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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레이엄 자서전 : 내 모습 이대로  
(Just as I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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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역자 : 빌리 그레이엄/윤종석  |  출판사 : 도서출판 두란노
발행일 : 2001-01-05  |  신국판 (153×225) 848p  |  89-531-0029-1
  • 판매가 : 22,000원19,800원 (10.0%, 2,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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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복음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 자서전

늘 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천국에 가면 맨 먼저 이것부터 묻고 싶다.
"주님, 왜 저 입니까? 왜 하필 노스캐롤라이나의 시골 소년을 택하여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설교하게 하시고 그렇게 놀라운 동역 팀에 속하게 하시며 20세기 후반에 주님이 하신 일의 한 부분을 삼으셨습니까?"
이런 의문이 수없이 많이 들었지만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그 답을 아신다는 사실이다.


빌리 그레이엄은 그 신앙의 메시지로 무수한 심령에 영향을 미쳤다. 사상 처음 그레이엄 박사가 깊은 통찰의 글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계의 설교자로 인정받은 그는 전도자의 소명을 따라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주요 수도에서 외딴 벽촌까지 그야말로 모든 나라를 돌아다녔다. 그의 전도 대회는 벌써 50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그는 아이젠하워 이후 모든 대통령의 취임 과정에서 역사의 한 부분이 되었고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사회 문제의 선구자로서(남부의 흑백 분리 청중을 상대로 한 설교를 거부한 바 있음) 그의 지도력은 뛰어난 인격의 모범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빌리 그레이엄 자서전」에서 빌리 그레이엄은 더없이 따뜻하고 허심탄회하게 지나온 모든 삶을 되돌아본다. 축산 농가에서의 성장기, 초창기의 설교 경험, 그리스도를 향한 확고한 믿음에 기초한 대중 사역과 그에 대한 전 세계의 열렬한 반응 등을 회고한다.
빌리 그레이엄 전도 대회에 직접 참석한 사람은 지금까지 2억이 넘으며, 라디오나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통해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는 철의 장막 너머에서도, 중국과 북한에서도, 그 어느 대륙에서도 환영을 받았다. 많은 명사들이 곧잘 스캔들에 빠지던 시기에도 그레이엄 박사는 자신의 기관에 대한 철저한 관리, 본인의 개인 수입 제한, 종교계 전반의 경쟁 아닌 협력 촉구를 통해 지금까지 흠잡을데 없는 명성을 유지하며 영향력 있는 인품의 소유자로 남아 있다.
빌리 그레이엄 자서전에서 빌리 그레이엄은 마음을 끄는 예의 그 솔직함으로 자신의 사생활을 꾸밈없이 진솔하게 돌아보고 있다. 그가 털어놓는 신앙 여정에는 자신의 매일의 기쁨과 고뇌 그리고 아내 루스와 가족들을 향한 깊은 헌신이 감동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레이엄 박사는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이란 국왕, 김일성 등 다양한 국가 지도자들과의 관계를 술회하는 가 하면, 민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 비행기 여행 중 엔진에 화재가 발생한 사건,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댈러스 여행의 위험을 경고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비극 등 잊지 못할 만남도 소개한다.
그레이엄 박사는 아이젠하워로 시작해 존슨과 닉슨을 포함하여 현재의 빌 클린턴에 이르기까지 9명의 미국 대통령과의 우정을 상세히 들려준다. 여기에 대해 그레이엄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의 한 대통령이 예컨대 내 앞에서 올거나 나와 함께 기도하려 무릎 꿇거나 집안 문제를 은밀히 털어놓을 때, 나는 상대의 정치 철학이나 성격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만 생각했다."
이 책은 놀라운 영향력의 인물로 자란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깊은 감동의 사연이다. 빌리 그레이엄은 그 삶과 사역으로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고 존경받는 지도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자신의 삶과 사역을 지혜와 겸손의 시각으로 들어본 「빌리 그레이엄 자서전」은 전 세계 모든 독자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소중한 초상이 될 것이다.
[본문 195-200쪽 '10. 황급한 순회 집회'중에서...]

