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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선배들의 일기와 편지집 리스트   믿음,선교,사랑,삶에 대한 순전한 내면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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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1-12-22  |  상세설명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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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24시간 동행한 영적 기록!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하나님과의 동행을 따라가다!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며 그분과 동행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
삶의 매 순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갈망했던 프랭크 루박의 고백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저는 프랭크 루박 선교사의 일기에 도전을 받아 실제로 영성일기를 써보았고,
이제는 온 교우들과 함께 도전하고 있습니다.
제가 프랭크 루박 선교사를 통하여 얻은 유익은 바쁜 현대 생활 속에서도
온전히 하나님과 24시간 동행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습니다.
_유기성 목사, 추천의 글 중에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의도에 충실한 완역판!
이번에 복 있는 사람에서 출간하는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생애와 일기』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의도를 따른 “완역판”입니다.
에드워즈는 이 책을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했습니다.

1부, 브레이너드의 일기
2부, 브레이너드의 선교 일지
3부, 브레이너드의 삶을 회고하는 에드워즈의 설교

기존에 브레이너드를 소개한 책은 이중에서 1부 일기와 2부 일지를 “축약”해 담고 있어서,
원문의 숨결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고, 분량도 길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번에 The Banner of the Truth 2007년판을 저본으로 삼아 복 있는 사람에서 내놓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생애와 일기』는 에드워즈의 의도를 충실히 살린 완역판입니다.



이 일기를 펴서 한두 쪽을 읽다보면 감히 책을 덮을 수가 없을 정도의 긴장감, 아니 황홀감을 느낄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조지 휫필드를 쓰시기 위해 어떻게 그를 빚으시고 다루셨는지,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휫필드는 어떠한 뜨거움으로 무릎을 꿇었는지, 엄청난 자석과도 같은 힘이 여러분을 휫필드의 피땀의 생애 속으로 끌고 들어갈 것입니다.

이 책에 대해서는 무어라 설명하기가 오히려 어렵습니다. 독자는 이 일기를 펴서 한두 쪽을 읽다 보면 감히 책을 덮을 수가 없을 정도의 긴장감, 아니 황홀감을 느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조지 휫필드를 쓰시기 위해 어떻게 그를 빚고 다루셨는지, 휫필드는 어떠한 뜨거움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무릎을 꿇었는지, 엄청난 자석의 힘이 독자 여러본을 휫필드의 피땀의 생애 속으로 끌고 들어갈 것입니다. 죽음을 무릎쓴 그의 복음 전도의 열정이 아마도 독자 여러분을 삼킬 듯할 것입니다.
이 책 후반부에는 두 개의 부록이 실렸는데, 그 하나는 휫필드가 뉴잉글랜드 코넷티컷을 순회 설교차 방문했을 때의 그 지역의 부흥 열품을 현장감 있게 기록한, 농부이자 목수였던 한 주민의 기록이고 나머지 하나는 존 웨슬리가 로마서 8장을 본문으로 한 『값없는 은혜』라는 설교에서 그 본문은 '선택의 교리'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논박한 장문의 편지 전문입니다. 이 교리적 논쟁의 편지는 휫필드의 신학적 입장을 극명하게 드러낼 뿐 아니라 18세기 영국과 북미 일대에서 일었던 부흥의 원동력이 알미니안 교리가 아닌 칼빈주의 교리였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한편, 영국 부흥의 기초를 놓은 사람도 사실 존 웨슬리가 아니라 조지 휫필드였음을 알게 해줍니다. 그를 추종하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휫필드는 "휫필드라는 이름을 사라지게 하라. 다만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했기에 그는 한 교파나 교단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로 18세기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웨슬리의 생애

