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00 → 10,800원
(10.0%↓)

|
|
|
기독교 수도원 운동의 창시자 성 안토니!
초대 교회 교부 어거스틴의 개종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성 안토니의 생애
참으로 그는 모든 수도사들의 아버지로 남아 있었다. 서구 중세의 모든 사회적 환경과 모든 시기에 있어서 수도사들은 진정으로 자신을 그의 아들로 여겼다. 수도운동이 되살아 날 때마다 그들은 고대 이집트를 회상했다. 성 안토니는 모든 이들에게 이상을 뜻했는데 그 본질적인 특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는 잠재력이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책으로 수도생활을 발달시키는 수단인 것이다.
안토니는 수도사들의 아버지로 여겨졌으며, 모든 형태의 신앙적 삶의 기술적 대부로 불려지고 있다. 안토니보다 더 깊고, 더 영속적이고, 더 원대한 영향을 끼친 이름은 거의 없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면 가서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얻을 것이다”
즉시 안토니는 교회를 나와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마을 사람들에게 주었고 재산 때문에 그나 여동생이 조금도 방해받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나머지 동산들도 모두 팔아 상당한 돈을 거둬들였을 때, 그는 동생 몫을 조금 남겨두고 그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교회에 다시 한 번 들어서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주가 복음서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을 때, 그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고, 밖에 나가 남아 있는 재산도 역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는 여동생을 신망이 높은 수녀들에게 데려가 수녀원에서 길러달라고 맡긴 후 그때부터 자신을 주의 깊게 살피고, 참을성 있게 자신을 단련시키면서 집안일보다는 수도생활에 전념했다.
“우리가 매일 아침 일어날 때 저녁까지 살아있지 못할 것이라고 가정합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잠자리에 들 때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시다.
우리의 삶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며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매일 주어집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고 이런 식으로 매일 산다면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것이고, 아무 것도 갈망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에게도 원한을 품지 않고, 땅 위에 보물을 쌓아 두지도 않을 것이며, 날마다 죽기를 예상하는 사람처럼 소유에서 자유롭게 되고,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용서할 것입니다.
우리 영혼의 지성이 우리 영혼의 본성을 변함없이 따를 때, 덕은 생겨납니다.
아름답고 완전히 바르게 만들어진 우리의 본성이 원래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을 때, 덕은 그 본성에 일치하여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안토니의 생애는 기독교 금욕주의에 있어서 대표가 되는 고전이다.
이 책은 기독교에 있어서 초대 수도원 원동의 창시자인 성 안토니의 생애를 기록한 책으로써 그의 영성의 발달 과정과 이집트 사막에서의 가장 이상적인 금욕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본서는 서구 기독교의 수도원 생활의 귀감이 되었고, 그들로 하여금 성인적인 삶에 대하여 새로운 장르를 연 귀중한 자료이다.
마르셀리누스에게 보내는 편지는 현존하는 시편 해설집으로는 가장 오래된 책이다. 이 책은 서정적인 문체로 쓰여졌으며, 기도생활에서의 시편 사용에 대한 지침서이다.
|
9,000 → 8,100원
(10.0%↓)

|
|
|
유대인들은 비웃고 헬라인들은 조롱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찬미하는 신비, 성육신!
실제로 이 책은 전체가 생명나무 그림이다.
활력과 확신이 가득한, 기운 넘치고 빛나는 책이다.
_C. S. 루이스의 서문 중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서 오는 흥미로움과 신선한 자극을 선호한다. 특히 현대인들이 책을 선택할 때는 당장 내 삶에 유용한 정보와 지식을 얻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변하지 않는 기독교 진리에 바르게 접근하고 이를 깊이 탐구하기 위해서는 오래된 책을 읽고, 오래된 신학자의 말에 귀 기울여 보는 시간도 꼭 필요할 것이다. 특히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 와서 ‘성육신’, ‘삼위일체’, ‘구원’ 등 기본적인 기독교 핵심 진리에 대해 익히 들어온 사람이라면, 더욱 기독교 고전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고전은 우리 삶에 익숙하게 자리매김하여 더는 새로울 것이 없다 여겨 관심이 덜해진 그 진리들을 다시금 회복하게 해준다. 또한 고전은 읽을수록 우리 시대가 가진 오류들을 명확하게 바로잡아준다. 기독교 고전에는 이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존재했던 불멸의 진리가 담겨 있는데, 이는 현대인들이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는 지혜를 얻게 해준다.
C. S. 루이스는 서문에서 옛날 책을 읽으라고 독자에게 권하고 있다. ‘옛날 책’이 어려울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오히려 그보다 열 배는 더 두꺼운 ‘요즘 책’을 읽으려는 태도는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수세기에 걸쳐 내려온 많은 학자의 논쟁과 입장은 자칫 우리를 오류에 빠뜨릴 수 있는데, 이를 완화할 유일한 대책은 오래된 책을 읽음으로써만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또한 직접적 지식은 간접 지식에 비해 더 애써 획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4세기에 활동한 저명한 신학자, 아타나시우스의 이 책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지성에 깨끗한 해풍이 불게 할 것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책의 첫 장을 펼치면서부터 끝장을 덮을 때까지 단숨에 책 장이 술술 넘어가는 재밌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왜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이 ‘성육신’에 관하여 경이롭게 느껴야만 하는가?아타나시우스는 이 책에서 총 아홉 장으로 분류하여 ‘성육신’에 관하여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창조와 타락으로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육신에 관하여 다른 생각을 가진 유대인과 이방인을 논박하는 내용까지 서술하고 있다. 단순히 ‘성육신’의 개념 설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변증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아타나시우스가 이 글을 쓸 당시 아리우스파의 끊임없는 공격에 대항하고 그들의 이단설을 물리치고자 힘쓰고 있었기에 우리가 의심치 않고 당연하게 여기는 ‘성육신’에 관하여 이토록 강력하고 명백한 주장의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아타나시우스는 1장에서 “이제 우리의 거룩한 신앙 체계에 따른 믿음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말씀이 인간이 된 일과 그분이 우리 가운데 신적으로 나타나신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유대인들은 비웃고 헬라인들은 조롱하지만 우리는 찬미하는 그 신비를 말이다”라고 말하며 책 전반에 걸쳐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성육신에 대해 다시 깨닫고 깊은 의미를 탐구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나타나신 것은 아버지의 사랑과 선함으로 우리 인간을 구원한다는 오로지 그 이유 때문이다. 우리가 죄를 지었기에 우리를 새롭게 하는 일은 태초에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 바로 그 말씀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성육신’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자주 들어왔고, 비그리스도인이 묻는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겠지만, 과연 우리는 이 놀라운 진리에 가슴 벅찼던 순간이 있었는가, 경이롭게 생각해 왔던 적이 있었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짧은 이 책을 통해 모든 성도가,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더 깊이 알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