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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의 파멸에 저항하는 영상 시인 타르콥스키와
희망의 재건을 모색하는 인문학자 김용규의 만남!“타르콥스키의 작품은 나를 육체적인 삶과 완전히 분리시키며,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영적이다.”
_아바스 키아로스타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감독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는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한 명이었다.”
_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데칼로그〉 감독
단 일곱 편의 영화로 영화사에 깊은 발자국을 남긴 거장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위기의 시대에 인문학자 김용규가 그를 ‘파수꾼’으로 소환한다. 저자는 인문학 및 기독교 신학에 대한 넓고 깊은 배경지식을 토대로 타르콥스키가 남긴 일곱 편의 영화를 톺아보며, 예언자적 시각으로 우리의 시대에 닥친 위기를 선각하고 이를 타개할 방법을 자신의 예술로써 그려 낸 타르콥스키에게서 인간과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진리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출판사 리뷰]
전 지구적 위기의 시대,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인간 소외와 생명 경시 등을 불러오는 후기 자본주의의 폐해, 일상이 되어 버린 코로나19 팬데믹과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또 다른 팬데믹, 인류의 생존마저 위협하며 다가오는 기후 변화, 세계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핵무기의 현실화라는 두려운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지금은 전 지구적이고 묵시록적인 위기의 시대다. 이 위기의 시대에 인문학자 김용규가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를 ‘파수꾼’으로 명명하여 우리 앞에 소환한다. 잉마르 베리만이 “역사상 가장 중요한 영화감독”이라 일컬었고, 장 폴 사르트르가 그의 작품에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는 극찬을 남겼던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단 일곱 편의 영화로 영화사에 깊은 발자국을 남긴 그는 인류가 파멸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고, 그러한 세계 속에서 “인류를 위한 구원의 마지막 가능성”을 실현할 작품을 만드는 데 자신의 온 생애를 바쳤다.
절망함으로써 희망을 구축하고 부정을 관통하여 긍정에 이르는
새로운 ‘위기의 신학’저자가 타르콥스키에게서 발견한 ‘구원’의 희망, 그것은 곧 절망함으로써 희망을 구축하고, 부정을 관통하여 긍정에 이르게 되는 새로운 ‘위기의 신학’이다. 모든 소망이 끊어지고 온갖 희망이 사라진 인간의 궁지에서 ‘무한한 자기 체념’을 통해 진정한 구원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키르케고르처럼, 인간의 이성과 실천에 대한 모든 희망과 믿음이 사라진 후에야 마침내 주어지는 하나님으로부터의 구원을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통해 재발견한 바르트와 투르나이젠처럼, 저자는 절망적인 시대에서 자신의 영화를 통해 희망의 가능성을 끈질기게 추적한 타르콥스키를 시대의 파수꾼으로 호명함으로써 희망의 재건을 모색한다.
파수꾼이란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자’로, 우리가 만들어 온 잘못된 세계를 고뇌하고 애통하며 울부짖는 자, 기존의 현실을 부수고 새로운 가능성을 환기시키는 자를 의미한다. 타르콥스키는 예언자적 시각으로 시대에 닥친 위기를 선각하고 이를 타개할 방법을 자신의 예술로써 그려 냈기에, 그가 남긴 일곱 편의 작품을 철학적·신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고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할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언자의 시선으로 세계의 본질을 드러내는 타르콥스키,
그가 우리 시대에 던지는 일곱 가지 근원적 질문타르콥스키는 ‘종교적인 영화’를 만들지 않았지만, 전 생애를 걸어 만든 그의 영화는 그가 온 힘을 다해 씨름해 온 신앙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타르콥스키의 영화에는 그리스도인이 삶을 통해 던지고 붙들어야 할 근원적 질문들이 담겨 있다. 저자는 인문학과 기독교 신학이라는 배경 위에서 타르콥스키의 영화에 담긴 이 메시지들을 차근차근 탐구하는데, 특히 타르콥스키의 종교적 배경이지만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동방 정교회에 대한 해설이 타르콥스키의 작품에 대해 한층 심화된 이해를 제공해 준다.
저자는 우선 ‘본향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반의 어린 시절〉을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와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의 유토피아주의를 통해 해석하며, 타르콥스키의 이후 작품들을 해석해 나갈 기틀을 마련한다.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니콜라이 하르트만의 ‘신념’과 쇠렌 키르케고르의 ‘믿음’ 개념을 끌어와, 인간에게 믿음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한다. ‘양심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솔라리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과 마르틴 하이데거의 ‘양심’의 관계를 규명하여 해석하고, 인간이 자신의 양심과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는지 탐색한다.
