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들이 교회에 가는 이유가 궁금하다.
어쩌면 그 이유들은 교회가 본래 되어야 하는 모습과는 별로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지난 수십 년간 교회에 충실하게 꾸준히 다닌 사람들이 왜 교회에 나가는 데 흥미를 잃고 있는가? 그런가 하면 여전히 교회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은가?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복음주의 대표 작가인 래리 크랩이 건강한 교회의 의미를 도발적으로 재정의했다. 좋은 사역자를 꿈꾸는 모든 목회자와 예비 목회자의 필독서!
“교회 홍수 시대에 예수님은 갈 곳이 없으시다."
교회를 사랑해서 교회에 바란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100년을 넘어섰다. 이제 국내 어느 지역에 가든 붉은 십자가 간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렇듯 교회는 넘쳐나지만, 교회에 대한 사람들의 실망은 극에 달했으며, 교회를 둘러싼 듣기에도 민망한 사건사고들로 인해 교회 안팎은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교회는 구세대의 유물이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교회는 일주일의 하루를 지배하는 습관이다. 형식을 존중하는 교회이든 편안한 현대식 교회이든, 자유주의 교회이든 복음주의 교회이든, 많은 사람들에게 교회는 건물과 직원과 규정과 약속과 홍보 활동이 있는 하나의 기관이다. 하지만 교회는 그 이상이지 않는가?
교회란 무엇이며 본래 무엇이어야 하는가? 교회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가? 그런가 하면 왜 어떤 사람들은 교회생활에 흥미를 잃었는가? 내가 다니고 싶은 교회,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진정한 교회란 존재하는가? 힘을 보태 그런 교회를 세울 수 있을까? 당신과 나는 그런 교회가 될 수 있을까?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최전선이다.
교회들이여, 중심을 잃지 말라!
이 시대는 ‘진정한 교회’에 목마르다!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복음주의 대표 작가이며, 전문 상담가로서 교회에서 수십 년을 지낸 래리 크랩은 이 문제를 점점 깊이 인식하면서 솔직하고 겸손하게 글로 풀어냈다. 이것은 곧 평생 교회를 다니는 모두 그리스도인들의 고민이자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우리 하늘 아버지의 고민일 것이다. ‘넓은 길로 가는 우리 시대 교회들’에게 던지는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질문들! 이 시대 교회가 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
래리 크랩은 이 책에서 현대 교회들에 올무가 되고 있는 약점을 파헤치는데, 그것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프로답게 일구어낸 특성이라고 칭송하는 것들이다. 그러고 나서 저자는 조심스럽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내놓는다. 그것은 철학적이면서도 참신하고 실제적인 패러다임이다. 아울러 오늘날 교인들을 괴롭히는 의문들과 그가 탐색하면서 품게 된 새로운 교회상도 함께 제시한다.
이 책은 무난한 교회, 무난한 목회에 안주해 있는 교회와 목회자들의 굳은 마음을 일깨워 다시금 주님이 맡기신 교회의 목적과 목표를 재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목회를 하고 싶은 목회자 및 예비 목회자들이 시대의 풍조에 휩쓸리지 않고 바른 ‘교회’를 세워가도록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전환점이 되어줄 것이다. 교회 리더십은 물론이고 교회에 실망해서 신앙을 떠났거나, 교회생활에 회의가 드는 이들이 말씀의 자리로, 기도의 자리로 돌아오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사탄이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이 때에 교회만이 이 땅의 희망이다. 예수님이 머물고 싶으신 진정한 교회를 꿈꾸는가? 무너진 교회를 다시 세우고 싶은가? 무엇보다 교회에 부흥을 달라고 기도하라.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신이 동역자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 살면서 만나는 비그리스도인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점검해보라! 진정한 교회로의 회복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38-39쪽 중에서>
지금까지 우리는 교회에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네 가지 부류로 생각해 보았는데,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첫 번째 부류 : 주중에 좀더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해서 또는 교회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이다.
. 두 번째 부류 : 교회가 중고등부 사역자들과 주일학교 교사들로 더불어 자녀들을 문제에 빠지지 않게 해 주고 믿음을 갖게 해 줄 것으로 기대하는 부모들이다.
. 세 번째 부류 : 혼자 살면서 교회를 그리스도인 친구들이나 배우자감을 만날 수 있는 장으로 보고 중요시하는 사람들이다.
. 네 번째 부류 : 뭔가 평소의 답답하고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날 길을 찾아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이다.
