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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
성경의 결론이자
가장 상징적이고 난해한 책에 관한
‘하나의 해석’을 말하다!저자는 ‘부분적 과거론’을 중심으로 한 다차원적 관점에서 요한계시록을 1세기 교회에게 주는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로 해석하고, 이로부터 오늘날 한국교회의 숙제인 공공선교적 적용을 찾는다!
[책소개]총 403절로 구성된 요한계시록, 하지만 이에 대한 해석은 훨씬 방대하고 다양하다. 그러면 요한계시록 자체가 제시하고 요청하는 해석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요한이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찾는 방법이다. 1세기 로마제국과 불신 유대인들이 일곱 교회를 박해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교회들을 통해 사랑과 정의로 세상 나라를 다스리심으로 기어이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셨다. 그런데 바로 이 메시지가 오늘날 주목받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공공신학 및 선교적 교회론과 상통한다.
주님께서는 1세기 일곱 교회처럼 공공선교적 공동체를 추구해야 하는 한국교회에게 세 가지를 요구하신다. 곧 어린양의 보혈, 하나님 나라의 복음, 그리고 생명조차 아깝게 여기지 않고 주님을 신실하게 섬기려는 각오이다. 한국교회의 숙제인 하나님 나라와 복음의 공공성 회복의 여부는 여기에 달려 있다. 이 책은 이런 내용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안내서이다.
요한계시록은 성경 중에서도 기독교 이단이 가장 전용하는 책이다. 그에 반해 안타깝게도 오늘날 ‘그 책의 사람들’인 그리스도인은 ‘그 책(요한계시록)이 없는 그 책의 사람들’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이런 때에 설교자는 하나님의 특별 계시의 완성을 소망 차게 소개하는 계시록을 마땅히 바르게 해석하고 강설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성경이 65권이 아니라 66권임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계시록을 올바로 배우고 실천하는 데 열심을 내야 한다. 교회가 성경의 결론을 배우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안타깝고 큰 손실인가? 그런데 관건은 계시록의 바른 주해와 적용이다.
AD 1세기에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후, 교부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많은 주석서가 출간되었다. 그러나 특정한 주석이 절대적이거나 표준이 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모든 독자를 만족시킬만한 요한계시록 주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도 마찬가지이다. 그 누구도 계시록처럼 난해한 본문을 완벽하고 적확하게 주해하여 적용할 수는 없다. 따라서 자신의 주해 방식과 결과가 다르다고 해서 남을 적대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 해석 방법에 대한 논란이 있는 난해한 본문일수록 주해는 쉽고 간명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런 명료한 주해를 위해 무한하신 하나님의 계시 말씀을 대하는 인간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면서도 목표 달성에 대한 기대를 품고 계시록 본문을 다룬다.
저자는 <저사서문>에서 이 책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첫째, 발전 중인 신학에 보조를 맞추어 요한계시록에 관한 최근 연구물을 최대한 반영하여 다양한 해석 방법을 활용한다.
둘째, 독자의 이해를 도울 목적으로 사도 요한 당시의 역사적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시한다.
셋째,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데 필수인 구약과 제2성전 시기 유대묵시문헌, 그리고 그레코-로마 문헌 사이의 간본문성을 선명하게 밝히는 데 주안점을 둔다.
넷째, 본서는 저자인 사도 요한과 1차 독자인 소아시아 7교회 간의 편지를 통한 의사소통 방식을 염두에 두면서 하나님 나라 중심으로 공공선교적 적용을 제시한다.
