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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 출판사 자끄엘륄총서 세트 (전3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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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유일한 해결책인가?

우리는 모든 것이 기술을 향하는 사회, 그리고 기술이 전체를 움직이는 사회에 산다!
앞으로 도래할 문제들은 이전 시대의 문제들보다 더 어렵고, 폭넓고, 복잡할 것이다.


이 책은 ‘허세’의 문제를 겨냥한다. 사람들은 기술의 효력과 가능성은 100배로 부풀리고, 부정 측면은 애당초 은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허세는 이미 엄청난 결과를 야기했다. 예컨대, 기술담론의 허세는 기술의 자리를 ‘함축과 비밀의 합리성’에서 ‘명시와 폭로의 합리성’으로 바꾼다. 동시에 기술담론의 허세는 인간을 오락과 환상의 세계에 젖어 살도록 유인한다. 오락과 환상의 세계란 10여 년 전에 우리가 “구경거리 사회(la societe du spectacle)”라 불렀던 것보다 기술 현상을 더욱 맹목적이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세계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이 허세는 일종의 ‘인간 길들이기’ 현상을 낳는다. 즉, 과거에 기술에 대해 보였던 인간의 유보적 태도나 우려를 모조리 불식시키고, 그저 재미와 착각의 세계에 빠져 살도록 한다.
<서론> 중에서

자끄 엘륄의 기술 3부작

이 책은 기술의 사회 변화 문제를 연구한 『기술, 시대의 쟁점』(1954), 『기술 체계』(1977)와 더불어 자끄 엘륄의 ‘기술 3부작’을 이룬다. “기술에 관한 담론”이라는 저자 고유의 이해를 담은 용어인 “테크놀로지”(Technologie)에 붙은 각종 허세를 들추고 거품을 빼는 데 집중한다.
34번째 자끄엘륄총서

기술의 성장이 부추긴 새로운 종교에 대하여


신앙과 소망은 기독교인이 기술사회에서 계속해서 살 수 있도록 하면서, 각종 신화들(성장, 진보, 직업적 성공, 돈, 정치, 혁명, 스포츠, 여가, 미디어, 정보과학)을 우상화하는 것을 멈추게 해준다. 이러한 기술 사회의 새로운 신화는 이미 우상이 되어 교회와 기독교인들 속에 똬리를 틀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된 사람은 기술사회가 제공하는 모든 것을 사용할 수 있지만, 비판적 거리를 두면서 그것에 매료당하거나 종속되지 않는다. 새로운 악령(신화/귀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모든 비판적 기능을 스스로 저당잡힌 채 살아가는 숭배자들이다.

제도 기독교는 노예제도 억제, 약자의 보호, 평화를 위한 개입, 사법질서의 확립 등 기독교 신앙을 집단적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체제였다. 이를 위해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손을 기꺼이 더럽혔으며 그 결과 기독교는 모든 문제에 답하는 “사회도덕”을 이루어 내었다. 또한 그것으로 사회에 기독교 신앙을 뿌리를 내리게 하며 사회를 변화시켰다. 기독교는 이렇게 이데올로기, 집단적 전제, 공통적 명백성이 되었다. 모두가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계시가 그들 가운데 있느냐의 여부가 관건이다. 그들은 모두 의심을 통과한 믿음의 소유자들인가?

의심을 거치지 않은 믿음으로는 새로운 신화를 벗어날 수 없다.
이 책에서 그는 다른 곳에서 했던 것처럼 현대성을 명확하게 고발하고 있으며,
특히 현대 사회와 정치의 본질적인 종교적 특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 책은 『의심을 거친 믿음』과 짝을 이루고 있다.
33번째 자끄엘륄총서

생전 미간행 원고였던 이 책은 자끄 엘륄의 고전 『원함과 행함』의 2부에 해당한다.
엘륄은 칼 바르트, 바르트주의자들, 루터, 칼뱅, 라인홀드 니버, 폴 리쾨르와 비판적 대화를 이어가며, 자신의 윤리 사상을 다방향으로 전개한다. 예컨대,
교의학과 윤리학의 관계, 대답을 주는 책이 아닌 질문을 던지는 책으로서의 성서 이해, 성서 읽기의 관문으로서의 ‘신앙 유비’,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대한 변증법적 접근, 의무와 처벌 없는 윤리, 윤리에서의 사랑의 지위, 오랜 관계와 짧은 관계의 관련성 등을 논한다.
늘 그랬듯 독설과 자극을 동시에 선사한 그의 이러한 사상 전개는 지금껏 자끄 엘륄의 것으로 알려진 작업에 풍성한 내용을 추가한다. 언제나 기독교 윤리의 생명샘으로 여겼던 성서 말씀과 그의 작업이 맺어온 독창적인 관계가 새롭게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새로운 사항들을 제공한다.
·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대한 변증법적 접근.
· 의무나 제약이 없는 윤리의 주장.
· 윤리를 수립하기 위한 성서 본문들의 해석도구로서 ‘믿음의 유비’를 제시.
· 다른 걸출한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에 대한 비판:
- 장기적 관계와 단기적 관계의 관계에 대해서는 폴 리쾨르
-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대해서는 루터와 칼뱅
- 윤리에서 사랑의 위상에 대해서는 라인홀드 니버
- 결의론, 순응주의, 교리와 윤리의 관계, 그리스도인과 국가와의 관계, 존재의 유비 등에 대해서는 칼 바르트와 바르트주의자들
25,000 → 22,500원 (10.0%↓) 무료배송 상품입니다.소득공제도서정가제1,250
31번째 자끄엘륄총서

우리 각자에게는 저마다의 ‘원함’과 ‘행함’이 있다.

... 반란이 목전에 있다. 만일 현 세계와 시대에 최후의 탈출구가 존재한다면, 우리에게 여전히 존재하는 반란의 정서가 그에 해당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유기적으로 얽힌다. 그리고 점차 폐쇄적으로 바뀐다. 만인을 위해 규정되고, 미래에 대한 예측을 가능케 하는 참살이를 누리는 각자의 삶은 반란의 정서에서 차츰 멀어진다.
...오늘날 혁명은 반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졌다. 이는 기술 사회라는 사태 자체와 맞물린다. 이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은 실질적 법칙을 제작했다. ‘사회가 기술 사회를 지향할수록, 그 사회는 인간성을 지탱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인간의 변혁 의지나 혁명적 경향을 부르는 사회, 기술 사회에 대한 거부감을 낳는 사회가 된다. 그러나 동시에 기술 사회를 지향할수록, 그 사회는 혁명을 불가능하게 하며, 모든 혁명적 현실성을 차단한다. 마치 피스톤, 실린더, 가스가 마찰을 일으키는 증기기관의 이음새를 제대로 조이지 않아 수증기가 새는 것처럼, 기술 사회와 혁명 간의 모순은 다양한 형태의 반란으로 귀결된다.


“그는 진정한 사상가이다” _ Royaliste
“그는 통찰력을 가지고 이미 거의 모든 것을 예측했다” _ Reforme
“그의 글은 불쾌하게 남지만, 선지자적 목소리는 여전히 공명한다” _ La Croix

오늘날 자끄 엘륄을 읽는다는 말은 각자의 삶과 행동의 원천을 발견하고, 방향을 바꿔 또 다른 희망을 찾아 나서고, 협잡(挾雜)의 가면을 벗기는 투쟁을 수용한다는 말과 같다. 그것은 “구글(Google)이 짜 놓은 세상을 단념”할 수 있는 위험까지도 감수하는 삶의 수용일 것이다.
- 프레데릭 호뇽 교수 _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대학교 개신교 신학대학


[자끄 엘륄의 서론]

이 책은 반란과 혁명에 관해 분석했던 『혁명의 해부』(Autopsie de la revolution)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러나 『혁명의 해부』에서 분석했던 개념들로 회귀하지 않을 것이다.
『혁명의 해부』에서 나는 반란과 혁명을 둘러 싼 무수한 오해를 짚었고, 상대적으로 둘의 차이가 단순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반란과 혁명의 관계도 제시했고, ‘혁명’과 혁명 운동이 전개되는 ‘사회’의 개념 자체에 존재하는 관계도 다뤘다. 다양한 사회에서 벌어지는 혁명은 그 내용, 과정, 조건, 대상, 심지어 개념까지도 모두 상이하다. 우리가 포괄적으로 혁명이라 부르는 것과 사회에 부여된 유형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 아닌 한 가지 유형론에서 시작할 때, 결과적으로 혁명의 사회학은 불가능할 것이다. 어떤 혁명도 결코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못했다. 혁명의 정의나 혁명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스파르타쿠스, 스텐카 라친, 크롬웰의 혁명에서 도출된 자료들을 누적할 필요는 없다. 또한 ‘혁명은 특정 사회에서 벌어진 특수 현상’이라는 일종의 공통체(共通體)를 만들 필요도 없다. 결국 『혁명의 해부』 결론부에서 나는 과연 무엇이 ‘현재’ 우리 사회, 즉 기술과 국가로 구현된 사회에 부합하는 혁명일 수 있는지를 말하려 했다. 그 점에서, 혁명 사회에 속하는 [파리] 코뮌이나 1917년에 대한 명상은 별 소용없다. 혁명이 존재해야 한다면, 반드시 ‘이 시대’를 위한 혁명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분석이었다. 더불어 나는 이러한 혁명이 과연 구체적으로 가능한지를 자문하면서, 이 책 『혁명에서 반란으로』를 시작하려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난제와 갈등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이 사회를 위해 필요한 혁명, 유일무이한 혁명과 맞물릴 수 있는가? 아니면 이 사회가 이미 누적한 각종 성향들을 확인하는데 그치는 다소 지체된 운동들에 불과한가?
우리가 탐구했던 “혁명의 시기”마다, 혁명의 거대한 물줄기도 예외 없이 장기간 그 흐름을 타다가 결국 시들해졌다. 혁명의 물줄기를 태동시킨 상황이 좌절되었을 때, 그 흐름을 야기했던 문제가 사라졌을 때, 어김없이 혁명의 조류는 사라졌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자문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서구에서 혁명은 여전히 가능한가? 과연 이 세계의 상황이 혁명을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인가?


*자끄엘륄총서*

1.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박동열 옮김
2. 뒤틀려진 기독교 박동열/이상민 옮김
3. 하나님이냐 돈이냐 양명수 옮김
4. 잊혀진 소망 이상민 옮김
5. 이슬람과 기독교 이상민 옮김
6. 하나님은 불의한가? 이상민 옮김
7.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김재현/신광은 옮김
8. 요나의 심판과 구원 신기호 옮김
9.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김은경 옮김
10. 무정부주의와 기독교 이창헌 옮김
11.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 곽노경 옮김
12. 정치적 착각 하태환 옮김
13. 인간을 위한 혁명 하태환 옮김
14. 폭력에 맞서 이창헌 옮김
15. 선전 하태환 옮김
16. 하나님의 정치와 인간의 정치 김은경 옮김
17. 혁명의 해부 황종대 옮김
18. 의심을 거친 믿음 임형권 옮김
19. 머리 둘 곳 없던 예수 황종대 옮김
20. 기술체계 이상민 옮김
21. 자연법의 신학적 의미 강만원 옮김
22. 마르크스 사상 안성헌 옮김
23. 무의미의 제국 하태환 옮김
24. 굴욕당한 말 박동열/이상민 옮김
25. 마르크스의 후계자 안성헌 옮김
26. 우리의 기도 김치수 옮김
27. 개인과 역사와 하나님 김치수 옮김
28. 존재의 이유 김치수 옮김
29, 자유의 윤리1, 김치수 옮김
30. 원함과 행함, 김치수 옮김
31. 혁명에서 반란으로, 안성현 옮김
32. 자유의 윤리 2, 김치수 옮김
25,000 → 22,500원 (10.0%↓) 무료배송 상품입니다.소득공제도서정가제1,250
32번째 자끄엘륄총서

자끄 엘륄에게 자유는 덕목이 아니고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이다.