10. 황급한 순회 집회

로스앤젤레스 집회는 뛰어난 조직이나 거창한 광고 덕에 비롯된 일회적 현상이요 단발의 사건이었을까? 아니면, 뭔가 깊은 것 즉 영적 실체에 대한 굶주림의 표출이었을까? 다음 집회로, 로스앤젤레스 집회가 끝난 지 6주도 안되어 열릴 예정이던 보스턴 전도 운동에서 그 답이 밝혀질 것이었다.

보스턴 집회에 대한 논의는 로스앤젤레스 집회가 있기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뉴잉글랜드 전도 협회(복음주의 목사 단체)는 내게 메커닉스 홀에서 열리는 송구영신 예배를 주도해 달라고 부탁했고, 해럴드 존 오켕가 박사는 그 직후 일주일 동안 보스턴 시내의 역사적인 교회인 파크스트리트 교회에서 설교해 달라고 나를 초청했었다.
미국의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라는 보스턴의 명성에 기가 죽긴 했지만 나는 전도 운동을 개최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받아들였다.


보스턴

"전도자, 설날 축제에 도전장을 던지며 이곳에 오다." 1949년 12월 30일 「보스턴 헤럴드(Boston Herald)」가 뽑은 헤드라인이었다. 이어지는 기사는 다소 회의에 찬 어조로 나를 "내일 밤 메커닉스 홀의 종교 집회로 설날 전야 축제의 유혹에 맞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 전도자"로 소개하고 있었다.
보스턴의 모든 사람이 전통적 설날 전야 행사를 포기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러나 전도 운동 첫 집회인 그 날 밤, 뜻밖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보스턴 선데이 글로브(Boston Sunday Globe)」지는 이렇게 보도했다. "지난 밤 보스턴 시내의 호텔, 나이트클럽, 술집에도 많은 사람이 모였으나 보스턴 전지역에서 가장 큰 무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군 전사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 메커닉스 홀에 만원을 이뤘다...."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첫 주말의 설교 제목은 "하나님은 미국을 살려 주실 것인가?" "우리는 싸워야 하는가?" "새로운 사회 질서"등으로 정해 광고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 주제가 언제나 똑같이 "죄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 개인적 회개와 회심의 필요성"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제목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정했지만 기본 메시지는 영원 불변한 것이었다. 「보스턴 글로브」는 내가 한 말을 인용했다. "저는 인류가 과연 서기 2천년을 맞이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죄 가운데 방종하며 살아가는 우리 미국인들의 삶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코에 역한 악취일 것입니다."
우리가 보스턴에 간 것이 그토록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보스턴의 많은 사람들은 나를 시대에 뒤떨어진 가망 없는 사람으로 보았다. 청교도 시대로 후퇴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일부 극단적 자유주의자들과 유니테리언파 성직자들은 내가 종교를 100년이나 되돌려 놓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사실 종교를 100년뿐 아니라 사도행전 시대로 1,900년을 훌쩍 되돌려 놓고 싶다고 답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로마 제국을 전복시키려 한다고 비난받던 그 1세기로 말이다.

내가 하버드의 저명한 인류학 교수 어니스트 A. 후튼 박사의 의견에 공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자 언론은 대대적 관심을 표명했다. 그는 '안락사'를 옹호했고, 나는 하나님이 그 행위를 살인으로 규정한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대학 전공이 그 분야였는지라 나도 그의 책 「원숭이의 진화(Up from the Ape)」를 읽어보았고 그의 학식을 존중했다. 그러나 종교와 십계명에 대한 그의 태도는 지적인 교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후원이 쇄도하면서 집회가 연장되었다. 오켕가 박사의 파크스트리트 교회에서 이틀을 모인 후 우리는 다시 메커닉스 홀로 돌아와 장소 사용이 허용되는 동안 계속 집회를 가졌다. 그 다음 잠시 오페라하우스로 옮겼다가 1월 16일 월요일에 13,000석 규모의 보스턴 가든에서 마지막 집회를 가졌다. 전례 없이 많은 청중이 몰려들었다. 수천 명씩이나 그냥 돌아가야 한 때도 있었다. 애초의 계획보다 두 배나 더 길게 17일을 머무른 후, 마침내 더 이상 사용할 집회 장소가 없어졌다.