존 웨슬리는 유한한 수명을 가진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최고 수준의 영향력을 18세기 전체에 걸쳐 미쳤던 아주 강인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웨슬리는 감리교회를 창시하였고, 18세기 영국을 그의 복음전도 활동을 통하여 피의 혁명으로부터 구원해 냈다는 역사가들의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젊은 시절, 제레미 테일러의 「거룩한 죽음」, 「거룩한 삶」,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고 윌리엄 로(William Law)의 「경건한 삶으로의 초대」,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큰 영향을 받아 일기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의 평생 동안의 일기는 26권으로 제본되어 보존되어 있고, 이후에 약 500쪽씩 4권으로 축약본이 나왔다. 퍼시 파커가 그것을 다시 1/4로 축약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파커는 웨슬리의 놀라운 활동의 분위기를 그대로 남겨 놓으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웨슬리의 일기를 통해서 우리는 열정적인 신앙의 생애의 한 표본을 볼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사로잡혀 그의 일생을 온전히 바칠 때, 하나님이 그를 얼마나 잘 쓰실 수 있는지 존 웨슬리는 여실히 보여준다.
매년 평균 8천 마일 이상 말을 타고 다니면서, 1년에 1,000번 이상 설교를 하였다. 강인한 체력, 끊임없는 열정, 그 매력적인 인격과 경건은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정도였다.
우리는 위대했던 하나님의 사람의 일기를 통해, 그가 겪은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큰 영향력을 남겨 놓았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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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 대신 감사를, 잘티 대신 반성을, 외면 대신 용서를
기독교인의 삶을 실천한 김교신의 당당한 '신앙 간증록'


1931년 4월 6일 제27호 나오다. 부업으로 하는 일이라 학년말 신학년을 당하여 부득이 늦게 되었다. 잡지를 시내 서점에 배달할 때마라 '이것도 잡지라고' '팔리지도 않는 잡지...'
등등의 말이 귀에 거친다. 때로는 모욕에 가까운 광경도 당한다.
물론 조선 사람들이요, 예수 혹은 기독(基督) 이란 것을 그 간판에 간계한 서점들이다.
저편에서는 사실을 말할 뿐이겠지만, 이편은 부흥회에나 참석하는 셈으로 매삭(每朔)이 경멸을 당하기를 향락하니 감사(感謝), 가장 유효한 신앙 부흥은 예수의 이름 연고로 모욕받는 때에 온다.

1932년 1월 10일(일) 성서는 한갓 독해함으로써 만족할 것이 아니다. 열독(熱讀)하고 필사(筆寫)하며 암송할 것이다. 우리 독자 제군도 오산 성서연구 회원에게 본받음이 있어 우선 위에 적은 장절(章節)부터 성구를 암송하는 습관을 붙이면 어떨까.

1933년 6월 2일 수험준비나 운동경기하다가 늑막염에 걸린 청년학생이 있다는 소식은 종종 들었거니와 복음을 외치다가 폐렴 치사한 운전사가 있다 함은 인간 소식인 것 같지 않다. 듣건대 함남 지방 어떤 노신도 한 분은 새벽마다 등산하여 힘껏 소리쳐서 기도하기를 '이 음파가 들려지는 곳까지만이라도 구원하여 주옵소서' 하고 씨름하듯 기도한다고. 미련한 일 같으나 인간의 지혜보다 나은 것이 천국 일이다.

1934년 8월 21일 우는 소아(小兒)를 유순한 말로 달래다가 듣지 않으므로 노규(怒叫)하고, 그래도 그치지 않으므로 한두 대 때렸더니 점점 크게 울고, 다시 불순(不順)한다고 격분하여 난타하였더니 아이는 더욱 발악한다. 형세대로 가면 아이는 죽은 후에라야 그칠 것이었다. 나는 소아의 아버지 될 자격도 없는 자요, 더욱이 인간을 교육하는 자로서 부적함이 태심(太甚)함을 절감 또 통회하다. 인간 교육이 지난사(至難事) 임을 깨달을 때에 나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교육의 지극히 완전함과 그 은총의 무한대함에 눈구석이 스스로 뜨거워지다.



폭스의 여러가지 개인적인 종교 체험들 또는 직접 계시들이 그의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의 종교적 배경은 성공화적이라기보다는 청교도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오히려 청교도들보다도 더 기성교회의 형식주의와 전통주의에 반대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주는 내면의 빛을 신조나 성경보다 더 우위에 두었거, 개인적 체험을 권위의 진정한 원천으로 간주하였다.


