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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기획

믿음의 거장 시리즈 세트(전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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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송삼용,김학중  |  출판사 : 넥서스C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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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세트는 청소년 및 초등부 고학년에게도 좋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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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행일치의 목회 리더십,
찰스 스펄전의 삶과 사상을 읽는다!
그는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계획한 일은 어떤 반대와 난관에 부딪혀도 결코 양보하는 법이 없었다.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한편, 양들을 돌보는 일에 있어서는 주님과 같은 온유함과 자상함을 잃지 않았다. 그것은 스펄전의 가장 큰 강점이었다. 만약 그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았다면 생애 동안 그렇게 많은 사역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본문 중에서

영혼을 사로잡은 설교자 찰스 스펄전,
삶과 사상이 일치했던 그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본받으라!
천부적 재능을 지닌 설교의 대가 찰스 스펄전의 삶과 사상을 집중 조명한 《찰스 스펄전》이 넥서스CROSS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설교, 목회, 신학, 기도, 선교, 영성 각 분야에서 하나님께 쓰임받은 신앙 위인들의 삶을 차례로 조명해보는 《믿음의 거장 시리즈》 중 하나로, 국내ㆍ외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스펄전의 생애와 사상, 업적과 영향력을 고르게 다루고 있다. 일반적 전기 스타일에서 벗어나 생애에 드러난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드라마틱하면서도 구속사적인 역사관을 바탕에 깔고 있다. 깊이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게 구성되어 있어, 평신도와 신학생,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믿음의 거장들의 생애를 통해 독자들은 신앙적 교훈을 얻는 것은 물론, 신앙의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찰스 스펄전은 100년 전 조지 휘트필드가 지폈던 부흥의 불길이 사그라질 무렵, 다시 한 번 영국 교회를 복음으로 불태운 강단의 거성이었다. 동시에 19살의 나이에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에 부임하여 38년간 목회하면서 세기적인 부흥을 주도한 탁월한 목회자였다. 칼뱅주의 신학을 전수한 신학자였으며, 목회자 대학을 설립하여 후진을 양성해온 교육자이기도 했다. 더욱이 그는 목회자요, 설교자이기 이전에 모든 사람에게 귀감이 될 만한 영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청교도 집안에서 자란 영향으로 청교도 서적을 두루 섭렵하며 평생 청교도 신앙으로 살았고, 청교도 정신으로 설교하며 목양했다. 스펄전은 어린 시절부터 흠모해왔던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100번이나 읽을 정도로 청교도 사상에 심취했다.
워터비치에서 놀라운 부흥이 일어난 것이 계기가 되어 2년 후에는 런던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에서 설교 요청을 받았다.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는 당시 비국교도 교회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통 있는 교회였다. 그 후 몇 번의 설교를 하고 나서 스펄전은 1854년 4월 19일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스펄전은 부임하자마자 기도 목회로 강단을 쇄신했고, 어디에서도 들어볼 수 없는 탁월한 설교로 온 교회를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칼뱅주의 강좌>를 열어 교육에 힘썼으며, 고아원 사역, 목회자 대학 설립, 선교, 교회 개척 등의 사역을 왕성하게 이루어갔다.

스펄전은 보통 천부적 재능을 지닌 설교의 대가, 즉 “설교의 황태자”로 알려져 있다. 한국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책들도 대부분 그의 설교를 정리한 것들이다. 물론 그의 설교 능력과 기술이 뛰어났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스펄전의 사역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목회 및 신학 사상과 그의 삶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말로서만 교인들을 사로잡았던 것이 아니라, 삶의 어려움과 필요를 세심히 돌보았다는 뜻이다. 스펄전은 은혜가 갈급한 회중 앞에서는 위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당당히 전하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할 때는 온유함과 자상함을 잃지 않았다. 한편 적대자들 앞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뚝심과 추진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강력한 리더십과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유감없이 발휘했던 그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과 특히 목회자들에게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될 것이다.

[본문 중에서]
1854년 어느 날 저녁예배 시간에 스펄전은 이런 설교를 했다. “믿음으로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이 뒤에 있는 벽이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자 예배 후 한 점잖은 노신사가 스펄전을 향해 거만한 말투로 말했다. “이봐, 젊은 목사! 우리에게 다시는 그런 설교를 하지 마시오! 우리는 정말 그런 설교를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다오.” 그러자 스펄전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당신은 이제 더 이상 그런 설교를 듣지 않을 것입니다. 머지않아 곧 뒤에 있는 벽이 무너질 테니까요.”   -70쪽

그 무렵, 스펄전의 방문 후에 죽어가던 병자들의 병세가 그치는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것이 기도의 결과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따라서 스펄전의 기도를 사모하며 심방을 요청하는 일이 더욱 급증했다. 이렇게 기도와 말씀을 사모하는 영혼들을 스펄전이 외면할 리 없었다.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밤낮으로 각 가정을 방문해서 환자들의 치유를 위해 기도했다. 스펄전은 양들을 위해서 죽기를 각오한, 목양일념의 정신을 소유한 하나님의 종이었다.   -90쪽

스펄전이 처음으로 그 비전을 갖게 된 것은 그가 런던에 부임하던 해인 1854년 11월, 브리스틀에서 조지 뮬러George Muller를 처음 만났을 때였다. 조지 뮬러가 기도로 고아원을 운영하는 것을 보고 자신 역시 기도로 성전을 건축해야겠다는 확신과 비전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스펄전은 런던에 돌아오자마자 교인들에게 “우리는 여기서 믿음의 능력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고아원뿐만 아니라 믿음의 성전이 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101쪽

“우리는 다른 어떤 목사님을 12개월간 모시는 것보다 단 한 달만이라도 목사님을 모시기 원합니다.” 결국 스펄전의 사표 제출은 온 교인의 만류에 의해서 반려되었다. 스펄전 역시 기쁨으로 이를 수락함으로써 담임목사직을 계속 수행했다. 더구나 스펄전이 강단을 비운 사이에는 그의 동생인 제임스가 협동목사로서 능력 있는 말씀을 전해주었다. 장로들 역시 성경 공부, 새신자 교육, 방문자 안내, 상담, 심방 등의 일들을 자발적으로 수행해주었고, 집사들도 모든 재정을 잘 감당해주었다. 따라서 스펄전이 그렇게 빈번하게 휴가를 가졌어도 교회 경영에는 전혀 어려움이 따르지 않았다. 메트로폴리탄 타버너클 교회는 이미 한 사람의 지도자에 의해 그 경영이 좌지우지될 만큼 어린 교회가 아니었다.   -133쪽

심한 상처 가운데서도 스펄전은 그리스도를 향한 마음을 한 번도 져버린 적이 없었다. 그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괴로울 때에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절망의 순간에는 기도했고, 고통의 순간에는 십자가를 바라보았다. 마음의 상처가 있을 때에는 치료자이신 주님께 나아갔다. 그때마다 주께서 기적적으로 응답해주셨다. 주님께서는 자애로운 손으로 그를 붙잡아주셨으며, 모든 아픔을 싸매주셨다. 그런 은혜가 없었다면 어떤 경우에도 스펄전은 영광스러운 목회의 고지를 정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134~135쪽

기도로 생애를 불사른 청년 목사,
그의 짧지만 굵은 인생에는 늘 하나님이 있었다!

그는 깊은 숲 속에서 하늘을 천장 삼아 짚 무더기를 덮고 자면서도 기도를 중단한 적이 없었다. 어떤 때는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각혈 중에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침대에 누워 꼼짝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기도는 그의 양식이요, 힘의 원천이었다. 그는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기도할 정도로 탁월한 기도의 사람이었다.
-본문 중에서

온 몸으로 기도한 무릎의 성자
인디언들을 위한 그의 헌신적인 기도는 인디언들의 심장을 울렸다!