집회마다 초청에 반응하는 이들이 우리 몸으로 당해 낼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집회가 시작되기 전 장식 상담 요원 훈련이 전혀 없었다. 따라서 그레이디, 클리프, 베브, 나를 포함해 우리 팀 전원이 앞으로 나온 자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즉석에서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직접 만났다.
또 하나 우리를 고무시킨 것은 천주교의 반응이었다.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기념비적 교회 일치 결의안이 아직 나오기 전임을 감안할 때 그것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보스턴 대교구 공식 신문 「파일럿(Pilot)」은 사설 난에 "브라보, 빌리!"라는 제목으로 이런 글을 실었다. "빌리 그레이엄을 비난하는 이들을 볼 때 우리의 마음은 '즐겁지 않다.' 불행히도 개신교 성직자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일각의 생각처럼 뉴잉글랜드의 비(非)천주교 교회들이 과연 붕괴되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편협한 생각으로 그것을 기뻐할 자들이 아니다."

이대로 보스턴을 떠날 것인가, 더 머물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많은 생각 과 기도 끝에 우리는 떠나기로 했다. 만일 우리가 6주나 6개월 더 그 곳에 머물렀다면 하나님은 뉴잉글랜드에 이전 세기의 대각성 같은 일대 부흥을 주실 수도 있었을까? 대구와 구운 콩 요리의 고장 보스턴을 떠나 기차에 오른 뒤에도 나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할 것 같은 안타까움을 떨칠 수 없었다. 너무나 많은 기회의 문이 뉴잉글랜드 온 지역에 열려 있어 우리를 손짓하며 부르고 있었다. 명문 대학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나는 예정된 설교 약속이 있어 토론토까지 계속 갔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해진 것이 있었다. 보스턴뿐 아니라 뉴잉글랜드 전지역을 순회하는 다른 전도 운동을 최대한 빠른 시기에 다시 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보스턴 전도 운동 폐회 설교 때 실명을 밝히지 않은 채 어느 암흑 세계 인물을 만난 일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토론토로 가는 길에 나이아가라 폭포에 도착하니 경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보스턴 신문사들에서 전화가 왔다. 전도 운동이 끝난 다음날인 1월 17일에 브링크 사(社) 보스턴 사무실에서 수백만 달러 규모의 강도 사건이 있었던 모양이다. 경찰은 내가 거기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줄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설교 때 언급한 암흑 세계 인물은 서부의 짐 바우스였다. 그들의 심문에 그레이디와 나는 배꼽을 쥐고 웃었다. 필요하던 차에 긴장을 풀어 준 사건이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컬럼비아

1950년 늦겨울, 우리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컬럼비아에서 남부 최초의 대규모 전도 대회를 열었다. 주지사 스트롬 더몬드는 우리 부부를 주지사 관저에 손님으로 초청해 그 곳에 머물게 해주었다.

