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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있는사람 디트리히 본회퍼 관련 세트 (전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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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서거 70주년 기념,
에버하르트 베트게의 가장 권위 있는 기록으로 그를 만나다!

-강영안, 채수일, 임영수, 박영돈, 유해무, 김기석, 김영봉, 손희영, 김회권 외 추천

“이 책은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에
나침반이 될 명저(名著)다!”


21세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24세에 대학교수 자격을 취득한 ‘천재 신학자’, 독일교회가 정치 세력과 야합하는 것에 강력하게 반발하며 소신을 굽히지 않은 ‘투사’, 20세기 초반 전 세계를 혼란 속에 몰아넣은 히틀러에 맞서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지킨 ‘순교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전기다. 본회퍼의 제자이자 친구인 에버하르트 베트게가 1967년 완성한 이 전기는, 한국 독자들에게 처음 선보이는 본회퍼 전기의 결정판이다.

본회퍼의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세밀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그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 동시대에 살았던 정치·역사·신학적 주요 인물들을 함께 다룸으로써, 이 책은 디트리히 본회퍼라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한 시대를 재구성한 방대한 작업이 되었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본회퍼 개인의 이야기뿐 아니라 현대사, 교회 투쟁사, 저항 운동사, 에큐메니칼 운동 초기의 단면과 신학의 단면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고자 고민하는 이들에게, 신앙과 삶, 목회와 신학의 균형을 지키며, 정의와 윤리를 위해 생명까지 내건 신앙인의 모범을 제시해 줄 것이다.


20세기 기독교 순교자,
디트리히 본회퍼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전기!


에버하르트 베트게의 『디트리히 본회퍼』는 출간 이후 반세기가 넘은 지금까지도 본회퍼 전기의 ‘결정판’으로 인정받고 있다.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본회퍼를 알았고, 그와 뜨거운 우정을 나누었던 베트게야말로 본회퍼의 내면을 그 누구보다 가장 잘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아주 작은 단서만 발견해도 집요하게 추적하여,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본회퍼의 글들을 찾아내고 알려 왔다. 베트게가 아니었다면 본회퍼가 남긴 원고와 편지, 강의 노트 등을 정리한 본회퍼 전집은 물론, 그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기록인 이 전기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밀도 높은 자료와 분석과 필치로 디트리히 본회퍼라는 한 인물의 삶과 사상과 정황을 흥미로우면서도 생동감 있게 담아내었다. 본회퍼의 성장 과정, 신학자로서의 입문과 발전, 목회자로서의 영적 분투, 그리고 저항적 순교사에 이르는 전 생애가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 책은 “형제들 가운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 이”에 대한 기억을 앞으로도 생생히 유지할 것이고, 디트리히 본회퍼를 신학자-그리스도인-동시대인으로 기억하는 전기로 남을 것이다. 본회퍼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꼭 읽어야 할 책이며, 본회퍼의 이 통전적인 기독교 신앙과 신학 유산을 절실히 계승해야 할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책이다.


특징
- 디트리히 본회퍼의 제자이자 친구인 에버하르트 베트게가 쓴, 본회퍼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전기.
- 본회퍼 개인의 생애가 세밀하게 담겨 있을 뿐 아니라 현대사, 교회 투쟁사, 저항 운동사, 에큐메니칼 운동 초기의 단면과 신학의 단면을 종합적으로 엿볼 수 있는 방대한 전기.
- 새로 확인된 사실들과 완간된 디트리히 본회퍼 전집을 참조하여, 1967년 출간된 초판의 내용을 수정·보완한 개정판.
- ‘하나님의 사람 시리즈’ 15권.

