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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오늘, 여기’를 살아갈 힘을 얻다이 땅에서 천국을 살게 하는 산상수훈 묵상 이 책은 산상수훈이라 불리는 마태복음 5~7장 말씀을 오늘날의 언어로 풀어낸 묵상의 기록이다. 영원히 변치 않을 보석과 같은 진리가 담겨 있는 산상수훈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으로 성경 최고의 권위를 지닌다. 저자는 산상수훈에 담긴 보석과 같은 진리를 예리하게 파헤친다. 그리고 지금 우리 삶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매우 구체적으로 알려 준다.
왜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해도 삶이 바뀌지 않는 것일까? 이는 신앙생활을 산상수훈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어도 자기 뜻대로 해석하려고만 하지, 산상수훈의 정신으로 해석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상수훈에는 기독교 세계관과 가치체계가 오롯이 담겨 있다. 예수님은 세상을 살아가는 ‘더 좋은 길’, ‘더 나은 방법’을 가르치신다. 이것이 우리가 산상수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 땅에서 천국을 앞당겨 살아가는 지혜를 얻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자. 그리고 ‘오늘,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 보자.
“얼마든지 순간적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함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당장 죽거나, 아니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다.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하늘나라를 앞당겨 살아야 한다. 산상수훈은 우리를 이미 천국 시민으로 대우하며 이 땅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장래 천국에 들어갈 뿐 아니라, 현재 마음과 삶에 천국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독자 대상]● 산상수훈 말씀을 깊이 알기 원하는 그리스도인
● 말씀대로 살기 원하는 그리스도인
● 산상수훈 설교를 준비하는 교사,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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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세상으로 나오기까지 자그마치 15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저자인 조나단 T. 페닝턴은 마태복음을 연구하는 학생으로서 그리고 학자로서 지난 15년간 산상수훈의 아름다움과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그가 역사적, 개념적, 그리고 신학적 문맥에서 산상수훈 주석서를 쓰게 된 것은 지난 수년간의 강의에 기인한다. 이 강의는 조나단이 교수로 있던 학교뿐만이 아니라 초빙교수로 있었던 리폼드 신학교(올랜도), 사우스이스턴침례신학교, 그리고 열정적인 선교사들이 수업을 들었던 호주와 뉴질랜드 등의 다양한 곳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그는 미국 전역과 세계 곳곳의 교회에서 산상수훈을 가르쳐왔다. 그는 산상수훈에 대한 이해를 머릿속에 생각할 때마다 적어도 스스로의 명료성을 위해 배운 것들을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점점 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 결정체를 만들어냈다.
이 책은 산상수훈(마 5-7)의 역사적, 문예적, 신학적 주해서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산상수훈이 자리하고 있는 유대 지혜문헌과 그리스-로마 미덕 전통과 두 전통의 중요한 신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질문인 인간의 번영(flourishing)이라는 맥락에서 산상수훈을 해석한다.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산상수훈 본문의 의미를 다루는 주석 부분에 우선적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의 2부(6-11장)는 독자들이 언제든 확인하고 사용할 수 있는 주석적 자료를 제시한다. 하지만 이 주석만을 소화해서는 산상수훈을 풍성하게 읽을 수 없다. 이 책의 1부(1-5과)는 산상수훈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준다. 그림을 그릴 때 먼저 밑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그림을 완성해 가듯이, 이 첫 다섯과는 산상수훈의 전체 밑그림을 보여준다. 산상수훈을 경치 좋은 산으로 비유하자면 이 첫 다섯 장은 산상수훈을 오르는 안내 지도가 되어준다. 등산을 마치면 넓고 큰 평지에 내려오듯이 마지막 12과(3부)는 산상수훈이 인간 번영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목적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이 책의 목적은 단순히 주해를 위한 주석일 뿐만 아니라 산상수훈을 전체로 읽는 방법과 산상수훈의 통합된 신학적 해석을 제시하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마태복음 5-7장 본문의 메시지를 역사적 배경, 문예적 형식, 그리고 신학적 주제에 맞추어 주해한다.