『자유의 윤리 1』은 그 목적이 자유의 범위를 파악하고 신앙의 신학적 기초들과의 연관성을 수립하는 것에 있었다면, 『자유의 윤리 2』는 ‘이탈적 자유’, 즉 개인이 자기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에 대항하는 자유를 다룬다.또다시 우리는 저자의 사회학적 분석의 통찰력과 비순응주의적인 냉철한 정신과 성서적 주석의 견고성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

『자유의 윤리 2』의 독창성은 무엇보다 그 다양하고 심층적인 관점들에 있다. 엘륄은 자유의 율법에 대한 정의를 내린 뒤에, 자유에 관해 무용성, 일시성, 상대성의 다른 측면들을 기술한다. 엘륄은 “대장부가 되어라! 이 시대를 본받지 말라!”라는 성서적 권면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미하는 바를 명확하게 밝혀주면서, 행위와 행위들, 참여와 이탈 등의 변증법을 파헤친다. 특히 저자는 자유롭게 된 그리스도인을 욕심 없는 인간으로 상정하고, 그런 관점에서 무상성, 가용성, 봉헌, 좌절의 극복, 자발성, 창의성, 기쁨, 순종, 책임 등에 대한 논의를 이어간다. 그리고 그 모든 논의는 인간의 위선에 대해 단호히 규명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책에서 현시대의 혼란상 가운데 윤리적으로 정립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삶과 행동의 본질적인 문제들에 관한 성찰을 돕고 일깨우는 정말 흥미롭고 유익한 점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특히 자끄 엘륄은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명철하게 성서를 주해하면서, 자신의 성찰의 원천을 성서 속에서 찾는다. 또한 시대를 앞선 선각자인 저자는 열정적으로 자신이 성찰한 바를 개진했고, 그가 연구한 결과물들은 환경 파괴에 대응하는 방식에 관한 현재의 논의들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 프레데릭 호뇽 _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대학교 개신교 신학대학


*자끄엘륄총서*

1.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박동열 옮김
2. 뒤틀려진 기독교 박동열/이상민 옮김
3. 하나님이냐 돈이냐 양명수 옮김
4. 잊혀진 소망 이상민 옮김
5. 이슬람과 기독교 이상민 옮김
6. 하나님은 불의한가? 이상민 옮김
7.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김재현/신광은 옮김
8. 요나의 심판과 구원 신기호 옮김
9.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김은경 옮김
10. 무정부주의와 기독교 이창헌 옮김
11.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 곽노경 옮김
12. 정치적 착각 하태환 옮김
13. 인간을 위한 혁명 하태환 옮김
14. 폭력에 맞서 이창헌 옮김
15. 선전 하태환 옮김
16. 하나님의 정치와 인간의 정치 김은경 옮김
17. 혁명의 해부 황종대 옮김
18. 의심을 거친 믿음 임형권 옮김
19. 머리 둘 곳 없던 예수 황종대 옮김
20. 기술체계 이상민 옮김
21. 자연법의 신학적 의미 강만원 옮김
22. 마르크스 사상 안성헌 옮김
23. 무의미의 제국 하태환 옮김
24. 굴욕당한 말 박동열/이상민 옮김
25. 마르크스의 후계자 안성헌 옮김
26. 우리의 기도 김치수 옮김
27. 개인과 역사와 하나님 김치수 옮김
28. 존재의 이유 김치수 옮김
29, 자유의 윤리1, 김치수 옮김
30. 원함과 행함, 김치수 옮김
31. 혁명에서 반란으로, 안성현 옮김
32. 자유의 윤리 2, 김치수 옮김


[역자 서문]

우리는 살아가면서 문득문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문하게 되곤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질문의 무게는 더더욱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특히 매일같이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도덕적이거나신학적인 처방이 아닌, 구체적인 실존의 삶에 대한 방안은 절실한 필요성을 띤다. 기독교 신앙을 표명하는 순간, 지식인 사회에서 비주류로 낙인찍히다시피 하는 프랑스 지성계에서 자끄 엘륄은 기독교 지식인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 답하는 것이 시간을 다투는 긴급성을 지닌 자신의소명임을 받아들인다. 1권에서 3권까지 시리즈로 출간된 그의 저서 『자유의 윤리』 삼부작은 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전편에 해당하는 『자유의 윤리 1』은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소외 문제를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하면서, 그 문제에 대한실존적인 방안으로 ‘자유의 윤리’를 제시한다. 여기서 자유는 철학이나 인간본성에연유한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자유와는 구별되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로서 정의된다. 이어서 저자 엘륄은 이‘자유의 윤리’가 계시에 근거하기에 가지는 그 구체적인 범위와 대상을 기술하고, 이 자유를 수용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역설한다.

이 책 『자유의 윤리 2』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는 무엇보다 개인적인 것으로 규정된다. 모든 다른 윤리들과 달리,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의 윤리는 아무도 심지어 하나님조차 개개인을 대신해서 결정할 수 없고, 개개인이 책임을 지면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다. 저자 엘륄은 무용성, 일시성, 상대성의 세 가지 범주들을 기준으로 개인의 행위가 자유에 기인한 것인지 아닌지 그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그는 이 자유를 개인의 ‘이탈적 자유’로 규정한다. ‘이탈적 자유’는 프랑스어 단어 ‘la libert<- d<-gag<-e’를옮긴 것이다. 이는 인간사회와 역사의 필연성의 굴레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자유를 누리는 그리스도인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구체적으로경험하는 자유를 뜻한다.

이 개인적인 차원의 이탈적 자유는 당연히 사회적 차원의 ‘관여적 자유’로 연결된다. 이 ‘관여적자유’는 프랑스어로는 ‘la libert<- impliqu<-e’로서 ‘참여적 자유’와는 약간 구분되어 사용된다. 이에 대해 저자 엘륄은 ‘참여적’(engag<-)이라는 말 대신에 ‘관여적’(impliqu<-)이라는 말을 사용한 이유를 후속작인 『자유의 투쟁』(부제: 자유의 윤리 3)의 ‘서문’에서 설명한다. 먼저 그는 인간이 주어진 상황으로서 이 세상과 이 사회에 속하게 된 것이지 인간 자신의 의지적이고 능동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의지적인 뉘앙스가 강한 ‘참여’를 피하고 ‘관여’를 썼다고 한다. 또한 그는 사회적 상황과 관계는 주어진 것이지만 거기서 그리스도인이 참여하는 행위는 의지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진다고 덧붙인다. 그런 맥락에서 여기서 ‘관여적 자유’라는 말은 인간이 주어진 사회적 상황과관계 속에 수동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가운데 자신의 의지를 따라 능동적으로 선택적인참여를 하는 자유라는 의미를 띤다. 저자 엘륄은 『자유의 윤리 2』에서 ‘이탈적자유’를 주된 논지로 펼친다면, ‘자유의 윤리 3’에 해당하는 『자유의 투쟁』에서이 ‘관여적 자유’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저자 엘륄은 긴급성을 넘어 위급함을 느끼면서 『자유의 윤리』 삼부작을 완성했다. 그만큼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기술-선전-국가-행정-계획화-이데올로기-도시화-인격화’의 메커니즘들로 기술체계가 시간이 갈수록 더 심화되어서,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여지가 완전히 사라지고, 인간의 소외현상이 보편화되는 상황을 우려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현대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의소명은 종말론적 소망 가운데 그리스도의 자유를 구체적으로 삶속에서 실천하는 것임을 밝혀준다.
이 책은 우리 마음속에서 스스로 던지게 되는 질문,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다시 돌아보게한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사회현실을또 다른 시각으로바라보게 한다. 역자로서 이 책을 통해서우리 각자가 현대사회 속에서 자신의 소명에 관한 진지한 성찰을 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 치 수
12,000 → 10,800원 (10.0%↓) 소득공제도서정가제600
가난한 자를 비추는 심오하고 기본적인 복음의 진리를 왜곡하여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지 마라!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세상의 방법은
어떻게 하면 경제체제를 고쳐서 가난한 자를 부자로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가난한 자에게 좀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지만,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그리스도인의 방법은
어떻게 하면 가난하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를 것이며,
어떻게 하면 가난한 자의 대열에 직접 참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돈의 권세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사회생활로부터 도피하는 은신생활이 아니며
부자가 되어 돈의 권세를 장악하는 길도 아니다.

돈의 권세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매매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도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거저 주는 삶을 실천하는 길이다. -책속에서-

'하나님이냐? 돈이냐?' 하나님께서 돈(물질)의 축복을 구하는 이들에게 매우 급진적으로 도전하는 이 책은, 돈을 지폐나 동전 등 눈에 보이는 돈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도움을 원하듯 돈에게 '도움(구입능력)'을 원하게 되는 우리 현실을 꼬집는다. 돈으로 의식주는 물론 건강 등 노후보장까지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돈은 이미 하나님이다. 그러나 성경이 보여주듯 그리스도인은 도 주인(내지는 두 경향성)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 '하나님도, 돈도'가 아니라 '하나님이냐? 돈이냐?' 를 물으며, 둘 가운데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실존적 결단을 요구하는 책.
-월간 새가정 2월호에서 발취-


*자끄엘륄총서*

1.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박동열 옮김
2. 뒤틀려진 기독교, 박동열/이상민 옮김
3. 하나님이냐 돈이냐, 양명수 옮김
4. 잊혀진 소망, 이상민 옮김
5. 이슬람과 기독교, 이상민 옮김
6. 하나님은 불의한가?, 이상민 옮김
7.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김재현/신광은 옮김
8. 요나의 심판과 구원, 신기호 옮김
9.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김은경 옮김
10. 무정부주의와 기독교, 이창헌 옮김
11.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 곽노경 옮김
12. 정치적 착각, 하태환 옮김
13. 인간을 위한 혁명, 하태환 옮김
14. 폭력에 맞서, 이창헌 옮김
15. 선전, 하태환 옮김
16. 하나님의 정치와 인간의 정치, 김은경 옮김
17. 혁명의 해부, 황종대 옮김
18. 의심을 거친 믿음, 임형권 옮김
19. 머리 둘 곳 없던 예수, 황종대 옮김
20. 기술체계, 이상민 옮김
21. 자연법의 신학적 의미, 강만원 옮김
22. 마르크스 사상, 안성헌 옮김
23. 무의미의 제국, 하태환 옮김
24. 굴욕당한 말, 박동열/이상민 옮김
25. 마르크스의 후계자, 안성헌 옮김
26. 우리의 기도 김치수, 옮김
27. 개인과 역사와 하나님, 김치수 옮김
28. 존재의 이유, 김치수 옮김
29. 자유의 윤리1, 김치수 옮김
30. 원함과 행함, 김치수 옮김
30번째 자끄엘륄 총서
기독교윤리에 대한 신학적 비판