14,000 → 12,600원 (10.0%↓) 무료배송 상품입니다.소득공제도서정가제700

“기도응답의 산 표본”,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뮬러를 통해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다.


믿음의 기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신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이 약속은 성경이 기록된 시대에만 국한되는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유산으로 우리에게 남겨지는가?

뮬러의 기도는 겸손하고도 뜨거운 심령과 함께 솔직한 언어로 드려졌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부요하시고 자비로우시며 용서하시는 분이심을 알고 있었기에 자유롭게 기도드렸으며, 그 결과로 커다란 축복을 받았다. 그렇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모든 기도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렸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의 이름을 모든 이름 위에 높이는 것이 그의 마음과 삶을 전적으로 지배한 목표였다.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뮬러가 한 일의 양은 놀라울 정도다. 그가 한 일의 다양함은 대부분의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훨씬 초월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근심은 주께 맡기고, 항상 조용하고 평안하며 기도하는 마음 자세를 유지하였다. 조지 뮬러의 가장 큰 소망은 자신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기록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타나고 발전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 믿음은 그것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가 불가능한 믿음이며, 사랑으로 역사하며 마음을 정결케 하는 믿음이다. 또한 우리의 길에 놓여 있는 높은 산 같은 장애물을 제거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취하고, 바라는 것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인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과 삶 속에 가득 채워지기를 바란다.



예수의 혼으로 일제강점기를 살아낸 민족의 스승,
우리는 왜 김교신을 기억해야 하나?


1. ‘참 조선인’ 김교신
조선을 사랑하고, 한민족을 사랑하고, 우리말을 사랑했던 김교신(金敎臣, 1901∼1945). 그는 ‘성서를 조선 위에’, ‘성서 위에 조선을’ 세우려 한 신앙인으로, 조선산(産) 기독교, 조선적 기독교 운동을 주창했다. ‘무교회주의자’로 불리는 그는 형해화(形骸化)되어 가던 기성 교회를 비판, 개혁함으로 그 틀과 제도를 벗어나려 했다.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로서 말씀과 기도 생활에 철저했던 그의 영성과 사랑의 실천은 헌신적인 교육자로서의 삶을 통해 많은 제자들에게 깊은 감화와 영향을 끼쳤으며, 오늘의 우리에게도 참 스승으로서 사표(師表)가 되고 있다.

2. 김교신 육필 일기―처음이자 마지막 해역본
김교신의 육필 일기가 마침내 해역(解譯)되어 소개된다.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에서는 2015년 봄, 김교신 선생 서거 70주년에 즈음하여 영인본 <김교신 일보>를 펴낸 바 있다. 이 책은 영인본 출간 이전부터 약 1년 9개월에 걸친 해역 작업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펜으로 한 자 한 자 써내려 간 일상의 기록들을 통해 우리는 김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만날 수 있으며, 일제강점기 후기 시대상의 단면들을 적나라하게 엿볼 수 있다. 함석헌, 류영모 등 그에게 사상적으로 영향을 끼친 이들, 죽마고우 한림을 비롯한 벗들, 손기정, 윤석중, 류달영 등 양정 시절 제자들과 함께한 시간들과 나눔의 자취도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초대 교회의 순교자들이나 존경하는 성자들이 죽기 직전에 남긴 말들이 수 세기를 전해 내려와 다음 세대에 영감과 축복이 되었던 것처럼, 작년 중국에서 순교한 성도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들은 모두의 가슴과 정신 속에 살아남아야 할 메시지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었기에 기뻐합니다. 그분이 영광중에 나타나실 때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기뻐할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 ‘그 사람은 왜 그곳에 갔을까? 생명을 낭비하고 말았구나.’하겠지만, 그러나 사랑하는 이여,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세요. 그분은 가장 좋은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며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신답니다.”라고 했다.

이런 메시지가 더 멀리 더 널리 퍼져야 한다고 확신하기에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비록 죽었지만, 그들로 말하게 하길 원한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한 이 증거의 말들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길 빈다. 주의 영광과 그들이 목숨을 바쳐 섬기려고 했던 그 땅을 위해 우리가 더욱 온전한 믿음으로 선한 일을 하도록 힘 주시기를 빈다.
더 많은 편지를 소개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타이위앤의 선교사들이 쓴 편지들은 현지인이 받아서 은행에 맡긴 것을 은행이 선교사들의 돈을 관리들에게 넘겨줄 때 함께 넘겨서 불태운 것으로 보인다.

