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의 현실 참여 선언문
사회 개혁 운동과 결별한 근본주의 기독교를 반성하며
새로운 복음주의의 출현을 알린 출사표
오늘날 복음주의 기독교는 모든 형태의 사회개혁운동에서 철저하게 분리되었다. 기독교는 오늘날 세상이 처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했으며, 인도주의를 포기했다.
불행하게도 교회가 사회적 노력을 포기한 이후 비복음주의적 노력이 빈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기독교적 구속이 없는 사회개혁운동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복음이 없는 사회개혁은 일부의 굶주린 배를 채워줄지언정 그리스도의 생수를 제공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칼 헨리는 하나님 나라 설교에 대해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해결책을 제시한다. 바로 지금 여기의 하나님 나라와, 앞으로 올 하나님 나라, 둘 다 전해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 올 하나님 나라에 대해 기대하면서 바로 지금 하나님 나라를 살아야 한다.
놀라울 정도로 날카로운 이 책은 세상과 사회의 악에 맞서 싸우려는 의지와 능력이 부족한 것에 대해 근본주의 기독교에 도전한다. 칼 헨리가 지적한 근본주의의 문제는 이전에 세상을 변화시키던 구속적 복음의 메시지가 지금은 ‘세상을 거부하는’ 것으로 축소된 것이다.
칼 헨리는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정의라는 문제에서 후퇴한 채, 개인의 영혼 구원과 도덕적 삶으로 복음을 제한한 것을 질타하면서 사상과 행동으로써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좀 더 폭넓고 깊은 복음주의의 비전을 제시한다.
특징
- 리처드 마우의 서문이 실린, 1947년 초판의 2003년 신판!
- 근본주의가 실패한 이후, 당시 신복음주의라고 불리던 복음주의 운동을 촉발한 역사적 저술
독자대상
-기독교의 사회참여에 관심 있는 그리스도인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모든 이
-기독교 시민운동·사회단체 사역자 및 리더
본문중에서
“당대의 사회악을 신랄하게 꾸짖던 대선지자들과 소선지자들은 그와 똑같은 사회적 열정을 구속의 맥락에 담아냈다. 히브리적 세계-인생관에서는 법정에서 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하는 것이나 고리대금, 궁핍한 이들에 대한 수탈, 가난한 이들을 먹이고 입히지 않는 것, 상거래에서 과도한 이익을 취하려는 것에 대해 무관심한 채 수수방관하지 못한다.”
“오늘날 개신교 근본주의는 성경적이며 종교개혁적인 초자연적 복음이라는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배적인 분위기에 있어서 그 신학의 선조들이 보여준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현대 근본주의는 복음의 메시지가 비기독교 세계에 대해 어떤 사회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분명히 말하지 않는다. 근본주의는 전체주의 체제의 불의와 현대 교육의 세속주의, 인종주의적인 혐오라는 악, 현재 노사관계의 문제점, 잘못된 기초 위에 세워진 국제관계 등에 대해 도전하지 않는다. 의기양양한 르네상스의 분위기를 묵묵히 감수하며 그에 순응하기라도 하듯이 카이사르와 로마에 도전하기를 그쳤다. 사도적 복음이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열정에서 분리되고 만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짊어져야 할 사회적 책무는 그것을 기독교적이지 않은 관점에서 이해하는 이들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러나 복음주의는 이렇게 스스로 역사를 배반하고 있음을 깨달을수록 더 불편해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근본주의는 두 가지 위대한 신념으로 인해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그리고 복음주의가 기독교 전통의 정수를 표현하고자 한다면 이 두 신념을 반드시 지지해야만 한다. 첫째, 기독교는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모든 악에 반대하며, 절대로 이런 악을 묵인하는 것으로 그려져서는 안 된다. 둘째, 이런 악에 반대하는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중생하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악에 대한 유일하고도 충분한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근본주의는 논리적으로 사회악에 무관심하다는 비판을 거부하면서, 복음주의적이지 않은 사상으로는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을 수가 없다고 주장해야 한다. 전지구적 악을 공격하는 일은 복음주의 세계-인생관과 일치할 뿐 아니라 그로부터 요청되는 사명임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3장 사회 개혁 운동과 결별한 복음주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