적 내용을 가르쳐주지 않아서 더 속만 탄다는 것입니다.
지금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또 예수님 과 만나면 무슨 대화를 하는지 그 실제에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것이 한국교회의 현주소입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예수님과의 동행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고, 혹 동행의 중요성을 아는 교회가 있어도 어떻게 예수님과 동행할 것인 지, 어떻게 성도들을 인도할 것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깨어 있다는 목사님들조차도 정작 자신은 예수님과 동행 하지 않으면서 동행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혹시 교회에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 이 아니고 마귀나 자신의 음성으로 대화하는 것이라고 제재만 가하고 있습니다. 이단 시비에 걸릴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렵다며 피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먼저 자신과 대화하는 대상이 예수님인지 성경을 통하여 점검하는 열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늘 주님과 아름다운 동행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우리는 예수님과의 동행의 중요성 을 강조하는 것을 뛰어넘어 실제로 동행해야 합니다.
나의 사역과 미래의 형통을 위한 수단적인 동행이 아니라 순수하게 예수님만을 사랑하는 사랑의 열정으로의 동행이 되 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했더니 나의 바람 들이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도 좋은 동행의 증거이겠지만, 이 제 우리는 나의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만 사랑하는 그 순수한 사랑의 열정으로 달려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우리와 영으로 대화하시는 예수님을 체험하여 알 게 됨으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 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주님의 그 영광의 수준 가운데로 초 청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과 동행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2권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예수님과 대화한 내용들을 실어 놓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알기 위하여 우리는 성령님과 동행해 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성령님께서 가장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는 성령님의 도움이 절대적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님의 은사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 에 먼저 집중되어야 합니다. 은사들을 사용하여 나의 문제를 풀고 미래를 알고자 하는 것은 올바른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믿음의 최고의 목적은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을 사랑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 책은 예수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동행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과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 하여 예수님과의 순수한 사랑이 회복되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은 우리 인생의 모든 것입니다.
제1장 성령님의 은사사용의 목적
초대교회 시대에 성령님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시자 많은 제자들이 방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방언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말씀에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실을 두고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외친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 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
갈릴리 출신의 제자들이 각 나라의 말로 방언하여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다 알아듣도록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는 것을 두고 베드로는 구약의 요엘 선지자가 선포한 말씀을 인용하여 말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처음 임한 방언이 ‘각 나라의 난 곳 방언’이라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큰일 말함’을 듣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들이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 각 나라 방언으로 말한 사람들이 ‘하나님 의 큰일’을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각자 난 나라의 방언으로 무엇을 선포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하나님의 큰일’을 외친 것이었습니다. 외국어를 할 수 없는 사람이 외국어를 알아듣도록 말한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 속에 들어 있는 내용이 더욱 중요합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큰일 말함을 보고 어떤 감동을 받았기 에 요엘 선지자가 선포한 말씀을 인용했을까요? 요엘 선지자는 ‘예언을 두고 ‘장래 일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 2:28).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이미 성령님께서 오시면 어떤 일 을 하실 것인지를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알고 있었기에 이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 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 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미 듣고 성령님께서 장래 일을 말씀하시는 분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성령님께 서 장래에 일어날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 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요 16:14-15).
