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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기획

복음에 빚진 선교사 열전 세트(전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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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조수아 뭉흐,이은용,진실로,강대흥, 그 외 1명  |  출판사 : 사도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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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작은 자들을 섬기기 위해
땅끝으로 간 이민교 선교사의 놀라운 복음행전



소록도 법당에서 염불하던 나를 성령님께서 습격하셨다!
1988년 3월 2일, 나는 결코 그날을 잊을 수 없다. 틈만 나면 소록도에 가던 나는, 그날도 소록도 법당에 있었다. 내가 아무리 부처를 전해도 예수 믿는 한센병 환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새벽 4시에 일어나 법당으로 향했다. 가부좌를 틀고 30분간 좌선을 한 다음 목탁을 치며 염불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염불이 되지 않고 엉뚱한 말이 입안을 맴돌았다. “며칠 후 며칠 후... (딱딱딱딱) 요단강 건너가... (딱딱딱딱).” 나는 화들짝 놀랐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처음에는 ‘내가 멸치가 먹고 싶나?’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만두려고 해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곧 이 소리를 어디에서 들었는지 기억이 났다. 그것은 며칠 전 화장터에서 들었던 기독교인들의 찬송가 가사였다. 따져보면 며칠 전에만 들었던 것이 아니다. 지난 7년간 소록도를 드나들 때마다 수도 없이 들었던 찬송가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의 후렴구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염불을 해야 할 땡중의 입에서 어떻게 찬송가가 터져 나올 수 있는가? 혀는 제멋대로 돌아가는 것 같았고, 뜻 모를 소리까지 외쳐댔다. 생각해보면 그 때 방언이 터진 것이었다. 거의 한 시간이 넘도록 목탁을 내려놓고 법당을 뒹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얼굴이 콧물과 침으로 범벅이 되어 엉망이었다.
이 일은 온전히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성령님이 나를 찾아와주신 사건이었다. 어떤 말이나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체험이었다!
_서문 중에서

“내게는 복음에 빚져 잉태한 세 명의 자녀가 있다!”
10여년 만에 《복음에 빚진 사람》 개정판을 한국어와 영어와 중국어로 다시 출산(出産)하게 되었다. 개정판은 세 번째 자녀 이야기가 추가돼 새 롭다.
첫 번째 낳은 자식의 이름은 우즈베키스탄 농아들이다.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이이지만 배 아픈 진통의 시간이 길었다.
두 번째 자식은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로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추방 당한 선교의 경험 덕분에 자녀양육이 쉬웠던 카자흐스탄 농아들이다.
세 번째는 내가 원하지도 않았지만 하나님이 하고 계시기 때문에, ‘입 양된 자녀들’이라고 이름 지어 부르는 북조선 농아들이다.
이렇게 해서 새롭게 출판되는 《복음에 빚진 사람》의 개정판에는 쌍둥 이로 살아가는 하나된 조선 ‘New Korea’의 이야기까지 담게 되었다.
_개정판 서문 중에서


소록도 법당에서 염불하며 목탁을 두드리던 이가 갑자기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딱딱딱딱.“ 한센인들이 동료의 장례식에서 축제처럼 그 찬송가를 부를 때, 저자는 극락왕생을 축원하며 목탁을 두드리곤 했다. 그런데 그때 듣던 찬송가가 귀에 박혔다가 입으로 터진 모양이었다. 그는 의지와 다르게 터져 나오는 찬송가를 멈출 수 없었다. 방언이 터졌고, 법당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그는 그렇게 개종하고서 훗날 신학교에 진학,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으로 선교의 길을 걷게 된다. 지금은 목사이자 축구 감독 자격으로 북한을 오가며 북한 농아인 축구팀을 섬기는 사역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스스로 ‘복음에 빚진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이 표현은 사도 바울이 그의 서신(로마서 1:14)에서 한 말이기도 하다.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은 아직 복음을 듣지 못했는데, 자신은 복음을 먼저 들었으므로 복음을 전할 책임이 있다는 뜻에서 복음에 빚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늘 장애인, 한센인, 농아, 무슬림, 북한과 같은 주제들을 붙잡고 살아왔다. 이 책은 중앙아시아 농아인 선교를 하던 그가 어떻게 해서 북한의 농아들을 섬기는 사역까지 하게 됐는지, 그리고 그 일을 통해 갖게 된 비전은 무엇인지도 설명한다.
2010년 발행된 《복음에 빚진 사람》에서 총 4부로 카자흐스탄까지의 삶과 사역을 소개했다면, 이 개정판에 추가된 5부는 북한의 농아축구단을 섬기게 된 사연과 통일에 대한 비전까지 나누고 있는 것이다.
곽수광, 김병로, 김영제, 김정명, 김형식, 박종근, 양창석, 오상원, 이상만, 조용중, 주명수, 허문영, 황성주 추천

대한민국 근현대사와 한국교회 선교의 생생한 역사!
“미스터 미션, 조동진 목사님은 한국 선교의 아버지이시다.”



미스터 미션, 조동진 목사님은 해방 이후 전쟁 중에도 목회자의 사명을 감당하셨다. 무엇보다 선교사로서, 선교 동원가이자 선교 지도자로서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 사역의 길을 개척하신 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수십 차례 북한을 방문해 생전의 김일성 주석을 연속적으로 만난 한국 기독교 인사는 아마도 그가 처음이자 유일한 분이라고 알고 있다. 조 목사님이 북한에 복음의 씨앗을 심기 위해 헌신하신 모든 일은 한국교회뿐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도 길이 남을 일이다.
필자는 이런 어른의 뒤를 이어 선교와 북한 사역을 하고 있는 다음 세대 선교사로서, 조 목사님이 목회자요 신학자요 선교사로서 살아오신 삶을 정리할 필요성을 오래 전부터 강하게 느껴왔다. 그러나 부족한 사람이 그것을 감히 상세히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은 나의 사명처럼 다가왔다. 조 목사님이 쓰셨던 세 권의 회고록을 토대로 정리하되, 내가 대표이사로 임명 받고 조 목사님이 초대 이사장으로 섬기신 ‘민족통일에스라운동협의회’(Global Blessing)의 사역과 관련하여, 그 분의 삶과 사역이 북한 사역의 문을 열게 된 일과 관련한 부분을 부각하여 회고록을 요약하고 정리하였다.
_저자 이민교 선교사의 ‘들어가는 글’ 중에서

▒ 출판사 서평 ▒
한국교회 근현대사는 물론, 특히 해외선교운동과 북한선교와 통일사역을 말할 때 반드시 앞세워야 할 인물이 있다. 해방 이후 서울에 세워진 장로회신학교와 미국 윌리엄캐리대학을 졸업하고, 옥인교회와 서대문교회 등에서 목회활동을 하다 유학을 다녀온 후 후암교회 담임을 거쳐 KIM선교회 등을 설립했던 조동진 박사(목사)다.
1924년 일제 강점기에 북한에서 김구 선생을 따른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나 자연스레 김구 선생의 민족주의 영향을 받았으며, 신앙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교파를 초월하고 세계적 안목을 지닌 목회자요 선교운동가로서, 해방과 전쟁 이후 한국교회 갱신과 근현대 선교 운동을 실질적으로 선도해온 인물이다. 2018년 4월 현재 경기도 모처에서 딸과 더불어 살고 있다.