‘욕망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자전적 작품 〈거울〉은 게오르크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과 자크 라캉의 ‘거울 이미지’의 투쟁을 통해 해석하며, 욕망은 그것을 초극함으로써 비로소 얻을 수 있다는 역설을 설파한다. ‘도덕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잠입자〉는 동방 정교회에 영향을 끼친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와 이마누엘 칸트의 ‘도덕적 신앙’을 연계하여, 도덕의 숭고성과 허무성을 조망한다. ‘구원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노스탤지어〉는 플라톤의 ‘에로스’와 마르셀 프루스트의 ‘회상’을 통해 해석하고, ‘희생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마지막 작품 〈희생〉은 ‘구원’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유와 에리히 프롬의 ‘삶의 양식’에 대한 사고를 통해 해석한다.
타르콥스키적 인물들이 증거하는 희망의 가능성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무엇이라고 응답할 것인가?저자는 타르콥스키가 만든 일곱 편의 작품들이 각각 다른 배경에서 다른 주인공들에 의해 전개되지만, 모두 동일한 관점과 기법을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마치 일곱 편으로 된 하나의 옴니버스 영화와도 같은 통일성이 있음을 짚어 낸다. 특히 타르콥스키 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본질적으로 같기에 이들을 한데 묶어 ‘타르콥스키적 인물’이라 부를 수 있는데, 그들은 외적으로는 연약해 보이지만 타인에 대한 책임감을 지니며 내적으로 강인한 이들로서 각기 자신들이 처한 현실세계의 어둠을 극복하려는 위대한 모습을 보여 준다.
타르콥스키가 이들을 통해 나타내는 인류를 위한 희망의 가능성은 곧 그의 마지막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자발적인 자기희생, 곧 “스스로를 자신이 속한 시대와 사회를 위해 희생시킬 자유”다. 〈이반의 어린 시절〉의 이반,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루블료프, 〈잠입자〉의 잠입자, 특히 〈노스탤지아〉의 고르챠코프와 도메니코, 〈희생〉의 알렉산더가 바로 이러한 ‘자발적 자기희생자’다. 현실세계의 절망을 극복하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 곧 “희망, 믿음, 사랑, 아름다움, 기도 또는 인간이 꿈꾸고 바라는 것들을 강화”시키는 일들을 끈질기게 해 나가는 것, 그것은 오늘날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도 견지해야 할 인간으로서의 이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이 세계의 절망과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타르콥스키가 말하는 인간의 이상, 곧 유토피아에 다다를 수 있을까? 타르콥스키는 첫 장편영화 〈이반의 어린 시절〉에서 이 ‘위대한 질문’을 던진 후, 그의 마지막 역작 〈희생〉에서 ‘죽은 나무에 물 주기’라는 우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답한다.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믿으며 죽은 나무에 물을 주듯 희망이 사라진 곳에서 희망을 키우는 것. 저자는 이것이 곧 성육신과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진정한 책무이자 소명이라고 역설하는데, 이 대답은 다시 우리를 향한 질문이 된다. 타르콥스키의 영화가 남긴 이 질문 앞에서, 이제 우리는 무엇이라고 응답할 것인가?
“파멸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사랑과 아름다움이다.
오직 사랑만이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_안드레이 타르콥스키
■ 이 책의 특징-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영화 전체와 그의 삶을 함께 조망하며 각 영화를 해설한다.
-영화만 보아서는 놓치기 쉬운, 러시아 정교회(동방 정교회)라는 타르콥스키의 종교적 배경을 세밀하게 파고든다.
-서양 철학과 기독교 신학에 정통한 인문학자의 시선으로 예술과 사상과 종교의 경계를 넘나든다.
-학문적이고 다층적인 내용을 유려한 필치로 풀어내어 이해를 돕는다.
-각 장의 ‘주요 인물 해설’을 통해 내용과 관련된 중요한 사상가 및 예술가 등에 대한 배경지식도 얻을 수 있다.
