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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 - 삼위일체론  
교부문헌총서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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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역자 : 아우구스티누스/성염  |  출판사 : 분도출판사
발행일 : 2015-11-25  |  (150*225)mm양장 1392p  |  978-89-419-15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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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 가운데 학자들이 ‘하느님을 만나는 인간의 길’이라 일컫는 삼부작이 있다. 교부가 자기 인생의 여정에서 하느님을 만나던 길을 묘사한 『고백록』, 인류가 구세사救世史의 여정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길을 정리한 『신국론』, 그리고 인간이 자기 내면의 성찰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상을 발견하는 길을 분석한 『삼위일체론』이다. 이 책 『삼위일체론』의 신학적 사색은 다른 두 작품보다 훨씬 원숙하여 교부의 모든 신학서 가운데 단연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책은 제1-7권의 전반부, 제8-15권의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는 성경에 근거한 삼위일체 신앙의 이론적 해설, 후반부는 인간 지성을 분석하여 당신 모상으로 그 지성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삼위일체 구조를 추정해 가는 철학적 논변이다. 특히 후반부는 인간의 영혼에 관한 철학 일변도의 깊은 성찰과 분석을 담고 있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적 인간학’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대가 사랑을 본다면 그대는 바로 삼위일체를 뵙는 것이다!”

▒ 집필 의도 ▒

통상 아우구스티누스가 책을 쓰는 것은 사목적 필요성 때문이거나 논쟁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혹은 지인들의 요청 때문인 경우가 많은데, 이 『삼위일체론』만큼은 예외다.
니케아 공의회(325년) 이후 그리스도교는 아리우스의 주장을 배척하면서 성자와 성령의 신성神性을 신앙개조로 규정했으나 나머지는 교계와 학계의 논의에 맡겼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에 관한 책을 따로 쓰느니 차라리 다른 사람들의 저서를 읽고 싶지만, 삼위일체에 관한 라틴어 저서가 드물어 어쩔 수 없이 자기가 직접 펜대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스 교부들의 작품은 많으나 라틴어를 하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만큼 평이하지도 않고 체계적이지 못하다고 본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묻는다. “성부는 하느님, 성자는 하느님, 성령은 하느님이라고 하면서, 세 하느님이라고 말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삼위의 대외적 활동이 세 위격의 불가분한 활동이라면 육화는 성자의 것이라는 말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는가?” “성자의 출생generatio과 성령의 발출processio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렇다면 아우구스티누스가 이 책에서 삼위일체를 논구하는 의도는, 그리스도 예수와 그분의 영靈이 그리스도인들의 지성과 삶에 일으키는 변화가 오직 한 분 하느님의 활동임을 가르치면서, 그리스도가 생애 마지막에 내린 명령,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말씀의 의미를 사변적으로 이해시키려는 것이었다.

▒ 집필 대상 ▒

신앙의 첫걸음은 학문적 겸손이다. 이를 무시하면 지식에 대한 미숙한 사랑에 속기 쉽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사람들에게 성경의 증언을 토대로 삼위일체 신앙이 무엇인지 보여 주려고 한다. 이성으로 확연히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 지성에 새겨진 삼위일체의 모상을 발견·분석하고, 덕스러운 삶으로 그 모상을 완성하라고 유도하면서 독자들을 삼위일체의 신비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 책은 일반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사실 유일신 사상 자체도 알아듣기 어려운데, 당대 그리스도교 지성인들은 삼위일체 신비까지 접하면서 아리우스파의 논쟁에 말려드는 곤경에 처해 있었고, 로마제국의 지성인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책을 읽을 만한 신학 지식을 갖추었으나 신플라톤 사상에 경도되어 니케아 공의회의 신경信經을 이해하기 껄끄러웠다. 『삼위일체론』은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저술된 책이다. ‘주제 이탈’처럼 보이는 긴 논변들이 나타나거나 지식과 지혜를 대조하는 논지도 이런 독자층을 설득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 그리스도교의 가장 난해한 교리인 삼위일체에 관해 독자들이 이성의 한계를 무릅쓰고 끝까지 사변적 탐구를 지속할 활력소를 제공하려는 의도에서이다.

▒ 집필 연대 ▒

“젊어서 착수했는데 늙어서야 끝냈다”는 저자의 말대로, 집필에 오랜 세월이 걸렸다. 399년에 『삼위일체론』 집필에 착수했고, 부분 편집은 412년에 이루어졌으나 최종 편집은 420~421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워낙 방대한 작품이라 집필도 늦고 저자도 초고에 만족하지 못하여 간행할 엄두를 못 내고 있던 참에, 작품을 하루 빨리 완성해 달라고 독촉하던 지인들은 저자 몰래 작품을 입수하여 복사하여 돌려 읽고 있었다. 저자는 그것에 화가 나서 오히려 탈고를 뒤로 미루었다. 그러자 지인들, 특히 카르타고의 아우렐리우스 주교가 앞장서서 아우구스티누스를 달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아 집필 연대 추정이 쉽지 않고 학자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재론고』Retractationes는 시대순으로 작품을 열거하면서 수정을 가하지만, 간행 연대가 아닌 집필 착수 연대를 기준으로 한다. 『삼위일체론』은 399년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입문자 교리교육』De catechizandis rudibus 바로 다음에 배치되어 있어서, 『삼위일체론』의 집필 착수는 399년, 즉 『고백록』 제13권의 집필 연대와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그가 마르켈리누스에게 보낸 서한은 412년의 것으로 보이는데, 자기가 『삼위일체론』 처음 열두 권을 탈고했다면서 지인들이 그것을 입수하려고 시도했지만 자기 수중에 잘 간수하고 있노라는 말이 거기에 나온다. 즉, 412년까지는 적어도 책 전체가 간행되지는 않았다. 또 415년의 편지에도 “집필하기에도 매우 힘들고 알아들을 사람도 소수여서 오래전부터 손에 두고서 완성을 하지 않고 있다”는 구절이 있어 그때도 책은 탈고되지 않았음을 밝힌다.
이 책의 최종 편집은 최종 보충(제12권의 일부와 제13-15권)을 한 다음, 전에 없던 서언praefatio을 처음 몇 권에 첨가하고 전반적으로 손질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시기는 이 책 제15권에서 인용하는 『요한 복음 강해』Tractatus in Ioannis Evangelium ‘강해 99’ 이후에 해당하고 『신국론』 제12권을 집필한 다음이기도 하다. 『요한 복음 강해』 99를 설교한 날짜도, 『신국론』 제12권의 집필 시기도 정확하게 밝힐 수는 없다. 다만 『재론고』를 쓴 것이 426년에서 427년이므로 『삼위일체론』의 최종 편집은 넓게 잡아 420년에서 426년 사이가 된다.

