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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2천 년 전,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 사건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기독교는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고 믿는다. 그렇다 보니 기독교가 주도하였던 서양 미술사에는 예수의 생애와 기적과 교훈을 그린 그림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그중 단연 으뜸은 예수의 십자가형(Crucifixion) 그림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십자가형 그림들 가운데 똑같은 작품이 하나도 없다. 물론 미술을 배우는 입장에서 모작(模作)이나 습작(習作)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는 누가 그린 그림이든 십자가형 그림들 중에 똑같은 작품은 하나도 없다. 분명 동일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들인데, 모든 그림들이 어딘가 조금은 다르고 무언가 조금은 다르다.
그림은 우리에게 미적 감동 외에도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 그중에는 화가가 보는 이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도 있지만, 또한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그것은 그림이 역사적으로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림에는 작가의 인생과 감정과 생각 외에도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그 시대의 문화와 사상과 정서도 담겨있다. 그래서 그림에는 작가의 생각 너머, 작품을 의뢰한 공동체의 사상 너머, 시대의 정신이 들어있기도 하다.
이 책은 예수의 십자가형 그림들을 살펴보면서 그 안에 묻어있는 정신, 곧 신학,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십자가 신학을 더듬어 보고자 한 것이다. 그리하여 거기서 우러나오는 십자가의 영성을 가지고 오늘도 믿음 가운데 아름다룬 삶을 살고자 하는 소망을 담은 것이다. 십자가형 그림이 제각각 다르다고 하는 것은 그림마다 나름의 생각, 곧 나름의 신학이 담겨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공통된 내용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묘한 표현의 차이는 미묘한 신학의 차이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각각의 십자가형 그림에 얽힌 사연과 함께 그림에 담긴 미술사학적, 인문학적, 신학적 의미를 추적해 보고자 한 것이다.
모든 십자가형 그림에는 저마다의 신학이 묻어있다. 십자가형 그림에서 십자가 신학이 묻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묻어난다는 것은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완전하든 불완전하든, 분명하든 희미하든 본질적인 것이 드러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십자가형 그림에는 기독교의 본질,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담겨있다. 때로는 화가가 의도하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그림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핵심 내용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십자가형 그림을 보노라면 사죄와 구원의 은혜, 고난 중 위로와 소망, 약함 가운데 강함, 타인의 고난에의 공감,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망, 아름다운 사랑 등을 발견하게 된다. 기독교인은 어려운 문제나 상황을 마주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다시 돌아가서 답을 찾고자 한다. 십자가가 구원의 출발이자 방향이며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묻어나는 십자가 신학을 통해 오늘 우리 인생의 구원과 위로, 소망과 격려, 의미와 해답을 찾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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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서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3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사업 선정작입니다. 그림에 장애인이 나온다? 그 옛날 누가 왜 장애인을 그렸을까? 무슨 생각으로 장애인을 그린 것일까? 그림 속 장애인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오늘날 장애인의 모습과 많이 다른가? 아름다운가?
저자는 그림들을 감상하다가 문득 그림 속에서 장애인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그림을 들여다볼수록 그림 속 장애인들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살았는데, 당신은 어찌 살고 계신가? 21세기엔 장애인의 삶이 조금은 나아졌는가?
이 책은 저자가 장애인이 등장하는 명화 여덟 편을 분석하며 당시 장애인의 삶과 장애에 대한 의식을 살펴보고, 또 그와 관련하여 오늘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장애 의식과 장애인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 것이다. 글은 먼저 그림 감상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미술사학·미학적, 인문학·신학적, 장애인복지학·장애학적 접근으로 전개된다.
역사적으로 장애인이 등장하는 그림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중 제법 알려진 여덟 편의 명화를 선별하였다: 1. 리에페링스의 <성 세바스티안의 묘지를 찾은 순례자들>, 2. 브뢰헬의 <맹인을 인도하는 맹인의 우화>, 3. 엘 그레코의 <맹인을 치유하는 그리스도>, 4.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무리요의 <베데스다 못의 그리스도>, 6. 고야의 <정신병원의 뜰>, 7. 프리드리히의 <교회가 있는 겨울풍경>, 8. 밀레이의 <눈먼 소녀>. 이 그림들에는 지체장애인, 시각장애인, 왜소증 장애인, 정신 장애인이 등장한다.
이 책은 장애인 역시 미술의 대상이 될 수 있을뿐더러 장애인 또한 미술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전제한다. 오늘날과 같은 장애의식이 없던 이전 시대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그림 속 장애인은 이미 그 존재만으로도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화가 자신 내지 화가 당시의 시대 의식을 담고 있다. 장애는 장애인만 아니라 모든 인생의 문제인 동시에 사회적 주제이고, 또한 미학적 주제이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는 장애인이 있다. 장애는 인생의 일부이자 사회의 일상적인 현실이다. 따라서 그림에 장애인이 등장한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장애미술은 비장애중심의 획일적인 미의 이념과 기준에 대해서 정면으로 도전한다. 사람은 누구든지 그 존재만으로 이미 존귀하며 충분히 아름답다. 장애인도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향유하고 나눌 수 있는 존재이다.
