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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이 책은 사무엘상(1 Samuel)과 사무엘하(2 Samuel) 모두를 다루고 있다. 사무엘상이 사울 왕 시대를 다루고 있다면 사무엘하는 다윗 왕 시대를 다루고 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랐던 왕이 사울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그의 영적인 교만과 불순종으로 인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게 하셨다. 하나님은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나라와 그 위의 영원함을 약속하셨으며 이것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로 이어지게 하셨다. 이 과정에서 사무엘 선지자의 역할이 컸다. 그는 정직하고 부패하지 않은 성직자로, 다윗의 멘토 역할을 했다.
엘리 제사장 때 언약궤, 곧 법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겼다. 법궤는 승리의 상징이었으나 이를 빼앗긴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구속사적으로 볼 때 이는 시대가 법궤지상주의에서 떠나 영적 종교로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즉, 제사중심에서 말씀 순종으로 바뀐 것이다. 제사가 법궤지상주의를 반영한다면 말씀 순종은 영적 종교를 반영한다. 이는 영적 계시의 발전을 의미한다. 이 변화의 중심에 사무엘이 있다.
사무엘은 모든 선지자의 조상으로 선지학교를 세웠다. 그는 왕 세우는 것을 싫어하고 하나님 말씀만 통치하기를 바랐다. 그는 미스바 부흥운동을 일으켰다. 이는 새 영적 종교로 진입을 의미한다.
사울은 제사장이 아니면서도 스스로 제사를 지낼 만큼 불순종하는 왕이 되었다. 이는 나름대로 옛 종교, 의식종교에 매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사울은 사무엘의 마음에 맞지 않았다. 이에 반해 다윗은 사무엘의 마음에 맞는 인물이었다. 다윗은 제사보다 상한 심령을 원하신다.고 할 만큼 영적 종교를 추구했다.
사무엘은 레위의 후손으로 그의 이름은 하나님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이름은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는 뜻을 가진 사알 메엘과 발음이 비슷하다. 그는 사사시대와 왕정시대를 연결하는 과도기의 주역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사사시대의 최후의 사사요 왕정시대의 최초의 선지자로 간주되고 있다. 그는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자신은 신정정치(Theocracy)를 주장했다. 이스라엘이 다른 이방 나라처럼 왕 세우기를 고집하므로, 하나님은 왕을 허락했다. 하나님이 왕을 허락한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의 징계였다.
사울(Saul)은 베냐민 지파 출신이다. 당시 이 지파는 가장 미약했다. 하지만 미약했기 때문에 오히려 지파간의 시기와 질투의 기회가 줄어 백성을 연합하는 데는 유익했다.
사울이 버림받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블레셋과 전투 때 사무엘을 기다리다 지쳐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번제를 집행했다. 제사장직을 침범한 것이다. 둘째, 불순종했다. 아말렉과 전투 때 모든 소유를 진멸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으며, 또 아각 왕을 살려주었다. 아각은 후에 사무엘에게 죽지만 에스더서에 나오는 그 후손 하만이 이스라엘을 멸하려고 계획했다.
사울이 미친 자가 되기도 했고 사위인 다윗을 죽이고자 했다. 이 모두는 악신의 역사다. 미친 것은 우울증 내지 정신착란증세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다윗을 죽이고자 했지만 다윗은 달랐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와도 내가 어찌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치리이까? 하며 놓아주었다. 엔게디 굴속에서 사울의 겉옷자락만 벤 사건이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져오게 한 사건이 그 보기다.
블레셋이 침투하자 사울은 결국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을 만큼 영적으로 타락했다. 이 여인은 가나안 후예이다.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했다. 길보아 산에서 패전한 그는 세 아들과 같이 죽음을 맞았다. 그 가운데 요나단이 있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해 슬픈 노래를 지었다. 제목은 활 노래로 싸움터에서의 노래에 해당한다.
사울의 죽음과 관련해 아말렉 소년의 보고에 대한 논란이 있다. 사울이 자기의 칼에 엎드려 자결했다는 구절(삼상31:4,5)과 아말렉 소년이 사울의 요구에 따라 그를 죽였다는 구절(삼하1:9,10)이 서로 모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구절은 모순이 되지 않는다. 그 이유의 첫째는 아말렉 소년은 사울의 자결을 보고 자기의 공로를 나타내기 위해 거짓말을 하여 자기가 죽였노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면류관과 손의 고리를 가져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둘째는 사울이 자기의 칼 위에 엎드려졌으나 그 때에 죽지 못하고 아말렉 청년에게 죽여주기를 청하였다는 점이다.
다윗(David)은 30세에 등극하여 헤브론에서 7년, 예루살렘에서 33년, 모두 40년간 통치했다. 다윗은 통치기간 중 세 번 기름부음을 받았다. 처음에는 사무엘로부터 받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두 번째는 헤브론에서 유다족속만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는 헤브론을 수도로 정하고 7년 6개월 동안 통치했다. 그가 유다의 왕이 된 것은 블레셋의 도움이 있었다. 당시 블레셋은 이스라엘 양분 정책을 추구했으며,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의 전쟁 장기화를 노렸다. 세 번째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정하고 여기서 33년간 통치를 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성(보존, 근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다윗 성, 시온 성, 살렘, 여부스 등 다양한 명칭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존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6)며 다윗과 언약을 맺었다. 이 언약은 확실한 언약, 내 언약이라 불린다. 이것은 나타날 메시야에 관한 것으로 아담의 씨(여자의 후손), 아브라함의 씨, 다윗의 자손으로 구체화되었다.
다윗은 블레셋, 모압, 에돔, 소바, 다메석, 하맛, 암몬 등 여러 족속과 전쟁을 벌려 승리했다. 모압과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트랜스요단의 무역 로를 확보했다. 다윗왕국의 판도는 유프라테스 강에서 홍해에 이르기까지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전 지역을 망라한다. 그는 상비군, 관장(행정), 재산관리자, 왕 고문단을 두어 새 질서를 확립했으며, 종교적으로는 사독과 아히멜렉 등 두 제사장을 두어 새로운 종교제도를 확립하고 레위족속을 조직화했다.
다윗은 선행도 했지만 악행도 행해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선행으로는 요나단의 아들로 다리를 저는 므비보셋에 대해 친절과 사랑을 베푼 일이다. 친구 요나단을 생각하여 그를 왕자와 같이 대우했다. 이 일이 개인적인 선행이라면 공인으로서 선행을 한 것으로 기브온 사람들에게 공의를 베푼 일을 들 수 있다. 가나안을 정복했을 당시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을 결코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그들은 성전의 물 깃는 자들로 생활했다. 그들은 동화되지 않았다. 종족주의가 강한 사울은 그들을 학살하려 했다. 이스라엘은 개방사회지만 사울은 달랐다. 이 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3년 동안 기근이 있게 했다.