그의 선교적 안목과 신학 지식은 탁월하여 1000년 이상 고착돼온 서구 중심의 선교관을 성경적으로 탈바꿈시킴에 따라,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비서구 지역이 새롭게 선교의 중심에 서게 하는 혁신적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 결과 1970년대 초에 동양에서는 최초로 전 세계 선교 지도자들을 서울로 불러모아 국제적 선교 포럼을 개최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최초 대규모 집회였던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의 실무를 진두지휘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다수의 전국적 전도집회를 주도하여 70년대 한국교회 부흥운동을 선도했다.

그는 특히 통일운동에 앞장선 인물로서 생전의 김일성 주석을 세 번 독대했으며,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방북을 주선했고, 빌리 그래함은 물론 지미 카터까지 연결되는 그의 국제적이고 광대한 인맥과 적극적인 대북 활동을 통해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 사이의 남북 정상 회담이 성사 직전까지 이르렀으나, 안타깝게도 김일성의 급거로 무산된 것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제자를 보면 스승을 아는 법인데, 그가 발굴하고 훈련시킨 선교사들은 1970년대와 90년대 한국의 세계선교를 실질적으로 선도해왔다. 현재 국내 최대 선교회인 총회해외선교부(GMS) 사무총장을 지낸 강승삼 선교사를 비롯해 GP선교회와 그 전신인 각종 선교회들의 대표적 선교사들이 그의 훈련을 통해 동남아 지역과 아프리카 등지에서 개척선교를 해왔다. 월간목회 발행인 박종구 대표는 청년기에 그와 함께 기독 신문을 발행했으며,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김경래 장로는 조동진이 발탁하여 기독교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 책은 파란만장이라는 진부한 말로는 설명이 부족한 조동진의 일생을 그의 뒤를 이어 북한사역에 몰입하고 있는 이민교 선교사가 정리한 것이다. 조동진 목사는 과거 <지리산으로 간 목사>, <평양으로 간 목사>, <세상으로 나간 목사> 등 세 권으로 자신의 성장 과정과 목회, 북한 사역, 선교 활동 등을 정리했는데, 저자는 이 세 권을 요약 정리하여 이 책을 구성했다. 따라서 이 책은 조동진 박사 개인의 역사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를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다양한 이면도 볼 수 있고, 한국교회의 생성과 선교운동의 발전 및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

조동진
서구 중심의 기존 해외선교 패러다임을 아시아인의 사명과 관점으로 새롭게 정립한 최초의 동양계 선교 운동가이자, 생전의 김일성을 세 번 만나고 통일의 씨앗을 심은 북한선교의 산 역사. 애즈배리신학교 교수였던 존 시맨즈는 조동진을 ‘미스터 미션’(Mr. Mission)이라 불렀다. 삶 자체가 선교라는 뜻이다. 교회성장학자 도날드 맥가브란은 그를 ‘아시아 선교의 활발한 지지자’로 추켜세웠으며, 세계적 선교학자 랄프 윈터는 “그는 진실로 세계 시민이었다”라고 평했다. 이 모두가 한국교회 목회행정의 선구자요 선교학자이며 선교 동원가이자 선교사인 조동진 목사를 향한 세계적 석학들의 극찬이다. 해방 후 한국교회 선교사에서 그를 뺀다면 한국 선교의 뿌리를 결코 논할 수 없을 것이다.
조동진 목사는 1924년 12월 19일 평북 용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조덕천이다.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애즈베리 신학교 대학원(석사), 미국 윌리엄캐리대학교 대학원(박사)을 졸업했다. 후암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다 선교사로 헌신, 후에 국제선교협력기구(KIM:Korean International Mission)와 동서선교연구개발원(EWC:East West Center for Mission Research and Development)을 설립했다. 아시아선교협의회(AMA:Asia Missions Associations)를 창립하고 창립 회장으로 섬겼다. 김일성종합대학교 종교학과 초빙교수 및 평양신학원 초빙교수로서 평화통일과 민족교회 운동에 힘썼으며, 말년에 ‘조동진선교신학연구소’를 설립했다.
“끝까지 믿어주고,
끝까지 사랑하라!”
몽골 1세대 목사의 한국인 아버지, 최순기 선교사의 삶과 순교 이야기


도서출판 사도행전은
선교사들의 헌신적 삶을 한국교회에 소개하고
선교 열정에 다시 불을 일으키려는
선교적 목적으로
‘복음에 빚진 선교사 열전’ 도서를 펴냅니다.
여러분의 선교 후원이 보람되고 가치 있음을
이 책이 증명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다음세대 청년들이
복음에 빚진 선교사 열전을 읽고
선교사로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서문 들어가는 글 중에서]