그림을 들여다보면 옛날 장애인의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사회적 구조와 인식과 관습은 장애인을 소외하고 차별하였다. 장애인이 아름다운 이상을 추구하였지만 현실의 제약은 그 뜻을 실현시키기는 어려웠다. 마음대로 가고자 하되 장벽이 많았고, 자유로이 살고자 하되 오히려 가두었고, 주체적으로 살고자 하되 종속되었고, 꿈을 펼치고자 하되 먹고 사는 생계에 매여야 했다.
그림 속 장애인은 계속해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림 속 나의 모습은 아름다운가요? 나는 과연 인생을 잘 산 것일까요? 장애도 아름다울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장애인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을까요? 장애 때문에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거기는 어떤가요? 21세기는 장애인이 살기에 좀 나아졌나요? 장애와 함께, 아니 장애 너머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 가능할까요? 도대체 장애란 무엇일까요? 장애가 나에게나 이웃에게 그리고 사회에 유익한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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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며 하나님나라와 복음을 위한 우리의 사명을 마음에 되새기며 살기 원합니다. 장애인들과 함께 그림을 보며 말씀을 나 누는 것은 작게나마 장애인과 함께 하나님나라를 향한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성경그림은 선교와 신앙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으로서 그림에는 나름의 신학이 담겨 있습니다. 화가는 성경에서 이해한 바를 시대 의 문화 속에서 자신이나 공동체의 경험을 바탕으로 믿음을 표현 하고자 하였습니다.
“어 보인다. 보여!” 오늘도 그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예 수님의 사랑을 보고, 성령의 능력을 보고, 하나님나라의 희망을 볼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림과 함께 나누는 말씀 미술이란 무엇일까요? 이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도 각 자 생각하기 나름일 것입니다. 오늘날 미술하면 가장 먼저 예술작품을 떠 올리므로 아마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작가 는 작품을 통해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고, 관객 또한 작품을 보며 아 름다움을 느끼고자 합니다. 물론 그것이 같은 아름다움인지는 또 다른 문 제이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미술은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넘어서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담고 있습니다. 넓게 보면, 인류의 역사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입니다. 미술은 미적 표현이나 감동과 함께 시대의 문화와 사상,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보면서 그림에 담겨 있는 역사, 문화, 인생을 배우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됩니다. 때로는 작가가 전 혀 생각하지 않았던 숨겨진 정보나 감동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 면 이 글의 전제가 되기도 한 것인데, 그림은 또 오랫동안 교육의 방편으 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중세 미술과 바로크 미술이 그러하였습 니다. 비잔틴 미술과 바로크 미술은 그림을 통해서 성경과 교리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여 신앙을 고취시키는데 목적을 두었습니다.
교육을 목적으로 한 미술의 사용은 오늘의 교육 현장에서도 활발히 진 행되고 있습니다. 교회학교, 특히 어린 영유아부나 장애인부, 특히 발달 리고 미술의 대표는 여전히 회화 (繪畵) 곧 그림이라고 할 것입니다. 장애인 가운데에는 글이나 말보다 그림이나 이미지를 통해 좀 더 쉽고 편하게 생 각하고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렵고 난해한 언어보다 그림이 좀 더 인상적으로 와 닿아 뭔가 깨닫고 느끼게 합니다. 물론 언어보다 분명하고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것은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서양미술이라는 것이 상당부분 기독교미술이었습니다. 그 것은 성경의 내용을 주요 주제로 삼고 있는데, 거기에는 교회의 교리와 전통과 문화도 담겨 있습니다. 성경의 내용을 그린 그림을 흔히 ‘성경그 림’ 또는 ‘성서화 (聖書畵)’라고 하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선 넓은 의미에서 ‘성화(聖畵)’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성경은 구원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책이 귀하고 구하기 어려운 고가이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글, 특히 라틴어를 몰라서 성경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성 경의 내용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표현하곤 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어떤 분은 성화를 가리켜 ‘그림으로 그려진 성경’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제아무리 잘 그려도 그림이 성경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예수님에 관한 그림을 보며 주로 다음의 것들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곧 그리스도 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림을 보며 거듭해서 발견하고 고 백하고자 하는 신앙의 내용입니다. 둘째, 그림 속에서 재확인하며 감동받 고자 하는 것은 결코 끝나지 않는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사랑과 능력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림을 보며 그분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 셋째, 그림을 보 며 좋은 신앙의 본을 찾아 본받고자 함입니다. 예수님은 물론 그림에 함 께 등장하는 인물들 그리고 작가의 삶 속에 담겨진 신앙의 본을 찾아보고 자 합니다. 넷째, 그림을 보며 하나님나라와 복음을 위한 삶을 다잡고자 합니다. 성도의 본분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인데, 세상에 살다보면 자꾸만 흐트러지기 쉽습니다. 그림을 보며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한 우리의 사명을 마음에 되새기며 살기 원합니다. 장애 인들과 함께 성경그림을 보며 말씀을 나누는 것은 작게나마 장애인과 함 께 하나님나라를 향한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이 글은 바로 그러한 신앙 의 관점에서 기술하였습니다.