베드로는 성령님께서 오시면 예수님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을 이미 예수님께 들었던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광을 우리들에게 나타내시는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 외의 그 어떤 것도 영광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우리들에게 알리는 것, 이것이 큰일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 행해야 하는 가장 큰일은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안 제자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 나 질문을 받아야 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위대하고 큰일이 없다는 메시지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그 ‘장래 일’이라는 것이 ‘예수님과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랑의 관계’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지 못한 삶은 허무한 인생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요 15:26-27).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가장 중요한 내용은 방언 이든 예언이든 환상이든 성령님의 모든 은사의 목적은 예수님과 사랑의 마음을 주고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예수님과 의 사랑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관계되지 않는 어떤 성령님의 일과 은사도 존재 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가장 큰 목적은 우리들에게 예수님 을 나타내심입니다. 그것이 우리들이 받을 가장 큰일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예수님의 마음으로 인도하시는 영이십니다. 예수님을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만큼 위대한 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과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누 는 것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가장 큰 소원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은 우리 인생의 모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님의 은사 사용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아 야 합니다. 성령님이 오신 목적은 우리들 각자가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임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성령님의 은사를 교회에서 사용하면 유익합니다. 성령님의 은사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
예수님을 사랑하는 데에 성령님의 은사가 큰 유익을 줍니 다. 그러나 성령님의 은사 즉 예언, 방언, 신유 같은 은사가 예 수님을 사랑하는 데 유일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님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잔잔한 음성으로도 우리 들을 이끌어 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들을 거듭나게 하시는 분이시고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이끄는 분이 십니다. 죄를 깨닫게 하고, 책망도 하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그것은 은사를 사 용하여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입니다. 성령님께서 스스로 하 시는 일과 우리가 사용하는 은사는 다른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들의 은사 사용이 없이도 스스로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은사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성령님의 일을 일부 하도록 허락하신 성령님의 선물입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4).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은사를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이루시는 역사하심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서 스스로 하시는 일과 우리들의 은사 사용 사이의 구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성령께서 알아서 다 하신다고 하는 것은 제한 된 생각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은사를 선물로 주신 이유 를 모르기에 하는 말입니다.
성령께서 스스로 하시는 일은 매우 크고 방대합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여 예수님을 믿도록 이끄심 입니다.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많이 있겠지 만 가장 귀중한 것은 우리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하시는 일입 니다. 예수님과 대화를 가능하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 다. 성령님이 아니고는 예수님을 우리들의 주님으로 섬길 수 없습니다.
한편 다른 지체들을 섬길 때 필요한 것이 성령님의 은사들 입니다. 자기 자신의 영혼을 섬기는 가장 큰 선물이 방언입니 다. 우리의 영혼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영혼을 우선 가장 많이 섬겨야 합니다. 방언기도 는 예수님과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누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 의 영혼을 섬기게 하는 은사입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 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 14:2).
”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 의 덕을 세우나니”(고전 14:4).
그러나 우리들에게 주신 성령님의 은사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데 사용하지 않으면 잘못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언을 자신의 장래 일이나 알아맞히는 것으로 사용하고, 방언을 능력 받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며, 지식의 은사를 사용하여 비밀스러운 사실들을 알아 자신의 신령함을 자랑하고, 지혜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고, 능력을 행하여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병 고침의 은사를 통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 려 한다면 귀한 은사를 잘못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은사 사용의 목적은 예수님과의 사이에 깊은 사랑의 관계를 표현해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방언통변을 통하여 방언하는 그 사람의 영이 어떻게 예수님과 사랑의 대화를 하고 있는지 나타내어 주고, 예언을 통하여 그 사람의 미래가 어떻게 예수님과 아름답게 관계될 것인가를 나타내어 사랑의 소망을 가지게 하며, 병 고침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당했는가를 알게 하는 것이 은사의 바른 사용입니다.
우리들의 미래는 예수님 안에서의 창대한 사랑의 미래이어야 합니다. 방언기도는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과 깊은 사랑의 대화를 하는 것이고, 그 방언을 통변하면 예수님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를 알 수 있어, 더욱 방언하기를 사모하게 되 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들과 영으로 교제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장 잘 아시 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마음을 서로 알아서 교제하는 것입니다. 방언을 많이 하시고 방언통변의 은사를 사모하시고 예언을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모함의 유일한 목적이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한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우 리들을 향한 사랑을 알게 하십시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 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9-11).
제2장 예수님과 대화하는 법
예수 동행 기록 1권에서는 방언기도를 통한 예수님과의 동 행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영으로 깊은 대화를 하는 수단으로 방언기도를 주셨다는 것을 소개했습니다.