뼈가 부서지는 순간까지도 기도했던《데이비드 브레이너드》가 넥서스CROSS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설교, 목회, 신학, 기도, 선교, 영성 각 분야에서 하나님께 쓰임받은 신앙 위인들의 삶을 차례로 조명해보는 《믿음의 거장 시리즈》 중 하나로, 국내ㆍ외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사상, 업적과 영향력을 고르게 다루고 있다. 일반적 전기 스타일에서 벗어나 생애에 드러난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드라마틱하면서도 구속사적인 역사관을 바탕에 깔고 있다. 깊이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게 구성되어 있어, 평신도와 신학생,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믿음의 거장들의 생애를 통해 독자들은 신앙적 교훈을 얻는 것은 물론, 신앙의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기도의 힘으로 살아간 청년 선교사
짧은 생을 살았지만 누구보다 하나님과 친밀히 살다간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나단 에드워즈로 인해 그의 일기가 출판됨으로써 그를 알게 됐다는 것이다. 에드워즈가 없었다면 브레이너드의 일생은 신화나 소설처럼 반짝하고 그쳤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일기를 통해 그의 삶이 여전히 재생되고 있다. 브레이너드의 삶을 살펴보면 가슴 아플 만큼 육체의 고통이 있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그의 영은 항상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의 그런 놀라운 영적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교제를 원했던 기도의 힘에서 나온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읜 상실감에서 온 우울증은 그의 삶을 끊임없이 쫓아다녔고 그로인해 육체의 쇠약은 빨리 진행됐다. 더군다나 몸을 아끼지 않는 금식기도는 육체의 쇠약을 더욱 부추겼다. 그러나 브레이너드는 육체의 쇠약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기도와 복음 전하는 일에 매진한다. 그래서 최초의 인디언 사역에 나서게 된다. 말이 통하지 않고 백인을 향한 인디언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강기슭이나 깊은 숲 속에 거처하고 있는 인디언들을 찾아가는 여정 또한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브네이너드는 쇠약한 몸을 이끌고 오직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전진한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희생은 인디언들의 마음을 녹이는데 충분했다. 그래서 이상한 주문으로 우상을 숭배한 인디언들이 하나 둘씩 브네이너드의 설교를 듣고 눈물로 회심하게 된다.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도 너희 구할 것을 구하라 했던 말씀처럼 브레이너드의 삶의 대부분은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었다. 인디언 선교 사역을 위해, 인디언들의 학교 설립을 위해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 그 결과 많은 인디언들이 눈물로 회심하는 체험을 겪지만 그 또한 오래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29살의 나이로 짧은 생을 살았지만 누구보다 기도하는데 힘쓴 그의 인생은 기도에 힘쓰지 않는 지금의 성도들에게 많은 깨달음이 될 것이다. 하나님과의 달콤한 교제를 원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브레이너드의 인생을 본받는 계기가 될 만한 책이다.
 
[본문 중에서]
지금까지 진로 문제로 고민할 때마다 생생하게 들었던 말씀에 순종하기로 마음먹었다. 기도할 때마다 떠오르던 말씀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나를 보내소서!” 결국 자신이 목사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 믿었다. 자신의 결심에 성령께서 인도해주신 것을 믿고 있었다. 그런 확신 가운데서 브레이너드는 목사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장차 목사가 되어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기로 다짐한 것이다.
-27~28쪽

그렇게 치열한 영적인 싸움을 계속하다가 브레이너드는 숲 속을 찾아갔다. 몇 시간 동안 부르짖으면서 기도했다. 그러자 다시금 주님의 위로가 넘쳤다. 연약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심을 느꼈다. 마침내 그의 영혼이 소생되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옷 입고 복음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하늘 보좌를 향하여 부르짖는 기도로 그 영혼이 새 힘을 얻은 것이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주님과 교제가 계속되었다.
-63쪽

브레이너드가 카우나우믹에서 생활한 지 어느새 1년이 지나갔다. 이제 선교협회와 약속한 1년의 시한이 되어 수습 선교사의 기간을 마칠 때가 되었다. 브레이너드에게는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하는 한 해 동안 인디언 선교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타진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지금까지 브레이너드는 수습 선교사로 활동했다. 카우나우믹 생활은 인디언들과 함께 삶을 체험하면서 선교를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기간이었던 것이다.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그는 카우나우믹에서 수습 선교사로 생활하는 동안 인디언 선교를 위해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78쪽

주말에는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갔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사역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일에는 어른과 어린이를 합하여 50여 명이 모였다. 그들 중에서 영어를 아는 몇 사람은 진지하게 말씀을 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예배가 끝날 무렵에는 눈에 띄게 변화되는 모습이 역력했다. 점심시간에는 브레이너드의 식사 기도를 기다릴 정도였다. 식사 기도를 하는데도 몇 사람은 눈물을 흘렸다. 다른 몇 사람은 지난날 우상을 숭배하며 살았던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모든 모임이 마치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의해 이끌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98~99쪽

그의 건강이 그렇게 치명적으로 손상되었던 요인은 인디언 마음에서 수년간 보내면서 제대로 영양을 보충하지 못한 것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여의고 난 후 누가 건강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은 것도 그 요인 중 하나였다. 게다가 너무 잦은 금식도 몸을 상하게 만든 요인이 되기도 했다. 금식을 통해서 영적으로는 강건해졌지만 육신은 쇠할 대로 쉬해진 것이다. 브레이너드의 병세가 폐결핵으로 판명되자 많은 사람이 무척 안타까워했다. 그의 병세를 볼 때 심상치 않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폐결핵이라는 진단이 내려지자 주변 사람은 크게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그의 건강 회복을 위해 기도해주었다.
-134~135쪽

청교도 신앙과 비범함을 간직한 학자
그의 수많은 작품은 하나님을 나타내기에 충분했다

오웬은 12살에 옥스퍼드 퀸스 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천부적인 두뇌를 소유했다. 그처럼 어린 나이에 옥스퍼드에 들어간 사람은 드물었다. 어려서부터 가문의 유산으로 배워온 청교도의 신앙과 비범함이 그를 자연스럽게 ‘청교도 왕자’의 자리에 앉게 해준 셈이다. 그의 저서들은 천부적인 지적 능력과 깊은 통찰력, 그리고 탁월한 영성이 담겨 있어서 후대에 길이 남을 만한 기독교 유산이 되었다.
_본문 중에서

청교도 신학의 최고 정상
짧은 생애 동안 맥체인이 보여준 경건한 삶은 장엄의 극치였다!


수많은 작품을 통해 하나님을 표현한 청교도 왕자《존 오웬》이 넥서스CROSS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설교, 목회, 신학, 기도, 선교, 영성 각 분야에서 하나님께 쓰임받은 신앙 위인들의 삶을 차례로 조명해보는 《믿음의 거장 시리즈》 중 하나로, 국내ㆍ외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존 오웬의 생애와 사상, 업적과 영향력을 고르게 다루고 있다. 일반적 전기 스타일에서 벗어나 생애에 드러난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드라마틱하면서도 구속사적인 역사관을 바탕에 깔고 있다. 깊이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게 구성되어 있어, 평신도와 신학생,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믿음의 거장들의 생애를 통해 독자들은 신앙적 교훈을 얻는 것은 물론, 신앙의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지성과 영성을 겸비한 저술가
홀Hall 주교가 15살에 옥스퍼드에 입학한 것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그 기록을 깨지 못했는데, 존 오웬이 12살에 입학하므로 그 기록이 깨짐과 동시에 그의 천재성이 두각 되는 증거가 됐다. 이처럼 오웬은 탁월한 지성을 겸비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은사를 하나님은 그냥 두시지 않고, 널리 저술활동에 이용하셨다. 그 결과 《알미니아니즘의 진상》, 《히브리서 강해》, 《그리스도의 영광》 등 성경과 그리스도께 가장 충실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이를 보고 제임스 패커는 “역시 오웬은 거인들의 시대에 가장 높이 솟았던 인물”이라고 평했다.
또한 청교도의 경건과 신앙을 가문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오웬의 성품을 보고 윌버 스미스는 “오웬이 그런 가문에 태어난 것은 커다란 명예였고, 17세기 기독교 전체에도 큰 영예”라고 할 정도였다. 오웬이 이러한 높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고난 신학에서 근거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는 12명의 자녀 중에 11명의 자녀를 잃었고, 지성의 요람인 옥스퍼드의 부총장과 의회의 의원이 되는 자리까지 올라가지만 통일령 사건으로 강단에서 추방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는 하나님을 놓지 않았고, 저술활동도 그치지 않았다. 