누구나 동의하듯이, 요한계시록의 해석에 ‘그 해석’이란 없다. 필자는 가장 설득력 있는 ‘하나의 해석’을 설교자와 성도에게 제공함으로써 설교단이 풍요롭게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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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주 내용은 복음입니다. 당연하죠. 구약도 복음, 신약도 복음입니다. 구약은 율법, 신약은 복음이 아닙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체가 복음입니다. 인간이 범죄 한 후에 메시아를 약속하실 때, 인간의 행위를 전제하지 않았습니다(창 3:15). 그것은 은혜의 약속이었습니다. 노아의 방주도 그러하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자녀를 주심도 그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은혜의 복음으로 되었습니다. 출애굽기의 성막도, 레위기의 율법도, 선지서의 메시아 약속도 모두 복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그 복음의 결론이요 절정입니다. 성경은 복음으로 시작하였다가 요한계시록에서 율법이나 행위로 마무리 짓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도 복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요한계시록은 복음 중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중의 복음 요한계시록』『복음 중의 복음 요한계시록』은 도서출판 하림이 요한계시록에 대한 바른 해석을 제공하기 위해 출판한 강해집입니다.『복음 중의 복음, 요한계시록』은 독자들에게 요한계시록이 더는 낯설거나 신비로운 책이 아닌 친근하고 편안한 책임을 알게 할 것이며,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간절히 기다리며 이 땅을 거룩한 성도로, 강력한 군사로 살게 할 것입니다.
『복음 중의 복음 요한계시록』은 요한계시록을 읽는 몇 가지 관점을 제시합니다. 먼저 요한계시록은 복음이라는 관점입니다.
두 번째로 요한계시록은 단지 미래에 될 일만을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세 번째로 요한계시록은 수수께끼 책이 아닙니다.
네 번째로 요한계시록은 교회로 시작해서 교회로 마치는 성경입니다.
다섯 번째로 요한계시록은 선입견을 버리고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여섯 번째로 요한계시록은 풀어내는 책이 아니라 읽으면 알 수 있는 책입니다.
일곱 번째로 요한계시록의 초점은 어린양과 하나님의 보좌입니다.
여덟째로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이겨라” 입니다.
아홉 번째로 요한계시록은 진노와 심판이 아니라 구원에 초점이 있는 책입니다.
열 번째로 요한계시록은 시간의 순서를 따라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열한 번째로 요한계시록은 단지 종말론이 아닙니다.
열두 번째로 요한계시록은 구속사로서 원복음의 성취와 완성을 말하고 싶은 책입니다.
열세 번째로 복음에 확실한 지식이 있는 자가 보아야 바르게 볼 수 있습니다.
열네 번째로 다 이루어진 일을 증언하고 다시 보게 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열다섯 번째로 인, 나팔, 대접에 대해 당시의 상징성을 인지하고 읽어야 합니다.
열여섯 번째로 마지막으로 아주 중요한 것은 “비밀”이란 단어를 오해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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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0 → 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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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은 감춰진 수수께끼인가?
다채롭고도 인상적인 드라마로 초대하는 요한계시록 강해서!수수께끼 같은 요한계시록을 다채롭고도 인상적인 ‘드라마’로 읽게 하는 요한계시록 강해서. 요한계시록만큼 사랑과 오해를 한 몸에 받아 온 책은 드물다. 마이클 윌콕은 일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요한계시록에서 요한의 메시지를 파악하고 오늘날 그 메시지를 필요에 따라 적용할 수 있다고 확신하며, 우리를 요한계시록의 다채롭고도 인상적인 드라마에 초대한다. 요한계시록은 초대교회에 주어진 말씀이면서 또한 오늘날의 교회에도 강렬하게 드러내 보이시는 주님의 사랑의 메시지다.
*이 책은 BST 시리즈 『요한계시록 강해』의 표지를 바꾸고, 본문 전체를 다시 정비하여 내놓은 개정판입니다.
[출판사 리뷰]상상력과 지성으로 이 비밀에 도전하라!요한계시록은 비밀로 가득 차 있다. 특별한 성경적 의미에서나, 현대적 의미에서 그렇다. 모든 비밀이 그렇듯, 그것은 사람을 뒷걸음치게도 하고 끌어당기기도 한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경 66권 중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을 좋아하거나 매우 싫어하고, 진리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을 교묘한 공식과 숫자의 도표에 기초한 인위적 방식으로 해석하려 하기도 한다.
저자 마이클 윌콕은 맨 처음에 요한에게 이 편지를 받았던 겸손한 이들이 던졌던 꾸밈없는 질문, 즉 “그는 그다음에 무엇을 보았는가?” 하는 질문으로 되돌아가려 했다. 그는 요한계시록에서 면면히 빛나는 ‘설교적 특성’에 주목하여, 요한계시록의 본질에 접근하도록 돕는다. 이 진리는 지성을 사용해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교회는 상상력을 동원해야만 이 진리를 생생히 체험할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 도전한다.
