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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기획

존 칼빈 2021~2022년 출간(개정)도서 세트(전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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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역자 : 장 칼뱅,존 칼빈/박건택,정성묵,김광남  |  출판사 : 갓피플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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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은 세르베투스 화형이 있은 다음 그에 대한 정당성 논쟁이 일자 “삼위일체 정통 신앙 수호”를 피력한 <세르베투스 논박>을 통해 이단 처벌의 정당성을 논하고, 세르베투스의 이단성을 38가지로 정리하여 밝히는데, 세르베투스와의 지면 논쟁도 볼 수 있다.
<두 서신>은 프랑스의 니고데모파에 대해 쓴 글로 교황 제도의 미신과 우상숭배를 애굽, 바벨론, 유대교 회당의 미신과 같은 수준으로 여기고 이를 피하라고 가르치며, 교황 제도에서 고위 성직자의 비리를 지적하면서 순교와 전적 포기로 사제 직무를 수행하지 못할 것이면 이를 포기하라고 한다. <니고데모파에게 주는 해명>, <네 편의 설교> 외에 <신도의 처신>도 “복음 진리를 아는 신도가 교황파 가운데서 해야 할 처신”이라는 원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글이다.
칼뱅은 니고데모파와 같은 사람들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약간의 흔적을 가지고 있고 그의 말씀에 어느 정도 경의를 보이나, 그래도 아직도 하나님의 영광에 봉사하는 것이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고, 세상과 자신의 삶을 잊는 것임을 알 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충분히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렇게 자기들에게 충분히 알려져 있는 것에 대해 묻는 자들뿐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당치않은 변명으로 둘러대려고 생각하는 자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나는 이 주제에 대해 이미 설교한바 있는 내용들을 다시 보고 정리하는 게 좋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혼 수면론 논박>은 칼뱅이 처음으로 저술한 신학 작품으로 1542년에 다시 출간됐다. 칼뱅은 회심의 근저에서 죽음을 정면으로 직면했고, 하나님 안에서 자유를 얻고자 죽음과 사후에 대해 해결을 보고자 했다. 급진 종교개혁파가 영혼이 수면을 취한다거나 영혼이 죽는다고 하는 것에 대해 영혼 불멸설이 현세에서의 책임 윤리를 더욱 확고히 한다고 보았다. 이 문제에서 칼뱅과 대립한 것은 바로 재세례파였다.
16세기의 혼돈 속에서 젊은 칼뱅은 종교개혁에 관심을 두면서도 기존의 교회와 국가 질서를 위협하는 종교개혁 급진파, 즉 재세례파와 리베르탱파로 불리는 심령파와는 거리를 두었다. 이들에게서 분리주의의 위험을 보았기 때문이다. 칼뱅은 니고데모파와 관련해서 군주에 대한 지나친 충성과 세상사에 대한 애착을 지적하며 진리와 자유를 위해 기성 교회와의 분리를 불사했지만, 제세례파에게는 그들의 무정부적 성격을 비난하고 리베르탱파의 방종을 지적하며 자유에 한계를 둔다. 결국 문제는 자유와 책임의 관계였다. 교회와 정부가 자신들에게 맡겨진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수행하려 할 때, 자유는 필연적으로 제한된다는 것이다.
<피기우스의 자유의지 논박>은 루터의 <노예의지론>과 동일 선상에 있으면서,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논박하는 가운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근본 원인을 알려 준다. 구원 영역에서 인간 자유의지 배제와 하나님의 철저한 은총(결국 예정)이야말로 그의 회심의 근원이며 종교개혁 신학의 근간이다. 피기우스가 문제 삼은 것은 정확히 인간의 노예의지와 하나님의 예정 문제였으며 이 책은 그에 대해 답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에 대해>는 피기우스에 대한 두 번째 논박서다. 칼뱅은 피기우스 사후 추가 논박서를 구상하다가 예정론을 공격하는 시쿨로의 공개 서한에 대응하고 제네바 의회에서 예정 교리를 부정하는 제롬 볼섹을 추방한 일과 관련하여 자신의 입장을 이 논박서에 실었다. 제네바 의회는 이 책의 출간을 승인하면서 대대적인 욕설 수정 작업을 요구했다.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에 대해> 중에서]