_편집자 서문 中 / 1901년 12월, 중국내지선교회(CIM) 마셜 블룸홀



“신비롭고, 경외심을 일으키며, 초인적인 어떤 것이 러더퍼드의 편지에 있다.”
스펄전과 웨슬리가 극찬한 위대한 경건의 편지들


새뮤얼 러더퍼드는 스코틀랜드가 낳은 위대한 교회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목회자요 문학가였다. 그의 편지들은 개혁교회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경건문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조차 이 편지들을 발견한 뒤 깊은 감명을 받고 이를 발췌하여 자신의 기독교 총서에 넣어 출판하였다.

러더포드는 주교정치를 반대한 대가로 1636년부터 1638년까지 2년 동안 애버딘에 유배되어 있으면서 앤워스 교구 교인들과 친구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냈다. 이후 1848년 앤드류 보나르가 그 외에 러더퍼드가 평생에 썼던 편지를 모아 총 365통의 편지를 편집한 결정판을 간행했다. 『새뮤얼 러더퍼드의 편지』는 보나르의 결정판 중 200편을 선별하여 번역한 것이다.

러더퍼드가 태어난 지 400년이 지났지만, 그의 편지들은 기독교 문학의 고전으로서 교파를 막론하고 지금까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깊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짧은 삶을 불태웠던 로버트 머리 맥체인은 항상 그의 손에 『새뮤얼 러더퍼드의 편지』를 들고 있었다고 한다. 청교도 목사인 리처드 백스터는 “성경을 제외하고 세상은 이러한 책을 본 적이 없다”는 찬탄을 남겼고, 찰스 스펄전은 이 책이 성령의 영감에 가까운 책이라고 극찬하였다. 『새뮤얼 러더퍼드의 편지』를 통해 이제 우리도 참된 목회자의 모습과 진정한 경건이 무엇인지 만나볼 수 있다.



본회퍼와 약혼녀 마리아가 2년간 주고받은 ‘옥중연서’
-어두운 시대의 감옥에서, ‘연인’으로서의 본회퍼를 발견하다!


”많은 것을 포기하며 견뎌 내야 했던,
세상에서 보기 드문 두 연인, 디트리히 본회퍼와 마리아의 애틋한 사랑의 증거”
-에버하르트 베트게, 김회권, 김기석 추천

디트리히 본회퍼는 목사이자 신학자로, 무엇보다 잘못된 정치권력에 맞서 투쟁한 행동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나치 정권에 의해 투옥되기 직전 한 소녀와 약혼한 것과, 이후 처형되기 전까지 그녀와 나눈 이야기들은 이제까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편지들은 디트리히 본회퍼와 그의 약혼녀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 사이에 오고간 사랑의 언어들을 잘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어려운 상황 속 그들의 내밀한 속내를 또한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본회퍼의 은혜에 기반한 굳건한 믿음, 연인을 향한 사랑, 문학과 철학 등에 관한 깊은 이해, 갑작스러운 체포와 역시 갑작스러운 처형에 이르기까지의 내면 풍경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3.1 독립운동 100주년,
한국을 너무도 사랑했던
프랭크 윌리엄스 선교사의 169통의 편지!”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공주 영명학교를 설립하고,
민족교육의 불씨를 지핀 윌리엄스 선교사의 삶과 사명!

“그가 남긴 편지는 글마다 사랑이었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끈질길 수 없었다.
그 끈질김이 오늘의 한국 교회를 이루었다.”