기독교 윤리가 수립될수 있는 가능성,
기독교 윤리가 수립되어야 할 필요성,
기독교 윤리가 수립되어서는 안 되는 불가능성을
치밀하고도 일관적으로 가장 훌륭하게 기술한 책. - 프레데릭 호뇽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현재적 명령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말은 너무 쉬운 말이다. 그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을 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 하나님이 침묵할 때는 어떻게 하는가? 우리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의미가 없고 하나님은 너무나 멀리 있는 것 같은 그 냉담하고 메마른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하늘에 있고 나는 땅위에 있다는 진리의 한 측면만을 절감하고 있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 그것 때문에 그리스도인이기를 그만두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멈춰야 하는가? 아예 살아가는 것 자체를 멈춰야 하는가? 물론 그런 상황 속에서도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그래서 이웃과 교회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동일한 은혜를 증언하는 이웃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동일한 진리를 증언하는 교회가 있어야 한다. 영적인 조력과 신앙의 고백이 필요한 것이다. 거기에 또한 하나님이 개입하여 역사할 것이다. 그러나 삶의 방식에 관해서, 내려야 할 결정들에 관해서는 어떻게 하는가? 그 결정들이 신앙적으로 결정해야 될 사항들일지라도 말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교회가 제시하는 윤리가 담당할 몫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실천하는 도덕이 도움을 주고, 하나의 본보기이자 길을 제시해줄 것이다. 하나님의 부재와 신앙적인 회의가 감도는 시기에는 그 도덕을 그냥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리는 일종의 보완적인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결코 그 역할을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전하는 진리가 다시 신자에게 임했을 때, 결코 간섭하려고 하지 말아야 하고, 살아있는 말씀과 경쟁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저자 서문]
패를 숨김없이 다 내보여야 한다. 도덕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지적으로나인격적으로나 겸허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약간의 기만이라도 있으면 글의 신뢰성은 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의 의미를 찾는 연구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를 연구하는것이기에 단순히 지적인 이론을 수립하는 것으로 끝날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서 전제 설정이 없이 도덕을 연구한다는 구실을 내세우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우리는 전제의 설정이 없는 연구가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전제 설정이 없다며 무지나 거짓에 불과한 주장을 펼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명확하게 전제를 설정하고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이 더 낫다.
스탕달은 “나는 여기서 가면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 자신의 삶을 엮는 아주 은밀한 실타래와 같은 삶의 행적에 관해 사실대로 진실하게 쓰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동일한 말을 할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가면을 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원에 그쳐야 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맨얼굴로 솔직하게 기술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고백하고자 한다. 이 연구에서 내 사상의 기준과 내용은 성서 계시이다. 그 출발점은 성서의 계시로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방법은 변증법으로서 성서 계시는 이변증법을 통해서 우리에게 임한다. 이 연구의 목적은 윤리에 관해서 성서의 계시가 전하는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명확한 전제가 있다고 해서 이 책이 오로지 그리스도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역으로 나는 이 책의 아주 중요한 가치는 상반된시각들이 서로 맞부딪치는 데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책은그리스도인의 고유한 관심사와도 관계가 없다. 퇴폐적인 서구 문명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자신의 삶의 규범에 관해 스스로 자문하게 된다. 더구나 성서 계시는 좁은 범위의 선택된 사람들에게 한정되는것이 아니다. 성서 계시는 먼저 타인들에 관해 얘기한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삶과 도덕에 관해 얘기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가진 애초의 선입견을 분명히 밝혔고, 어떤 오해도 있을 수 없도록 내가취한 입장도 정확하게 규명하였다. 그런데 아직 내게 할 말이 하나 남아 있다. 그것은 내가 이 책을 쓸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전문적인 신학자도 철학자도 아니다. 철학이 우리 시대에는 하나의 전문기술이 된 탓에, 나는 전문가로서 하등의 자격도 없다. 대학 과정에서 체계적인 단계를 밟지 않았다면,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나는 사람답게 되려고 노력하면서, 이 시대에 충실히 살아가려고 한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의 불안을 느낀다. 체계도 규범도 없는 사회 속에서 나는 우리의 공통된 방임적 태도를 인지하고 있다. 나의 일은 깊이 성찰하는 것이다. 나는 다만 한 인간으로서 내가 맡은 일을 하고자 했다. 나는 전문가들이 수없이 연구한 수많은 문제와 마주칠 것이다. 그 문제들에 대해 나는 무자격자의 독창적인 시각과 순수함으로 접근할 것이다. 나는 윤리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일을 삼갈 것이다. 독자들은 현존하는 수천 가지 정의 중에서 한 가지를 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정의는 각기 타당한 측면이 부분적으로 있다. 그러나 단지 부분적으로만 타당할 뿐이다. 전문가들은 한번 어깨를 으쓱하며 내 말을 무시하고 말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 한사람쯤은 귀를 기울이리라.

*자끄엘륄총서*
1.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박동열 옮김
2. 뒤틀려진 기독교, 박동열/이상민 옮김
3. 하나님이냐 돈이냐, 양명수 옮김
4. 잊혀진 소망, 이상민 옮김
5. 이슬람과 기독교, 이상민 옮김
6. 하나님은 불의한가?, 이상민 옮김
7.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김재현/신광은 옮김
8. 요나의 심판과 구원, 신기호 옮김
9.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김은경 옮김
10. 무정부주의와 기독교, 이창헌 옮김
11.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 곽노경 옮김
12. 정치적 착각, 하태환 옮김
13. 인간을 위한 혁명, 하태환 옮김
14. 폭력에 맞서, 이창헌 옮김
15. 선전, 하태환 옮김
16. 하나님의 정치와 인간의 정치, 김은경 옮김
17. 혁명의 해부, 황종대 옮김
18. 의심을 거친 믿음, 임형권 옮김
19. 머리 둘 곳 없던 예수, 황종대 옮김
20. 기술체계, 이상민 옮김
21. 자연법의 신학적 의미, 강만원 옮김
22. 마르크스 사상, 안성헌 옮김
23. 무의미의 제국, 하태환 옮김
24. 굴욕당한 말, 박동열/이상민 옮김
25. 마르크스의 후계자, 안성헌 옮김
26. 우리의 기도 김치수, 옮김
27. 개인과 역사와 하나님, 김치수 옮김
28. 존재의 이유, 김치수 옮김
29. 자유의 윤리1, 김치수 옮김
30. 원함과 행함, 김치수 옮김
29번째 자끄엘륄총서
현대의 인간 소외와 그리스도의 자유

가장 발달된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소외되어 있다.… 소외의 중요한 현상이 이제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아니다. 물론 그런 착취 현상은 제3세계 국가들에서는 언제나 상존하고 부분적으로 서구사회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더 이상 확고한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다. 인간의 적은 다른 계급에 속하는 인간이 아니고, 그 계급에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된 구조도 아니다. 인간의 적은 이름 없는 복합성을 지닌 일체의 메커니즘들이다. 그것은 ‘기술-선전-국가-행정-계획화-이데올로기-도시화-인격화’의 기술들이다. 인간은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그런 복합체들 속에 끼어있다.

자유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바로 이 소외된 인간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현대사회의 상황 속에서 자유의 윤리를 성찰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언자들과 사도들이 노예적 예속상태를 비판한 것은 그들이 살던 사회의 상황에 대한 것이었던 점과 같은 맥락이다. 오늘날 우리는 ‘소외된 인간’이라는 말을 ‘노예’라는 말과 겹쳐서 쓸 수는 없다. 왜냐하면 ‘소외된 인간’이라는 말은 ‘노예’라는 말과 결코 동일하지 않은 깊은 내용과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외와 관련지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의 의미를 성찰하고 취할 행동이 무엇인지 탐구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에 자유가 유입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내세우고 그리스도의 자유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 가운데 자유의 담지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본을 보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인간이 요구하는 자유가 존재하고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언해야 한다. 또한 그들은 자유의 담지자로서 세상의 구조와 체제 안에 있는 거짓 자유를 확연히 드러나게 해야 한다.


*자끄엘륄총서*

1.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박동열 옮김
2. 뒤틀려진 기독교 박동열/이상민 옮김
3. 하나님이냐 돈이냐 양명수 옮김
4. 잊혀진 소망 이상민 옮김
5. 이슬람과 기독교 이상민 옮김
6. 하나님은 불의한가? 이상민 옮김
7.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김재현/신광은 옮김
8. 요나의 심판과 구원 신기호 옮김
9.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김은경 옮김
10. 무정부주의와 기독교 이창헌 옮김
11.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 곽노경 옮김
12. 정치적 착각 하태환 옮김
13. 인간을 위한 혁명 하태환 옮김
14. 폭력에 맞서 이창헌 옮김
15. 선전 하태환 옮김
16. 하나님의 정치와 인간의 정치 김은경 옮김
17. 혁명의 해부 황종대 옮김
18. 의심을 거친 믿음 임형권 옮김
19. 머리 둘 곳 없던 예수 황종대 옮김
20. 기술체계 이상민 옮김
21. 자연법의 신학적 의미 강만원 옮김
22. 마르크스 사상 안성헌 옮김
23. 무의미의 제국 하태환 옮김
24. 굴욕당한 말 박동열/이상민 옮김
25. 마르크스의 후계자 안성헌 옮김
26. 우리의 기도 김치수 옮김
27. 개인과 역사와 하나님 김치수 옮김
28. 존재의 이유 김치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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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번째 자끄엘륄총서
엘륄, 40년 전도서 묵상에서 참된 지혜를 만나다

전도서 묵상과 인간의 존재와 역사에 관한 성찰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현대의 질문과 “어떤 유익이 있는가?”라는 전도서의 질문 간의 모순은 ‘무엇에’를 ‘누구에게’로 바꾸면 해소된다. 누구에게 그게 소용이 있는가? 이는 전도서의 본문들이 주는 교훈이다. 우선적인 관심이 ‘누구’라는 인간에게 있다. ‘누구’라는 인격, 행위자, 살아있는 존재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다. 전도서는 ‘무엇’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것은 중립적인 것으로 사물이고 기구이고 소유물이고 수단으로서 인간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인식하는 대상이다. 전도서는 우리의 질문들의 중심을 어긋나게 한다. 왜냐하면 깊은 성찰을 통해서 전도자가 한 것이 바로 이 질문의 전환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의 전환을 통해서 인간을 향한 전도서의 메시지가 임한다. 네가 너 자신을 창조주로 착각할 때마다, 너는 파괴하고 파멸시키는 존재가 된다. 반면에 인간이 침묵과 신중함과 겸손 속에서 은밀히 일하는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서 행한 일은 다 긍정적이고 유익하고 활력을 준다. 인간이 자신을 창조주로 착각하여 권력으로 행한 일은 다 공허감을 불러일으키는 허무한 일이다.
여기서 전도자는 가차 없이 급진적으로 선언한다.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헛된 것이고 연기와 안개와 구름 같은 것이다. 덧없고 유사(流砂)와 같은 우리의 삶에서 유일하게 안정적이고 확고한 것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라”는 말씀이 존재한다. 모든 인간의 존재는 이 말씀에 귀착된다. 다시 말해서 이 말씀에서 떠나있는 모든 사람은 아무런 존재도 아니다. 그는 아벨이다. 여기에 더도 없고 덜도 없고 절충도 없다.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인간에게 진리와 실재를 부여하는 것은, 돌연히 인간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이다. 그것이 인간의 전부이다.