믿는 사람들은 그들의 구원을 확신해야 한다. 이것은 그들이 누워 잠들기 위함인가? 어리석은 태만에 빠지기 위함인가?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과의 조용한 평온을 누리면서 동시에 기도로 깨어 있기 위함이다. 바울은 그들에게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들 자신의 구원을 이루라고[빌 2:12] 권면한다. 이것은 그들이 결과에 대해 근심스럽게 두려워하게 하기 위함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의 날개 아래 숨어 그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함으로써 그들 자신들을 그에게 맡기기 위함이며, 그의 도움에 의지함으로써 마지막에 그들이 승리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바울이 그들이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덧붙이기 때문이다. 그들[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해 그들[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빌 2:13]. 그들로 의혹의 상태에 있지 않게 그는 이미 모든 의심을 그들에게서 제거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시리라(빌 1[:6]).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은 우리에게, 마치 우리의 구원이 의심스런 상태에서 흔들리기나 하는 듯이 기도하라고 권면하지 않는다. 구원은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사돌레토에게 주는 답신>은 칼뱅과 제네바 시 정부 사이의 마찰을 틈타 제네바를 로마 가톨릭으로 돌리려는 시도로 사돌레토 추기경이 제네바 시 정부에 보낸 편지에 시 정부의 요청으로 칼뱅이 답한 편지로, 이신칭의, 성찬론, 고해성사, 교회론 등을 다루고 루터에 대한 옹호 입장도 피력한다. <성물론>은 로마 가톨릭의 성물 숭배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가장 공개적인 풍자 작품이다. 칼뱅은 여기서 로마 가톨릭의 성물론 자체의 내적 모순을 파헤치고, 중세 교회에 만연한 성물 관련 사회 문제를 지적한다. <파리 신학대학 신조와 해독제>는 프랑스 소르본 신학에 대한 반박, <트렌트 공의회 법령과 해독제>는 세계 공회를 주도한 가톨릭 지도층에 대한 반박으로 전형적인 반가톨릭 논쟁서다. 소르본 신학은 이단 투쟁 목적의 25개 신조를 작성하여 효력을 발생시키는데, 칼뱅은 이에 대해 알게 된 후 신조 항목마다 해설을 달아 낱낱이 반박하고 해독제를 추가했다. 트렌트공의회 초기 일곱 회기 법령에 대해서도 칼뱅은 같은 형식으로 반박서를 만들었다. <점성술에 대한 경고>는 16세기 초 점성술이 기승을 부리던 중에 천문학과 점성술을 구분하고 점성술의 악마적인 미신을 지적하며 오직 하나님 경외와 절제 속에서 이런 유혹을 물리칠 것을 권면한다.


[<사돌레토에게 주는 답신> 중에서]

이신득의에 대한 지식이 제거된 곳에서는 그리스도의 영광은 소멸되고 종교는 무너지고 교회는 파괴되며 구원의 소망은 완전히 없어지고 맙니다……먼저, 우리는 사람들에게 먼저 자신들을 살펴보도록 권고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단지 피상적이고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양심을 하나님의 법정 앞에 세우기 위해 하고, 자기 자신의 불의함이 엄격하게 확신될 때는 모든 죄인에게 선포된 심판의 엄격함을 생각하도록 가르칩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비참함에 놀라고 당황하여 하나님 앞에 부복해 엎드려 겸손하게 되고 자신감을 모두 벗어 버리며 마지막 멸망에 던져진 자처럼 신음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 구원의 모든 부분이 완성되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 가운데만 유일한 안식처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전 인류가 버려진 죄인들이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만이 그들의 유일한 의가 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복종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악을 도말하셨고 자신의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혔으며, 자신의 피로써 우리 허물을 씻으셨으며 자신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 저주를 대신 담당하셨으며, 자신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대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바는 이와 같이 인간은 자신의 공적이나 가치 있는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화해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와 교제할 때, 우리는 이것을 성경의 표현을 따라 믿음의 의[롬 4:13 참고]라고 부릅니다.
[편역자 서문 중]