독자 대상
- 디트리히 본회퍼의 생애와 그의 신학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자 하는 이들.
- 히틀러 전후 독일교회의 상황을 비롯하여, 20세기 초반 당시의 역사적·신학적 흐름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이들.
- 신앙과 삶, 목회와 신학의 균형을 지키며, 정의와 윤리를 위해 생명까지 내건 신앙인의 모습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연보
1906년 2월 4일,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나다.
1923년 튀빙겐 대학교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하다.
1924년 여름학기부터 베를린 대학교에서 공부하다.
1927년 12월 17일, 라인홀트 제베르크 밑에서 「성도의 교제」(Sanctorum Communio)로 박사 학위 취득.
1928년 1월 17일, 22세에 1차 신학고시에 합격하다. 2월 15일, 바르셀로나에서 수련목회자 사역을 시작하다.
1929-1930년 베를린 대학교에서 빌헬름 뤼트게르트의 수습 조교로 일하다.
1930년 7월 5-8일, 24세에 2차 신학고시에 합격하고 「행위와 존재」(Akt und Sein)로 대학교수 자격 취득. 9월 5일부터 1931년 6월까지 미국 유니온 신학교에서 연구하다.
1931년 8월 1일, 베를린 대학교 신학부에서 대학 강사로 일하기 시작하다. 11월 15일, 목사 안수를 받고 (1932년 3월까지) 베를린 베딩에서 견신례 학급을 맡아 지도하다.
1932년 7-8월, 베스터부르크, 체르노호르스케 쿠펠레, 제네바, 글랑에서 열린 에큐메니칼 회의에 참석하다.
1933년 2월 1일, 라디오 방송에서 ‘지도자 개념의 변화’라는 제목으로 강연하다. 9월, 니묄러와 함께 목사긴급동맹 초안을 작성하다. 성명서 「전국총회에 고함」 발표. 10월 17일, 27세에 런던에서 목사직에 취임하다.
1935년 4월 26일, 칭스트(발트 해)에서 신학원을 시작하고 2개월 뒤 핑켄발데로 이전하다.
1936년 2월, 베를린 대학교 신학부에서 ‘나를 따르라’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강의를 하다. 8월 5일, 제국교육부 법령에 따라 대학교수 자격을 박탈당하다.
1937년 2월, 에큐메니칼 런던 대회에 마지막으로 참석하다. 9월, 게슈타포가 핑켄발데 신학원을 폐쇄하다. 11월, 31세에 『나를 따르라』(Nachfolge) 출간. 12월 5일, 쾨슬린과 그로스-슐뢴비츠에서(나중에는 지구르츠호프에서) 수련목회자 모임 시작.
1938년 1월 11일,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에 체류하는 것을 금지당하다. 프리치 사건을 공동으로 조사하던 한스 폰 도나니와 오스터에게서 쿠데타 계획을 처음으로 알게 되다. 9월, 괴팅겐에서 『신도의 공동생활』(Gemeinsames Leben) 집필.
1939년 3월 10일, 런던으로 가서 조지 K. A. 벨 주교, 피스르트 호프트, 라인홀드 니부어, 게르하르트 라이프홀츠와 상의하다. 6월 2일, 미국으로 출발하여 20일에 귀국을 결심하다. 7월 27일, 베를린으로 되돌아오다.
1940년 3월 15일, 지구르츠호프에서 학기를 종료하다. 3일 뒤 게슈타포가 지구르츠호프 수련목회자 모임 폐쇄를 명령하다. 9월, 발언 금지 조치를 당하다. 관할 경찰서에 주소지 신고 의무를 부과받다. 9-10월, 클라인-크뢰신에서 『윤리학』(Ethik)을 집필하다. 방첩대 뮌헨 지부에 배속되다.
1941년 10월, 베를린에서 유대인이 추방당하기 시작하자, 유대인 구출 계획인 “작전 7”을 수행하다.
1943년 1월 13일, 37세에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와 약혼하다. 4월 5일, 한스 폰 도나니 부부, 요제프 뮐러 부부와 함께 체포되다.
1944년 1월, 수사책임자 뢰더가 교체되어 기소가 무기한 연기되다. 7월 20일, 슈타우펜베르크가 히틀러 암살을 시도하다. 9월 22일, 게슈타포 수사관 존더레거가 초센 방첩대 방공호에서 문서철을 적발하다. 10월, 탈주 계획을 세웠으나 같은 달 5일 클라우스 본회퍼, 뤼디거 슐라이허, 에버하르트 베트게 등이 체포되는 바람에 연좌제를 우려하여 계획을 포기하다. 8일에 프린츠-알브레히트 슈트라세 게슈타포 지하 감옥으로 이송되다.
1945년 2월 7일,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로 이송되다. 4월 3일, 부헨발트에서 레겐스부르크로 이송되고, 이틀 뒤 히틀러의 정오 면담에서 말살 명령이 떨어지다. 4월 6일, 쇤베르크(바이에른 삼림지대)로 이송되다. 이틀 뒤 플로센뷔르크로 이송되어, 야간에 즉결재판을 받다. 4월 9일 새벽, 플로센뷔르크 강제수용소에서 빌헬름 카나리스, 한스 오스터, 칼 자크, 테오도르 슈트륑크, 루트비히 게레 등과 함께 39세의 나이로 교수형에 처해지다. 한스 폰 도나니는 작센하우젠에서 살해당하고, 같은 달 23일에는 클라우스 본회퍼와 뤼디거 슐라이허, F. J. 페렐스가 베를린에서 총살당하다.


