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책에 적으려 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크리스천이 되었는가하는 것이다. 왜 되었나 하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회심의 철학」은 나의 주제가 아니다. 다만 그 현상을 적음으로써 나보다도 훨씬 훈련을 쌓은 이들에게 그것을 철학화하는 재료를 제공하려는 데 지나지 않는다. 나는 자기 자신을 면밀한 관찰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이제까지 연구한 어떤 것보다도 훨씬 신비스러운 것임을 발견했다. 나는 그 향상과 진보와 타락과 퇴보와 환희와 희망과 죄악에 따르는 여러 가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이제까지 시도한 어떠한 연구보다도 훨씬 중요한 흥미에 차 있는 것을 알아냈다. 나는 나의 일기를 「항해 일기」라고 부른다. 그것은 이 가엾은 쪽배가 죄와 눈물과 많은 비애를 통과하여, 하늘 위를 목표로 나아가는 , 날마다의 전진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과 루터, 이 두 사람은 확실히 동신동형의 사람이었다. 이들 두 사람의 뒤를 이어, 진리의 최후의 적인 배금주의와 싸우며 그리스도의 복음의 순결을 옹호하기 위하여 이 땅에 보냄을 받은 또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곧 일본이 낳은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 그 사람이다. 그는 나라를 구원하는 근본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있고, 복음 전도의 근본은 성서 연구에 있다 하였다. 그리하여 성서를 교회의 손에서 해방하여 평신도의 책으로 만들고, 종교가의 손에서 해방하여 인간의 책으로 만들었다. 그는 일생을 통하여 이른바 속화된 기독교에 대항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의 가장 순수한 생명을 명백히 하였다. - 간행사 중

[본문 218~222쪽 '3.지리학과 역사(2)'중에서]
평원국
평원은 실행지이다
평원은 사상을 실행하는 장소이다. 옥야천리, 이것은 높은 산에서 자란 위웅이 와서 그 웅지를 땅에 새기는 곳이다. 이탈리아의 캄파니아 평원은 「칠구」안에서 응고된 라틴 민족의 한 갈래가 세계에 패업을 펼친 기점이었다. 판잡 평원은 몽고와 페르시아의 웅족이 황기를 열고 정령을 펴던 곳이었다. 황하, 양자강의 평원은 만주와 막북의 추장들이 큰 뜻을 실현하는 곳이었다.
산을 의지하는 백성은 아직도 방어의 위치에 서는 백성이며, 천하를 다스리려는 사람은 평원의 요지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이것이 관팔주가 천하를 제도하는 까닭이다. 수길의 지리학적 본능이 경도를 버리고 대판에 성을 쌓고, 가강에게 가르쳐, 그로 하여금 소전원을 버리고 강호(지금의 동경-역자 주)에 도읍하게 한 까닭이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나폴레옹의 군략이 언제나 산간의 요새는 거들떠보지 않고, 평원의 중부를 노렸던 것도 바로 이 까닭이었다. 이 간단한 지리학상의 원리를 몰랐던 까닭에 군략과 정략이 모두 빗나가서 후세의 역사가로 하여금 한숨짓게 한 예가 허다하다.
평원의 생산력
평원은 세계투쟁사의 극장이다. 그것은 평원이 국민 부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산림의 박리와 광산의 위험을 가지고는 오래 국민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렵다. 수산에 폭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나라의 기틀을 삼을 수는 없다. 캘리포니아의 금광은 북미 서해안으로 사람을 모아 들이기는 했으나, 입헌국의 질서를 지키는 근면한 국민을 만든 것은 새크라멘토와 산 호아킨 연안의 전원이었다. 세계의 으뜸가는 노르웨이의 어업도 그 나라의 산간 계곡에 널려 있는 보리밭의 수확의 확실함보다 못하다고 한다. 좌도 금광의 풍섬함이 1군의 농산물에 미치지 못하고, 북해 전도의 어획이 불과 40만의 인구를 지탱함에 비추어, 석수평원의 개간은 빵을 일본 전국에 공급하기에 족하다. 나라의 부는 바로 그 나라 평원의 부를 말한다. 벨기에 같은 작은 나라를 유럽의 여러 강대국들이 침을 삼키며 노리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이 26만 정보를 가진 기옥현이 5,600만원의 지가를 가짐에 비추어, 60만 정보를 가진 장야현이 그 물산의 풍성함에도 불구하고 겨우 4,000만 원의 지가를 유지하는 까닭인 것이다.
평원의 결점
부의 원천이요, 정권의 중앙이며, 영웅의 활동지인 평원에도 몇 가지 결점이 있다.
산이 가지는 특권 중의 하나가 자유라면, 평원은 압제의 소굴이다. 교통의 편익은 국민의 결합과 유대를 촉진하여 확고한 제도를 세워, 사람을 개체로서 움직이지 않고 단체로서 생활하게 된다. 평원국의 백성은 한 조직의 분자에 지나지 않는다. 집합체로서 전도를 제압하는 권력을 가지지만 한 개인으로서는 하루의 삶을 이어 가기가 힘들다. 세계의 왕이면서 사회의 노예인 것이 평원국 주민의 모습이다.