다윗의 대표적인 악행으로는 밧세바와의 불륜과 그의 남편 우리아를 죽게 한 죄, 인구조사의 실시를 들 수 있다. 다윗은 불륜과 죄악을 회개했지만 하나님은 밧세바와의 불륜으로 나은 아이를 죽게 하셨고, 칼이 떠나지 않을 것과 가정이 어려워질 것을 예언하셨다. 이 같은 예언은 다윗으로 하여금 사죄의식을 갖게 되었고 계속 그를 겸손케 만들었다. 인구조사는 하나님의 백성을 자기 소유로 알았고 권력과 무역으로 나라를 세우려 했다는 점에서 동기가 악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모세의 인구조사와 다윗의 인구조사는 차이가 있다. 모세는 20세 이상 남성을 대상으로 2번 인구조사를 했는데 그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을 위한 것이었다면 다윗의 인구조사는 군사강국을 만들어 자신의 세계의 왕국(Kingdom of World)을 세우려 했다는 것이다.
다윗의 말년에는 여러 차례 반역이 있었다. 이것은 그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다. 첫 번째 반역은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에 의해 일어났다. 압살롬이 죽었고, 다윗은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자기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눈물 속에는 회개의 심정이 담겨 있다.
두 번째 반역은 베냐민 사람 세바에 의해 일어났다. 이것은 다윗의 파벌주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압살롬이 죽자 피신해 있던 다윗을 다시 궁으로 모시는 문제가 발생했다. 다윗은 유다지파를 향해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 아니냐는 발언을 하며 앞장서도록 재촉했다. 그의 종파적인 발언은 결국 종족을 분열시키고 종파주의를 초래했다. 환영행사에 유다지파는 많았고, 이스라엘 지파는 적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상의를 하지 않았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세바가 일어나 기업이 다르다며 이스라엘을 선동해 다윗을 배반하도록 한 것이다.
세 번째는 그의 넷째 아들 아도니야에 의해 일어났다. 이 반역에 대제사장 아비아달과 군대장관 요압이 협조했다. 아비아달은 대제사장 사독에 대한 불만이, 그리고 요압은 기회주의적 태도가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나단 선지는 밧세바로 하여금 다윗을 찾아가 솔로몬이 태어날 때 계승자로 정한 사실을 다시금 확인케 했으며, 다윗은 솔로몬을 왕의 계승자로 인정한다. 솔로몬은 대제사장 사독 성막에서 기름부음을 받는다. 솔로몬이 태어날 때 하나님은 나단을 통해 여디디야란 이름을 준 바 있다. 이 이름은 제비 뽑힌(선택 된)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열왕기상에 기록되어 있다.
사무엘상과 사무엘하는 한나의 서원으로 시작해서 인구조사에 대한 범죄로 아리우나의 타작마당을 사서 그곳에 제단을 만들고 제사를 드리는 다윗의 회개의 제사로 끝을 맺는다. 그 안에는 겸손했던 사울이 불순종과 교만으로 처참한 결말을 보게 되고, 사울의 시기로 인해 힘든 세월을 보냈던 다윗이 어떻게 왕으로 다듬어지고, 왕국이 세워지는가를 보여준다.
모든 역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좋은 결과를 얻지만 불순종하면 개인도, 나라도 망한다. 왕일수록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각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는 교훈을 준다.
양창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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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이 책은 시가서 가운데 욥기, 전도서, 아가를 이해하는데 길잡이 역할을 하는 책이다. 시가서는 쉽게 읽히지만 따지고 보면 어려운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눈과 깊이를 잴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는 데 목적이 있다. 이것을 알게 되면 성경만큼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책은 없다.
'욥기'(the Book of Job)는 시가서의 첫 번째 책이다. 이 책은 우스 땅의 욥이 겪은 시련과 그로 인한 욥의 신앙의 위기가 기록되어 있다. 욥기의 저자는 알 수 없다. 욥 자신이라는 주장에서부터 엘리후, 모세, 솔로몬,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라, 이방인 등 다양하다. 모세일 것으로 보는 것은 그가 미디안 광야에 있을 때 들은 것을 기록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욥기는 고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욥을 찾아온 친구들이 그의 고난을 두고 나름대로 의견을 제기한다. 그 키워드는 '죄'다. 그의 세 친구는 영적 체험, 전통, 이성 등 각자의 신앙적 입장을 견지하며 그가 당하는 고난은 죄에 대한 벌이기 때문에 회개하라고 윽박지른다. 후반에 등장하는 엘리후는, 고난은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 말한다.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온갖 말을 지어냈다. 욥기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고난을 참고 이기면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전도서'를 'Book of Ecclesiastes'라 한 것은 70인 역에 따른 것이며 히브리 명칭은 '코헬레트'(qoheleth)이다. 이 말은 '회중'이라는 뜻을 가진 '카할'(qahal)에서 나왔다. 이 두 명칭은 '회중을 불러모아놓고 가르치는 자', 곧 전도자이다. 우리는 중국성경을 본 따 '전도서'라 했다.
전도서는 허무주의를 강조하는 장이 아니다. 이 세상은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헛되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고, 그 헛됨으로부터 자유 하도록 한다. 인생은 허무하다는 것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하나님께 엎드리도록 만드는 것이 전도서의 가치가 있다. 더 이상 헛된 세상에 굴복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는 것이다. 일의 결국, 곧 세상은 헛되니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라는 것이다(전 12:13).그는 창조의 본성에 대해 불만을 말하면서도 창조자의 존재와 공경을 의심치 않았다. 먹고 마시고 기뻐하고, 선을 행하며, 아내와 즐겁게 살고, 최선을 다해 일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최후의 심판 날을 명심하며 사는 것이 이 헛된 세상에서 할 일로 결론지었다.