▒『삼위일체론』의 구성 ▒

제1권에서는 성경에 준거하여 삼위일체의 단일함과 동등함을 증명한다.
제2권, 제3권 그리고 제4권에서는 같은 삼위일체를 논하되, 성자의 파견과 성령의 파견에 관하여 진지하게 다루면서 세 권의 책을 이룬다.
제3권은 구약성경에 묘사된, 여러 위격들의 파견을 상론하면서 피조물인 천사의 역할이 있었는지 따져 본다.
제4권은 ‘그리스도론’에 해당하며, 삼위일체의 구세경륜에서 그리스도의 중개 역할을 강조하는 데 핵심이 있다.
제5권은 ‘관계’의 범주를 차용하여 아리우스파를 논박하는 토론에 해당한다.
제6권은 삼위의 완전한 동등에 관해 아리우스파가 제기한 문제를 다루는데, 언어학적 관점에서 어떤 속성을 어느 위격에 귀속시키느냐 하는 문제에 집중한다.
제7권에서는 성삼위의 절대 속성의 단일성과 명칭을 다루면서,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능력이요 지혜’라는 제6권의 주제를 언어학과 논리학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제8권은 ‘신앙의 이해’intellectus fidei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지성을 활용하여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제9권은 지성·인식·사랑에서 삼위일체의 모상을 발견하려는 노력이다.
제10권은 기억·이해·의지라는 삼위일체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을 계속한다.
제11권은 외적 인간의 삼위일체, 곧 감관의 유비를 다룬다.
제12권은 ‘지식과 지혜’를 구분하면서 인류사의 한 도정(원죄와 타락)을 ‘지성’에 연관시켜 해설한다.
제13권은 삼위일체라는 주제와 거리가 먼 그리스도론처럼 보이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론에는 크게 기여한다. 지식이자 지혜인 그리스도와 합일하면 지식이 지혜가 될뿐더러, 그의 구속 사업에 힘입어 지성이 변화하고 원초의 품위, 곧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상을 회복한다는 논지를 다루는 까닭이다.
제14권은 ‘하느님의 모상인 지성’에서 보이는 완성이 인간 역사의 완성처럼 소개된다.
제15권 후반부는 아우구스티누스 고유의 ‘성령론’에 해당한다.
에필로그(27.50)는, 신앙을 통해 거울에서 상이 맺히는 모상을 정화해 나가야 하는 처지에서, 지금은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 뵙는 하느님이지만, 아우구스티누스가 이 책에서 탐구해 온 삼위일체 하느님께 진솔하게 드리는 기도문이다.

▒『삼위일체론』의 의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진리에 대한 크나큰 애정을 품었던 지성이었다. 그리스도교 신앙개조에서도 가장 난해한 삼위일체를 탐구하는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진리를 탐구하는 사랑에 사로잡혀 있는 까닭”(1.5.8)이라고 고백한다. 이 책에서는 삼위일체를 서술하는 “내 언어와 문장이라는 이륜마차를 몰라고 충동질하는 것은 내 속에 있는 사랑”(3.1.1)이며, 또 인간에게서 삼위일체의 모상을 극력 탐색하는 노력이 “창조주의 은총이 불붙이는 것”(5.1.2)이라는 신념으로 연구에 임한다.

