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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절대주의와 세속적 방탕주의를 넘어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과정에서 우리는 잘못된 신앙이 왜 무서운지를 절감하고 있다. 기독교의 메시지를 자신들만의 아집으로 전용하여 절대적 진리를 주장하는 신천지 등의 사이비 종파는 이번 일로 종교적 절대주의의 도착이 얼마나 무섭게 사람들을 몽매하게 몰아가는지를 적나라하게 증거한다. 다른 한편으로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점점 더 종교혐오증이 증가해가고 있다. 사회의 모든 잘못과 오류와 착오를 일부 사이비 혹은 유사종교 집단의 잘못으로 단정한 다음, 그를 일반화시켜 모든 종교나 진리 주장에 투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회 전체가 안고 있던 문제에 대한 대안의 성찰보다는 이 잘못을 저지른 원흉을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에게 전가하며, 분노를 표출하는 일에 몰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미혹의 시대에 올바르게 신의 지혜를 찾자는 켈러의 『길 위의 신학』은 2020년의 대한민국 사회에 중요한 물음을 던진다.
오랫동안 신앙과 충돌해온 궁금증에 대해 켈러는 이원화된 두 목소리(진보와 보수) 중 하나를 택하라 종용하지 않는다. 탐구와 성찰이라는 제삼의 길을 열어 보일 뿐이다. 신앙과 신학에 도전하는 듯 보였던 “질문”들에 제삼의 길은 매우 흥미로운 시각으로 독자들을 이끌어간다. “전능한 하나님의 개념과 이미지 남용을 넘어서, 사랑의 하나님을 성찰하고자 함”이 저자가 제시하는 제삼의 길이자 출간의 목표이다. 이 성찰의 길은 끝없는 탐구의 길이기도 하다. 저자가 마련한 탐구의 길은 신앙에 관련된 수많은 궁금증과 몸소 부딪치는 길이다. 이 기회를 통해 독자들이 때로는 시원한 해소감을, 때로는 진지한 성찰의 실마리를 얻게 되기를 희망한다.
본서는 미국 감리교의 여성신학자이자 세계적 지성인 캐서린 켈러가 2008년 ‘조직신학 개론’ 혹은 ‘신학 개론’ 수업의 교재를 염두에 두고 저술한 책이다. 당시 켈러는 미국 기독교계에 만연한 고질적인 병폐인 진보/보수, 창조/진화, 아가페/에로스 등 여러 신학적 이분법을 극복해야만 진정한 신학적 대안을 창출할 수 있다고 통찰했다. 자신만의 신학을 ‘절대적 진리’로 고집하며,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신학적 보수는 역설적이게도 그 어떤 다른 이의 진리 주장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욕망을 차이와 다양성의 이름으로 합리화하려는 세속적 방탕주의와 묘하게 닮았다. 그래서 종교적 절대주의와 세속적 방탕주의는 마치 서로를 적으로 삼다가도 필요로 하는 애증의 커플처럼 공생한다. 시대적 상황 속에서 올바르게 신학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켈러는 과정신학적 관점을 도입하여, 진리로 나아가는 길이 신학임을 올곧게 주장한다.
진리는 결국 올곧게 존재하지만, 그 진리에 이르는 길은, 보스턴대학교 신학부의 웨슬리 와일드만의 이야기처럼 ‘비판적 피드백 포텐샬’(critical feedback potential)의 방법론을 적용하여, 늘 비판과 성찰의 작업을 통해 찾아져야 한다. 그것은 곧 공부의 길이고, 올바른 길과 진리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지적 성찰의 작업을 동반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지적 성찰이란 오로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작업에만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 시대의 아픔과 고민과 절망에 ‘함께-고난당하는-열정’(com/passion)을 가지고 사랑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지적 성찰은 메마른 추상의 공허한 탁상공론에 그칠 뿐 아니라 나아가 진리로 나아가는 길을 차단하고 만다. 켈러는 ‘함께-고난당하는-열정’(com/ passion)이 곧 ‘긍휼’의 본래적 의미라고 해석한다.