“진리는 음악과 색과 감촉, 심지어 맛과 냄새로 무장한 상징이 풍성하게 행진하는 모습으로 제시된다. 사람의 지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상상력을 사용해서 그리스도를 섬겨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은가? 요한의 위대한 환상을 새롭게 인식할 때, 우리는 틀림없이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리스도를 섬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_저자 서문 중에서
한 편의 드라마로 안내하는 요한계시록 강해요한계시록에 대한 셀 수 없는 주석서들이 있지만,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요한계시록을 실제로 읽고 요한의 메시지를 파악해서 자신의 필요에 적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은 많지 않다. 요한계시록은 난해하고 이상해 보이지만, 분명 특정한 시기의 교회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세대의 교회를 위해 쓰였다. 저자는 일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요한계시록에서 요한의 메시지를 파악하고 오늘날 그 메시지를 필요에 따라 적용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요한계시록을 여덟 장면으로 된 하나의 드라마로 볼 수 있게 독자들을 인도한다. 전통적인 장절 구분이 도리어 요한계시록 읽기를 어렵게 만들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장별 순서가 아니라 주제에 따라 분석하면서 요한계시록 안에 있는 상징과 숫자의 의미를 해석한다. 또한 요한계시록의 진정한 중심 메시지는 성경 외의 배경 지식이 전혀 없어도 이해할 수 있다는 확신에 따라, 성경의 다른 부분들을 참조하면서 요한계시록을 해설해 나간다.
요한계시록, 복음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그림책흔히 비밀로 여겨지곤 하는 요한계시록의 본문들은 수수께끼가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공개되어 있는 비밀이며, 이미 계시된 비밀이다. 이 계시 하나하나는 실제적 교훈을 가르쳐 주며, 요한계시록에서 말하고 있는 것 역시 성경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복음이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많은 환상은 단지 미래의 소망일 뿐 아니라 현재 상황에 대한 묘사로도 이해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의 승리는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삶과 죽음, 부활 때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창세기에서 유다서에 이르는 65권의 책에 더해진 마지막 한 권의 의미는 무엇일까?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 배울 수 없는 새로운 어떤 것도 말해 주지 않지만, 예수님은 이것을 ‘상상의 성례’로 우리에게 주셨다. 요한계시록은 기독교 진리를 우리가 성례처럼 사용하도록 그림과 멋진 영상으로 표현한 하나님의 ‘멋진 그림책’인 것이다. 우리가 너무나도 자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복음에 대해 심장이 뛰고 영혼이 불타오르도록 하기 위해서다. 저자의 이러한 해설을 따라가다 보면, 책을 덮을 때쯤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보증’임을 깊이 체감하게 될 것이다.
[책의 특징]- 쉽고 논리적인 성경 강해와 주제별 본문 해석
- 요한계시록 전체를 하나의 드라마로 보고 큰 틀에서 이해하도록 설계도 제공
- 요한계시록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는 가운데 세부 사항을 살펴볼 수 있는 적절한 분량
- 여러 요한계시록 주석과 신학자들의 이론을 비교·평가해서 중요한 이슈 파악에 도움 제공
- 개인 또는 그룹 성경 공부에 활용할 수 있는 연구 문제 수록
[독자 대상]- 요한계시록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목회자
-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는 데 도움을 얻고자 하는 신학생
- 요한계시록을 올바로 읽어서 믿음이 성장하기 원하는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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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은 신약성서 중에서 가장 반제국주의적인 문서이다. 요한계시록은 종교적인 책인 동시에 정치적인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이병학 교수가 요한계시록을 분단된 한반도의 상황에서 읽고 사회사적, 해방신학적, 그리고 여성주의적으로 해석한 『제국과 계시』는 독창적이고 탁월한 새로운 신학적 목소리이다.
엘런 뵈삭(Allan A. Boesak)은 요한계시록을 남아프리카의 상황에서 해석했고, 파블로 리처드(Pablo Richard)는 요한계시록을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에서 해석하였다. 이병학 교수는 제3세계 신학자의 일원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요한계시록을 한국과 동아시아의 상황에서 해석하는 대표적인 성서신학자이다.