천부적인 능력을 하나님께 바치다
어린 나이에 옥스퍼드에 들어간 천재 소년 존 오웬. 그러나 그는 교만하지 않았다. 자신의 잘남을 자랑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다른 학생들보다 몇 갑절이나 노력했다. 4시간의 취침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시간을 공부에 몰두했다. 타고난 두뇌를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시절을 마칠 때까지 초인적인 노력으로 학문 연구에 전력했다. 그리고 그 탁월함으로 하나님을 널리 알리는 저술활동에 힘썼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자기 잘난 맛에 살고, 내 자랑하기에 바쁜 생활을 하지 않는가? 모든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므로 하나님께 바쳐야 함을 우리는 깨닫지 못한다. 존 오웬의 삶을 통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그 무렵까지 오웬처럼 어린 나이에 옥스퍼드에 입학한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천부적인 능력을 인정받았던 홀hall 주교가 15살에 입학한 것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그 기록을 깨지 못했다. 당대에 큰 영향을 끼쳤던 유명한 청교도 존 하워John Howe조차도 17살이 지나서 옥스퍼드의 문을 두드렸다. 그런 정황에서 오웬은 겨우 12살에 지성의 요람 옥스퍼드에 입학했으니 그의 천재성이 세상에 입증된 셈이다. 
 _24쪽

하나님과의 교제는 영성의 심장부요, 절정이다. 오웬 역시 하나님과 깊은 교제로 영성의 정상에 섰던 청교도 영성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청교도들은 인간 실존의 목표와 목적을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다고 주장했다. 창조와 구속의 결과도 하나님과의 교제에 두었다. 그것은 청교도 신학과 설교의 핵심이기도 했다. 오웬은 영적 체험을 한 이후에 하나님과의 교제로 평생 영성의 정상을 향하여 달려 갔다. 하나님과 교제를 이어가기 위해서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 끝에 그는 마침내 태양 같은 영성의 족적을 남겼다.             
_47쪽

오웬은 칼뱅처럼 평생 경건한 삶을 추구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영적 생활의 실상을 파헤치면서 경건에 관련된 주제로 지속적으로 설교했다. 예를 들면, 끊임없이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활을 방해하는 ‘유혹’을 주제로 설교했다. 또 경건 생활의 최고의 적수인 ‘죄’라는 주제로도 설교했다. 이런 주제들로 설교한 것을 모아 편찬한 작품이 《죄와 유혹》이다.
죄 문제는 그리스도인에게 필연적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죽는 순간까지 죄를 떨쳐버릴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성화에 이를 때까지 죄와 싸워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죄와 그리스도인의 삶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죄 문제를 명확하게 해결해야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경건의 정상에 오르려면 죄의 산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죄와 유혹》은 참된 경건에 이르기 위한 교과서와 같다.         
_84~85쪽

오웬은 청교도 사상으로 무장한 개신교 신학자였다. 게다가 회중교회주의자로서 입장을 굳게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웬은 찰스 2세의 요구에 쉽게 순응할 수 없었다. 다른 청교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청교도들은 강단에서 추방되는 무서운 고초를 당하게 되었다. 그들은 소위 ‘비국교도들nonconformists’이 되어 강단 밖을 유리하는 몸이 되었다. 1662년에는 ‘통일령The Act of Uniformity’으로 인하여 청교도 목사 2천여 명이 강단에서 쫓겨난 사건이 일어났다. 오웬도 그때 강단에서 추방되었다.       
_115쪽

오웬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근면함으로 고난의 폭풍 속에서도 저술을 했다. 강단을 빼앗긴 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고의 능력과 이성적인 활동을 송두리째 저술로 성화시킨 것이다. 십자가 고난 후에 부활의 영광이 임했던 것처럼 시대의 폭풍우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신을 관리하며 저술에 전력한 결과 영광스러운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런 점에서 오웬의 신학은 고난의 신학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고난이 없으면 신학이 완성되지 않는다. 신앙도 고난을 통해서 다듬어지는 법이다.       
_124쪽

들풀처럼 강인한 부흥의 선구자
폭도들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그의 믿음을 배운다!

그의 사역은 1년에 천 번 정도, 평생 3~4만 번의 설교를 했으며 공식적인 대중 집회를 1만 8천 번이나 인도했다. 하지만 휘트필드의 탁월한 설교와 엄청난 군중 동원의 위력은 당시 많은 성직자에게 미움과 시기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설교 사역을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지난 후부터 들판이나 산, 혹은 공공시설 등 야외의 어느 곳에서나 설교함으로써 야외 설교의 선구자가 되었다.
-본문 중에서

사도시대 이후 최고의 설교자
“그리스도의 이름이 영화롭게만 된다면 내 이름은 짓밟혀도 된다!”

수많은 비난 속에서도 오직 사랑을 실천한 하나님의 사람《조지 휘트필드》가 넥서스CROSS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설교, 목회, 신학, 기도, 선교, 영성 각 분야에서 하나님께 쓰임받은 신앙 위인들의 삶을 차례로 조명해보는 《믿음의 거장 시리즈》 중 하나로, 국내ㆍ외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조지 휘트필드의 생애와 사상, 업적과 영향력을 고르게 다루고 있다. 일반적 전기 스타일에서 벗어나 생애에 드러난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드라마틱하면서도 구속사적인 역사관을 바탕에 깔고 있다. 깊이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게 구성되어 있어, 평신도와 신학생,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믿음의 거장들의 생애를 통해 독자들은 신앙적 교훈을 얻는 것은 물론, 신앙의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부흥의 날개를 단 소년 목사
18세기 설교와 부흥의 거장 조지 휘트필드는 피땀 흘린 수천 번의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오직 하늘만을 바라본 설교자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은 사람들의 발아래 밟혀도 좋다고 고백한 그는 항상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한 성자였다. 어린 시절부터 무대 활동에 타고난 재능과 웅변력을 지닌 덕분에 ‘소년 목사’라는 지칭을 받을 만큼 목사로서는 어린 나이에 강단에 나선다. 회중들은 어린 휘트필드를 보며 얕보고 무시했지만, 그의 설교를 듣는 순간 모든 회중이 은혜로 충만한 역사를 선보인다.
이후 휘트필드는 평생 복음을 위해서 불타는 열정을 갖고 사역한 위대한 설교자가 된다. 그가 가는 곳마다 수천,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 정도로 폭발적인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뿐만이 아니라 휘트필드의 역사는 영국을 시작으로 세계로 점점 뻗어가는 부흥의 날개를 단다. 그래서 웨일즈, 스코틀랜드에서 미국 대각성 운동에도 복음의 씨앗을 전달한다.