몽골이 외면할 수 없는 분
최순기 선교사님이 사망한 다음, 몽골에서 장례를 치르기까지 보름이나 걸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평양에서 죽은 외국인의 시신을 북한 정부가 내줄 수 없다는 입장 때문이었다. 특별한 ‘비밀’이 있어서는 아닌 것 같았다. 그저 “전례가 없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었다.
최 선교사님이 집사로서 다녔던 LA영락교회의 고(故) 김계용 목사님도 1990년에 평양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최 선교사님의 사인(死因)도 같은 것이었다. 김계용 목사님은 북한에 묻히셨다고 들었지만, 나는 아버지마저 그렇게 되도록 둘 수 없었다.
나는 부고를 듣자마자, 선교사님의 가족과 함께 우선 몽골로 갔다. 우리는 북한 대사관, 미국 대사관, 중국 대사관, 그리고 몽골 정부까지, 접촉할 수 있는 외교적 통로를 최대한 들쑤셨다. 동생 최홍기 장로는 최 선교사의 유언이 담긴 편지를 북한 정부에 보내 ‘몽골에 묻히는 것’이 고인의 바람이었음을 알렸다. 당시 미국 국무부 장관이던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s Rice)도 이 일을 보고받고 시신 송환에 힘을 보탰다.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관은 몽골 주재 미 대사관의 시신 인도 요청 전달에 협조해주었다. 중국도 시신이 중국을 경유하는 데 동의하였다. 전례가 없다던 북한 정부도 의외의 국제적 관심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 일의 마지막 열쇠는 정작 몽골 정부였다. 몽골 정부가 최순기 선교사의 장례식과 매장을 몽골에서 하는 것을 처음부터 승인한 건 아니었다.
20세기 초부터 구소련의 개혁개방선언인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가 선포될 때까지, 무려 70여 년간 소련의 영향 아래에서 공산국가였던 몽골 정부는 외교적으로 남한보다 북한과 가까웠다. 당연히 북한 눈치를 먼저 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북한이 고향인 대한민국 사람이면서 미국 시민권자인 개신교 목사가 평양에서 죽은 복잡한 경우다. 공산주의 사상과 불교와 무속의 영향이 여전히 남아 있는 몽골로선 자연스러운 입장이었다.
나는 몽골 외교부를 찾아가 호소했다. ‘교회식’으로 말하자면, 공무원들 앞에서 ‘간증’한 것이다.
“뭉흐 자르갈은 영적 아버지 최순기 목사님을 만나기 전까지 몽골에서 방황하던 수많은 청소년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부모님은 이혼해서 고아처럼 살았고, 먹을 게 없어 도둑질한 적이 있었으며, 몽골의 거리에서 동네 아이들과 깡패처럼 싸움박질이나 하던, 정말 아무 소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최순기 목사님이 오셔서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시고, 저를 사람답게 살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목사님 덕분에, 저처럼 변화된 몽골 친구들이 많습니다. 저를 미국에 유학까지 가게 해주셔서, 이제는 꿈과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최순기 목사님은 몽골 사람 아니고, 한국인이고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나 같은 몽골 청년들이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주신 훌륭한 분입니다. 이런 분을 어떻게 우리 몽골이 외면할 수 있습니까? 우리 몽골 사람이나 다름없는 분입니다! 무엇보다 내게는 아버지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분도 몽골에 묻히기를 바라셨고요. 시신을 몽골에 모셔서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부디 허락해주십시오!”
공무원들은 내 호소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자기들끼리 회의를 하는가 싶더니, 이윽고 내게 말했다.
“안 그래도 여러 나라의 외교적 의견도 들었고, 무엇보다 뭉흐의 말을 듣고서 우리가 결정했습니다. 최순기 씨의 몽골 안장을 허락합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몽골 정부에서 묘지도 제공하겠습니다. 잘 모시고 와서, 장례를 잘 치르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하는 외침이 바로 터져 나왔다. 북한도 이제는 더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북한 당국은 시신을 보내주기로 했다. 단, 별도의 부검 같은 건 하지 않겠다는 각서에 사인을 요구했다. 가족은 동의했다.
한 알의 밀이 몽골 땅에 떨어져 죽다
3월 31일, 최순기 선교사님의 관이 북경을 경유해 드디어 몽골에 도착했다. 나는 장례를 치르기 전에 시신을 모셔둘 병원 영안실에서 가족과 함께 ‘아버지’를 만났다. 시신은 외상없이 깨끗했다. ‘혹시?’ 하며 ‘의심’했던 이들도 있었지만, 최순기 선교사는 심장마비로 쓰러지신 게 분명한 듯했다.
최 선교사가 쓰러진 곳은 북한의 동업자와 함께 식사를 한 다음, 호텔을 벗어나 인근 지하도로 향하던 길 위였다고 한다.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더니 쓰러졌다는 동업자의 설명을 들었다. 훗날에 안 것이지만, 최 선교사는 건강에 이상 징후가 있었음에도 북한 방문을 감행한 것이었다. 그때가 네 번째 방문이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엔 김정일 위원장까지 만나 직접 가공한 보석을 선물할 계획도 갖고 있었다. 언젠가 그 보석을 내게 보여주셨다.
“뭉흐야! 이거 내가 직접 깎은 건데, 다음에 북한 김정일 위원장 만나면 선물할 거야! 좋은 일이 생기도록 너도 기도해달라!”
최 선교사는 로스엔젤레스에서 집사일 때 보석 가공을 하던 보석 세공 전문가이자 보석 사업가였다. ‘007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배우 숀 코너리가 애용한 액세서리도 그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보석 세공 기술을 북한에 소개하고, 관련 사업을 평양에서 펼치고 싶어했다. 그 이면에 감춘 은근한 목적은 물론 선교였고 통일이었다. 그래서 고위당국자들과의 만남을 기대했는데, 안타깝게도 무산되고 만 것이다.
2006년 4월 5일 수요일 오전 10시, 재몽골한인선교사회(KMEM), 그리고 몽골 교회의 연합체이자 새생명교회가 주축인 몽골복음주의협의회(MEA)가 공동으로 ‘사랑의 빛 센터’에서 장례식을 치렀다. 그런 다음, 최 선교사는 가조르트 묘역에 안장되었다.
새생명교회는 1994년, 최순기 선교사가 중년의 나이에 몽골 선교사로 헌신해 몽골에서도 가장 추울 때 오셔서 개척한 교회이다. 새생명교회는 몽골 전역에 지금까지 20개 이상의 교회를 개척했고, 몽골 교회의 뿌리 중 하나가 됐다. 이제는 내가 담임하여 목회하고 있는 교회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나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아버지’를 추억하며 전율한다.
이 책은 한 알의 밀이 몽골 땅에 떨어져 죽어 수많은 새가 깃들 만큼 많은 열매를 맺은 역사의 기록이다. 나는 그 열매 중 하나로서, 몽골 교회가 추모하는 최순기 선교사님에 대해 쓴다.


[출판사 책 소개]

이 책은 몽골에서 선교하던 중에 평양에서 순교한 고 최순기 선교사의 몽골인 제자이자 목사인 조수아 뭉흐가 자신의 영적 아버지인 최순기 선교사의 삶과 그 제자들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
몽골이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혼란스러울 때 거리에서 방황하던 10대 시절의 저자가 어떻게 변화의 소망을 갖게 됐는지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혹한기의 몽골에 홀홀단신으로 온 최순기 선교사가 저자와 그 친구들을 만나 교회를 시작하면서, 몽골에 교회가 세워진 이야기 자체는 몽골의 최근 교회사이기도 하다. 복음이 심기고 교회가 세워진 뿌리는 최순기 선교사의 사랑이었다고 저자는 증거한다. 최 선교사 부부가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몽골의 제자들을 친자식처럼 품은 사랑을 통해 그들이 살아난 것이다.
<내려놓음>의 저자 이용규 선교사는 그의 책 <같이 걷기>에서 최순기 선교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몽골에서 사역하다가 하나님 품에 안긴 최순기 선교사님은 부모가 없는 몽골 아이들을 자녀로 여기며 돌봤다. 거리의 아이들은 종종 선교사님 집안의 물건을 훔쳐 도망쳤다가 갈 곳이 없어 다시 돌아왔다. 그러면 최 선교사님은 아무 말 없이 함께 목욕탕에 가서 아이의 등을 밀어주고, 따뜻한 밥을 먹이고, 피곤할 테니 들어가 자라고 이불을 깔아주었다고 한다. 최 선교사님과 함께한 사람들은 “그분이 진짜 우리 아버지였다”라며 선교사님을 많이 그리워했다. 최 선교사님은 눈에 보이는 대단한 성공을 거둔 분은 아니었다. 성도 수가 200명이 안 되는 교회와 몇 개의 지방 교회를 세우고 돌보면서 관계 맺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을 키워냈다. 선교사님이 보여준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들의 마음이 열리자 그들 안에 변화가 일어났다.