이 책의 저자는 로마 제국의 담론과 대조되는 약자를 위한 요한계시록의 담론을 설득력 있게 서술한다, 이러한 요한계시록의 담론은 수많은 무고한 자들을 희생시키는 로마의 제국주의 지배를 합법화하고 정당화하는 제국의 담론을 전복시킨다. 요한계시록의 중요한 주제를 20개장으로 나누어서 해석한 그의 통찰력과 해석력은 탁월하고, 신선하다, 그는 이 책의 각 장을 쓰는 작업이 그에게 있어서는 실로 새 예루살렘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정의, 평등, 평화, 인권, 여성, 노동, 환경, 그리고 민족통일을 위한 투쟁의 장이었다고 고백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인가? 그는 카이로스인 지금 현재의 시간에 하나님을 예배하고, 참된 증인이신 예수를 따르고, 하늘에 살아 있는 순교자들과 죽은 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이루지 못한 꿈을 되찾아서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불의에 저항하고, 형제자매적인 평등한 공동체를 상징하는 새 예루살렘을 선취하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사는 것이 성서적이고, 윤리적이고, 인간적이라고 말한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마지막 음성이다. 그는 이 책에서 요한계시록이 어떤 책이며, 왜 우리가 요한계시록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폭력의 역사와 고난의 역사는 지금처럼 이대로 계속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로마의 식민지의 변두리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한 예수가 하늘의 중심에 위치한 천상의 궁전의 보좌에 메시아로서 앉아 있으며, 또한 천상이 폭력의 역사와 고난의 역사를 단절시키기 위해서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그는 바빌론의 제국주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제국의 담론과 대조되는 약자를 위한 요한계시록의 담론을 설득력 있게 서술한다. 바빌론의 제국주의는 과거에도 있었고 오늘날에도 있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는 오늘날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로 대체될 수 있다. 그는 카이로스인 지금 현재의 시간에 하나님을 예배하고, 참된 증인이신 예수를 따르고, 하늘에 살아 있는 순교자들과 죽은 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이루지 못한 꿈을 되찾아서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불의에 저항하고, 형제자매적인 평등한 공동체를 상징하는 새 예루살렘을 선취하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사는 것이 성서적이고, 윤리적이고, 인간적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요한계시록을 연구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고, 설교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요한계시록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고, 교회생활과 목회를 활성화시킬 수 있고, 그리고 소종파 집단들의 요한계시록 왜곡으로 인한 막대한 개인적 및 사회적 피해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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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와 해설이 어우러진 스토리텔링식 전개!
이 한 권의 해설서가 계시록에 대한 통찰력의 깊이를 더해준다.
깊은 통찰과 역사적 사실로 꿰뚫는 계시록의 진수,
이보다 쉽고 온전한 계시록 해설서는 없다!
성경, 역사, 신학, 문화, 그리고 변증학의 모든 영역을 넘나드는
양형주 목사의 탁월한 해석과 적용이 돋보이는 쉬운 해설서!
요한계시록은 말씀을 사모하는 많은 성도에게도 여전히 모호하고 난해한 책 중 하나이다. 마치 에베레스트산 정상과 같이 늘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지만 막상 산을 올라 정복하기에는 벅차고 부담스럽다. 계시록의 처음 시작과 끝은 그래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4장부터 시작되는 7인, 나팔, 대접 환상으로 들어가면 마치 어둡고 복잡한 미로를 지나는 것 같아 이해하기 어렵다. 계시록 안에 담긴 용과 짐승을 비롯한 무시무시한 환상과 상징들, 666과 같은 암호 같은 숫자들, 그리고 계시록의 복잡한 구조 등은 계시록을 이해하는 걸림돌이다. 그러다 보니 계시록을 가능한 회피하고 다루지 않거나 다루더라도 미래를 콕 짚어 알려주는 예언의 책 정도로만 다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한계시록은 그 내용의 난해함과 모호함으로 인해 종종 극단적인 분파주의자나 이단 집단들이 자신들의 극단적인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기에 좋은 근거자료가 되어왔다. 여기에 신사도운동과 신비주의 예언운동이 추가되면 그 영향력은 몇 배로 증폭된다. 최근 들어 이러한 영향력은 유튜브로 인하여 그 파급력이 더 커지고 있다. 왜곡된 해석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임박했다고 주장하는 검증되지 않은 종말론을 무차별적으로 살포하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우후죽순으로 일어나는 여러 이단의 요한계시록 해석도 난무하고 있다. 이들의 해석도 하나하나 살펴보면 임박한 종말론의 일종이 대부분이다. 마지막 때에 천년왕국이 자기네 단체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성도들이 바른 요한계시록 해석을 배워 분별력을 갖고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동안 요한계시록에 대해 견지했던 소극적인 자세로 인해 성도들은 건강한 분별력 없이 너무나도 쉽게 이런저런 자극적이고 그릇된 해석에 미혹됐다. 2천 년 교회 역사를 통해 형성되었던 요한계시록에 대한 양극단의 두 흐름은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성도들은 계시록에 무지하고, 그래서 궁금해 여기저기 눈을 돌리다 보면 주변에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그릇된 종말에 끌리게 되고, 이단들의 요한계시록 해석에 혹하게 된다. 그래서 성도들은 계시록을 가능한 한 회피하던지, 아니면 그릇된 해석으로 빠져드는 양극단 현상을 보인다.
