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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이 책은 사무엘상(1 Samuel)과 사무엘하(2 Samuel) 모두를 다루고 있다. 사무엘상이 사울 왕 시대를 다루고 있다면 사무엘하는 다윗 왕 시대를 다루고 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랐던 왕이 사울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그의 영적인 교만과 불순종으로 인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게 하셨다. 하나님은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나라와 그 위의 영원함을 약속하셨으며 이것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로 이어지게 하셨다. 이 과정에서 사무엘 선지자의 역할이 컸다. 그는 정직하고 부패하지 않은 성직자로, 다윗의 멘토 역할을 했다.
엘리 제사장 때 언약궤, 곧 법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겼다. 법궤는 승리의 상징이었으나 이를 빼앗긴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구속사적으로 볼 때 이는 시대가 법궤지상주의에서 떠나 영적 종교로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즉, 제사중심에서 말씀 순종으로 바뀐 것이다. 제사가 법궤지상주의를 반영한다면 말씀 순종은 영적 종교를 반영한다. 이는 영적 계시의 발전을 의미한다. 이 변화의 중심에 사무엘이 있다.
사무엘은 모든 선지자의 조상으로 선지학교를 세웠다. 그는 왕 세우는 것을 싫어하고 하나님 말씀만 통치하기를 바랐다. 그는 미스바 부흥운동을 일으켰다. 이는 새 영적 종교로 진입을 의미한다.
사울은 제사장이 아니면서도 스스로 제사를 지낼 만큼 불순종하는 왕이 되었다. 이는 나름대로 옛 종교, 의식종교에 매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사울은 사무엘의 마음에 맞지 않았다. 이에 반해 다윗은 사무엘의 마음에 맞는 인물이었다. 다윗은 제사보다 상한 심령을 원하신다.고 할 만큼 영적 종교를 추구했다.
사무엘은 레위의 후손으로 그의 이름은 하나님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이름은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는 뜻을 가진 사알 메엘과 발음이 비슷하다. 그는 사사시대와 왕정시대를 연결하는 과도기의 주역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사사시대의 최후의 사사요 왕정시대의 최초의 선지자로 간주되고 있다. 그는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자신은 신정정치(Theocracy)를 주장했다. 이스라엘이 다른 이방 나라처럼 왕 세우기를 고집하므로, 하나님은 왕을 허락했다. 하나님이 왕을 허락한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의 징계였다.
사울(Saul)은 베냐민 지파 출신이다. 당시 이 지파는 가장 미약했다. 하지만 미약했기 때문에 오히려 지파간의 시기와 질투의 기회가 줄어 백성을 연합하는 데는 유익했다.
사울이 버림받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블레셋과 전투 때 사무엘을 기다리다 지쳐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번제를 집행했다. 제사장직을 침범한 것이다. 둘째, 불순종했다. 아말렉과 전투 때 모든 소유를 진멸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으며, 또 아각 왕을 살려주었다. 아각은 후에 사무엘에게 죽지만 에스더서에 나오는 그 후손 하만이 이스라엘을 멸하려고 계획했다.
사울이 미친 자가 되기도 했고 사위인 다윗을 죽이고자 했다. 이 모두는 악신의 역사다. 미친 것은 우울증 내지 정신착란증세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다윗을 죽이고자 했지만 다윗은 달랐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와도 내가 어찌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치리이까? 하며 놓아주었다. 엔게디 굴속에서 사울의 겉옷자락만 벤 사건이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져오게 한 사건이 그 보기다.
블레셋이 침투하자 사울은 결국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을 만큼 영적으로 타락했다. 이 여인은 가나안 후예이다.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했다. 길보아 산에서 패전한 그는 세 아들과 같이 죽음을 맞았다. 그 가운데 요나단이 있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해 슬픈 노래를 지었다. 제목은 활 노래로 싸움터에서의 노래에 해당한다.
사울의 죽음과 관련해 아말렉 소년의 보고에 대한 논란이 있다. 사울이 자기의 칼에 엎드려 자결했다는 구절(삼상31:4,5)과 아말렉 소년이 사울의 요구에 따라 그를 죽였다는 구절(삼하1:9,10)이 서로 모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구절은 모순이 되지 않는다. 그 이유의 첫째는 아말렉 소년은 사울의 자결을 보고 자기의 공로를 나타내기 위해 거짓말을 하여 자기가 죽였노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면류관과 손의 고리를 가져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둘째는 사울이 자기의 칼 위에 엎드려졌으나 그 때에 죽지 못하고 아말렉 청년에게 죽여주기를 청하였다는 점이다.
다윗(David)은 30세에 등극하여 헤브론에서 7년, 예루살렘에서 33년, 모두 40년간 통치했다. 다윗은 통치기간 중 세 번 기름부음을 받았다. 처음에는 사무엘로부터 받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두 번째는 헤브론에서 유다족속만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는 헤브론을 수도로 정하고 7년 6개월 동안 통치했다. 그가 유다의 왕이 된 것은 블레셋의 도움이 있었다. 당시 블레셋은 이스라엘 양분 정책을 추구했으며,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의 전쟁 장기화를 노렸다. 세 번째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정하고 여기서 33년간 통치를 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성(보존, 근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다윗 성, 시온 성, 살렘, 여부스 등 다양한 명칭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존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6)며 다윗과 언약을 맺었다. 이 언약은 확실한 언약, 내 언약이라 불린다. 이것은 나타날 메시야에 관한 것으로 아담의 씨(여자의 후손), 아브라함의 씨, 다윗의 자손으로 구체화되었다.