그 곳에 있던 중 나는 「타임」지와 「라이프」지 애틀랜타 지부장인 할랜드 씨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회사 설립자요 편집인 겸 발행인인 헨리 루스가 그 곳에 내려와 우리와 2-3일 함께 보내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루스 씨는 원로 정치인이자 재정가인 친구 버나드 바룩에게서 편지를 한 통 받은 모양이다. 마침 그때 바룩 씨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근처의 자기 농장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컬럼비아의 조간 신문 「스테이트(State)」에 내 설교가 날마다 연재되었는데, 바룩 씨는 그것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루스 씨에게 편지를 보내, 이것이야말로 미국에 꼭 필요한 것이니 잡지사 사람들을 몇 보내 나를 만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헨리 루스는 자신이 직접 오기로 했다.
집회는 3,800석 규모의 시민 회관에서 열렸다. 컬럼비아의 대다수 목사들이 전도 운동을 후원하고 있었다. 특히 휘튼 동문인 돈 호크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당시 컬럼비아 성경 학교에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루스 씨가 오던 날 나는 바짝 긴장했다. 그 날 밤 설교 주제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미리 광고해 놓았기 때문이다. '헨리 루스가 심판에 대한 설교를 듣고 마음이 닫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청중 가운데 누가 있든 상관없이 성령께서 나를 그 주제로 인도하셨다는 확신이 들었다. 설교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초청에 응했다. 루스(Luce)씨도 나름대로 반응을 보였다. 산하 잡지들을 통해 우리 사역 중 뉴스 거리가 될만한 내용을 기사로 다룰 뿐 아니라 편집인 차원의 후원까지 약속했다. 그이 부모는 루스(Ruth)의 부모처럼 중국 선교사였던 모양이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영적 유산이 그의 태도에 역력히 배어 있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집회의 가장 중요한 열매 중 하나는 우리 팀의 확장이었다. 앞으로 사역을 더욱 힘차게 해나갈 헌신된 사람들이 몇 명 더 더해졌다.

윌리스 헤이메이커는 컬럼비아에서 처음 우리 팀에 합류해 조직책을 맡았다. 그는 이력이 화려했다. 한때 은행가이던 그는 빌리 선데이, 집시 스미스, 밥 존스(부자 모두) 밑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 팀의 다양한 소규모 집회를 주선했고, 전도 운동 기간 중 입장권을 할당받아 협력 교회들에게 배분했다. 기존의 전도 운동(Campaign)이라는 말을 전도 대회(Crusade)라는 말로 바꾸자고 한 것도 윌리스였다. 그가 컬럼비아에서 막 우리 팀에 합류했을 때였다. 전도 운동이라는 말은 많은 전도자들이 오랫동안 사용해 오면서 대중의 마음에 구식 같은(심하게는, 감정에 치우치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 윌리스의 지적이었다. 그는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우리는 전도 대회로 뜻을 모았다.
윌리스의 지혜와 경험은 곧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 되었다. 그는 전도 대회를 조직하는 법에도 능했을 뿐 아니라 낙관적이고 열정이 대단했다. 그는 우리보다 먼저 선발대로 각 도시를 찾아가 상황을 분석하여 그 곳에서 전도 대회를 열 것인지 여부를 파악하곤 했다. 일단 열기로 결정되면 그는 사무실을 열고 중요 인물들을 끌어들여 세부 사항까지 꼼꼼히 조직해 나갔다. 또한 현지 천주교 주교나 사제들과 접촉하여 전도 대회 계획을 알리고 그들을 집회에 초청하곤 했다. 그들은 대개 사제 한 명을 지명하여 참석, 보고하게 했다. 천주교가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개신교에 문을 열기 아직 한참 전 일이었다. 우리는 천주교 주교들에게, 내 목표가 천주교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삶을 헌신하게 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토론토 왕립 음악 학교를 막 졸업한 캐나다인 테드 스미스도 컬럼비아에서 처음으로 우리 팀에 합류했다. 그는 척 탬플턴의 교회와 YFC에서 그의 비서 겸 피아노 반주자로 일한 바 있었다. 초창기 여행 때 그는 피아노 반주자뿐 아니라 내 비서 역할을 할 때도 많았으며 타자 실력도 뛰어났다. 그가 맡은 아주 중대하면서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일 중 하나는 내가 설교하러 올라갈 때 언제나 강단에 따뜻한 물 한 컵을 준비해 두는 일이었다. 찬물은 목을 더 잠기게 했다.
컬럼비아의 폐회 예배를 위해 우리는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운동장을 예약했다. 대규모 옥외 집회를 구상한 것이다. 4만 명이 운집한 집회는 전국에 뉴스로 퍼져 나갔고 「라이프」지와 「타임」지에도 기사가 실렸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되고 보스턴에서 계속된 일이 다시 남부를 강타한 것이었다.