<코프의 강연>은 아직도 저작 논란을 일으키는 책이다. 칼뱅의 친구 코프는 1533년에 파리 대학 총장이 되고 만성절에 했던 취임 연설로 인해 체포 위기에 빠진다. 이 연설에 칼뱅이 깊숙히 관여했다는 가설이 거의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올리베탕 성서 서문>이 나온 1535년부터 <기독교강요>의 구성이 드러난다. 칼뱅의 사촌 피에르 올리베탕이 제네바에서 뇌샤텔로 가서 왈도파와 재정적 후원을 받아 최초로 불어 개혁파 성서를 출간하고, 여기에 칼뱅이 라틴어와 프랑스어로 서문을 써 준다. “라틴어 서문”은 “황제, 왕, 군주, 백성, 신하에게” 바치고, “프랑스어 서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썼다. 파렐과 더불어 참석한 로잔 회의에서 칼뱅은 발언 기회를 얻어 자신의 신앙고백이 될 내용을 표명한 것이 <로잔 신조와 강론>이다. 카롤리가 제네바 개혁파는 삼위일체를 믿지 않는다고 공격하자 말씀으로 대응한 것이다. <성만찬 소고>에서 칼뱅이 추구한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종교개혁 내부에 대립된 진영을 화해시키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자들을 가르쳐 성찬의 이해를 도와주려는 것이다. 본래 성찬 문제는 “태어나는 종교개혁의 급소 가운데 하나”요, 종교개혁 가담자 사이에 “불화의 씨”였다. 칼뱅의 성찬 신학은 세 단계로 나뉜다. 초기에는 로마 가톨릭을 벗어나 개신교에서 교리적 통일을 이룰 것이라 보았다. 둘째, 불링거와의 노력으로 “취리히 합의”를 끌어냈다. 그러면서 “실체”라는 용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셋째, 루터와의 긴 논쟁으로 인해 성령의 역할로 “그리스도의 몸의 편재론”의 부당성을 해결하려 했다. 이 책은 당대의 성찬 논쟁을 종결지으면서 “명쾌함과 영성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취리히 합의와 해설>은 1549년 성찬에 대해 칼뱅과 취리히 목사들 사이에 합의한 “취리히 합의”와 이를 공격한 루터교회 학자들에게 칼뱅이 응답한 “해설”을 묶은 것이다. 1552년 함부르크의 목회자 요아킴 베스트팔이 루터의 공재설을 옹호하고 “취리히 합의”와 프로테스탄트를 공격한 책을 썼다. 이 글이 전반적으로 개혁파 진영 전체를 겨냥한 거짓과 악담으로 이루어지자 칼뱅이 대표로 이에 대한 반박의 글을 쓴 것이다. 스캔들은 “복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을 말하고, 이에는 복음 자체가 복음으로 오지 못하게 하거나, 기원은 다를지라도 본질적인 것과 연관된 스캔들도 있으며, 생소하고 별개인 근원에서 나오는 외래적 스캔들이 있다. 칼뱅은 <스캔들론>에서 모든 스캔들을 설명한 후 신자는 이를 이겨야 한다고 권면한다. 전투가 어렵고 상황이 힘들지만 복음의 광명으로 피해야 할 함정을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로 모든 스캔들을 극복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그가 하늘의 능력으로 우리를 온 세상 위에 높이시기 때문이다. <유언과 두 고별사>는 죽음이 임박한 것을 느낀 칼뱅이 마치 누군가가 칼뱅을 대신하여 보고하듯 3인칭으로 서술한 글이다.


[<올리베탕 성서 서문> 중에서]

그는 우리를 모양 있게 하기 위해 모양 없게 되셨고, 그는 우리의 생명을 위해 죽으신바, 그를 통해 거친 것이 부드러워지고, 분노가 완화되며, 흑암이 밝아지며, 불의가 의로워지며, 연약함이 힘을 얻고, 낙담이 위로받고, 죄가 방해받고, 멸시가 멸시되며, 두려움이 안정되며, 빚이 청산되며, 노동이 가벼워지며, 슬픔이 즐거움이 되며, 불행이 행복이 되고, 어려움이 쉬워지고, 무질서가 정돈되며, 나뉨이 하나가 되며, 치욕이 고상함이 되며, 반역이 굴복되고, 위협이 위협당하고, 매복이 쓸데없게 되고, 공격이 공격당하며, 노력이 자제되며, 전투가 전투 대상이 되며, 전쟁이 전쟁 대상이 되며, 복수가 복수되며, 고통이 고통당하며, 저주가 저주되며, 구덩이가 구덩이에 빠지며, 지옥이 지옥에 갇히고, 사망이 죽고, 죽을 것이 죽지 않을 것이 되었다. 간단히 말해, 긍휼이 모든 비참을, 선이 모든 불행을 삼킨 것이다.
칼뱅의 1차 제네바 사역의 내용을 알려 주는 작품으로 <제네바 교회 설립 시안>, <제네바 신앙교육서>, <[파렐]의 제네바 신앙고백서>는 칼뱅이 신학 논문과 팸플릿을 통해 신학 논쟁에 뛰어든 논쟁자였을 뿐만 아니라 파렐과 더불어 새 교회를 설립하기 위해 활동한 교회의 인물이었음을 입증한다. 아직 유형교회 이론을 갖지 못한 스트라스부르 시절 이전 칼뱅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네바 시가 성찬을 연 4회로 제한한 것이 개혁교회의 전통이 되고 만 상황에서, "우리 주님의 성만찬이 자주 거행되고 빈번하게 실시되지 않는 한 교회가 제대로 질서가 잡혔다고 말할 수 없다"라는 칼뱅의 말은 개혁교회가 역으로 개혁되어야 할 요소를 정확히 지적하는 것 같다. 스트라스부르 체류 이후 2차 제네바 사역 초기의 작품인 <1541년 제네바 교회 법규>에서 마르틴 부처에게 영감을 받아 제시한 네 직분 제도(목사, 교사, 장로, 집사)는 이후 개혁/장로교회의 기본 골격이 되고, <제네바 교리문답서> 역시 제네바 교회 어린이 교육의 기틀이 된다. <1561년 제네바 교회 법규>는 오랜 세월 여러 난제를 경험하면서 종전 법규를 개정 증보하다가 새로운 법규 제정의 필요에 따라 제정되었다.