■ 대상 독자-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영화를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
-기독교 신앙의 주제가 예술을 통해 어떻게 구현되는지 알고자 하는 이들
-오늘날 기독교 신앙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하며 희망을 찾고자 하는 이들
-인문학적 시각으로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고, 이를 신학에 적용하고자 하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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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저자 김용규의 그리스도인을 향한 뜨겁고 담대한 제언!호모 데우스의 시대,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우리는 니체가 예고한 신의 죽음과 그 이후의 풍경들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한 신의 죽음은 인간의 죽음으로, 신본주의 가치의 몰락은 동시에 인본주의 가치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것을 현실로 체감하는 가운데, 이제 전 지구적 불안과 공포가 일상을 휘몰아친다. 호모 데우스의 시대 인간의 자리는 어디인지를 묻는 실존의 아우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근대성과 탈근대성의 크고 작은 폭력 속에서 ‘각자도생’의 길을 걷는 우리는 어디에서 길을 찾을 것인가? 이러한 절박한 물음 앞에서 이 책은 기독교 신학과 인문학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살피면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한편, 저자의 깊은 숙고와 통찰에 근거한 예언적 외침을 전한다.
[출판사 리뷰]우리 시대의 절망 가운데서 희망의 사유를 탐색하는 철학자 김용규의 생생한 현장 강연!이 책은 강연자와 청중이 시선을 맞춰 가며 함께 호흡하는 생생한 강연 현장에서 나온 책이다. 2018년 『신』(IVP)의 출간을 계기로 여러 차례 강연회가 열렸고, 그 강연회에서 초점을 맞춘 신학과 인문학의 관계를 다룬 강연 원고가 이 책의 초고가 되었다. 그 때문에, 이 책에는 저자의 다른 책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지점들이 있다. 즉 독자들은 저자의 차분한 논지 너머에 있는 굳건한 파토스가 담긴 뜨거운 호소를 만날 수 있다.
기독교 신학의 뿌리에 놓인 신앙과 이성, 그 2천 년의 역사에서 배우다이 책에서 저자는 먼저, 기독교 신학이 지난 2천 년 동안 성서의 계시와 시대의 인문학, 신앙과 이성,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즉 서로 이질적이고 때로 상반되는 둘이 만나 빚어낸 거대하고 아름다운 정신적 구조물임을 밝힌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신학 안에는 서로 대립하는 요소들의 통합과 융합을 이뤄 낼 수 있는 논리, 지식, 지혜, 경험이 쌓여 있음을 각 시대별로 추적한다. 그리고 바로 통합과 융합의 특석을 지닌 기독교 신학이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분열과 투쟁과 파국의 시대를 구원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차례로 이야기한다.
기독교 신학은 인문학의 한 분야이지만 인문학의 희망을 제공하는 제일 학문이다! 저자는 기독교 신학에 대한 오늘날의 여러 인식과 오해 가운데서도 과감히 기독교 신학이야말로 제일 학문(scientia prima)임을 단언한다. 즉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이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럼에도 세속적 세상의 구원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기독교 신학은 제일 학문이다. 다른 어떤 학문보다 드높은 이상을 추구하고, 다른 어떤 학문보다 폭넓은 가치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또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다른 모든 학문이 그 바탕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기독교 신학은 제일 학문이고, 이에 대해 그리스도인은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가져야 한다.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것을 오늘날 세상 한가운데서 적용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중요한 책무를 지니고 있다.
시대의 위기 앞에서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프리드리히 니체의 진단대로 오늘날 우리가 대면하는 신 죽음의 시대적 정황 속에서, 저자는 유발 하라리, 울리히 벡, 지그문트 바우만, 테리 이글턴 등 우리 시대 석학들의 성찰을 원용하면서 오늘날의 절망과 파멸의 소문을 분석하고 그 대안을 모색한다. 앞서 추적한 기독교 신학의 역사적 특성에 근거하여, 단순히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고 묻는 대신에, 작은 이야기들도 하되 큰 이야기들 함께 하는 방식으로 실마리를 풀어 가자고 제시한다. ‘온전한 담론’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시대의 절망과 아픔을 함께 극복하자고 호소한다. 결국 ‘신본주의 가치들의 복원’을 주창하는 저자는 어쩌면 이미 들어본 것도 같은 그 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오해와 편견을 넘어선 과제를 독자 앞에 펼쳐 놓는다.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기독교라는 위대한 전통의 일부가 되는 길임을 설파한다.
