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P. 샌더스, 바울을 말하다
이 책은 샌더스의 기념비적 작품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알맹e, 2018; 이하 PPJ)의 후속작으로, 전작의 통찰-바울 및 유대교에 속한 동시대인이 ‘(안에) 들어감과 머묾’을 어떻게 이해했는가-을 딛고서, 성경 자체를 자세히 주해하며 율법/유대인과 관련된 논쟁점들을 나름의 통찰을 가지고 섬세하게 해결해나간다.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에서는 ‘바울의 율법관’을 다루면서 PPJ에 대한 비판에 대해 대답하고, 제2부에서는 PPJ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문제, 곧 동료 유대인에 관한 바울의 생각을 다룬다. 샌더스가 이끌어가는 이 논의들에 담긴 함의는 방대하다!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한다’는 선언의 의미가 무엇인가?
사람이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한다면 율법은 왜 주어진 것일까?
율법에 대한 바울의 진술/태도가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또한 바울의 율법 사상의 원천은 어디인가?
이방인의 사도로서 바울은 교회/유대인(기독교/유대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가?
이 외에도, 바울의 편지들이 제기하는 질문은 각각 무엇인지,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의 차이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바울이 성경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기독교가 유대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거부하면서 정체성을 형성했는지 등을 살핀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샌더스가 생각하듯 PPJ에 대한 긴 각주로서, PPJ의 통찰이 실제 바울서신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
19,800 → 17,820원
(10.0%↓)
   990
|
|
|
신약학 연구자들의 필독서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견실한 입문서“바울 신학 연구사의 이정표”라 불리고, “우리 시대 신약 학계가 내놓은 위대한 걸작 중 하나”라고도 평가받고 있는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간추린판이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는 기원전 200년부터 기원후 200년에 이르는 기간에 나온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거의 모든 텍스트를 조사하고 연구하여 유대교 신학이 공유하는 전제들과 기둥들을 밝혀내고, 이를 바울의 그것과 비교한 뒤, 양자를 이해할 수 있는 새 테제들을 제시한 기념비적 책이다. 하지만 내용이 방대하며, 인용하는 일차 자료가 너무 많고, 세부적인 논의도 복잡하여 전체 내용을 이해하고 소화하기가 쉽지 않은 게 단점이었다. 이것이 ‘간추린판’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간추린판’은 긴 호흡의 논증을 읽다가 놓치기 쉬운 주제 단락을 돋보이게 할 것, 샌더스가 인용하는 일차 자료를 최소한의 양이라도 포함시켜 독자가 유대 문헌을 직접 읽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할 것, 샌더스 스스로 던지는 질문들과 그가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남겨놓을 것, 그리고 가급적 샌더스의 바울 해석 부분을 많이 남길 것 등 이 네 가지를 기준으로 간추렸다.
‘간추린판’에 추가된 내용도 있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핵심 논지와 이 책의 의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한 김선용 박사의 “간추린이의 말”과, 더 깊이 연구하려는 독자를 위해 설명을 곁들인 참고문헌 목록(An Annotated Bibliography for further study)이 추가되었다. 샌더스가 몇몇 책을 저술할 때의 상황을 설명한 글이기도 하거니와 또 한편으로는 그가 학자로서 걸어온 길을 요약한 자서전 성격의 글인 “유대교와 기독교를 비교함: 내가 걸어온 학자의 길”은 ‘부록 1’로 추가되었다. 무엇보다 오랜 침묵을 깨고 자신의 “언약적 율법주의”라는 표현을 다른 학자들이 어떤 식으로 오해했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몇몇 중요한 학계의 비판에 대해 묵직하고도 적확한 응답을 담은 “다시 살펴본 언약적 율법주의”는 ‘부록 2’로 실렸다.
[출판사 리뷰]바울과 율법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유대교에 대해 우리의 인식을 새롭게 해준 E. P. 샌더스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는 확실히 신약학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학계에서 바울을 이해하는 배경으로 묘사한 유대교가 특정한 관점에서 인위적으로 재구성된 편견이며,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지닌 것처럼 묘사된 유대교와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인물로 바울을 이해하는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각성시켜 준 문제작이기도 하다. 이토록 중요하고 학문적인 책인 데다가 워낙 방대한 분량과 복잡한 논지, 일차 자료 인용 등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것이 ‘간추린판’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간추린판’은 긴 호흡의 논증을 읽다가 놓치기 쉬운 주제 단락을 돋보이게 할 것, 샌더스가 인용하는 일차 자료를 최소한의 양이라도 포함시켜 독자가 유대 문헌을 직접 읽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할 것, 샌더스 스스로 던지는 질문들과 그가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남겨놓을 것, 그리고 가급적 샌더스의 바울 해석 부분을 많이 남길 것 등 이 네 가지를 기준으로 바울 신학 전공자인 김선용 박사가 간추렸다.