전도 대회가 끝나자 주지사 스트롬 더몬드는 황급히 준비된 2주간의 주내(州內) 순회 설교 여행을 위해 우리에게 호위 경찰 한 명을 붙여 주었다. 순회지 중에는 예전에 내가 다닌 밥 존스 대학교(그때는 사우스캐롤라이나 그린빌로 이전해 있었다)도 포함되어 있었다. 밥 존스 주니어가 강당에 들어찬 학생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벨사살에 대한 그 날 나의 설교는 교내 라디오 방송 WMUU('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대학교'의 머릿글자"로 생중계 되었다.
황급한 순회 집회를 마치던 다음날 나는 비행기를 타고 다시 보스턴으로 갔다. 몇 달 전 못다 하고 떠난 일을 뒤이어야 한다는 단호한 뜻에서였다.
머리말
들어가는 말 : 두 정상 사이에서
[헤리 S. 트루먼(1950)과 김일성(1992)]

1부 / 배경(1918-1943)

1. 남부의 농촌
격동의 20년대와 대공황 30년대
2. 180도 전환
순회 전도자와 출장 외판원
3. 설교자로의 부르심
밥 존스 대학(1936)
플로리다 성경 대학(1937-1940)
4. 북부 경험
휘튼 대학, 연합 복음 교회(1940-1943)

2부 / 사역의 시작(1943-1949)

5. 루스
연애와 결혼
웨스턴 스프링즈 목회, YFC
6. YFC
미국, 캐나다, 영국, 유럽(1945-1947)
7. 대학 총장
노스웨스턴 학원(1948-1952)
8. 사역 확장
오거스타, 머데스토, 마이애미, 볼티모어, 앨투나, 포레스트 홈(1948-1949)

3부 / 전환점(1949-1955)

9. 분수령
로스앤젤레스(1949)
10. 황급한 순회 집회
보스턴, 컬럼비아, 뉴잉글랜드, 팀(1950)
11. 미래의 기초
포틀랜드, 영화, 라디오(<결단의 시간>)
빌리 그레이엄 전도 협회, 애틀랜타(1950)
12. 대통령이 된 장군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
13. 영국에 열린 돌파구
런던(1954)
14. 유럽에 미친 영향력
유럽대륙, 스코틀랜드, 케임브리지(1954-1955)

4부 / 땅 끝까지(1956-1967)

15. 아시아로
인도, 필리핀, 홍콩, 대만, 일본, 한국(1956)
16. 활자의 위력
"나의 대답" 칼럼, 책, 「크리스처니티 투데이」, 「결단」
17. 맨해튼의 마라톤
뉴욕(1957)
18. 땅 끝으로
호주(1959), 아프리카와 중동(1960)
19. 전 세계로
카리브 해 연안국(1958), 시카고(1962), 남미(1962), 멕시코(1981)
20. 철의 장막을 향한 첫걸음
모스크바(1959), 폴란드(1966), 유고슬라비아(1967)

5부 / 격동하는 세상(1960-1976)

21. 천일 정부
존 F. 케네디 대통령
22. 텍사스의 거목
린든 B. 존슨 대통령
23. 깨어진 세상을 향하여
마이애미 록 페스티발, 대학 캠퍼스, 아일랜드와 남아공,
텔레비전과 영화, 재해 기금(1960-1970년대)
24. 나의 퀘이커 교도 친구
리처드 M. 닉슨 대통령
25. 미시간의 치유자
제럴드 포드 대통령

6부 / 신 개척자(1977-1997)

26. 열리는 철의 장막
헝가리(1977), 폴란드(1978)
27. 조지아의 주일 학교 교사
지미 카터 대통령
28. 모스크바와 그 너머
모스크바(1982), 동독과 체코슬로바키아(1982), 소련(1984)
29. 위트와 확신의 지도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30. 밝아 오는 새 날
루마니아, 헝가리, 러시아(1985-1992)
31. 비전을 넓히다
국제 회의와 전도 대회(몽트로, 베를린, 로잔, 암스테르담, 1960-1986)
32. 경험과 추진력을 갖춘 지도자
조지 부시 대통령
33. 태평양의 거인
중국(1988-1994)
34. 뜻밖에 열린 문으로
북한(1992. 1994)
35. 새 시대 새 방향
인터넷, 텔레비전과 위성 방송, 전도 훈련, 청소년 전도(1990년대)
36. 아칸소에서 워싱턴으로
빌 클린턴 대통령