[편역자 서문 중에서]

1990년대 초부터 진행해 온 편역자의 칼뱅 한국어화 작업은 다음 두 가지 목적을 갖는다. 하나는 한국 장로교회의 영적 뿌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고전 인물의 한국어 텍스트가 총서로 묶여 도서관 및 관련된 개인/단체 서재에 꽂혀 있어 활용되어야 할 당위성이다. 활용이라 함은 일례로 논쟁이 되는 사건(세르베투스 사건은 대표적인 사례)을 텍스트로 확인해 보는 일이며, 나아가 2차 자료의 정당성과 부당성을 지적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칼뱅, 나아가 동아시아의 칼뱅의 가능성 여부를 타진하기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되길 바라는 소망이다. 번역의 정확성도 여전히 미흡한데다, 아직 아무 결과물도 내놓지 못한 채 거창한 주제를 언급하는 것이 부끄럽고 송구한 마음이지만, 이것이 편역자가 지금껏 시도해 온 무모할 수도 있는 도전의 궁극 목적이다.
첫째 목적은 텍스트의 분량과 정확성으로 평가될 수 있다. 분량으로 말하면 전집이 아니기에 추가되어야 할 문서들이 더 있을 수 있지만 주요 소품들은 모두 갖춰졌다. 16세기 용어의 정확성은 지속적으로 확인될 필요가 있다. 소품의 내용 확인에 목적을 두었던 편역자에게는 중세와 근대를 아우르는 유럽의 정치와 법을 아우르는 제도사까지 연구할 여력이 없었다.
둘째 목적의 성취 여부는 방법론에 달려 있다. 칼뱅의 <서간집> 1권과 <기독교 강요>(1541) 프랑스어 초판이 청년 칼뱅을 통해 개혁신학의 태동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면, 이제 칼뱅의 생애를 관통하는 본 소품집은 제네바의 개혁교회와 신학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얼마간 직접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기독교 강요> 최종판은 당연히 이 과정의 결과물로 여겨질 수 있다. 이 제네바 개혁신학은 유럽과 신대륙으로 이동하는 동안 모판의 역할을 수행했지만, 또한 각 현장의 수용 과정에서 전혀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양 세계에서 역사적 개혁주의는 무엇을 의미하며, 비 서양 세계의 다른 토양에서 개혁교회와 신학을 수용하고 확장시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재로서는 토론만을 양산시킬 뿐인 이 질문 앞에서 우리가 정당하게 할 수 있는 길은 처음으로 돌아가 보는 일이다. 그래도 질문은 계속된다. 제네바 개혁자가 전기 칼뱅과 후기 칼뱅으로 나뉠 수 있는가? 우리는 이 소품집에서 칼뱅의 변화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가? 답을 얻으려면 직접 읽어 보는 수밖에 없다.


[베즈의 칼뱅 전기 중에서]

그는 54년 10개월 17일을 살았고 절반을 거룩한 복음 사역으로 보냈다. 그는 보통 키에 약간 창백하고 거무스름한 안색과 죽을 때까지 맑았던 눈을 가졌고 총명을 타고났다는 말을 들었다. 옷차림은 세련되지도 남루하지도 않았고 특별한 절제라는 말이 어울렸다. 식사도 절식했으며 허접이나 향락과는 매우 거리가 멀었다. 그는 매우 적게 먹었는데, 많은 햇수 동안 약한 위장 때문에 하루에 한 끼만 먹었다. 잠은 거의 자지 않았고 기억력은 믿을 수 없을 정도여서 그가 한 번 본 사람은 많은 해가 지난 후에도 즉각 알아보았으며, 구술 도중 종종 몇 시간 동안 혼란이 생길 경우, 알려 주지 않아도 이내 받아쓰던 곳으로 돌아올 정도였다. 또한 자신의 소임 때문에 알아 두어야 할 중대한 것은, 아무리 무한히 많은 업무로 압박을 받아도 결코 잊지 않았다. 판단력은 상담 내용이 무엇이든 맑고 정확해 거의 예언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나는 그의 충고를 따른 사람이 방황한 기억이 없다. 그는 말솜씨를 경멸했고 말을 적게 했으나 결코 부적합한 작가는 아니었다. 이날까지 어떤 신학자도 (시샘하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 더 맑게, 더 무게 있게, 더 통찰력 있게 글을 쓰지 못했다.