교회는 각 부류의 사람들이 느끼는 필요를 그들의 수준에서 채워준다. 그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교회의 전부라면 나에게는 그런 교회가 필요 없다. 주일 아침에 느긋하게 C. S. 루이스나 존 오웬의 책을 읽는 것이 나에게는 여태까지 들어 본 대부분의 설교보다 더 좋은 영적 양분이 된다. 또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과 전화로 또는 커피를 마시면서 깊은 대화를 나누면, 나는 거기서 얻는 바른 시각으로 좁은 길을 계속해서 걸어갈 수 있다.
게다가 나는 자녀들 때문에 교회를 나가는 나이도 지났다. 또한 40년이 넘도록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데 우리 관계는 아주 만족스럽다. 그리고 나는 일일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없을 정도로 친구들도 많고, 의미 있는 일들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교회에 가지 않고도 채워진다.
그러니 내가 교회에 가야 할 까닭이 무엇인가? 교회가 매주 영적인 교훈을 얻는 곳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미 채워지고 있는 내 삶의 필요에 또는 나에게 있지도 않은 문제에 도움을 주려고 존재하는 곳이 교회라면, 내가 교회를 원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수많은 목사들과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교회에는 당신이 말하는 것 이상이 있어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지금 나에게 들리는 듯하다. 교회는 매주 영적인 식사로 당신에게 양분을 주어 한 주간을 잘 지내게 해 주는 곳 이상이다. 교회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에 알맞은 곳 이상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 이상이다. 교회는 기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이상이다. 교회는 권태로운 삶을 벗어나 영적으로 기분 전환을 하는 곳 이상이다. 물론 그런 것들도 다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교회에는 분명 그 이상이 있다!
<47-48쪽 중에서>
사람들이 한 가지 궁극적인 목적을 위하여 모일 때 모임은 교회가 된다. 그 목적이란 우리의 동기와 생각과 욕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고 이를 통하여 하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일 때는 이유도 가지각색이고 기대하는 것도 다양하다. 그중에는 숨은 것들도 있고 노골적인 것들도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나 서로 간의 관계에서나 예수님처럼 관계를 맺기 위해서 모인다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자기중심성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대면하고 드러내야 하는 도전이다. 그것이 바로 모임을 교회되게 한다.
그것은 성령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며, 내세가 없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예수님이 예수님답게 사셨을 때 어떤 일을 당하셨는지 보라. 하지만 그분의 삶은 무덤으로 끝나지 않았다.
일단의 그리스도인들이 작은 그리스도가 되려고 모일 때, 그들은 자기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에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들 안에는 작은 그리스도가 된다는 그 목표를 싫어하고 그 과정에 격렬히 저항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 안에 있는 그 모든 방해 세력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천국 음악에 리듬을 맞추어 춤추는 법을 배우는 데에는 영적 전투가 수반된다. 전투 대상은 당연히 마귀와 마귀가 주도하는 세상 시스템이지만, 그 이상으로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를 보호하고 자기를 속이고 자기에게 집착하는 얽히고설킨 에너지다. 그 에너지는 삶에 꼭 필요해 보여서, 그것을 물리치기는 고사하고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모임은 비교적 즐겁고 밝을 수 있지만 교회는 우리를 고통과 어둠 속으로 데려간다. 모임은 대개 매끄럽게 돌아가지만 교회에는 늘 문제가 있다. 모임은 타고난 본성들을 인정하지만, 교회는 그런 본성들을 책망하며 오히려 초자연적 성향들이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질지라도 일정한 수준의 성숙에 이를 때까지 그것들을 길러 낸다.
어떤 모임이 교회라면 그 모임이 세상 무엇보다도 간절히 원해야 하는 것은 영성 계발의 공동체, 즉 춤을 배우는 곳이 되는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관계를 맺으시는 그 리듬을 우리 영혼이 익히게 되면 우리는 몰랐던 것들을 깨닫는다. 지금까지 우리가 관계를 맺어 온 방식이 얼마나 꼴사납게 흉했으며,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얼마나 비열하게 해쳤는지를 알게 된다. 또한 생명을 주는 능력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는 삶을 얼마나 철저히 놓쳤으며, 사람들을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나기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당장 포기하고 싶어진다. 춤을 잘 출 수 있다는 희망을 다 버리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에서 관계 맺으며 살고 싶어진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보이지 않는 손이 부드럽게 우리의 턱을 들어 올려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게 하신다. 눈을 들어 위를 보면 거기 예수님이 미소를 짓고 계시고, 아직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이 영광스럽게 웃고 계신다. 그것이 바로 모임을 교회되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다.