최 선교사가 북한 출신이기도 했지만, 몽골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북한선교를 도모하던 중 안타깝게도 평양 거리에서 심장마비로 소천하게 된다. 전례대로라면 북한에서 시신을 받아올 수 없었으나, 저자는 백방으로 수소문해 최 선교사를 몽골에 모셔올 수 있었고, 몽골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안장할 수 있었다.
최 선교사가 갑자기 사라진 몽골 교인들은 잠시 어려웠지만, 저자를 중심으로 한 제자들이 선교사의 가르침대로 몽골 전역에 교회를 세워가는 교회 개척의 비전을 이뤄갔다. 지금은 몽골 전체 21개도의 절반 이상 지역에 교회를 개척했고, 개척한 교회들이 또 교회를 개척해나가면서, 몽골인 스스로 몽골 선교의 중심에 서고 있다.
이 책은 최 선교사가 저자를 만나 새생명교회를 개척하고 여러 교회를 또 개척한 이야기, 최 선교사의 개인사와 순교 이야기, 이후에 펼쳐진 몽골 교회의 부흥사까지 두루 보여준다. 선교의 본질은 누군가가 선교에 헌신하여 누군가를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는 것이며, 그리하면 누군가 살아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이자 결론이다.
부록으로 간략한 몽골 선교사도 덧붙여, 한국인 선교사에 의해 완성돼가는 몽골 선교의 오늘까지 거시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도서출판 사도행전이 한국 선교사에 대해 소개하는 ‘복음에 빚진 선교사 열전’ 시리즈 제1권이다. 한국교회가 선교에 후원한 것이 보람되고 가치있는 일이었음을 증거하는 이 시리즈 도서의 첫 책으로 고 최순기 선교사의 이야기가 선정된 것은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그 이야기를 몽골인 제자를 통해 읽게 된 것이 더 큰 의의가 있다. 저자는 현재 몽골에서 지도력있는 목회자로 사역하고 있으며, 한국 사람 못지않게 한국어에 능통해서 해서 이 책을 쓸 수 있었다. 그럴 만큼 고 최순기 선교사가 현지인에게 전한 선교적 영향이 매우 컸음을 반증한다. 이 책은 선교사에 의해 어떻게 현지인에게 선교사역이 이양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선의 선교사는 물론 선교사를 후원하는 한국교회에 모두 유익한 인사이트를 준다.
“결코 멈출 수 없는 하나님 나라 선교의 불길,
살아있는 공격적 헌신의 숯불이 점화시킨다!”

동북부 아프리카 광야에 복음의 불을 지른
이은용 선교사의 ‘선교 일념’ 전도 행전



이 책은 아프리카 땅에 붙은 성령의 불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32세 약관의 나이에 마사이 광야 마을에서 작은 불을 지피기 시작해서,
동부 아프리카 케냐와 우간다, 소말리아와 소말릴란드, 중부 아프리카 부룬디와 르완다,
‘북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로 옮겨붙은 불은 오늘도 여전히 불타고 있다.
짠맛이 살아 있는 소금이 세상을 썩지 않게 만들 듯,
살아있는 숯이 성령의 불을 지피는 불쏘시개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은 2023년 현재 한인세계선교사회(KWMF) 회장 및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PCK) 회장인 이은용 선교사의 선교 열전이다. 그는 일찌감치 아프리카 선교의 비전을 품었고, 역시 초등학생 때 아프리카 선교의 비전을 품은 아내 홍영신 선교사를 만나 결혼하여, 큰딸이 두 살이 채 되기 전, 그리고 둘째 아기를 임신한 채 1991년에 아프리카로 갔다. 그의 네 딸 중 셋은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으며, 사위 넷 또한 모두 선교사의 자녀들이다.
케냐의 원주민 마을에서 생활한 저자는 가뭄과 기아와 전쟁으로 고난받아온 아프리카 사람들을 구호하는 사역에 힘썼으며, 물이 귀한 아프리카를 하루에 수십 킬로미터씩 걸어 다니며 마사이 오지의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그의 사역을 통해 마사이 마을들에 교회가 개척되었고, 목사가 된 현지인들을 훈련시켜 교회가 자립하게 도왔다. 특히 에티오피아 교회들이 연합하여 수만 명이 운집한 산상기도회를 여러 차례 열도록 함으로써 아프리카에 부흥의 불을 지피기도 하였다. 영화 ’모가디슈‘로 유명해진 소말리아가 전쟁 중일 때 직접 사역하였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르완다 난민촌에서 구호하는 NGO 사역도 하였다. 저자는 책의 제목 그대로, 마치 살아있는 숯 같은 선교사로서 아프리카에 성령의 불을 일으키는 불쏘시개처럼 살아온 것이다. 비록 고난과 고생이 점철된 세월이었지만, 그의 사역을 통해 케냐와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동북부 지역에 학교가 세워지고 교회들이 성장했으며, 현지인 스스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됐다.
저자가 자신을 ’살아있는 숯‘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한 것은 선교사로 파송받았을 때 그를 위해 기도하던 어느 가난한 여자 성도의 당부 때문이었다. 그를 위해 기도할 때 큰 산이 환상 중에 보였는데, 불이 붙은 숯이 산에 떨어지자 산 전체가 활활 타오르는 걸 보았다고 한다. 따라서 저자가 숯불 같은 선교사가 되어야 아프리카라는 큰 산에 성령의 불이 붙을 것이라는 예언적 당부였다. 저자는 그 당부를 평생 명심하고 기억하면서, 실제로 불타는 것처럼 뜨거운 아프리카 사막에서 복음을 전했다. 방학이면 온 가족이 전도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아프리카는 지역 특성상 어렵고 힘든 선교 지역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이 책은 독자가 잘 알지 못했던 아프리카 선교사의 삶과 아프리카 선교의 특징이 무엇인지 잘 보여줄 것이다. 아프리카와 같은 오지의 선교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실제적 교훈도 얻을 것이다. 또한 평생을 선교에 헌신하기 원하는 이들에게는 선교사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배우는 교과서가 될 것이다.