프랭크 윌리엄스(Frank E. C. Williams, 한국명 우리암, 1883-1962)는 1883년 미국 콜로라도 주 뉴윈저에서 태어났다. 1906년 덴버대학교를 졸업하고 23세 약관의 나이로 불모지의 땅 한국에 파송되었다. 그는 34년간 감리교 충청 지역 선교 책임자 및 공주 영명학교 교장(초대, 2대)을 지내며, 민족 교육 말살 정책을 펼치는 일제 치하 속에서 한국의 자주 독립과 다음세대를 향한 교육의 불씨를 지폈다. 교육만이 이 나라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일념으로 제대로 된 교육 시설이 없는 충청 지역에 공주 영명학교를 세워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우수한 인재들을 미국으로 유학시켜 훗날 이 나라의 미래를 밝힐 등불로 삼고자 했다. 충청 지역에서 일어난 3·1 독립운동은 그가 세운 공주 영명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에 의해 주도됐으며, 이 학교 출신의 명사로는 초대 내무부 장관 조병옥, 초대 충남지사 황인식, 열사 유관순 등이 있다.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된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인도 선교사로 파송되는데, 그곳에서도 광복군과의 특별한 관계를 맺고 영국군과 함께 대일 항전을 전개하는 등 통역관으로서 큰 활약을 펼쳤다. 광복 후 그는 미군정 농업정책 고문관으로 다시 한국에 돌아와 복음 전파는 물론 우리나라의 교육과 농업 발전 및 정부 수립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프랭크 윌리엄스 선교사가 이 나라의 민족 교육과 자주 독립을 위해 애써온 내용들을 169통의 편지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재조명하고, 더불어 이 나라를 위해 본인 은 물론 가족의 일생과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희생한 선교사들의 삶과 사역들을 되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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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편지들은 한 인물의 내면과 사생활을 엿보게 해 주기 때문에 다른 종류의 흥미를 유발한다. 게다가 위대한 종교개혁자인 칼뱅의 인간됨을 들여다보는 일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흔히 하듯이 그를 지나치게 높이 떠받들거나 억지로 폄하하는 부적절함을 지양하고, 있는 그대로의 그를 묘사하기에는 편지만큼 유익한 것이 없다. 게다가 목회자로서의 칼뱅을 살피기에도, 그리고 개혁의 성공적 내지는 실패적 결과들이 얻어질 때마다 그 진행 과정을 추적하기에도 편지는 크게 도움이 된다. 이것은 그의 신학적, 문학적 저술에서는 얻어 낼 수 없는 것들이다.
나는 칼뱅의 초기 편지들의 번역을 마치면서 그를 동아시아의 인식 사유로 분석해 보았다. 서간문은 칼뱅이 자신의 내면을 넘어 삶의 외연을 향하는 과정까지도 보여 준다. 칼뱅은 험하고 시큼한 세상을 향해 나서면서 자신의 존재를 형성해야 했고 고급 지식인으로서 모종의 정치-사회적 책임으로의 초대장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책임 수행은 필경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역사적인 평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편지는 반드시 읽어야 할 필수 텍스트라고 볼 수 있다.



브루스 헌트 선교사가 1946년 10월부터 1948년 7월까지 아내에게 보낸 1,500여 페이지의 편지이다. 총 4권으로 한글 번역본과 영어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교사로서의 헌신적인 모습과 한국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으며, 해방 이후 미군정하의 한국 사회와 기독교계의 상황을 외국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역사적인 문헌이다.



탁월한 변증가요 작가요 영문학자였던 C. S. 루이스의
인간적인 면모와 소소한 일상을 만나는 130여 통의 편지


영문학자이자 기독교 작가로서 명성이 높았던 1950년부터 루이스가 사망한 1963년까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미국의 ‘메리’라는 여성에게 보낸 130여 통의 루이스 편지 모음집. 여기에는 루이스의 생애 후반부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들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1957년 조이 데이빗먼과의 결혼, 3년 조금 지나서의 그녀의 죽음, 그리고 케임브리지 대학의 중세와 르네상스 영문학 주임교수로 선임된 일이 그것이다. 루이스의 편지들은 그의 다른 책들과 달리 그리 문학적이지 않다. 즉각 본론으로 직행하며 단도직입적으로 사안을 다루고 마친다. 세련된 문체나 위트가 많지 않고 학문적인 관심사도 아주 짧게 언급될 뿐이다. 철저하게 ‘한 개인의 영적인 격려와 안내’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루이스가 고민하고 지향하는 신앙의 알맹이들이 드러나고, 신앙인으로서의 루이스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매일 상대를 위해 기도하면서 또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는 모습, 하루도 거르지 않으려 했던 산책, 신문과 기자들에 대한 반감, 행정업무에 대한 부담, 재정에 대한 염려, 일상적인 허드렛일, 악화되어 가는 건강 등 루이스의 인간적인 모습과 소소한 일상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가급적 루이스가 보낸 편지 원문 느낌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날짜 표기 방식, 마무리와 서명을 원서 그대로 살렸고, 긴 문장을 임의로 나누지도 않았다. ‘루이스의 세계’로 들어가는 가장 인간적이고 사적인 입문서다.


