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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소개하는 《나의 아버지 주기철》
아버지 품이 그리웠던 소년이
순교 신앙을 전하는 사명자가 되기까지모진 고문으로 옥중에서 순교한 주기철 목사는 저서나 자서전을 남기지 못했고, 평양에서 직접 작성했던 설교와 각종 문서들도 대부분 소실되었다. 그를 추적할 수 있는 자료들은 당시 성도들과 가족의 증언뿐이다. 한국 순교자의 자취를 전하는 데 힘써 온 유승준 작가는 주기철 목사의 막내아들인 주광조 장로의 어린 시절을 복기한 친필 원고와 육성 자료, 당시의 사실적 증언들을 토대로 《나의 아버지 주기철》을 펴냈다. 주광조 장로는 주기철 목사의 순교 과정과 어머니 오정모 집사를 비롯한 가족의 수난을 직접 목격하고 겪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저자는 주기철 목사의 자녀 세대가 모두 세상을 떠난 지금 그의 순교 신앙을 전해야 하는 이 책의 사명을 느꼈다. 초판은 2014년에 출간된 《서쪽 하늘 붉은 노을》이며, 2024년 4월 21일 주기철 목사 순교 80주년을 기념해 개정되었다. 개정판에는 주광조 장로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의 이야기가 더해졌고, 주기철 목사의 흔적을 따라 가며 그의 신앙을 사색할 수 있는 ‘주기철 로드 순례’가 수록되어 있다.
순교자와 가족의 서사를 통해 본
고난과 십자가의 의미막내아들 광조가 첫돌 갓 지났을 무렵 생모 안갑수는 갑작스레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할머니 손에 맡겨져 동냥젖을 먹고 자라났다. 두 번째 어머니 오정모는 아버지를 순교로 이끈 투철한 신앙을 가진 분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강철 같은 의지를 가진 투사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전사도 아니었다. 연약한 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 때문이었다. 아홉 살 광조는 항복을 받아내려는 일본의 술책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문 장면을 보게 되었고 한동안 실어증을 앓아야 했을 정도로 일제의 탄압은 잔혹했다. 아버지 품이 그리웠던 소년은 눈물로 기도했지만 아버지는 끝내 처참하게 훼손된 시신으로 돌아왔다.
“어머니, 아버지 발이 이상해서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아요.” 이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가 않았다. 내가 말도 없이 고개만 흔들면서 아버지 발목을 붙잡고 있자 어머니께서 내 손을 확 치우셨다. 아버지 발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진 채 검게 썩어 들어가던 아버지의 발. 어머니는 황급히 아버지의 발을 가리셨다. _본문 중에서
이 책은 순교자와 남겨진 가족의 서사를 통해 고난과 십자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뒤이은 어머니의 죽음, 뿔뿔이 흩어진 가족과 큰형의 순교, 가난과 질병으로 점철된 청년 시절의 방황…… 비록 시대의 그림자가 삼켜 버린 가족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했지만 주광조 장로는 고난을 지나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 순교 신앙을 전하는 일에 삶을 바쳤다.
ㆍ 유승준 작가의 해설과 함께하는 주기철 로드 순례(www.eduru.co.kr)
# 첫째 날
1. 국립서울현충원독립유공자묘역 주기철 목사 가묘와
국가유공자 제2묘역 조만식 장로 가묘
2. 천안공원묘원주기철 목사 3남 주영해 장로 부부 묘소와 4남 주광조 장로 부부 묘소
3. 부산 초량교회 역사관초량교회는 1892년 미국 배위량 선교사에 의해 부산 지역 최초로 설립된 장로교회로 1926년에 부임한 주기철 목사는 1931년 마산 문창교회로 옮겨 가기까지 치열하게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주도했다.
# 둘째 날
4. 마산 무학산 십자바위주기철 목사가 문창교회 재직 시절 자주 올라 교회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던 장소다.
5. 항일독립운동가 주기철목사기념관ㆍ생가주기철 목사의 항일독립운동에 관한 다양한 자료와 그가 보여 준 불굴의 신앙을 확인하면서 사색하는 공간이다.
6. 웅천읍성ㆍ웅천왜성ㆍ세스페데스 공원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주기철 목사의 고향
# 셋째 날
7. 마산 문창교회주기철 목사가 1931년부터 1936년까지 시무한 교회로 1932년 막내아들 주광조가 태어났으며 이듬해 아내 안갑수가 급환으로 별세했다. 오정모 집사와 재혼한 주기철 목사는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던 평양으로 임지를 옮겼다.
8. 경남선교120주년기념관ㆍ호주선교사묘원같은 고장 출신인 주기철 목사와 손양원 목사의 순교 기념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 곳이다.
9. 주기철목사수난기념관평양 산정현교회에서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이끌던 주기철 목사는 일제가 조작한 의성농우회 사건에 연루되어 1938년 8월부터 12월까지 경상북도 의성경찰서로 끌려와 형언할 수 없이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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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 연구 사상 처음
주기철 목사가 직접 말하고 쓰고 전한
원사료들을 찾아내 본연의 주기철을 조명하다
감리교 신학자이자
한국 교회사 연구 전문학자 이덕주 교수가
오랜 각고의 노력으로 빚은 노작(勞作)!
