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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 · 아펜젤러 세트(전2권)   언더우드·아펜젤러 한국 선교 130주년 기념 한정판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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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5-06-11  |  set  |  978-89-328-1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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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오늘 한국 기독교계에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동기와 자극이 될 것이다.”

“한민족이 처음 복음을 접했을 때 얼마나 갈급해하며 복음을 흡수했는지, 얼마나 기쁨과 열정으로 가득했는지가 헌신적인 선교 이야기에 한데 엮여 가슴 뜨겁게 펼쳐진다.”

“이 땅에 최초로 온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함께 제물포항에 발을 디딘 지 130여 년이 되는 이때, 한국 백성을 위해 자기 목숨을 기꺼이 내놓은 벽안의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교회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첫 마음, 첫사랑이 어떤 것인지 깨우쳐 줄 것이다.”


김영호(배재대 총장), 김진홍(뉴브런즈윅신학교 교수), 이덕주(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이수영(새문안교회 목사), 정갑영(연세대 총장), 조현(한겨레신문 기자), 한철호(선교한국파트너스 상임위원장) 추천!!



기독교 복음은 처음부터 어떻게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켜 왔는가?

1885년 4월 5일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제물포항에 발을 디딘 것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 개신교회가 이제 13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

이 세트는 한국 개신교의 시작에 대한 희귀하고 소중한 증언이다. 저자들은 언더우드·아펜젤러 선교사를 직간접적으로 목격한 이들의 기억과 회고, 그리고 각종 자료를 토대로 생생하게 개척 선교사들의 생애를 그려 낸다. 아울러 당시 한국의 풍속과 정치적 상황 속에서 기독교가 어떻게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며 복음으로 이 나라를 변화시켜 갔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그래서 한민족이 처음 복음을 접했을 때 얼마나 갈급해하며 복음을 흡수했는지, 얼마나 기쁨과 열정으로 가득했는지가 헌신적인 선교 이야기에 한데 엮여 가슴 뜨겁게 펼쳐진다.

이 땅에 최초로 온 선교사로 언더우드가 아펜젤러와 함께 제물포항에 발을 디딘 지 130여 년이 되는 이때, 이 처음 선교사들에 대한 전기들은 한국 백성을 위해 자기 목숨을 기꺼이 내놓은 벽안의 선교사 이야기를 통해 한국 교회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첫 마음, 첫사랑이 어떤 것인지 깨우쳐 줄 것이다. 또한 구한말의 위태로운 역사적 상황과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기독교 복음이 어떤 모습으로 모진 풍파를 겪고 좌절하고 또 이겨 나갔는지에 대한 일차적 증언을 통해,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스스로를 깊이 성찰하고 근본적이고도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는 데 토대가 될 소중한 정보들을 제공한다.

언더우드 전기와 아펜젤러의 전기를 한데 모은 “언더우드·아펜젤러 한국 선교 130주년 기념 한정판 세트”는 한국의 모든 그리스도인 성도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줄 것이며, 교회 지도자들과 교회사 연구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일차 자료로 자리 매김할 것이다.




<언더우드> 책 속으로

올해 2015년은 복음 선교사 아펜젤러·언더우드가 이 땅에 온 지 꼭 130주년이 되는 해다. 아펜젤러는 미국 북감리교의 파송을 받았고 언더우드는 미국 북장로교의 파송을 받았다. 이들에 앞서 만주를 통해 성경이 번역·보급되어 개종자가 일어나고 있었고, 바로 그 시기에 한국은 이들의 복음에 접목되었다. 그 뒤 한국교회는 세계 선교사상 유례없는 성장과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초대 선교사인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다시 한 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주인공인 언더우드에 대해서는 그동안 수많은 논문들과 한두 권의 저술 및 자료집이 나왔다. 그중 이광린 교수의 「초대 언더우드 선교사의 생애」(연세대출판부, 1991)가 한국인이 언더우드에 대해 쓴 최초의 저서다. 그 뒤 옥성득 교수가 편역한 「언더우드 자료집」(전 5권)은 언더우드 연구에 획기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이 같은 자료집의 간행에도 불구하고 언더우드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부족한 편이다. 언더우드 연구는 단순히 그의 생애와 업적, 신학과 사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한국 근대사에 미친영향까지 고려하여 좀더 거시적이고 종합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아직도 그 같은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판단이 이 번역서를 다시 간행토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_<언더우드> “개정판 역자 서문”에서