2권을 이렇게 기록하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1권과 같이 제가 심야에 방언으로 기도한 것을 녹음하여 방언 통변하는 사람에게 통변을 시켰는데, 몇 편만 통변이 되 고 그 뒤로는 통변이 결코 되지 않았습니다. 방언 통변하는 사 람의 환상 가운데 제가 주님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만 계속 보이고 더 이상 주님께서 말씀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 즈음 주 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방언기도와 일상의 기도와 일상의 삶과 성경묵상 중에 나눈 대화를 그대로 기록하라.”
그래서 2권에 소개되는 것은 2010년 11월부터 2011년 5월 사이에 있었던 주님과의 대화 내용입니다. 방언기도는 굉장히 중요한 계시의 수단입니다. 특히 심야에 한적한 곳에서 드 리는 방언기도는 중요합니다. 제가 받은 대부분의 환상 계시 는 심야 방언기도 중에 받은 것입니다. 저는 대부분 저녁 10시 에서 새벽 3시 사이에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삶과 기도 중에도 계시가 임합니다. 모든 계시가 눈 에 선명하게 보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희미하게 꿈같이 보이고, 대부분 생각의 형태로 마음에 들려지고 알려 주십니다. 방언기도 중 자신의 마음에 주어지는 작은 생각의 감동들을 무시하지 말고 그것을 붙잡고 계속 기도하면서 물어볼 때 더 큰 계시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요 10:3-4).
하나님의 사람은 누구든지 다 마음으로 예수님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마음에 생각의 형태로 말씀하십니다. 그중에 어떤 사람은 마음으로 선명하게 보지만 어떤 사람은 잘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신이 보든지 못 보든지 예수님과 대화는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 물어볼 때 예수님은 우리의 질문에 대한 것뿐 아니라 우리가 묻지도 않은 내용을 계시로 갑자기 주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과 대화를 하려고 하는 자세입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 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사 45:11)?
처음부터 깊은 계시가 임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자 신에게 주어진 조그마한 계시를 붙잡고 자꾸 물어보면 더 깊은 계시가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린아이같이 계속 묻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십니다. 어린아이들은 아는 것도 계속 물어봅니다. 그것 이 어린아이의 특성입니다. 어린아이같이 자신을 낮추고 자 신이 아는 사실도 계속 물어보면 그 안에 더 깊은 비밀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과의 대화에 늘 악한 영들도 같이 말합니다. 악한 영 들도 처음에는 부드럽게 대화하고 아주 좋은 칭찬을 합니다. 그러나 좀 더 대화를 진행하면 어떤 일을 급하게 부추기거나 다른 사람을 비난하며 말하거나 약점들을 들춥니다. 그런 음 성과 대화하다 보면 내 미래가 불안하고 내 마음이 고통스러워집니다.
우리는 그 악한 영을 분별하여, 그 영의 영향을 받지 말아 야 합니다. 그 참된 분별은 그 음성이 나를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끌고 있느냐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예수 님의 사랑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요 15:26-27).
예수님은 굉장히 온유하시고 무례하지 않으시고 친절하십니다. 절대 대화 중에 상대를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굉장히 단호하게 말씀하시 고 엄하고 무섭게 말씀하십니다. 특히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 나 험담의 말을 하게 될 때 나의 심령을 강하게 질책하여, 심령의 찢어짐과 뜨거워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이나 주의 종을 칭찬하면 예수님은 굉장히 좋아하십니다.
죄를 짓는 일이 아닌 일반적인 어떤 동일한 사건을 두고 계 속 반복하여 질문하면 세상의 여러 가지 다른 것들을 비유하여 알아듣기 쉽게 잔잔한 음성으로 계속해서 설명하고 설득 해 주십니다. 그리하여 마음에 평강이 임하고 예수님을 향한 소망이 생기며 힘이 솟습니다. 반대로 악한 영들은 계속하여 묻게 되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단답형으로 응답합니다.