할 말은 다 하였다. 결론은 이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라. 그분이 주신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의무다”
<전도서 12:13 새번역>


자끄 엘륄이 말하는 이 책의 저술 동기
오늘날 전도서에 관해 또 하나의 책을 쓴다는 것은 유별나게 헛된 욕심을 가진 사람이거나 극히 무분별한 사람에게나 가능한 일이리라! 참고도서 목록만 해도 수많은 장이 할애되어야 하고, 하나같이 훌륭한 학자들이 쓴 주석들의 목록만 해도 수십 장에 이르는데 말이다. 나는 학자도 주석가도 해석학자도 신학자도 아니다. 내가 여기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단지 전도서를 반세기가 넘게 읽고 묵상하며 기도해 왔다는 사실뿐이다. 내가 그토록 깊이 파고들고 또 그만큼 수확을 얻었던 성서 텍스트는 아마도 전도서가 유일할 것이다. 전도서만큼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건네준 책은 없었다. 여기서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대화 내용이라고 해두자. 그리고 이 책의 전개 방식은 내가 다른 저서들에서 간혹 취하곤 했던 대학의 학문적인 방식과는 다르다는 점을 독자 여러분에게 미리 예고한다.
대학의 학문적인 방식은 주제에 관한 참고문헌을 작성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가능한 모든 자료들을 다 읽고, 분류 카드에 기록하고, 하나의 기본 구도를 수립한다. 그리고 다른 저자들의 연구 결과들을 확장하거나 또는 반박하는 내용으로 편집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이 책의 전개방식은 정반대가 된다.
나는 미리 다른 관계서적들을 읽어서 예비지식을 습득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전도서의 텍스트와 일대일로 마주하고 싶었다. 히브리어 원문을 보았지만 그것을 읽는데 나는 아주 서툴렀다. 그래서 도움도 받고 점검도 받을 겸해서 9개의 번역판을 보았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텍스트를 써내려갔다. 내가 쓴 것이 외적인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걸 쓴 것은 이미 기존에 습득한 문화와 지식을 가진 개인으로서의 나 자신이지 어떤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나는 아주 오래 전에 코헬레트에 관한 몇 가지 논문들을 읽었었다. 『신앙과 삶』(Foi et Vie)에 실린 비셔의 논문, “전도서와 몽테뉴”는 물론이고 페데르센, 루티, 폰 라드의 글들을 보았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설명하겠지만, 반세기 전부터 전도서에 관해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내게 있었다. 그래서 30년 전에는 델리취의 글을 요약하기도 했었다.
그러므로 나의 입장은 중립적일 수 없고 백지상태에서 출발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점점 써야할 시간이 다가오면서 나는 전도서에 관해서 다른 아무 것도 읽지 않도록 스스로 자제했다. 깊이 숙고하여 나만의 텍스트를 완성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눈에 띄는 모든 글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독서 중에 접한 책들 가운데 포드샤르(Podechard), 스타인만(Steiann), 바룩(Barucq), 라우하(Lauha) 등의 책들이 좀 무덤덤하게 느껴졌다면, 리스(Lys)의 책과 마이요(Maillot)의 책은 나로 하여금 모든 걸 포기하게 할 뻔했다. 그 두 책들은 각각의 장르에서 완벽하게 보였다. 리스는 학문과 주석학적인 엄정성과 완결성과 진실성의 모범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서문에서 모든 가설들을 검토하고, 각각의 용어에 관해서 해박한 설명을 쏟아놓으면서, 텍스트를 단어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게 구성하였다. 마이요는 나에게 번뜩이는 예언자적인 영감과 함께 텍스트에 대한 깊은 통찰을 훌륭하게 보여 주었다.
아주 다르지만 완벽하게 서로 보완하는 그 두 권의 책들을 앞에 두고서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제 나만의 텍스트가 있다. 십여 편이 넘는 주석들을 읽었지만 나는 내가 쓴 텍스트의 한 줄도 고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나의 방식은 전도서의 말씀에도 들어맞는다고 본다. 경험과 지식을 어느 정도 가졌다면 남들의 말을 모방하지 말고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텍스트를 써가는 가운데 내가 “역사학자들과 주석학자들”의 견해를 넌지시 꺼낸다면, 그것은 보통 어디나 통용되는 사회통념들이거나 일반적인 이론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후에 읽은 훌륭한 책들에 대해서는 많은 각주들을 붙여 표시했다. 나는 그런 각주들 속에 나의 견해를 표명하여 입장을 정리했다. 이와 같이 전개해나간 것이 내가 취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서문이라고 해야 할 제목을 “후기”라고 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또한 “논쟁적”이라고 한 것은 나중에 가서 몇몇 저자들을 비판한 데 따른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이 책의 한계들을 보여준다. 즉, 나는 전도서의 새로운 “주석”이나 “요점”이나 거기서 취합한 종교적 강론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한 작업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40년 동안 나는 전도서에 관한 실제적 묵상이 내가 마음속에 그리기 시작한 나의 모든 저서들 전체에 대한 적절한 결론이 될 거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것은 지적이고 활동적인 내 삶의 여정이 끝날 무렵에 가서야 가능할 듯했다. 전도서라는 책은 하나의 결론이지 하나의 출발점일 수는 없다. 나는 그것이 전도서의 말씀에 부합한다고 본다. 전도서의 모든 긍정이나 부정은 일을 다 겪은 후에 일종의 마침표처럼 내려진다. 그것은 결과가 아니라 결론이다. 왜냐하면 내 생각에는 전도서를 기점으로 해서, 또는 전도서 이후로 거기에 덧붙일 만한 말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해서,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이 내가 집필하고자 했었던 모든 책들의 전체적인 서문이라고 한다면, 전도서는 마지막 결론에 해당할 것이다. 사실 나에게 아직 더 많이 쓸 수 있는 여력이 남아있는 것 같지 않다. 내가 마음속에 담아둔 계획을 모두 다 이룰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이 허락한다면 한두 권을 더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한두 권은 이미 저술한 책들을 보완하는데 그치고 말 것이다.


*자끄엘륄총서*

1.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박동열 옮김
2. 뒤틀려진 기독교 박동열/이상민 옮김
3. 하나님이냐 돈이냐 양명수 옮김
4. 잊혀진 소망 이상민 옮김
5. 이슬람과 기독교 이상민 옮김
6. 하나님은 불의한가? 이상민 옮김
7.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김재현/신광은 옮김
8. 요나의 심판과 구원 신기호 옮김
9.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김은경 옮김
10. 무정부주의와 기독교 이창헌 옮김
11.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 곽노경 옮김
12. 정치적 착각 하태환 옮김
13. 인간을 위한 혁명 하태환 옮김
14. 폭력에 맞서 이창헌 옮김
15. 선전 하태환 옮김
16. 하나님의 정치와 인간의 정치 김은경 옮김
17. 혁명의 해부 황종대 옮김
18. 의심을 거친 믿음 임형권 옮김
19. 머리 둘 곳 없던 예수 황종대 옮김
20. 기술체계 이상민 옮김
21. 자연법의 신학적 의미 강만원 옮김
22. 마르크스 사상 안성헌 옮김
23. 무의미의 제국 하태환 옮김
24. 굴욕당한 말 박동열/이상민 옮김
25. 마르크스의 후계자 안성헌 옮김
26. 우리의 기도 김치수 옮김
27. 개인과 역사와 하나님 김치수 옮김
28. 존재의 이유 김치수 옮김
차가울 정도로 이성적인 자끄 엘륄이 믿는 것
평생의 삶을 통해서 얻은 지성적인 통찰과 영적인 지혜.


사랑 : 사람들은 사랑을 하지만, 사랑을 만들지는 못한다.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경험하는 것과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르다. 내가 말하는 사랑은 주는 것이지 가지는 것이 아니다. 주는 사랑은 지속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삶이기 때문이다. … 비록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 내 평생을 통해 한 번에 그칠지라도, 이 승리 위에서 나의 여생을 보내게 되며, 그 기억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의 존재가 빚어져 간다. 언제나 그 기억이 살아있게 해야 한다. 은밀하게라도 계속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역사 : 신앙은 신념으로 변질될 수 있지만, 신념이 신앙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역사는 말한다. 하나님을 완벽하게 알고 있다며, 신앙의 보존과 전파를 목적으로 제도를 확립하려고 할 때 신앙은 신념으로 변신한다. 신앙이 진리를 규정하는 근본적인 원칙들을 명확하게 하려 하고, 사회의 모든 것을 총괄하려 할 때, 신앙의 변질이 시작된다. 신앙이 결정적이고 확고한 원칙들만을 답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강요하려 할 때, 변질이 일어난다. 이런 현상들이 나타날 때, 신앙은 사라지고 신념과 제도화된 종교만이 존속한다. … 역사는 우리 시대를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교훈을 주지 않는다. 역사는 물론 무익한 것이 아니지만, 미리 대비하여 수집한 해결책들의 모음집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창의적 대응을 독려하는 것이다

변증법 :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은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변화나 진화를 가져올 유일한 것은 모순과 반대, 그리고 부정적인 것의 등장과 부정적인 성향이다. 이는 상황을 전환시킨다. 하나의 주체가 항의하고 부정하여 명백하게 모순을 표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 방식을 통해서 부정은 혁신을 가져오고, 집단과 개인의 역사를 이어간다. 그때 부정이 전적으로 긍정적인 측면을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하나의 상태가 다른 상태로 변화하는 것은 오직 이 부정에 기인한다.

땅 :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고유한 장소인 이 땅은 이 연합과 이 기쁨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이 땅이 그렇지 못하다면, 다시 그렇게 되도록 회복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부서지기 쉽고 갈가리 찢긴 이 땅이 우리의 유일한 거처요, 우리의 유일한 고향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하나님은 피조물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신생아를 길에 버려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하나님의 사랑은 다른 존재를 향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한 세계와 피조물을 사랑하고, 피조물의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하나님의 지식을 전한다. … 나는 세상 속에 하나님의 은밀한 현존을 믿는다. 때로는 우리를 침묵 가운데 남겨두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늘 ‘기억하라’고 말씀한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전한 말씀을 찾게 하고, 우리가 그 기록된 말씀을 살아있는 현재화된 말씀으로 받아들일 때 그 말씀을 늘 새롭게 한다. 하나님은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이 연주되는 화려한 의식들 가운데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지만, 가난한 사람의 의외의 모습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가 겪은 것과 같은 고통 속에, 내가 다가가는 이웃의 연약함 속에 숨어 있다. … 사랑의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내어줄 정도로 사랑하는 당신의 피조물을 지옥에 보낼 수는 없다. 먼저 당신의 피조물이기에 하나님은 버릴 수가 없다. 그것은 스스로 당신 자신의 몸을 절단하는 것과 같다.

