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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삶과 종교개혁 : 나의 심장을 드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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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재성  |  출판사 : 도서출판 이레서원
발행일 : 2001-03-10  |  신국판 (153×225) 양장 574p  |  89-7435-134-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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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필자는 칼빈에 관한 모든 것, 특히 그로부터 우리가 얻고 배우게 된 순수한 기독교를 열어서 보여 주고자 노력했다. 이 책을 펼쳐 들고 있는 동안에 그저 한 종교개혁자의 생애를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고통과 헌신을 깊이 관찰하게 될 것이다. 개혁신앙의 기초를 닦아놓은 칼빈이라는 사람을 총체적이로 이해하고, 우리 신앙의 첫 샘물이 어떻게 흘러나왔는지를 알게 되면, 개신교 신앙의 진실함에 확신을 갖게 된다. 16세기 성도들이 겪었던 고난의 자취는 우리의 귀감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칼빈이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된 종교개혁의 큰 흐름을 이해하고자 한다. 특히 신학자라는 딱딱한 기존 관념을 벗어나서 그의 사람됨과 삶을 접하게 될 것이다. 칼빈은 과연 어떤 사람이며, 그는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삶을 살다가 갔는가를 정확하게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세계적인 칼빈 연구가들의 업적을 참고하여 그에 관해서 아주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칼빈 자신의 말로 이를 입증하고 들려 주도록, 가능하면 원전을 정확히 소개하고자 했다.
[ 본문 95~100 '제3장 프랑스 종교개혁의 서장' 중에서 ]

프랑스 종교계의 갱신 움직임은 크리스천 휴머니스트에서 비롯되었고, 초기 휴머니스트들은 종교 개혁자들이었다. 초기에는 무엇이 문예부흥인지, 어떤 것이 종교개혁인지 구분이 명쾌하지 않았다. 두 가지 운동 모두 다 권위에 강력히 도전한다는 점이 공통분모였다.

에라스무스와 르페브르의 공헌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지만, 그 실절적인 지도자는 르페브르의 제자중 한 사람은 기욤 브리쏘네(Guillaume Briconnet)였다. 르페브르의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브리쏘네의 지도하에 모(Meaux)지방에 모여들었다. 이곳은 프랑스 종교개혁 사상이 발아하는 중요한 진원지가 되었다.

1516년부터 브리쏘네의 교구에 모인 일단의 복음적인 인문주의자들과 바울 신학을 추종하는 신학자들로 인해서 개혁의 바람이 불어왔다. 따라서 루터 이전에 프랑스에서도 개혁 운동은 시작된 것이다. 역사 학자들이나 개혁 신학자들은 프랑스 종교개혁 운동이 매우 토착화된 형태이며, 적어도 독일과는 별개의 흐름을 지나고 있음과 독립적인 양상으로 전개된 것이라는 주장을 펼 때에 매우 곤혹스러움을 느낀다. 이때 일어난 개혁운동은 매우 평범한 학술 운동으로 그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나라든지 그 나름대로의 시행착오와 여과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독일이나 스위스에서는 양상이 전혀 다른 개혁 운동이 프랑스에서 전개된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고위 성직자로서 궁정 성직자이기도 했으며, 아내가 죽은 다음에는 높은 직위에 올라 추기경 직책으로 대주교가 되었던 사람이다. 이 추기경과 그의 두 아들은 세 개의 수도원과 다섯 개의 주교 교구와 두 개의 대주교 교구를 관할했다. 기욤 브리쏘네는 출생 배경부터 성직자 귀족이었고, 다른 사람을 향해서 이것이 옳다고 권위를 주장할 수 있을 만한 재력과 인간 관계를 겸비한 사람이었다.