본서는 신학적 성찰이 부재한 한국 기독교와 교회가 어떻게 진정한 교회, 사회를 변혁하는 교회로 거듭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요한계시록 해석의 세계적 전문가인 캐서린 켈러 교수가 쓴 이 책은 휴거와 내세 중심의 현실도피적 종말론 대신에 현실 변혁과 치유 중심의 예언자적 종말론을 보여준다. 이 책은 계속되는 팬데믹 사태뿐 아니라 전대미문의 기후재앙들이 더욱 악화되어 지구가 점차 생명이 살 수 없게 바뀌고 있는 암울한 현실 앞에서, 요한계시록을 치열하게 재해석함으로써 인류의 희망을 모색한다. 저자는 계시록이 ‘세계 종말에 대한 예고’가 아니라 오늘날 더욱 절박해진 ‘하느님의 역사 변혁의 꿈들’로 풀어낸다.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당한 소종파들뿐 아니라 대다수 신자들이 묵시록을 ‘세계 종말에 대한 예고’로 믿고, 기후붕괴와 대멸종 사태를 ‘휴거와 천년왕국의 선행조건’으로 믿기 때문이다.
저자는 계시록의 일곱 가지 표징들 속에서 메시아(재림)를 기다려왔던 신앙공동체들의 간절한 희망이 계속 배반당했던 집단적 트라우마를 읽어내며, 세계체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역사 변혁을 위한 저항의 원동력을 찾아내어 신자들의 정치적 책임과 예언자적 희망을 제시한다. 세상을 철저히 파괴하는 악의 권세에 맞서 하느님의 정의가 최후승리한다는 묵시록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악의 권세를 끝장내는 하느님의 폭력에 대한 믿음이다. 따라서 저자는 최후심판을 그리스도인들이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자행해왔던 폭력에 관심을 기울인다. 즉 박해에서 벗어나 제국의 종교가 된 그리스도교가 마지막 전쟁-대파멸-구원 시나리오를 무기로 삼아 계시록을 “스스로 성취하는 예언”으로 만드는 것이 왜 요한이 보았던 하느님의 꿈을 철저하게 왜곡하는 것인지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또한 구약성서의 희망의 종말론이 왜, 어떻게 더욱 극단적 묵시론으로 바뀌게 되었는지, 계시록이 강조했던 반제국주의는 왜 정통신학에서 사라졌는지, 그리스도인들조차 왜 자본주의와 결탁하여 지구 파멸을 재촉하는지를 분석하고, 계시록의 독특한 하느님 이해가 오늘날 왜 인류에게 마지막 희망을 주는지를 밝힌다.
끝으로 인류의 미래에 대한 일곱 가지 섬뜩한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교회의 선택을 모색한다. 인류가 직면한 묵시적 종말에 맞서는 것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묵시록의 혁명적 믿음을 이어받는 길이며, 또한 하느님의 진정한 위로를 발견하는 길인지를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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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배를 타고 있다.
모두 익사하든지, 함께 헤쳐 나가든지.기후변화와 생태위기는 왜 더는 진전하지 않을까? 이 문제는 우리에게 쉬운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런데 모두가 기후변화와 생태위기를 타개하기에는 ‘이것이’ 대안이라며 확신에 차서 앞장서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문제의 일부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재의 복잡성을 쉽지 않게, 다시 말해 어렵게 이해하는 일이다.
인간은 지구의 지배자가 아니다. 빙하가 녹고, 물이 불어나고, 가뭄이 퍼지는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지구는 인간의 지배를 용납하지 않고 있다. 지구적 위기들은 곧 인간과 비인간 모두가 함께 얽힌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오늘 우리의 정치가 유념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어떤 것도 존재의 얽힘으로부터 예외되거나 열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와 생태위기 시대 우리의 정치는 이 ‘얽힘’을 정치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인간의 하나님인가,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인가.인간집단 속에서 권력은 언제나 집단의 규칙들을 능가하는 초월적 권력을 희구한다. 그리고 오늘날 인간문명은 지구와 자연으로부터 스스로를 예외화할 수 있는 권력을 집단적으로 추구하고 만끽하면서 여기에 이르렀다. 오늘 우리의 정치는 여전히 성서의 본문들을 제국주의적 통치권력의 모습을 따라 읽으면서 예외적인 통치권력을 실천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사역에서 모든 존재는 서로에게 모든 것을 빚지고 있다. 우리의 성패는 서로에게 달려 있으며, 그렇기에 우리는 “같이 되어간다.” 지금까지 인간중심주의에 기반했던 기독교의 구원 신학이 비인간 존재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지구 위에 건설하기 위해 비인간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옮긴이 해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