[출판사 리뷰]이 책은 산상수훈에 대한 단순히 주석서를 뛰어 넘어 산상수훈을 전체로 읽는 방법과 산상수훈의 통합된 신학적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전체 산상수훈 읽기의 한 방법으로 ‘인간 번영’이라는 해석의 툴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번영은 산상수훈이 말하고자 하는 신학적 또는 실천적 의미에 대한 답인 동시에 산상수훈의 거의 모든 곳에서 의미가 통하고, 독자들의 유익이라는 가장 높은 목적을 성취하는 종합적 해석 방법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1-5장은 그 비전을 논증과 설명으로 명확하게 표현하고, 12장은 그 토론을 완전하게 갈무리하고 있으며, 6-11장은 같은 질문을 요점으로 주해하는 종합스케치를 그려내고 있다.
저자는 인류가 항상 직면하는 가장 큰 형이상학적 질문, 즉 어떻게 우리가 인간의 참된 번영(flourishing)을 경험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기독교의 답이 산상수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게 기독교의 실존적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행복, 축복, 샬롬이 무엇이고 어떻게 그것을 얻을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는가? 물론 산상수훈만이 신약성경 혹은 전체성경에서 이 질문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형이상학적 질문은 성경 전체 메시지의 중심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상수훈은 이 메시지의 진원지요, 동시에 성경이 주는 답변의 최전선이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기독교 역사에서 몇몇 산상수훈의 해석들이 위와 같은 형이상학적 문제를 부분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인간 번영이라는 관점으로 산상수훈 전체를 통합해 읽는 방식은 없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산상수훈에서 진정한 인간의 번영은 오직 우리가 성령으로 힘입어 그의 계시된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과의 교제할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번영은 하나님의 공동체 혹은 하나님 나라 안으로 제자들을 들어가게 하는 신실하며 마음 깊은 곳에 이르는 전체 인간의 제자됨(whole-person discipleship), 즉 전체 인간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따르는 것으로 경험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번영은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이 세상에 그의 통치를 확립하실 때, 즉 완성된 종말의 때에 완전히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예수님의 삶을 그들의 삶으로 따르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는 고통을 경험할 것이지만, 이 고통은 이 참된 번영을 현재도 누릴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특히 저자는 인간을 번영으로 인도하는 미덕과 하나님의 나라는 상호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서는 산상수훈을 미덕 혹은 인간 번영중심으로 읽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주제들, 특별히 전체성(wholeness)을 통한 번영을 이해하는 것이 산상수훈의 신학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 의미의 정상에 오르는 명확한 발판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독자들에게 큰 유익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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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당신은 어떻게 듣고 받아들이고 행동하는가?”
“삶의 분주함으로 인해 예수님의 진심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는가”
예수님의 가장 유명한 설교를 제대로 읽고 있지 않은 현대인들을 위한 책
당신을 위한 산상수훈이 여기 있다!“산상수훈을 진지하게 듣고 있는가?”
우리는 모두 이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있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재물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혁명적인 부르심을 무시하고 각자의 삶을 바삐 달려갈 때가 너무 많다. 그리고 문득 그 걸음이 너무 벅차 뒤를 돌아보거나, 멈춰 서 돌아보면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방향을 잃고 달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이들을 위한 책이 여기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듣지 않는가?
누구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다.”이 책의 저자 스카이 제서니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재치 있고, 날카롭고, 참신한 시각으로 조명한다. 산상수훈에 익숙해 자신을 위한 말씀으로 듣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일침을 날린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산상수훈의 익숙함에서 벗어나 감동의 자리로 이끌어 준다. 총 9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 책은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 저자가 직접 그린 삽화는 본문의 이해를 돕는다. 더불어 성경을 해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현시대에 비추어 설명한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산상수훈이 예수님 시대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설교가 아닌, 지금 현재 우리 삶에 가장 필요한 말씀임을 깨닫게 한다.