그가 우리 시대나 교부 시대의 누구보다 더 많은 문헌을 작성했음에도 말이다. 그는 이것을 젊은 날의 주야독경과 받아쓰기의 훈련으로 굳어진 예리한 판단력으로 이뤄냈는데, 그리하여 그에게는 언제나 적합하고 신중하게 표현한 뭔가가 없지 않았으며, 말하는 것과 글 쓰는 것이 많이 다르지 않았다. 교리로 말하면 그는 그가 처음에 전했던 것을 마지막까지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고 한결같았는데, 우리 문헌 속에서 이랬던 신학자는 드물었다. 그의 품행에 대해 말하자면, 비록 천성이 그를 신중하게 만들었지만, 공동생활에 있어서 그보다 더 유쾌한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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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역자 서문 중에서]

<교회 개혁의 필요성>(1543)은 칼뱅이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에게 교회가 개혁되어야 할 필요에 대해 간곡하게 권면한 글이다. 카를 5세는 종교적인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슈파이어 의회를 소집했다가 이듬해로 연기한 상태였고, 그 전부터 마르틴 부처와 칼뱅 사이에 칼뱅이 대표로 황제에게 종교개혁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글을 쓰는 것에 합의가 있었다고 해석된다. 이 책자가 1543년 12월에 제네바에서 출간되고 부처도 이에 크게 만족했으며, 멜랑히톤과 루터에게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칼뱅이 황제에게 보낸 <교회 개혁의 필요성>에 따라 황제가 양 진영에 종교 분쟁의 타협점을 찾게 했고, 양 진영 대표가 모여 임시 문안 작성에 성공했다. <교회 개혁의 참된 방식>(1549)은 트렌트공의회가 정회된 상황에서 이 1548년 아우구스부르크 임시안에 대한 개혁교회측의 불안과 불만이 담긴 글이다. 말하자면 임시안에 대한 일종의 해독제를 작성한 것이다.
두 책은 본질상 같은 주제인 예배의 갱신과 이신칭의 문제를 담고 있다. 비록 이신칭의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출발이요 원인이며 공통분모이지만, 칼뱅은 이 교리가 예배의 갱신까지 이어지기를 원했다. 하나님 예배가 “인간과 천사의 구원보다 더 앞에 있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이신칭의에만 머물러 있으려는 인상을 주는 루터교회 지도자에게 교리의 전체적인 의미를 찾을 것을 지적한다.

[<교회 개혁의 필요성> 중에서]
요컨대 하나님의 종들은 [그들의 적이] 불경건한 통치를 펼치기 위한 구실로 “교회”라는 공허한 이름을 거론할 때 어떤 장애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이름을 내뱉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참된 교회란 무엇이며 이 교회의 일치는 어떤 것인가를 판단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 중 첫 번째는 이것인데, 즉 우리가 교회를 그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로부터 분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말할 때, 나는 [이 이름을] 그가 자신의 피로 말미암아 인 친바 복음의 가르침과 함께 묶어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들이 참된 교회임을 우리에게 납득시키려 한다면 우리 적들은 무엇보다 맨 먼저 그들 자신 가운데서 하나님의 순수한 가르침이 있음을 증명해야만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계속 말하고 있는 올바른 교리의 설교와 순수한 성례의 집행이 바르게 질서 잡힌 참 교회의 일치된 영원한 표지여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바울은 교회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가르침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엡 2:20). 이 터 위에 세워지지 않으면 교회는 반드시 곧 무너질 것입니다.
장 칼뱅의 《기독교 강요》에서 길어 낸 참신앙의 기초

세상은 왜 기독교에 염증을 느끼는가?


오늘날 이 전 세계적 위기 속에서 왜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는가? 왜 도리어 세상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향해 지난날보다 더 크게 고개를 가로젓는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무거운 마음으로 고민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을 위한 책이 출간되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기본 진리를 간명하게 밝힌 장 칼뱅의 《그리스도인을 살다》. 이 책은 《기독교 강요》 결정판의 3권 6-10장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현대인을 위한 새로운 번역본이다.