복 있는 사람에서 펴낸 ‘하나님의 사람’ 시리즈
1 『전능자의 그늘』 _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증인, 짐 엘리엇의 삶과 신앙
2 『영광의 문』 _북미 선교사들의 영원한 심장, 젊은 5인의 순교 이야기
3 『에이미 카마이클』 _하나님의 거룩한 전사
4 『디트리히 본회퍼』 _에버하르트 베트게가 생생하게 그려낸 본회퍼 전기의 결정판
5 『순례자의 노래』 _위대한 복음전도자, 스탠리 존스의 영적 자서전
6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생애와 일기』 _원본에 충실한 국내 최초 완역본
7 『프랜시스 쉐퍼』 _20세기 기독교 문화 형성의 가장 중요한 인물
8 『조나단 에드워즈와 그의 시대』 _새롭게 쓰여진, 조지 마즈던의 조나단 에드워즈 전기
9 『고백』 _가난한 자들의 친구, 도로시 데이의 영적 순례기
10 『아직 끝나지 않은 길』 _위대한 복음주의 선교신학자, 레슬리 뉴비긴 자서전
11 『그리스도가 왕이 되게 하라』 _아브라함 카이퍼의 생애와 그의 시대
12 『아더 핑크』 _하나님의 숨은 보석, 20세기의 위대한 성경학자
13 『C. S. 루이스』 _별난 천재, 마지못해 나선 예언자
14 『칼 바르트』 _20세기 신학의 교부, 시대 위에 우뚝 솟은 신학자
본회퍼와 약혼녀 마리아가 2년간 주고받은 ‘옥중연서’
-어두운 시대의 감옥에서, ‘연인’으로서의 본회퍼를 발견하다!


”많은 것을 포기하며 견뎌 내야 했던,
세상에서 보기 드문 두 연인, 디트리히 본회퍼와 마리아의 애틋한 사랑의 증거”

-에버하르트 베트게, 김회권, 김기석 추천


디트리히 본회퍼는 목사이자 신학자로, 무엇보다 잘못된 정치권력에 맞서 투쟁한 행동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나치 정권에 의해 투옥되기 직전 한 소녀와 약혼한 것과, 이후 처형되기 전까지 그녀와 나눈 이야기들은 이제까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편지들은 디트리히 본회퍼와 그의 약혼녀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 사이에 오고간 사랑의 언어들을 잘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어려운 상황 속 그들의 내밀한 속내를 또한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본회퍼의 은혜에 기반한 굳건한 믿음, 연인을 향한 사랑, 문학과 철학 등에 관한 깊은 이해, 갑작스러운 체포와 역시 갑작스러운 처형에 이르기까지의 내면 풍경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던 나에게 전혀 예기치 못한 수확이었다. 두 연인이 편지를 주고받던 당시 디트리히 가까이 있던 사람으로서, 또한 큰 나이 차이를 뛰어넘는 사랑의 모험을 한 동지로서 이 편지를 읽는 감회가 새롭다.
나는 이 편지를 읽게 되리라는 기대를 접고 있었다. 1950년 우리가 디트리히의 옥중 서신을 모아 「저항과 복종」이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을 때 마리아는 이 서신을 혼자 간직하고 싶어 했고, 우리는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마리아의 언니 룻-앨리스 폰 비스마르크는 이 서신을 출간할 결심을 굳혔다. 마리아가 죽음을 앞두고 서신 출간에 대한 전권을 언니에게 맡겼던 것이다.
많은 것을 포기하며 견뎌 내야 했던, 세상에서 보기 드문 약혼자들의 증거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참으로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 간행되는 디트리히 본회퍼 전집에서, 이 편지가 연대기적으로나 전기적으로 보완해 주는 가치만으로도 엄청나다. 이로써 테겔 형무소의 삶에 대한 이해가 더욱 완전해지고 깊어지게 되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꿈꿀 수 있었고, 우호적인 보초들의 도움으로 편지를 몰래 전달하기도 했으며, 1943년 말에 있을 예정이던 소송에 걸었던 희망과 그로 인해 불거진 두 연인 사이의 위기,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습작을 하며 신학적 비전을 품고 발전시켰던 1944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테겔 형무소’는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었다. 교회와 세상, 쿠데타 계획과 심문, 동부 전선과 서부 전선, 그리고 테겔의 감방을 잠시 수도승의 방으로 바꾸어 놓은 예언적 숙고들이 연인이 주고받은 편지에 다양한 주제로 나타나고 있다.
일생을 친구가 남긴 유산을 정리하는 작업을 해온 나에게, 1943년에서 1944년 사이에 주고받은 연인들의 사랑의 편지는 놀라움과 기쁨 그 자체였다. 행복과 불행에 대한 깊이 있는 내면의 감정, 탁월한 지혜와 표현력으로 드러내는 책임감에서, 이 편지는 철저하게 디트리히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리아의 언니 룻-앨리스 폰 비스마르크가 이 책의 서평을 부탁했을 때, 나는 매우 기뻤다. 다양한 모습의 단편으로 남아 있는 본회퍼의 유산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이 모두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본회퍼 생애 마지막 이태 동안의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의 편지, 친구들과의 서신 왕래, 문학적 시도들은 물론, 마리아와의 편지 교환에 이르기까지 전체 모자이크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에버하르트 베트게(「디트리히 본회퍼」 저자)의 ‘추천의 글’ 중에서