이 글을 서술해 가는 동안 필자에게 점점 더 명확해졌던 사실은, 언더우드의 전 생애 가운데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 즉 하나의 지배적인 성격이 바로 사랑이라는 점이었다. 이것은 교파나 인종이나 시간이나 장소와 같은 좁은 테두리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 무한히 넘쳐흐르는 위대한 사랑이었다. 수많은 심령들이 그에게 다가와 사랑의 마음으로 인격적인 헌신을 한 것도, 또 그가 전 생애에 걸쳐 “타오르는 횃불”(a torch of fire)이라 불리면서 일관되게 살아가게 한 것도 그의 이러한 사랑이었다. 그는 믿음과 소망의 놀라운 은사를 받았지만, 사랑이야말로 그중에서 제일가는 은사요 그의 존재의 본질이었다. 그의 성품과 선교 경험에 대한 연구가 독자들에게 약간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필자의 목적은 달성되는 셈이다.
_<언더우드> “서문” 에서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선교를 위한 아무런 준비 활동도 없이 1년여를 보냈다는 생각에 격동하여 저는 한국에 갈 사람을 찾는 일에 착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 자신은 인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고 있었고, 이런 신념 아래 그곳에 갈 특별한 준비를 하기 위해 1년 동안 의학 공부를 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 기꺼이 한국에 갈 사람이 달리 있으리라고 확신했습니다. 저는 가능한 한 서둘러 한국에 갈 사람을 물색해 보았지만, 한 사람도 발견하지 못한 채 1년이 흐르고 말았습니다.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려는 교회는 한 군데도 없었으며, 외국 선교사업의 지도자들도 한국에 들어가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왜 너 자신이 가지 않느냐?’ 이런 메시지가 제 가슴에 울려온 것은 바로 이때였습니다.
_<언더우드> 1장 “혈통과 교육”에서

고아들을 위한 집과 학교가 문을 연 것은 1886년 초였다. 이 시점에서 언더우드가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친구인 헐버트에게 언젠가는 한국에 대학교와 신학교를 설립하겠다는 그의 희망을 털어놓았다는 것은 기록해 둘 만하다. 이것은 그가 언제나 장기적인 안목을 지녔다는 점을 말해 준다. 그 고아원은 국왕 폐하의 호의에 넘치는 승인을 받았고, 몇 년 후에는 ‘그리스도인 일꾼들을 위한 존 D. 웰즈 아카데미’(the John D. Wells Academy for Christian Workers; 儆信學校)가 되었다. 한국인 책임자가 있긴 했지만, 처음 한두 해 동안은 언더우드가 실제 고아원을 관리했고, 또 그 학교의 여러 학급을 가르쳤다. 당시 ‘김규식’(Kim Kiu Silk) 혹은 ‘변갑이’(Pon Ga-be)라 불리던 어린 존(John)을 맡게 된 것도 이 학교와 관련하여 이루어진 일이었다.
_<언더우드> 2장 “선교사 훈련”에서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서재 책상에서 두 복음서를 훔쳐보게 되었다.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이었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낄 새도 없이 급히 그 두 권을 넓은 소매 속에 넣은 다음, 훔친 보물을 들고 집으로 달려왔다.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듯이, 우리의 친구 노 씨는 희열을 느끼며 금지된 문헌을 독파했다. 그는 이 책의 놀라운 매력에 사로잡혔다. 이것은 편견에 사로잡힌 그의 마음에도 그저 아름다운 것일 뿐 아니라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밤새 그 책을 읽고 아침에는 그것이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완전히 확신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용감하게도 복음이 ‘좋고 웅대하며’, 죽든 살든 믿음을 갖고 싶다고 언더우드의 서재에서 공개적으로 고백했다.
_<언더우드> 2장 “선교사 훈련”에서

여기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이 여행에서 언더우드가 세례를 준 유일한 사람들이었으나, 이 숫자는 그 이전이나 그 이후 얼마 동안 그가 세례를 준 사람을 다 합친 숫자보다 많았다. 다른 선교지에서 나타난 결과와 비교해 볼 때, 우리의 짧은 선교 역사의 시점에서 이 숫자는 놀라운 것이었다. 훗날 소문이 퍼지면서 이 숫자는 과장되어, 언더우드는 숫자를 늘리기 위해 잘 알지도 못하는 소위 새신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무턱대고 세례를 주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실은 그와 정반대로 그는 매우 양심적이어서 이들을 심사하는 데 괴로움을 느낄 정도로 심사숙고했다. 몇 사람들은 1년 넘도록 교육을 받으면서 오랫동안 준비해 왔다는 것을 언더우드도 알고 있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세례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서 씨가 3년 전부터 보고해 온 이들이었다.
_<언더우드> 4장 “기억할 만한 여행”에서