(서문) 들어가는 글 중에서
나는 1991년 9월 13일에 아프리카 케냐 선교사로 파송받았다. 지난 32년 동안 동부 아프리카의 케냐(Ke nya )와 우간다(Uganda), 소말리아(Somalia)와 소말릴란드(Somaliland), 중부 아프리카의 부룬디(Burundi)와 르완다(Rwanda), 북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Ethiopia)와 에리트레아(Eritrea)를 다니면서 선교사역을 했다. 케냐와 에
티오피아 사역에 주력했고, 우간다와 르완다에서는 현지인 지도자 양성을 위한 목회자훈련을 하였다. 소말리아 기근 현장과 르완다 종족 학살 전쟁 현장에서는 구호사역을 하였다. 부룬디와 에리트레아와 소말릴란드에는 몇 차례 전도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나의 제1기 선교사역은 1991년 9월 14일부터 1994년 7월 6일까지 남부 케냐 올도인뇨 광야에 위치한 응고일레(Ngoile) 마을과 렐레(Lele) 마을에서 진행되었다. 마사이(Maasai)가 사는 응고일레 마을에서는 9개월간 다국적 선교사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선교 현장에 적응하는 훈련을 겸하였다. 이 기간의 사역은 거창하게 설명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산자락에 붙어 있는 광야에 거주하는 인구 150여 명의 작은 마사이 부족에서 조용하게 진행한 사역이었다. 문명과 동떨어진 마사이 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전기 없이 사는 법, 물이 없는 광야에서 생존하는 법, 식품이 귀한 곳에서 극도로 절제하며 사는 법, 문화가 전혀 다른 마사이 사람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법, 그리고 여러 다른 국적의 사람들과 어우러져 공동생활하는 법을 배웠다.
이 기간에는 특히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길어와야 했다. 주중에 물 긷는 날을 정해, 멀리 떨어진 산자락의 수원지인 렐레 마을까지 50킬로미터를 운전해서 다녔다. 물을 긷던 어느 날, “너는 왜 렐레 마을에서 물을 길어 먹으며 생존하면서 ‘영원한 생명수의 근원이신 예수’를 전하지 않느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 말씀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1992년 6월에 렐레 오지 마을로 온 가족이 이주하여 마사이 부족에 대한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중략)
내가 아프리카 선교사로 파견된 지 13년이 지난 후에, 남부 에티오피아 암바리쵸(Ambaricho) 산에서 산상기도를 시작하였다. 약 6만 명의 검은 사람들이 산을 쌔까맣게 덮었다. 그들이 기도할 때, 그들에게 성령의 불이 붙어서 그들의 기도 소리가 천둥과 우레 치는 소리 같았다. 그때 나는, 13년 전에 이정숙 성도가 선교사로 떠나는 나를 위해 기도하다가 보았다는 환상이 생각났다.
서울역 근처 도동에서 극빈자로 살던 이정숙 성도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선교사로 헌신한 나를 위해 오랫동안 중보기도를 하신 분이다. 극도로 가난했던 시절에 대한민국의 성도들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교회에 가서 기도드렸는데, 이정숙 성도는 당시 집사셨던 나의 어머니(김신일 권사)와 중보기도를 하는 파트너였다. 그 분이 어느 날 철야 기도를 하던 중에, 나를 위한 중보기도를 하다가 이런 환상을 보았다고 말해주셨다.
“비몽사몽 간에 새까만 거산(巨山)을 보았는데, 자세히 보니 검은 숯으로 만들어진 산이었다. 어리둥절하여 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하늘에서 시뻘건 불덩어리가 날아오길래 쳐다보니 불이 붙은 숯불이었다. 이 살아있는 숯불이 까만 산의 중턱에 꽂히면서 순식간에 불이 붙어 거대한 산이 활활 타 올랐다. 그걸 보고 놀라서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그분이 나를 위해 기도하다가 본 이 환상을 내게 들려주시면서, 내게 신신당부하셨다.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거든 살아 있는 숯이 되어야 해, 살아 있는 숯이 되어야 해.”
이렇게 거듭 당부하시면서 내 손에 2천 원을 쥐어주셨다. 배급받은 쌀을 먹지 않고 아껴 모았다가 되팔은 돈이었다. 그 2천 원이 나의 아프리카 사역을 위한 쌈짓돈이 되었다.
나는 아프리카 선교사로 파송 받아 아프리카의 넓은 광야에서 정착해 살면서부터 영적 방화범(spiritual arsonist)이 되기를 자처했다. 특별히 남부 에티오피아의 11개 산에서 산상기도의 불을 지폈다. 이렇게 붙은 성령의 불은 남부 에티오피아 복음전도운동으로 이어졌다. 남부 에티오피아 교회의 리더인 인드리아스(Indrias) 목사와 같은 현지인 동역자들에 의하면, 산상기도를 시작한 2004년 이후 남부 월타이타 지방에 30만 명의 성도가 증가했다. 이정숙 성도가 기도 중에 본 환상 그대로, 살아 있는 숯처럼 선교 사역을 해온 결과 아프리카에 부흥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던 것이다.
이 책은 아프리카 땅에 붙은 성령의 불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32세 약관의 나이에 마사이 광야 마을에서 작은 불을 지피기 시작해서, 동부 아프리카 케냐와 우간다, 소말리아와 소말릴란드, 중부 아프리카 부룬디와 르완다, 북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로 옮겨 붙은 성령의 불은 오늘도 여전히 불타고 있다. 짠맛이 살아 있는 소금이 세상을 썩지 않게 만들 듯, 살아 있는 숯이 성령의 불을 지피는 불쏘시개가 되는 것이다.
나의 선교 사역을 담은 <살아 있는 숯이 불을 지핀다>라는 이 책이 소멸되고 있는 한국교회의 선교 열정에 다시 불을 지피는 작은 불씨가 되기를 기도한다.
20대에 네팔 언약학교 이사장이 된 한동대 출신 진실로의 ‘가치 교환’ 선교 모략

꽃잎 같은 나의 후배 청춘들이여,
기쁜 마음으로 초대한다.
“이 길로 오라!”