20,000 → 18,000원 (10.0%↓) 무료배송 상품입니다.소득공제도서정가제1,000

《빈튼 의사의 선교 편지》

빈튼(C. C. Vinton, M.D.) 선교사는 의료 선교사로 내한하여 제중원에서 진료하였고, 지방 순회 진료를 하면서 복음 선교에 헌신했다. 또한 주한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회 서기로 다년간 봉사하면서 회의록을 자세히 기록으로 남겨 북장로교회가 행했던 사역들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빈튼 선교사는 한때 제중원 원장으로 사역했고, 조선성서공회 창설에 공헌했으며, 기독교 신문과 잡지 편집에도 수고하였으며, 조선 나병환자 실태 조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부산 나병원 설립에도 공헌했다. 1908년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귀국하여 1936년 뉴욕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역자는, 가족 네 명(부인과 어린 세 자녀, 양화진에 묻힘)의 생명을 잃으면서까지 한국 선교에 헌신한 빈튼 선교사를 한국 교회가 기억하기를 바라며 이 책을 옮겼다. 영문 편지도 같이 수록되었으며 한국 선교 초기의 사역들을 볼 수 있음과 동시에 역사적 자료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18세기 초엽, 영국은 종교적, 도덕적으로 쇠퇴해가는 상태에 있었다. 국가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교회가 먼저 부흥되어야 하는 법이다. 휫필드와 웨슬리의 부흥운동 이후에 제2세대에는 지도자들이 출현했다. 그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람이 존 뉴턴인데 그는 한때 방탕한 성원이자 노예상이었다가 후일 하나님의 은총에 힘입어 겸손하고 헌신적인 그리스도의 사역자가 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묘비명을 이렇게 썼다. "한때는 아프리카의 노예상인의 종으로 무신론자요 방탕자였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사랑에 의하여 택함을 받고, 회개하여 용서받고, 그가 오랫동안 없애려고 노력했던 그 신앙을 전파하도록 임명을 받았다." 복음주의 부흥운동 시기에 가장 뛰어난 문필가로서 그가 독특한 그의 사역을 성취한 것은 바로 그 편지를 통해서였다. 성경에 대한 뛰어난 지식, 깊은 개인적 신앙체험, 그의 많은 친구들과의 교제(그중에는 휫필드, 쿠퍼, 윌버포스 등이 있다), 그의 여러가지 시련, 시골에서의 목회경험, 그의 강력하고도 명석하며 특유한 문체, 이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그의 천부적 은사를 발휘할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이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편지들은 많은 주제들을 망라하며, "신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순종하도록"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성령께서 교회에 주신 선물은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지체들이 같은 직분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뉴턴이 받은 재능은 영혼 하나하나를 다루는 재능이었는데, 그는 그런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복음주의 운동의 위대한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그가 목회하면서 그의 명성은 널리 퍼지게 되었고, 사람들은 인근 각처에서 몰려와 그의 조언과 도움을 요청했다. 그에게 직접 올 수 없었던 사람들은 편지를 통해 그의 도움을 요청했다. 이 책은 그의 치유적 편지들 중 가장 훌륭한 것들만을 모은 것이다. 사람들은 "존 뉴턴 목사가 복음주의 부흥운동의 가장 탁월한 문필가이며, 그가 문필을 통해서 부흥운동에 기여했다"고 평한다. 신앙생활의 바른 원리를 찾기 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존 뉴턴의 편지들에서 깊은 광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프랭크 루박