그러던 얼마 후 빛이 다가와, 언더우드는 그 자신이 잘못된 방식으로 일해 왔음을 알게 되었다. 중국과 초기 한국의 종교를 탐구하는 동안에 옛 한국의 일부였던 고구려 왕국에서는 하나님이라 불리는 유일한 신만을 섬겼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단어는 설명적인 용어로, 크고 ‘유일한’ 한 분(only One)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제까지 ‘하나님’이란 용어 사용을 한국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바에 대해 그가 발견했던 것과는 달랐다. 그러나 고구려 시대의 그 의미가 원래의 의미이고 지금의 의미는 거기서 파생된 것임이 틀림없었으므로, 언더우드는 이 본래의 의미에 담긴 속성을 가지고 이 말이 사용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사용되면, 그 본래의 의미가 한국인들의 가슴속에 쉽게 살아날 것이었다. 새로운 발견을 통한 이 빛 속에서 이전에는 자신이 거부했던 그 말을 사용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생각되었다.
_<언더우드> 7장 “다시 한국의 집으로”에서

이렇게 모금을 권유하는 동안 언더우드는, 기독교는 외국 종교인데 왜 외국인들이 그 경비를 대지 않는지 알 수 없다는 한국인들의 반론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만일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에 외국 돈을 사용한다면, 기독교는 계속 외국 종교로 불릴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여러분의 힘으로 교회를 짓고 전도사를 파견하고 여러분의 학교를 지원한다면, 여러분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기독교가 더 이상 외국인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수긍하여 자신들의 교회를 짓기로 결정했다. 이것을 본 언더우드는 놀라서, “여러분은 이렇게 가난한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믿음이 깊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데 불가능한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_<언더우드> 8장 “한국에서의 운명의 날들”에서

그때 강변의 행주에서 시작되고 있던 작은 기독교 교회가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이것은 명백히, 콜레라에 전염된 사람들을 위하여 간호하고 치료했던 선교사들이 한 일의 결과였다. 뒤에서 언급하게 될 신(Shin)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민족을 향한 선교사들의 수고와 사랑을 보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놀라운 힘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상은 그의 마음을 감동시켜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짐을 나르는 도구(‘지게’, jicky)를 메고 16킬로미터 떨어진 행주로 내려갔다. 그는 거기서 품팔이꾼으로 일하면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둘 믿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예배를 드리도록 자기 집을 내주었고, 아이들은 교회에서 찬송가를 배웠다. 언더우드는 문답을 거쳐 세례를 받겠다고 요청하는 사람이 100명이나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_<언더우드> 9장 “순회 선교사”에서

언더우드는, 양반과 사대부 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 오고 있었다. 그가 본 그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데 온갖 종류의 장애물들로 울타리를 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예를 들면 황제가 종묘 앞에서 정기적으로 배례할 때마다 모든 공직자들은 함께 경배를 드려야만 했다. 더구나 대부분의 관리들은 대가족의 가장으로 가문의 위패를 책임지고 있었으며, 뿐만 아니라 중요한 산소들을 보살피고 제삿날이 돌아오면 엄격하게 제사를 모셔야 했다. 더불어 이들 대부분은 최소한 두 아내와 그에 따르는 가족과 자녀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은 이 가족들에게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는데, 실제로 대부분 본부인보다 후처에게 더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본처와는 대부분 매우 어렸을 때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부모가 짝지어 주는 대로 결합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들 생활의 모든 사회적·정치적·종교적 영향력들이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었다.
_<언더우드> 11장 “넓어지는 강”에서

원산에서의 이 놀라운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 전역에 퍼져, 1906년 봄과 초여름에는 그와 비슷한 놀라운 부흥이 남장로교 선교지부 한 곳12을 휩쓸었으며, 1907년에는 북부 지방의 그리스도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커다란 부흥이 뒤따랐다. 그 부흥들은 성격이 모두 똑같았고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그 특징은 아무리 작은 죄라도 감추어 놓고 있으면 사람을 못 견디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회개하는 사람들은 종종 바닥에 뒹굴거나 두려움과 슬픔에 사로잡혀 무섭게 경련을 일으켰다. 뒤이어 하나님의 거룩함에 거역한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의 고백이 있었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가 계속되었다. 또 전 회중은 통성으로 크게 기도했으며, 함께 울고 기뻐했다. 특히 1905년과 1906년 사이의 겨울에는 모든 선교회들이 성령의 은혜를 갈구하며 끊임없이 기도했기 때문에 각지에 축복이 다가오고 있다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_<언더우드> 12장 “어둠과 빛”에서