“산상수훈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세상을 원한다면,
나부터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분주한 삶으로 인해 예수님의 진심을 무시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그분의 말씀을 진심으로 받는다면 우리 삶은 지금과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세상을 원한다면, 먼저 내가 그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사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 편안한 신앙생활과 불순종을 정당화하기 위해 저지르고 있는 행동을 말씀에 비춰 보라. 현시대에 맞게 산상수훈을 읽은 이 책을 통하여 말씀을 삶에 적용해 보길 바란다.
[프롤로그]역사적으로 볼 때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쉬웠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가 점점 포스트 기독교 세상으로 변해가는 ‘지금만큼’ 힘든 적은 없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오늘날에는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고 말하고 매주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나날이 줄고 있다. 반면, 어느 종교 집단에도 속하지 않은 종교인들은 급속도로 늘고 있다. 이런 통계의 변화와 함께 성경을 도덕적 혹은 영적 지혜의 근원으로 삼는 사람들이 전에 없이 드물다. 이제 전통적인 기독교 윤리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은 무관심과 적대감 그 사이에 위치한다.
그 결과, 한때 세상으로부터 환영을 받았던 크리스천들이 세상으로부터 냉대와 배척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사회가 싫어하는 신념과 가치를 고수한 대가라고 여기기 쉽다. 실제로 많은 크리스천들은 자신이 박해를 당하고 있다고 외치며, 희생자처럼 행동한다. 물론 실제로 크리스천이 부당한 적대감의 희생자가 된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런 사회적 배척에 맞서 많은 크리스천이 예수님을 위해 고지를 탈환하겠다는 목표로 정치적 군대를 이루어 문화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사회로부터 배척을 당하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우리가 신앙을 꽉 부여잡은 손을 조금만 느슨하게 풀고 성경의 가치를 세상의 가치에 조금만 양보하면 세상에서 좀 더 환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라면 어떻겠는가? 오늘날 기독교의 근본적인 문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세상의 배척을 받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기 때문이 아니라 도리어 그 가르침을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우리의 문제는 무엇인가
오래전 우리 교회에서는 산상수훈으로 성경 공부를 진행했었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유명한 설교로,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윤리적 가르침들을 담고 있다. 성경 공부의 첫날, 산상수훈 전체를 읽은 후 학생들에게 물었다. “예수님은 우리가 실제로 이 명령대로 살기를 바라실까요?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손을 들어보세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충격을 받은 나는 진지하게 다시 물었다. “왜 우리는 산상수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까요?”
“아마도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요.” 한 사람이 대답했다.
“예수님은 그냥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우쳐 주고 싶으셨던 겁니다. 완벽한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 준 다음, 아무도 그런 삶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신 거죠.”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아마도 그들이 생각하는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설교하시며 수시로 제자들을 바라보며 윙크를 하셨을 것이다. “걱정하지 마. 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그들은 예수님이 이 가르침에 불순종했을 때 따르는 위험에 대한 경종으로 설교를 마무리하셨다는 점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이 예수님께 충성을 다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산상수훈을 현실에 맞지 않는 이상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세상을 원한다면 …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과 그분께 실제로 순종하는 것, 이 둘 사이의 긴장이 현대 기독교가 도덕적 권위와 영적 신뢰성을 잃어버린 결정적인 이유다. 주일이면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신 주님을 열심히 찬양한다. 하지만 월요일만 되면 두려움과 분노로 인해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기를 원한다.