이러한 악순환이 더 이상 계속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요한계시록을 건강하게 이해하고 바로 알아야 한다. 이에 이 책을 펴내게 된 것이다. 이 책은 그동안 펴냈던 <평신도를 위한 쉬운 성경 시리즈>의 세 번째로 기획되어 나온 해설서로, 요한계시록의 건강한 이해를 돕기 위해 기획되었다. 계시록의 자세한 이해를 돕기 위해 계시록 문단별로 각 구절을 건너뛰지 않고 바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하나 빠짐없이 짚어나갔다. 그러다 보니 양이 많아졌지만 계시록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고, 이 책을 차분하게 반복해서 읽다 보면 건강한 계시록 해석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계시록을 많이 읽으라. 그리고 많이 먹으라. 어떤 그릇된 해석에도 단호하게 거부하고 건강하고 바른 신앙을 가진 성도로 당당하게 서라!” 저자의 울림은 이 책을 통해 깊은 통찰과 역사적 사실로 정곡을 꿰뚫는 계시록의 진수를 만끽하게 해준다. 말세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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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0 → 15,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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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 → 7,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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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은 적그리스도, 말세에 나타날 재앙, 666 등에 대하여 말하기보다 다른 성경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즉 계시자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주님께서 요한에게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고 하시면서 모든 관심이 자신의 몸인 교회에 있음을 보여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영원한 운명공동체이다.
지금도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인 지상의 교회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눈동자를 고정시키시고 살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살아야 한다. 주님은 교회와 함께 하신다. 주님의 관심이 교회에 있다면 우리의 관심도 이 땅의 모든 교회에 있어야 한다.
바울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소유하려고 했던 보화가 바로 주님이었다. 바울은 우리에게 진지하게 도전하고 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 13:5).
성경이 아멘으로 마무리하고 있음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멘이란 “언약대로 이루어 주소서”라는 의미이다. 하나님 나라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최종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할 것이며, 모든 것을 완성할 것이다.
주님의 승리가 곧 성도들의 승리이다. 성도들은 그 날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럴 때 인생관과 가치관 그리고 세계관이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장차 될 일을 교회에 계시하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분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시자 요한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화답하며, 주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 것을 선포하면서 아멘으로 마치고 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로 시작해서 아멘(계 22:21)으로 마치고 있다.
요한계시록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계 1:1)로 시작해서 아멘(계 22:21)으로 마치고 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보고 바로 그 주님이 오셔서 이 모든 것을 성취하셔야 함으로 “마라나타”를 외치고 있다(고전 16:22 참고). 학교에 간 자녀가 회사에 간 남편이 오후에 집에 돌아 올 것에 대하여 의심하는 사람이 없듯이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이 믿어지는 것이다.
성경이 아멘으로 마무리하고 있음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멘이란 “언약대로 이루어 주소서”라는 의미이다. 하나님 나라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최종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할 것이며, 모든 것을 완성할 것이다. 주님의 승리가 곧 성도들의 승리인 것이다. 성도들은 그 날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럴 때 인생관과 가치관 그리고 세계관이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