<76-77쪽 중에서>
예수님을 믿으면 건강과 부를 얻는다는 기복 신앙을 전하는 교회들이 아직도 너무 많지만, 좀더 현실성 있는 교회들은 너무 노골적이지 않게 그런 물질주의적인 약속들의 수위를 조절했다. 개인의 삶과 인간관계에 더 많은 복이 임할 거라는 낙관적인 기대로 전환시킨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부 사이가 친밀해지고, 자녀들이 책임감 있게 변하고, 자신이 정서적으로 건강해질 거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이런 좋은 일들이 이생에서 조만간 이루어질 거라는 희망을 굳게 붙든다. 이런 복들이 최우선이 되며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나는 하나님께 복 받는 것을 하나님과 깊이 만나는 것보다 더 좋게 여기는 교회에는 가고 싶지 않다. 페르페투아와 폴리캅은 분명히 그렇게 살지 않았다. 교회에 다니는 것이 이 땅에서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고 하는 개념을 만일 그들이 들었다면 그들은 기겁했을 것이고, 클레어보의 베르나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개념이 주는 매력은 나도 이해가 된다. 하나님을 얻는 것은 그분의 복을 얻는 것만큼 당장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만큼 우리들 대부분이 하나님을 ‘얻는’ 수준이 낮다는 말이기도 하다. 바로 그것이 내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불러일으켜 주는 교회, 그리고 그 욕구에 지배당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믿음을 길러 주는 교회에 가고 싶은 이유다.
<118-119쪽 중에서>
우리가 교회에서 하는 일과 삶을 살아가면서 간절히 갈망하고 씨름하는 것들 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성령께서 보여 주시지 않는 한 우리는 자신의 깊은 갈망들을 느낄 수도, 자신의 최악의 문제들을 직시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10대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들이나 딸이 개과천선하는 것보다 더 놀라운 기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뼈저린 외로움을 느끼는 싱글들은 평생 사랑하며 살 배필을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욱하는 기질이 있는 친구들은 인내심만 기르면 자신의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믿는다. 우리는 덜 중요한 갈망을 자신의 가장 깊은 갈망으로 착각하는 데 선수다. 또한 우리는 심각한 죄를 가장 심각한 죄로, 어려운 문제를 가장 어려운 문제로 착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 갈 때, 기독교의 복음이란 하나님이 나의 덜 중요한 갈망들을 채워 주시고 나의 덜 중요한 고민들을 해결해 주시는 거라고 여긴다. 하지만 교회가 그 일을 떠맡는 순간,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그 교회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성령의 기름 부음을 잃고 만다.
성령께서 땅 밑을 깊숙이 파서 흙을 갈아엎으셔야 한다. 그래야 성부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기 원하시는 우리 마음의 갈망들이 드러나고, 성자 예수님만이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우리 영혼의 문제들이 드러난다. 우리 문화가 생각하는 성공한 교회는 사람들의 공허함을 채워 주지 못한다.
겉으로 신실해 보이는 사역은 믿음 없는 마음을 가리기 위한 것일 때가 많다. 내가 속하고 싶은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 사실을 안다. 우리 모두는 채움 받지 못한 욕심들, 극복하지 못한 문제들, 인식하지 못한 갈망들, 정체 모를 고민들로 뒤죽박죽되어 있는데, 내가 속하고 싶은 교회는 그 사실을 정말로 알고 있다.
<210-212쪽 중에서>
나는 사명이라는 마차를 관계라는 말이 끌게 하는 교회에 가고 싶다. 물론 여태까지 내가 속했던 소그룹치고 한 번쯤 무거운 긴장에 빠져들지 않은 그룹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 긴장들 때문에 그룹이 해체되거나 적어도 몇 사람이 떨어져 나간 적도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완전한 곳이 아님을 나도 안다. …(중략)…
하지만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도록 아버지께 간구하신 관계, 그 관계를 가꾸는 도전 앞에서 우리는 그 어떤 현실에도 체념해서는 안 된다. 그 도전에 응하려면 적어도 우리 쪽에서 두 가지가 필요한데, 이 두 가지가 공동체 중심의 교회들의 특징을 이룬다.