예수님과 계속 대화하다 보면 나의 심성이 온유하게 변화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마음이 아주 선하게 변화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온유함으로 대하게 됩니다.
반대로 악한 영들과 대화를 계속하면 나의 심령이 불안하고 황폐해짐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과 비판의 눈으로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과 문제를 보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게 자리하게 됩니다.
「예수 동행 기록」 책을 이용하세요. 이 책을 읽어 가시다가 예수님께 드리는 질문들을 여러분들도 따라해 보세요. 그 대화들을 입술로 고백해 보세요. 여러분의 영에 예수님의 강한 만지심을 직접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영적 군사들의 핸드북입니다. 늘 가까이 두고 휴대 하시면서 여러분들의 삶에 의문이 나는 문제가 있을 때, 또는 기도하기 전 이 책을 참고하시면 주님의 심령으로의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제3장 방언통변
1. 예수님의 눈물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 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계 19:12- 13).
불꽃 같은 눈이 말씀 가운데 있는 것을 봅니다. 살아 계시 며 말씀이신 그 주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것을 봅 니다. 불꽃같은 주의 말씀은 모든 것을 감찰하시며 주의 말씀 이 모든 불의 위에 정의로운 칼이 되는 것을 봅니다. 주님 제 게 그 정의로운 칼을 주시옵소서.
저기 둘은 평범하게 보이나 내가 네게 보내준 타작하는 천 아들아, 그 검은 사랑의 말씀이라.
사랑을 통해서 역사하는 그 말씀들을 네게 부어주고 있느니라. 나는 사랑이 아니고는 어떤 영혼들에게도 다가가지 않기 때문이니라. 오직 사랑으로 그들에게 말하느니라. 멈추지 않는 나의 사랑은 많은 자들이 다 내게로 돌아오기까지, 그들 가운데 사랑으로 역사하는 말씀으로 나를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니라. 내가 사랑을 통하여 역사하는 그 말씀의 통로로 너를 삼았노라.
변 목사야, 네가 나의 사랑으로 타작하게 되리라.
나의 사랑으로 그들을 거두어 줄 수 있겠느냐?
나의 사랑으로 그들을 내게 모아 줄 수 있겠느냐?
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겠느냐?
아들아, 나의 아픔을 아느냐?
흑흑흑~ 예수님, 주님의 아픔이 전해집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그 말씀을 사모하라. 내가 너의 말씀 가 운데 나의 사랑을 드러내게 될 것이니라. 나의 사랑을 나타내 보일 것이니라.
예수님,
저기 두 여인이 타작하는 것이 보입니다.
저기 둘은 평범하게 보이나 내가 네게 보내준 타작하는 천사들이니라.
그런데 왜 추수의 천사가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아들아, 추수는 부드러운 나의 심령으로 추수하는 것이니 라. 힘으로 능력으로 하지 아니하느니라. 그리하여 여인처럼 보이는 저 천사들이 추수하게 되는 것이니라.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마 13:39).
나의 추수는 아버지의 사랑과 나의 사랑으로 하게 될 것이 니라. 나의 사랑을 한없이 부어 완악한 심령들을 녹여 낼 것이 니라. 이 시대의 모든 나의 종들이 나의 사랑의 추수의 통로가 될 수 있도록 내가 사랑의 천사들을 파송하느니라. 추수의 방으로 들어오라. 추수에 관한 모든 계획들이 이곳에 구비되어 있느니라.
주님,
이 큰 책은 무엇입니까?
큰 책을 지키고 있는 천사가 있어요.
이 천사는 키가 사람의 두 배 정도는 되어 보이고 머리는 짧은 금발인데 남자 같지도 않고 여자 같지도 않은 용모를 가지고 있어요.