성경을 인용하면서까지 “인간이란 하느님을 깨달을수록 찾게 되어 있는 존재”(15.2.2)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인간 정의定義는, 인간은 탐구하면서 정신적으로 부요해지고, 찾는 바를 발견하면 할수록 더욱 기갈이 드는 실존의 심저를 지적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분명히 진리가 존재함을 발견하면 그 진리가 인간을 변모시키고 승화시킨다는 신념, 진리를 탐구하는 중에 탐구하는 사람이 선해진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이 책에서 개진되는 철학적 성찰을 이해하려면, 삼위일체 신학에 아우구스티누스가 바탕으로 삼는 몇 가지 철학적 논지를 염두에 둘 만하다. 먼저,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서의 철학이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전환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카르타고 연학 시절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Hortensius를 읽고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희망과 진리 발견에서 궁극적 행복을 향유하겠다는 열정을 품었고, 그 열정은 일평생 지속되었다. 자기가 추구하는 그 추상적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이라는 인격체임을 발견하면서 이 위대한 지성은, 참된 행복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관상에 있다는 신념으로 독자들을 인도하고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둘째로, 이 책에는 ‘영원한 하느님’이라는 신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주제로 책을 집필하면서도 절대자를 언급할 때는 ‘영원’과 ‘불변’을 유난히 부각시킨다. “영원한 하느님, 불사불멸하는 하느님, 불후의 하느님, 불변하는 하느님이라는 말은 한 가지요 똑같다”(15.5.7). 신성神性이라는, 삼위에 공통된 명칭을 다루면서도 하느님은 “항상 존재하는 분”이니 ‘존재 자체’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13 공간을 떠나 있으므로 “어디나 전체로 존재하는” 분이고, 하느님에게서 일체의 시간을 배제함으로써 이 책 후반부에서 지성, 특히 기억이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는 작용을 관찰하면서 삼위일체 하느님을 이해해 보려는 논거로 활용된다. 그런 분을 지성이 기억한다는 사실은 존재론적 기반인 하느님에게 인간 지성이 그만큼 깊숙이 결속되어 있다는 표지다.

끝으로, 인간의 내면에 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깊은 통찰은 인간 영혼에서 초월자의 모습을 찾아내려는 그리스-로마 지성계의 전통을 반영하면서도 그 조우遭遇가 이뤄지는 지점을 인간 내면에 두었다. 이 책에서는 인간의 자기의식 혹은 자기 기억에 초점이 모아진다. 무릇 철학자라면 거의 자기의식을 토대로 신 인식神認識을 포함한 다른 모든 인식을 이끌어 낸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trinitas quae est deus이라는 칭호로 시작하는 이 저서의 논지를 보면, 전반부에는 인류사에 활동하고 계시되는 삼위일체를 성경을 중심으로 살피고, 후반부에는 인생의 궁극 목적이 삼위일체 하느님을 관상하는 데 있다면서 그 목적에 도달하도록 독자에게 ‘지성의 훈련’을 거듭하게 하되, 가능하면 현세에서 철학적·신학적 사변으로 삼위일체를 직관하는 경지로 인도하려고 한다. 그의 삼위일체 연구 명분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라는 요한 복음의 인용에서 뚜렷이 드러난다(1.6.11). 인류를 위하여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그대로 본뜬 것이 그리스도의 생애였고,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에는 그리스도의 언행을 따라가는 걸음이야말로 인간이 삼위일체의 신비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었던 것이다.
그의 탐구 자세는 다음 기도에 잘 나타나 있다.

“당신이 당신을 찾아내게 만드셨으니, 당신을 갈수록 더욱더 찾아내리라는 희망을 주셨으니, 탐구할 힘 또한 당신이 주소서. 당신을 기억하게 하소서. 당신을 이해하게 하소서. 당신을 사랑하게 하소서”(15.28.51).
'교부 문헌 총서'를 내면서
해제
서론 : '하느님을 만나는 인간의 길'

Ⅰ. 『삼위일체론』의 집필 계기와 배경
1. 작품의 동기
2. 신앙과 이해
3. 집필 계획
4. 저술 대상
5. 집필 연대
6. 필사본과 번역 대본

Ⅱ. 삼위일체에 관한 성경 계시와 사변적 고찰
1. '삼위일체이신 한 분 하느님'
2. 성자와 성령의 파견
3. 관계신학의 수립

Ⅲ. 인간 지성에서 드러나는 삼위일체
1. 삼위일체 신비를 향한 철학적 착안
2. '인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모상'
3. '더 분명한 삼위일체'

Ⅳ. 그리스도, 삼위일체 신비에 접근하는 길
(1)그리스도 본위의 삼위일체론
(2)'사랑을 본다면 삼위일체를 뵙는 것이다'