코로나라는 시대적 상황과 개인적인 장애로 박물관이나 미술관 현장 을 많이 가지 못하고 주로 책과 글 그리고 온라인 자료를 가지고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림은 주로 온라인의 웹 갤러리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습니 다. 또한 기독교미술, 특히 성경그림에 관한 서적들이 이미 시중에 많이 출간되어 있어서 그것들을 참조하였습니다. 좀 더 상세한 자료가 필요하 신 분들은 뒤에 실어놓은 참고문헌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예수님의 생애 중 24개의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24주제의 선 별에 특별한 기준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함께 보았던 그림들 중 유명한 작품이나 또는 예수님의 생애에서 중요한 사건을 위주로 하였 습니다. 글의 구성은 메인 그림을 기본으로 성경말씀과 함께 이리저리 살 펴보며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뒷부분에 같은 주제 로 그린 다른 작품들을 소개하여 생각과 감동을 조금 더 풍성하게 하였습 니다. 24주제의 순서는 예수님의 생애 순서를 따랐고, 그림에 대한 설명 도 가급적 역사적인 순서로 소개하여 그림들의 변화 곧 표현의 변화와 생 각의 변화를 좇아가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런 전개 과정에서 재확인하게 되는 것은 이 책의 글들이 주장하는 바대로 성경그림은 선교와 신앙에 도 움을 주기 위한 것으로서 그림에는 나름의 신학이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화가는 성경에서 이해한 바를 시대의 문화 속에서 자신이나 공동체의 경 험을 바탕으로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림을 보는 관객 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였습니다.
이 책의 제목 “어, 보인다 보여”는 사랑부 학생 줌 모임의 첫 말이자 줌 모임을 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처음 줌 모임을 하였을 때, 화면 에 얼굴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어, 보인다. 보여!”라고 말하기 시작하였 습니다. 그것은 발달장애인들이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 즐거운 환호성이 자 장애인의 세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하는 자리였습니다. 또 줌 모 임에서 그림을 보며 무엇을 찾아보라고 하고, 또 무엇이 보이냐고 물으면 여기저기서 “어, 보인다. 보여! ”라고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습니다. 그것 은 알아가는 즐거움이자 신앙의 성장을 향한 발걸음이었습니다. “어, 보 인다. 보여!” 오늘도 그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예수님의 사랑을 보 고, 성령의 능력을 보고, 하나님나라의 희망을 볼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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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장애에 대한 기독교의 조직신학적 접근이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장애인복지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는 장애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와 장애인선교를 위한 신학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 책은 장애에 대한 기독교적인 이해 중에서도 특히 조직신학적인 관점에서 교리적 주제에 따라 정리한 것이다.
장애는 삶의 개인적 조건이면서 사회적 상황이다. 신학은 장애를 인간 개인, 사회, 나아가 전 생태계에 걸친 삶의 여러 조건이요 상황 중의 하나로 본다. 따라서 장애는 개인적으로 고통과 불편을 겪고 사회적으로 불리와 차별을 당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또한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신앙이 성장하고 인생의 비전을 발견하고 이웃을 위로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기독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삼위일체는 기독교의 신론인 동시에 신학적 방법론이다. 신학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고 하나님나라를 향한 구원의 역사를 전개하시며 그 나라로 우리를 초대하시기에 가능하다. 장애신학도 삼위일체 하나님나라를 희망한다. 장애신학에 따르면, 장애인은 여느 인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이며 동시에 죄인이다. 그래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절실히 필요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장애와 상관없이 교회의 동등한 일원이 된다. 또한 장애인은 장애를 매개로 교회와 사회에서 하나님나라의 일군이 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절대무한의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스스로 유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상당한 제약 속에 들어오신 사랑의 장애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장애인을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을 이어받아 장애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 없이 오히려 관심과 사랑으로 포용하고 동역하여야 한다. 장애신학은 장애로 인한 차별이나 소외가 없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장애를 넘어 상호 내재하고 상호 협력하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의 삼위일체 하나님나라를 지향한다.
* 이 도서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8년 우수출판콘덴츠 제작 지원 사업 선정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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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장애(인)에 대해서 무엇을 말씀하는가? 장애와 관련한 성서 본문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장애인은 장애의 경험으로 가지고 성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성서는 장애인에게 무엇을 말씀하는가?
이 책은 장애(인)와 관련된 성서 본문들에 대하여 장애(인)의 경험과 시각을 가지고 해석한 장애신학의 성서해석의 예들이다. 이 해석은 본문에 대한 수많은 해석들 가운데 하나일 뿐, 결코 유일한 해석이나 최고의 해석이 아니다. 다만, 이 해석들이 장애인에게 복음과 희망과 도전과 용기와 능력이 되고, 비장애인에게 함께함과 사귐과 섬김과 나눔의 마음과 생각과 생활이 되고, 교회와 사회에는 장애와 비장애인의 장벽과 갈등과 차별과 억압과 무관심을 넘어서 모두 함께 생명과 정의와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는 비전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