어린 나이에 그는 로데브(Rodeve)의 주교로서 그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쌩 제르맹 데 프래(Saint-Germain-das-Pres)의 승정원장으로 피선되어 매우 오래된 파리의 성직자 가문에 개혁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그가 가까이 지내고 있던 사람 중에 하나가 르페르브였다. 11518년 교황 율리우스 2세와 레오 10세에게 사절로 다녀온 뒤로부터 브리쏘네는 모 교구에 살게 되었다. 1516년에 이미 그 지역의 주교로 임명을 받은 바 있었다. 이제 브리쏘네는 르페브르에게 배운 바를 실천으로 옮길 작업에 착수케 된 것이다. 즉, 성경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어서 아무나 읽을 수 있게 하는 일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이 되는분이 그들 가운데 구원 사역을 완성하시게 되었다. 왜냐하면 중세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이라는 명목하에 도무지 명쾌한 이유와 근거도 없는 예수의 행적, 의문으로 둘러쌓인 예수를 가르쳤다. 예수님의 구속 사역은 영혼의 신비적인 정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따라서 주교는 '그리스도의 천사'로서 영혼을 깨끗하고 만들고 깨우쳐 주며 완전하게 하는 천사와 같은 직분을 수행한다고 확신했다. 모의 주교는 그의 탁월한 조직력을 발휘하여 성경학자로서, 신비적이며 보수적인 교회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나타내며 교구를 새롭게 개혁하였다.

그는 교구를 스물여섯 개의 소교구로 나누고, 각 소교구마다 한 명의 설교자를 보내 크리스마스와 사순절 선교를 하게 함으로써 개혁에 착수했다. 1521년부터는 개혁 운동을 돕게 되었다. 이때부터 모는 활동적이며 역량 있는 인재들의 활동 무대가 되었다. 1521년 4월을 전후해서 르페브르가 은퇴를 한 후에 이곳에 왔다. 당대에 손꼽히는 히브리어의 권위자였던 바따블(Vatable)도 역시 쌩 제르멩 드프레의 주교의 한 사람으로 후에 파리에서 궁정의 성경 낭독자가 되었다. 울레롱의 주교가 되어 있던 신학자요 헬라 철학자이며 설교가였던 제라르 루쎌(Gerard Roussel), 센 지방의 고위 성직자였던 삐에로 까롤리, 역시 르페브로의 제자이자 훗난 제네바의 첫 번째 개혁자가 된 기욤 파렐(Guillaume Farel), 어거스틴과 수도사였던 미셀 다랑드(Michel d' Arande), 파리 성 미셀 대학의 교장이었던 마쥐리에(Martial Mazurier), 뛰어난 철학자요 병리학자인 끌리또프(Josse Clichtov)등이다. 이들은 모두 다 교회의 개혁에 남다른 열망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1520년대에 이 그룹의 중심적인 활동은 설교와 강의 그리고 프랑스어로 많은 책을 번역함으로써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하여 전체적으로 참된 기독교를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곧 이어서 교구 안에 중심지가 되는 네 지역에 성경 강습소가 생겨났다. 이런 활동에 적개심을 품고 있던 수도사들은 루터파와 같이 성경에 중심을 두는 이들에게 공격을 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르페브르와 브리쏘네는 그들의 개혁적인 열정의 결과를 분명하게 확신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계획은 각기 성도 한사람 한사람의 갱신을 통해서 교회의 정화작업을 목표로 했다. 1523년 이 교구는 소란스러운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한편에서는 브리쏘네에게 불만을 품은 소수의 수도사들이 공개적으로 반항하기에 이르렀고, 다른 편으로는 설교와 강의를 받아들였다. 하층 계급의 사람들 중에서 상당수가 로마 교회에 반항적이며 모든 의식에 반대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신앙을 표현하고 나섰다. 설교자들을 조롱하거나, 우상 파괴자들의 폭동,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분파 그룹 등의 현상이 자연히 발생했다. 개혁지상주의(Refoemism)라는 흐름이 이젠 모 내에서 어쩔 도리가 없는 대세였다. 하지만 이 소식에 접한 파리의 소르본느 신학 교수들과 모 지방의 많은 보수 성향의 성직자들이 이에 대해 반발하였다.