Ⅴ. 『삼위일체론』각 권 개요


본문과 역주
서문

제1권 _ 성경에 의거한 삼위일체
이성을 남용하여 신앙을 훼손하는 사람들을 거슬러 집필하다. 하느님에 대한 세 가지 오류
성경은 우리 지성으로 하여금 신적 사물로 상승하게 할 만한 종류의 언어를 일체 기피하지 않았다
우리는 신앙으로 양육됨으로써 신적인 사물들을 받아들이기에 유능해진다
저작의 계획과 목표
아우구스티누스가 독자들에게 바라는 경건한 자세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를 예찬하는 사람들한테서 칭송받기보다는 허위를 질책하는 사람들에게서 비판받는 일을 낫게 여긴다
삼위일체에 관한 가톨릭 신앙의 교리
일부 인사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세 가지 의문
성자는 참하느님이시고 성부와 같은 실체이시다
유일하신 한 분 하느님은 삼위일체로서 불사불멸하신다
볼 수 없는 성자와 삼위일체
모든 것은 성자로 말미암아 생겨났다
성령은 참하느님이시며 성부와 성자와 전적으로 동등하시다
종의 형상을 한 성자는 성부보다 낮고 성자 자신보다도 작다
성자는 인성을 취함으로써 성부께 굴복하셨다
성자께서 성부께 나라를 넘겨드린다고 해서 당신 나라를 잃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에 대한 직관은 모든 활동의 궁극 목적으로서 우리에게 언약되어 있다
성부와 성자로부터 분리될 수 없으니 성령만으로도 우리 행복에 흡족하다
한 위격에 관해서 말하는 내용은 때때로 모든 위격들에 해당한다
삼위일체 전부가 우리 안에 머무신다
하느님에 대한 관상
믿는 이들을 관상으로 인도하고 나면 성자께서는 더 이상 우리를 위하여 중개하지 않으신다
성자가 성부와 같다거나 성부보다 더 작다는 성경 말씀을 알아듣는 준거
성자는 심판의 날을 모른다. 그 시점에 제자들에게 알리기로 작정하실 만큼 당신이 알지 못하신다는 뜻이다
성경에서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하면서 하느님의 형상으로는 다른 어법을, 종의 형상으로는 다른 어법을 쓴다
선택된 이들에게 성자 친히 영광을 마련하신다
어떻게 성자께서는 심판하지 않으시면서도 심판하신다는 말인가
“내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의 뜻
하느님이 십자가에 처형되셨다는 표현은 옳다
사람의 아들이 심판한다면서도 심판하지 않는다는 말은 어찌 된 것인가
사람의 아들을 뵙는 일은 악인들에게도 허용되지만 하느님의 형상을 뵙는 일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에게만 허용된다
하느님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제2권 _ 구약성경의 신현神顯과 신약성경에서 드러나는 삼위일체 위격들의 동등함
서언: 인간들의 오류 가운데 도저히 묵과하기 어려운 두 가지 오류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의 어법을 이해하는 준칙
삼중의 어법이 존재한다
성자에 관한 어떤 성경 구절은 어느 준거에 해당하는지 애매하게 되어 있다
성령도 스스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께로부터 발하셔서 말씀하신다는 표현도 있다
아들이 아버지께 영광을 받으셨다고 해서 아버지보다 작은 것이 아니다
성자와 성령이 파견을 받으셨다고 해서 더 작은 분들이 아니다
성자는 마리아에게 나심으로써 이 세상에 파견받아 오신 것이다
성자는 당신 자신에게서도 파견을 받았다
성령의 파견은 보이게 드러난 활동이다
성자가 종의 형상을 취함과는 달리 성령이 발현하는 피조물은 성령이 취한 대상이 아니다
성부께서 파견받으셨다는 말은 없다
세 가지 의문
첫째 의문: 구약에 나타나신 것은 한 위격인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삼위일체 전체이신가
성부 홀로 불사불멸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을 반박함
진리는 평온한 연구로 탐구해야 한다
아담과 말씀하실 때 삼위일체에서 어느 한 위격이 말씀하신 것인가, 아니면 구분 없이 삼위일체께서 말씀하신 것인가
깊이 감추어진 사안이다
아브라함에게 보이신 현시
세 분이 나타나신 이상, 이것을 삼위일체의 동등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왜 안 되는가
롯에게 현시됨
불타는 떨기나무의 현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현시
시나이 산의 현시
그 역할을 삼위일체 가운데 한 위격으로 알아들을 수 있다면, 굳이 성령으로 알아듣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모세가 하느님을 친히 뵌 것은 아니다
하느님의 등과 그리스도의 육신
그 육신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는 신앙이 우리를 구원한다
가톨릭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이들은 하느님의 등을 볼 따름이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님의 부활 이후에 주님을 믿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어떤 가시적 형상으로도 성조들에게 나타나신 일이 결코 없었다고 말함은 지나친 경솔이다
다니엘의 환시
이에 대한 반론
하느님의 본성은 보이지 않지만 신체적 형태로 나타난 세 위격은 나름대로 의미할 바가 있었다고 믿어야 한다

