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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교회는 십일조를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미국교회는 십일조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둘 다 옳은 수는 없습니다. 과연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틀렸을까요?
개혁주의에서는 율법을 의식법, 시민법, 도덕법으로 구분하고 의식법, 시민법은 오늘날 효력이 없고 도덕법만 효력이 있다고 합니다. 십일조는 도덕법이 아니라 시민법에 해당됩니다. 개혁주의의 원산지라고 할 수 있는 화란의 개혁교회와 유럽교회가 십일조를 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완전한 율법이 생겼고 율법은 폐하여졌습니다(엡 2:14). 오늘날의 교회에게는 완전하게 된 율법만이 효력이 있습니다. 율법의 도덕법도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도덕법과 완전한 도덕법이 있으며 완전한 도덕법이 오늘날의 교회에게 효력이 있습니다. 십일조도 예수님에 의해 완전하게 되었고 그것을 오늘날의 교회가 행하여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성경은 다른 복음을 말하면서 천사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리라고 선언하였습니다(갈 1:8-9). 다른 복음은 어떤 유대인 교사들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한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언약의 시대 진전과 함께 뒤따르는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함으로 나타난 잘못이었으며 하나님께서 행하고자 하시는 경륜을 역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의 한 조항인 십일조를 지키라는 것은 정확하게 여기에 부합됩니다. 한국교회에 편만한 삼박자 축복도 원리에 있어서 마찬가지입니다.
말라기서에서 십일조를 강조하였고 예수님께서도 십일조를 하라고 하셨는데, 그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율법 준수의 의무가 부여된 이들에게 율법의 한 조항인 십일조를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에게는 문자적으로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 말씀을 따라 오늘날도 십일조를 하여야 한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안식교나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는 안상홍의 하나님의 교회의 주장이 잘못된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십일조는 모든 물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신앙고백이라고 말하지만 모든 헌금에는 그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교회 재정 확보에 유익합니다만 그것은 맘몬 숭배일 수 있습니다. 십일조를 완전하게 하신 내용을 실천하면 재정 확보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십일조가 교회의 좋은 전통이라고 하지만 아닙니다. 다른 복음을 좇는 불순종일 뿐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바른 전통과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잘못된 전통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전자는 더 온전하고 풍성하게 하여야 하고 후자는 즉각적으로 버려야 합니다. 참된 개혁주의입니다. 십일조에 대한 바른 평가와 십일조를 완전하게 한 신약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그 방편의 하나로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십일조에 대한 바른 태도로 하나님 경외를 나타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개인적으로라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전통이나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능히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선조들 곧 사람, 하나님의 말씀과 선조들의 잘못된 가르침 곧 장로들의 유전 사이에서 선택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바른 이해를 가지고 실천하여야 합니다. 성경과 목회자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즉각 순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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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을 속으로 해 보았을 생각?!
십자가 강도처럼 죽기 전에 믿고 구원받으면 좋은데…?! 선택된 사람은 어차피 은혜로 예수님을 영접하여 영원한 구원까지 인도 받을 텐데 굳이 신앙생활을 힘들게 할 필요 뭐 있어?! 성화는 상급과만 상관있다는데…?!
이 같은 생각을 신자들이 하게 되는 것은 잘못된 구원관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바른 성경해석으로 닫힌 성경을 열어 보자!
구원론에서 중요한 핵심 단어인 은혜, 구원, 믿음을 성경 본문 안에서 문자, 문법, 문장, 문맥, 정황, 그리고 계시 역사를 정당하게 고려하여 일관성 있게 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은혜(가항력적 은혜와 불가항력적 은혜), 구원(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인가?), 믿음(구원에서 조건인가 무조건인가?) 등에 대해 성경신학적으로 조명하고 바른 분별을 통해서 지금의 혼돈에서 벗어나야 한다.
구원론에 있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칼빈주의 5대 교리와 알미니안주의 5대 강령!