소르본느는 프랑스에서 종교적인 정통성을 지키는 보루로서, 신학 교수진이 이곳의 심장부를 이루고 있었으며, 오직 교황에게만 책임을 지는 권위를 보장받고 있었다. 니꼴라스 베다가 당시 최고의 우두머리였고, 칼빈은 이미 몽떼귀 대학에서 이 사람에게 공부한 바 있었다. 베다는 일찍이 르페브르가 파멸의 대상이라고 적시하여 놓았다. 왜냐하면 1517년 프페브르가 한 논문을 출판했는데, 그 가운데서 막달라 마리아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와 죄를 지은 창녀 마리아는 모두 같은 한 사람이 아니라, 서로 분명히 구별되는 세 사람을 가리킨다고 풀이하였다. 1521년 소르본느는 이런 결론을 정죄하였으나 국왕은 다소 모호한 입장을 견지하였다. 적어도 당시 국왕으로는 학문을 증진시키는 문예부흥의 치적의 집착해 있었기에 이런 책으로 인해서 로마 교회가 주장해 온 신앙이 혼란에 빠질리 없다고 변호하여 주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숭배해 온 카톨릭 교회에서는 성모 마리아 외에도 여러 사람의 마리아가 있었고, 그중에서는 부도덕한 여성도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자신들의 교리가 주장하는 성스러운 이미지가 손상을 입는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 후, 1525년에 베다는 또다시 르페브르가 쓴 복음서 주석에 무려 54가지 이단적인 요소들이 있다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프랑스와 왕은 역시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따라서 프랑스와 왕이 한동안 연금되어 있을 동안, 르페브르는 스트라스부르그에 피신해 있어야만 되었다.

소르본느의 잔인함이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별로 변함이 없었고, 교활하기 조차 하였다 베다는 루터파나 에라스무스 지지자들이나 모두 다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이라고 공격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라틴어 성경(the Vulgate)은 최고의 권위로 인정되어야만 하고, 그것을 다시 고치고자 하는 사람은 오로지 혼돈에 빠질 뿐이다. 자신의 일상용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일은 번역자가 자신의 감정을 개인적인 열망에서 제멋대로 할 염려가 있다고 판단되어서 여전히 금지되었다. 파리 의회에서는 교회의 상하 계급과 모든 성례들을 무력화시키는 의도에 대해서 단호히 대처하기로 결의하였고, 소르본느의 박사들이 볼 때에 루터가 주장하는 오직 믿음(sola fides)이란 교리는 명백히 위험천만한 교리로 간주되었다.

1523년 12월 2일, 소르본느 교수진은 점점 자신들의 입장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여 나가는 모 지방의 설교잗릉과 브리쏘네를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그는 자기가 관할하고 있던 지역 내에서조차도 자신이 생각한 개혁을 이룬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브리쏘네는 자신의 지역 내에 있던 설교자마저도 통제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모의 개혁 진영에 가담해 있던 기욤 파렐은 더 이상 프랑스 카톨릭 교회의 교리와는 타협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바젤로 떠나버렸다. 거기서 그는 소르본느에 나온 "판결문"(Determination)을 반박하는 "파리 신학 교수진 판결문"(Determinaito Facultatis Theologie Parisiensis)을 출판하였는데, 에라스무스는 1524년 10월 바젤의 당회에 보낸 편지에서 파렐이 너무나 선동적이라고 비난하였다.

모 지방에서 일어난 실제 개혁의 내용은 변변치 못했다. 미사의 매매, 성자 숭배, 유물 숭상이나 경배 등 카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잘못이 고발되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표현을 담은 어떤 유물이라도 배격되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생활을 나타내는 형상물들은 없앴다. 약간의 예배 순서도 변경되었다. 미사의 상당한 부분이 프랑스어로 드려졌고, 마리아 찬미가는 생략되었다. 한두 사람의 개혁자들은 주교가 바라는 것보다 한걸음 더 나아갈 것을 바랐다. 예를 들면, 마쥐리에(Mazurier)는 장례 예배에서 여러 사람의 기도자들을 빼 버렸다. 까로리는 미사의 제도에 반대하여 공격했고, 파렐도 역시 그의 반대자들을 맞서서 공개 토론을 할 때 정력적인 논객으로 변신하여 적대자들의 정신에 대항하였다.