제3권 _ 구약성경의 신현에서 천사들의 역할
서언: 아우구스티누스의 집필 동기
이 책을 성의껏 읽어 줄 독자뿐 아니라 비판·수정해 줄 독자도 있었으면 한다
앞 책에서 다룬 내용
둘째 의문: 하느님이 보이실 때는 새로운 피조물이 형성되는가, 아니면 천사들이 보냄 받는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천사들이 하위의 원소에서 무엇을 취하는지, 그렇지 않고 자기 신체를 변형시키는 것인지는 자기 능력을 벗어나는 문제라고 말한다
당장은 과연 천사들이 저러한 신체적 형태와 음성을 행사하는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하느님의 뜻은 다른 모든 원인들보다 상위에 있다
사례
하느님의 뜻은 최고 원인으로서 의로운 영혼을 통해 작용한다
하느님의 뜻은 당신 지혜의 불변하는 의사대로 모든 것을 이용한다
그리스도의 성체성사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역사하심
예사롭지 않은 기사奇事 역시 하느님 친히 행하시는 것이다
요술도 위에서 능력을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하느님이 만물의 창조주이실 뿐 요술에서 악한 천사들이 창조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정신을 의화시켜 형성하는 일도 하느님밖에 못 한다
야곱도 양 떼에 색깔을 만들어 낸 창조자는 아니었다
하느님 홀로 창조계를 조성하시고 다스리신다. 피조물은 단지 외적으로 어떤 작용을 할 수 있을 따름이다
어떤 생물의 급속한 증식을 두고 사람들이 놀란다
창조주 하느님은 한 분
하느님이 우리에게 알리신다고 해서 모든 일에서 하느님의 위격이 전제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 모두가 경탄을 자아내지는 못한다
천사들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하는지는 아우구스티누스도 이해하지 못한다
성조들에게 보이신 것은 모두 천사들을 통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하느님은 천사들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주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신 것도 천사를 통해서였다
아브라함에게도 천사를 통해서 나타나셨다
천사들의 반포로 율법이 내렸다
하느님이 성조들에게 나타나셨다고 할 때 음성이나 신체적 형상은 천사들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제4권 _ 파견받은 성자, 하느님과 인간의 결합
서언: 지상 사물이나 천상 사물에 대한 지식보다는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더 훌륭하다
하느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고 어떤 존재로 사랑했는지 확신해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만물이 생겨났는데 하느님의 말씀은 이성적 지성들의 빛이시다
육화하신 말씀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진리를 파악하는 능력을 받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한 번 [죽음]이 우리의 두 번 [죽음]에 해당하여 구원을 가져다주었다
우리 구세주께서는 우리의 두 번 죽음을 위해 당신의 한 번 죽음을 치르셨다
두 번에 대한 한 번의 비율은 여섯이라는 완전수完全數에서 유래한다
연사年事에서는 6이라는 숫자가 많은 역할을 한다
그리스도의 몸의 건설에 드러나는 6이라는 숫자
부활의 삼 일에서도 한 번과 두 번의 비례가 나타난다
우리는 다수多數로 흩어져 있었지만 유일한 중개자를 통해 일자一者로 모인다
우리 안에 일자로서 존재하기 위하여
같은 사랑의 연대로 일자가 된다
악마가 인간을 예속시켜 거느리고 있었다
마귀들의 기적은 무시해 버려야 한다
악마는 죽음의 중개자
그리스도는 자원하여 죽으셨다
생명의 참된 중개자는 당신을 믿는 사람들의 영 사이에서 죽음의 중개자를 쫓아내셨다
하느님의 지고한 지혜는 악마를 이용하여 믿는 사람들의 구원을 도모한다
유일한 중개자께서는 평화의 제사를 바쳐 우리를 하느님께 화해시키신다
하느님을 관조하기 위하여 자기 힘으로 정화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교만 자체가 그들을 심대하게 더럽힌다
철인哲人들은 영원한 이념에서 역사에 상응하는 내용을 못 보았다
미래사에 대한 예지
세기의 연속이나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해서는 철학자들에게 물으면 안 된다
하느님의 아드님이 오셔서 우리 신앙을 당신에게 수렴하셨고 그렇게 해서 우리를 당신의 진리로 끌어들이셨다
성자의 파견에 관한 증언
그리스도는 성부보다 작은 분처럼 드러나셨고 성부와 같으시다는 점은 알려지지 않았다
성자는 성부와 한 실체이시지만 파견을 받으셨다
성자께서 보냄을 받으신 것은 살로 태어나고 지성으로 파악되라는 뜻이었다
성령은 성부께로부터 발하므로 보냄 받는다고 이해할 만하다
삼위일체는 불가분하게 일하시지만 창조계를 통해서 드러나는 경우, 불가분하게 발현함이 불가능하다
육화는 다른 모든 파견과 구분된다
성자와 성령이 보냄을 받았다고 해서 성부보다 못하지 않다

제5권 _ 관계 개념으로 아리우스파를 반박하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느님께 청하는 것과 독자들에게 청하는 것
하느님은 우리에게 있는 가장 훌륭한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분이다
하느님은 존재 자체
아리우스파의 논지
우유偶有는 항상 사물의 어떤 변화를 드러낸다
하느님에 관해서는 무엇도 우유에 따라 언표하지 않고 실체에 따라 언표하거나 관계에 따라 언표한다. 그런데 이 관계는 우유가 아니니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에 관해서 상대적으로 언표하는 것들은 실체에 따라 언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발적은 아니고 상대적이면서도 불변하는 것이다
태어나지 않은 분에 관한 아리우스파의 논지
부정어否定語는 부정어 없이 서술되는 그 단어만을 부정한다
하느님 안에서 어떤 것은 실체에 따라서 언표되고, 어떤 것은 관계에 따라서 언표되고, 어떤 것은 전의적으로 언표된다
한 존재, 세 위격
하느님께 위대함이 셋 있는 것도 아니고 위대한 분이 셋 있는 것도 아니다
삼위일체에서 무엇을 상관적으로 언명할 수 있는가
관계를 나타내는 명사들은 많지만 맞바꾸어 상호 관계를 이룰 만큼 상응하는 명사는 발견되지 않는다
삼위일체에서 ‘원리’라는 단어는 상관적으로 언표되고 있다
성부와 성자가 성령의 원리
성령은 우리에게 주어지기 전에도 선물이었는가
하느님에 관한 시간적 언표는 상관적 언표이지 우유적 언표가 아니다. 변화는 피조물에게서 일어나는 것이지 하느님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제6권 _ 삼위의 동등을 설명하는 성경 말씀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능력이시며 하느님의 지혜”라는 성경 말씀에 준거해서 아리우스파를 공박한다
이 논지에서 초래되는 난점
그분들의 실체를 보여 주는 것을 무엇이라고 언명하든 간에 성부와 성자를 동시에 언표하는 것들이다
성부와 성자는 실체의 단일성에 따라 하나다
당신의 실체에서 유래하는 한 성자는 모든 점에서 성부와 같으시다
인간 능력으로부터 취하는 사례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사랑’이시며 모든 점에서 두 분과 동등하시다
어떻게 하느님의 실체는 단순하기도 하고 다양하기도 한가
그렇다고 삼위일체를 삼중 신三重神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의 자연 본성에는 숫자에 의한 증가가 일체 없다
삼위일체 자체가 한 분 참하느님이시다
힐라리우스의 이론에 따른 각 위격들의 고유한 속성
피조물에서 삼위일체의 자취가 드러난다