현대 크리스천들이 너무도 쉽게 산상수훈을 무시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독교를 바라보는 세상의 차가운 시선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수많은 리서치 기관들이 수집한 데이터에 따르면 “복음주의 크리스천들도 세상 사람들만큼이나 쾌락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이며 자기중심적이고 성적으로 타락한 삶을 살고 있다.”2 기독교 리서치 전문가인 조지 바나(George Barna)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20세기 중반 이후의 기독교는 대체로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오늘날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혀 예수님의 제자답게 행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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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됨이 우리에게 어떤 인격과 삶을 요구하는지
명쾌하게 보여주는 산상수훈 강해 설교
한국교회가 살아나고 세상의 빛이 되는 길을
산상수훈에서 찾다! 국제제자훈련원은 은보(恩步) 옥한흠 목사 소천 10주기(2020년)를 맞아 《옥한흠 전집》을 출간한다. 옥한흠 목사의 강해설교를 담은 〈강해편〉부터 출간되며, 《산상수훈 1_빈 마음 가득한 행복》은 〈강해편〉 10권 중 제9권이다. 전집의 각 권에는 설교자와 연구자를 위해 성경구절 색인을 수록했다.
한 편의 설교를 위해
목숨을 걸다‘옥한흠’ 하면 많은 사람이 ‘제자훈련’을 떠올릴 만큼 그는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제자훈련 목회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가 우리에게 끼친 영향은 제자훈련뿐만이 아니다. 그는 “한국교회의 가장 대표적인 설교자요, 목회자가 가장 존경하는 설교자”(“한국교회 설교 성향 분석”, 『그말씀』, 통권 25호, p.239)로 손꼽힌다.
알려진 것처럼 옥한흠 목사의 목회철학 중 핵심은 평신도를 깨워 주님의 제자로 만드는 제자훈련이다. 이러한 본질을 회복하고 생명력 있게 확장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설교였다. 그는 제자훈련 목회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는 길이 바로 목회자 스스로 죽는 것이라 믿었고, 그의 헌신은 평생 설교를 위해 진액을 쏟아내는 자세로 드러났다.
옥한흠 목사는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의 본질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숙한 제자가 되어 세상 속에서 소명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 설교의 역점을 두었다. 그런 설교를 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헌신을 준비 과정에 쏟아부었으며, 하나님 말씀이 가르쳐주시고 명령하시는 대로 양심껏 전하고자 몸부림쳤다. 우직하게 본문을 붙잡고, 말씀으로 청중을 사로잡아 기어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만든 그는 제자훈련에 미친 광인(狂人)이자 설교에 목숨을 건 장인(匠人)이었다.
생생한 현장의 언어로 다시 듣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오늘날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그리스도인의 이미지는 너무나 참담하다. 그들의 눈에는 우리가 자기들과 다른 게 별로 없어 보인다.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한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만큼 한국교회는 신뢰를 잃어버렸다. 어쩌다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저자는 우리가 산상수훈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하는 거룩한 목표를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산상수훈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는 것이다. 세상에서 부름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땅에서부터 온전함이라는 정상을 목표로 삼고 열심히 오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산상수훈은 오늘날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먼 곳에 있다. 그리스도인들조차 지키기 어렵고 비현실적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산상수훈을 멀리한다. 산상수훈은 ‘우리는 흠이 없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오를 정상이 어디인가를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그 정상은 ‘작은 예수’다. 이처럼 산상수훈의 본질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기 위한 율법이 아니라, 끝 모르는 욕심과 불안 속에 고통받고 있는 현대인에게 하나님의 참된 행복을 전해주기 위한 자유의 복음이다.
‘작은 예수’에게만 허락된 ‘하늘 행복’이 있다. 예수님을 닮으면 닮을수록 행복의 순도는 더 높아지고 그 농도는 더 진해진다. 저자는 우리의 지친 어깨를 다독이며 지금 당장 갈릴리 언덕으로 달려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가르치시는 주님의 무릎 앞에 다가앉도록 용기를 불어넣는다. 균형 잡힌 성경 해석과 시대와 사람을 읽어내는 통찰력, 본문과 청중의 삶을 이어주는 적실성을 갖춘 이 책은 산상수훈 강해설교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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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됨이 우리에게 어떤 인격과 삶을 요구하는지
명쾌하게 보여주는 산상수훈 강해 설교
한국교회가 살아나고 세상의 빛이 되는 길을
산상수훈에서 찾다! 국제제자훈련원은 은보(恩步) 옥한흠 목사 소천 10주기(2020년)를 맞아 《옥한흠 전집》을 출간한다. 옥한흠 목사의 강해설교를 담은 〈강해편〉부터 출간되며, 《산상수훈 1_빈 마음 가득한 행복》은 〈강해편〉 10권 중 제9권이다. 전집의 각 권에는 설교자와 연구자를 위해 성경구절 색인을 수록했다.