참고자료: 두 사람의 연보
디트리히 본회퍼 Dietrich Bonhoeffer(1906-1945)
1906.2.4 브레슬라우에서 팔남매 가운데 여섯째로 태어나다.
1923 17세에 튀빙겐 대학교에 입학하다.
1927 21세의 나이에 논문 ‘성도의 교제’로 베를린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다.
1931 목사 안수를 받다. 베를린 베딩에서 견신례 대상 청소년들을 지도하다.
1935 29세에 칭스트 해안에 자리한 신학원의 책임자가 되다. 슈테틴 핑켄발데로 신학원을 이전하다.
1937 「나를 따르라Nachfolge」가 출간되다.
1938 한스 폰 도나니와 오스터 대령으로부터 저항 운동 계획을 처음으로 알게 되다.
1942 룻 폰 클라이스트-레초브의 초청으로 클라인-크뢰신에 머물며 저술 작업을 하던 중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를 만나다. 아버지와 오빠를 잃은 그녀를 위로하며 가까워지다.
1943.1.13 37세에 마리아와 약혼하다.
1943.4.5 한스 폰 도나니 부부 및 요제프 뮐러 부부와 함께 체포되다. 본회퍼는 테겔 형무소에 수감되고, 이때부터 부모님을 통해 약혼녀 마리아와 그리움에 찬 연서를 주고받다.
*이 서신 교환은 1944년 10월까지 이어지다가 본회퍼가 게슈타포 교도소로 이감되며 중단되고, 마침내 1945년 2월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로 이송되며 끊기다.
1943.7.30 마리아에게 직접 편지를 쓸 수 있게 되다.
1944.9.20 초센 저항일지가 발각되어 본회퍼가 히틀러 암살 계획에 연루된 정황이 포착되다.
1944.10 형 클라우스 본회퍼, 매형 뤼디거 슐라이허, 친구 에버하르트 베트게가 체포되다. 본회퍼는 프린츠-알브레히트 가에 있는 게슈타포 교도소로 압송되다.
1944.12.19 마리아에게 마지막 성탄 편지를 보내다.
1945.2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로 이송되다.
1945.4.9 39세에 플로센뷔르크 강제수용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지다.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 Maria von Wedemeyer(1924-1977)
1924.4.23 노이마르크 패치히에서 칠남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나다.
1938 룻 폰 클라이스트-레초브의 손자 손녀들이 디트리히 본회퍼의 인도로 콘퍼만덴 수업과 견신례를 받았으나, 마리아는 아직 콘퍼만덴 수업을 받을 만큼 성숙하지 못하다는 평을 받고 수업에서 제외되다.
1942 대학 입학 자격시험인 아비투어에 합격하다. 외할머니 룻 폰 클라이스트-레초브를 방문했다가 본회퍼를 만나게 되다. 11월 11일에 본회퍼에게 첫 편지를 보내다.
1943.1.13 19세에 본회퍼와 약혼하다. 그러나 어머니가 요구한 ‘기다림의 시간’을 지키고자 본회퍼를 만나지 않다.
1943.4.5 본회퍼가 구속되다. 테겔 형무소로 애틋한 연서를 보내기 시작하다.
1943.6.24 본회퍼와의 첫 면회가 이루어지다.
1944.8 적십자사에서 일하는 것을 포기하고, 베를린으로 가 6주간 본회퍼의 부모님과 함께 머물다.
1945.1 전쟁으로 인해 패치히를 떠나다. 이후 분도르프와 플로센뷔르크로 본회퍼를 찾아 여행하지만 소식을 듣지 못하다.
1945.7 본회퍼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다.
1949 25세에 파울-베르너 슈니빈트와 결혼하고 함께 미국 유학 생활을 시작하다.
1955 파울-베르너와 이혼하다. 두 아들 크리스토퍼와 파울은 마리아에게 남겨지다.
1959 35세에 발명가 바튼 웰러와 재혼하지만 6년 뒤 이혼하다.
1966-1967 하버드 대학교, 유니언 신학교의 잡지 등에 본회퍼의 편지를 기고하다.
1976.2 제노바에서 열린 ‘본회퍼 국제 학술회’의 초청에 응하다.
1977.11.16 53세에 미국 보스턴에서 암으로 사망하다.