<아펜젤러> 책 속으로

여느 선교사들보다 깨끗한 이미지를 남긴 44년간의 짧은 생애는 안타깝게도 불의의 사고로 마감됐지만, 아펜젤러가 이 땅에서 이루지 못하고 간 사역에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부채의식을 느낀다면, 그의 짧고 깨끗한 삶이 한국교회에 새로운 선교 열기와 사명 수행의 힘찬 동력을 제공할 것이라 믿는다. ‘한국 근대의 선구자’ 아펜젤러의 삶을 조명하기 위한 개정판으로 이 책을 출간하는 것은 그가 온 지 130주년이 되는 시점인데도 이 책을 능가할 만한 아펜젤러 연구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펜젤러의 일기와 보고서와 설교 등을 당시 한국 선교의 전반적인 상황과 연관시켜 면밀히 검토하고 연구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이 땅의 감리교회와 교회사학계는 이런 요청에 부응해 아펜젤러 연구를 더욱 촉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_<아펜젤러> “개정판 역자 서문”에서

아펜젤러가 한국에 왔을 때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들과 그와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들이 기록하려고 했던 것은 단지 경건한 찬사의 말이 아니다. 그들은 아펜젤러와 그의 동역자들이 현실을 거슬러 하나님 안에서 이룩한 업적들을 보여 주려 한 것이다. 사실 아펜젤러가 처음 한국을 찾아왔을 때, 한국은 야만적인 이교도의 나라였다. 그러나 그가 죽어 한국을 떠났을 때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그 이름에 걸맞게 희망과 가능성과 능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오늘날 모습과 같은 기독교화된 조선을 위해 살고 일했다. 따라서 이 책의 많은 부분은 그가 사랑하여 기꺼이 생명을 바친 이 나라와 민족을 다룬다.
_<아펜젤러> “서문” 에서

한마디로 하나님의 손으로 지음받은 있는 그대로의 한국, 자연이 풍성함을 가져다준 있는 그대로의 한국은 신명기 8장에 그려진 약속의 땅처럼 영광스러울 정도로 아름답다. 유교 사상으로 둔해져 버린 이 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알았더라면! 토지의 비옥도는 평균치 이상이므로 이 나라 사람들이 다 먹고 남을 만한 식량을 생산해 낼 수 있다. 이 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는 등잔 기름이나 비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무한한 식량 창고이기도 하다. 육지의 바위에는 광맥이 많아 여러 풍부한 광물의 전시장과도 같다. 값지고 유용한 금속도 매우 풍부하다. 목재의 보고인 북쪽의 삼림, 교통 발달의 가능성, 천연 자원과 그 잠재력의 다양성 등은 독실한 신자의 입장에서든 과학자의 입장에서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기 뜻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 차지인(借地人)으로서 그리고 주님께 커다란 능력을 부여받은 자로서 이 아름다운 땅 위에 놓인 사람들이, 땅으로 하여금 한층 풍요로운 소출을 내게 하고 바다와 보물창고인 산과 금빛 모래가 풍부한 강으로부터 생활을 편안하고 풍요롭게 하며 더욱 고양시킬 수 있는 물질들을 얻도록 좀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더라면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이 생긴다.
_<아펜젤러> 1장 “하나님의 한국”에서

그는 제일감리교회(The First Methodist Church)의 기도 모임과 조모임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으며, 4월 16일에는 ‘필라델피아 연회’의 회의록을 검토하고 감명을 받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내가 선택한 교회가 하고 있는 선한 사업은 내게 기쁨을 준다.” 또 그다음 주일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개혁교회에서 감리교회로 옮기는 문제에 대한 이전의 모든 생각과 논쟁들이 오늘 모두 끝났다. 나는 감리교회의 완전한 신자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택한 일이다.…이 일은 한동안의 기도와 묵상 끝에 이루어진 것이다. 1876년 10월 1일 회개한 이래 나는 주로 감리교인들과 함께 지내면서 개혁교회에서보다 훨씬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감리교회에 가입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하며, 오늘 내가 한 일은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구주를 따르는 웨슬리적 삶의 방식을 그가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감리교의 신자로 받아들여진 것은, 1879년 4월 20일 H. C. 스미스(Smith) 목사가 목회하던 랭커스터 제일감리교회에서였다.
_<아펜젤러> 5장 “그리스도의 군병 훈련”에서

신학생들이 미드홀 내의 커다란 방에 들러 워즈워스, 아펜젤러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화제는 곧 한국으로 옮겨 갔다. 이미 최소한 한 사람-한국에 교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던 한 사람-은 그 주제에 완전히 몰두해 새로이 얻은 지식을 남들에게 알리는 것을 즐겼으며, 그들이 관심 가지기를 바라면서 질문을 유도하기도 했다. 물론 각자의 관심 정도에 따라 결과는 다양하게 나타났다.…워즈워스는 새로 문호가 열린 그 지역에 가기로 결심하고, 실제로 자청하여 그 요청이 받아들여지기까지 했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가 고국에 머물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면 누가 그를 대신할 것인가? 그는 바로 일본 열도에서 한반도로 눈을 돌리게 된 아펜젤러였다.
_<아펜젤러> 6장 “한국에 대한 관심”에서