온 세계 열방 가운데에 추수에 관한 많은 계획과 추수에 관 한 많은 지혜들이 앞으로 점점 넘쳐나게 될 것이니라. 그들이 연합하게 되리라. 나는 마지막 추수의 군대를 나의 사랑의 연 합으로 이루게 될 것이니라. 너희가 연합하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나의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하리라. 그리하여 이곳 추수 의 방을 부드러운 외모를 가진 부드러운 천사들이 담당하고 있느니라. 아들아, 나를 따라오너라.
예수님,
어디로 가시나요?
추수의 방 다른 곳에 문이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십니다. 주님, 여기는 어디 인가요?
많은 책들이 있고 그 책들에 사람들의 사명이 새겨 있고 또 이름이 새겨 있어요.
이미 이 땅을 떠나간 사람들의 다 이루지 못한 사명에 대 한 책들이니라. 왼쪽 페이지에는 그들의 부르심의 사명들이 적혀 있고, 그 반대편 오른쪽에는 그들의 다 이룬 사명들과 이루지 못한 사명들이 기록되어 있느니라. 그들이 그 사명을 이루지 못한 대부분의 이유는 나의 사랑을 알지 못한 때문이니라.
나의 사랑의 부르심을 잘 감당하여 큰 상을 받은 종들도 있지만, 이들 중에는 사명을 전혀 감당치 못하여 이제 나를 만날 수 없는 자들도 있느니라. 또한 혹 천국에 있어도 그들의 부르심에 크게 나아가지 못한 종들도 있느니라. 이 책들은 그들이 다 이루지 못한 사명에 대한 책들이니라.
너희 앞선 세대들이 이루지 못한 모든 유업들까지 이제부 터 이 마지막 세대가 감당하여 이루게 되리라. 너희의 세대가 이룰 사명이 크고 크도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 하게 하려 하심이라”(히 11:39-40).
너희의 세대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들이 다 너희의 것이 아 니라, 이미 지나간 세대들의
이루지 못한 모든 유업들이 다 들 어 있는 것임을 알고, 지나간 세대를 향한 나의 이 사랑을 너희가 깨닫기를 원하노라.
주님,
이곳의 책꽂이에 책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요.
그런데 큰 천으로 다 덮여 있습니다.
잊힌 책들인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는 책들 인 것 같아요.
잊힌 자의 책이 있는 곳이니라. 그 자가 나의 사랑 안에서 살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에게 부어졌던 나의 소망들과 그들 의 부르심의 사명들이 죽어 있는 곳이니라. 아들아, 나는 너 희 세대가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부활시키기를 원하느니라. 죽은 것과 같이 있는 이곳에 나의 부활의 능력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들이 이루지 못한 영역들은 사명을 받은 나의 자녀들이 악한 영들의 미혹에 속아 빼앗긴 것들로, 지금은 악한 영들이 차지하고 있느니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내가 준 것들 이었지만, 나의 종들이 이것들을 지키지 못하고 타락함으로 악한 영들이 차지하게 되어 더러워진 분야가 많이 있느니라.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 4:6).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 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사 45:3).
내가 이 세상에 준 각양의 아름다운 것들 가운데나의 종들이 그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함으로 빼앗긴 영역들이 있느니라. 이 세상이 어두워진 것은 이 때문이니라. 이곳에 사장되어 있는 나의 계획들이 이 땅 가운데서 다시 부활되어야 하리 라. 그래서 이 잃어버린 사명의 책들이 이곳 추수의 방에 있느니라.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 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겔 37:1).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겔 37:13).
예수님,
이것을 어떻게 부활시켜야 합니까?
제가 이것들이 무슨 계획들인지 다 보아야 하나요?
주님께서 그것들을 각자의 사명에 맞게 부어주시는 것인 가요?
주님께서 택한 자를 따라서 이들에게 주시는 것인가요?