[독자 대상]- 기독교 신앙이 일반 인문학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한 그리스도인
- 역사 속에서 신학이 당대의 사상과 어떻게 상호 작용하며 발전되었는지 알기 원하는 신학생
- 오늘날 현실 속에서 기독교 신앙의 의미를 발견하고, 사회와 공동체를 섬기기 원하는 청년
- 강연 현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저자의 직설적이고 뜨거운 호소를 경험하기 원하는 김용규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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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서양문명사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
인류의 ‘가장 오래된 미래’를 탐험하다!“서양문명의 뿌리에서부터 근현대까지 통틀어 톺아보는 이 거대한 서사의 여정에서
결국 우리는 인간 자신의 참된 자화상에 도달한다.”
_이어령(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전 문화부 장관)
“신이라는 코드로 서양문명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대담한 지적 도전!” _한겨레
“마치 원근법으로 잘 그린 지적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신이라는 소실점을 중심으로…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신학이 어우러진 울창한 숲을 묘사해 내는 솜씨와 정성이 예사롭지 않다.” _경향신문
서양문명 근간에 새겨진 신의 흔적을 따라가며
표류하는 인류의 오늘과 내일을 탐색하다!서양문명의 심층에 자리한 기독교의 신에 대한 방대하고도 치밀한 지적 탐사를 통해 신학과 철학과 과학을 조화시킬 뿐 아니라, 문화·역사·미술·음악을 넘나들며 인문학적으로 성서와 기독교를 이해하는 전범을 제시하고, 기독교적 사유의 본질을 규명하는 한 편의 대서사시를 펼쳐 나간다. 신의 정체와 서양문명의 핵심을 밝히는 이 기획은 현실과 역사에 대한 피상적 이해에서 나온 우리 시대의 문제들을 풀어 나갈 실천적 지혜, 곧 인간의 참된 본성을 숙고하고 미래를 모색할 든든한 디딤돌을 제공할 것이다.
■ 출판사 리뷰2,000년 서양문명사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
인류의 ‘가장 오래된 미래’를 탐험하다!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깊이 있는 성찰을 바탕으로, 무엇보다 대중과의 소통을 향한 고민과 노력으로 다양한 대중 철학서와 인문 교양서를 집필해 온 철학자 김용규가 이번에는 서양문명의 심층을 ‘신’이라는 코드로 풀어낸다. 서양문명을 빚어내고 2,000여 년간 그 근간을 이루어 온 것이 다름 아닌 기독교의 신, 하나님이므로, 저자는 그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서양문명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길이자, 우리가 삶에서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단언한다.
이 책은 지난 2010년 출간되어 “한국어로 쓴 인문학의 한 성취”라는 찬사와 주목을 받았던 작품을 “다시 쓴다는 마음으로 고치고 확장한 개정증보판이다. 곳곳에 설명과 화보를 이전보다 더 풍성하게 넣어서 보완했고, 욥의 이야기를 매개로 살펴본 하나님의 섭리와 그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관한 4부 8장은 새로 써넣었다.” 그럼으로써 서양문명의 근간인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좀더 다층적·심층적인 논의가 가능해졌다.
‘호모 데우스’의 시대, 왜 다시 신을 이야기해야 하는가?인간이 신이 되고자 하는 ‘호모 데우스’의 시대다. 인류의 ‘진화’, 과학·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어쩌면 신이 더 이상 불필요해 보이기까지 하는 지금, 우리는 왜 다시 신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신은 전근대적이고 시대에 뒤처진, 특정 종교인만을 위한 주제가 아닌가? 그러나 저자는 신을 꿈꾸는 탈근대의 인류가 진정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고 있는지 묻는다. 저자가 “세계화의 거센 물결을 타고…서양문명이 우리에게 떠넘긴 심각한 문제들”이라고 진단하는 “가치의 몰락, 의미의 상실, 물질주의, 냉소주의, 허무주의, 테러와 전쟁으로 치닫는 문명의 충돌” 등은 부인할 수 없게 인간의 삶 구석구석을 잠식하고 있다. 또한 지그문트 바우만이 “세계화가 낳은 인류의 단일화란 근본적으로 달아날 곳이 아무 데도 없다는 뜻”이라고 갈파했듯, 우리는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자연적·사회적 재난들이 삽시에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는 시대를 산다.