첫째, 우리는 당면한 문제 즉 우리 안에 있는 방해 세력을 직시해야 한다. 당신 쪽에서 내가 당신을 어떻게 실망시켰는지를 말한다면 내 쪽에서도 당신이 나를 어떻게 실망시켰는지를 말할 것이다. 그것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힘들이지 않아도 나는 당신의 잘못이 떠오르고 그것부터 먼저 생각난다. 방어적인 자기 보호는 나라는 존재 속에 스며들어 있다. 그것이 즉각적인 행복과 즐거운 기분을 좇는 내 중독을 지속시키는 에너지다. 내가 속하고 싶은 교회는 관계상의 죄가 작용하는 역동을 이해하고 그것을 암으로 취급하는 교회다. 관계상의 죄는 정말 암이다.
둘째, 자기를 보호하는 것보다 더 설득력 있는 무엇이 우리를 내면 깊은 곳에서 사로잡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나라를 진척시키는 것, 미래의 희망, 복음의 사랑, 성경적 진리, 다른 사람들이 잘되는 것, 세상의 고난을 줄이는 것. 이것들은 찬란한 다이아몬드의 여러 단면들이며, 그 다이아몬드란 성령께서 하나님을 알려 주신 그 계시다. 그리고 그 계시는 하나의 이야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랑 이야기, 자신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듣기를 갈망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내가 자아에 중독된 나의 실상을 보며 깨어지지 않는 한 그 다이아몬드는 내 영혼 안에서 빛을 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기준으로 나를 높여 주고 내 행복을 지켜 주는 이야기에 중독되어, 그 이야기만 듣겠다고 고집하는 사람이다. 배우자는 나를 이렇게 사랑해야 하고, 아이들은 품행이 단정해야 하고, 동업자들은 나를 공정하게 대해야 하고, 친구들은 내가 피곤할 때를 알아 그때는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자아에 중독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미워하지 않는 한 우리는 절대로 예수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 서로 잘 지낼 수 없다. 예수님은 그런 관계를 가능하게 하시려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
나는 너무 프로그램 중심이고 유명인에 의존하고 소비자 지향적인 교회에는 가고 싶지 않다. 그런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지내도 되기 때문에, 자기들의 자기중심성의 위력을 느낄 기회가 없다. 나는 상한 감정과 고질적인 짜증을 관계를 깨뜨리는 요인들로 보는 교회에는 가고 싶지 않다. 갈등은 사실은 우리 각자를 깨어지게 하여 오히려 관계를 세워 준다.
예수님은 그분의 사람들이 바른 공동체를 가꾸기를 위하여 기도하셨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기도하신 그 공동체보다 그리스도의 사명을 더 중시하는 교회에는 가고 싶지 않다. 내가 가고 싶은 교회는 선교적 에너지가 공동체에서 발산되어 나오는 교회다.
<240-241쪽 중에서>
나는 내가 모든 사람들처럼 자아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의 구체적인 사역의 성공에 대한 중독이 다른 중독들보다 무난해 보이거나 심지어 칭찬받을 만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양심상 나는 알코올 중독자나 포르노 중독자를 판단할 수 없다. 나는 항상 낙천적인 그 사람이 현실을 부정하며 산다고 확신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나는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 그들보다 내가 더 선하다는 태도를 취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속하고 싶은 교회는 인정받는 데 중독된 목사가 외도하다 발각된 장로 못지않게 자기에게도 똑같이 은혜가 필요함을 아는 교회다. 우리 모두는 자기 힘으로 충분한 척하는 데 중독되어 있고 그것은 우리 모두를 두렵게 한다. 살다 보면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도전들이 닥쳐온다는 것을 우리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부분에서 하나님을 ‘의지’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런 환상이 유지되도록 계속 삶을 잘 돌아가게 해 주시고, 내 힘으로도 능히 예수님처럼 살고 사랑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게 해 주시고, 제일 좋아하는 자아 중독을 꼭 붙들고 놓지 않게 해 주실 거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느 순간에 우리에게 협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진정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움직이시고, 필사적으로 자아를 믿으려는 우리의 굽어진 본성을 드러내시며, 우리 영혼 안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보게 해 주신다. 과연 그것은 전쟁이다. 내가 속하고 싶은 교회는 함께 모여서 천국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의 음악소리를 듣는 교회다. …(중략)…
내가 속하고 싶은 교회는 우리가 방식만 서로 달랐지 모두 자아에 중독된 존재임을 아는 교회다. 그 교회에 함께 모이는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에 목마르고, 영성 계발에 주력하고, 공동체 중심이고, 선교적으로 활기찬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목적은 하나, 즉 우리를 하나님 중독자들로 변화시켜 줄 음악을 듣는 것이다. 바로 그런 교회가 내가 속하고 싶은 교회다.