제7권 _ 절대적 속성들의 단일성 및 호칭의 삼위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본래의 문제로 돌아와 삼위일체 각 위격이 그 자체로 지혜인지 묻는다
문제의 해결: 성자는 빛으로부터 나오신 빛이시듯이 지혜로부터 나오신 지혜이시다
성부와 성자는 한 존재이시지만 동시에 한 말씀은 아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지혜가 ‘태어난 분’으로 나타난다
저 지혜는 우리에게 모범이 되는데 지혜 자체에는 모범이 따로 없다
성령 또한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함께 한 지혜이시다
한 존재, 세 위격
성경은 어디서도 하느님 안에 있는 삼위를 언급하지 않는다
이런 용어들은 언어상의 필요에서 생겼다
하느님께는 실체라는 용어는 적절하지 않고 존재라는 용어가 제격이다
왜 삼위일체에서는 한 위격, 세 존재라는 언표를 하지 않는가
동물적 인간은 정화를 얻기까지는 우선 믿어야 한다.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은 [성부의] 모상인 [성자를] 지향해야 한다

제8권 _ 신앙의 이해
서언: 삼위일체에서 상관적으로 언표하는 바는 구분을 지어 언표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존재의 상이함은 전혀 없다
삼위일체에서는 두 위나 세 위가 그중 한 위보다 위대한 것이 아니다
진리이신 하느님
최고선이신 하느님
불변의 선과 변하는 선들
하느님은 신앙으로 사랑해 드려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이 정화된다
믿음은 선행되는 인식을 전제한다
무엇을 알지 못하면서 사랑하는 일
삼위일체를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사랑하는가
삼위일체의 인식에 이르는 참사랑
하느님을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고 하느님을 안다
우리가 의인을 사랑함은 정의正義의 형상形相에 의거해서다
사랑에서 드러나는 셋은 삼위일체의 자취

제9권 _ 지성, 인지 그리고 사랑
삼위일체에 관해서 어떻게 탐구할 것인가
지성과 사랑
지성과 인식
지성, 사랑 그리고 그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보면 셋인데, 이 셋이 하나이고 그것들이 완전할 경우에는 동등하다
이 경우에 실체는 하나이면서도 상관적으로는 셋이다
이 셋은 분리되지 않는다
이 셋은 어떤 단일한 실체의 것이지만 그렇다고 어떤 합성에 의해 혼합된 것은 아니다
지성, 사랑 그리고 인식은 자체에서는 각체로 존재하면서 서로 간에는 전체 안에 전체로서 존재한다
지성의 이중적 인식
영원한 이념
언어는 우리가 발설하는 동시에 출산한다
언어는 피조물에 대한 사랑이든 창조주에 대한 사랑이든 사랑으로 배태된다
영적 사물들에 대한 사랑에서는 배태된 언어와 탄생한 언어가 동일하다. 육적 사물들에 대한 사랑에서는 언어의 배태가 다르고 언어의 출산이 다르다
사랑받는 인식만이 지성의 언어가 되는가
지성의 인식은 지성의 모상이자 언어다
왜 지성이 자체를 사랑할 때 곧 자체의 사랑을 출산하지 않는 것일까
문제의 해결: 지성과 그 인식 및 셋째인 사랑이 삼위의 모상

제10권 _ 기억, 오성, 의지
탐구하는 영혼의 사랑이 곧 인식된 사물의 사랑은 아니다
기호
전혀 알지 못하는 한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예제
지성이 자기를 탐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성은 이미 자기를 알고 있다
지성은 자기 전체를 인식한다
영혼이 자기를 인식하라는 명을 받는 이유. 인식하는 것 다르고 사유하는 것 다르다
지성이 자기에 대해서 오류에 떨어지는 근거
지성의 실체에 관한 철학자들의 그릇된 견해
지성이 자체를 생각하면서 이질적인 무엇을 자체에 첨가하면 오류가 발생한다
지성이 자신을 탐구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지성은 자기를 알라는 명령을 이해하는 그 자체로 자기를 인식한다
모든 지성은 자기에 관해서 셋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으니, 지성이 인식함과 존재함과 살아 있음이다
의심하는 자는 살아 있다
지성이 자체를 인식할 때는 자체의 실체를 인식하는 것이다
기억과 이해와 의지
이 셋은 존재로는 하나이고 관계로는 셋이다
지성은 자체의 기억·이해·의지에 있어서 삼위의 모상이다

제11권 _ 외적 인간의 삼위성
외적 인간에게서도 드러나는 삼위일체의 흔적
시각에서 드러나는 삼위성
가시적 사물에서 어떻게 시각이 발생하는가
예를 들어 사안을 더 분명하게 설명한다
시각에 존재하는 셋은 자연 본성상 다르지만 하나로 합치한다
기억이라는 사유 활동에 나타나는 삼위성
단일성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외적 인간의 삼위성은 하느님의 모상이 아니다
외적 인간의 삼위성에서 관찰되는 세 요소의 상호 관계
의지의 목적
그 밖에 다른 삼위성에서 관찰되는 세 요소의 상호 관계
기억의 삼위일체에서 의지의 역할
사유의 다양한 명분
사유와 기억
자유의지의 역할
형상形象은 형상으로부터 서로 생성된다
상상력에 관하여
수와 무게와 척도