수많은 인생을 바꾼 보고(寶庫) 《기독교 강요》에서
현대 기독교에 생기를 불어넣을 유산을 찾았다


《기독교 강요》는 극에 달한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를 개혁하고 진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기독교 핵심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1536년 출간한 라틴어 초판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1559년에 방대한 결정판이 완성되기까지 증보를 거듭했다. 《그리스도인을 살다》는 1539년 증보 시에 추가된 부분으로, 출간 당시부터 그 내용의 탁월함으로 크게 주목을 받았으며 다양한 언어로 소개되어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가톨릭교회의 풍경과 지금 우리의 모습, 무엇이 다른가?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있던 것은 무엇인가? 이 시대 기독교인이 회복해야 할 신자다움을 찾아서!

성경으로 내 삶의 현재를 비추어 보다
우리가 살아 내야 할 참된 신앙에 관하여!


이 새로운 번역본은 세월의 더께를 털고 장 칼뱅의 성경적 충실함과 신학적인 깊이와 목회자의 마음을 잘 담아냈다. 시공을 뛰어넘어 많은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서 이 책의 도움을 받아 올바른 방향을 찾았다. 칼뱅은 하늘을 바라며 땅에서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하면서 거룩함을 추구하고 고난을 견뎌 내라고 독려한다. 머리와 가슴이 시원해지고 삶이 질서 있게 정돈되는 생생한 기독교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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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종교개혁자가 남긴 ‘팔복 강해설교’의 진수


1559년 7월부터 시작된 칼빈의 공관복음 설교 시리즈 가운데 ‘팔복’(지복)에 관한 설교를 묶었다. 건강 악화로 강단에서 내려온 1564년 2월까지도 끝내지 못한 ‘팔복 강해’는 결국 그의 타계로 인해 미완으로 남았다. 칼빈의 생애 말년에 이뤄진 이 설교들은 일생을 설교자로 살았던 그의 원숙한 말씀 선포의 정수를 보여 준다. 이 설교를 통해 위대한 종교개혁자가 16세기 제네바의 예배당에서 전한 메시지를 생생하게 듣게 될 것이다.

* 각 설교 말미에 ‘칼빈의 즉흥기도’와 함께, 로버트 화이트의 ‘설교 해설’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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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 신학의 뜨거운 심장이 박동하는 걸작이
마침내 오늘의 언어를 입고서 우리 곁에 왔다!"


"우리 시대의 언어로 새롭게 탄생한 한 권으로 읽는 『기독교 강요』"
- 초판과 최종판 사이에 출간된 가장 중요한 판본인 1541년 프랑스어 초판
- 강영안, 김진혁, 박경수, 송용원, 우병훈, 한병수 추천

1536년 라틴어로 처음 출간된 『기독교 강요』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 대한 지침서나 입문서가 되는 것이 목적이었다. 칼뱅은 “아직 복음에 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지만 그리스도를 향한 배고픔과 갈증에 시달리며 궁극적으로는 참된 경건으로 훈련받게 될” 이들의 필요를 채워 주려 했다. 그러나 초판이 비범한 성공을 거두자, 칼뱅은 기독교 신앙을 더 충분히 설명하고 싶은 열정으로 1539년 훨씬 증보된 라틴어 제2판을 출간한다. 이 단계를 거쳐 『기독교 강요』는 교리 교육서에서 주요 교리들이 주제별로 망라된 교의학서로 크게 변모한다.

1541년 칼뱅은 라틴어를 모르는 고국의 일반 신자를 배려하여 라틴어 제2판을 프랑스어로 풀어 쓴다. 독자 여러분이 마주하는 이 책은 1541년 프랑스어 초판 『기독교 강요』로, 라틴어 초판과 최종판(1559년) 사이에 출간된 여러 판본 중 가장 중요하고 널리 읽히는 작품이다. 프랑스어 초판은 라틴어 제2판과 함께 이후 출간된 판본들의 근간이 되고, 훨씬 폭넓은 독자층을 염두에 둔 대중에게 친숙한 언어로 쓰여 있어 성경의 개념이나 중요한 신학적 내용도 어렵지 않게 읽어 내려갈 수 있다.

칼뱅은 세 가지 목적을 가지고 이 책 1541년 프랑스어 초판을 세상에 내놓았다. 첫째, 신앙의 기초를 배우고 싶은 독자뿐 아니라 신학의 모든 주제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신학도에게도 도움이 되고자 했다. 둘째, 간단한 교리문답서 정도가 아니라, 성경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유익한 책을 저술하고자 했다. 셋째, 라틴어를 모르는 고국의 일반 신자도 프랑스어로 된 이 책을 읽고 신앙의 핵심을 배우게 되기를 바랐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칼뱅의 의도와 목적이 성공했음을 충분히 알게 될 것이다.