7부 / 회고

37. 팀 사역
사역을 가능하게 한 사람들
38. 반세기의 친구들
사형수 감방에서 버킹엄 궁전까지
39. 집에서
가족들에 대한 회고
40. 최고가 아직 남아 있다
미래를 내다보며

감사의 말
빌리 그레이엄 전도 대회 연표
색인
"이 자서전이 지닌 탁월한 점은, 이 책이 굵직굵직한 대중 집회에 대하여 흔하게 들어 온 내용들을 다룬 것이 아니라 지난 40년 동안 줄곧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10인의 목록에 오른 한 인간의 개인적인 삶을 들춰보게 한다는 점이다."
- 시카고 트리뷴

"그레이엄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 뉴욕 타임즈

"빌리의 생애 중 단 한 해에 일어난 사건들만 모아도 평범한 사람의 전생애를 다룰 전기의 재료들과 견줄 만하다... 이 자서전은 그의 생애에 관하여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진실한 이야기라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 크리스처니티 투데이
빌리 그레이엄
본명은 윌리엄 프랭클린 그레이엄 주니어(William Franklin Graham Jr.)이다. 1918년 11월 7일,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서 태어났다. 16살이 되던 1934년 가을, 당시 순회 전도자였던 모르드개 햄의 설교를 듣던 중 그리스도를 위해 살기로 결심했으며, 이후 그의 삶은 복음 전도자로서의 준비 단계들을 숨 가쁘게 밟아갔다. 1937년 밥 존스 대학에서 1년 정도 공부하다 그 이듬 해 플로리다 성경대학으로 옮겨 1939년에 졸업했고, 그 해에 남침례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다시 일리노이 휘튼 대학에 입학해 그의 아내 루스를 만났으며, 졸업 후에는 일리노이 웨스턴 스프링즈 제일침례교회 목사로 시무하는 한편 국제 십대 선교회(YFC)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인 전도활동을 시작했다. 1949년 로스앤젤레스 전도대회를 통해 그는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전도자가 되었으며, 1954년 런던 전도대회 이후에는 일약 세계적인 부흥사로 떠올랐다. 1950년 그가 창설한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를 통해 전 세계를 누비며 복음을 전했으며,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모든 대통령의 친구가 되기도 했다. “내 일생의 유일한 목표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써만 가능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평생 외길을 걸어온 빌리 그레이엄은 예수님이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는 명령을 문자적으로 실천한 이 시대 최고의 복음 전도자이다. 지금까지 185개국 2억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텔레비전과 위성방송, 비디오, 필름, 인터넷을 통해 그의 메시지를 들은 사람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단순 명쾌하고 직설적인 복음, 복음 전도자로서의 흔들림 없는 행보, 흠잡을 데 없는 인품과 투명한 기관 운용 등으로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수십 권의 베스트셀러를 저술한 작가이기도 한 그는 아내 루스와 함께 노스캐롤라이나 몬트리트에 살고 있으며, 슬하에 2남 3녀의 자녀와 19명의 손자를 두었다.저서로는「인생The Journey」(청림)「희망Hope for Each Day」(희망) 등의 수많은 베스트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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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그레이엄목사님 자서전 구할 수 없어요???

아님 언제 쯤 판매 합니까???

 [수정]
죄송합니다, 고객님.
이 제품은 절판입니다.
저희로서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2005-09-27 17:01

도서명빌리 그레이엄 자서전 : 내 모습 이대로
저자빌리 그레이엄
출판사도서출판 두란노
크기신국판 (153×225)
쪽수848
제품구성상품설명 참조
출간일2001-01-05
목차 또는 책소개상품설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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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빌리 그레이엄) 신간 메일링   출판사(도서출판 두란노) 신간 메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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