과거는 오늘의 인류가 발 딛고 서 있는 지반이다.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피상적 문제 해결을 넘어 문제에 맞닥뜨린 우리 자신이 진정 누구인가에 대해 질문해 보아야 한다. 개인적·일상적·세속적·상대적인 것들(‘작은 이야기’)에 몰두하느라 놓쳐 버린 과거의 ‘큰 이야기’, 곧 신과 영웅, 자기희생과 헌신, 이성과 주체, 사회적 진보와 혁명 등을 함께 되새겨야 한다. “작은 이야기 없는 큰 이야기는 공허하며 큰 이야기 없는 작은 이야기는 맹목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바로 이 이야기를 서양문명의 “급수펌프이자 정수원”인 기독교의 신으로부터 시작한다.
신을 중심으로 서양의 신학·철학·문학·예술·과학을 아우르는 한 편의 대서사시“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관하여(1부), 창조주와 피조물의 속성에 관하여(2부), 창조의 의미와 목적에 관하여(3부), 섭리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인격성과 그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관하여(4부), 하나님의 유일성과 인간의 연대성에 관하여(5부) 이야기할 것이다. 도중에 하나님의 이름이 대변하는 소중한 가치들에 대해서, 열정과 신앙으로 그 가치들을 지켜 온 사람들에 대해서, 개인의 삶과 세계의 역사가 가진 의미에 대해서, 무신론을 주장하는 과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에 대해서, 서로 상반·대립하는 지식들의 종합에 대해서, 충돌하는 문명들의 화해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사이사이에는 우리가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과 연관된 시, 소설, 회화, 조각, 음악, 역사, 과학, 철학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들어가는 글’ 중에서).
저자는 신에 대한 탐구를 ‘하나님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은 존재다’, ‘하나님은 창조주다’, ‘하나님은 인격적이다’, ‘하나님은 유일자다’라는 네 개의 명제로 풀어 나간다. 철학, 문학, 예술, 과학까지 폭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동안 하나님의 존재증명, 창조의 목적과 방법 문제,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대립과 균형,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하나님의 인격성과 하나님의 부재, 인간의 정의와 하나님의 공의, 질병이나 자연 재해 같은 자연 악에 대한 해석, 하나님의 유일성과 삼위일체,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의 조화, 기독교의 배타성 등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신학의 주요 주제와 논점이 제시되고 규명된다. 이를 통해 기독교의 신, 하나님이 서양문명에 어떻게, 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있는지 파악하고, 성서와 기독교 신학을 집단 내부의 언어가 아니라 인문학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전범을 제시하며, 성서해석학과 기독교 신학의 근간이자 중추인 ‘기독교적 사유 방식’을 보여 준다.
신에 대한 탐구를 통해 인간 자신의 참된 자화상에 도달하다이 모든 탐구 과정에서 저자는 시종 ‘이중적 논법’과 ‘양립주의’라는 사유 방법을 채택한다. 기독교와 이에 기초한 서양문명이 서로 상반되는 헬레니즘(그리스 철학)과 헤브라이즘(히브리 종교)의 위대한 종합으로 탄생했듯이, 이중적 논법과 양립주의는 “우리의 이성이 가진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생각의 지평을 확장하고 내용을 심화하여 우리의 정신을 새로운 사유의 세계로 안내”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신앙을 전제하지 않는 것은 오만이며,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태만”이라는 안셀무스적 태도로, 이러한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저자는 학문과 종교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 또한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선택하고 그것을 향해 스스로 변화하게 하는 것’을 본분으로 삼은 인문학자답게, 저자는 이러한 논의를 학문적 차원에서 멈추지 않고 ‘이것이 우리 인간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끈질기게 묻는다. 결국 저자를 따라 신에 대한 담론을 파헤치다 보면 종착점은 다시 인간이다. “서양문명의 뿌리에서부터 근현대까지 통틀어 톺아보는 이 거대한 서사의 여정에서 결국 우리는 인간 자신의 참된 자화상에 도달한다”라는 이어령 선생의 추천사처럼 말이다.