*자끄엘륄총서*

1.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박동열 옮김
2. 뒤틀려진 기독교 박동열/이상민 옮김
3. 하나님이냐 돈이냐 양명수 옮김
4. 잊혀진 소망 이상민 옮김
5. 이슬람과 기독교 이상민 옮김
6. 하나님은 불의한가? 이상민 옮김
7.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김재현/신광은 옮김
8. 요나의 심판과 구원 신기호 옮김
9.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김은경 옮김
10. 무정부주의와 기독교 이창헌 옮김
11.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 곽노경 옮김
12. 정치적 착각 하태환 옮김
13. 인간을 위한 혁명 하태환 옮김
14. 폭력에 맞서 이창헌 옮김
15. 선전 하태환 옮김
16. 하나님의 정치와 인간의 정치 김은경 옮김
17. 혁명의 해부 황종대 옮김
18. 의심을 거친 믿음 임형권 옮김
19. 머리 둘 곳 없던 예수 황종대 옮김
20. 기술체계 이상민 옮김
21. 자연법의 신학적 의미 강만원 옮김
22. 마르크스 사상 안성헌 옮김
23. 무의미의 제국 하태환 옮김
24. 굴욕당한 말 박동열/이상민 옮김
25. 마르크스의 후계자 안성헌 옮김
26. 우리의 기도 김치수 옮김
27. 개인과 역사와 하나님 김치수 옮김
진정한 기도는 가능한가?
기도하지 않는 현대인들을 향한 자끄 엘륄의 고언
우리는 기도하면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
우리가 하는 기도의 의미는 무엇인가?.


철학자, 사회학자, 신학자는 기도를 주제로 훌륭한 이론들을 내놓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을 때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달리 말하자면, 기도는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인지하고 확인할 수 있는 실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오직 기도하는 사람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것이 기도의 유일한 실재이다.

기도는 믿음으로 하는 것이므로 보장되는 것이 없어도 지속해야 한다. 모든 것이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하나님이 침묵하는 것 같을 때에도 계속해서 믿음을 유지해야 한다. 계속해서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믿음이 유지되는 것은 그 기도에 달렸기 때문이다.

기도는 투쟁이다. 자기 자신을 향한 투쟁이다. 유행이 된 종교와 투쟁하는 것이다. 거짓 영과 대적하여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한 투쟁이다.

기도는 기술 사회에서 인간의 사물화와 소외상태에 변화를 줄 수 있는 활로이며, 이데올로기와 심리적인 조작들에 대항하는 길이다. 기도는 소비만능의 환상과 효율성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상쇄하는 금욕적인 행위이며, 의미를 상실한 사회를 위해 필요 충분한 유일한 행동이자 실천이다.

기도는 인간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내려오는 하나님의 지극한 은총이다. 기도는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을 증언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허락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말하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에 인간이 관여할 수 있게 한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고전3:9)가 된다. <본문 중에서>



*자끄엘륄총서*
1.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박동열 옮김
2. 뒤틀려진 기독교 박동열/이상민 옮김
3. 하나님이냐 돈이냐 양명수 옮김
4. 잊혀진 소망 이상민 옮김
5. 이슬람과 기독교 이상민 옮김
6. 하나님은 불의한가? 이상민 옮김
7.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김재현/신광은 옮김
8. 요나의 심판과 구원 신기호 옮김
9.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김은경 옮김
10. 무정부주의와 기독교 이창헌 옮김
11.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 곽노경 옮김
12. 정치적 착각 하태환 옮김
13. 인간을 위한 혁명 하태환 옮김
14. 폭력에 맞서 이창헌 옮김
15. 선전 하태환 옮김
16. 하나님의 정치와 인간의 정치 김은경 옮김
17. 혁명의 해부 황종대 옮김
18. 의심을 거친 믿음 임형권 옮김
19. 머리 둘 곳 없던 예수 황종대 옮김
20. 기술체계 이상민 옮김
21. 자연법의 신학적 의미 강만원 옮김
22. 마르크스 사상 안성헌 옮김
23. 무의미의 제국 하태환 옮김
24. 굴욕당한 말 박동열/이상민 옮김
25. 마르크스의 후계자 안성헌 옮김
26. 우리의 기도 김치수 옮김

마르크스주의의 발전과 모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엘륄의 매우 사려 깊은 모습은 마르크스 유산을 물려받은 1세대를 넘어서는 것이다.
엘륄이 항상 주장했던 것처럼, 마르크스 사상은 엘륄 삶을 만들어준 기독교 계시와 양립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마르크스주의를 위해 강조되는 그의 관심과 리히타의 연구 주제들에 관한 그의 지지 표명은 엘륄 저작, 특별히 기술(technique)과 선전(propagande)에 대한 연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어느 지점에 마르크스주의의 축(axe)이 꼭 필요한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 책은 『마르크스 사상』과 더불어 자끄 엘륄이 30년 동안
보르도 정치 연구소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한 내용이다.
이 강좌에서 엘륄은 마르크스의 유산 속에 있는 여러 요소들의 모순이나 발전 양상을 드러냈다. 『마르크스의 후계자』에는 그러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더욱이 엘륄은 의심어린 표현을 사용하여 자신이 예상하는 내용들을 점진적으로 강조해 나간다. 탁월한 강연 능력을 통해 엘륄은 다양한 학파들, 각 학파의 대표자들 및 그들 간의 불일치를 낳았던 이론적 토대들을 소개한다.
이 강좌의 출판은 마르크스주의와의 옛 관계보다 복잡한 연관성에 대해 더 깊게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1968년 프라하의 봄으로 귀결된 1960년대 체코 마르크스주의에 대하여, 엘륄은 수강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체코슬로바키아 마르크스주의 사상과의 접촉 덕분에 사회주의 전반에 대한 어떤 희망의 끈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 그것은 기술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응답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폭넓게 전개되는 위 주제들에 대한 엘륄의 교감은 어느 지점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엘륄의 여러 연구에 영향을 미쳤고 그의 마르크스주의 이해에 도움이 되었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 편집인 - 미셸 우르카드, 장-피에르 제제켈, 제라르 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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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엘륄 사상의 견고한 받침대이다.

수많은 이미지와 기술의 범람으로 굴욕당한 말은 치욕스러운 소음으로 전락하고 있다.

말은 지속을 전제로 하고, 우리를 시간성 속에 빠지게 한다. 말이 문자에 의해 시각적 이미지로 변형되어 공간 안으로 들어온다 하더라도 말은 결코 순식간에 이해될 수 없다. 말은 하나의 신비이고, 풀어야 할 수수께끼이고, 해석해야 할 텍스트이다. 말은 우리로 하여금 오해와 의미 추구 속에서 끝없이 살게 한다.

말은 듣는 자에게 자유의 여지를 남겨둔다. 그래서 듣는 자도 자유의 선물인 말을 하고 싶어진다. 시각은 명백함을 주지만, 말은 명백함을 배제한다. 말은 인간의 모호성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역설적이다. 우리 사회가 이미지를 더 선호하는 것은, 현실을 진리라고 믿게 하는 것이 기술의 지배와 연결된 현대사회의 주된 경향이기 때문이다.

말은 진리와의 관계 속에서 그 자체가 이미 혁명적이기 때문에 혁명가들의 힘이었다. 따라서 말을 증오하는 것은 본의 아니게 부르주아 계급에게 득이되도록 행동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을 증오하는 것은 지배계급을 문제화하는 유일한 힘을 무력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인은 보여줄 수 있을뿐 더는 듣지도 않고 말할 줄도 모른다. 이는 세상 모든 것을 단숨에 보여주는 이미지를 소비함으로써 세상의 복잡성을 견디는 것이다. 선전과 광고는 매혹적인 세계에서 단지 시각적 인식으로 현대인을 사로잡는다. 이렇듯 이미지를 통해 사고하는 사람은 다시는 추론을 하거나 분석적이고 논증적인 비판을 통해 사고할 수 없다.
이 책은 넘쳐나는 예술품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매우 드물고도 값진 예술에 대한 설득력 는 비판서이다. 엘륄은 오늘날의 예술은 이전의 예술과도 선사시대 이후로 인간이 예술이라고 불렀던 것과도 어떠한 공통된 척도도 없는 상태라고 말한다. 부연하면, 오늘날의 예술은 기술적 질서에 묻혀 있고, 또한 그 질서 속에서 특성을 얻게 된다. 따라서 예술이 더는 미도, 조화도, 기쁨도, 고귀함도, 심지어 어떠한 의미도 표현할 수 없게 되었다.

예술이 늘 실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실재를 전환하는 것이라면 현대 예술은 상황을 지배할 능력이 없고, 반대로 우리를 공포와 광기에 빠지게 한다. ‥·기술은 이데올로기적 예술을 낳는다. 이데올로기는 비단 기술적 실재에 대한 반영, 폭로 그리고 정당화일 뿐 아니라, 기술적 환경의 참을 수 없음을 해결하는 것이다.

예술의 문화적 근대화의 기능이 기술적 세계로 인간을 통합하는 기능을 한다. 다시 말해서, 근대의 예술가들은 “기술 체계 속의 군수 담당 하사관” 이다.
자끄 엘륄은 자신에게 현대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 소음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그것은 조화도 의미 없이 “계속해서 폭음을 내는 모터”와 같다. ··· 팝 음악은 무엇보다도 기술의 산물이다. 결과적으로 급진적이라고 자부하는 저항은, 사실상, 기술 체계에 완전히 순응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술체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예술은 기술 체계 속에 인간을 통합하는 주요한 기능 중의 하나가 되었다. 예술은 사실 현재의 상태를 정당화하고, 기술의 승리, 인간에게 자신의 상황이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막으려고 몇 가지 보상들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에게 반란의 환상, 주도권의 환상, 자유의 환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전 세계적 규모의 사고 이상이 아니라는 확신을 부어 넣는다. 바로 이것이 현대 예술은 아무것도 아니고 창조적이지도, 해방적이지도 않고 자유의 수단도 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엘륄은 예술의 비약을 통한 개현을 소망한다. 예술은 “인간이 진보에 종속됨과 소비적 행복에 맞서서 일어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을” 책임이 있다.
왜 엘륄이 때론 마르크스의 분석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때론 가차없이 신랄하게 비판했는지 이 책이 답한다.


30년간 개설된 이 강의에 앞서 엘륄이 한 말은 지금 이땅에서도 유효하다.
“나는 마르크스 사상이 19세기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가장 중요한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또한 20세기를 위한 가장 중요한 지적 도전이다. 우리는 마르크스 사상에 관해서만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만일 우리가 마르크스 사상을 무시한다면, 그에 대해 우리는 그 무엇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좀 더 심술궂은 표현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마르크스에 대한 동조나 반대 입장을 취하게 되는 이유를 인식하게 되는 방향으로 이 강좌를 진행하고자 한다. 만일 여러분이 마르크스 사상에 동조한다면, 여러분은 왜 거기에 동조하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교조주의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내가 수용할 수 없는 교조주의가 존재하고, 항상 마르크스를 하나의 물신처럼 다루기를 거부하는 틀에서 본다면, 나 자신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마르크스 사상은 지속적으로 내게 자극을 주고, 영감을 준다.
정치, 경제, 사회 현상들에 접근하는 마르크스의 방법론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물들을 주는 유일한 방법론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의 방법론보다 더 과학적인 방법론은 없다. 물론, 마르크스가 우리를 초대하는 매 순간, 자아비판이 실행되는 조건에서 그렇다.”

18세부터 마르크스 저작을 읽은 엘륄은 마르크스에 대한 매우 심오한 인식을 보여주며,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엘륄의 설명은 간결하고 명쾌하다.