네팔 카트만두에서 십자가 정신으로 언약학교를 섬겨온 진실로 선교사의 교육 선교 철학과 ‘조기 이양’의 기록


이 책은 한동대학교를 졸업하고 27세에 네팔 선교사가 된 다음, 이듬해인 2006년부터 ‘언약학교’라는 유초중 학교의 이사장이 되어 사역해온 진실로 선교사의 열전이다. 아울러 선교 대상에게 사역의 권한을 일찌감치 이양하고 동역해온 ‘조기 선교 이양의 사례’이자, 제3세계 국가에 필요한 교육 선교의 철학까지 담은 특별한 책이다.
책의 제목 그대로 저자는 20대라는 청춘을 드려 선교사가 되었다. 가자마자 내전과 지진이라는 네팔 최근의 고난을 현지인과 함께 겪었다. 특히 그를 부른 전임 선교사, 즉 언약학교의 설립자가 곧바로 소천하자, 나이 서른도 되기 전에 학교 이사장이 되어야 했던 건 저자에게 큰 도전이자 시련이었다.
불편한 현지인 대표를 편한 사람으로 교체할 권한이 있었지만, 저자는 그를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서 2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일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교적 학교라는 설립 목적을 유지하고 계승시키기 위해 매일 교사 예배를 인도했으며, 오직 말씀 속에서 연약하고 배움이 느린 현지인 교사와 학생들을 섬길 방안을 연구하고 모색하였다. 세상적 방법으로 인재를 찾거나 외적인 변화를 꾀하기보다, 오로지 본질적인 선교를 추구하였다. 희생하고 섬기고 기다려주는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을 실천하려 힘썼다는 것이다. 그는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천국을 체험하며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청춘을 드려 천국을 산다”고 말하게 됐다.
청춘(靑春)은 청년을 푸른 봄에 비유한 말이다. 현대는 이 좋은 청춘이 지옥에서 힘들게 산다고 말한다. 현실이 어렵고, 꿈이 없고 미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청춘을 드릴 만큼 가치있는 삶의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면, 어떤 청년이라도 지옥이 아닌 천국을 소유할 만큼 삶이 변화될 수 있지 않을까?
진실로 선교사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밭에서 보물을 발견한 다음,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샀다는 예수님의 비유(마 13:44)의 주인공처럼 살았다. 이른바 청춘을 드려 천국이라는 최고의 가치를 소유한 인생이 된 것이다. 진 선교사의 책은 바로 그 가능성을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현실로 보여주는 증거이다.


[서문 들어가는 글 중에서]

선교사로서 나의 소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꽃잎 한 장만큼이라도 알아가는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더 알아갈 수 있을까?
그건 내가 예수님의 삶을 실제로 살아볼 때까지는 알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었다.
예수님처럼 철저히 무시당하고, 예수님처럼 완벽히 배제당할 때,
예수님의 옷자락 부근에나마 간신히, 가까스로 가닿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선교사가 되기 위해 배운 선교는 그저 헌신이고, 희생이고, 고생이었다. 그건 현실이었다.
그러나 내가 선교사가 되어서 막상 살아보니, 선교란 한편으로, 세상 무엇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세상 모든 것을 내게 다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그야말로 엄청난 보화를 얻는 삶이다.
내가 선교사로서 몇 명의 영혼을 살렸는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무한의 천국은 소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선교사는 이토록 큰 가치와 자기 인생을 교환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사람이다.
내가 이렇게 큰 이익을 보게 될 줄 미리 알고서 내 인생의 청춘부터 선교에 드렸던 건 솔직히 아니다.
예상은 어느 정도 했지만, 이렇게 좋을 줄은 미처 몰랐다.
선교는 가치 교환이다. 자기희생이 결코 아니다. 남아도 엄청나게 남는 장사다. 절대 손해 보지 않는다.
새롭게 피어난 꽃잎 같은 나의 후배 청춘들이여, 기쁜 마음으로 초대한다.
이 길로 오라!
내가 청춘을 드려 천국을 소유했듯,
그대도 청춘을 드려 세상 최고의 가치를 차지하라!

_네팔 카트만두에서, 진실로
40년간 동역자로서 태국 교회를 섬긴 팀사역의 개척자,
KWMA 사무총장 강대흥의 ‘포스트 크리스텐덤’ 선교 이야기

“선교사열전은 한국교회의 축복이다”
예수님이 보이신 섬김의 방법을 따라
건강한 동반자 선교의 모델을 세운 선교의 기록



[출판사의 책소개]
이 책은 현대의 선교사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며, 무슨 목적과 방향으로 어떻게 선교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과 같다.
저자 강대흥 선교사가 선교사와 선교 사역에 대해 실제적인 대안을 언급할 수 있는 배경은 그의 풍부한 현장 경험과 각종 단체를 섬긴 실무 경력이다. 저자는 만 33세 되던 해에 담임하던 교회의 사역을 내려놓고 선교사가 되기로 헌신하고 태국에 갔다. 선교사로서 그의 업적은 태국 교회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목회자훈련원을 실시한 일 등으로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다. 또한 만 33년간 선교사로 일한 다음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선교사들과 선교단체들을 돕고 새로운 선교전략을 모색하는 연합기관(한국세계선교협의회)의 사무총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선교사로 사역하는 동안 한인세계선교사회 회장을 역임했고, 한국 교단 중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총회세계선교회(GMS)의 사무총장으로도 일했다.
그런데 저자가 이 책에서 사실상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초점을 둔 부분은 개인적인 간증과 성과가 아니다. 오히려 두 명 이상, 심지어 17명의 선교사들까지 함께 동역한 이른바 ‘팀사역’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한국 선교사가 협력하지 못한다는 한국인 특유의 선입견을 거부한다. 열이면 열 명 다 독불장군 같다는 한국인의 특성은 한국 선교사들에게도 사실 있었는데, 그는 그런 모습이 선교에 도움이 되지 못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후배 선교사들과 함께 공동체처럼 한 집에서 살기도 하면서 서로 돕고 일과 재정을 나누기도 하였다. 팀의 선교사들이 선교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자녀들을 공동으로 양육하는 기숙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팀이 되어 선교하는 모델을 추구하고 시도한 것이다. 그 결과 사역을 마치고 은퇴할 무렵엔 복잡한 이양의 문제를 줄일 수 있었으며, 그가 팀으로서 해온 현장의 사역들이 수월하게 이어져가는 열매를 거두고 있다.
물론 저자는 자신을 중심으로 추구해온 팀사역이 100% 완벽했다고 말하진 않는다. 그의 구상과 이상에 못 미친 아쉬운 부분도 있고 앞으로 개선할 여지 또한 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하지만 팀사역 자체는 선교 현장에서 필수적이라는 점은 그의 기록을 통해 볼 때 분명해 보인다. 그는 자신이 팀을 이뤄 사역해온 선교사들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결론적으로 선교 현지에서 선교사들이 팀이 되어 사역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까지 경험을 정리해 안내하는 것으로 이 책을 마무리한다. 이 책이 선교사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한국 선교 전반에 대해 참고할 만한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또 다른 부분은 소위 제국주의적 선교로 치부돼온 ‘크리스텐점 선교’, 쉽게 말해 돈으로 하는 물량적 선교에서 벗어나 사람을 세우고 현지 교회 스스로 성장하도록 돕는 미래적 선교의 모델이다. 따라서 이 책은 한국교회가 선교의 본질을 바로 알고 바르게 후원하고자 할 때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다. 선교사가 되려는 지원자는 물론 선교를 담당하는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의 필독서인 것이다.