▒ 특징
- 본회퍼가 수감된 1943년부터, 1945년 처형되기 직전까지 두 연인이 주고받은 실제 편지들의 모음
- 기존에 출간된 옥중서신과는 달리, 본회퍼의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음
- 편지 외에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글과 주석들이 있어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도움
- 본회퍼와 마리아의 친필 편지, 두 사람과 가족들의 사진 등 다양한 자료 수록
에버하르트 베트게
본회퍼 전기작가이자 본회퍼의 유고를 편집하여 세상에 알린 그의 제자이자 친구다. 1909년 8월 28일 마그데부르크 바르하우에서 태어났고, 쾨니히스베르크, 베를린, 빈, 튀빙겐, 할레-비텐베르크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935년 칭스트와 핑켄발데의 고백교회 신학원에 입학해 본회퍼를 알게 되었으며, 1937년 본회퍼가 그로스-슐뢴비치(이후 지구르츠호프)에 차린 수련목회자 모임의 연구장학관이 되었다. 둘 사이의 끈끈한 우정은 1945년 본회퍼가 처형될 때까지 서신을 왕래하며 계속되었고, 이때 나눈 편지는 본회퍼의 전기와 사상을 구성하는 주요한 단서가 되었다. 1940-1945년 베를린 그로스너 선교회의 선교 감독관을 역임하고, 1943년 5월 15일 본회퍼의 조카딸 레나테 슐라이허와 결혼함으로써 본회퍼 일가와 한가족이 되었다. 1944년 “7월 20일 사건” 이후 이탈리아에서 체포되어 베를린 레어터 슈트라세 3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1945년 4월 25일 감옥에서 나와 오토 디벨리우스 감독의 개인 보좌관으로 일했다. 1945년에는 훔볼트 대학교, 1949년에는 베를린 공과대학의 교목을 역임했다. 1953년 런던에서 목회하고, 1961-1976년에는 렝스도르프에 있는 라인 목회자 신학교 학장으로 재직했으며, 1969년 본 대학교의 실천신학 담당 객원교수로 부임했다. 2000년 3월 18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본회퍼의 저서들을 출간하고 연구하는 일에 매진하여, 본회퍼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기록인 이 전기를 남겼다.
디트리히 본회퍼

Dietrich Bonhoeffer, 1906-1945

1906년 브레슬라우에서 팔남매 가운데 여섯째로 태어나, 17세에 튀빙겐 대학교에 입학했다. 21세의 나이에 베를린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29세에 신학원 책임자가 되었다. 1943년 1월, 37세에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와 약혼하지만 곧이어 감옥에 수감되고, 1945년 4월 히틀러 암살을 공모한 죄로 처형되었다. 논문 ‘성도의 교제’를 비롯해 「나를 따르라」, 「윤리」, 「성도의 공동생활」 등의 저작을 남겼다.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

Maria von Wedemeyer, 1924-1977
1924년 노이마르크 패치히에서 칠남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그녀 외할머니 룻 폰 클라이스트-레초브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본회퍼와 알고 지냈다. 19세 되던 1943년 디트리히 본회퍼와 약혼하지만 곧바로 약혼자를 감옥에 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전쟁이 끝난 후 본회퍼의 사망 소식을 듣고, 4년 뒤인 1949년 파울-베르너 슈니빈트와 결혼해 미국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파울-베르너와 이혼하고 두 아들을 키우다 바튼 웰러와 재혼하지만, 결국 이혼했다. 본회퍼의 편지를 하버드 대학교, 유니언 신학교의 잡지 등에 기고했고, 죽기 직전 모든 편지를 그녀의 언니 룻-앨리스 폰 비스마르크에게 넘겼다. 1977년 53세의 나이로 미국 보스턴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시리즈 소개 | 세트 | 세트낱권구성
에버하르트 베트게 / 복있는 사람
가격: 58,000원→52,200원
디트리히 본회퍼,마리아 폰 베데마이어 / 복있는 사람
가격: 19,000원→17,100원
평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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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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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제목
이름
작성일

도서명복있는사람 디트리히 본회퍼 관련 세트 (전2권)
저자에버하르트 베트게,디트리히 본회퍼,마리아 폰 베데마이어
출판사복있는 사람
크기SET
쪽수
제품구성
발행일2014-09-10
목차 또는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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