한 편의 설교를 위해
목숨을 걸다‘옥한흠’ 하면 많은 사람이 ‘제자훈련’을 떠올릴 만큼 그는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제자훈련 목회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가 우리에게 끼친 영향은 제자훈련뿐만이 아니다. 그는 “한국교회의 가장 대표적인 설교자요, 목회자가 가장 존경하는 설교자”(“한국교회 설교 성향 분석”, 『그말씀』, 통권 25호, p.239)로 손꼽힌다.
알려진 것처럼 옥한흠 목사의 목회철학 중 핵심은 평신도를 깨워 주님의 제자로 만드는 제자훈련이다. 이러한 본질을 회복하고 생명력 있게 확장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설교였다. 그는 제자훈련 목회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는 길이 바로 목회자 스스로 죽는 것이라 믿었고, 그의 헌신은 평생 설교를 위해 진액을 쏟아내는 자세로 드러났다.
옥한흠 목사는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의 본질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숙한 제자가 되어 세상 속에서 소명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 설교의 역점을 두었다. 그런 설교를 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헌신을 준비 과정에 쏟아부었으며, 하나님 말씀이 가르쳐주시고 명령하시는 대로 양심껏 전하고자 몸부림쳤다. 우직하게 본문을 붙잡고, 말씀으로 청중을 사로잡아 기어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만든 그는 제자훈련에 미친 광인(狂人)이자 설교에 목숨을 건 장인(匠人)이었다.
생생한 현장의 언어로 다시 듣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오늘날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그리스도인의 이미지는 너무나 참담하다. 그들의 눈에는 우리가 자기들과 다른 게 별로 없어 보인다.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한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만큼 한국교회는 신뢰를 잃어버렸다. 어쩌다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저자는 우리가 산상수훈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하는 거룩한 목표를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산상수훈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는 것이다. 세상에서 부름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땅에서부터 온전함이라는 정상을 목표로 삼고 열심히 오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산상수훈은 오늘날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먼 곳에 있다. 그리스도인들조차 지키기 어렵고 비현실적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산상수훈을 멀리한다. 산상수훈은 ‘우리는 흠이 없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오를 정상이 어디인가를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그 정상은 ‘작은 예수’다. 이처럼 산상수훈의 본질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기 위한 율법이 아니라, 끝 모르는 욕심과 불안 속에 고통받고 있는 현대인에게 하나님의 참된 행복을 전해주기 위한 자유의 복음이다.
‘작은 예수’에게만 허락된 ‘하늘 행복’이 있다. 예수님을 닮으면 닮을수록 행복의 순도는 더 높아지고 그 농도는 더 진해진다. 저자는 우리의 지친 어깨를 다독이며 지금 당장 갈릴리 언덕으로 달려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가르치시는 주님의 무릎 앞에 다가앉도록 용기를 불어넣는다. 균형 잡힌 성경 해석과 시대와 사람을 읽어내는 통찰력, 본문과 청중의 삶을 이어주는 적실성을 갖춘 이 책은 산상수훈 강해설교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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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그리스도의 가르침
천국 백성의 삶에 관한 교회론적 관점 이해
1994-96년에 여수룬 출판사에서 3권으로 나누어 출판되었던 '산상수훈 연구'를 25년이 지난 지금에 개정, 증보하여 합본을 발행하게 되었다.