자끄 엘륄은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 신앙 사이에 모순을 세우지는 않는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배타적이고 치명적인 전투에 참여가 아닌 변증법적 갈등 관계가 존재한다. 여기에 칼 마르크스에 호소하는 현대인을 향하여 기독교신앙을 증거해야 할 이유가 있다. 마르크스는 엘륄이 이 세계를 이해하고거기에 사는 인간들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그에게 성서는 인간적 그리고 사회적 실재를 읽을 수 있는 좌표를 제공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답을 제공하는 책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던지는 질문을 담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린국가는 법에 따라서 창설된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왕들이 법 위에 앉으려 할 때 그들을 고발한다.

법은 무엇보다 하나님이 원하셨던 대로 인간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상호관계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법을 통해서 인간은 창조의 선한 질서를 창조주의 의지에 부합하도록 구성해야 한다. 자끄 엘륄이라는 열정적인 그리스도인이 이 책에서 제시하는 의미는 분명하다. 인간의 모든 법적 행위는 세상의 최고 원리이며 조정자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분별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자끄 엘륄은 1912년 프랑스의 보르도에서 태어나 법률학자, 사회학자, 철학자, 신학자, 환경운동가, 프랑스 개신교 전국위원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53권의 저서와 100여편의 기고물을 남기고 1994년 82세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기술, 선전, 정치, 혁명, 대도시, 돈 등 현대 사회의 현상들을 분석한다. 그뿐 아니라 본래의 모습을 벗어난 기독교에 대한 고찰 및 비판과 더불어 기독교 윤리로서 소망과 자유를 제시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소명과 책무를 강조한다.

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정의, 곧 은혜가 어떻게 드러나는가? 정의의 표현으로서 법은 무엇보다 가난한 사람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정의와 유기적인 연합을 이룬 법의 적용, 즉 재판은 무엇보다 ‘긍휼’에서 영감을 받아야 한다. 정당한 법은 그 자체가 은혜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에 드러내는 사명을 부여받는다. 따라서 “법에는 약자를 위한 보호가 있고, 가난한 자를 위한 구원이 있다.” 성서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듯이,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정의는 ‘가난한 자를 위한 구원’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_시82:2-4
“그는 백성들 가운데 가난한 자들의 권리를 인정하리라. 그는 가난한 자의 자녀들을 구원할 것이며 압제자들을 진멸할 것이라.” _시22:3
<역자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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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엘륄은 강력하게 묻는다.
기술은 자신의 제국을 끊임없이 키우는데 도대체 언제까지냐고?
이러한 확장은 속도가 느려지거나 혹은 교착될 것인가?
이러한 예견된 정체는 무엇을 위해 사용될 것인가?
타락한 사회에 질서를 다시 부여하기 위해서인가, 효율적 조직체를 허용하기 위해서 인가, 이루어진 엄청난 진보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인가, 인간에게 거기에 정착하고 적응하도록 허용하기 위해서인가?

엘륄은 신앙의 사람이다.
엘륄은 중앙집권주의를 거부하였고 당대 최고의 지성 샤르트르에 반대하였으며 공산당이 프랑스 전체를 지배할 때 반공산주의자임을 선언한다. 종교적 믿음이 인간을 소외시킨다는 사상으로 유럽이 소용돌이칠 때도 자신이 개신교도임을 숨기지 않았다. 엘륄이 기술의 진보를 비판하고 "진보"를 적대시하는 끔찍한 자로 여겨진 것도 인간의 자유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기술을 분석했기 때문이다. 기술에 대한 엘륄의 논지는 하이데거와는 달리 너무 명확하고 근본적이어서 관심을 끌 수 없었다. 개신교 내에서 엘륄은 여전히 주변적이고 분류할 수 없으며 통제할 수 없는 인물로 간주되었다. <본문중에서>

엘륄에게 기술은 정치나 경제보다 더 사회의 결정 요인이다.
기술은 자체의 논리를 따르면서 스스로 성장한다. 기술은 민주주의를 깔아뭉개고, 천연자원을 고갈시키며, 문명을 획일화한다. 기술은 예견할 수 없는 결과를 낳고, 미래를 상상할 수 없게 만든다. 기술은 사회 안에서 기술체계를 형성한다. 정보처리기술은 전신, 항공, 에너지의 생산과 분배 등과 같은 모든 하위체계를 통합하면서, 기술로 하여금 ‘조직된 전체’가 될 수 있게 하는데, ‘조직된 전체’는 사회 안에서 존속하고 사회의 형태를 만들며 사회를 이용하고 사회를 변모시킨다. 그러나 스스로 생성되는 맹목적인 이 체계는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자체의 잘못을 바로잡지도 못한다. 더구나 기술을 통제한다고 자부하는 인간도 사실상 기술을 더는 통제하지 못하고, 기술체계 속에 편입되어 기술체계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 <역자 서문 중에서>
도시의 악한 영은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왜 예수는 도시 밖에서 십자가에 매달렸는가?
'도시신학'은 가능한가? 궁극적으로 소망해야 할 도시는 어떤 모습인가?

예수는 도시의 성벽을 세우는 행위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고, 돈과 군대와 과학, 자본과 문명의 발전을 거부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안에서만 적법한 안식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또한 방황을 받아들일 때, 이것이 결국 인간으로 하여금 세기에 걸친 도피를 멈추게 할 왕국, 진리 안에서 꽃피우게 될 하나님나라를 건설하게 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 만일 인간이 가인의 길을 계속 간다면, 만일 인간이 자신의 휴식처와 안전을 위해 도시를 계속 건설한다면, 예수의 행위는 헛된 것이 될 것이다. … 도시에 대한 예수의 심판은 인간을 위한 것이다. 예수는 자신의 사역을 위해 도시에 정착하기를 거부하면서, 이러한 정착이 용서할 수 없는 반역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예수에게 이것은 사탄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에 미친 짓이다.

예수는 도시를 떠났고, 우리 역시 도시를 떠나야 한다. 도시의 악한 영은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 가운데 있을 때에만 견딜 수 있다. 율법의 예언을 완성하고자 도시 안의 모든 세력이 연대한다. 희생 염소는 장막 바깥, 광야로 데려가야 한다. 죄 때문에 희생되는 동물의 몸은 장막 바깥으로 보내지거나 도시 바깥에서 태워져야 한다. …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도시는 정확하게 율법과 같은 계획 속에 있다. 율법에 순종한 예수는 도시에서 버림 받았다. 도시는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 없었고, 예수의 죽음은 외부에서 오는 하나님의 도시 정복을 영원히 보증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의 모든 세력과 도시의 천사가 동시에 예수를 못 박고 옷 벗기려고 십자가 앞에서 모인다. …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여전히 비밀이며, 그 이유는 이와는 반대로 예수의 죽음이 겉으로는 예수를 대항하여 연합한 세력들의 승리를 보증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우리는 도시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침묵해서는 안된다. 도시의 과밀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도시와 주거 정책이 자본의 논리가 아닌 인간과 공동체적 관점에서 수립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모든 시민들이 함께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도시를 정비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의 이름을 날리기 위해 건설한 바벨에서 하나님 없는 안정과 평안을 추구하고 도시의 죄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도 안된다. <역자 서문 중에서>
"이 책은 내 생애 가장 깊숙하고, 가장 확실한 것을 나누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해방되고 가장 신나며 가장 진솔한 것을 나누는 것이다."

이 책은 엄격한 의미에서 신학서적을 뛰어넘는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개인적 경험을 진술하고 분석하는 시도이다. 다시 말해, 믿음의 실체와 힘을 펼쳐 보이려는 노력의 결실이다.
"가장 불확실하고, 가장 사실 같지 않지만, 역시 인간의 가슴 속에 깊숙이 뿌리 내린 이 믿음의 본질과 하나님의 사랑의 임재를 어떻게 느끼게 할 것인가?"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회심으로 기독교인이 된 엘륄의 신학적 진술과 고백! "믿음은 자신이 종교심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의심하며 자신을 비판해야 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비판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엘륄은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이후에 반기독교 저자(셀수스, 홀바흐, 마르크스 등)들에 심취한다. 그는 그리스도가 논리적으로 타당한가를 물으면서 정반대의 사상들을 찾았다. 그러나 엘륄의 신앙은 그 저항들에게도 불구하고 굳건히 서갔다. 엘륄의 많은 절친한 친구들은 기독교와 기독교인에게 온갖 비난을 했지만, 그는 묵묵히 그들의 비난을 수긍했다. 디디에 노르동이 기독교를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답변한다. "당신은 기독교 신앙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군요. 하지만, 당신의 태도에 별로 충격받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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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사회에 대항한 혁명은 모든 영역에서 효율성의 감소, 개인 행복의 퇴보, 공동 생산 체계의 축소 및 대중문화의 점진적 소멸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혁명의 해부, 제5장“진정으로 필요한 혁명”에서>

엘륄은 우리 시대에 필요한 혁명을 하려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있음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문제는 우리의 욕심과 욕망 가운데 있을 것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것, 더 많은 권력을 갖는 것, 더 큰 자아실현, 극대화된 쾌락….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는 욕심과 욕망은 인류의 공동의 가치, 공동체적 삶을 파괴하고 있으며, 나아가 우리가 사는 환경, 지구를 황폐화하고 있다. 우리는 극도로 첨단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늘도 내 욕심과 욕망을 위해 이웃을 죽이는 일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와 우리의 자녀를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환경을 파괴하고 지구를 신음하도록 한다. 우리는 엘륄이 이야기한 대가(사회적 효율성의 감소, 개인 행복의 퇴보, 생산 체계의 축소, 대중문화의 포기)를 치르기 전까지, 이 고통이 더욱 심화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자끄 엘륄의 혁명을 주제로 한 삼부작(『혁명의 해부』대장간 역간, 『혁명에서 반란으로』, 『인간을 위한 혁명』 대장간 역간) 중 첫 번째 책이다.
자끄 엘륄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 때는 마르크스주의자였고, 세계대전 당시에는 나찌에 대항하여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엘륄이 이 책을 저술하던 당시의 프랑스 사회는 여전히 68년 5월의 영향력 아래 있었고, 젊은 프랑스 지성인들 사이에서는 혁명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을 것이다. 여러 시대와 사상을 거치면서 그는 “혁명”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어떻게 변했고, 어떻게 사용됐는지를 보아왔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엘륄은 무엇보다도 역사를 통해 혁명의 정의를 내리려 하였고, 우리 시대의 거짓된 혁명을 벗겨 내려 하였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교회에도 혁명이 있어야 한다고, 아니면 혁명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첨단의 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 성장주의가 교회 내에 들어와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문제이다. 교회 내의 성도들은 어떠한가? 각 개인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 앞의 개인으로서의 가치와 소중함을 상실한 채, 교회의 성장과 생산성의 극대화, 프로그램의 효율성을 위해서 소비되고 있지 않은가? 마치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과 같이, 성도들은 똑같은 예배와 프로그램의 반복 가운데 끊임없이 소비되고 있으며, 대중의 익명성 가운데 개인의 상실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나아가 한국 교회는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기술사회에 대한 선전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기술사회의 병폐를 여과 없이 수용한 한국 교회에, 그리고 예언자적 역할을 상실한 한국 교회에, 엘륄 읽기는 분명히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한 부분을 조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정치적 행위에 어떻게 개입하시는가?