그는 매 순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간 하나님의 신실한 경청자이자 동행자였다. 1915년 필리핀에서 선교사로서의 삶을 시작한 그는 교회와 신학교를 설립하고 신학교 교수로도 활동했다. 또한 세계문맹퇴치선교회(World Literacy Crusade)를 설립하여 정치적 직위가 전혀 없는 가운데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외교정책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으며, 미국 우표에 등재된 유일한 선교사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림 언어 문맹퇴치 음절도표 초판을 완성했고, 1930년에는 ‘일대일 가르침’(each one teach one)으로 알려진 문맹퇴치 증진을 위한 자원봉사 방법을 고안했다. 그의 교수법으로, 2백 가지 다른 언어와 방언을 사용하는 6천만 명이 넘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언어나 방언으로 읽고 쓰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가 범세계적인 문맹퇴치 프로그램의 기초를 닦고 있을 1937년, 6개월 동안 기록한 이 ‘기도일기’에는 하나님을 찾는 한 겸손한 인간과 하나님의 친밀하고 인격적인 대화가 담겨 있다. 이 기도일기는 영적인 깨달음에 대한 기록이며, 삶의 순간순간 하나님의 지침을 듣고 그대로 행하려는 그의 노력에 대한 기록이다.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깨달을 수 있기를 바라는 그의 간절한 마음과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생각과 지혜를 찾는 그의 노력은 대단히 열정적이고 성실하다. 진솔한 문체에 녹아 있는 그의 순도 높은 순수함과 진실함이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줄 뿐만 아니라 그처럼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갈망하도록 할 것이다.

프랭크 루박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프랭크 루박의 편지》(생명의말씀사),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 기도》(복 있는 사람) 등이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
미국의 대표적인 신학자이자 철학자, 설교자, 인디언 원주민들의 선교사다. 1703년에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나 1716년 13세의 나이로 예일 대학에 입학, 1720년 17세 때 최우수 학생으로 졸업한다. 그는 1722년 8월부터 뉴욕에 있는 장로교회의 목사로 사역을 시작했고, 1724-1726년까지 예일 대학의 개인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에드워즈는 1726년 8월에 자신의 외조부인 솔로몬 스토다드가 목회하고 있던 노스햄튼 교회의 부목사로 부임해 사역하다가 1729년 외조부의 뒤를 이어 담임목사로 사역하게 된다. 이후 1750년에 성찬 참여 자격 논쟁으로 해임당하기까지 에드워즈는 두 차례에 걸친 영적 부흥과 대각성을 그의 목회지에서 경험하게 되고(1734-1735년에 일어난 코네티컷 강 계곡 부흥과 1740-1742년에 일어난 1차 대각성운동), 부흥과 대각성운동의 변호자가 된다. 에드워즈는 1751년에 매사추세츠 주 스톡브리지에서 지역교회 목사 겸 인디언 선교사로 다시 사역을 시작했으며, 1758년에는 뉴저지 대학(프린스턴 대학 전신) 학장으로 청빙 받아 부임한다. 그러나 같은 해 3월 22일에, 천연두 예방접종의 부작용으로 안타깝게 죽음을 맞는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신앙 감정론」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생애와 일기」 「의지의 자유」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 등이 있다.
죠지 휫필드