다음 날 비가 오고 많은 사람들이 뱃멀미를 하는 가운데 기선은 출발하여 반도의 남단을 돌아갔다. 섬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 안개 낀 만(灣)을 통과하여 드디어 4월 5일, 그들은 수도 서울에서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항구 제물포에 도착했다. 1620년 미국으로 처음 이민 온 사람 중 메리 칠턴이 플리머스 바위에 첫발을 디딘 것처럼, 한국의 바위에 첫발을 디딘 사람은 아펜젤러 부인이었다. 부활주일이었던 그날, 아펜젤러는 이렇게 기도했다. “오늘 무덤의 빗장을 산산이 부수고 부활한 주께서 그들에게 빛과 자유를 허락해 주옵소서!”
_<아펜젤러> 8장 “항해와 첫인상”에서

스크랜턴 박사는 목격자의 시각에서 그의 동료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자기에게 닥치는 일을 거절하지도 않고 자기 몸을 아끼지도 않는다는 것은 그에게는 하나의 원칙이었다.…설교 다음으로는 교육이 그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문제였다. 그는 배재학당에서 대학의 모습까지 내다보고 있었으며, 그의 가르침을 받으러 오는 모든 학생들에게서 장래의 국가 고문, 한국을 혁신할 인재, 의의 왕국을 건설할 힘들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그들을 강제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때때로 탈선과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 안에는 그들을 진리로 이끌고 건강한 발전을 꾀하게 해주는 정신이 역사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_<아펜젤러> 14장 “재미있고 유쾌한 가정생활”에서

아펜젤러가 주축이 되어 미국인 개척자들이 구체화시켰던 교육은 이와 정반대의 것이었다. 그것은 처음에는 모든 면에서 한국인의 기질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곧 한국인의 절실한 필요를 채워 주고 한국의 정신적·사회적·정치적 질병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 교육은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것을 가르쳤다. 그것은 훈련의 강조점을 암기에서 판단으로 변화시켰고, 시력을 통찰력으로 변형시켰다. 그것은 학생들에게 원인을 물어보라고 가르쳤으며, 인과관계라는 영원한 법칙을 체득하도록 가르쳤다.…이 민족 앞에 아펜젤러는 목소리와 펜으로 잔치를 베풀고, 생명의 떡을 쪼개 주어야 했던 것이다. 케케묵은 중국의 지식에 짓눌려 있던 젊은이들 대신에, 근대적 삶을 위해 준비된 수백 명의 교사들이 배재학당(培材學堂, The Hall for the Rearing of Useful Men)에서 배출되었다. 이곳에서, 깨어 있는 젊은이들과 탐구적인 성인들이 세계와 인류에 대해 알게 되고 자극을 받아, 예수가 구원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 준 자기 민족과 인류의 진보를 위해 훌륭한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_<아펜젤러> 16장 “문자의 독점”에서

아펜젤러에게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고린도전후서가 맡겨졌다. 아펜젤러는 복음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을 보았다. 그는 마태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복음과, 마가의 ‘가장 먼저 쓰인 복음’ 그리고 주님의 놀라운 행적들을 한글로 번역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가 쓴 ‘그 시대를 위한 소책자’ 한 쌍을 번역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작업 때문에 그는 머리가 셀 정도였다. 이 번역 개척자는 다이너마이트를 폭파해 구멍을 파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했으며, 나름의 도구를 만들어 정확한 용어와 원어에 해당하는 한글 단어를 찾거나 발명해야 했다. 결국 이 작업은 영광스럽게 끝났다. 1900년 9월 9일 한글 신약성경의 완성을 감사하는 예배가 서울의 제일교회에서 열렸다.
_<아펜젤러> 17장 “한국어를 익히다”에서

한국에서의 첫 공중예배는 서울의 남부에 있는 벧엘교회에서 1887년 4월 8일 부활절에 드려졌다. 거기서 아펜젤러는 그의 전도를 받은 첫 회심자인 한 여인에게 세례를 주고 성찬식을 가졌다. 그는 이미 일본의 그리스도인에게 세례를 줌으로써 직접적인 복음 전파 사역을 시작한 바 있었다.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세 나라 국적의 신자들로 이루어진 교회가 세워졌는데, 1904년 스크랜턴 박사는 이 장면을 이렇게 회상했다. “아펜젤러 형제는 서울의 중심부에 있는 한국인의 집을 하나 샀다.…처음으로 한국인들과 함께 공적인 예배를 드릴 장소를 마련한 것이다.….”
_<아펜젤러> 19장 “학교와 교회”에서