'아가'(Song of Solomon)는 솔로몬이 지었음을 처음부터 밝히고 있다. 아가는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에서 붙여진 것인데, '솔로몬의 노래', '노래 중의 노래', '술라미 여인을 향한 왕의 노래', '주님과 그 백성간의 사랑의 노래'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가는 신랑 솔로몬 왕과 신부 술라미 여인 사이의 사랑과 결혼 생활에 있어서의 상호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하나님의 아내)의 관계로 이해하기도 하고,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된 교회의 관계로 이해하기도 하며, 어린 양 혼인 잔치의 기쁨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우리는 아가를 통해 단지 남녀 간의 사랑 노래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부 같은 성도들을 찾으시는 예수님과, 성도로 하여금 어린 양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기쁨을 미리 누리도록 역사하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시가서에 대한 모든 설명을 마무리해서 기쁘다. 독자 여러분의 성경을 향한 사랑이 날로 깊어져 여러분의 삶이 주님을 향한 시가 되고, 찬양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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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역대기'의 히브리 명칭은 '디브레 하야밈'(dibrei hayyamim)으로, '각 시대의 사건들' 또는 '각 시대의 말씀들'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70인 역은 '(다른 책들에서) 누락된 사건들'(paraleipomena)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사무엘과 열왕기의 보충자료로 간주했음을 보여준다. 제롬은 '거룩한 역사의 역대기 전서'라 했고, 지금의 '역대기'(Chronicles) 명칭은 루터가 맨 먼저 사용했다. 역대기는 원래 한 권으로 되어 있었으나 70인 역에서 상 하로 나누었다.
역대기의 저자는 에스라(Ezra)로 추정하고 있으며, 그가 역대기에 이어 에스라, 느헤미야를 연결된 역사로 기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다윗 왕의 연대기, 사무엘 나단 갓의 글, 아히야의 예언, 잇도의 묵시, 예후의 글, 이사야의 묵시,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의 글과 족보, 호세아 언행록 등 역사책, 연대기, 공문서 등을 폭넓게 인용했다.
역대기는 유다 왕국, 특히 다윗 왕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유다의 역사를 점검함은 물론 다윗 자손의 행적을 추적함으로써 유대 민족이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잘못 했는가를 확인하고, 미래의 좌표를 바로 세우고자 한 것이다.
'역대상'(1 Chronicles)은 창조에서부터 회복까지의 계보, 곧 아담에서 다윗까지의 족보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던 자들의 목록(1-9장), 사울의 죽음과 다윗의 통치(10-29장)를 담고 있다. 역대상의 첫 9장은 족보의 소개로 시작한다. 아담부터 바벨론 포로 이후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개관하고, 이스라엘 민족의 정통성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자신들의 뿌리부터 찾고 민족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바벨론 포로생활이 끝나 고국에 돌아갈 경우 맞게 될 여러 정황들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10장부터는 서술 방식을 이야기체로 바꾸어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역대하'(2 Chronicles)는 솔로몬의 통치(1-9장),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과 남유다 왕국의 역사, 그것의 멸망과 바벨론에서의 포로생활, 유다 백성들의 귀환을 허락하는 고레스(10-36장)를 담고 있다. 역대하는 열왕기상에 비해 솔로몬이 경건한 성전 건축가이자 현명한 통치자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가 천여 명의 후궁을 거느렸고, 이방 여인과 결혼하여 이방신의 신당을 건축하여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약화시켰다는 사실 등 그의 통치 후기에 나타난 여러 문제에 대한 기록은 제외시켰다. 분열왕국 시대의 경우 북이스라엘 왕들의 행적보다 남유다 왕국의 왕들, 특히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열왕기에 소개되지 않은 부분, 예를 들어 므낫세의 회개기도와 우상숭배 타파모습 등도 소개되고 있다.
역대기의 기록 시기는 바벨론의 포로가 된 시점이다. 바벨론에 포로로 가 있던 사람들은 '우리가 왜 지금 남의 나라의 포로가 되었을까?' '어떻게 하면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를 반성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와 있는 것은 단지 외적인 요인, 곧 바벨론이라는 강대국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영적(내적)인 요인, 곧 자신들이 섬기던 하나님을 스스로 버린 결과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역대기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불순종한 결과 바벨론 포로가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자들(the remnants)이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하게 됨으로써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의 입과 기록을 통하여 자기의 택한 백성에게 언약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역대기는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이스라엘과 유대 역사를 통해 가르쳐 주고 있다. 역대기를 통해 그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양창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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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쓴 "여호수아"(Joshua)는 모세 이후 가나안 정착에 관한 역사를 담고 있고, "사사기"(Judges)는 여호수아 이후 가나안에서의 삶을 담고 있다. 이 두 책을 보면 가나안에서의 삶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본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질문은 지금 우리에게로 옮겨진다. 주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계 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될까?
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삶 모두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를 직접 체험한 인물이었다. 그의 본 이름은 "호세아"(Hosea)였다. 호세아는 '구원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히브리어 이름을 희랍어로 바꾸면 "예수"(Jesus)이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하늘의 약속한 땅으로 그의 백성을 인도하는 예수님의 원형으로 인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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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를 함꼐 다루고 있다. 설교자들이 두 책에 대해 언급은 자주 하지만 실제 본문은 잘 다루지 않는다. 다룬다 해도 몇 가지에 한정되어 있다. 그만큼 소외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주 그리고 소외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주 그리고 많이 읽어야 할 책은 바로 이 책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돌아보고, 앞으로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당시 유다는 이집트나 바벨론 등 열강의 세력다툼 속에 있었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철저한 회개를 선포하게 하셨고, 그들의 도 넘은 우상숭배 행위를 질타하셨다. 영적인 타락이 근원적인 문제라는 말씀이다. 하지만 유다는 그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 결국 유다는 심판을 받아 바벨론에 망하고 말았다. 이 메시지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살아있는 교과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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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신약 가운데 미처 다루지 못했던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야고보서, 유다서 등 여섯 부분을 다루었다. 이로써 신약 각권에 대한 주해와 설명, 그리고 각권의 바른 이해를 위한 노력이 완결을 보게 되어 기쁘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구약의 상당 부분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미국에 있을 때 4년 동안 성경만으로 분석 작업을 했고, 또 다른 4년 동안 성경의 주요 주제 연구에 매달렸다. 그리고 신학교에서 다니엘서, 요한계시록 등을 가르치게 되면서 각권에 도전을 했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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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바울의 서신 가운데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골로새서를 한 데 묶었다. 빌립보서는 이미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이 세 서신가운데 에베소서와 골로새서 두 서신은 옥중서신으로, 서로 비슷하여 쌍둥이 편지라 한다. 이 서신을 읽다보면 그들 교회가 보인다.
(중략)
이 세 서신 모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어떻게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는가를 가르치고 있다. 이단과 사설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도 경종이 되는 서신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의 위기는 원칙의 흔들림에 있다. 원칙은 말씀에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서야 할 곳은 바로 그 말씀에 있다. 그것을 바울이 잘 가르쳐 주고 있다. 이 책이 그 길을 찾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_머리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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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Mark)은 네로 황제 때 박해 받던 교인들을 대상으로 썼다. 풍랑을 만난 사람들이다. 마가는 로마식 이름이고, 히브리식 이름은 요한이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 벗은 몸으로 도망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 사람을 마가로 보기도 한다. 그만큼 예수를 뒤에서 따랐던 인물이다.
