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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용서의 성자 ‘손양원’ 목사
순교 60주년 추모 소설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 5년여의 옥고를 치러낸 사람, 가족과 친지도 외면했던 나환자들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 주면서까지 ‘예수 사랑’을 실천한 사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두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양아들 삼은 사람……. 이는 산돌 손양원 목사(1902~1950)에 대한 설명이다.
일찍이 신학자 박형룡 박사는 손양원 목사를 이렇게 기렸다.
“기도로 호흡 삼고, 성경으로 양식을 삼아 영적 만족과 감사, 충만함으로 찬송을 끊지 않은 희세(稀世)의 경건인이었다. ……위대한 경건의 사람이요, 위대한 전도자였고, 위대한 신앙의 용사였고, 나환자의 위대한 친구요, 원수를 사랑한 위대한 사람이요, 양 떼를 위해서 의의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쓰신 위대한 순교자요, 성자였다.”
이러한 손양원 목사의 뜻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조직된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회장 정주채 목사, 이사장 이만열 교수)는 그의 순교 60주년을 기리며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을 기획, 《소설 손양원: 사랑과 용서》(유현종 지음, 홍성사)를 펴냈다.
글을 쓴 유현종 작가는 <대조영>, <연개소문>의 원작자이자 50여 년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쳐 온 우리나라 대표 문인으로, ‘기독교의 사랑과 용서란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묵상하다가 손양원 목사의 삶을 작품화하고 싶은 강한 의욕을 느껴 이 작품을 저술했다고 한다.
전체 1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만두 파는 소년 손양원을 시작으로, 도쿄 유학, 결혼, 나환자 사역, 신사참배 거부운동과 옥고, 두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양아들 삼는 과정, 그리고 북한군의 총에 맞아 순교하기까지를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재미와 감동을 더해 긴박하게 그려내고 있다.
○열정과 사랑의 사도
손양원 목사는 1902년 경남 함안군 칠원면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아버지를 따라 신앙을 갖게 되었는데, 이후 아버지 손종일 장로의 신앙은 그의 삶에 지침서 역할을 했다. 손양원이 교회 사역에 깊이 참여하게 된 것은 1924년 중생 체험을 한 뒤부터다. 그해 고향의 칠원읍교회 집사로 출발하여 신앙을 다졌고, 1926년 경남 성경학교에 입학하면서 기독교인의 삶과 사역에 헌신하게 되었다. 신학생 시절 시작한 복음 전파와 부흥회에 대한 기록을 통해 우리는 손양원의 설교가 불을 뿜어 낼 듯이 열정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35년 그는 평양신학교에 입학했다. 한국 교회에 신사참배 문제가 본격화된 1938년, 경상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했다. 이 활동으로 손양원은 몇 번이나 옥에 갇히게 된다.
○손양원 목사와 애양원
1939년 애양원교회에 부임하면서 애양원과 깊은 관계가 시작되었다. 광주와 여수를 중심으로 포사이드 선교사와 최흥종 목사가 이미 한센병 환우들에 대한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사역을 더욱 발전시켜 애양원을 사랑의 성지로 굳건하게 다진 사람은 바로 손양원이다. 한센병 환우들과 손양원의 만남은 그가 1924년 결혼할 무렵 부산에 있는 ‘상애원’을 통해 이미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애양원에서 1,500여 명의 환우들을 양 떼로 만난 손양원은 이들을 통해 한국 교회사의 사랑과 순교의 성자로 다시 태어났다.
○질곡의 시기를 넘어선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은 목회 사역 후반기인 194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전 7년 남짓한 애양원 시절 그에게 가장 큰 문제는 한센병 환우들을 돌보는 것과 신사참배를 빌미로 한 일제의 억압이었다. 그런데 목사 안수를 받은 뒤 그에게 더 크게 다가온 문제는 일제의 억압 통치에서 벗어난 뒤 한국 사회에 닥친 정치적․사회적 혼란이었다. 손양원 목사와 가족 그리고 애양원 식구들의 복음에 대한 열정과 헌신과는 별개로 해방 후 한국 사회의 혼란, 특히 공산주의와의 관계는 그에게 큰 도전이었다. 이러한 질곡의 시기에 1948년 여순 사건으로 그의 아들 동인과 동신이 순교했다. 그는 시대적 불운과 목회 사역의 분주함 때문에 아들들을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고 생존을 위해 공장에서 일을 하게까지 했는데, 복음을 전하다가 공산당원들에게 총을 맞아 두 아들이 순교한 것이다. 이렇듯 처절한 상황에서도 손양원 목사가 품고 있던 ‘사랑의 원자탄’은 꺼지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기 아들들을 죽인 공산당원을 양아들로 맞아 그 안에서 예수의 사랑을 구현하고자 했다. 현실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에서 실천하려 한 것이다.