이 책은 독일 유학 시절부터 시작된 저자의 오랜 공부와 고민의 결실이자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에 해답의 실마리를 제시하고자 하는 애정 어린 노력인 동시에, 배타성과 폭력성 등 ‘반기독교적 유산’을 따끔하게 지적하며 기독교의 회복을 촉구하는 예언자적 외침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고상한 전문용어로 선포하는 일방적 글쓰기가 아닌, 질문과 반론을 허용하는 친근하고 생동하는 일상용어로 쓰였다는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신』에 이어 순차적으로 출간될 『그리스도』(가제)와 『성령』(가제)에서도 인문학과 신학의 종합이 빚어내는 환상의 하모니는 물론이고, 독자들을 풍성하게 차려진 환담(디아트리베)의 자리로 초청하는 저자의 장기를 유감없이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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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은 궁극적 자유, 곧 존재의 자유를 부여하는 선언이다!★★★성염(전 주駐교황청 대사), 김기석(청파교회), 이현우(러시아문학 연구자) 추천!두 돌판에 새겨진 3,300년 전의 계명이 현대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서양철학의 존재론 전통 위에서, 십계명에 대한 현대적 해석을 담은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 〈데칼로그〉를 매개 삼아 십계명을 새롭게 해석해낸 역작. 2002년 출간되어 국내 지성계의 감탄과 환호를 불러온 《데칼로그》의 전면 개정판!
“십계명은 인간이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지요. 그것은 애굽에서 종으로 살던 자신의 백성들을 해방시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자유롭게 살게 한 신이 이번에는 보다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자유, 곧 인간의 죄성으로부터 해방되는 영혼의 자유를 선사하려고 내린 ‘자유의 선언’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십계명은 우리에게 죄로부터 해방된 삶이 가진 자유와 기쁨을 부여하려는 신의 일관된 의지의 표출로 보아야 합니다.” _서문에서
[출판사 리뷰]두 돌판에 새겨진 3,300년 전의 계명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탐욕에 매이고 존재의 불안에 잠식된 현대인을 위한 특별한 십계명 강의!‘인문학의 연금술사’, ‘한국의 움베르트 에코’로 널리 알려진 김용규 선생이 모세의 십계명을 들고 독자를 다시 찾아왔다. 십계명이라니, 박물관에 진열된 4천 년 묵은 점토판에 기록된 수메르인의 법처럼 “한낱 고대사회가 남긴 유물같이 취급되고 있고, 심지어는 서서히 잊혀가고” 있는 십계명을 이 시대에 불러내는 건 좀 뜬금없지 않은가? 하지만 십계명을 고루하고 촌스럽게 여기는 이 같은 태도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러한 것처럼 ”신구약성서를 통틀어 신이 직접 돌판에 새겨 내린 유일한 성문율이 십계명이라는 성서의 기록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실로 놀라운 일이다.” 십계명은 그것이 지닌 내용의 심오함과 소중함에 비해 너무나 쉽고 평이하게 씌어 있는 탓에 오히려 잘못 이해되고 있어 이에 대한 바르고 진중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가장 흔한 오해는 십계명을 인간을 규제하고 억압하고자 하는 장치라고 여기는 것이다. 특히 각 계명들이 ‘~하지 말라’, ‘~하라’는 형식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에 십계명은 인간의 삶에 간섭하고, 자연스런 본성을 억누르도록 하는 거북스런 장치쯤으로 여겨진다. 그다음으로 흔한 오해는 십계명을 율법의 시원이나 윤리 규정의 모음집 정도로 여기는 것인데, 시대가 변했으므로 십계명은 수정 또는 폐기해야 한다는 시각이 여기서 나온다. 하지만 저자의 입장에 따르면 놀랍게도 십계명은 자유의 선언이다.
이는 많은 현대 신학자들이 지지하는 ‘자유’를 강조하는 해석, 다시 말해 오늘날 십계명 해석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구약학적·역사신학적 해석을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다. 독일 베텔 신학교의 구약학 교수인 프랑크 크뤼제만이 십계명은 억압이 아닌 자유와 해방을 위해 주어진 것이라면서 십계명은 단지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의 완전시민들을 상대로 그들이 신의 도움으로 획득한 ‘시민적 자유’를 보존하게 하기 위해서 선포되었다고 주장한 것이 그러한 해석의 대표적인 예다(41쪽).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십계명이 그저 시민적 자유를 보존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을 ‘존재’로 계시한 신이, 인간에게 바로 존재의 자유를 선사하기 위해 부여했다고 강조한다. 즉, 인간을 탐욕이라는 족쇄로 옭아매어 결국에는 파멸로 이끄는 ‘죄의 마성’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유롭게 살게 해주는 열 개의 열쇠가 곧 십계명이라는 것이다.