모든 교파를 초월한 하나님의 사람
우리나라에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존 웨슬리와 함께 옥스퍼드 대학 홀리클럽에서 경건 생활의 영적 훈련을 통해 말씀 사역의 주역을 이룬 휘트필드는 교회사적으로 소중한 유산이 될 만한 거장이다. 18세기 영국 교회의 암흑기에 새 힘을 불어넣은 부흥의 선구자인 그는, 전기 작가의 증언이나 많은 자료들이 그의 업적들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교리적으로 존 웨슬리와의 우정이 흔들리면서 많은 갈등도 겪지만 모든 비난과 공격을 하나님께 내려놓음으로써 교파를 초월한 설교술의 거장으로 거듭난다. 평생 몇만 번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회중을 몰고 다니자 많은 성직자에게 미움을 사게 되고 그로 인해 예배당을 쓸 수 없는 상황을 겪지만 휘트필드는 좌절하지 않고 수많은 회중을 이끌고 들판에서 설교하는 최초의 야외 설교자가 된다. 이러한 휘트필드의 생애를 통해 이 책은 많은 목회자들은 그의 설교 능력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게 되고, 성도들은 그의 경건한 삶의 비결에 대해 도전받을 수 있을 것이다. 

[본문 중에서]
휘트필드의 조상 중에 9명이나 성직자의 길을 걸었다는 사실은 그의 어머니 엘리자베스로 하여금 아들이 성직의 길을 갈 것을 기대하는 데 충분한 요건이 되었다. 그녀는 휘트필드의 교육에 매우 신경을 쓰면서 아들이 목회의 길을 가도록 소망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어린 휘트필드에게 장래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는 선뜻 목사가 되겠다고 대답하곤 했다.
-27~28쪽

이제 더욱 개방되고 넓어진 마음으로 나는 다른 책은 제쳐두고 가능한 한 성경 본문의 모든 단어와 구절에 대해 기도하면서 무릎을 꿇고 읽어가기 시작했다. 실로 그것은 내 영혼의 음료요, 양식이었다. 나는 매일 위로부터 나오는 신선한 생명과 빛과 능력을 공급받았다. 나는 한 달 동안 하나님의 책을 읽음으로써 내가 일찍이 모든 사람의 책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48~19쪽

설교 요청을 받은 휘트필드는 그런 번민 가운데서 마침내 하나님께서 자신을 런던으로 보내신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그곳으로 떠났다. 런던에 도착해서 주일 아침에 가운을 입고 교회로 들어가는데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소년 목사 좀 봐!”라는 소리도 들렸다. 그때 많은 사람이 가게에서 뛰쳐나와 신기한 듯이 쳐다보았다. 휘트필드는 무척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나 꾹 참고 마음속으로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딤전 4:12)라는 바울의 권면을 기억하면서 당당하게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66쪽

사제로 안수를 받고 새로운 사역에 뛰어들고자 하는 꿈에 부풀어 있던 휘트필드는 자신의 위치가 조지아를 떠나기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곧 알아차렸다. 영국 교회의 많은 성직자가 휘트필드를 달갑지 않게 여기며, 그를 열광주의자나 광신주의자로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반감은 성직자 그룹뿐만 아니라 평신도 지도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심지어 “질서의 파괴”라고 부르짖으며 분개할 정도였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전에 자신을 초청했던 여러 교회가 차츰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휘트필드는 쉽게 감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알아차린 휘트필드는 그의 사역의 방향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얼마 전부터 휘트필드는 야외 설교를 구상하면서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야말로 야외 설교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79~80쪽

휘트필드는 엑서터에서 설교를 마치고 뉴버리포트Newburyport에 있는 올드 사우스Old south 장로교회의 조나단 파슨즈 목사 집으로 갔다. 휘트필드가 동네에 왔다는 소문이 전해지자 동네와 인근 주변에서 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휘트필드는 이미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가 되었지만 사람들의 요청에 못 이겨 창문을 열어놓고 촛불을 든 채 그 촛불이 꺼질 때까지 설교했다. 실로 그날 저녁에 휘트필드가 들고 있었던 촛불은 마치 온 세상의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복음의 빛을 비춰주고 말없이 죽어갔던 자신의 삶을 상징하는 것과 같았다.
-158쪽

복음화에 일생을 바친 늦둥이 목사
‘길 도사’가 ‘길 목사’가 된 은혜로운 이야기


길선주는 불교와 선도를 터득한 도사로 불렸다. 즉, 기독교와는 상관없이 산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의 나이 29살 때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그 후로 40여 년 동안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헌신한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약 380여만 명에게 복음을 전했고, 3천여 명에게 세례를 베풀었으며, 800여 명을 목사와 전도사, 장로로 세웠고, 60여 개의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_본문 중에서

한국교회 부흥의 꽃을 피운 초석
산속에서 도를 닦던 도인에서 한국 최초 7명 목사 중 한 명이 되다!


늦은 나이에 주님을 만나 남은 생애를 주님께 바친《길선주》가 넥서스CROSS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설교, 목회, 신학, 기도, 선교, 영성 각 분야에서 하나님께 쓰임받은 신앙 위인들의 삶을 차례로 조명해보는 《믿음의 거장 시리즈》 중 하나로,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길선주의 생애와 사상, 업적과 영향력을 고르게 다루고 있다. 일반적 전기 스타일에서 벗어나 생애에 드러난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드라마틱하면서도 구속사적인 역사관을 바탕에 깔고 있다. 깊이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게 구성되어 있어, 평신도와 신학생,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믿음의 거장들의 생애를 통해 독자들은 신앙적 교훈을 얻는 것은 물론, 신앙의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도인의 낡은 줄을 버리고 주님을 만나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새로운 이상 세계를 탐했던 길선주는 속세를 떠나 산속에서 도를 닦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약재를 만드는 방법을 터득하여 그 비법을 가지고 약방을 개업하기도 한다. 매일 밤 주문을 외우며 도인의 길을 철저하게 걸었던 그에게 서양 귀신인 기독교가 찾아온다. 세상이 변하면서 평양 땅에도 서양 귀신이라는 기독교가 들어온 것이다. 약방으로 물질의 풍족함도 느껴보고, 외세의 침략으로 억압도 받으면서 길선주는 늘 갈망했던 이상 세계에 대해 구체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 마침 기독교가 그의 귀에 들어왔고 제자를 통해 기독교에 대해서 알아보라 했다. 그러나 오히려 제자는 기독교의 교리에 감동받아 길선주를 전도하기에 이른다. 처음에는 도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기독교를 완강히 거부하다가 끈질긴 제자의 전도에 ‘도대체 어떤 종교이기에’라는 생각으로 기독교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이름을 세 번 부르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길선주는 29살의 다소 늦은 나이에 하나님을 만났지만 이후의 인생을 복음 전하는 일로 채웠다. 그리하여 380여만 명에게 복음을 전했고, 3천여 명에게 세례를 베풀었으며, 800여 명을 목사와 전도사, 장로로 세웠고, 60여 개의 교회를 세웠다.
그 밖에 길선주는 세상 속에서 기꺼이 기독교를 알리는데 앞장섰다. 야학을 만들어 공부하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복음을 접할 수 있는 있게 하였고, 여전도회를 활성화해서 여성들의 인권을 높여주는 등 사회운동을 통해 기독교를 세상에 흡수시켰다. 