마가는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에 살았다. 그의 집은 유명한 "마가의 다락방"으로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베푸신 곳이자 오순절 때 성령님이 강림하신 곳이다.
마가는 예수님의 직계 제자는 아니다. 베드로의 제자로, 베드로는 그를 "아들"이라 불렀다. 베드로의 사역지에서 통역을 하며 그를 도왔다. 그를 통해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관해 더 자세히 듣고 마가복음을 기록했다.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이기도 하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를 안디옥에 데려가 1차 전도여행을 함께 했다. 그런데 도중에 예루살렘에 돌아가는 바람에 제2차 전도여행 때 함께 할 수 없었다. 바울이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마가는 바나바와 함께 구브로(Cyprus) 전도를 했다. 하지만 바울의 제3차 전도여행 때는 바울 곁에 있었다. 관계가 회복된 것이다. 바울이 2차로 투옥되었을 때 바울은 소아시아에 있던 마가를 '나의 일에 유익한 자'라 부르며 데려오도록 했다. 마가는 바울에게 있어서도 매우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되고 있다. 1장 1절부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로 시작되고 있다. 십자가 사건에서도 백부장은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한다. 변화산 사건에서도 하나님은 음성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해준다.
마가복음은 이방인을 위한 복음서이다. 유대인의 관습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몇 가지 사실들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7장에서 장로들의 전통을 설명한 것이나, 예수님이 귀먹고 말이 어눌한 자를 고치시며 "에바다!"(Ephphatha)라 하셨는데, 그 뜻이 "열려라"임을 가르쳐준 것이 그 보기이다.
마가복음에는 '곧, 즉시, 바로'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이것은 마가복음이 순종의 복음인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그가 소아시아 내지전도를 하려던 바울을 따라가기보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불순종에 대한 자신의 회한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수난 기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예수님의 공생애 중 마지막 수난 주간에 대한 기사가 복음서 전체의 3분의 1을 넘는다.
많은 사람들은 마가복음이 4복음서 중에서 첫 번째로 기록되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기록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16장에서 9-20절은 나중에 첨부되기도 했다. 마가복음의 메시지 중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는 구절은 예수님 생애의 두 가지 초점, 곧 봉사와 희생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잘 가르쳐주고 있다.
마가복음은 단순히 예수님의 생애사가 아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우리의 참 구주이심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우리는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분의 삶을 이 땅에서 구현해야 할 작은 예수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마가복음을 통해 주님을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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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Isaiah)를 가리켜 성경의 축소판이라 한다.
하나님은 유다의 부도덕함과 헛된 우상숭배를 지적 하시며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고, 바벨론에 포로가 될 것임을 분명히 하셨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을 약속하시고, 장차 메시야가 구주와 주권자로서 이 땅에 오시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실 것을 말씀하셨다. 소망의 메시지를 주신 것이다.
이사야는 선지자 이사야가 쓴 것이다. 그는 남왕국 유다 사람으로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했다. 이사야는 "여호와는 구원하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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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이 책은 바른 성경 이해에 길잡이 역할을 하기 위해 고린도전서(1 Corinthians)와 고린도후서(2 Corinthians)를 하나로 엮은 것이다. 필자는 바른 성경 읽기에 관심을 가져 성경 각권에 도전했다. 장을 분석하고, 절마다 그 뜻이 무엇이며, 그것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집중하였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생각보다 결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각 절, 각 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더 깊이 알고자했다. 지금도 성경의 광맥을 파는 광부로 살아가고 있다. 주님이 힘주시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는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두 편지이다. 전서는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 썼고, 후서는 마케도니아에 있을 때 썼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제1차 선교 여행 때 세운 교회이다. 바울 당시 고린도는 헬라 본토와 지금의 펠로폰네소스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상업이 크게 번창한 도시였다. 서쪽과 동쪽에 항구를 가지고 있을 만큼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각 곳에서 몰려든 여행자와 상인들이 많아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하지만 고린도는 부패한 도시였다. 사람들이 성적으로 부도덕한 자를 가리켜 <고린도인처럼 산다.> 말할 정도였다. 이 도시가 음란하고 방탕하게 된 것은 아프로디테 신전과 그곳의 음란한 예배방식과도 연관이 있다. 신전의 여사제들이 매춘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 신전은 여러 도시에 있었고, 이방신전의 규모가 클수록 방탕의 규모도 컸다.
고린도교회는 음란하고 악한 사회 환경으로 인해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바울이 오래 그곳에 머물며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문화적 영향을 금방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교인들은 거룩한 성도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투철하게 살기보다 파당을 짓고, 심하게 음행을 저지르기도 하고, 교인 사이에 소송을 제기하는 일도 일어났다. 그뿐 아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도 왜 옛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가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만든다.
고린도전서는 흔히 교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다루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바울은 이 서신을 통해 앞서 제시된 것들은 물론 우상에게 드렸던 제물에 관한 문제, 결혼 문제, 영적 은사에 대한 남용, 성만찬, 부활에 대한 의심, 바울의 사도적 권위에 대한 의심 등 당시 교인들이 안고 있던 문제점에 대해 논리적으로, 바르게 지침을 제시했다. 이것은 고린도교인들이 바울에게 물었던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바울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과 악행들을 고려하여 어떻게 하면 그들을 신앙적으로 바로 이끌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하며 답했다. 고린도전서는 이런 배경을 안고 나왔다.
고린도후서는 죄를 범한 자에 대한 사랑과 용서,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한 구제헌금을 미리 준비할 필요성, 자신의 사도적 권위에 대한 문제들을 다루었다. 당시 고린도교회에는 거짓교사들이 침투해 교인들의 영적 질서를 흩어놓았다. 그들은 웅변술과 수사학으로 무장해 유창한 언변으로 바울을 대적하고 폄하했다. 그들의 가르침은 복음에 입각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을 큰 사도라 하였다. 바울은 그런 자들에 대해 엄히 경고하며 고린도교인들이 그들의 거짓됨에 물들지 않도록 호소했다. 그리고 진정한 사도, 진정한 교인은 무엇인가를 숙고하도록 만들었다.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는 단순한 편지가 아니다. 바울은 당시 고린도교회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당면한 교회의 문제, 신앙상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해야 하는 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진솔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고린도전 후서는 문제해결 지향의 신앙교육 지침서이다. 이 책을 통해 바울과 고린도교회를 만나고, 여러분의 신앙향상에 도움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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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최근 성경에 관한 대화를 하면서 마태복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을 들었다. 구약에서 창세기가 처음에 소개되는 것처럼 신약에서 마태복음이 맨 먼저 소개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태복음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을 읽을 때 맨 먼저 만나는 것이 마태복음이다. 그러나 1장에서 소개되는 족보 때문에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산상설교와 감람산 강화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산상수훈은 얼마나 우리를 감동을 주는가. 예수님의 말씀이 풍성히 기록되었다는 점만으로도 마태복음이 높이 평가받을 이유는 충분하다.