이 책은 산상수훈(마5-7장)에 대한 이해를 위한 일련의 시리즈이다. 이 책의 내용 중 마태복음 5장 1-16절은 <1>[하나님의 나라](1995년)라는 제목으로, 마태복음 5장 17-48절은 <2>[하나님 나라의 원리](1994년)라는 제목으로, 마탭복음 6-7장은 <3>[주께서 가르치신 기도](1994년)라는 제목으로 각각 여수룬 출판사에서 출판된 바 있다. 이번에 CNB시리즈로 이 세권을 [산상수훈 연구]라는 제목으로 합본하게 된 것이다. 사실 CNB 시리즈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함에 있어 개혁주의 교회관을 분명히 하기 위해 보다 더 관심을 가진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CNB 시리즈 출판을 시작하면서부터 이 책의 출판을 기다려 왔었다.
기록된 성경으로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말씀 계시라는 점에 있어서 산상수훈은 어느 시대나, 어느 곳에서나, 그 누구에게나 역사와 대륙과 민족을 초월하여 유일한 진리로 존재한다. 바로 그러한 사실 자체만으로도 산상수훈은 여전히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그 백성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성경 계시만이 가지는 권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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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예수 따르미의 길을 제시하다이 책은 복음 중의 복음으로 인정되는 예수의 가르침에 관한 책이다. 산상수훈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기독교의 울타리를 넘어 인류 세계를 향한 진리에 대하여 말한다. 무엇보다도 ‘천국 시민’, 곧 ‘예수 따르미’의 ‘제자도’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산상수훈은 실현하기 매우 어려운 가르침을 담고 있다. 그 누가 이 가르침을 실천적인 삶을 통하여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기에 산상수훈은 많은 사람에게 자괴감을 주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상상 혹은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가르침으로 치부하기 쉽다. 그런데 위기를 맞고 있는 오늘의 사회에서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얼마나 많이 변화할 수 있겠는가. 산상수훈은 삶의 위기를 극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삶의 방향을 이끌어주는 가르침이다.
저자는 이 같은 산상수훈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현실의 언어로 해석하고 그 진정한 의미에 대하여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오랜 시간 성서 연구를 통하여 통찰한 내용을 풀어내고 있다. 단아하고 명확한 언어를 통하여 산상수훈의 내용을 우리에게 명확하게 전해준다. 그뿐만 아니다. 명확한 이해를 넘어서 우리에게 산상수훈의 실천을 행한 결단을 하게 만든다. 산상수훈은 내용도 어렵고 실천도 어렵다. 산상수훈이 내세우고 있는 예수 따르기의 기준도 까다롭다. 이 기준을 적용해 우리를 평가하면 형편없이 함량 미달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본서가 제시하고 있는 산상수훈 길라잡이를 통하여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즉 ‘세상 사람과 구별되는 천국 시민’의 기준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 기준에 맞추어 우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본서를 읽어가면서 우리는 산상수훈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하게 될 뿐만 아니라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따르는 ‘제자’로 살아가는 것임을 보게 된다. 그리고 어느덧 점차 “예수 따르미”의 길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값싼 은혜’를 뛰어넘어 그리스도를 본받고 십자가 고난을 마다하지 않는 ‘값비싼 은혜’를 향하는 것이 진정한 ‘제자의 삶’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신학자이면서 목회자, 설교자인 저자는 자신에 대하여 “양다리를 걸치기에 ‘신학교’나 ‘교회’ 어느 캠프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고, 양 경계선에서 머뭇거리는 ‘주변인”이라고 고백하면서 자신을 ‘목회자적 신학자’ 혹은 ‘신학자적 목회자’라고 규정한다. 저자의 이 같은 규정은 본서가 “신학적 깊이와 목회적 현장성을 겸비”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는 신앙인은 물론 종교를 넘어 좀 더 나은 인간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모두에게 훌륭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산상수훈 길라잡이』는 우리 모두를 신앙과 삶 실천의 장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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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소개하는 《이덕주의 산상팔복 이야기》]오늘 우리는 어떤 복을 빌고 있는가?
