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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본질은 닮는 데 있지 않고 멋있는 표현에 있지도 않다.
나 스스로가 보고 듣고 느낀 생각을 쏟아내면 평범한 말도 새로워진다
연암 박지원

젊어서부터 오랫동안 글을 써왔는데도 나는 글쓰기의 주체인 한 개인이 나라는 생각, 즉 내가 글을 쓴다는 당연한 이치를 깊게 자각하지 않고 글을 썼다. 이는 한 세상의 구성 요소인 나에 대한 탐구를 집요하게 하지 못한 상태에서 글을 잘 쓰기 위해 글의 속성만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내가 세상에 어떻게 나와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지, 세상의 시작과 끝이 있다면 어디쯤에 서 있는지, 어떤 앎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지, 왜 글을 쓰며 고통스러워하는지 등등에 관한 물음에 대해서는 극히 소홀했다.

좌절을 겪으며 글쓰기를 중단하고 세월을 건너뛰어 단숨에 글쓰기를 해보면서 나는 글쓰기의 다른 면모를 알게 되었다. 주목받는 글의 완성에 목적에 두는 글쓰기를 하지 않고, 글을 수단 삼아 내 상태를 점검하다 보니 글쓰기가 내 존재감을 키워 주고, 내 인식의 지평을 확대시키고, 내가 사는 의미를 심오하게 해주었다. 글을 중심에 놓고 썼던 글은 나를 괴로움으로 몰고 갔는데, 나를 중심에 놓고 썼던 글은 나를 좀 더 나은 상황으로 치유했다.

북한산 산행 후기와 평화길라잡이 활동 후기를 쓰면서 내 글에 몇몇 사람이 댓글로 나의 심적인 변화 과정에 공감을 표시하였다. 그 글에는 20대 무렵처럼 한 줄의 명문장을 만들기 위해 밤새 고통스러워했던 흔적은 없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 담겨 있던 생각과 느낌들이 여과 없이 일상의 언어로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았다.
하지만 더 놀라운 기적은 내가 그 글을 다시 읽고 있으면 엉킨 실타래가 풀리듯 생각이 정돈되면서 인생을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가 다져지는 현상이 일어났던 것이다. 내가 쓴 글이 잘 쓴 글이고 못 쓴 글이고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오로지 그 글에 내가 어떻게 녹아들어가 있는지, 내가 어떻게 사물을 성찰했는지, 내 앎의 깊이가 얼마나 더 진전되었는지, 내가 살아갈 이유를 어떻게 찾고 있는지 등등 내면의 목소리에만 관심을 쏟게 되었다. 한 편의 후기를 쓸 때마다 내면이 부쩍부쩍 성장하는 듯했는데, 일종의 영적 체험 같았다.

이 책을 쓴 이유

1강 | 나는 거대한 세상에서 구체적으로 존재한다
2강 | 나는 현재의 앎에 확신을 갖고 산다
3강 | 글은 마음과 몸으로 쓴다
4강 | 원초적 감정 표현이 살려는 의지이다
5강 | 왜 글쓰기로 살려는 의지를 다져야 하는가?
6강 | 내가 살려는 의지를 다지는 글쓰기의 세계
7강 | 글쓰기여, 내게로 오라
8강 | 글쓰기의 지평을 확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