마태복음(the Gospel of Matthew,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은 마가복음, 누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과 함께 '사복음서‘라고 한다. 이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주제로 모든 택한 백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록되었고, 서로 모순됨이 없이 복음을 받는 대상에 따라 각기 독특하게 묘사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사복음서는 단순한 예수의 전기가 아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에 관한 역사적 기록이다. 사복음은 교회 전통에 의해 복음서로 정해졌다.1) 이는 각 복음서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을 특성 있게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은 마태가 기록했다. '레위‘는 그의 본 이름이고 마태는 제자가 된 이후 가진 이름이다. 그는 가버나움 지역에서 통행세를 받았던 세리 출신이다. 마태복음 22:19에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이란 말씀이 있다. 여기서 '돈藍 동전을 의미한다. 마태는 동전을 '노미스마(nomisma)’라 했다. 이것은 세금을 내기 위한 돈(tribute money)으로, 당시 통용되는 동전(current coin), 법적 통화(lawful money)를 의미하는 회계전문용어이다. 이것만 보아도 그의 전직을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열두 제자 중 하나가 되었다. 마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전후한 70년 경 안디옥에서 이 복음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위해, 누가복음은 이방인을 위해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마태는 이 복음서를 통해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유대인의 후손으로 메시야이심을 증거하였다. 그는 유대인들이 복음을 잘 이해하도록 했다. 언어, 문화, 지리, 역사를 유대인의 이해에 맞게 했다. 예를 들어 '하늘들藍 경우 히브리인들은 하늘 끝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고 보았고, 하나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어 하나님 개념을 하늘로 바꿔 썼다.
마태복음을 '사자복음‘이라 한다. 사자복음이란 아우구스티누스가 붙인 이름이다. 요한계시록 4:7에 나오는 4생물 중 사자가 마태복음의 성격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동물의 왕자인 사자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와 같다는 것이다. 마태복음은 그리스도를 왕(kingship)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수님이 구약에서 예언된 다윗의 자손임을 족보를 통해 보여주는 것, 예수님을 구약의 예언과 연결하여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는가를 밝힌 것 등은 유대인의 이해를 돕는다. 그리스도의 왕 되심은 천국(Kingdom of God)에 관한 말씀으로 나타난다.
또한 마태복음을 '천국복음‘이라 한다. 천국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특히 산상수훈 등을 통해 예수님이 천국에 관한 교리를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방인을 대상으로 쓴 누가복음에서는 천국을 '하나님의 나라'로 표현하고 있지만 유대인을 대상으로 쓴 마태복음은 천국이라 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Elohim, El)의 명칭을 감히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아도나이(Adonai)’라고 돌려 부를 만큼 어려워한다. 서기관이 성경을 옮겨 적을 때도 '하나님‘이란 명칭이 나오면 몸을 깨끗이 한 다음 쓸 정도였다.
마태는 예수의 탄생기사, 곧 요셉 쪽 족보를 통해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언약의 약속대로 오신 분(마 1:1)이자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러 오신 이스라엘의 왕임을 드러내고자 했다. 예수님은 다윗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계통이 있는 분, 곧 근본이 확실한 분임을 입증한다. 구약의 메시야요 하나님의 계시 역사를 완성하신 분이 바로 예수라는 것이다.2) 마태는 구약의 배경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효과 있게 정립하면서 구약이 보여주는 메시야를 신약의 그리스도로 증거 하고자 했다. 마태는 넓은 의미로 구속역사를 보았고, 예수님을 구속역사의 중심에 놓았다. 예수는 우주적인 왕이요 심판자로서 참된 왕권을 가지신 분이다.
마태는 세례와 시험을 통해 갈릴리 성역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의 소리‘를 공생애의 시작을 알려주었다. 물론 메시야적 예수의 시작은 태어나면서부터이다.
마태는 예수님의 교훈을 산상수훈(5-7장, 천국윤리), 제자파송과 명령(10장, 선교), 비유(13장, 천국의 본질), 겸손과 용서에 대한 교훈(18장, 교회의 훈련), 묵시적 교훈(24-25장, 종말론) 등 다섯 가지로 나누어 배열했다. 산상수훈은 '그의 나라 (His Kingdom)의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은 천국도덕률과 함께 종말론적 하나님 왕국을 선포하고 회개를 촉구하셨다.
마태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 없는 기록들이 많다. 특별사건기록으로는 마리아 임신과 요셉의 꿈, 동방박사 아기 경배, 이집트 피난, 헤롯의 유아학살, 가룟 유다 자살, 예수 순결에 대한 빌라도 처의 꿈, 성도의 부활, 예수님의 시신 도난설 등이 있다. 비유가운데도 가라지 비유, 감추인 보화, 값진 진주, 그물, 무자비한 종, 포도원 일꾼, 두 아들, 왕자의 결혼잔치, 열 처녀, 달란트 등 열 가지 비유들이 있다. 그리고 이적가운데 두 소경을 고치신 것, 벙어리 귀신 들린 자 고치신 것, 그리고 베드로가 물고기 입에서 한 세겔 발견한 것 등 세 가지는 마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그밖에 기록이 일반적으로 간결한 점, 메시야로서의 예수님에 대한 관심이 깊은 점(마 2:15), 복음의 특수성(마 10:5-6, 15;24)과 보편성(마 28:18-20)을 함께 강조한 점, 교회에 대한 관심(마 16:18, 18:17), 종말론적 관심(가라지 비유, 열 처녀 비유, 달란트비유, 묵시적 교훈), 천국이 그와 함께 시작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점 등이 특징으로 나타나있다. 마태복음에서만 '교회(ekkesia)’라는 명칭이 나온다.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후 예수님은 고난 십자가 처형과 고통, 부활 등을 내다보시고 예언하셨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갈 것을 말씀하셨다.