○사랑과 순교의 성자
이처럼 꺼지지 않는 사랑, 복음에 대한 타오르는 열정을 지닌 손양원 목사에게 시대와 복음은 그가 ‘더 낮아지도록’ 요구했다. 이는 손양원 목사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이며 소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손양원 목사가 어디까지 낮아져야 했을까? 한국 교회는 순교의 피를 얼마나 더 요구했을까? 손양원 목사는 한국전쟁 이후 자신마저 공산군에게 검거당하고, 1950년 9월 28일 여수시 둔덕동에 있는 과수원에서 순교했다. 살아 있을 때 이미 기독교권에서 사랑의 성자로 존경받은 손양원 목사는, 일제에 대한 항거와 저항이 인정되어 1995년 늦었지만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었다. 마침내 그는 한국 기독교의 사랑과 순교의 성자로 굳건히 자리 잡게 되었다.
※《한국 기독교 지도자 강단설교-손양원》 서문에서 발췌
이 책은 그동안 보급판으로 나와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책으로 이번에 새로 원안을 개정하여 원문 전체를 책으로 엮었다. 이 책에 소개된 주인공 손양원 목사는(1902~1950) 일제 치하와 한국전쟁이라는 한국현대사의 질곡을 기도와 사랑으로 껴안았던 사랑의 순교자이다.
7살 때 예수를 믿기 시작했고, 1926년 이후 경남, 부산, 광주, 여수 등지에서 사역했다. 1939년부터 한센병자들과 함께 애양원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40년 신사참배 반대로 인해 일제에 의해 구금되었다가 해방과 함께 석방되었다. 1948년 여순반란 사건으로 인해 두 아들 둥신과 동인이 공산군에게 총살당했다. 그러나 손양원 목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들을 죽인 공산당원을 양아들로 삼았다. 손양원 목사는 한국전쟁이 시작된 1950년 9월 13일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같은 달 28일 총살당해 순교했다. 그의 일생은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제목의 책과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는 2,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설교문, 편지, 기도문 등의 기록을 남겼다.
손양권 목사의 순교 일대기 (1902-1950)
일제 치하와 한국전쟁이라는 한국현대사의 질곡을 기도와 사랑으로 껴안았던 사랑의 순교자. 7살 때 예수를 믿기 시작했고 1926년 이후 경남, 부산, 광주, 여수 등지에서 사역했다. 1939년부터 한센병자들과 함께 애양원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40년 신사참배 반대로 인해 일제에 의해 구금되었다가 해방과 함께 석방되었다. 1948년 여순반란 사건으로 인해 두 아들 동신과 동인이 공산군에게 총살당했다. 그러나 손양원 목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들을 죽인 공산당원을 양아들로 삼았다. 손양원 목사는 한국전쟁이 시작된 1950년 9월 13일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같은 달 28일 총살당해 순교했다. 그의 일생은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제목의 책과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는 2,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설교문, 편지, 기도문 등의 기록을 남겼다.
이 글을 쓰는 것은 과거 일정시대에 순교를 당한 우리 선배들의 행적을 찾아보려는 첫 출발이다. 이 산 역사적 사실을 아는 자는 그 누구든지 상세히 기록해서 연락해주기를 바란다. 또 과거에 옥중에서 순교를 기다리다가 하나님께서 아직도 이 땅에서 할 일을 주셨기에 아직 순교를 당하지 않으신 산 순교자들에게와, 또 세상에서 버림받은 기도의 투사인 여수 애양원 성도들에게와, 깊은 산간에 꽃같이 숨은 성도들에게 적으나마 위로가 될까 하여서이다.
그것은 그들을 인간적으로 숭배한다거나 그들 중심의 편당을 짓는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을 통해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묻어둘 수가 없어서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셨음이다(마5 : 13-16) 나는 이 글을 쓰는 동안 눈물을 몇 번이나 흘렸는지 모른다. 눈물로 시작해서 눈물로 마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머리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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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손양원 목사의 믿음과 삶 관련 도서 세트(전7권) |
저자 | 손동연,원작 권혁만 · KBS 제작팀,엮음 주경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손동희,KIATS,박현정,유현종,안용준 |
출판사 | 갓피플몰 |
크기 | set |
쪽수 | |
제품구성 | 상품설명 참조 |
발행일 | 2024-07-14 |
목차 또는 책소개 | 상품설명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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