다윗은 블레셋, 모압, 에돔, 소바, 다메석, 하맛, 암몬 등 여러 족속과 전쟁을 벌려 승리했다. 모압과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트랜스요단의 무역 로를 확보했다. 다윗왕국의 판도는 유프라테스 강에서 홍해에 이르기까지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전 지역을 망라한다. 그는 상비군, 관장(행정), 재산관리자, 왕 고문단을 두어 새 질서를 확립했으며, 종교적으로는 사독과 아히멜렉 등 두 제사장을 두어 새로운 종교제도를 확립하고 레위족속을 조직화했다.
다윗은 선행도 했지만 악행도 행해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선행으로는 요나단의 아들로 다리를 저는 므비보셋에 대해 친절과 사랑을 베푼 일이다. 친구 요나단을 생각하여 그를 왕자와 같이 대우했다. 이 일이 개인적인 선행이라면 공인으로서 선행을 한 것으로 기브온 사람들에게 공의를 베푼 일을 들 수 있다. 가나안을 정복했을 당시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을 결코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그들은 성전의 물 깃는 자들로 생활했다. 그들은 동화되지 않았다. 종족주의가 강한 사울은 그들을 학살하려 했다. 이스라엘은 개방사회지만 사울은 달랐다. 이 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3년 동안 기근이 있게 했다.
다윗의 대표적인 악행으로는 밧세바와의 불륜과 그의 남편 우리아를 죽게 한 죄, 인구조사의 실시를 들 수 있다. 다윗은 불륜과 죄악을 회개했지만 하나님은 밧세바와의 불륜으로 나은 아이를 죽게 하셨고, 칼이 떠나지 않을 것과 가정이 어려워질 것을 예언하셨다. 이 같은 예언은 다윗으로 하여금 사죄의식을 갖게 되었고 계속 그를 겸손케 만들었다. 인구조사는 하나님의 백성을 자기 소유로 알았고 권력과 무역으로 나라를 세우려 했다는 점에서 동기가 악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모세의 인구조사와 다윗의 인구조사는 차이가 있다. 모세는 20세 이상 남성을 대상으로 2번 인구조사를 했는데 그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을 위한 것이었다면 다윗의 인구조사는 군사강국을 만들어 자신의 세계의 왕국(Kingdom of World)을 세우려 했다는 것이다.
다윗의 말년에는 여러 차례 반역이 있었다. 이것은 그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다. 첫 번째 반역은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에 의해 일어났다. 압살롬이 죽었고, 다윗은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자기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눈물 속에는 회개의 심정이 담겨 있다.
두 번째 반역은 베냐민 사람 세바에 의해 일어났다. 이것은 다윗의 파벌주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압살롬이 죽자 피신해 있던 다윗을 다시 궁으로 모시는 문제가 발생했다. 다윗은 유다지파를 향해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 아니냐는 발언을 하며 앞장서도록 재촉했다. 그의 종파적인 발언은 결국 종족을 분열시키고 종파주의를 초래했다. 환영행사에 유다지파는 많았고, 이스라엘 지파는 적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상의를 하지 않았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세바가 일어나 기업이 다르다며 이스라엘을 선동해 다윗을 배반하도록 한 것이다.
세 번째는 그의 넷째 아들 아도니야에 의해 일어났다. 이 반역에 대제사장 아비아달과 군대장관 요압이 협조했다. 아비아달은 대제사장 사독에 대한 불만이, 그리고 요압은 기회주의적 태도가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나단 선지는 밧세바로 하여금 다윗을 찾아가 솔로몬이 태어날 때 계승자로 정한 사실을 다시금 확인케 했으며, 다윗은 솔로몬을 왕의 계승자로 인정한다. 솔로몬은 대제사장 사독 성막에서 기름부음을 받는다. 솔로몬이 태어날 때 하나님은 나단을 통해 여디디야란 이름을 준 바 있다. 이 이름은 제비 뽑힌(선택 된)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열왕기상에 기록되어 있다.
사무엘상과 사무엘하는 한나의 서원으로 시작해서 인구조사에 대한 범죄로 아리우나의 타작마당을 사서 그곳에 제단을 만들고 제사를 드리는 다윗의 회개의 제사로 끝을 맺는다. 그 안에는 겸손했던 사울이 불순종과 교만으로 처참한 결말을 보게 되고, 사울의 시기로 인해 힘든 세월을 보냈던 다윗이 어떻게 왕으로 다듬어지고, 왕국이 세워지는가를 보여준다.
모든 역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좋은 결과를 얻지만 불순종하면 개인도, 나라도 망한다. 왕일수록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각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는 교훈을 준다.
양창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