마태복음의 특성은 무엇보다 복음의 특수성(particularism)과 보편성(universalism)을 함께 보여준다는 데 있다.
특수성은 예수 족보의 소개, 셈족적인 문법(어휘)과 문장구조(용어)의 사용, 유대주의 사상과 사고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이 복음서가 유대인을 대상으로 그들과의 접촉점을 찾기 위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조와 핵심내용은 보편성에 있다.
족보는 신약과 구약의 연결고리로서의 예수, 다윗중심의 기독론을 보여준다. 신약과 구약의 연결고리로서의 예수는 구약이 여자의 씨, 아브라함의 씨, 다윗의 씨라는 표현을 통해 계속 어린 양을 예언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구약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신약은 구약에서 단절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낳고(egennesen)’ 단지 혈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예언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보여준다.
또한 우리 성경에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세계'로 기록하고 있지만 헬라어 성경에는 '다윗과 아브라함의 세계'라 적고 있다. 다윗이 먼저 기록된 것은 왕을 통하여 구약 개념의 메시야가 온다는 예언의 성취를 보다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다윗 중심의 기독론(Davidic Christology)이라 함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족보는 다윗의 언약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언약이 동시에 성취됨을 보여준다.
나아가 족보는 특수성과 함께 보편성을 담고 있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마 10:5이하),> 그리고 수로보니게 여인을 향해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개들에게 주는 것이 합당치 않다(마 15:24)>는 말씀 속에는 이방인에 대한 유대인의 편견적 사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특수주의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전반적 메시지 속에는 예수님이 편견에 사로잡힌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그들의 믿음을 크게 보셨으며, 그들의 삶 속에서 믿음을 확신시키려는 의지가 더 강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자존심이 강한 그리스 계 이방인이다. 예수님은 주님을 신뢰하며 자신을 철저히 낮춘 그의 믿음을 귀하게 보셨다.
특히 족보는 유대인의 특수성을 제거하고 복음의 보편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향해 <너로 인하여 모든 족속이 복을 얻으리라(창 12:3)> 하였다. 이 때 '모든(panta)'은 '각자 그리고 모두, 곧 '모든 종류의 사람藍ª 말한다. 개별적이면서도 전체를 포괄하는 말이다. 이 만민을 포함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언약(창 12, 15, 17)이 마태복음 1장의 중심에 흐르고 있다.
보편성은 마태복음 여러 곳에 나타나있다. 마태복음 1장에 소개된 족보에 다말 라합 룻 밧세바와 같이 비이스라엘 사람들이 들어가 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했다. 이들은 이방인들이다. 이것은 복음이 이방으로 흘러갈 것을 전제한다(마 2:1이하, 11). 예수님의 거주지는 가버나움이고, 주 활동지도 가버나움이었다(마 4:13, 9:1, 18, 13:1, 36, 17:25). 이곳은 당시 이방으로 취급당한 곳이다. 최후의 만찬에 모든 종류의 사람이 초대된다(마 21:14). 큰 찬치(천국잔치)에 모든 족속의 사람이 초대된다. 천국복음이 온 세계와 모든 백성들에게 증거 된다(마 24:14). 예수님의 지상명령에서 '모든(panta)’ 것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마 28:16-20). 그리고 그들 가운데 가서 아버지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셨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이냐 이방인이냐 하는 것보다 누가 복음을 수용하느냐에 관심이 있었다.
마태복음이 신약의 첫 자리를 차지고 있는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우리의 왕 되심을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마태는 유대인들이 이것을 보다 잘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유대인에게만 중요한 것이겠는가. 예수님은 인류의 구원자이시며,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분이시며, 우리가 영원히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단 한 분뿐이신 주님이시다. 마태복음을 통해 이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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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성경 읽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성경의 한장 한 절마다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어느 한 구절도 놓치지 않고 정확한 의미를 찾는데 주력하였다. 그런 결과 성경을 연구하면서 그 전에 느끼지 못한 감격과 감동이 이었다. 역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우리를 놀랍게 변화시킨다.
이번에는 베드로전서와 후서를 살펴보았다. 잘 아는 바와 같이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다. 하지만 그는 굴곡이 많았던 인물이다. 그의 인생 굴곡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공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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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잠언(Proverbs)은 모두 31장으로 되어 있어서 하루에 한 장씩만 읽어도 우리 마음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고 하나님 앞에서 하루를 견실히 사는데 도움이 된다. 잠언은 솔로몬의 정금과 같은 잠언이다. 잠언을 미쉘레(misle)라 하는 데 그 어근은 일반 공리, 생활원칙을 뜻하는 마샬(masal)에서 나왔다. 잠언은 우리의 생각과 사고, 그리고 생활을 지배하는 원칙을 제시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날로 향상시킨다.
잠언의 저자는 솔로몬이다. 잠언은 구속의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구속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방법을 가르치는 데 목적을 두었다. 구속사적인 문제는 거의 나타나지는 않지만 내세 사상은 있다. 윤리의 뿌리는 내세, 곧 영생 세계에 소망에 있다는 것이다.
잠언은 무엇보다 도덕적 진리와 실용적 교훈을 짧은 문장으로 표현했다는 특색이 있다. 형태적으로 시서에 속하지만 내용은 지혜 문이다. 지혜는 민족을 상대하기보다 개인을 상대하며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를 구별하고 있다. 하나님의 명칭도 언약의 하나님의 명칭인 여호와로 표기하고 있다.
잠언은 지혜의 예찬, 제1금언집, 제2금언집, 그리고 보충부문 등 4가지로 구분된다. 지혜의 예찬은 1장에서 9장까지로, 1장 1절에서 전체 책명을 부여하였다. 제1금언집은 10장에서 24장까지로,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머리글로 시작한다. 제2금언집은 25장에서 29장까지로, 히스기야 왕 때 편집된 부분임을 밝혔다. 보충부분은 부록에 해당하는 것으로 30장과 31장이 이에 속한다. 30장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며, 31장은 르무엘의 어머니의 잠언이다. 르무엘은 솔로몬의 또 다른 이름 등 여러 주장이 있다.잠언의 근본사상은 철저한 하나님 중심이다. 두 지혜서가 유사한 이유는 선악응보의 법칙과 도덕의 실천성 등 인간심리(이성)의 유사성과 단일성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방지혜문은 타락한 범신론적, 다신론적 성격을 띠지만 솔로몬의 잠언은 하나님 중심이고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다.
잠언이 강조한 도덕적 4대 의무는 다음과 같다.