[서문 들어가는 글 중에서]
나는 20대 후반에 지역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어 5년간 목회하였다. 내가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여 태국에 처음 갔을 때 서른세 살이었다. 그때는 그저 열심히 충성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태국 목회자들이 나를 통해 은혜를 받고 교회들이 연합되고 부흥되는 것을 보면서, 내가 선교사가 된 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햇수로 37년간(1987년 11월 파송) 선교사로 살면서 큰 은혜의 삶을 누렸다. 태국 란따섬의 미전도종족인 바다 집시족에게 전도하여 교회를 세웠고, 그들이 자립하여 현지 교단에 가입도 하게 하였다. 초기 11년간은 태국의 목사들을 위한 ‘목회자훈련원’ 사역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 한국교회가 선교사들을 통해 복음화되는 과정에서 경험한 자립(自立), 자치(自治), 자전(自轉)의 방식으로 태국교회가 부흥하는 것을 보는 은혜를 누렸다. 태국기독교총회(CCT : Church of Christ in Thailand)와 협력하는 가운데, 현장 선교사들의 단체인 한국총회선교회(KGAM : Korea General Assembly Mission)를 만들어 17명의 선교사 가정과 ‘팀사역’으로 동역했던 것은 특히 보람있는 일이다.
한국 선교의 우선 과제는 선교지가 필요로 하는 전문인을 발굴하여 파송하는 것과, 이미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민(산업 노동자, 유학생, 다문화 가정, 난민)들 260만 명을 타문화권 선교 대상으로 여기고, 교회(성도)가 이들에게 선교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현장의 사역자들은 다양한 사역들을 선교지의 교회에 유익한 방향으로 해야 한다. 선교사 중심의 사역을 지양하고, 현지 교회(교단)가 원하는 쪽으로 사역의 방향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역을 종료할 무렵에 반드시 수행해야 할 이양(移讓)과 출구 전략의 문제, 그리고 은퇴 이후의 삶까지, 풀어야 할 과제도 생각해야 한다.
나는 선교의 모든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선교에 관한 여러 분야를 경험할 기회를 가졌을 뿐이다. 그 중에서 특별히 내가 조금이라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분야는 ‘팀사역’이다. 선교사들이 현장에서 제각각 독불장군이나 소외된 독립군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선배는 후배를 돌보고 이끌며, 후배는 선배의 도움을 통해 더 나은 사역을 해나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실행하는 것이다. 선교사로서 개인의 경험을 쓴 이 ‘선교사 열전’ 책에서 팀사역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한 것은 이 사역이 선교 현장에서 그만큼 중요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조수아 뭉흐
조수아 뭉흐 Joshua Munkh
몽골 울란바토르 소재 새생명교회의 담임목사. 1975년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공산주의 공무원인 아버지와 초원 출신의 불교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공산국가이던 몽골이 러시아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의 민주화 과정에서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92년, 거리에서 방황하던 10대 청소년이던 그는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보르항’(몽골어로 ‘하나님’)으로 믿었다. 서양 선교사가 세운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몽골인만의 교회를 시작했는데, 마침 몽골 선교사로 헌신해 미국에서 온 최순기 목사가 그들과 함께 새생명교회를 개척하였다.
뭉흐를 비롯한 최 선교사의 첫 제자 8명은 선교사님 집에서 가족처럼 먹고 자면서 제자훈련을 받았다. 최 선교사 부부는 아빠와 엄마가 됐고, 뭉흐와 제자들은 아들이 됐다. 새생명교회가 예배당이 없어 기관 건물을 빌리고 들판에서 기도하고 예배할 때도, 달동네와 시골 각지에 전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사역부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30년이 지난 현재 몽골 전역 21개 도의 절반이 넘는 지역에 다수의 교회를 개척했고, 유목민이 대부분인 몽골 사람 중에서 목회자를 양성하는 지도자 학교를 온라인과 각지의 게르 학교를 통해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2006년 3월 22일 평양을 방문중이던 최순기 선교사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백방으로 탄원하여 ‘아버지’의 시신을 평양에서 울란바토르로 모셔서 4월 5일 몽골 교회와 재몽골한인선교사회 공동으로 장례를 치를 때, 제자들은 최 선교사를 운구했고 뭉흐는 맏아들 역할을 맡아 영정을 받들었다.
Mere 선교센터 원장으로서 출판과 영상 미디어 사역, 온라인 큐티와 강해설교 등을 전하고 있다. 몽골목회자협회 회장을 역임했다(2012-2017). 몽골 지도자학교 원장, 국제제자훈련원 몽골과 중앙아시아(Global Disciple Training Center Mongolia and Central Asia) 원장이기도 하다. 2006년에 미국 성서장로신학교(Bible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했다(M.Div.). 2010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아내와 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
유튜브 @joshuamunkh7949
페이스북 joshua.munkh
이은용
케냐와 에티오피아를 중심으로 우간다, 소말리아, 소말릴란드, 부룬디, 르완다, 에리트레아 등 동북부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32년 넘게 복음을 전하며 부흥의 불을 지핀 ‘영적 방화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예장통합 총회 파송 케냐 선교사이다. 한인세계선교사회(KWMF) 사무총장을 역임했고, 2022년에 회장에 선출됐다. 그 의 평생 모토는 ‘선교 일념’이다.
1991년 30대 초반일 때, 둘째를 임신중이던 아내와 큰딸과 함께 케냐로 간 그는 물이 귀한 광야 마을에서 마사이 원주민과 함께 살았다. 교회를 개척하고 현지인 목회자를 세웠으며, 초등학교를 설립하였다. 자립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바나나 농사를 짓기도 했다. 소똥으로 집을 짓고 살던 마을에서 10명의 목회자가 배출됐으며, 초등학교 졸업생 중에서 부도지사, 교사, 목사, 공무원들이 다수 배출되었다.