하나님의 행동이 인간의 말로 표현될 때에 그것을 듣는 사람의 공격을 언제든 받을 수 있다. 이 때, 우리는 세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경륜과 지혜를 보게된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섬세함과 부드러움과 훈육과 선택과 연속적인 적응력을 모두 포함한 하나님의 행동 말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예비하고 개개인이 어떤 대안을 선택하든지, 인간에게 자유로운 선택의 여지를 준다. 그렇게 인간의 정치에 대해 하나님이 행동하는 모습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소명과 부름과 요청, 그리고 심판과 단절과 진노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행함은 은총과 조심스럽게 다가옴과 해방으로, EH한 준엄함과 그 뜻을 정확하게 이루는 결연함으로 끊임없이 나타난다. 때로는 어떤 사건과 역사와 한 인생을 뒤집어 버리는 기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기적은 매번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의 존재와 연관되어 일어난다.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법은 없다. 기적은 인간의 행위와 짝을 이루므로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 인간은 기도함으로 함께하고, 기적이 끝날 때 인간은 증언하고 해석함으로 함께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새롭게 하고 구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겸손함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역사에 함께 하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드러내는 그 증언이 열왕기하의 정치적 상황 전개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_서문 중에서

자유는 인간의 삶에 의미를 줄 유일한 것이지만, 인간에게 속한 것은 아니어서 인간에게서 나오는 열매가 아니며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의 자유 안에 있다.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의 자유를 반영한다. 인간의 자유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주어진다.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는 기도와 증언 같은 아이 같은 행위들 속에서만 표출된다. 자유 또한 열왕기하에 나오는 정치와 종교의 비극적 행위들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_본문 중에서
정치적, 종교적 권력들이 심리적 영향력을 수단으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얻고자 할 때 사용하는 것이 선전이다.
엘륄은 현대 민주주의에서 선전의 필요성을 확립하였으며 현대인의 일상 속의 실재와 심리적 호소력을 부인하는 사람을 반대한다. 그러나 그는 선전의 정당성을 변호하기는커녕 분명하게 비난한다. 자끄 엘륄이 공격하는 금기는 현대인의 성숙과 책임이다. 이 신화에 맞서서 그는 모든 시대의 인간은 유연하다는 것과 오히려 시민 편에서 기술적 민주주의의 조건을 지탱하고자 무의식적으로 선전을 요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끄 엘륄이 보기에 이 현상을 의식하는 것은 선전을 제압하는 첫 번째 발걸음이다. 우리가 기술하는 폐쇄된 세상 속에서조차도, 항상 출구가 열려 있고, 그가 그리는 너무도 침울한 풍경에서도, 한 가닥의 빛이 남아 있다. “인간에게 자유와 진리의 부분이 아직 잃어버려지지 않았지만, 그것은 효과적으로 그렇게 될 수 있다.

만약, 교회가 허구에 굴복하여 선전을 하기로 결정한다면,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반드시 자문해야 한다. 교회의 선전이라는 막다른 선택은 현재 교회가 당면한 가장 잔인한 것 중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선전으로 주물럭거려진 인간들은 점차 정신적인 현실의 침투를 외면하게 되고, 기독교적 삶의 자율성에 접근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종교는 허구의 수단을 통해서 차츰 선전에 흡수되고 그 범주 중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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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에게 합법적인 폭력은 '사랑의 폭력' 뿐이다.
이 폭력은 급진적이고 비타협적이고 내면적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것이며, 선으로 악을 극복하는 전투이다. 따라서 사랑의 폭력은 물리적이거나 심리적인 어떤 폭력에도 호소하지 않는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
폭력을 통해서 자유를 얻을 수도 없고, 폭력으로는 진정한 억압도 할 수 없다. 폭력에는 종속화만 있을 뿐이다.

엘륄은 기독교인들이 정당화하는 모든 폭력을 부정한다.
정당한 전쟁은 없다.
폭력은 우리의 삶이 펼쳐지는 사회의 토대로 인정해야 하지만, 그것은 정당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사랑과 반대된다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한다.


엘륄이 이 책에서 반대하는 것은 단지 폭력 뿐만은 아니다. 엘륄이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단순히 비폭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화된 생각일 뿐이다. 물론 제목이 말하는 대로 엘륄은 물리적으로만 보자면 절대적인 비폭력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엘륄은 또한 “영적인 폭력”을 주장하는데 이것이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말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의 폭력”으로서 적극적으로 이 땅에 기독교적 사랑을 실천에 옮기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폭력은 강요하지도 않고 강요당하지도 않지만 사랑은 감히 강요하고 강요당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남에게 폐만 끼치지 않고 살면 그만”인 이웃 어느 나라의 윤리와는 다른 것으로 남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의 폐를 끼치겠다는 것이다. 남의 삶에 간섭하겠다는 것이자 이웃과 세상에 간섭하겠다는 것이다. 감히 기독교적 윤리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코 물리적 폭력으로는 가능하지 않지만, 사랑의 폭력으로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역자 서문 중에서
계시와 실천 사이의 뒤집힘이 기독교의 근본적인 모순이 시작이다.

기독교의 본질은 세상을 뒤집어엎는 것이다. 그러나 실천에서 오히려 세상이 기독교를 뒤집었다.
기독교는 하나님 외에 어떤 신성함도 파괴하는 운동이다. 그러나 교회는 스스로 규범과 의식과 금기사항을 만들고 기독교라는 이름아래 우상화에 앞장서고 있다.
예수가 계시한 기독교는 반인간적이어서 용납하기 힘든 큰 걸림돌이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와 무관한 호의적인 기독교를 만들어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있다.

"내가 이 책에서 다루려는 문제는 나를 가장 골치 아프게 하는 문제들 가운데 하나이며, 내 지식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이고, 또 역사적 기이함이라는 심각한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은 매우 간단한 방식으로 제기될 수 있다. 즉, 어떻게 기독교 사회와 교회의 발달이, 우리가 성서를 통해 읽은 것, 곧 토라와 선지자와 예수와 바울의 분명한 텍스트와 모든 면에서 반대되는 사회, 문화, 문명을 탄생시켰느냐는 문제다. 나는‘모든 면에서’라고 분명히 말한다. 즉, 모순이 발생한 것은 한 가지 면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편으로 기독교가 본래의 텍스트와 영감의 어디에도 들어 있지 않은 과오와 범죄와 거짓을 총망라했다고 비난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기독교 세계와 교회가 지니고 있던 실천을 본떠서 계시를 점진적으로 만들었고 재해석했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말해진 진리를 따르기를 절대 거부하면서, 기독교의 실천, 곧 구체적인 실재만을 고려하기를 원했다. 그런데 계시와 실천 사이에는 단지 어긋남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이고도 본질적인 모순, 곧 진정한 뒤집힘이 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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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고 다른 인간을 위한, 신화가 해체된 혁명!
사회학적 분석과 자끄 엘륄의 신앙 사이의 연결이 이 책에서
변증법적 매듭과 절정에 이르게 된다.


프롤레타리아는 자본주의의 직접적 산물이 아니고, 산업화의 산물이다. 결과적으로 산업화, 경제화, 도시화로부터 가속화된 근대화를 향하는 세계 어디에서나 어떤 정치체제를 막론하고 프롤레타리아를 더더욱 양산하고 있고 양산해 낼 것이다.
우리의 기술사회에서는 프롤레타리아적 조건의 분야들이 남아 있다. 기술사회의 프롤레타리아는 비참함을 제외하고는 산업 프롤레타리아와 같은 특징과 소외를 보인다. 기술사회의 프롤레타리아는 뿌리를 잃고 자기 자신을 상실하고 기술에 의해 마비되고 전체적으로 그러한 자신에 만족하는 인간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제시된 미시 정보과학의 등장과 비국가적 사회주의 운동은 기술사회와 제3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권력을 수단으로 삼지 않고, 현대 기술의 잠재적 힘과 그 힘을 인간 해방의 유일한 길로 인도하는 것이 유일한 혁명의 길이다.” 자끄 엘륄은 다섯 가지로 이 혁명 프로그램을 요약한다. 실제적 필요를 만족하기 위할 목적으로 제3세계에 전혀 무심했던 원조에 의해서 서구의 생산력을 전체적으로 다시 전환하는 것, 비권력을 의도적으로 그리고 용기 있게 선택하는 것(이는 군사적 수단과 중앙집권적 국가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영역에서 분산과 다양화, 노동시간의 급격한 감소, 부의 연간 생산을 노동자 비노동자 사이에 재분배함으로써 임금제도를 철폐하는 것이 그것이다.

“나는 지금 사실과 제약의 영역을 넘어서 개인적 확인, 증언 그리고 제안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다. 나는 믿는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만이 궁극적으로 시금석과 주춧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이 우상으로 삼는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는 모든 것을 비신성화 하는 것, 그리고 앞으로 가능한 힘의 수단을 쓰지 않으려는 선택인 비능력Non-Puissance은 급진적 영적 회심으로만 가능하다. 이것은 바로 자끄 엘륄이 참된 혁명의 대가라고 분명히 말하고, 그 혁명의 성공 확률이 극히 낮음을 인정하는 이유이다.

엘륄의 기독교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평을 읽는 것은 마치 외과 수술을 보는 것과 같다. 우리는 왜 그의 수술에 탄복하는가?
자끄 엘륄에게 기독교는 기원과 계시의 개념 자체 때문에 반이데올로기이다. 하지만, 역사는 이에 대해 지나친 증거들을 제공함으로써 기독교를 순식간에 이데올로기로 변형시켰다. 교리, 신앙, 자유의 엄격한 실천이 그룹 전체를 위한 타협과 가담의 담화로 가치 절하되도록 내버려두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룹의 행위나 자신의 행위를 위한 논쟁과 정당성을 찾으려 성경을 읽는 순간 우리는 수많은 기독교적 이데올로기 안에 머물게 된다. 그렇다면, 이것이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일일까? 이런 측면에서 검토한 마르크스주의적 기독교인들의 입장은 우리 시대의 기독교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란 말인가?
마르크스주의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양립할 수 없을까? 심지어 마르크스주의의 지지를 신학적으로 합법화하는 사고의 흐름이 전개되고 있다. 그래서 성경이 마르크스주의적이라고 아주 신나게 선포하며 복음서의 새로운 독서를 설립한다. 신학 자체까지 모든 것이 마르크스주의에 따라, 마르크스주의가 발견토록 하는 계급투쟁에 따라 재고되려 한다. 이런 역설적 흐름은 마르크스주의가 지나가는 시점에, 마르크스주의 한복판에서, 정체성과 신뢰성의 위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에게서도 확인된다.
시간이 흐를 수록 복음은 문화와 타협하면서 조각난다.
여기에 엘륄의 통찰력이 말하는 진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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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륄은 핑크빛 미래를 그리지 않는다. 엘륄은 우리에게 각자의 운명을 책임지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물질적 안락함을 포기하는 것처럼, 정치적 착각에 근거한 조악한 우리의 믿음을 포기하는 것이다.
설마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겠는가. 설마 킬링필드와 같은 야만적 행위를 저지르겠는가.
설마 자기 국민에게 총을 겨누는 쿠데타를 일으키겠는가.
설마 아우슈비츠나 집단 수용소 같은 비인도적 처사를 하겠는가…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이 정의나 자유, 평화의 이름으로 자행되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설마를 믿고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이상주의적 지도자들이나 시민들은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자기 위안을 위한 정치적 착각이라는 길을 통해 전제적인 국가는 시민을 효율성의 노예로 바꿔버렸다. 따라서 이 책이 내리는 경고를 겸허히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엄청난 재앙을 부를 수 있다.
엘륄은 자유를 잃은 조작 대상으로서 인간이기를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찾은 목적으로서 인간이 되기를 권유한다. 국가나 정치가 개인에게 삶의 의미와 방향을 줄 수 있다는 착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어야 한다.
- 역자 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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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무정부주의적 책이다"
"무정부"는 '지배와 정치 권력의 부재'나 '국가의 정죄' 개념이므로 '무질서와 혼란, 폭동'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예수의 제자들은 사회를 떠나라고 종용 받지 않았으나, 모든 정치적 개입을 거부하라고 권고 받는다.
권력은 부패하기 때문이며 독재 없이 정치권력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성서는 국가의 권세에 대항해서 저항과 싸움을 유발하는 반정치적 메시지를 말한다. 이것은 국가의 사탄적 성격 때문이다. 따라서 성서는 기독교인이 국가에 대항하여 영적 전투를 하도록 촉구하는 무정부주의적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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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권능이라는 유혹을 이기고 고통을 감내한 인간예수인가?
고통은 회피하고 능력만을 구하는 그리스도인인가?