예수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선포했던 바로 그 자유에서 오는 기쁨과 안식을 누리게 하려는 신의 일관된 의지가 십계명에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이 책이 펼쳐 보이는 십계명에 대한 전혀 새로운 이해 방식이며, 진정으로 ‘기독교적인’ 방식인데, 이 점이 책 전체를 관통하면서 설득력 있게 해명된다.
존재론적 해석, 십계명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이렇게 십계명을 풀이하는 방식을 저자는 ‘십계명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최초의 존재철학자 파르메니데스에서 플라톤, 신플라톤주의자 플로티노스를 거쳐, 그리스 철학을 통해 기독교 신학을 정립한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는 존재론 전통에 의해 십계명을 해석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기독교적 입장에서 보자면 교부신학에 의해, 또는 정통신학에 의해 십계명을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저자는 필요에 따라서 칼뱅의 《기독교 강요》와 십계명에 대한 신명기 연속 설교 등 종교개혁자들의 견해나 현대 신학자, 철학자들의 십계명에 대한 이해도 그때그때 참조한다. 그 결과 이 책은 십계명을 해설하는 데서 “다분히 철학적이면서도 뚜렷이 기독교적”이며 “여실히 존재론적이면서도 여전히 신학적”인 내용을 담게 되었다.
신을 하나의 존재물이 아닌 ‘존재 그 자체’로 파악하고서 십계명에 대한 사유를 전개해가는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자유, 우상숭배, 자만, 죄/죄인과 악/악인, 구원, 칭의와 성화, 소외, 사랑, 탐욕과 자족, 자기부정 등 기독교의 핵심교의와 현대인이 처한 긴박한 실존적 상황에 두루 걸쳐 있다. ‘인문학의 연금술사’라는 호칭에 걸맞게 저자는 이 주제들 하나하나에 대해 정교한 철학적·신학적 사유를 선보이며 딱딱하고 건조한 개념들을 생동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카뮈의 《이방인》 속 주인공 뫼르소와 영화 〈데칼로그 5〉 편의 주인공 야첵의 소외 경험과 그들의 황량한 내면을 비교하면서,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것이 곧 그를 존재론적으로 살해하는 것이라며 제6계명(살인하지 말라)의 의미를 확장해 해석하고, 나아가 예수의 교훈을 따라 서로 사랑하라는 것으로 그 적극적 의미를 취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제4계명(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의 안식일은 흔히 생각하듯 ‘일하지 않는 날’이라기보다는 존재물의 ’무엇 됨‘에 대한 관심과 염려에서 해방되어 존재 자체의 자유와 안식 누리는 날로 그 본래의 의미가 드러난다. 그리고 제8계명(도둑질하지 말라)은 인간을 소유 가능한 존재물로 취급하고 그의 ‘무엇 됨’을 이용하려 말고 그의 ‘있음’을 향유하고 기뻐하라는 권고로 거듭난다.
이렇게 이 책은 십계명이 대체 지금 우리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의구심을 갖는 이들에게, 십계명의 본뜻을 깊이 헤아려 전달함으로써, 자유로운 듯하지만 오히려 끝없는 욕망의 늪에서 허덕이는 현대인들에게 참 자유와 구원의 길, 가치 있는 삶의 길을 보여준다. 머리글에서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인간의 삶을 파국으로 이끄는 것이 대부분 자기 자신”이라면, 이 책이 안내하는 십계명의 본뜻을 숙고하는 것은 적어도 “살아가는 데 튼실한 길라잡이 내지 보험”을 마련하는 일일 수 있다.
영화 〈데칼로그〉를 읽는 좋은 방법책의 제목인 ‘데카로그(dekalog)’는 그리스어로 ‘열(10)’을 뜻하는 ‘데카(deka)’와 ‘말(言)’을 뜻하는 ‘로고이(logoi)’를 결합한 말로, ‘열 가지 말’, 곧 ‘십계명’을 뜻한다. 폴란드의 거장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1941-1996)의 십계명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 담긴 10부작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타임〉지에서는 〈데칼로그〉를 1980년대 최고의 영화로 꼽기도 했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이 영화야말로 자신이 ‘걸작(masterpiece)'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영화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 십계명에 대한 깊은 통찰과 영화감독으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 각 계명에 담긴 심오한 주제들을 현대인의 삶을 통해 영상화하는 데에 빛나는 성취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책은 바로 이 영화 〈데칼로그〉를 이야기 전개의 매개자로 소환해, 각 장마다 영화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이 영화가 던지는 물음을 철학적·신학적으로 해명하면서 해당 계명의 의미를 설명한다.