'최종판으로 족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이 책 1541년 프랑스어 초판을 더욱 권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 우선, 칼뱅 사상이 어떻게 발전해 가는지를 추정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30대 초반의 칼뱅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이 책은 뚜렷이 보여준다. 다음으로, 라틴어 전문 용어에 대해서 칼뱅이 직접 일상어로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일반 독자를 겨냥해 썼기 때문에 어려운 신학적 내용도 보다 쉽게 이해되도록 배려했다. 마지막으로, 최종판은 그 복잡성 때문에 독자를 질리게 만들 수 있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칼뱅이 주석에서 추구했던 ‘간결성’(brevitas)과 ‘용이성’(facilitas)이 여기에 아주 제대로 구현되어 있다.

1541년 프랑스어 초판은 많은 이들의 애정을 받아 온 판본이다. 1536년 초판의 성공적인 출발이나 1559년 최종본의 장엄한 대단원과 달리, 여기에는 한 실패한 개혁자가 난민 공동체에서 균형 감각을 갖춘 온유한 목회자로 거듭난 사연이 구절마다 배어 있는 까닭이다. 바르트부르크에 루터의 독일어 성경이 있다면, 스트라스부르에는 칼뱅의 프랑스어 『기독교 강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눈에 띄게 넓어지고 깊어지던 칼뱅 신학의 양생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낸 걸작이 마침내 오늘의 감수성 가득한 우리말로 갈아입었다. 칼뱅의 글결을 잘 살린 번역과 탁월한 편집력 덕분에 이 책은 더욱 빛난다.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되었다”는 바울을 빼닮은 칼뱅의 고백이 울려 퍼지는 드넓은 평원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특징]

-초판과 최종판 사이에 출간된 가장 중요한 판본인 1541년 프랑스어 초판
-칼뱅 본연의 숨결을 잘 살린 번역과 유려하고 치밀한 편집
-1560년 프랑스어판과의 권, 장, 항별 비교표 수록


[대상 독자]

-장 칼뱅의 생애와 사상을 깊이 탐구하려는 이들
-종교개혁 및 개신교의 본질과 핵심에 다가가려는 이들
-성경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은 이들
-그리스도를 따라 생각하고 살고자 힘쓰는 모든 신자
장 칼뱅
1509년 7월 10일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 지방의 누아용에서, 주교의 법률 고문으로 일하던 제라르 코뱅과 잔 르프랑의 일곱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나다.

1523년 학업을 위해 파리로 이주하여 마르슈 대학과 몽테규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하다.

1528년 아버지에게 법학 공부를 권유받고 저명한 법학자 피에르 드 에스투왈이 있는 오를레앙 대학으로 옮기다.

1529년 여름, 부르주 대학으로 옮겨 법학 공부를 계속하다.

1531년 아버지 사망 후 신학 공부를 위해 파리로 돌아가 포르테 대학에서 심도 있게 어학을 공부하다.

1532년 법학 공부를 마치기 위해 다시 오를레앙 대학으로 돌아가다.

1533년 11월 1일 만성절, 종교개혁을 역설한 니콜라 콥의 파리 대학 학장 취임 연설문 초안 작성에 참여하다(이 사건에 따른 박해를 피해서 콥과 함께 파리를 탈출할 무렵 “갑작스런 회심”을 경험한다).

1534년 파리 근교에 머물다가 파리 남부의 생통주 지방으로 옮겨 가다(거기서 그는 샤를 데스페비유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상당 기간 클레의 교구 사제이자 앙굴렘 성당 참사회원인 루이 뒤 티예의 집에 머문다. 뒤 티예의 훌륭한 서재는 그의 『기독교 강요』 초판을 준비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1535년 6월 4일, 사촌 피에르 올리베탕이 출간한 프랑스어 성경의 추천 서문을 라틴어로 작성하다.

1536년 3월, 바젤에서 『기독교 강요』 라틴어 초판이 출간되자 빠른 속도로 매진되다(프랑수와 1세에게 보내는 서한 형식의 서문은 1535년 8월 23일자로 되어 있다).
8월, 제네바를 거쳐 스트라스부르로 향하던 중 기욤 파렐의 설득으로 제네바 종교개혁에 동참하기로 하다.