러시아
세계의 최대 압제국은 러시아이다. 동족의 태평양 연안에서 서쪽으로는 발트 해에 이르는 수만 리에 걸친 일대저지에는 1억 인의 노예를 부리는 한전제 군주의 영토이다. 헌법정치의 은택은 서방 여러 나라에 널리 퍼졌고 그 빛이 이미 동단의 군주국인 일본에까지도 비추고 있는 19세기의 오늘에 있어서, 볼가, 도니에플 연안의 백성들은 아직도 그 생명을 한 폭군의 손에 맡기고 무기병역과 시베리아 유형을 벙어리처럼 그저 달게 받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일 발다이 구릉이 3,000척만 더 높아서 그 지맥을 흑해, 카스피 해까지 뻗어 나갔더라면 자유는 이미 우랄 산정에 깃들였을 것이다. 스테드는 말하였다.
If only there had been a plump of Alps in the
centre of Muscovy, how different Eastern Europe
would be to-day! Where Nature fails to create
ramparts for freedom, the cause of liberty seems
foredoomed to defeat.
-Review of Reviews, Sept. 15, 1891.
만일 모스코비야(러시아)의 한가운데에 알프스의 한
덩어리를 두었더라면, 오늘날 동구는 얼마나 달라졌을
것인가? 자연이 자유를 위해 흉벽을 쌓지 않은
곳에서는, 자유는 패멸로 돌아가는 것인가 보다.
폴란드, 헝가리
폴란드의 비극적 운명은 바로 거기에 자유의 흉벽이 없었던 때문이다. 코슈트, 바티아니 같은 애국지사로 하여금 끝내 헝가리의 독립을 유지할 수 없게 한 것은, 서쪽에 오스트리아와의 사이에 도나우 평원을 가로지르는 산맥이 없었기 때문이다. 평원은 언제나 산간, 해변 주민들의 약탈지이며, 거기 주민들은 혹은 이쪽에 굴하고, 혹은 저쪽에 끌려 미개 야만인에게 내맡겨진 신세가 되었다. 인도, 판잡 평원이 700년을 못넘는 사이에 주인을 바꾸기 일곱 차례나 되고, 몽고, 아라비아, 페르시아의 추장들이, 토기장이가 진흙을 주무르듯, 억만의 생령을 이욕의 도구로 농락하여도, 어느 누구 하나 분연히 일어나 이에 반항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부요한 평원국의 운명을 말하는 것으로, 참으로 비통한 일이다.
평원의 부패
국가 산업이 일어나고 국민의 집합지인 평원은 또한 부패가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마치 맑은 개울이 흘러 내려 하구에 가까워지자 늪, 못이 되고 도시의 개천이 되어 병독을 옮기는 원인이 되는 것과 같다. 의학자 모씨는 말하기를 , "사람이 만일 그 이웃으로부터 평균 400척 거리에 살면 그의 평균 수명은 50년이 되고, 300척 거리에 살면 40년, 60척이면 30년, 20척으로 가까워지면 불과 25년밖에 못 살게 된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인구 조밀도와 평균 수명의 비례를 말한 것으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산골에서 사는 사람 하나가 상점가의 장사꾼 열 명과 맞먹는 생활력을 가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것이 불과 600만의 인구를 가지는 만주가 4억의 인구를 가진 중국의 400여 주를 다스린 최대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바다의 감화력
부의 증가는 언제나 국민을 나약하게 만든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내가 여기서 새삼스레 말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부는 쌓이면 반드시 썩는 것이다. 평원에서 만일 그 부를 배산할 길이 없다면, 이탈리아의 캄파니아 평원이 병독의 양조지가 되었던 것처럼, 부는 평원에 사는 사람의 심령을 해치고, 나아가서는 전국을 부패케 하는 것이다. 평원은 산민의 활동지이지만, 바다로 나가지 않는 평원의 백성은 마침내 시들어 없어지고 만다.
해국
망망한 바다, 이것은 광활의 대명사이다. 산간의 완고한 백성과 시가의 겁쟁이들은 천애무한한 푸른 파도 위에 올라서서 비로소 우주의 큼을 알고, 편협과 압제를 미워할 줄 알게 된다. 바다를 대하는 데서 우리는 비로소 세계의 시민임을 알게 된다. 부사 산의 빼어남은 태평양의 광활함에 비할 수 없다. 퇴폐와 질투는 육지의 산물이다. 진취와 관용은 바다의 산물이다. 바다에 임하는 곳이야말로 세계의 왕국에 들어가는 문이다. 강물은 흘러흘러 바다로 들어가는데, 사람만이 육지에 남아서 질식해 죽고 말 것인가?
바다여, 바다여, 나를 넓혀다오
속세의 권자 나를 사로잡고
그 고속과 구습이 나를 얽어매어
내 날개를 펼 수 없게 하누나
나는 갈매기의 자유를 그리노나
나는 물새의 비력을 부러워하노라
무궁한 영을 가진 나는
이 압박과 편협을 견디지 못하노라
바다여, 바다여, 나를 깨끗하게 해다오
부패는 평원과 도성을 뒤덮었고
산간의 선경 또한 누습에 찼으니
호연의 기, 지금은 어느 땅에서 찾을 것인가
바다마다 산기 풍기어
파도가 잔잔하면 바람결에 향미 밀려 오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