“신약학 연구자들에게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가 끼친 심원한 영향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필독서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책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문적 훈련을 받지 않은 이에게는 넘기 어려운 산이기도 합니다. 샌더스가 이 책에서 자신의 논지를 여러 번 반복하기 때문에 그가 말하려는 바를 대략 파악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그가 상당한 분량의 일차 자료를 인용 하며 논증을 전개하기 때문에 세부적인 논의를 대할 때 독자는 쉽게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번역본 출간은 무척 감사하고 반가운 일이었는데, 아쉽게도 많은 독자가 이 책을 완독하지 못하거나 읽더라도 중요한 지점을 놓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전문가도 어렵다고 한 책이니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온갖 어려움을 극복한 끝에 나온 이 책이 제대로 읽히지 않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_"간추린이의 말“에서(p.9)
이 책의 원서는 따로 없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Paul and Palestinian Judaism》에서 저자의 논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발췌한 것에 몇 꼭지를 추가하여 만든, 오직 한국어판만 있는 책이다. ‘간추린판’에만 추가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핵심 논지와 이 책의 의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한 김선용 박사의 “간추린이의 말”과, 더 깊이 연구하려는 독자를 위해 설명을 곁들인 참고문헌 목록(An Annotated Bibliography for further study)이 추가되었다. 샌더스가 몇몇 책을 저술할 때의 상황을 설명한 글이기도 하거니와 또 한편으로는 그가 학자로서 걸어온 길을 요약한 자서전 성격의 글인 “유대교와 기독교를 비교함: 내가 걸어온 학자의 길”은 ‘부록 1’로 추가되었다. 원래 2003년에 발표된 강연 원고인데, 본 한국어 번역문은 Comparing Judaism and Christianity: Common Judaism, Paul, and the Inner and Outer in the Study of Religion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16, 1-27)의 제1장 “Comparing Judaism and Christianity: An Academic Autobiography”를 번역한 것이다.
“나는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미국 텍사스주 그랜드프레리〔Grand Prairie〕에서 자랐다. 그랜드프레리는 댈러스와 포트워스에 가깝지만, 경제 형편이 하류층에 속했던 우리와 같은 집들은 거의 다 우리가 살던 작은 도시에 살았으며, 근처 도시들로 여행을 가본 적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커다란 문화 세계의 영향 밖에 있기도 했지만, 동시에 고등교육 세계에서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대학 다니실 때 사용하던 교과서 덕분에 영문학과 세계사 책을 폭넓게 읽었다. 그러긴 했어도, 나는 학자로서 평생을 살아가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으며, (당연한 말이지만) 학자로서 살아간다면 뭐가 필요할 것인가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여러 언어를 터득하려는 분투가 내 삶을 지배하는 요소가 되었다. 나는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외국인은 구경도 못했고, 심지어 외국어를 쓰는 이도 만난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열여섯 살에 들어갔다) 배울 수 있었던 외국어는 두 해 동안 배운 에스파냐어가 전부였다(물론 내가 사는 동네에는 그때까지 에스파냐어를 쓰는 이가 정착한 적이 없었다).”
_"부록 1“에서(p.460)
무엇보다 오랜 침묵을 깨고 자신의 “언약적 율법주의”라는 표현을 다른 학자들이 어떤 식으로 오해했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몇몇 중요한 학계의 비판에 대해 묵직하고도 적확한 응답을 담은 “다시 살펴본 언약적 율법주의”는 ‘부록 2’로 실렸다. 이것은 미국종교학회(American Academy of Religion)와 미국성서학회(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의 두 지역 모임에서 발표되었다가 Jewish Studies Quarterly 16 (2009): 25-55에 “Covenantal Nomism Revisited”로 출간되었다. 이후 다시 Comparing Judaism and Christianity의 제3장(51-83)에 실린 것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나는 아래에서 학자들이 “언약적 율법주의”와 관련하여 제기한 몇 가지 비판을 다뤄보겠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언약적 율법주의를 내가 대체하고자 한 신학 구조인 율법주의와 대조해보겠다. 나는 페르디난트 베버〔1836-1879〕의 저작(1897)까지만7 거슬러 올라가 율법주의 비판을 살펴봤지만, 내가 학자 생활을 시작할 때에 신약학계는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런 율법주의 비판을 널리 해왔으며, 그런 비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_"부록 2“에서(p.508)
|
25,000 → 22,500원
(10.0%↓)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