여호와께 대한 의무: 경외, 기억, 의지, 고백, 징계, 열매
이웃에 대한 의무: 거짓, 선, 화평, 진실, 참 친구
가정에 대한 의무: 자녀신앙, 부모공경, 여성의무, 근면
자기에 대한 의무: 중용, 언어, 온유, 겸손, 지혜
이에 따라 잠언은 여러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 대표적 보기로 지혜, 정의, 하나님 경외, 지식, 도덕, 애정, 근면, 자제, 하나님 신뢰, 십일조, 재산활용, 자선, 말조심, 적에 대한 친절, 친구선택, 자녀교육, 정직, 태만, 공평, 도움, 기쁨, 상식 등이 있다. 잠언은 대조, 비유, 마음에 감동을 주는 표현들로 이루어져 있고, 실제적인 사상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잠언을 읽고, 그 말씀을 삶에 옮김으로써 날로 지혜로워지기를 기도한다. 잠언을 읽는 자는 무엇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임을 알아야 한다. 지혜에 귀를 기울이면 하나님을 알게 된다. 범사에 여호와를 인정하고 선을 행하자. 지혜와 명철을 얻고 악에서 떠나자.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기뻐하신다.
양 창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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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누가복음(the Gospel of Luke, the Gospel According to Luke)은 사복음서의 하나로 누가(Luke)가 썼다. 그는 이방인이었으며(골4:11), 디도의 형제로도 추정되고 있다(고후 8:16-18, 12:18). 그는 무엇보다 수리아의 안티오크(Antioch)에 거주하던 의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바울의 건강을 돌보았다. 바울은 안질을 앓고 있었는데 다마스쿠스(Damascus) 도상에서의 성령의 빛 때문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바울은 간질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누가가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때 동행한 것으로 보아(행16:10) 초기부터 이방인 회심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바울의 제3차 여행에도 동행했으며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는 위험상황에서나 로마에 있을 때도 함께 있었다. 이것으로 보아 누가는 바울의 진실한 동역자요 사랑하는 친구였음이 확실하다. 바울은 그를 가리켜 사랑을 받는 누가(골4:14)라 하고 그가 너희에게 문안한고였다. 로마에서 바울의 마지막 생활을 묘사하는 서신에서도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딤후 4:11)고 했다. 이것은 누가가 의사이면서 바울의 사랑을 흠뻑 받고 있는 선교동역자임을 보여준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복음서에 대한 반마르키온서문(Anti-Marcionite Prologues), 무라토리아 정경(Muratorian Canon), 이레네우스(Irenaeus) 등 여러 전승도 제3복음서와 사도행전이 수리아의 안디옥 출신 누가에 의해 기록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누가는 바울의 동역자요 친구로 바울이 전파하는 복음을 듣고 조사하여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누가에 대해서 빼놓아서 안 될 중요한 것은 복음에 관한 한 어느 누구보다 강한 열정을 가진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예수님께서 구세주시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의 자취와 복음의 역사를 기록으로 제시함으로써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밝히려한 위대한 역사가이다. 나아가 그는 복음이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 이방세계까지 전파되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사도행전을 기록하였다.
1) 과학자로서 객관성과 정확성
누가복음은 풍부한 단어를 사용했고, 사복음서 가운데 가장 자세히 기록하였다. 자료를 취합해 완벽하게 기록한 역사서로도 인정받고 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인성을 완벽하게 그렸다. 예수님을 사람의 아들로, 어린 때의 모습까지 묘사했다. 누가는 비록 사도들의 총회와 같은 몇 가지 문제에 대해 바울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지만(행 15;갈 2) 그의 독특한 경험은 두 권의 책을 쓰는 데 귀중한 배경을 제공해 주었다. 그는 성경의 저자가운데 유일한 이방인이기도 하다.
2) 누가복음 기록 연대
누가복음이 기록 연대를 정확히 산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여러 성경학자들은 두 가지 점에서 생각을 같이 하고 있다. 하나는 마가복음을 기초 자료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누가복음은 마가복음 이후에 기록되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누가가 사도행전 첫머리에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행 1:1-2)라고 말하고 있어 만일 먼저 쓴 글이 누가복음이라 할 경우 누가복음은 사도행전보다 먼저 쓰였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점을 고려하여 학자들은 누가복음의 기록연대를 A.D. 63년에서 A.D. 80년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록 연대에 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가장 논란되고 있는 것은 예루살렘 멸망에 관한 예수님 말씀에 대한 기록(눅 19:41-44, 21:20-24)을 사건 전의 초자연적 예언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사건 후의 기록으로 볼 것이냐 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A.D. 70년에 있었고 누가복음이 비록 예언이라 할지라도 이 사건을 비교적 정확한 내용을 담고 있어 그 사건이 일어난 후에 기록된 것으로 간주되기 쉽다. 특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으리라.는 예언의 말씀은 70년 로마군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가 보여준 너무나 생생한 표현이라는 주장이다.
누가복음이 이 사건 후의 기록으로 간주될 경우 누가복음은 사도행전보다 늦게 기록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한다. 사도행전은 일반적으로 A.D. 63년에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64년에 로마의 대화재와 함께 기독교인에 대한 심한 박해가 있었는데 사도행전에 이 박해에 관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누가복음이 사도행전보다 먼저 쓰였을 것으로 본 성경의 기록과 달라진다. 따라서 여러 복음주의 학자들은 예루살렘 멸망에 관한 누가복음의 기록은 사건의 성취까지 담은 것이 아니라 말씀 그대로 미래의 일로 남겨둔 초자연적 예언으로 간주하고 있다.
복음서에 대한 반마르키온서문에 따르면 누가복음은 아가야에서 기록되었다. 그러나 여러 학자들은 이 견해에 신빙성을 두지 않고 로마나 안티오크를 기록장소로 간주하고 있다.
3) 기록의 원천
누가는 예수님의 관한 행적을 차례대로 써보고 싶었다. 예수님에 관한 행적은 예수님을 직접 목격했고 지금은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어 열심히 일하는 사도들의 입을 통해 전해오는 전승이 있었다. 누가 이외에도 전해 내려오는 예수님의 행적에 관한 것을 쓰려고 붓을 든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눅 1:2). 누가는 이런 많은 자료들을 참고했을 것이다.