“살아 있는 숯이라야 불을 잘 지필 수 있다”라는 중보기도자의 당부를 잊지 않은 그는 불붙은 숯처럼 뜨거운 선교사가 되어 한국교회가 경험한 부흥의 불의 역사를 아프리카에 옮겨 붙였다. 10만 명 이상이 운집한 암비라쵸 산상집회를 비롯해 에티오피아 남부에서 11개의 산상기도회를 시작했으며,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 가운데 이웃나라를 위해 헌신 선교사가 여럿 나왔다.그는 마사이와 함께 사는 중에도 꾸준히 부룬디와 르완다 같은 중부 아프리카의 최빈국 나라들을 방문하여 선교를 위한 조사활동을 했으며, 특히 소말리아가 내전과 기근으로 고통받을 때는 죽음을 무릅쓰고 현장을 방문해 식량 배급과 의료를 병행하는 구호사역을 펼쳤다. 르완다에서 발생한 종족집단 학살현장에도 그는 있었다. 3년 뒤 에티오피아로 사역지를 옮긴 그는 공식적으로 선교를 허용하지 않아 외국인 선교사가 희박했던 상황에서, 하루에 몇십 킬로미터씩 산길을 걸어 다니며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했다. 현지인 지도자 훈련과 산상기도운동과 새벽기도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 결과 남부 에티오피아 오파(Offa) 지방에 58개의 교회가 개척되었다. 지금은 케냐를 중심으로 아프리카 교회의 지도자들을 세우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4명의 딸들도 수차례 부모와 전도여행을 다녔으며, 모두 MK와 결혼하였다. 불신가정에서 태어난 홍영신 선교 사의 자매 4명도 다 목사와 결혼했으며, 그 중 3명이 선교사이다.
진실로
네팔 카트만두 소재 언약학교(Covenant School)의 이사장 겸 교사이다. 1978년생이며, 한동대학교를 졸업한 2004년에 26세 동갑인 아내 오시내와 결혼한 다음, 윤하영 선교사에 의해 2002년 설립된 언약학교에 2005년 GP선교회 소속 선교사로서 파송받았다. 네팔에 간 지 불과 두 달 뒤인 2006년 1월, 지병으로 미국에서 요양 중이던 설립이사장 윤 선교사가 소천했다. 28세에 불과했던 진실로는 고인의 유지와 선교회의 결정에 따라 이사장에 임명됐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관계에 어려움을 느낀 교직원을 초기에 교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현지인에게 학교 운영의 권한을 조기에 이양하고, 자신은 다윗을 도운 요나단처럼 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현재 유치, 초등, 중등 과정의 학생 300여 명이 다니고 있는 언약학교를 매일 드리는 교사예배의 설교와 말씀 묵상을 통해 섬기고 있다. 그곳에서 청춘을 다 드렸지만, 오히려 천국을 발견했다고 그는 고백한다. 언약학교가 기독교 학교로서의 정체성을 세워가고 100년을 이어가도록, 출신 배경이 연약한 교사와 학생들을 위한 교육 환경과 커리큘럼을 개발하기 위해 기도하고 연구해왔다.
진실로는 학교에서 컴퓨터를 가르치며, 오시내는 한국어 교사이다. 네팔에서 아들 이안, 이현, 딸 이나를 낳았다. 동생 부부와 어머니도 네팔에 와 있어서, 그의 가족 3대가 네팔에서 선교적으로 살고 있다. 빛소금교회 청년부 시절에 만나 동역자가 된 이양수 선교사와 그 남편 최재원 선교사 부부와 함께 ‘카페 보나체’라는 BAM 사역을 하고 있기도 하다.
2004년에 한동대학교 생명식품과학부를 졸업했다. 미국 칼빈대학(Calvin University) 교육학 석사(master of education, curriculum and instruction)이다. 카트만두대학교(Kathmandu University)에서 교육학 박사를 수료했으며, 퓰러신학교(Fuller Seminary)의 선교학 박사 과정 중이다.
이메일 s970532@gmail.com
강대흥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일꾼이 되었다”고 고백한 바울처럼, 선교사가 된 것이 사명이며 선물이라고 고백하는 한국 해외선교계의 일꾼이다. 어머니의 서원기도를 따라 20대에 목사가 되고 담임 목회를 시작하였다. 목회에 열매를 맺어가던 1987년 11월, 33세에 태국 선교사가 되어 2020년 은퇴할 때까지 33년간 동반자 선교와 팀사역에 매진하였다.
1987년, 지구촌선교회(KGM) 6호 선교사로 파송받아 태국의 한인 교회를 목회한 저자는 2년 뒤 총회세계선교회의 100호 파송 선교사가 되어 태국 교회의 부흥과 자립을 돕는 ‘목회자훈련원’과 ‘평신도선교학교’, ‘미션퍼스펙티브’, ‘교회개척학교’ 등의 사역을 펼쳤다. 1989년에는 현지에 선교사들의 선교 공동체인 한국총회선교회(KGAM)를 세워 수많은 사역을 팀으로서 감당할 수 있었다.
한인세계선교사회(KWMF) 사무총장과 회장을 역임했으며, 2006년에는 한국 교단 중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총회세계선교회(GMS)의 사무총장이 되어 수년간 한국교회의 선교 정서를 이해할 수 있었다. 2021년 국내 선교단체들의 협력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의 사무총장에 선출돼 한국 선교의 미래가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2023년엔 선교의 전략을 토론하는 세계선교전략회의(NCOWE)의 8차 대회를 주관하기도 했으며, 선교 전략을 토론하는 방콕포럼을 주관하고 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73회 원우회장)하고 영국 에딘버러대학에서 선교학 석사를, 미국의 리폼드 신학교에서 선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의정부광명교회(최남수 목사) 파송 선교사이며, GMS 자문위원회 부회장, KWMA 사무총장으로 섬기고 있다. 가족으로는 동역자인 황정신 선교사 사이에 목회자가 된 아들 모세 목사와 딸 사랑 목사가 있다.
이민교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에게 불교를 전하던 그는 오히려 한센인들의 사랑과 전도를 받고 성령을 체험하면서 목사가 되었다. 자신이 ‘복음에 빚진 사람’임을 고백하며, 약사로 일하던 아내와 두 자녀 함께 우즈베키스탄으로 가서 축구를 통해 농아교회를 개척했다. 911 사태 이후엔 카자흐스탄에서도 국가대표 농아축구팀 감독으로 아시안게임 4회, 올림픽 2회, 월드컵 1회 출전했다. 현재 GP 사역자로, 북조선 농아축구팀 감독으로, 사단법인 Global Blessing 대표로 장애인을 섬기는 사역을 하고 있다. <복음에 빚진 사람>, <하나님이 보낸 사람>, <더하기 십자가 곱하기 십자가>, <통일 연습>, <미스터 미션, 조동진> 등을 집필했다.
시리즈 소개 | 세트 | 세트낱권구성
이민교 / 사도행전
가격: 16,000원→14,400원
이민교 / 사도행전
가격: 20,000원→18,000원
조수아 뭉흐 / 사도행전
가격: 17,000원→15,300원
이은용 / 사도행전
가격: 17,000원→15,300원
진실로 / 사도행전
가격: 17,000원→15,300원
강대흥 / 사도행전
가격: 16,000원→14,4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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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복음에 빚진 선교사 열전 세트(전6권)
저자조수아 뭉흐,이은용,진실로,강대흥,이민교
출판사사도행전
크기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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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202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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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조수아 뭉흐) 신간 메일링   저자(이은용) 신간 메일링   저자(진실로) 신간 메일링   저자(강대흥) 신간 메일링   저자(이민교) 신간 메일링   출판사(사도행전) 신간 메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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