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0 → 18,000원
(10.0%↓)
 
|
|
|
목회사역이든 선교사역이든 그 사역의 철학과 원리는 반드시 성경을 근거로 하여야 한다. 성경은 선교의 바른 시행과 완성을 위해 필요한 지식과 방법까지도 제공한다. 어떤 형태의 선교사역이든지 선교사역은 반드시 성경의 지도와 안내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다양한 선교적인 주제들을 찾아 그 의미를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로부터 출발하지 않은 선교사상이나 이에
따른 선교운동들이 겉으로는 매우 매력적이고 인간적인(humanistic)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사상이나 운동들은 성경의 가르침과 지도에서 크게 벗어나 있을 뿐 만 아니라 심지어 ‘반 기독교적’(anti-Christian)이기까지 하다. 성경과 무관한 선교사역의 위험을 피하고, 성경이 지지하고 가르치는 바른 선교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기초로 한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
23,000 → 20,700원
(10.0%↓)
 
|
|
|
“Vivus est enim sermo Dei”(Heb. 4,12)
나는 이제 서른 번째 저술을 세상에 펴낸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나의 신학여정에서 사색하며 논구하였던 많은 내용들의 요약이다. 때로는 과거에 진술했던 내용을 반복하는 글들도 없지 않지만, 나이가 들면서 성경에 눈이 더욱 넓고 깊게 열리면서 새롭게 이해한 부분도 적지 않다. 나는 이 책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신약성경 신학을 펼치며 다루고 지키는 전술과 병력과 보루가 되기를 희망한다.
- 머리말 중에서-
|
23,000 → 20,700원
(10.0%↓)
 
|
|
|
개혁신학 형성 연구
Calvinismus
in the Late Sixteenth and Early Seventeenth Centuries
A Study on the Development of Reformed Theology
이 책은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에 이르는 개혁신학을 다룬다. 이 시기는 여러 교리적 내용으로 다투는 시기다. 스트라스부르에서는 예정론 논쟁 이후 찬키우스가 쫓겨났으며, 하이델베르크에서는 성만찬 논쟁 이후 개혁교회로 분명한 노선이 정해졌다. 하이델베르크에서 교회권징을 적용하는 장로회 정치체제를 도입할 것인지를 두고 에라스투스와 다른 신학자들과 논쟁이 있었다. 헤르보른에서 피스카토르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를 부인하자 개혁교회 안에서 논쟁을 거쳐 모든 순종의 전가를 신앙고백서 안에 분명히 드러내게 된다. 네덜란드에서는 아르미니우스를 따랐던 항론파의 주장을 다루기 위해 도르트에서 총회를 개최하여 도르트신경을 작성했다. 따라서 이 시기 개혁교회의 신학적 성장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6세기에 ‘칼빈주의’는 왜 사용되었을까? 칼빈주의 신학의 독특성은 어떻게 인식되었는가?(1장) 성경 권위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성경의 권위를 신자는 어떻게 인식하는가?(2장) 루터주의는 예정론에서 개혁주의와 다른 길을 가게 되는데, 두 노선의 차이는 무엇이며 논쟁의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가? 칼빈주의자들의 예정론은 칼빈의 예정론과 다른가?(3장) 16세기 후반 하나님의 형상은 어떻게 이해되고 있었을까? 하나님의 형상에 남은 부분은 있는가, 아니면 전적으로 상실되었는가? 타락 후에도 인간의 의지에는 자유가 있는가?(4장)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의 구도는 어떻게 형성되는가?(5장) 그리스도께서 누구를 위하여 죽으셨는가? 충분과 효과의 구분은 개혁신학자들에게 언제나 정당성을 가졌는가?(6장) 능동적 순종의 전가를 부인한 피스카토르의 주장이 왜 개혁교회에서 거절되는가?(7장) 교회가 국가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만일 교회가 국가로부터 독립하여 치리한다면 교회의 정치는 누가, 어떻게 운영하는가?(8장) 제2성만찬 논쟁 직후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의 성만찬론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왜 빵을 떼는 방식을 주장했는가?(9장)
- 머리말에서 -
|
17,000 → 15,300원
(10.0%↓)
 