[이 책의 특징]
1. 한 사람의 행보가 만인을 움직이게 하듯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거장을 통해 신앙의 성숙을 자아낼 것이다.
2. 하나님을 모르고 산속에서 도인으로 살았던 길선주가 하나님께 회개함으로 나아가 시대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을 전도하는 모습을 통해 신앙적 교훈을 얻는다. 
3. 길선주의 생애를 학문적으로 분석한 것이 아니라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이야기하듯 보여줌으로써 한 인물의 생을 역동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민족의 십자가를 짊어진 조선의 간디,
조만식의 삶과 사상을 읽는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평안북도 오산학교에서 교사와 교장을 지내며 모두에게 존경을 받은 스승이었다. 또한 3・1운동과 조선민립대학설립운동 및 농촌계몽운동을 직간접적으로 주도하여 청년들에게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준 실천적 지도자이기도 하였다. 나아가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한 헌신자, 민족과 평화를 사랑하는 지도자로서 ‘조선의 간디’로 불리었다. 
_본문 중에서

 

민족의 십자가를 짊어진 조선의 간디,
비폭력 ․ 불복종 정신으로 독립운동, 통일운동에 앞장서며 
목숨을 건 사명을 실천한 사람

이 책은 설교, 목회, 신학, 기도, 선교, 영성 각 분야에서 하나님께 쓰임받은 신앙 위인들의 삶을 조명해보는 《믿음의 거장 시리즈》 중 하나로,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조만식의 생애와 사상, 업적, 그리고 영향력을 다루고 있다. 일반적 전기 스타일에서 벗어나 생애에 드러난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드라마틱하면서도 구속사적인 역사관을 바탕에 깔고 있다. 믿음의 거장들의 생애를 통해 독자들은 신앙적 교훈을 얻는 것은 물론, 신앙의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민족의 스승이자 조선의 간디로 불리며 모두의 존경을 받은 사람
나라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스승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나라와 민족을 이끌어가는 선도자로서 존경받고 있다. 그중 조만식이야말로 ‘선생’이란 직함이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승훈의 청빙을 받아 오산학교 교사로 부임하였으며, 1915년에 오산학교 교장이 되었다. 그는 1919년 2월 3・1운동을 위해 교장직을 사임하기까지 무보수로 민족교육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1922년에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산정현교회의 장로로 장립되었으며,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하였다. 물산장려운동은 3・1운동 이후 민족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준 대표적인 운동으로 금주・금연운동, 폐창운동을 포함한 절제운동을 수렴하였다. 그리고 국산품 장려운동으로 구체적인 실천강령을 확립하여, 민족자본 육성이라는 업적을 이루었다.
해방과 함께 평양으로 나온 그는 민족 정부 수립을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하였으나 그의 모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구금되기에 이르렀다. 평양 고려호텔에 감금된 조만식은 그를 구출하려는 청년들이나 그를 방문한 미군정청의 브라운에게 “나는 북한 일천만 동포와 운명을 같이하겠소”라고 말했고, 월남을 거부한 채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였다. 그 이후 그는 갖은 고문과 강제수용소 수용 등으로 질병을 안고 살다가
1950년 10월 18일 공산당원에 의해 소천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민족의 스승이었던 조만식 선생은 끝까지 진리를 수호하고, 민족을 사랑하며, 절개를 굽히지 않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그의 최후는 잘 알려져 있지도 않을 정도로 비참하고 외로웠지만, 그의 삶은 모든 후손에게 자긍심과 희망이 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사명을 짊어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민족 사랑을 실천한 조만식의 삶을 통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의 특징]
1. 깊이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은 내용으로 평신도와 신학생,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2. 하나님의 마음으로 민족을 사랑한 조만식의 삶을 읽으며, 애국심을 고취하고, 스스로의 신앙 상태를 점검하게 된다.
3. 가치관 정립이 중요한 시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관과 신앙관을 심어준다.

교황 앞에서 성서의 진리를 논하다, 마르틴 루터
면죄부를 겨냥한 95개조 반박문, 파문된 루터가 로마 교회를 파문하다

성서의 권위를 강조한 신학자이자 종교개혁자인 마르틴 루터의 삶과 철학을 담은《마르틴 루터》가 넥서스CROSS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설교, 목회, 신학, 기도, 선교, 영성 각 분야에서 하나님께 쓰임받은 신앙 위인들의 삶을 차례로 조명해보는《믿음의 거장 시리즈》중 하나로,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마르틴 루터의 생애와 사상, 업적과 영향력을 다루고 있다. 일반적 전기 스타일에서 벗어나 생애에 드러난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드라마틱하면서도 구속사적인 역사관을 바탕에 깔고 있다. 깊이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게 구성되어 있어, 평신도와 신학생,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믿음의 거장들의 생애를 통해 독자들은 신앙적 교훈을 얻는 것은 물론, 신앙의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독일어 성경을 출판하다!
루터는 비록 로마 방문을 통해 타락한 교회의 모습을 보고 신앙의 갈등을 겪었지만 이것은 성서 공부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성경 신학 교수가 된 후 루터는 오로지 설교하고, 가르치고, 저술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루터가 남긴 업적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독일어 성경을 출판한 것이다. 루터는 일반 독일 사람들이 직접 성경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깨달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 출판은 당시 많은 방언으로 나뉘어 있었던 독일어를 통일하고, 기존 성경의 라틴어 번역 오류를 바로 잡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루터는 성경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설교하고, 성경의 지혜를 널리 알리기 위해 가르치고, 모두가 성경의 말씀을 읽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저술하였다. 이 모두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의 표현이었다.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그리스도로!
우리가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그리스도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루터는 성서의 진리를 깨닫고 주님의 부름을 받아 타락한 로마 교회에 일침을 가했고, 나아가 전 세계교회를 뒤흔들었다. 루터는 교회 개혁의 역사에서 하나님이 만든 역사의 현자요, 하나님의 역사에 온전히 쓰임받은 교회 개혁의 주동자, 신학자, 개혁자, 죽어 있는 교회를 되살린 철학자이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신다.”
그가 지어 부른 힘찬 찬송은 오늘도 우리를 진리로 향하게 한다.

[이 책의 특징]
1. 깊이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은 내용으로 평신도와 신학생,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2. 철저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쓰임받은 마르틴 루터의 삶을 통해 사랑으로 끝까지 기다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다.
3. 가치관 정립이 중요한 시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관과 신앙관을 심어준다.

신학을 집대성한 교부 철학의 성자,
어거스틴의 삶과 사상을 읽는다!

그는 교회사에서 사도 바울 다음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현대의 모든 철학은 플라톤의 주석이고 현대의 모든 신학은 어거스틴의 주석이다”라는 그에 대한 평가는 바로 그 사실을 잘 보여준다. 또한 그는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그의 하나님 중심 사상, 은총의 신학, 사랑을 궁극적인 가치로 하는 도덕은 기독교 역사에 위대한 자취와 영향을 남겼다. 
_본문 중에서

 

모든 신학의 기초를 만든 사람, 어거스틴
이 책은 설교, 목회, 신학, 기도, 선교, 영성 각 분야에서 하나님께 쓰임받은 신앙 위인들의 삶을 조명해보는 《믿음의 거장 시리즈》 중 하나로,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어거스틴의 생애와 사상, 업적, 그리고 영향력을 다루고 있다. 일반적 전기 스타일에서 벗어나 생애에 드러난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드라마틱하면서도 구속사적인 역사관을 바탕에 깔고 있다. 믿음의 거장들의 생애를 통해 독자들은 신앙적 교훈을 얻는 것은 물론, 신앙의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영적, 육적인 타락의 길에서 벗어나다
어거스틴은 A.D. 354년에 북아프리카의 누미디아 타가스테에서 기독교인 어머니와 이교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1세에 라틴어를 배웠고, 17세에는 카르타고로 유학 가서 수사학을 공부하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일찍부터 타락의 길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 결과 그는 이미 18세에 동거녀를 통해 아들 아데오다투스를 낳았다. 그 후 그는 암브로시우스를 만나 회개의 체험을 할 때까지 약 18년간을 육욕의 생활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20세에 마니교에 빠져 9년 동안 이단의 거짓에 붙잡히게 되었다.
어머니 모니카는 어거스틴이 육적인 타락에 이은 영적인 타락에 빠진 것을 알고 눈물로 기도했다. 이후 어거스틴은 로마에서 신플라톤주의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는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라 영이시라는 것을 깨닫고 완전하게 마니교에서 벗어났다. 결국 어거스틴은 어머니의 기도대로 마니교를 버리게 되었다.