보울비는 두 명의 한국인(아펜젤러의 비서와 어린 소녀로 추측되는)이 그들의 선실을 나오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두 사람은 갑판까지 가지 못했으리라 생각된다. 갑판 앞쪽 절반은 이미 침수되었고 고물은 물 바깥으로 높이 솟아 있었다. 아펜젤러는 매우 흥분한 채 뛰어다니고 있었지만 배에서 피신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보울비는 고물 쪽으로 달음질쳐 가서 난간에 올라갔다. 배가 가라앉았을 때 사방을 둘러본 그는 아펜젤러가 허리까지 물이 찬 채로 무언가 잡아 보려고 헛손질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_<아펜젤러> 25장 “타인의 생명을 구하다”에서
언더우드
개정판 역자 서문
역자 서문
서문
1. 혈통과 교육
2. 선교사 훈련
3. 중요한 시작
4. 기억할 만한 여행
5. 문법학자이자 사전편찬자
6. 바쁜 휴가
7. 다시 한국의 집으로
8. 한국에서의 운명의 날들
9. 순회 선교사
10. 옹호자-화평케 하는 자-대사
11. 넓어지는 강
12. 어둠과 빛
13. 일본의 보호국
14. 연합의 전조
15. 열성적인 지방여행
16. 유럽에서의 휴식
17. 미국에서의 한국 홍보 활동
18. 선교지의 분할
19. 심각한 부상
20. 축복의 소나기
21. 미국 대표단
22. 1914-1915년
23. “여정을 마치고 본향으로”
연보
색인

아펜젤러
개정판 역자 서문
서문
머리말
1. 하나님의 한국-찬란한 아침
2. 인간의 한국-실제 삶
3. 은자의 나라, 문이 열리다
4. 감리교와 아펜젤러
5. 그리스도의 군병 훈련
6. 한국에 대한 관심
7. 위대한 결단
8. 항해와 첫인상
9. 한국의 집
10. 묵은 땅에 뿌린 새 씨앗
11. 어린아이의 힘
12. 말을 타고-한국의 옛 도읍들
13. 북쪽에서-나루터 도시 평양
14. 재미있고 유쾌한 가정생활
15. 복음이라는 보석을 바라보며
16. 문자의 독점
17. 한국어를 익히다
18. 전염병의 시기
19. 학교와 교회
20. 첫 번째 휴가-고국에서
21. 문명의 개척자
22. 상상의 세계
23. 복음의 동역자들
24. 두 번째 고국 방문
25. 타인의 생명을 구하다
26. 추수의 계절
27. 성령의 바람
부록1_ 아펜젤러 설교문
부록2_ 회고록
연보
색인
언더우드 선교사는 앞으로 좀더 심도 깊은 연구를 통해 한국교회사를 넘어 세계선교 역사에서 중요하게 자리매김되어야 할 인물임에 틀림없다. 조선 도착 당시 25세 약관의 젊은 청년이었던 그가 격동의 조선 말 한겨레와 더불어 뿌리고 가꾸어 온 미래 기독교 한국의 꿈은 10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우리의 마음을 뛰게 하고 깊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이 책의 저자는 의료선교사로서 조선에 와서 8년 연하의 총각 선교사와 결혼하여 27년간을 동고동락한 선교 동반자다. 그들의 생생한 기록을 담은 이 책에는 귀중한 선교사적 자료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남편에 대한 찬양가에 불과하다고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서술 방식이 일반적이었던 20세기 초에 쓰인 기독교 전기임을 감안한다면, 이 책은 언더우드 연구의 기본 교과서이며 출발점임이 분명하다. 사반세기 전 이 책을 번역하고 출간하여 한국 기독교 선교사 연구의 새 장을 열어 준 이만열 교수가 새롭게 꼼꼼히 다듬고 역주를 더한 이번 개정판은, 지난 25년간 집적되어 온 귀한 연구가 오롯이 담긴 값진 선물이다.
_김진홍 뉴브런즈윅 신학교 종교·선교사상사 부교수, 언더우드글로벌기독교센터 디렉터

언더우드는 위대한 선교사였다. 기독교 전체 역사에서도 그보다 더 위대한 선교사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언더우드의 삶과 사역에 대한 지식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데, 감사하게도 그와 27년간 삶을 나눈 호턴 부인이 직접 그의 전기를 남겨 주었다. 1990년에 한국에 처음 번역·출판된 이 전기가 이번에 새로 정밀하게 다듬어져 출판되는 것을 보게 되어 매우 기쁘다. 역사학자인 번역자는 단순히 원문을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곳곳에 역주를 달아 좀더 객관적인 사실을 제공해 준다. 그래서 행여 저자가 전기 주인공의 아내로서 보일 수 있는 편향을 보완함으로써 이 책은 더욱 신뢰할 수 있는 자료가 되었다. 이 귀한 전기가 널리 읽히기를 기대하고 소망한다.
_이수영 새문안교회 담임목사