인간 예수의 참모습은 그에게 닥친 고통을 뿌리까지 감내한 것에 있다.
그가 온갖 고통을 다 담당했기에 인간에게 그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

예수가 그 당시 사람과 그의 내부에 도사린 악으로 부터 받았던 질문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날마다 던져지는 뾰족한 질감의 화살촉이며, 말씀의 방패가 없으면 언제라도 촉에 묻은 독에 영혼을 빼앗길 수 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엘륄은 인간예수가 겪었을 참담함의 무게와 그의 영혼이 가닥가닥 아픔으로 치렀을 고뇌의 편린들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일깨워 주고 있다.
가벼이 지나쳤거나 갸우뚱 넘어 가버렸던 예수의 흔적이 비온 뒤 개인 날 선명해지는 풍광처럼 그의 영혼을 통하여 우리의 흐릿한 의식을 흔들어 깨우고있다.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자끄 엘륄은 1912년 프랑스의 보르도에서 태어나 법률학자, 사회학자, 철학자, 신학자, 환경운동가, 프랑스 개신교 전국위원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53권의 저서와 100여편의 기고물을 남기고 1994년 82세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기술, 선전, 정치, 혁명, 대도시, 돈 등 현대 사회의 현상들을 분석한다. 그뿐 아니라 본래의 모습을 벗어난 기독교에 대한 고찰 및 비판과 더불어 기독교 윤리로서 소망과 자유를 제시하면서, 기독교인이 소명과 책무를 강조한다.

10,000 → 9,000원 (10.0%↓) 소득공제도서정가제500
유대인들이 요나서를 예언서로 인정한 것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이유, 즉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다.

요나서에 대해 우리는 암묵적인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다. 그것은 사건들의 역사적 실재를 의심하고 단지 거기에서 도출된 윤리적 교훈만을 의미 있는 것으로 보는 자유주의적 관점과 요나서의 모든 부분을 역사적인 사실들에 대한 기록으로 간주하는 보수주의적 관점이다.


엘륄은 제3의 길을 제시한다. 그는 선지서의 본질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요나가 선지자인 것은, 그가 기이한 사건들을 경험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사실 자체 때문이란 것이다.

엘륄은 요나서에서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말하며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한다. 요나서는 철저하게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요나서 해석의 키워드이다.


요나의 선민의식과 배타성과 편협성은 오늘날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마땅히 받아야 할 심판에서 구원받고도 여전히 세상에 대해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면서도 독선에 사로잡혀 있는 요나에게서 한국교회의 자화상을 볼 수 있다.


요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며 행동이다.

모든 사람은 소명을 인식한 순간 도피하기 시작하지만, 하나님은 택한 자를 추적하신다. 하나님은 택한 받은 자가 자신의 소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모든 자연계를 움직이게 하신다. 하나님의 선택은 개별적이지만 개인주의적이지 않으며 특별한 일과 행동에 투입하려는 창조적이고 구원적이며 반드시 효과가 있다.


15,000 → 13,500원 (10.0%↓) 무료배송 상품입니다.소득공제도서정가제750
이 책은 로마서 9, 10, 11장 및 12장 1~2절을 토대로 쓰인 책이다. 이 책에서 엘륄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서 유대인의 역할이 완수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유대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회심하지 않는 데 대한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엘륄은 하나님은 유대인을 통해 일을 시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유대인을 통해 일을 마칠 것이며, 유대인이 자신들의 메시아를 인정할 때 하나님나라의 도래와 생명의 승리와 우주의 부활이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엘륄이 특히 강조하는 바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푼 은총과 구원의 우선순위가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맨 처음 택한 유대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유대인이 하나님에게 불순종했기 때문에 은총이 그리스도인에게 일시적으로 베풀어진 것이므로, 그리스도인이 잘못을 저지른다면 그들에게도 은총이 철회될 수 있다는 경고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본래의 가지인 유대인이 불순종함으로 그들을 아끼지 않았다면, 접붙여진 가지일 따름인 그리스도인이 불순종하면 그들 역시 아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세상 속에 있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에 속해서는 안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세상과 천국 사이에 윤리, 혹은 문화라는 다리를 놓고 그 한 가운데 안주하려고 한다.
그러나 윤리나 문화와 같은 인위적인 것으로써 신앙의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이 노력은
선택 가능한 방법 중 가장 반기독교적인 태도다.


이 책은 기독교와 관련하여 서구 사회의 흐름을 분석하고, 그러한 분석을 기초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좌표를 성경적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한다. 이 책의 메시지가 한국 교회의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명 유익한 통찰을 제공해 줄 것으로 믿는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한국 사회의 흐름과 한국사회가 세워져 있는 토대, 즉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사상적 구조 등을 분석하고 그것이 한국 교회와 어떤 연관을 맺고 한국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집중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쟈크 엘룰은 서구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좌표를 성경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할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귀중한 지침을 준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접하게 될 쟈크 엘룰의 메시지는 서구 사회에서는 대단한 용기와 신앙의 확신이 없으면 주장하기 힘든 내용임을 기억하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데 다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실존적 체험을 바탕으로 성경적 가치를 따라 살려고 애쓰며 동시에 성경적 가치를 삶의 현장에 심기 위해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조그만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 글을 옮기면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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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을 유사하다고 말하지 마라
이슬람과 기독교는 결코 유사하지 않다


자끄 엘륄 사후에 출판된 유작이며 서구 기독교의 쇠락과 이슬람의 팽창에 대한 경고의 글로 영미권보다 먼저 한국어로 번역된 불어 완역판!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 차이를 위장하는 세가지 접근(아브라함의 자손, 유일신론, 책의 종교)이 기만적 방법임을 명확히 드러내는 엘륄의 통창력을 마주 대할 것이다.
- 역자 서문중에서 -

이슬람의 알라는 완전한 독단 가운데 자비를 드러내는 고독한 주권자이다. 인간의 삶에 관여하여 약함과 고통을 나눔으로 자비를 드러내는 성서의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자신의 계획에 참여하도록 협력을 촉구 하는 하나님이다. 이슬람은 기독교와 관련없는 종교이며, 기독교와 어떠한 공통점도 없다.
- 자끄 엘륄 -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자끄 엘륄은 1912년 프랑스의 보르도에서 태어나 법률학자, 사회학자, 철학자, 신학자, 환경운동가, 프랑스 개신교 전국위원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53권의 저서와 수많은 기도물을 남기고 1994년 82세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기술, 선전, 정치, 혁명, 대도시, 돈등 현대 사회의 현상들을 분석한다. 그뿐 아니라 본래의 모습을 벗어난 기독교에 대한 고찰 및 비판과 더불어 기독교 윤리로서 소망과 자유를 제시하면서, 기독교인의 소명과 책무를 강조한다.

14,000 → 12,600원 (10.0%↓) 무료배송 상품입니다.소득공제도서정가제700
잊고 있던 예수의 말씀에 대한 심도 있는 조명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자끄 엘륄은 1912년 프랑스의 보르도에서 태어나 법률학자, 사회학자, 철학자, 신학자, 환경운동가, 프랑스 개신교 전국위원으로 다양한 활도을 하면서 53권의 저서와 수많은 기고물을 남기고 1994년 82세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기술, 선전, 정치, 혁명, 대도시, 돈 등 현대 사회의 현상들을 분석한다. 그뿐 아니라 본래의 모습을 벗어난 기독교에 대한 고찰 및 비판과 더불어 기독교 윤리로서 소망과 자유를 제시하면서, 기독교인의 소명과 책무를 강조한다.
자끄 엘륄
1912년 보르도 태생.
1937년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의 연구부장으로 지명되었으나 비시(Vichy) 정부에 의해 해임되었다. 1936~1939년 사이에 프랑스 정계에 투신하여 활동하였고, 1940~1944년에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열렬히 가담했으며, 1953년부터는 프랑스 개혁교회의 총회 임원으로 일해왔다. 법학박사인 그는 수많은 책을 저술하여 사회학자, 신학자, 철학자로서 널리 알려졌다.
보르도대학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근무하였으며 『신앙과 삶』(Foi et Vie)의 편집주간으로 활동하였다. 그가 죽은 후 2002년에 이스라엘 얏 바셈(Yad Vashem)재단에 의해 나치 치하의 유대인 가족들을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준 것이 밝혀져 “열방 가운데 의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시리즈 소개 | 세트 | 세트낱권구성
자끄 엘륄 / 도서출판 대장간
가격: 35,000원→31,500원
자끄 엘륄 / 도서출판 대장간
가격: 22,000원→19,800원
자끄 엘륄 / 도서출판 대장간
가격: 20,000원→18,000원
자끄 엘륄 / 도서출판 대장간
가격: 25,000원→22,500원
자끄 엘륄 / 도서출판 대장간
가격: 25,000원→22,500원
자끄 엘륄 / 도서출판 대장간
가격: 12,000원→10,800원
자끄 엘륄 / 도서출판 대장간
가격: 18,000원→16,200원
자끄 엘륄 / 도서출판 대장간
가격: 25,000원→22,500원
자끄 엘륄 / 도서출판 대장간
가격: 22,000원→19,800원
자끄 엘륄 / 도서출판 대장간
가격: 22,000원→19,800원
자끄 엘륄 / 도서출판 대장간
가격: 9,000원→8,100원
자끄 엘륄 / 도서출판 대장간
가격: 12,000원→10,800원
자끄 엘륄 / 도서출판 대장간
가격: 25,000원→22,500원
자끄 엘륄 / 도서출판 대장간
가격: 15,000원→13,500원
자끄 엘륄 / 도서출판 대장간
가격: 15,000원→13,500원
자끄 엘륄 / 도서출판 대장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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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대장간 출판사 자끄엘륄총서 세트 (전34권)
저자자끄 엘륄
출판사도서출판 대장간
크기set
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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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2023-10-31
목차 또는 책소개상품설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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