주기철 목사 성역 100주년,
서거 4월 21일 기념기독교 역사학자 이덕주 교수는 지금까지의 주기철 연구들이 기자에 의해 현장에서 메모하여 복원된 설교문을 근거하여 이루어져 온 사실을 알고, 순교 전 간행된 신문과 잡지들을 찾아내 총 19편의 원사료들을 발견했다. 이 설교 원문들과 비교해 기존 설교들을 보니 일부 또는 결론이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기자에 의해 복원된 설교문은 강한 순교자적 이미지가 의도적으로 부각된 주기철이었다. 그러나 저자가 원사료들에서 읽은 주기철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이별을 슬퍼했던 평범한 성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다만 그 길을 가는 그에게는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고, 그분이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한 결론이 십자가 순교의 길이었다. 주기철 목사가 감옥 안에서 그 혹독한 고문을 견딘 것은 그의 강한 체력이나 불굴의 의지가 아니라 그와 함께하신 그리스도, 그 사랑의 힘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인간이 못할 일이다. 그러나 인간이 십자가를 지려고만 하면 십자가가 인간을 지고 간다. 그래서 갈보리 산상까지 갈 수가 있는 것이다.”
- 주 목사가 두 번째 검속을 당해 6개월 옥고를 치르고 풀려난 후 산정현교회 교인들에게 남긴 말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그분이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한 결론
‘사랑의 순교자’로
백 년의 주기철을 다시 쓰다올해 주기철 목사 성역 100주년을 맞이하여 20년 전에 출간되었던 첫 책을 새롭게 전면 개편하여 출간하게 되었다. 이전 책에서 주력했던 사료 비평과 선행 연구에 대한 비평을 빼고, 그 사이 새로 발견된 자료 특히 총독부나 일본 정부에서 간행했던 비밀보고서나 일반 언론지에 실렸던 관련 기사들을 참조하여 내용을 보완하였다. 그리고 주기철 목사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원하는 독자들을 위해 그가 생전에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했던 원사료들의 일부를 본문에 인용하였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각색되지 않은 주기철 목사를 만날 수 있다.
* 주기철 목사 목회 약력주기철 목사는 1923년 봄 평양 장로회신학교 재학 시절 경남노회 양산읍교회 조사로 목회를 시작하였다. 1925년 12월 경남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부산 초량교회, 마산 문창교회 당회장을 역임하였고 1932-33년 경남노회장으로 사역했다. 1936년 7월 평양 산정현교회 당회장으로 취임하여 예배당을 신축했고 1937-38년 평양노회 부노회장에 선임되었으나 신사참배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아 평양경찰서에 구금된 상태에서 1940년 3월 평양노회로부터 목사직 제명 처분을 받았다. 가족까지 목사 사택에서 쫓겨난 상태에서 주기철 목사는 홀로 외롭게 투쟁하다가 1944년 4월 21일 평양형무소 병감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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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시대 한국 기독교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던
주기철 목사의 생애를 생생하게 기록한 단 하나의 책!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 그리고 다시 사신 주님.
그 부활을 가슴 깊이 믿고 또 의지하는가?
이 책에는 주기철 목사님의 어린 시절부터 학창 시절을 지나 목회하시던 모습과 순교의 그 순간까지 전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한국 기독교 역사가 담긴 사진 자료들을 통해 일제 강점기를 더욱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주 목사님의 생애, 이 땅을 향한 주님의 사랑 그 자체이다.
한국 땅에 뿌려진 순교의 피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그 사랑을 맛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순교자 주기철 목사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일사각오의 절개로써 지켜냈던 ‘부활 신앙’이 가슴에 다시 타오르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살아 역사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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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사와 민족사에 신앙의 전통을 이어주는
한 알의 밀알이 된 주기철 목사의 순교기이 책은 한국 교회사의 가장 어려웠던 일제 강점기 시절,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순교의 길을 걸었던 주기철 목사의 생애를 담고 있다. 주기철 목사의 4남인 주광조 장로가 어린 시절 목도한 기억을 서술하여서 역사적 진실성과 생동감이 매우 뛰어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기철 목사는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순교자로 해방 이후 기독교인의 신앙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오직 성경대로 믿고 실천하는 삶을 산 그에게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주기철 목사가 걸어간 순교의 길을 떠올리게 하며, 아픔과 절망을 뛰어넘은 참 신앙의 본질을 배우게 한다. 또한 아들이 본 아버지 주기철 목사의 일대기를 통해, 아버지로서 가족을 사랑했던 자애로운 마음과 순교자 가족이 겪어야만 했던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눈물을 경험하게 한다.
영한대역으로 제작한 ‘죽음을 이겨낸 영원한 삶(More Than Conquerors)’은 국내의 독자뿐만 아니라 미주 지역을 비롯한 전세계의 한인 2세들과 현지 외국인들에게 한국 기독교 초기 역사를 알리고 순교신앙을 전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이미 미얀마어, 미얀마 방언 등으로 번역되어 버마 현지에 소개되었다.
[출판사 서평]“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는데, 이제 내가 어찌 죽음이 두려워 주님을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이 누리는 종교적 자유 속에서 순교란 먼 옛날 일로 생각하기 쉽다.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현대에 있었던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기를 그의 막내아들 주광조 장로님이 증거하시는 대로 소개해야겠다고 느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순교 신앙을 받아 우리 앞에 놓은 매일의 영적 싸움에서 넉넉히 승리하기를 기도드린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신다.
-발행인 김정주, <책을 엮으며: 넉넉히 이기느니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