1538년 4월 25일, 개혁안이 반대에 부딪혀 파렐과 함께 제네바에서 추방되다(바젤에서 몇 주를 보낸 뒤 파렐은 뇌샤텔로 옮겨 가고, 칼뱅은 『기독교 강요』 두 번째 판을 준비하기 위해 바젤에 남아 있기로 한다).
9월, 마르틴 부처와 볼프강 카피토의 요청으로 스트라스부르로 가서 프랑스 난민으로 구성된 교회에서 목회하다.

1539년 『기독교 강요』 라틴어 제2판이 출간되다(초판의 세 배 분량으로 총 1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541년 프랑스어판과 함께 이후 출간될 판본들의 근간이 된다).

1540년 8월 6일, 재세례파 출신으로 스트라스부르 회중에 합류한 장 스토르되르의 미망인 이들레트 드 뷔르와 결혼하다.

1541년 라틴어를 모르는 신자들을 배려하여 1539년판 『기독교 강요』를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출간하다. “나는 이 책이 하나님의 모든 자녀로 하여금 성경을 참되고 바르게 이해하게 해줄 문이요 열쇠 역할을 하리라는 것만은 약속할 수 있다.”
9월 13일, 제네바 시의회의 공식 요청으로 제네바로 귀환하다.
11월 20일, 그가 작성에 참여한 새로운 교회 법규가 제네바 시의회의 승인을 받다.

1542년 7월, 『기독교 강요』 라틴어판과 프랑스어판이 모두 프랑스에서 금서 조치되다.
7월 28일, 아들 자크 출생(조산아로 태어나 곧 사망).

1543년 『기독교 강요』 라틴어 개정판(제3판)이 출간되다(여기서 4개의 장이 늘어나 총 21장이 되며 1545년 다시 프랑스어로 출간된다).
1월 28일, 그가 제정 위원으로 참여한 시민법이 제네바 총회에 의해 채택되다.

1549년 3월 29일, 아내 이들레트 드 뷔르 사망.

1550년 『기독교 강요』 라틴어 개정판(제4판)이 출간되다(양심에 관한 설명 등이 추가되어 다시 한번 분량이 늘어난다).

1555년 5월 16일, 그의 반대파가 선동한 폭동이 실패하여 주요 지도자들이 체포되거나 추방되다.

1559년 『기독교 강요』 라틴어 최종판이 출간되다(서문은 같은 해 8월 1일자로 되어 있다. 지독한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새로운 책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최종판을 완성하고 곧이어 1560년에 프랑스어로 출간한다).
6월 5일, 제네바 대학의 전신인 제네바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신학과 법학 및 인문 교육을 하다.

1564년 초, 건강 악화로 인해 대부분의 활동을 중단하다.
2월 6일, 생 피에르 교회에서 마지막 설교를 행하다.
4월 2일 부활 주일, 마지막으로 성찬에 참여하다.
5월 27일, 제네바 목회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다(다음 날, 유언에 따라 제네바 왕립 묘지의 아무 표지 없는 무덤에 묻힌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가르치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총의 분량에 따라 신실하게 성경을 해석하고자 노력했음을 밝힙니다. 그분의 무한한 선하심이 없었다면, 내 모든 열정적인 노력은 연기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존 칼빈
16세기 가장 위대한 종교개혁자이자 신학자. 프랑스 누아용에서 출생한 칼빈은 14세에 파리 대학에 입학해 철학과 논리학, 라틴어를 수학했으며, 이후 오를레앙 대학과 부르주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1533년 어느 시점에 갑작스런 회심을 경험한 이후 가톨릭 교회가 주는 연금을 거부하고 투옥되었으며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껴 스위스 바젤로 피신했다. 이 기간 동안 당시 프랑스 국왕인 프랑수아 1세에게 참된 기독교 신앙을 전하고 박해받는 신교도들을 옹호할 목적으로 『기독교 강요』를 집필했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개혁자의 소명을 따라 살았던 칼빈은 제네바의 종교와 정치, 시민생활 전반에 걸쳐 개혁을 추진하는 데 헌신했으며, 일생 동안 설교와 집필 활동을 통해 프로테스탄트의 신학적 토대를 구축했다.
시리즈 소개 | 세트 | 세트낱권구성
장 칼뱅 / 부흥과개혁사
가격: 28,000원→25,200원
장 칼뱅 / 부흥과개혁사
가격: 22,000원→1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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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칼뱅 / 부흥과개혁사
가격: 16,000원→14,400원
장 칼뱅 / 도서출판 두란노
가격: 8,000원→7,200원
존 칼빈 / 비전북
가격: 17,000원→15,300원
장 칼뱅 / 복있는 사람
가격: 60,000원→5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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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존 칼빈 2021~2022년 출간(개정)도서 세트(전10권)
저자장 칼뱅,존 칼빈
출판사갓피플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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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2022-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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