1714년 12월 16일 영국 글로스터(Gloucester)의 벨 여관에서 여관을 경영하던 토마스 휫필드(Thomas Whitefield)와 엘리자벳(Elizabeth)을 부모로 하여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죄에 대한 자각을 했고, 성령께서 자신에게 감화를 주고 있음을 느꼈다고 고백한 대목에서,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목사가 되기를 원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큰 그릇'으로 빚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그리고 어머니의 재혼으로 들어온 의붓 아버지의 방만함으로 인해 번창하던 벨 여관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열다섯 살 때 휫필드는 어려워진 여관 일을 돕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기도 했지만 1년여 후에 다시 학교에 나갔고, 17세가 되는 해에 옥스퍼드의 펨브로크 칼리지에 입학하게 됩니다. 여기서 그와 함께 18세기 대부흥 주도했던 웨슬리를 만나게 됩니다. 연대기는 21세에 회심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 회심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신을 헌신하겠다는 큰 결심과 전환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이후 그의 생애는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진 것임을 우리는 그의 육필 일기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1세에 그는 준목인이 되었고 24세 되던 해 1월 14일, 옥스퍼드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소년 시절부터 웅변의 귀재로 일컬어지던 그는 그 웅변력을 그릇으로 하여 뜨거운 영성을 셀 수도 없이 많은 영혼들에게 양식으로 제공하여  하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그는 23세 때 이후  여러 차례 뉴잉글랜드(미국 동북부 6개주)로 건너가 선교 사역을 감당하며 고아원을 설립하는 등 빈민 구제에도 크게 힘을 썼습니다. 그는 설교할강단을 얻지 못하여 주로 순회 노천 설교를 했는데, 배를 이용하거나 말을 타고 동역자들과 함께 이동했습니다. 25세가 되던 1740년 10월20일의 일기(본문 656쪽)에 서 읽을 수 있듯 그는 죠나단 에드워즈를 만난 후 다음 설교 요청에 일일이 응하다가 건강 또한 급속히 악화되기도 했습니다. 휫필드는 영국과 뉴잉랜드를 오가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외치는 일에 피땀을, 아니 생명을 쏟다가 보스톤으로 여행하던 중 엑세터의 여관에서 한밤중에 몰려온 청중에게 마지막으로 설교한 후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쁘게 달려갔습니다.
1779년 9월 30일 주일, 향년 55세였습니다

존 웨슬리
감리교의 창시자. 엡워스의 목사님 사무엘 웨슬리의 15번째 아들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하고 링컨대학의 특별 연구원이 되었다. 또 잠시 동안 그의 부친의 교회에 부목사로 있었다. 대학 시절 그는 신성클럽(Holy Club)을 조직하여 신앙운동을 주도했다. 1735년 그는 당시 식민지인 미국으로 선교사로 갔으나. 그곳에서 마찰 끝에 곧 귀국했다. 그는 모라비아 교회 지도자 피터 뵐러를 만나 그의 신앙생활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1738년 올더스게이트 가의 한 모임에서 회심을 경험하고, 그 이 후 그의 생애를 야외 설교를 통해 영국 전역에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바쳤다. 설교를 통하여 웨슬리만큼 18세기 영국을 크게 변화시킨 사람이 없다. 웨슬리야말로 하나님의 사람이 얼마나 큰 일을 이룰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증명한 사람이다.
노평구
1912년 함경북도 경성 어랑에서 태어났다. 1929년 배재중학교 3학년 때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1년간 옥고를 치렀고, 출감 후 학업의 길이 끊긴 이래 서울 마포 도화동 토막 빈민촌에서 여러 해 동안 빈민 아동 교육에 종사했다. 빈민 아동 교육을 하던 중 내면적인 갈등과 종교적인 번민에 휩싸여 김교신 선생을 찾아 한동안 신앙 지도를 받다가 1936년 선생의 권유로 일본에 건너가 우치무라 간조의 제자인 쓰카모토 도라지 선생의 주일 성서연구회에서 10년간 성서를 배웠다. 1945년 귀국하여 1946년부터 월간 「성서연구」를 창간, 제500호(1999년 12월)까지 발간했다. 같은 기간 서울 종로 YMCA에서 매 주일 성서 집회를 주관하는 동시에 일제에 의해 거의 멸실되다시피 했던 「성서조선」158권 전권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편집하는 등, 10여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1975년 「김교신전집」을 완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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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믿음의 선배들의 일기와 편지집 리스트
저자프랭크 루박,조나단 에드워즈,죠지 휫필드,존 웨슬리,노평구 엮음,조지 폭스,조지 뮬러,김교신,마셜 블룸홀(Marshall Broomhall)/윙시페이(黃錫培),새뮤얼 러더퍼드,디트리히 본회퍼,마리아 폰 베데마이어,서만철,장 칼뱅,한부선(브루스 헌트),편집자 최재건 김재현 전경미,C. S. 루이스,엮은이-클라이드 S. 킬비,C. C. Vinton,존 뉴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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