성경학자들은 누가가 마가복음과 아직 그 정체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가장 먼저 쓰인 복음서로 인정받고 있는 가문서 Q를 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문서 Q는 마가복음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기록되어 있는 약 200절 이상의 성경구절이 실려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누가가 많은 자료가운데서도 마가의 것을 가장 많이 참고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누가는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 있는 내용을 생략하기도 하고, 두 복음서에 실려 있지 않는 자신만의 내용을 첨가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요한의 부모와 예수님의 탄생과 다른 복음서에 나타나 있지 않은 사건들에 관해 개인적으로 자료들을 입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누가는 당신 노인이 되었을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로부터 예수님에 관한 여러 말씀을 직접 듣고 기록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다른 공관복음에 없는 세례 요한의 출생예고와 예수의 탄생예고의 사건, 마리아의 찬송, 목자들에게 전해진 천사의 메시지, 어린 예수의 성전방문 사건 등 여러 가지가 마리아의 직접 증언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누가는 여러 전승 자료뿐 아니라 자신이 직접 조사한 자료들을 모아 복음이 진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 진리를 밝히기 위해 자료들을 차례대로 체계화시켜 나갔다.
4) 누가복음이 다른 복음과 다른 특색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여러 가지 점에서 다른 특색이 있다.
첫째, 누가복음의 초점은 항상 예수님에 맞춰져 있다. 마태복음에 소개된 예수님의 족보는 아담에서 출발하여 예수에 이르지만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는 예수로부터 출발하여 아담에 이른다, 누가복음의 출발점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은 누가복음이 예수님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강조하고 있다. 누가는 최소한 18회 정도 주님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사도행전에서는 약 50회 정도 사용되었다. 그는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고백하는 신앙에서 주님을 향해 경외를 나타냈다. 누가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주님이시다. 그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셨으며 이 과정을 통해 은혜의 사역을 완성하셨다.
셋째, 누가복음은 이방선교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방인 전도에 대한 관심은 나사렛 회당에서의 설교(4:25-27), 탄생기사(2:32), 큰 잔치비유(14:23), 선교의 명령(24:47) 등에서 뚜렷이 나타나 있다. 누가는 죄인들의 회심과 사마리아에서의 회개역사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고, 예수님의 많은 사역들이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졌으나 교회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온 세계로 뻗어나감을 보여주었다. 사도행전은 이러한 전파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넷째, 누가복음은 사회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이 관심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축복과 부자들에 대한 화의선언(6:20-26), 물질에 대한 비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구제와 선행에 대한 강조 등에 나타나 있다. 누가복음은 당시 천대받았던 가난한 자나 여성에 대한 예수님의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누가는 잃은 양, 잃어버린 동전, 기다리는 아버지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을 낮고 천한 이들에게 희망을 주시며 죄를 용서하고 끝없이 사랑하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누가는 나인성 과부, 회개한 창기, 혈루증 앓는 여인, 마르다와 마리아,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 등을 통해 다른 복음서보다 여인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여성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을 보였다. 이것은 예수님이 누구를 더 생각하셨는가를 보여주고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선한 사마리아 비유는 이것을 밝히 가르쳐 준다. 누가는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물질적인 희생과 나눔을 당연히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헌신적인 희생의 제자도를 강조하였다.
다섯째, 구원의 기쁨을 강조하였다. 누가는 목자들에게 준 천사의 메시지, 돌아온 탕자의 비유, 예수님의 발을 눈물과 향유로 씻은 여인 등의 사건을 통해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전하고 있다. 누가는 이 구원의 기쁨이 모든 인류, 곧 이방인이나 사마리아인이나 세리나 죄인이나 모두를 위한 것임을 강조함으로써 누가복음을 세계인을 위한 복음서로 만들었다.
여섯째, 임할 하나님의 나라와 은사, 그리고 성령의 기쁨을 강조하고 있다. 누가는 앞으로 임할 나라와 은사, 성취, 그리고 성령의 기쁨에 대해서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기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을 주시는 이상적인 아버지처럼 하나님을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눅 11:13)로, 그리고 이와 똑같은 사랑과 용서를 이웃에게 베풀라 권면하였다.
일곱째, 누가는 자비한 은혜와 엄격한 요구가 상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삭개오와 회개한 창녀의 이야기 등을 통해 예수님의 부드러움과 자애심을 드러내는 반면 제자들에게는 자신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와 복종을 요구하신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은혜와 복종을 병존시켰다. 그는 예수님이 전한 복음은 은혜와 책임, 선물과 과제라는 이중적인 성격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끝으로, 누가복음만의 독특한 기록이 있다. 누가복음에는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기록들이 있다. 70인의 제자파송, 마리아와 마르다, 어리석은 부자, 거지 나사로, 삭개오, 열 므나의 비유, 다시 찾은 드라크마, 과부와 재판관, 세리의 기도, 그리고 예수님의 승천에 대한 언급 등이 그 예다.
지금까지 성경을 연구하며 주해하는 작업을 해왔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삶의 궁극적인 지표가 되고, 알면 알수록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역사하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왜 우리에게 큰 기쁨과 소망을 주시는가를 가르쳐 줄 뿐 아니라 왜 그 나라를 구하며 살아야하는가를 보여준다. 이 책이 우리 주님과 주신 복음을 좀 더 이해하는 데 길잡이가 되었으면 한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양 창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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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전이다. 하지만 성령의 행전이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에 한정되지 않는다.
사도(Apostle)는 ‘아포스톨로스(apo-stolos)’로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 곧 메신저다.
사도행전에서는 바울과 바나바를 사도라 불렀다.
이 전도자들이 성령에 붙잡혀 얼마나 복음 전도에 열정을 쏟았는가를 보여준다.
복음 전도는 지금 우리에게도 부여된 지상 사명이다.
우리 모두는 이를 위해 부르심을 받은 이 시대의 사명자이다.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사도행전은 우리가 가장 모범으로 삼아야 할
영적 전범(典範)임이 확실하다.
이젠 우리가 그 뒤를 이어
성령행전의 다음 페이지를 확실하게 써내려가야 한다.
당신의 위대한 작업에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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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Hebrews)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심과 뛰어나심, 구원의 창시자 되심, 우리의 대제사장 되심을 천사, 모세, 구약의 대제사장 등 여러 비교를 통해 확실하게 깨닫게 한다. 이런 점에서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 변증서다. 나아가 주님이 주신 새 언약을 붙잡고 힘차게 믿음 생활을 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흔들리지 말고 견고히 서라는 말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새롭게 정의하고, 정의된 그 믿음에 확고히 서도록 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히브리서 저자의 시대와는 시간적으로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 시대와 같은 핍박은 아닐지라도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은 여러 형태로 가중되고 있고 믿음을 방해하는 요소도 더 많아지고 있다. 믿음 생활하기 어려울수록 저자는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외친다. 그리고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믿음의 선진들을 생각하며 그리스도를 더 붙잡으라 한다. 이런 점에서 히브리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