‘한국인 맞춤형’ 산상팔복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복을 빌어야 할지 모른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전 세계 인류를 꼼짝 못하게, 하던 일을 멈추고, 불가항력 상황으로 몰아가시는 하늘의 뜻은 무엇일까?” 《한국 교회 처음 이야기》의 저자 이덕주는 ‘주님이 우리에게 빌어 주실 복은 다름 아닌 팔복’이라고 말하며, 성경 인물과 한국 초대교회 인물이 겪은 생생한 이야기를 가지고 팔복에 숨겨진 하나님의 마음을 풀어간다. 다윗, 예레미야, 욥의 이야기뿐 아니라,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어느 밤 꿈속에서 예수를 만나 ‘형님’이라 부르며 눈물로 마음을 쏟은 김정식 이야기, 이름 날리던 점술가 백사겸이 불의하게 번 돈을 청산하고 전도인이 된 이야기, 마을사람들에게 꿔준 빚을 모두 탕감해 준 부자 종순일 이야기 등 정겨운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믿음의 선조들이 이 땅에서 누린 팔복을 곱씹다 보면, 지금 시대에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게 된다.
있다가 없어질 ‘가짜 복’에 매달리지 말고
영원히 변치 않을 ‘참복’을 구합시다!한국 초대교회 인물과 우리가 겪는 상황은 다르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되새길 때 하나님이 길을 보여 주실 것이다. 인생의 나락에서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있는가? 죄를 아파하는 마음이 있는가? 강함을 이기는 부드러움이 있는가? 눈앞의 이익보다 먼저 모두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가?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용서하는가? 썩은 마음을 버리고 새 마음을 구하는가? 편을 가르기 전에 생명을 위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나님의 일을 이루고자 고난을 감당하는 마음이 있는가? 《이덕주의 산상팔복 이야기》는 이 땅에 다시 한번 참된 복이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편집자가 뽑은 문장]처음에 이수정은 기독교에 관심이 없었다. 다만 출국 전 친구 안종수가 “쓰다센 선생 집에 가거든 서재에 걸린 액자도 보고 오라. 그 뜻이 범상치 않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 쓰다센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곁눈으로 액자를 찾아보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한문 성경의 마태복음 5장 전부를 담고 있었다. “虛心者福矣 以天國乃其國也 / 哀慟者福矣 以其將守慰也 / … / 爲義而被窘逐者福矣 以天國乃其國也” 내용으로 보아서는 동양 사람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복’(福)에 관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른바 복 있는 사람이라고 언급한 ‘허심자’, ‘애통자’, ‘온유자’, ‘기갈자’, ‘긍휼자’, ‘청심자’, ‘화목자’, ‘군축자’는 그동안 동양에서 복 받은 자로 여겼던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돈과 재물, 권력과 명예, 무병장수, 부귀다남, 소원 성취, 하다못해 치아가 건강한 것까지도 복으로 여기며 살았던 사람들에게, ‘마음을 비우고 슬피 울며, 온유하고 겸손하며, 갈급하고 긍휼하며, 마음을 깨끗이 하여 화목하고,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니 선뜻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이수정은 액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_산에 오르사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진 인생을 ‘가난한 심령’으로 표현했다. 여기서 ‘가난’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프토코스’는 ‘절대적 빈곤’을 의미한다. 전셋집에 사는 사람이 자기 집에서 사는 사람에게 느끼는 ‘상대적 빈곤’, 먹고는 살 수 있으나 다른 사람보다는 풍족하지 않다는 의미의 가난, 즉 ‘페네스’와 다르다. ‘프토코스’는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결코 살 수 없는 ‘절대 가난’을 의미한다. 물질적인 궁핍만이 아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완전 밑바닥’에 떨어져 삶에 대한 희망도 의욕도 없는 절대 절망, 완전 무기력을 의미한다. 그런 인생들이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삶에 대역전이 일어났다. 기적과 이적을 체험한 사람들이다.