나와 동행하여 나의 음성을 듣는 자가 모든 추수의 사명을 완수하게 되리라. 나는 시대와 때를 따라 일하느니라. 그 시대 의 사명을 아는 것은 지나간 시대의 사명과 생각으로는 불가능하니라. 지금 그 시대에 말하는 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느니 라. 그리고 각자의 부르심을 따라 모든 교회가 나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연합하여야 하리라.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 고 그 막대기들을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 이 하나가 되리라”(겔 37:16-17).
아들아, 자신들의 부르심의 사명을 이루지 못한 수많은 나 의 종들이 왜 그들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었는지 아느 냐? 나는 그들의 이루지 못한 그 사명들을 볼 때 가슴이 무너지고 무너진다.
예수님,
가르쳐 주세요.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저도 소경이 될까 두렵습니다.
그들이 내가 맡긴 사명을 온전히 이루지 못한 것은 나의 마음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나에게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나에게 집중하지 않게 되면, 나의 일에만 관심이 많아지게 되느니라.
죽기까지 나의 일을 감당한 종들도 있었느니라. 나는 그러 한 종들도 매우 사랑한다. 그리고 어떤 자는 정작 나와는 상관없이 나의 일만을 하다가 더 큰 죄를 범하고 마귀의 종이 된 자들도 있느니라. 이들은 예수를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으며 살다 간악한 자들이니라. 그들은 받은 사명이 대단히 큰 종들이었느니라. 그들 가운데는 이 땅에서 대단한 기적을 일으키기도 한 종들도 많이 있었느니라. 나에게서 마음 이 떠났어도 그 능력은 지속되었기에 그들은 나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일을 나의 이름으로 하였느니라. 나의 아버지가 그 종에게 한번 주신 은사를 거두어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착각한 것이었느니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 11:29).
그들은 나의 마음을 알지도 못했지만 자신에게 계속적으로 능력과 은사가 나타났기
때문에 불법한 길을 가게 되었느니라. 자신들이 하나님의 일을 바르게 하고 있다고 착각하였느니라. 나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지 못한 종들의 공통점은 나의 마음을 모른다는 것이니라.
나 예수는 사랑이라. 나 예수는 사랑이 아니고는 결코 일하 지 아니하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느니라. 나의 일 을 열심히 하면 내가 좋아하는 줄 아느니라. 나를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내 마음을 알아 나의 사랑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나의 자녀들을 원하느니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 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6).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 에서 이루어졌나니”(갈 5:14)
내가 베드로에게 나의 양들을 맡길 때 나의 이 사랑의 마음 을 알기를 바라고 그에게 계속 물었느니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물었느니라. 내 가 제자들과 3년을 이 땅에 지내면서 가르쳐 준 가장 큰 나의 마음은 사랑의 마음이었느니라. 베드로는 3년 동안 나를 따라 다니며 배웠지만, 나의 이 사랑의 마음을 온전히 배우지는 못하였느니라. 생각이 굳어 다른 사람을 자기 생각과 자기 경험 의 잣대로 판단하였느니라. 이 경험이란 베드로 자신이 나를 경험한 그 짧은 경험을 말함이니라.
이것이 큰 함정이 되느니라. 나는 나의 모든 종들을 다 다르게 이끌어 가느니라. 아버지의 계획과 부르심은 모든 종들 을 다 다른 사명으로 부르고 있느니라. 이것을 아는 것이 큰 사역이라. 너희가 서로 판단하지 않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니라.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요 21:21-22).
베드로가 3년을 나와 동행했지만 나의 이 사랑의 마음을 온전히 소유하지는 못했느니라. 내가 이 땅을 떠난 후 영으로 나를 수없이 만나 나와 동행함으로 나의 사랑을 더욱 깊이 알 게 되어 자기의 편협한 생각을 버리고 나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느니라. 그 후 죽기까지 나의 사랑을 이룬 나의 큰 종이 되었느니라. 너희는 나의 사랑 안에서 자라가야 할 나의 제자들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