역사에 남는 위대한 저서를 남기다
또한 그는 400년에 《참회록》을 통해 자신의 과거 죄를 고백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타락과 불신앙적인 삶을 살았던 자신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은혜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필생의 대작인 《하나님의 도성》을 426년에 완성하였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로마가 이방인의 침략에 무너진 근본 이유가 기독교 때문이라는 비난을 논리적으로 반박하였고, 로마의 도덕적・종교적 타락이 원인이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세상과 자신을 사랑하는 ‘지상의 도성’의 삶이 아닌 진리와 하나님을 바로 보는 ‘하나님의 도성’의 삶을 살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어거스틴은 《삼위일체론》을 집필해서 지금의 삼위일체론 신학을 거의 확정해놓았다. 또한 그는 마니교와 펠라기우스파, 그리고 도나투스파와 같은 이단에 대해서도 철저히 논쟁하며 반박함으로 기독교의 전통적 체계를 완성해나갔다.


[이 책의 특징]
1. 깊이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은 내용으로 평신도와 신학생,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2. 철저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쓰임받은 어거스틴의 삶을 통해 사랑으로 끝까지 기다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다.
3. 가치관 정립이 중요한 시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관과 신앙관을 심어준다.

 

복음전도로 일생을 바친 사람
드와이트 무디

무디와 생키는 1874년 2월 8일에 글래스고에서 부흥 집회를 열었다. 거기에서도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몰려왔다. 결국 4개월간의 사역 마지막 주일 저녁 집회때는 5만 명이나 되는 엄청난 청중들이 몰려와서 결국 집회장소인 거대한 키블 궁전에 모두 수용할 수 없게 되었고 무디가 궁 바깥 옥외에서 설교를 하고 생키는 궁 안에서 집회를 인도하는 해프닝까지 일어났다.
- 본문 중에서

균형 잡힌 영성의 사람

조나단 에드워즈의 삶을 읽는다!

에드워즈의 설교는 매우 능력이 있었다. 그는 명쾌하고 정확하게 사상을 설명하여 그것에 생명을 부여하는 독특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 에드워즈는 죄와 구원에 대한 명백한 진리로 청중의 양심을 압도할 때 두 시간을 마치 12분같이 느끼게 할 수 있었다. 그의 분석력과 고요한 위엄 앞에서 사람들은 진리의 힘을 느꼈고, 그것은 조지 휘트필드의 열정에 못지않았다.
- 본문 중에서 -

한평생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힌 사람
참 그리스도인의 모델이 되는 그의 삶을 본받으라!

미국 최고의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의 삶에 대해 흥미롭게 엮은 《조나단 에드워즈》가 넥서스CROSS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설교, 목회, 신학, 기도, 선교, 영성 각 분야에서 하나님께 쓰임받은 신앙 위인들의 삶을 차례로 조명해보는 《믿음의 거장 시리즈》 중 하나로, 국내ㆍ외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 업적과 영향력을 고르게 다루고 있다. 일반적 전기 스타일에서 벗어나 생애에 드러난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드라마틱하면서도 구속사적인 역사관을 바탕에 깔고 있다. 깊이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게 구성되어 있어, 평신도와 신학생,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믿음의 거장들의 생애를 통해 독자들은 신앙적 교훈을 얻는 것은 물론, 신앙의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균형 잡힌 하나님의 사람
조나단 에드워즈는 어거스틴과 칼뱅 이후 가장 걸출한 인물로 평가받아왔다. 다니엘 웹스트는 에드워즈의 저작을 두고 “인간 지성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극찬했다. 마틴 로이드 존스도 “영국 청교도를 알프스 산맥으로, 칼뱅을 히말라야 산맥으로 표현한다면, 에드워즈는 에베레스트 산에 비유하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그만큼 에드워즈는 신학과 목회, 부흥과 영성, 그리고 지성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심오한 경지에 이르렀던 인물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혀 신학을 집대성한 미국 최고의 신학자요, 참 목회의 진면목을 보여준 성공적인 목회자요, 진정한 성도의 모델이 된 비범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는 청교도의 후예로서 평생 자신을 돌아보며 일기를 썼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기초로 한 좌우명이라 할 수 있는 결심문도 작성했는데, 이 결심문은 “그리스도인의 임무에 대한 최고의 요약집”이요, “지금까지 사람이 만든 것 중 복음적 실행에 대한 최고의 지침서”로 평가받는다. 이 결심문을 보면 그가 거룩함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과 싸웠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보통 새벽 4시경에 일어나 매일 13시간씩 성경 연구와 저술에 몰두했고, 하루에 두 번 이상 기도의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다. 불행한 사건으로 목회 현장을 떠나게 되는 순간에도, 자신을 더 겸손하게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로 그 사건을 받아들이며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한 그의 숭고한 신앙은 우리 삶의 본이 된다고 할 것이다.

부흥운동을 주도한 그의 영향력
에드워즈가 주도한 노샘프턴의 부흥운동은 사도시대 이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부흥으로, 대부분의 마을 사람이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되었다. 에드워즈의 설교를 들은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과거의 잘못을 뉘우쳤다. 빈둥거리던 사람들이 새롭게 태어났고, 생활의 활기를 찾았다.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영적인 대화를 나눴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일에 큰 관심을 보였다. 서로 험담하고 말다툼을 벌이는 일도 사라졌으며, 밤마다 거리를 가득 메우던 취객들도 사라졌다. 그러한 영적 대각성 운동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에드워즈의 설교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만큼 그의 설교에는 미국 사회를 변화시킬 만한 강력한 영향력이 있었다. 그는 기교를 부리거나 특별한 제스처를 사용하지 않았고, 탁월한 웅변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사모하고 묵상하면서 명쾌하고 정확하게 진리에 대해 설명했으며, 고요한 위엄 가운데 엄청난 내적 열정을 드러내어 청중을 사로잡았다. 이렇듯 놀라운 부흥의 현장을 보면서 마틴 로이드 존스는 그를 ‘부흥신학자로’로 명명하였고, 제임스 패커 역시 그를 ‘신앙 부흥운동의 주창자’라고 명명했다.

본문 중에서

겉모습이 바뀌었고, 거의 모든 일에서 차분하고 좋은 성품으로 변했다. 마치 거룩한 영광의 모습이 드러난 것 같았다. 나의 마음을 크게 안정시켜주었던 해, 달, 별, 구름, 들, 푸른 하늘, 풀, 꽃, 나무, 호수 등의 모든 피조물 안에서 하나님의 탁월하심과 지혜, 순결, 사랑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영광을 보기 위해 구름과 하늘을 쳐다보면서 오랫동안 앉아 있기도 했다. … 나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열정적으로 갈망했고 더욱 거룩해지기를 뜨겁게 사모했다. 그리하여 마음이 터질 것 같았다.
- 46쪽 -

에드워즈는 칼뱅의 신학과 사상에 심취해서 《기독교 강요》를 항상 옆에 놓고 살았다. 미국 교계에 칼뱅주의 신학의 뿌리를 내리게 한 사람도 에드워즈였다. 그런 면에서 그를 어거스틴과 칼뱅의 신학을 계승, 발전시킨 탁월한 칼뱅주의 신학자라고도 평한다. 어거스틴과 칼뱅 사상의 핵심은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강조하는 것이다. 게다가 말씀이 하나님의 계시임을 믿으면서 최고의 권위를 부여한다. 따라서 에드워즈 신학의 중심에는 늘 말씀이 있었다. 목회 현장에서도 언제나 말씀을 중요하게 여겼고, 삶에서도 말씀이 중심이었다.
- 48쪽 -