“이제 곧 알게 되겠지만, 그의 작품은 각 계명들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일상적 삶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탁월한 모형(model)이다. 나는 당신이 이 작품들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들이 허구가 아니라 당신 자신 또는 이웃들의 이야기라고 여기고 읽어주기를 바란다. 그럼으로써 당신은 십계명이 우리의 일상적 삶 안에서 일어나는 숱한 문제들에 대해 어떤 해답을 던져줄 수 있는지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10쪽)
물론 영화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영화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사실 영화 〈데칼로그〉 자체는 각 편이 50분 남짓의 짤막한 분량이긴 하지만 도대체 감독이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해당 십계명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좀처럼 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저자의 친절한 해설을 통해 우리는 십계명뿐 아니라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도록 도와줄 신뢰할 만한 길라잡이를 곁에 두게 되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영화 〈데칼로그〉의 해설서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많았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서거 20주기를 앞둔 지금, 감독을 추억하는 영화팬이라면 이 책의 안내를 따라 영화 〈데칼로그〉를 감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진리에 눈뜨고 살아갈 힘을 주는 책이 책은 2002년에 같은 이름으로 출간되어 국내 지성계의 경탄과 주목을 모은 바 있다. 십계명이라는 텍스트, 이에 대한 교부신학적 해석과 거장 영화감독의 현대적 해석, 그리고 이들을 제대로 소화한 저자 자신의 해석이 조화롭게 엮였고, “《데칼로그》를 읽으면서 새로운 진리에 눈을 뜨고 살아갈 힘을 얻었다. 진리는 사람을 자유케 한다”와 같은 온라인 서점의 독자서평에서 보듯, 수많은 이들에게 십계명이 지닌 자유하게 하는 힘을 일깨웠던 것이다. 특히 신학과 철학에 정통하고 문학과 예술을 치밀하게 해석해내는 놀라운 역량이 발휘된 이 책은 우리 독서계에 비로소 본격적인 철학 저술가가 출현했음을 고지했다. 저자는 이후 잇달아 굵직한 책들, 베스트셀러 《철학 카페에서 문학 읽기》(2006),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2010),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2013) 같은 저작을 펴내는데, 이 책들은 《데칼로그》의 아이디어 일부를 발전시켜 책의 핵심적인 내용을 구성한 예들이며, 그런 의미에서 《데칼로그》는 김용규의 본격적인 철학·인문 저술의 모태가 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전면개정판인 이 책에서는 저자를 앞에 두고 직접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도록 어투를 살갑게 바꾸었고, 십계명을 존재론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전제라 할 수 있는 신의 속성에 대한 설명을 앞부분에 보강했다. 사례와 수치는 최신의 상황에 맞추어 내용을 보완했다. 90여 컷의 도판을 수록해서 이해를 도왔고, 책 뒤의 〈주요 인물 및 전문용어 해설〉은 항목을 교체하거나 추가했다.
인문 저술가로서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역작서양 철학의 중요한 인물과 개념들, 예를 들어 고중세 철학자들의 신에 대한 이해(플라톤의 선-자체, 데미우르고스,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동자, 플로티노스의 ‘일자’ 등), 칸트의 인식론,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의 3단계설, 비트겐슈타인의 진리에 대한 견해 등에 관한 명쾌한 설명을 대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아울러 독자는 초기 기독교의 형성(즉 교리의 정립, 성서 정경의 확정, 사도적 전승 및 교회 제도의 확립)에 대한 설명을 통해 기독교라는 종교의 시원과 본질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며, 그리스도론, 삼위일체론, 구원론에 관한 핵심적인 사항들을 이해하고, 칼뱅과 루터와 같은 종교개혁자들의 견해는 물론 기독교 신비주의 전통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사상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철학 카페에서 문학 읽기》와 같은 저작을 낸 이답게 저자는 문학과 예술 작품을 예로 들어가면서 어려운 개념을 쉽고도 우아하게 설명하는데, 관심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좋은 철학·신학 입문서의 역할도 겸하여 할 수 있다. 특히 140쪽에 이르는 77개 항목의 〈주요 인물 및 전문용어 해설〉은 그 자체로 한 권의 책이라고 할 만한 것으로, 죽 읽어도 좋고, 필요할 때마다 참조하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