제12권 _ 지식과 지혜에 관하여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
영원한 이념에 대한 파악
단일한 지성에서 상위 지성과 하위 지성이 작용하고 있다
삼위일체와 하느님의 모상은 지성에서도 영원한 사물을 관조하는 부분에서만 발견된다
남자와 여자의 혼인 그리고 그들의 자녀에게서 하느님의 모상이 발견된다는 주장은 개연성이 적다
저런 주장을 배격해야 하는 이유
여자는 하느님의 모상이 아닌가
남자는 하느님의 영광이요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는 사도의 말을 어떻게 상징적이고 신비적으로 알아들을 것인가
하느님의 모상으로부터의 이탈
극히 추루醜陋한 것을 향하여 타락하는 단계들
인간이 하느님과 같아지고 싶어 하다가는 최하의 사물, 짐승들이 즐기는 사물로 밀려난다
원죄에 관한 상징적 해석. 내적 인간에게서 이루어진 일종의 비밀 혼인
다른 해석: 남자에게서 지성을, 여자에게서 육체의 감성을 상징한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의 의견
지혜와 지식
지혜와 지식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영원한 사물에 대한 인식이 이루어지는 것은 지혜를 통해서다
플라톤과 피타고라스의 상기설을 반박함
지혜와 지식의 올바른 구분. 지식에서는 어느 면에서 삼위일체가 드러난다

제13권 _ 믿음은 지혜에 이르는 길
이 책의 의도
요한 복음 서론에서 어떤 것은 지혜에 해당하고 어떤 것은 지식에 해당한다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을 어떻게 눈으로 보는가
요한의 같은 글에서도 어떤 것은 신체의 감관으로 인식하는 대상이고 어떤 것은 정신의 이성으로 인식하는 대상이다
신앙은 마음의 것. 신앙인들의 믿음이 어떻게 하나일 수 있는가
어떤 의지는 모든 이에게 같다
행복을 희구하고 얻겠다는 원의는 모두에게 하나다. 그러나 행복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원의들이 극히 다양하다
바라는 것을 모두 가진 사람이 아니면, 행복한 사람이 아니다. 또 무엇도 악하게 바라서는 안 된다
행복의 첫째 조건: 인간이 올바로 살거나 아무런 악도 원하지 말아야 한다
행복의 다른 조건: 사람이 원하는 바를 가져야 한다
불사불멸 없이는 행복이 있을 수 없다
신앙은 전인全人이 불사불멸하리라고 가르치지만 인간적 논리로 하는 증명이 아니고 신성한 권위로 하는 약속이다
말씀의 육화는 사멸할 인생들의 지성을 불사불멸에 관한 절망에서 구출했다
우리 것이라고 하는 공로도 실상 하느님의 선물이다
의화義化와 관련된 난제
인류는 아담의 범죄 때문에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을 받아 악마의 권세에 넘겨졌다
악마를 견제하는 데 하느님은 힘 아닌 정의를 발휘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거저 베푼 죽음
현세의 악은 뽑힌 자들에게 유익이 된다
그분의 피로 우리가 의롭게 되는 데 그리스도의 죽음이 선택된 것은 아주 적절한 일이다
육화의 다른 혜택들
하느님의 아들이 왜 아담의 족속과 동정녀에게서 인간을 취하셨는가
우리 지식은 곧 그리스도이며, 우리 지혜 역시 그리스도다
이 책에서 논한 내용
신앙에서 관찰되는 삼위성

제14권 _ 인간의 지성, 하느님의 모상
하느님을 예배함이 곧 지혜
철학자란 지혜를 사랑하는 자
지식과 지혜
신앙에서 드러나는 삼위일체. 그러나 아직 하느님의 모상은 아니다
난점의 해결
하느님의 모상은 인간의 이성혼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하느님의 모상은 영혼의 불멸성에 의거하여 태생적으로 불멸하게 영혼에 새겨져 있다
어린이의 지성도 자신을 인식한다고 믿어야 할 것인가
지성이 자기 자신을 사유할 때 그 속에 일종의 삼위일체가 존재한다
자체를 아는 것과 자체를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지성은 항상 자체를 기억하고 있고 항상 자체를 알고 사랑하고 있다
인간 지성의 주도적 능력에서 하느님 모상을 찾아야 한다
영원한 세계로 인간을 인도한 다음에는 덕성들은 존재를 그치는가
지성의 삼위일체는 외래적인 무엇이 아니다
현전하는 사물들에 대한 기억도 존재하는가
지성의 삼위일체는 하느님의 모상이니 그것으로 하느님을 기억하고 인식하고 사랑할 수도 있기 때문이고, 그 일을 하는 한 그 지성은 곧 지혜롭다
인간의 지성이 하느님을 잊거나 기억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지성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한 지성 자체를 올바로 사랑하지 못한다
지성이 하느님을 저버리면 나약하고 어두워지지만 여전히 모상으로 남는다
죄인도 여전히 정의의 빛에 비추임 받는다
하느님의 모상이 인간 속에서 어떻게 쇄신되는가
하느님의 모상이 일상의 접근을 통해서 어떻게 쇄신되는가
모상을 온전히 닮는 일은 지복직관에서 이루어지겠지만 육체의 불사불멸이라는 경지에서도 우리는 아드님을 닮을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지식으로 모상이 새로워지지만 하느님을 뵈면 완성에 이른다
완전한 지혜는 참된 행복에 있다