이안 머레이는, “거룩을 향한 그의 노력은 어떤 도덕주의자의 자의적 노력 그 이상이다. 그의 노력은 그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반응이다”라고 말했다.
- 63쪽 -

에드워즈는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그렇게 철저하게 신앙 교육을 하면서도 자신이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였다. 예를 들면, 시간 관리에 있어서도 무서울 정도로 철저했다. 그는 새벽 시간에 일어나는 것을 주님의 명령으로 생각했고, 다음과 같은 확신을 가졌다. “그리스도께서 이른 새벽에 무덤에서 일어나셨으므로 새벽 일찍이 일어날 것을 명령하셨다고 믿는다."
- 85쪽 -

온 교회가 뜨겁게 타오른 성령의 역사를 직접 체험하고 그 현장까지 생생하게 목격했지만, 낡은 파벌주의로 인해 다툼이 일어나자 에드워즈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곧, 회심으로 인하여 구원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회심이 곧 성화聖化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후부터 2년간 에드워즈는 성도들의 영적 성장과 거룩함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설교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방문으로 노샘프턴에서 회심을 경험했을지라도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거룩을 추구하라고 권고했다.
- 101쪽 -

그는 설교할 때 어떤 제스처를 사용하지도 않았고 웅변력도 없었다. 말의 기교나 세련된 목소리도 없었으며, 특별한 설교 스타일이나 억양도 없었다. 다만 부동 자세로 서서 차근차근 원고를 읽어나갔다. 그런 데다 청중의 시선을 마주치는 것도 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은 강단을 향해 꼼짝 않고 몇 시간씩 설교에 빠져들곤 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마음을 찢고 회개했다. 온 교회가 눈물바다를 이루기도 했다. 사치와 향락을 일삼던 일부 교인들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 106~107쪽 -

에드워즈는 뜨거운 가슴으로 복음을 가르쳤던 탁월한 설교자요, 타오르는 열정으로 말씀을 선포한 목회자였다. 하지만 에드워즈의 설교를 설교답게 한 것은 그의 영성이었다. 영성의 기둥에 세워진 설교였기에 뜨거운 감동이 있었던 것이다. 영성이 없는 설교는 냉랭하다. 그런 설교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아무리 기교가 뛰어나도 영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설교는 영혼을 움직이지 못한다. 에드워즈의 설교는 영성의 뿌리 위에 세워진 튼튼한 나무였다.
- 112쪽 -

그는 ‘성령의 기름부음’이란 어휘를 종종 사용했다. 그것은 에드워즈의 부흥신학의 핵심이기도 하다. 부흥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하다. 성령의 기름부음 없이 영적 대각성은 있을 수 없다. 부흥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전적으로 성령께 달려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회심 시에 체험한 성령의 역사와 그 후에 이어진 깊은 성령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에드워즈의 부흥신학의 뼈대라고 할 수 있다.
- 136~137쪽 -

경건한 삶의 본을 보여준 성도의 모델
그에게서 살아 있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맥체인은 모든 영혼을 뜨겁게 사랑한 목회자였고, 거룩한 삶의 본을 보여준 성도의 모델이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성자가 세상을 거쳐 갔지만 그리스도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을 선택하라고 하면 단연 맥체인이 될 것이다. 당시 사람들이 맥체인을 보고 “하나님이 여기 계시다”는 인상을 받을 만큼 그는 그리스도의 광채를 드러낸 사람이었다.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누구도 뜨거운 은혜의 불길을 피할 수 없었다.                           
_본문 중에서

거룩을 갈망한 작은 예수
짧은 생애동안 맥체인이 보여준 경건한 삶은 장엄의 극치였다!

29살의 인생을 오직 하나님으로 꽉 채운《로버트 맥체인》이 넥서스CROSS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설교, 목회, 신학, 기도, 선교, 영성 각 분야에서 하나님께 쓰임받은 신앙 위인들의 삶을 차례로 조명해보는 《믿음의 거장 시리즈》 중 하나로, 국내ㆍ외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로버트 맥체인의 생애와 사상, 업적과 영향력을 고르게 다루고 있다. 일반적 전기 스타일에서 벗어나 생애에 드러난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드라마틱하면서도 구속사적인 역사관을 바탕에 깔고 있다. 깊이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게 구성되어 있어, 평신도와 신학생,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믿음의 거장들의 생애를 통해 독자들은 신앙적 교훈을 얻는 것은 물론, 신앙의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7년을 70년처럼 목회한 사람
29년 10개월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수많은 영적 거장이 로버트 맥체인을 기억하고 그의 삶을 따르려 할 만큼 그는 영성의 거장이다. 그의 삶은 감히 비교를 한다면 예수님과 같은 완전한 순종의 삶을 살았다. 찰스 스펄전은 “맥체인의 전기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꼭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맥체인의 설교와 목회가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힌 바 되었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고 극찬할 정도였다. 어린 시절 맥체인은 문예에 탁월한 소질이 있는 온화한 아이었다. 그런 그의 온화한 마음에 경건한 삶이 들어가기에는 충분했다. 그 후 형의 죽음으로 경건한 삶에 순종의 삶까지 더해져 하나님께 진정으로 쓰임받는 도구로 다시 태어난다. 
그래서 7년이라는 짧은 목회기간 동안 기도와 금식으로 무장하고 주님을 모르는 작은 영혼에도 귀 기울이며 그들을 세심하게 심방하는 일까지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영혼 사랑은 죽는 그날까지 끊이질 않았다.

‘작은 예수상’으로 남다
물론 오랫동안 하나님을 모르는 영혼들을 위해 말씀을 전하고, 그분의 놀라우신 사랑을 전하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그리스도인의 바람 아닐까? 그러나 짧은 부르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살아 숨 쉬는 동안에라도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위해 하나님을 외친 로버트 맥체인. 실제적으로 그가 이 세상에서 산 햇수는 적지만 그의 업적과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삶은 지금의 우리가 느끼고 알 정도로 영원하다. 하나님은 그런 짧지만 굵게 살다간 로버트 맥체인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담은 것은 아닐까?

그는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했고 말과 사랑과 정신과 믿음과 순결에 있어서 성도들의 모범이었다. 그는 밤낮 쉬지 않고 영혼들을 돌보았다. 그는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많은 영혼을 생명길로 인도함으로써 주님의 칭찬을 받았다.

위 묘비의 말처럼 우리도 그와 같은 삶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맥체인은 6살 때부터 퍼스 강이 내다보이는 큰 집에서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바라보며 자랐다. 대학을 다니기까지 16년 동안 그곳에 살면서 자연의 정취가 몸에 뱄던지 유독 문예에 소질이 많았다. 그는 자연 속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했고, 종종 풍경을 그리는 것도 즐겼다. 편지를 쓸 때면 자연을 노래하는 시와 산문을 지어서 보낼 정도로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어머니가 아들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그 내용이 산문보다 낫다고 할 만큼 뛰어난 글솜씨를 발휘했다. 어린 시절부터 숙달된 글솜씨 탓에 대학 시절에는 시작詩作으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_22~23쪽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하기로 맹세한 이후 맥체인의 삶은 놀랍게 변화되었다. 그 후 단 한 번 세상의 환락에 빠진 적이 있었으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본격적으로 기도와 금식으로 경건한 삶을 이루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다. 주님 안에 있을 때 놀라운 기쁨이 넘쳤다. 심령의 평안도 가득했다. 주님을 위해서 헌신을 다짐한 후에는 오직 한 길, 주님을 바라보며 경건한 삶을 이루었다. 다음 몇 개월간의 일기는 그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영적 성숙의 과정을 알려주는 증거들이다.            
_45쪽