언더우드 선교사는 성공한 사업가인 형과 함께 평생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험하고 낙후된 조선에 와서 평생 이웃을 위해 나누고 섬기는 삶을 살았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25세의 나이에 제물포항에 도착한 언더우드는 일생 동안 조선인들로부터 양귀라고 배척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사전을 만들고, 각종 위원회의 주도적 인물로 종횡무진 활약했다. 또한 청년들이 서양의 고등학문을 접할 수 있도록 연세대학교의 근간을 세우고 가르쳤다. 언더우드 선교사야말로 자신을 녹여 세상에 짠 맛을 주는 소금이요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조선에 도착한 이래로 언더우드 선교사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아내 호턴 여사가 직접 쓴 언더우드 이야기가, 용재석좌교수로 연세대학교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이만열 교수의 손에 의해 다시 한 번 새롭게 번역·출간되어 더더욱 반갑고 귀하다. 이 책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한국 사회와 교회가 다시 한 번 귀 기울이고 주목해야 할 언더우드 선교사를 새롭게 만날 귀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_정갑영 연세대학교 총장, 경제학과 교수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기독교의 등장이다. 아시아에서 거의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주류 종교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한국 기독교의 위치는 독특하다. 그뿐이 아니다. 한국 기독교는 근세의 여명기에 이 땅에 들어와 급격한 서구화와 산업화를 선도했고, 시민의식을 싹트게 한 민주화의 주역이었다. 그 서막을 연 인물이 바로 언더우드다. 다방면에 걸친 놀라운 능력을 갖춘 그가 애초 계획했던 인도로 가지 않고 한국으로 오게 된 것이 우연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 머문 30년간 성서를 번역한 것 외에도 한영문법책을 만들고, 광혜원과 고아원, 연세대학교를 설립하여 사회복지와 학문의 길을 개척한 그는 선교사일 뿐 아니라 이 땅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그의 아내가 쓴 전기를 언더우드가 이 땅에 도착한 지 130년 만에 다시 펴내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기독교는 우리나라에서 유아기, 청소년기를 거쳐 이제 역사적 책임을 감당해야 할 어른으로 성장했다. 이 책이 초기의 열정과 헌신을 회복하도록 사람들을 돕는 데 그치지 않고, 일제와 남북분단기의 아픔과 한계를 극복하고 더 나은 한국과 한국 기독교를 만들어 가는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_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아펜젤러 내한 130주년을 맞은 뜻 깊은 해에 그의 전기가 다시 개정되어 출간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한국 선교 역사의 토대를 놓은 아펜젤러와 같은 인물에 관한 마땅한 전기가 여태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 책은 인간 아펜젤러의 삶과 한국 기독교의 초기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며, 국내에 아펜젤러 연구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_김영호 배재대학교 총장