제15권 _ 창조주의 모상대로 만들어진, 위대한 영혼
교부는 독자들이 삼위일체를 이성적으로 알아듣도록 창조계에서 지성의 훈련을 돕는다
하느님은 불가해한 존재이지만 반드시 찾아야 할 분이다. 그분을 찾음은 발견해서 흐뭇하기 위함이고 그분이 발견됨은 더 열성껏 찾게 만들기 위함이다
피조계에서 삼위일체의 흔적을 찾음은 헛일이 아니다
앞의 열네 권에서 알아내려고 토론한 바를 짤막하게 간추린다
대자연은 탁월한 창조주가 계시다고 선언한다
다수의 속성들을 소수로 줄여 적용해 본다
속성에 입각하여 하느님께 서술되는 바는 또한 하느님의 본질에 관한 서술로 이해되어야 한다
하느님의 단순성에 삼위일체가 있음이 단지 믿음의 대상일 뿐 아니라 어떻게 이해의 대상도 되는가
인간 내면에 깃든 삼위일체의 그림자
피조물에서 보는 삼위일체의 희미한 자취는 매우 불완전하고 부적합하다
하느님에 대한 인식은 “거울을 통해 수수께끼로” 얻는 인식일 따름이다
수수께끼는 애매한 우의
사도는 거울로 모상을 의미하고 수수께끼라는 말로는 비슷한 모습, 그것도 모호한 모습을 의미하려고 했다
지성의 언어에서 우리는 거울을 통해 수수께끼로 하느님의 말씀을 본다
마음속으로 하는 언어는, 참인 한, 어느 한 나라의 국어에 속하지 않는다
우리의 내적 언어에서 하느님 말씀의 유사점을 찾아볼 만하다. 단 그 유사점에 엄청난 상이점도 있다
아카데미아 학파의 철학
우리의 지식이 하느님의 지식과 판이하듯이 우리의 말도 하느님의 말씀과 판이하다
성부 하느님의 지식. 그분에게는 어느 피조물의 기호도 미치지 않는다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점에서 성부와 동등하시다
우리의 말과 하느님의 말씀은 얼마나 서로 다른가. 우리의 말은 항상 참이지도 않고 항속하지도 않는다
우리의 가변적인 말은 하느님의 불변하고 영원한 말씀과 얼마나 다른가
우리의 말은 영속하지도 않는다
하느님께도 변전變轉이 있다고 믿어야 하는가
우리가 궁극에 비록 하느님과 비슷해지기는 하겠지만 우리의 말이 하느님의 말씀과 동등해지지는 않는다
사랑은 세 위에 공통된다
그러나 고유하게는 말씀이 하느님의 지혜라고 일컬어지듯이 성령이 고유하게 사랑이라고 일컬어진다
성령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하느님의 사랑이 부어진다
성령은 하느님의 선물
성령이 하느님의 선물임은 성경에서 입증된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형언할 수 없는 친교다
에우노미우스의 사상을 논박함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 삼위일체의 모상인 인간은 삼위일체를 기억하고 관조하고 사랑하는 데 오롯이 자신을 몰입해야 한다
우리 기억과 우리 인식에 새겨진 성부와 성자의 유사성
의지에 나타나는 성령의 모상
그러나 인간에게 있는 삼위일체는 하느님이라는 삼위일체와 얼마나 다른가
그 차이의 분석
모상은 일종의 거울이라고 이해함 직하다
관상의 경지에서는 성령이 왜 성부와 성자에게서 출생함으로써 발하지 않는지 별 어려움 없이 보게 될 것이다
주 예수는 하느님으로서 성령을 주었지만 사람으로서는 받기도 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지만 원리적으로 성부에게서 발한다
출생을 발출로부터 구분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런 연구에서는 신앙의 규칙을 엄정히 지켜야 한다. 정말 이해하려면 우선 기도하고 탐구하고 또한 선하게 살아야 한다
이 난해한 문제의 해법: 사랑은 인식에서 나오지만 인식의 모상은 아니다
기도. 책의 결론. 너무 많은 말을 한 데 대한 후회와 변명

부록 1 재론고
부록 2 요약문

인명 색인
성경 색인
아우구스티누스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서 태어났다(354년). 어머니 모니카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으나, ‘지혜에 대한 사랑’(철학)에 매료된(373년) 청년 아우구스티누스는 진리를 찾아 끊임없이 방황하는 삶을 살았다. 한때 마니교와 회의주의에 빠지기도 했던 그는 밀라노의 수사학 교수로 임명되면서 출셋길에 올랐다(384년). 밀라노에서 접한 신플라톤 철학,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설교, 수도생활에 관한 증언 등을 통해 그리스도교에 눈을 뜨기 시작했으나, 머리로 이해한 그리스도교 진리를 아직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엉거주춤 망설이며 살아가다가, 마침내 바오로 서간을 ‘집어서 읽으면서’(Tolle! Lege!) 회심하였고(386년), 행복한 눈물 속에 세례를 받았다(387년). 교수직과 재산을 미련 없이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소박한 수행의 삶을 엮어 가던 그는 뜻하지 않게 히포 교구의 사제(391년)와 주교(395년)로 서품되었고, 40년 가까이 사목자요 수도승으로 하느님과 교회를 섬기다가 석 달 남짓한 투병 끝에 일흔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430년). 『고백록』Confessiones을 비롯한 수많은 저술(책, 서간, 설교)과 극적이고 치열한 삶은 그리스도교 철학과 신학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교부들 가운데 우뚝 솟은 큰 산인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 철학 체계 속에 그리스도교 진리를 깔끔하게 정리해 냄으로써 ‘서양의 스승’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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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아우구스티누스 - 삼위일체론
저자아우구스티누스
출판사분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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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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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201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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