1부. 진정한 교회에 목마른 사람들
1. 나는 교회에 흥미를 잃었다
2. 좋아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3. 모임을 교회되게 하는 것
4. “그런 모임이라면 그만 두어라!”
2부. 우리는 왜 교회 가야 하는가
1. 교회는 내 삶을 더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_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인가?
2. 행복한 삶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
3.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법을 알려 줄 것이다 _그것이 교회의 핵심인가?
4. 사명 안에 갇힌 선교적 교회
5. 교회는 구원을 주고 의롭게 살도록 도와줄 것이다 _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깊은 변화인가?
3부. 우리가 꿈꾸는 교회
1. 깨어진 사람들이 모인 교회
2. 내 현 상태를 바로 보고 거기서 나를 만나 주는 교회
3. 은혜의 필요를 아는 교회
4. 우리에게는 교회가 필요하다
진정한 교회의 4가지 특징
4부. 교회를 교회되게 하라
1. 특징 1_ 진정한 교회는 ‘진리’에 갈급하다
2. 부활의 진리 위에 세워진 교회
3. 성경이 말하는 이야기의 진리를 듣는 교회
4. 표지판의 진리를 따라 안개 같은 상황을 뚫고 가는 교회
5. 특징 2_ 진정한 교회는 ‘영성 계발’에 힘쓴다
6. 특징 3_ 진정한 교회는 ‘공동체 중심’이다
7. 특징 4_ 진정한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사명을 수행한다
8. 자아 중독에서 하나님 중독으로
래리 크랩은 이 책에서 이 땅에 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능히 될 수 있고 마땅히 되어야 할 모습을 뜨겁고 명쾌하게 제시한다. 그는 타성에 젖은 관행들과 현란한 사업들을 넘어 사랑과 솔직함이 생생하게 만나는 교회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곳은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 아래서 함께 살 수 있는 곳이며, 거룩함과 능력이 있는 두려운 곳이다. 우리는 과감히 거기로 갈 것인가? 감히 가지 않을 것인가?
달라스 윌라드_ 「하나님의 모략」 저자
많은 사람들이 속으로는 궁금해 하면서도 선뜻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질문들을 래리 크랩이 이 책에서 대신하고 있다. 이제는 그런 질문들을 던져야 할 때다.
존 오트버그_ 「나의 일로 하나님을 높이라」 저자, 멘로파크장로교회 목사
래리 크랩은 우리 자신과 교회를 정직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대충 훑어보면 되는 책인 줄 알았는데 결국 나는 정독하고 나서 회개했다. 목사들, 장로들, 교인들이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 우리 삶과 교회에 빠진 부분들을 이 책을 읽으며 함께 재발견할 수 있다.
조엘 헌터_ 노스랜드커뮤니티교회 담임목사
나는 지역 교회를 열렬하게 지지하는 사람이다. 교회는 문제 많은 우리 세상에서 하나님이 그분의 일을 하시는 최전선이다. 내 친구 래리 크랩이 교회 문제로 고민한다는 사실은 나를 난감하게 했지만 나는 이것이 비단 그만의 문제가 아님을 얼른 떠올렸다. 고맙게도 그는 솔직하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우리를 건설적인 해법 쪽으로 이끌어 간다.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한다. 당신이 혹시 교회를 좋아하고 신뢰하는 사람일지 몰라도 당신의 친구들 중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조 스토웰_ 코너스톤대학교 학장
래리 크랩보다 솔직한 사람이 또 있을까? 사람들이 떼 지어 교회에 등을 돌리는 이때에 래리는 예리한 통찰력으로 현대 교회를 허물고 다시 짓는다. 그의 솔직함은 입이 벌어질 정도다. 또한 그가 짓는 교회는 내가 다니고 싶은 교회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래리 크랩은 진리, 변화, 공동체 그리고 영적 사명을 주는 교회상을 제시한다. 얼마나 귀한 선물인가!
게리 문_ 레노바레 기독교영성계발연구소 대표
도서명 | 교회를 교회되게 |
저자 | 래리크랩 |
출판사 | 도서출판 두란노 |
크기 | (150*220)mm |
쪽수 | 264 |
제품구성 | |
발행일 | 2011-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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