브리쏘네는 본래 의도하지 않았던 이런 복잡한 사건들을 조절하려 했다. 1523년 4월 파렐을 위시하여 몇 사람의 극단의 개혁 사상을 표출한 설교자들의 자격을 취소시켜서 말썽이 소지를 약화시키고자 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교구 총회를 열고 루터의 성경 해석과 결혼관을 정죄하고, 루터의 책을 읽거나 소지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는 또 교구 신부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자신의 복음적인 의도가 무엇인가를 재천명하고, 연옥의 존재를 인정치 않는 자들, 죽은 사람드을 위한 기도의 유효성과 마리아 숭배 및 성자들에게 비는 기도의 합법성을 부인하는 자들을 정죄하였다. 1524년 3월 다시 한번 루터파에 대한 정죄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정통파로서는 다시 인정을 받기가 어려운 처지에 놓였고, 완고하게 전통을 고집하는 반종교개혁자들에게는 강한 의심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브리쏘네는 1525년, 그의 책임하에 이런 일단의 개혁 운동이 중지되어야 한다.는 정권 실력자들의 압력을 받자 도중 하차하고 말았다. 브리쏘네는 일생 카톨릭의 추기경으로, 모 지방의 대주교로서 살다가 갔다. 그가 많은 개혁 사상가들을 후원했지만 자신이 직접 나서서 국민들의 대변이이 되어 싸우지는 않았다. 브리쏘네는 어쩌면 독일의 루터처럼, 프랑스의 신학과 교회를 완전히 개혁하는 인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브리쏘네의 연약한 개혁 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로 수년 동안 프랑스에는 대중적인 개신교의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머리말
감사의 글
그림 및 도표 목록

제1부 인격과 학문의 형성
제1장 16세기 유럽 순례 : 종교개혁은 왜 일어났는가?
제2장 비범한 귀족의 풍모
제3장 프랑스 종교개혁의 성장
제4장 법학 수업과 신학문의 호흡
제5장 휴머니스트의 꿈
제6장 정처 없는 나그네 생활
제7장 성경의 메시지 『기독교 강요』

제2부 사역의 현자에 선 개혁자
제8장 제네바에서 첫 번째 사역
제9장 개혁자의 성숙과 발전

제3부 투쟁과 희생이 남긴 업적들
제10장 주님께 나의 심장을 드리나이다
제11장 대적자들이 준 고통
제12장 인간적인 면모
제13장 이단자들의 몰락
제14장 교육과 문화의 요람

제4부 경건의 열매들
제15장 기독교적 지성이 번득이는 저작물들
제16장 한 방울의 피도 헛되지 않으리
제17장 비판자들이 붙은 불명예
제18장 위대한 경건

끝맺는 말 : 따뜻한 칼빈의 모습

참고문헌
김재성
-남일교회 개척시무(1967년도 현재) -총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총신대 목회대학원 -서울 고신 교무위원 및 강사 -고신총회 S.F.C(학생신앙운동) 지도위원 -고신총회 유사종교 연구위원장 -서울평신도신학교 교무위원 및 강사 -관악 경찰서 교경회장 -서울 경찰청 지도위원 -검찰복음화 공동회장 -한기총, 북재위 부회장 -고신총회유지 재단이사 -고신총회 신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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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칼빈의 삶과 종교개혁 : 나의 심장을 드리나이다
저자김재성
출판사도서출판 이레서원
크기신국판 (153×225) 양장
쪽수574
제품구성
출간일2001-03-10
목차 또는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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