그러나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한 성경이 어떻게 두 개의 구원론을 말씀하시겠는가?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전통의 옷을 벗고, 주의를 뛰어넘어 성경적인 구원론을 정립하자!
이에 대해 저자는 단호히 말한다. “구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모호하지 않다. 정반대의 주장이 동시에 성립될 정도로 모호하지 않고 아주 명백하다. 우리의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기만 하면 성경에서 진술하고 있는 구원론을 아주 분명하게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따라서 저자는 교회가 가져야 할 바른 자세는 어떤 ‘주의’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정립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부패, 선택, 속죄, 부르심, 견인 등에 있어 칼빈주의자와 알미니안주의자의 주장을 함께 살피고 그들이 제시하는 성경적 근거들을 바른 해석 원리로 재해석함으로써 성경이 하나의 신학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동시에 가지고 있지 않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바른 성경해석으로 칼빈의 5대 교리나 알미니안주의 5대 강령을 넘어서야 한다.
칼빈주의 5대 교리나 알미니안주의 5대 강령이나 모두 논리적이다. 지성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부여하신 능력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둘 다 빈틈없는 훌륭한 논리적 작품이다. 그렇지만 인간적인 논리를 따라서 성경의 가르침을 구성하는 것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논리 이전에 성경의 가르침이 중요하다. 칼빈주의자들과 알미니안주의자들은 함께 하나님을 두려워하여야 한다. -본문 중에서
제명감인 바울 사도?!
바울 사도는 의인이 한 명도 없다고 진술하였다. 전적 부패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분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구원을 얻은 이들에게 주어진 그분의 선택이 있었음을 진술했다. 하나님께서 조건 없이 사랑하셔서 주어진 선택이다. 무조건적인 선택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택자를 넘어 온 세상을 위한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보편적 속죄이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당사자의 행위와 상관없이 부르심을 받았다고 진술하였다. 불가항력적 은혜이다. 그 은혜를 입은 이들에게 영원한 구원을 얻도록 하는 역사를 지속하시는데, 당사자의 반응에 따라 영생과 썩어진 것을 거두는 경우로 나뉜다고 진술하였다. 조건적인 견인이다.
그가 현재의 교회에서 사역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장로교에 의하면 그는 제명감이다. 사도적 복음 위에 세워진 교회인데, 사도적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 바울을 제명하는 격이다. 가지가 둥지에게 잘못되었다며 큰소리치는 격이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본문 중에서
저자는 교회를 향해 성경적 바른 분별로 구원론의 혼돈에서 벗어나고, 잘못된 전통에서 벗어나자고 호소한다. 그는 여러 교파와 교단으로 나뉜 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더럽히는 것이므로 교회 일치를 위해 말씀 앞에서 겸손함과 서로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하자고 한다. 교리적 일치를 통한 교회 일치는 불가능하거나 가능성이 희박한 이상이 아니며 하나님의 뜻이고 이 땅의 교회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라고 믿는다. 그는 구원론을 성경적으로 재정립함으로 장로교와 감리교의 교리적 차이가 해소되기를 소망하며, 그 과정에서 신자다운 신자가 그리운 시대에 신자로서 새로운 삶의 태도가 확립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길이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는 영광스런 교회 건설의 기초가 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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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것과 같은 상태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역사에서 종교 개혁(교회 개혁)을 통하여 교회에게 보여주신 원리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개혁된 교회는 개혁되어져야 합니다. 과거에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합니다. 옳다고 인정되는 것이라도 다시 한번 성경의 원리로 재점검해야 합니다. 옳다고 인정된 것이라도 옳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 개혁은 그 당대에 옳다고 인정된 것이 옳지 않음으로 인해 이루어진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쉬지 않고 지속적인 재점검을 통하여 진리 위에 더욱 든든히 세워가야 합니다. "개혁된 교회는 개혁되어져야 합니다."
- 저자 서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