이렇듯 지칠 줄 모르는 영혼 사랑의 목양이 맥체인 사역의 특징이었다. 그는 영혼을 돌보는 일이라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주님처럼 선한 목자가 되어 영혼을 돌아보는 일이 자신의 소명인 것을 알았기에 육신이 지쳐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그 일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처럼 맥체인은 성령께서 자신을 감독자로 세우신 교회의 양 떼를 향한 애정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하루 6시간의 심방과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방문, 그리고 설교 요청 등은 건강을 해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_85~86쪽

성경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맥체인은 1842년, 교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을 통독하면서 전체를 개관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고안했다. 독특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성경 읽기표를 고안할 만큼 그는 성경을 꿰뚫고 있었다. 이는 맥체인이 얼마나 성경을 사랑하고 가까이했는지 보여주는 징표이다. 그는 성경의 상세한 부분까지 깊은 관심을 가졌고, 늦은 밤까지 성경 연구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연구에 매진한 것은 자신의 영혼에 기름진 양분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맡겨준 영혼들을 풍성한 꼴로 먹이려는 목적이었다.
_106~107쪽

1843년 3월 25일 토요일 아침 주치의 깁슨 박사가 보는 앞에서 맥체인은 최후를 맞이했다. 그는 마치 축도를 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면서 두 팔을 올리다가 침대에 쓰러진 후 곧 숨을 거두었다. 이로써 맥체인은 지상에서 29년 10개월을 보내면서 이 땅의 모든 수고를 마치고 본향에 입성했다. 맥체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애도의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심지어 전도 집회 때 돌멩이를 던지던 사람조차도 눈물을 흘렸다. 장례식 때는 던디 시내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약 7천 명의 장례 행렬이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았다. 원래 맥체인 가문의 장지는 에든버러 커스버트 교회 정원 묘지였으나, 교인들의 뜻을 받들어 성 베드로 교회 정원에 있는 묘지에 안장하기로 했다.
 _158쪽

복음 전파에 초인적으로 헌신한 사람,
존 웨슬리의 삶과 사상을 읽는다!



나는 온 세계를 나의 교구로 본다. 내가 세계의 어떤 부분에 있든지 듣기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것이 합당하고 옳은 일이며, 나의 무한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 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미국 등 세계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나를 부르셨으며 그분의 축복이 이 일과 함께 한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_본문 중에서

37만 400km의 복음 여정으로 세계를 교구로 삼은 거룩한 인생!
성결한 삶을 통해 종교적 가르침과 진리를 몸소 실천한 신학자!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의 삶과 철학을 담은《존 웨슬리》가 넥서스CROSS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설교, 목회, 신학, 기도, 선교, 영성 각 분야에서 하나님께 쓰임받은 신앙 위인들의 삶을 차례로 조명해보는《믿음의 거장 시리즈》중 하나로,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존 웨슬리의 생애와 사상, 업적과 영향력을 다루고 있다. 일반적 전기 스타일에서 벗어나 생애에 드러난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드라마틱하면서도 구속사적인 역사관을 바탕에 깔고 있다. 깊이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게 구성되어 있어, 평신도와 신학생,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믿음의 거장들의 생애를 통해 독자들은 신앙적 교훈을 얻는 것은 물론, 신앙의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목사의 아들!
존 웨슬리는 목사인 아버지와 청교도 신학에 정통한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 말씀과 자신의 도덕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았다.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철저한 건강관리와 방대한 양의 독서, 특히 ‘성경 종벌레’라고 불릴 정도로 성경을 정독하며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웨슬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로 결심한 후 더욱 철저히 자기관리를 하였다. 자기관리를 통해 웨슬리가 이루고자 했던 참된 신앙은 하나님에게 마음 전체를 드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나님에게 제물로 바치기로 결심했고 평생 그것을 지켰다. 웨슬리가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고난과 핍박에서도 항상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평생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온 세계를 자신의 교구로 삼은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의 부흥 운동은 치밀하고 조직적이었다. 존 웨슬리는 한 지역에서 집회를 하면 그 지역을 중심으로 신도회를 조직해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이 계속 믿음생활을 하도록 도와주었다. 웨슬리가 집회를 한 지역은 집회의 장소를 넘어 하나의 교구가 된 것이다. 이처럼 온 세계를 자신의 교구로 여기며 나아갔던 웨슬리는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사랑의 사도요, 주님의 사람이었다. 따라서 웨슬리가 가는 곳마다 많은 술주정뱅이가 성자로 변했고, 싸움이 있는 공간이 배려와 은혜가 가득한 공간이 되었다. 이 책은 세상의 약자들이 일어나 하나님 말씀을 듣는 공간, 세상의 빈자들이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공간, 세계 만민이 복음을 외치는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 책의 특징]
1. 깊이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은 내용으로 평신도와 신학생,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2. 성결한 삶을 중시한 존 웨슬리의 삶을 통해 종교적 삶의 의미를 되돌아본다. 이를 통해 진정한 종교적 삶, 즉 영적 삶에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3. 가치관 정립이 중요한 시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관과 신앙관을 심어준다.
송삼용
총신대학교(B. A.)와 동 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을 졸업한 후 영국 트리니티대학 대학원(M. A. in Theological Studies)에서 공부했고, 미국 풀러 신학교 목회학 박사원(D. Min.)에서 수학 중이다. ‘꿈·영성·도전’을 모토로 목양, 저술, 강의, 집회 등의 사역을 감당해온 저자는 수려한 필력으로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저술가요, 열정적인 목회자이다. 지난 수년간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영성은 삶”이라고 부르짖으며 후학들에게 ‘개혁주의 영성신학’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금은 하늘양식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교회의 부흥과 그리스도인의 영적 각성을 갈망하면서 믿음의 거장들의 생애를 연구하여 글 쓰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십자가 영성을 회복하라》, 《영성의 거장을 만나다》, 《위대한 설교자 조지 휘트필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고당 조만식》, 《교사는 또 다른 목회자》, 《야베스의 영성》,《구역장 불꽃처럼 일어나라》 등이 있다.
김학중

김학중 목사는 민들레 홀씨 같은 사람이다. 그가 움직이는 곳에는 항상 희망의 홀씨가 날아다닌다. 그 홀씨가 대학 강단을 통해 퍼트려질 때는 많은 젊은이의 마음에 도전의식과 자신감을 심어주고,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메시지를 선포할 때는 그 지역을 미소 짓게 한다. 또한 방송을 통해 희망의 홀씨가 세계 곳곳으로 흘려보내질 때는 세계인들이 평화의 어깨동무를 한다. 그가 머무는 곳이 바로 희망의 자리가 된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들이 사람을 살리고 지역을 살리는 콘텐츠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희망의 아이콘으로 삼는다. 그는 오늘도 민들레 홀씨가 되어 희망을 배달하러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웃음으로 어우러지는 비전을 꿈꾸며 걸어가고 있다. 현재 꿈의교회 담임목사이며 연세대 겸임교수, 굿프랜드복지재단 이사장, 한국크리스천코치협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늘 감미로운 글로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저서로는 《믿음불패》, 《비전불패》, 《영적 자존심을 회복하라》, 《믿음의 거장 시리즈 11~17권》, 《당신은 전도하는 제자입니까? 1‧2》, 《불신자도 좋아하는 교회를 만들라》, 《남편의 말 한마디가 아내의 인생을 결정한다》 외 다수가 있다.

시리즈 소개 | 세트 | 세트낱권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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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믿음의 거장 시리즈 세트(전12권)
저자송삼용,김학중
출판사넥서스CROSS
크기set
쪽수
제품구성상품설명 참조
출간일2013-05-14
목차 또는 책소개상품설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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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송삼용) 신간 메일링   저자(김학중) 신간 메일링   출판사(넥서스CROSS) 신간 메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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