언더우드는 위대한 선교사였다. 기독교 전체 역사에서도 그보다 더 위대한 선교사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언더우드의 삶과 사역에 대한 지식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데, 감사하게도 그와 27년간 삶을 나눈 호턴 부인이 직접 그의 전기를 남겨 주었다. 1990년에 한국에 처음 번역·출판된 이 전기가 이번에 새로 정밀하게 다듬어져 출판되는 것을 보게 되어 매우 기쁘다. 역사학자인 번역자는 단순히 원문을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곳곳에 역주를 달아 좀더 객관적인 사실을 제공해 준다. 그래서 행여 저자가 전기 주인공의 아내로서 보일 수 있는 편향을 보완함으로써 이 책은 더욱 신뢰할 수 있는 자료가 되었다. 이 귀한 전기가 널리 읽히기를 기대하고 소망한다.한국기독교사학도로서 나는 이 책을 ‘고전의 재발견’ 내지 ‘고전 새로 읽기’로 부르고 싶다. 한국 사학계의 대학자이신 이만열 교수는 한국 기독교 선교의 개척자이자 ‘아름다운 죽음’으로 ‘선한 목자’의 본을 보여 준 아펜젤러의 영문판 전기를 찾아내 우리말로 번역하시고, 전기 작가 그리피스가 책에 반영하지 못했던 아펜젤러의 설교문과 회고록 등도 함께 소개하여 아펜젤러의 삶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도와주셨다. 중세 암흑기에 르네상스 운동으로 불리는 고전의 재발견이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되었듯이, 이 책이 위기에 처한 오늘 한국 기독교계가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동기와 자극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_이덕주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아펜젤러에 대한 이 전기를 읽으면서 나는 한국에서 파송되는 선교사들이 기억해야 할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첫째, 당시 조선에 온 선교사들은 조선을 아주 면밀하게 조사하고 준비하여 선교에 참여했다. 당시 조선인의 삶을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기록할 수 있었을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즉 철저한 준비와 관찰 그리고 준비된 정보를 가지고 선교에 임해야 한다. 둘째, 한편으로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선교사들은 현지 문화나 역사 등 깊은 내면의 문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이 책을 보면 해외에서 온 선교사들이 한국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와는 매우 다른 시각과 판단을 내리고 있었음을 보게 된다. 이처럼 선교사가 아무리 선교지에 대한 깊은 지식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 해도 내부자의 시각에서 볼 때는 잘못 이해하는 부분이 많을 수 있다는 점은, 이제 한국에서 나가는 선교사들에게도 엄청난 선교적 겸손을 요청한다. 우리는 본서를 탁월하게 번역했을 뿐 아니라 잘못된 정보나 왜곡된 시각에 바른 주석을 달아 올바른 관점을 제공해 준 이만열 교수께 깊이 감사를 표해야 한다. 그의 세심한 노력 덕분에 이 책은 구한말의 초창기 선교 상황에 대한 가장 균형 잡힌 설명을 담은 탁월한 책이 되었다.
_한철호 선교한국파트너스 상임위원장
윌리엄 그리피스
미국인 동양학자·목회자·강연자로 왕성한 저작 활동을 했다. 유럽과 미국 중심의 서구사회에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아시아, 특히 한국과 일본에 관한 지식의 형성에 그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은 드물다. 1843년 9월 17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 특히 화란개혁교회의 분위기에서 자랐다. 1863년에 미국 남북전쟁에 참여했고 전쟁 후 1865년부터 러트거스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그 후 화란개혁신학교(지금의 뉴브런즈윅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일본 에치젠 영주의 초청을 받아 1870년부터 에치젠의 학교에서 이학과 화학 등을 가르쳤다. 1874년 미국에 돌아가 약 2년간 일본에 관한 순회강연을 했고 1876년에 유니언 신학교에 입학, 이듬해 졸업했다. 이후 줄곧 목사이자 작가로 활동한 그는 이 기간에 자신의 대표작인 「천황의 제국」(Mikado’s Empire, 1876)과 「은자의 나라, 한국」(Corea, The Hermit Nation, 1882)을 저술했다. 1884년에는 유니언 칼리지에서 신학박사학위를, 1900년에는 모교인 러트거스 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1908년 일본 정부로부터 훈(勳)4등 욱일장을, 1926년에 훈3등 욱일장을 받았으며, 한국에서 3·1운동이 발발한 직후 서재필이 조직한 ‘한국친우회’ 뉴욕지부의 위원으로 한국인 민족주의자들과 더불어 일본의 식민통치를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과 관련하여 이 책 「아펜젤러」(A Modern Pioneer in Korea, 1912)를 비롯하여 수많은 글을 썼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주제의 여러 저술을 남겼다. 1928년 2월 5일 플로리다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릴리어스 호턴 언더우드
Lillias Horton Underwood
한국에 온 최초의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의 부인으로 미국 뉴욕 주 알바니에서 1851년 6월 21일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시카고로 이주했으며 인도에서 사역하던 선교사 친구를 통해 선교 사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시카고 여자 의대(현재는 노스웨스턴 대학에 소속)에서 의학을 전공했으며, 의학도 시절부터 인도의 의료 선교사가 되려는 소망을 품었다. 1888년 3월에 조선에 도착하여, 조선 정부가 세운 최초의 근대 서구식 병원인 광혜원의 부인과에 근무하면서 명성황후의 시의로 겸직했다. 1889년 언더우드 선교사와 결혼했고 남편이 설립한 소년들을 위한 고아원에서 영어와 산수를 가르치며, 여성들을 위한 성경 공부를 인도했다. 주요 저서로 「상투잽이와 함께 보낸 십오년 세월」 「호러스 언더우드와 함께한 조선」 외에 조선에 관한 여러 책을 썼다. 의료 사업과 교육 사업, 사회 사업 등에 전력하다가 1921년 10월 29일 세상을 떠나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잠들어 있다.
시리즈 소개 | 세트 | 세트낱권구성
윌리엄 그리피스 / IVP
가격: 17,000원→15,300원
릴리어스 호턴 언더우드 / I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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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언더우드 · 아펜젤러 세트(전2권)
저자윌리엄 그리피스,릴리어스 호턴 언더우드
출판사IVP
크기set
쪽수0
제품구성상품설명 참조
출간일201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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