|
|
|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란 신앙고백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가 아니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란 질문에 대한 답이다. 교회는 사람들이 무엇을 믿는지 그 현상을 살피는데 머물 수 없고, “주 예수를 믿으라”(행 16:31)고 요구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교회는 마땅히 드러내며 그것을 지키고 전해야 한다. 따라서 신조는 단순히 현상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판단과 당위의 문제다. 신조학은 가치판단에서 자유로운 종교현상 해설에 머물지 않고 가치판단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이 신앙고백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목숨을 내놓으며, 교회는 직분을 맡은 자에게 선서를 통해 신앙고백서에 매이기를 요구한다. 신조는 성경을 근거하여 하나님의 권위에 연결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조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 곧 신조를 포함한 교회의 결정과 인간의 모든 일과 생각의 판단자가 되는 성경으로 돌아가서 더 풍성히 주께서 가르치신 내용을 드러내야 한다.
- 서론 중에서 -
|
45,000 → 40,500원
(10.0%↓)
   2,250
|
|
|
개혁파 성도들은 무엇을 어떻게 믿어 왔는가?A History of the Reformed Dogma
이 책은 개혁파 교의가 과연 어떤 경로로 선언되었고,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역사적으로 탐구하는 책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교리사(敎理史)라고 하는 것을 『개혁파 교의사』(敎義史)라고 했다. 이것은 교리사를 다루는 나의 입장을 처음부터 분명히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흔히 재미있게 표현하는 방식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교리사라고 쓰고, 개혁파 교의사라고 읽으려고 하는 책”이다. 사실 이것은 오늘날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주제다. 그러나 이 내용은 신학을 공부해서 다음 세대의 목사가 되어 2,100년 된 교회의 바른 가르침을 대변할 사람으로 설 사람들은 반드시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일차적 대상은 앞으로 장로교 목사가 되려는 사람들이다. 그 분들로 하여금 장로교회가 공식적으로 믿고 선언하는 바인 개혁파 교의가 과연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를 생각하여, 그 분들이 참된 장로교 목사가 되는 일에 도움이 되도록 하려는 책이다.
이 책의 이차적 대상은 이 땅의 많은 장로교인들이다. 장로교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읽으면서, 우리가 과연 장로교인으로서 믿어야 할 바를 바르게 믿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바란다. 그렇게 되면 이 땅의 장로교회는 참으로 든든한 교회가 될 것이다. 그 분들 뿐만 아니라, 예를 들어서 침례교회에 속해 있으면서도 (교회론의 몇 가지 문제를 제외하고는) 개혁파 신학(reformed theology)을 가지고 있는 19세기의 스펄전이나 우리 시대의 존 파이퍼 목사님과 같은 입장에 서 있는 분들도 위한 것이다. 미국 남침례 교회와 장로교회가 그리하는 것과 같이 든든한 개혁파 연대가 이 땅에서도 형성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 책의 다른 대상은 다른 교파에 속해 있는 분들이다. 우리들이 과연 어떤 점에서 의견을 같이 하는지, 어떤 점에서는 의견을 달리하는지를 점검할 수 있는 좋은 대화의 기연(奇緣)이 되었으면 한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
|
33,000 → 29,700원
(10.0%↓)
   1,650
|
|
|
안식의 땅 가나안과 하나님 나라
An Exposition of the Book of Joshua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가나안 정복과 정착을 선지자의 관점으로 서술한 역사기록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일반적인 역사기록과는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여호수아서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러하듯이 가나안 정복과 정착의 역사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을 계시한다.
여호수아서가 전하는 선지자적 메시지는 여호와께서 가나안 땅을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할 성소로 삼으시고 그곳에서 그들의 왕으로 다스리신다는 말로서 요약된다(출15:17, 18 참조). 여호와의 통치는 적들에게 심판으로 나타나고 그분의 백성에게는 안식의 복으로 나타난다. 가나안은 하나님의 통치가 가져오는 안식의 장소이며 하나님의 안식이 지배하는 거룩한 성소이다.
- 서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