_첫 번째 복, 그 어디나 하늘나라
‘온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의외로 한국인들은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의 고유 민담 ‘흥부와 놀부’ 가운데 흥부, ‘콩쥐와 팥쥐’ 사이에 콩쥐를 생각하면 된다. 온갖 핍박과 구박에도 아무 말 없이 묵묵하게,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음에도 항의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그저 달라면 달라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맞춰 사는 인생이다. 자기의 주장이나 의견을 고집하지 않고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좋아하고 명령하기보다는 순종하며 사는 사람이다. 그렇게 살아서 과연 치열한 생존경쟁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겠는가? 맨날 빼앗기고 당하면서 살다가 어느 세월에 자기 몫을 챙길 것인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했다.
_세 번째 복, 물방울, 바위를 뚫다
“오, 천지신령님이여! 하늘의 일월성신님이여! 이 더러운 인간의 축원을 하감하사 소란한 이때를 평정시켜 주시고 시화연풍하게 하소서.” 그렇게 점칠 때 외웠던 도교경전 〈태을조신경〉을 외우며 백일기도를 끝낸 날 아침에 낯선 사람이 그의 집을 방문했다. 서울에서 온 전도인 김제옥이었다. 김제옥은 그에게 “이것은 예수를 믿는 도리를 적은 책자인데 한 번 읽어 보시오” 하고 작은 책을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것은 《인가귀도》라는 작은 전도 책자였다. 그때부터 그에게 ‘이상한’ 징조가 나타났다. 도무지 점을 칠 수 없었다. 아무리 산통을 흔들어도 점괘가 떠오르지 않았다.
_네 번째 복, 무얼 먹고 마실까
최병헌 목사는 신학교 기관지 〈신학세계〉에 “심”(心)이라는 제목의 설교문을 발표했다. 그는 마음 ‘심’(心)을 부(部)로 사용하는 열 개의 한자를 파자(破字) 형식으로 풀이해 한자 문화권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유도했다. 창조와 타락(원→욕→망), 죄와 용서(악→자→사), 중생과 성결(참→충→덕)에 이르는 구원의 전 과정을 아홉 글자로 설명했다.
“原 + 心 = 愿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마음은 두렵고 삼가는 마음. / 欲 + 心 = 慾 사람이 안 되는 것을 가지려 하니 욕심이 생김. / 亡 + 心 = 忘 사람의 본분을 잃어버린 결과 본마음을 잊어버림. / 亞 + 心 = 惡 참된 것이 아니라 버금 것을 추구하는 악한 생각. / 玆 + 心 = 慈 그윽하신 하나님의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 / 田 + 心 = 思 마음 밭에 뿌려진 복음 씨앗으로 자신을 돌아봄. / 斬 + 心 = 慙 악하고 잘못된 것을 베어 버리고 참회하는 마음. / 中 + 心 = 忠 마음 중심에 주님을 모시고 충성하며 사는 삶. / 直 + 心 = 悳 곧은 마음에 성령의 감화를 받아 덕행을 이룸.”
_여섯 번째 복, 네가 내 얼굴이다
민족의식이 강했던 ‘청년’ 역사 교사 함석헌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식민 치하, 민족 운명의 미래인 어린 학생들에게 어떤 역사를 가르칠 것인가?” 그런 고민과 문제의식을 안고 우리나라 역사를 다시 읽었다. 그는 단군으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5,000년 역사를 통독하는 과정에서 답을 얻었다. 그는 성서사관(聖書史觀), 즉 기독교적 역사관을 표방했다. 그가 말한 ‘성서사관’이란 아래와 같았다. 1. 역사의 본원(本源)을 하나님에게 구한다. / 2. 우주는 하나님이 창조했다. / 3. 원시(元始)의 날이 있어 역사의 한계가 결정되었다(종말론). / 4. 인생을 도덕적 책임자로 본다. / 5.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사랑(아가페)을 구현하는 역사이다.
_여덟 번째 복, 십자가, 그 복된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